번역도서를 둘러싼 저작권 문제 몇
가지 글 김 기 태 사례 1 어느 출판사로부터 번역 의뢰가 들어와 번역료를 받고 번역 작업을 진행한 사람이 있었다. 그렇게 몇 권을 더 번역해서 정상적으로 출판이 되었는데, 문제는 초판 발행 이후에 발생했다. 번역작가와 아무런 상의 없이 출판사에서 임의로 번역물의 제목과 내용을 바꿔 다시 출간했던 것. 한 권도 아니고 특정 번역작가가 번역한 책 모두를 전혀 다른 책처럼 출판한 것은 물론, 재출간한 책에 대해서는 저작권 사용료조차 주지 않았다. 출판사에서는 번역물의 저작권 일체가 출판사에 있다고 강변하면서 번역작가의 항의를 묵살했다. 번역작가로서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 걸까? 저작인격권과 저작재산권의 차이 저작자에게는 기본적으로 저작인격권과 저작재산권이 주어진다. 그러므로 2차적 저작물의 작성자, 즉 번역자에게도 원저작권자와 마찬가지로 번역물에 대한 저작인격권과 저작재산권이 동등하게 주어진다. 이 중에서 저작재산권은 양도나 상속이 가능하지만 저작인격권은 저작자 일신에 전속되기 때문에 양도나 상속이 불가능하다. 저작인격권에는 공표권, 성명표시권, 동일성 유지권 등 세 가지가 있는데, 이미 출판을 전제로 번역 원고를 넘겼기 때문에 공표권은 행사한 셈이 되고, 번역자로 해당 번역작가의 이름이 적시되어 있으므로 성명표시권 또한 보호된 셈이다. 문제는 ‘동일성 유지권’이다. 동일성 유지권이란, “저작자가 그 저작물의 내용곀還?및 제호의 동일성을 유지할 권리”를 뜻하는 것으로 저작자가 자신이 작성한 저작물이 어떠한 형태로 이용되더라도 처음에 작성한 대로 유지되게 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즉, 저작자의 의사에 관계없이 이용자로부터 저작물의 내용을 변경당하지 않을 권리라고 할 수 있다. 먼저, 저작자에게는 저작물의 내용은 물론 형식 및 제호 등에 있어서 동일성을 유지할 권리가 있다. 저작물은 저작자의 인격을 구체화한 것이므로 저작물에 구현된 저작자의 사상 또는 감정의 표현에 있어서 완전성 혹은 동일성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는 취지이며, 따라서 저작물을 이용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이용 목적을 달성함과 동시에 효과를 드높이기 위해서 저작물의 일부를 없애거나 고치고자 할 때에는 반드시 저작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다만, 단순한 오자(誤字)나 탈자(脫字)를 고치는 것은 예외로 본다. 여기서 내용 혹은 형식의 변경이란, 저작자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무단으로 주제를 변경하고자 전개 과정을 바꿈으로써 원작의 본질을 손상시키는 경우, 등장인물 또는 배경 따위를 바꿈으로써 마찬가지로 원작의 본질을 해치는 경우, 그리고 비극(悲劇)을 희극(喜劇)으로 바꾸거나 시를 소설로 바꾸는 것처럼 표현 형식 자체를 고치는 행위 등을 가리킨다. 하지만 저작물의 본질적인 변경이라도 그것이 정당한 절차를 거쳐 번역 또는 편곡 및 개작 등이 이루어진 것이라면 동일성 유지권의 침해가 아니다. 다만, 번역을 함에 있어서 필연적인 변경과는 상관없는 중대한 실수로서의 오역(誤譯) 따위는 동일성 유지권의 침해 사유가 될 수 있다. 다음으로, 제호(題號)의 문제가 있다. 제호란 저작물의 제목을 일컫는 말이며, 이러한 제호는 저작물의 내용을 집약하여 짧은 문구로 표현한 것이므로 이를 무단으로 변경한다면 저작자에게는 사실상의 인격적 침해가 될 수 있다. 나아가 주제나 내용과는 상관없이 저작물의 상업적 이용만을 위해 제호를 무단으로 바꾸게 될 경우에는 더욱 심각한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저작물의 제호에 한해서는 저작물성을 인정하지 않고 있으며 다만, 그것이 저작물의 내용과 어울릴 경우에는 저작인격권으로서의 동일성유지권의 대상이 된다는 점에 주의해야 한다. 한편, 저작자의 사전 동의가 없더라도 저작물의 변경이 가능한 경우, 즉 동일성 유지권이 미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첫째, 고등학교 및 이에 준하는 학교 이하의 학교의 교육목적상 필요한 교과용 도서에 공표된 저작물을 이용하는 경우에는 부득이하다고 인정되는 범위 안에서 표현을 변경할 수 있다. 둘째, 건축물의 증축 또는 개축에 따른 건축저작물의 변형은 동일성 유지권 침해가 아니다. 셋째, 저작물의 성질이나 그 이용의 목적 및 형태에 비추어 부득이하다고 인정되는 범위 안에서의 표현의 변경이 있다. 다만, 아무리 그것이 부득이한 경우라고 하더라도 본질적인 변경까지 허용되는 것은 아니다. 즉, 교과서에 싣는다고 시를 소설로 개작하거나 상가로 지은 건물을 주거용 빌라로 바꿔 짓거나 3절로 이루어진 노래를 1절로 줄이거나 하는 등의 본질적인 변경은 당연히 동일성 유지권 침해사유가 된다. 우리나라에서는 저작물의 제호에 한해서는 저작물성을 인정하지 않고 있으며 다만, 그것이 저작물의 내용과 어울릴 경우에는 저작인격권으로서의 동일성유지권의 대상이 된다는 점에 주의해야 한다. 매절계약과 저작재산권 양도계약 저작재산권과 관련하여 우리 출판계의 오랜 관행 중에 이른바 ‘매절(買切)’이라는 것이 있다. 흔히 번역물일 경우, 또는 여러 사람에 의한 공동저작물일 경우, 그리고 무명의 작가로부터 원고가 들어왔을 경우 한꺼번에 얼마간의 금액을 지불하고 이후에는 아무런 금전적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 형태를 가리킨다. 문제는 이를 ‘저작권양도계약’으로 해석하는 데 있다. 과거 저작권에 관한 인식이 희박하던 시절에는 누구나 이를 당연한 관행으로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오늘날에는 그렇지 않다. 예컨대, 저작물 이용에 따른 대가를 발행부수 또는 판매부수에 따라 지급하는 것이 아니라 미리 일괄 지불하는 형태로서 이른바 ‘매절계약’은, 그것이 일반적인 인세를 훨씬 초과하는 고액이라는 등의 증거가 없는 한 이는 출판권설정계약 또는 독점적 출판허락계약이라고 봄이 타당하며, 출판권은 저작권법에 의하면 당사자 사이에 특별한 약정이 없는 한 3년간 존속하는 것이므로 계약일로부터 3년이 경과하면 출판권은 소멸되는 것이 명백하다는 판결(서울민사지방법원 제51부 1994.6.1. 판결, 94카합3724 가처분이의)만 보더라도 매절이 곧 저작권 양도라는 해석은 매우 위험한 것이다. 설령 그것이 저작권양도계약이라 하더라도 저작자 일신에 전속하는 저작인격권은 이에 해당하지 않으며 오직 저작재산권만 양도될 수 있으므로 저작자로서의 성명표시권이라든가 동일성 유지권은 훼손될 수 없다. 결국 위의 사례를 살펴보면 출판사에서는 번역작가의 저작인격권상의 동일성 유지권과 저작재산권을 침해한 것이며, 따라서 번역작가는 출판사측에 동일성유지권 침해에 따른 위자료와 저작재산권자로서의 저작권사용료(인세) 지급을 요구할 수 있겠다. 사례 2 요즘 서점에 나와 있는 해외명작도서 리스트를 보면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를 비롯하여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나 바스콘셀로스의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 같은 작품이 여러 출판사에서 출간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저작권이 엄연히 존재하는 작품들로서 저작자 사후 50년이 아직 지나지 않았는데, 어떻게 이같은 일이 가능한 것일까? 저작권 환경의 변화와 회복저작물 예를 하나 살펴보자. ‘갑’이라는 출판사에서 2004년도에 저명한 미국 학자의 저서를 번역출판하기 위해 해당 저작권자와 독점적인 번역출판계약을 맺고 한국에서 번역도서를 출판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이미 1993년도부터 ‘을’이라는 출판사에서 같은 도서를 번역출판해서 시판중인 사실을 알게 되었다. 원저작권자에 의하면 예전에 한국내 어느 출판사와도 번역출판계약을 체결한 사실이 없다고 한다. 그래서 갑이 을에게 해당 도서의 출판중지를 요청했으나 을은 1993년도부터 출판했기 때문에 법률상 아무런 잘못도 없다고 한다. 어떻게 된 일일까? 먼저, ‘회복저작물’에 대해 이해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는 1995년도에 세계무역기구 지적재산권협정(WTO/TRIPs)에 가입한 바 있는데, 이에 따르면 WTO 회원국은 베른협약 제1조부터 제21조까지 준수할 것을 규정하고 있다. 이 협정에 따라 우리는 1995년 12월 6일 저작권법을 개정하여 1996년 7월 1일부터 외국저작물을 소급해서 보호하게 되었으며, 그 결과 개정법 시행 이전의 외국저작물까지 국내에서 보호받게 되었는데, 그러한 저작물을 ‘회복저작물’이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이처럼 회복저작물까지 소급해서 보호하게 되자 당연히 국내 이용자들의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게 되었고, 이를 완화하기 위해 개정저작권법 부칙에서 몇 가지 특례규정을 두고 있다. 예컨대, 부칙 제4조에서는 ‘회복저작물 등의 이용에 관한 경과조치’를 규정하면서 “회복저작물 등을 원저작물로 하는 2차적 저작물로서 1995년 1월 1일 이전에 작성된 것은 이 법 시행 후에도 이를 계속하여 이용할 수 있다. 다만, 그 원저작물의 권리자는 1999년 12월 31일 이후의 이용에 대하여 상당한 보상을 청구할 수 있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여기서 ‘1995년 1월 1일 이전에 작성된 것’이란 1995년 1월 1일 이전에 번역물 등 2차적 저작물을 작성 완료해서 발행한 것은 물론 그 이전에 2차적 저작물의 작성을 완료하여 원고를 보관하고 있다가 그 이후에 발행(출판)한 것도 포함된다. 이에 따라 어느 시점에서 번역원고(2차적 저작물)의 작성을 완료했느냐 하는 점,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입증하느냐 하는 점이 매우 중요하다. 앞의 예에서 을이 1993년도에 번역도서를 발행했다는 것은 이미 번역원고의 작성을 그 이전에 완료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을’ 출판사의 번역본은 1995년 1월 1일 이전에 작성된 것이 분명하므로 개정법 부칙 제4조에서 말하는 회복저작물에 해당한다. 결국 을은 비록 원저작물의 저작권자로부터 이용허락을 얻은 사실은 없지만 그의 번역출판은 정당하며 계속 출판할 수 있다. 그러나 2000년도 이후의 이용에 대해서는 원저작물의 저작권자가 청구하게 되면 을은 그에게 상당한 보상금을 지급해야 한다. ‘갑’ 출판사는 원저작물의 저작권자가 아니므로 ‘을’ 출판사를 상대로 보상청구권을 행사할 수는 없지만 저작권자의 권리를 위임받아 2000년도 이후의 보상금에 대해 청구권을 행사하는 방법은 있다. 그러나 그 보상금으로 번역출판계약을 맺으면서 원저작권자에게 이미 지급한 저작권 사용료를 만회한다거나 손해를 충당하기에는 어려울 것으로 판단된다. 보상금은 어디까지나 원저작권자의 몫이기 때문이다. ‘을’ 출판사의 번역본은 1995년 1월 1일 이전에 작성된 것이 분명하므로 개정법 부칙 제4조에서 말하는 회복저작물에 해당한다. 결국 을은 비록 원저작물의 저작권자로부터 이용허락을 얻은 사실은 없지만 그의 번역출판은 정당하며 계속 출판할 수 있다. 그러나 2000년도 이후 의 이용에 대해서는 원저작물의 저작권자가 청구하게 되면 을은 그에게 상당한 보상금을 지급해야 한다. 사례 3 일반적으로 계약기간 내에 발행된 도서라 하더라도 계약기간 만료 이전에 전부 판매하기는 쉽지 않다. 많은 경우에 있어서 출판계약기간이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재고도서가 있게 마련이다. 번역도서의 경우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그런데 저작권 중개를 해주었던 에이전시에서 계약기간 이내에 팔리지 않은 도서는 폐기해야 한다고 통보해 왔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특히 학술서적의 경우에는 그 판매속도가 더디기 때문에 계약기간 이내에 첫 쇄조차 소진하기가 어려운 것이 현실인데, 애초에 주고받은 계약서에는 재고도서에 대한 특별한 언급이 없는데도 재고도서 판매를 중지해야 한다는 통보는 과연 법적 효력이 있는 것일까? 출판권 소멸 후의 출판물의 배포에 관한 원칙 현행 저작권법 제59조에서는 ‘출판권 소멸 후의 출판물의 배포’에 대해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제59조(출판권 소멸 후의 출판물의 배포) 출판권이 그 존속기간의 만료 또는 그 밖의 사유로 소멸된 경우에는 그 출판권을 가지고 있던 자는 다음 각 호의 1에 해당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그 출판권의 존속기간 중 만들어진 출판물을 배포할 수 없다. 1. 출판권 설정행위에 특약이 있는 경우 2. 출판권의 존속기간 중 복제권자에게 그 저작물의 출판에 따른 대가를 지급하고 그 대가에 상응하는 부수의 출판물을 배포하는 경우 우선, 출판권 설정행위에 특약이 있는 경우에는 출판권이 소멸되었더라도 남은 출판물을 판매에 의한 방법이든 아니든 계속해서 배포할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특약이란, “출판권자는 출판권이 소멸된 이후라도 이전에 만들어진 출판물의 재고를 계속해서 판매에 의한 방법으로 배포할 수 있다”라는 식으로 약정하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출판권설정계약을 하는 당시에 복제권자와 출판권자가 이와 같은 내용으로 합의했다면 출판권 소멸 이후의 배포가 가능하다는 뜻이다. 또, 출판권의 존속기간 중에 복제권자에게 그 저작물의 출판에 따른 대가를 지급한 후에 그에 상응하는 부수의 출판물을 배포하는 것도 가능하다. 즉, 출판권이 소멸하기 이전에 출판권자가 그 저작물의 복제물을 3,000부 제작하기로 하고 그에 따른 인세 또는 사용료를 복제권자에게 지급하였을 경우에 출판권이 소멸한 뒤로도 그 중의 1,500부가 남았다면 그것은 계속해서 배포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만일 그 이상을 더 제작해서 배포한다면 복제권자의 복제권은 물론 배포권까지도 침해하는 결과가 되므로 주의해야 한다. 결국, 번역도서의 경우에도 외국 원저작권자에게 이미 지불한 로열티 범위 내에서 출판한 부수가 계약기간 이후에도 남아 있다면 그것은 모두 소진할 때까지 판매할 수 있다. 출처: 북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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