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 저작물의 무단번역과 출판에 따른
책임
외국인 A의 작품을 국내에서 번역 출판하고자 현지 저작권대행사(에이전시)와 연락을 주고받던 중 A의 작품이
이미 국내에서 무단으로 번역 출판되었음을 발견했다. 이 사실을 알렸더니 A와 저작권대행사에서는 번역출판을 허용한 적이 없다며 해당 출판사에 대한
정보를 달라고 한다.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외국 저작물의 발행시점과 국내에서의 번역 및
출간시점이 관건 우선 저작권법상 무단복제에 해당하는지, 아니면 회복저작물로서 과거에는 보호받지 못하던 저작물이었으나 이후
새롭게 보호받기 시작한 저작물인지 판단하는 게 필요하다. 무단으로 번역 출판되었다고 한 번역물의 국내 출간시점이 만일 1995년 이전,
즉 1994년까지의 시점에 해당하고, 원저작물의 발행일이 1987년 10월 1일 이전이라면 그것은 ‘무단복제’라고 볼 수 없다. 다만,
2000년 1월 1일을 기해 원저작권자에게 보상청구권이 부여되므로 원저작권자가 통상의 저작권사용료에 해당하는 보상을 번역본 출판사에 요구해서
저작권사용료를 받을 수 있을 뿐이다. 이 경우 국내에서의 독점번역출판허락계약을 맺은 출판사에게는 보상청구권이 주어지지 않으므로 별도의 위임절차에
따른 것이 아닌 한 제3의 국내 출판사를 상대로 배타권을 행사할 수 없다. 만일 번역본의 국내 출간시점이 1995년 이후이거나 원저작물
발행시점이 1987년 10월 이후라면 무단복제물임이 분명하므로 해당 출판사에서는 저작권법에 따라 민·형사상 법적 책임을 질 수밖에 없겠다.
여기서 ‘회복저작물’에 대해 제대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외국인의 저작물은 “대한민국이 가입 또는 체결한 조약에 따라 보호된다”는
기본원칙을 바탕으로 하되 국제관례에 따른 예외사항으로서 내국민대우의 원칙, 국가간의 상호주의 원칙 등에 따라 보호된다. 먼저, 우리나라가 가입
또는 체결한 조약에 따라 외국인의 저작물을 보호하는데, 여기서 ‘가입’이란 저작권 보호와 관련하여 여러 나라가 참여한 국제협약에 우리가
회원국으로 참여하는 것을 말하며, ‘체결’이란 주로 우리나라와 다른 어느 나라, 즉 두 나라 사이에서 맺어지는 조약이 성립된 것을 말한다.
현재 우리나라가 가입한 국제협약으로는 1987년 10월 1일부터 효력이 발생한 유네스코 주관의 세계저작권협약(UCC; Universal
Copyright Convention)과 1996년 1월 1일부터 효력이 발생한 세계무역기구(WTO) 협정, 그리고 1996년 8월 21일에
가입한 베른협약(Berne Convention) 등이 있다. 한편, 1996년 6월 30일까지는 그렇게 성립된 조약의 발효일 이전에 발행된
외국인의 저작물은 보호하지 않는다는 단서(1995년 11월 개정 저작권법, 1996년 7월 1일자 발효)에 따라 우리가 UCC에 가입하여
국내에서 그 효력이 발생하기 시작한 1987년 10월 1일 이전에 발행된 외국인의 저작물은 사실상 보호받을 수 없었다. 이는 UCC 제7조에서
규정하고 있는 불소급효不遡及效에 의한 것이었으나, WTO 체제의 출범에 따라 국제적인 상황은 이를 부정하는 쪽으로 가닥이 잡히게 되었다. 즉,
베른협약에서는 UCC와는 달리 회원국의 외국인 저작물에 대한 소급효遡及效를 강조하고 있는데, 새로이 출범한 WTO의
지적재산권협정(TRIPs)에서 회원국들은 모든 지적재산권에 대해 베른협약의 수준으로 보호할 것을 명시하고 있으며, 우리나라도 이미 회원국이
되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1995년 11월에 통과된 개정 저작권법에서는 이러한 단서조항을 삭제함으로써 소급보호가 가능하도록 정비되었다.
따라서 이 법이 적용되는 1996년 7월 1일부터는 그 동안 보호하지 않았던 1987년 10월 1일 이전에 공표된 외국인의 저작물에 대하여
1957년 1월 1일을 기점으로 소급보호가 이루어지게 되었으며, 이렇게 해서 새로이 보호의 대상이 된 저작물을 개정법 부칙 제3조에서는
‘회복저작물’이라 부르고 있는 것이다.
▷사례 2 매절계약과 인세의 차이에 따른
분쟁 A는 컴퓨터전문 저술가로서 B라는 출판사에 기획서를 낸 끝에 출판계약서를 작성하게 되었다. 그러나 출판 경험이 별로
없었던 A는 책을 낸다는 기분에만 들떠 계약내용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상태에서 도장을 찍게 되었고, 책이 출판된 이후에야 실제 계약서에는
저작자에게 저작권의 ‘영구적인 양도(매절)’에 따른 대가로서 ‘200자 원고지 1매당 1만 원’이라는 원고료에 대해서만 책정이 되어 있고 인세에
대해서는 언급된 항목이 없음을 알게 되었다. 나아가 그 책이 독자들의 호응에 힘입어 수만 부가 팔리고 있었기에 A는 그에 따른 인세를
지급하라고 B의 대표에게 요구했으나 계약서 내용을 근거로 모든 저작권이 양도되었음을 주장하며 원고료 중 미지급된 금액만을 지급하겠다고 한다.
A는 더 이상 아무런 권리도 주장할 수 없는 것인가?
■저작재산권 양도계약인가 아니면 출판허락계약인가
우리 출판계의 오랜 관행 중에 이른바 ‘매절買切’이라는 것이 있다. 흔히 번역물일 경우, 또는 여러 사람에 의한
공동저작물일 경우, 그리고 무명의 작가로부터 원고가 들어왔을 경우 한꺼번에 얼마간의 금액을 지불하고 이후에는 아무런 금전적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
형태를 가리킨다. 문제는 이를 ‘저작권양도계약’으로 해석하는 데 있다. 과거 저작권에 관한 인식이 희박하던 시절에는 누구나 이를 당연한 관행으로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이제 그 상황은 매절계약을 부정하는 방향으로 변하고 있다. 1994년에 나온 판례만 보더라도 매절계약이 곧 저작권
양도라는 해석은 매우 위험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즉, 당시의 판결(서울민사지방법원 제51부 1994.6.1. 판결, 94카합3724 가처분
이의)을 요약하면 “저작물 이용에 따른 대가를 발행부수 또는 판매부수에 따라 지급하는 것이 아니라 미리 일괄지불하는 형태로서 이른바 매절계약은,
그것이 일반적인 인세를 훨씬 초과하는 고액이라는 등의 증거가 없는 한 이는 출판권설정계약 또는 독점적 출판허락계약이라고 봄이 타당하며, 출판권은
저작권법에 의하면 당사자 사이에 특별한 약정이 없는 한 3년간 존속하는 것이므로 계약일로부터 3년이 경과하면 출판권은 소멸되는 것이 명백하다”는
것이다. 설령 그것이 저작권양도계약이라 하더라도 저작자 일신에 전속하는 저작인격권은 이에 해당하지 않으며 오직 저작재산권만 양도될 수
있으므로 저작자로서의 ‘성명표시권’과 ‘동일성 유지권’은 훼손될 수 없다. 아울러 저작재산권의 양도에 있어서도 저작권법 제41조의 규정에 따르면
“저작재산권의 전부를 양도하는 경우에 특약이 없는 때에는 2차적 저작물 또는 편집저작물을 작성할 권리는 포함되지 아니한 것으로 추정한다”고
했으므로 이 또한 주의할 필요가 있다. 이 규정은 저작재산권자의 이익을 보호함에 있어 합리성을 추구한 것으로, 저작재산권을 양도해야 하는 상황은
대개 저작재산권자로서는 매우 불리한 경우가 많을 것이며, 그렇다면 저작재산권을 양도받으려는 쪽에서 정한 일방적인 계약내용으로 계약이 체결되는
상황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위의 사례에서 A는 1만 원 상당의 원고료를 받은 것이 전부이므로 B에 대해 나머지 인세를
지급하라고 요구할 수 있다.
■원저작물과 마찬가지로 번역물도 엄연히 독자적인 저작물 현행 저작권법에서는 이른바 2차적 저작물에 대해 규정하고 있다. 곧
“원저작물을 번역·편곡·변형·각색·영상 제작 그 밖의 방법으로 작성한 창작물”을 가리켜 2차적 저작물이라고 하며, 이는 독자적인 저작물로서
보호된다. 즉, 누구든지 여러 가지 저작물의 형태를 원저작물로 해서 새로운 저작물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다. 여기서 번역飜譯이란 “글 또는
말로 이루어진 저작물을 원래 사용된 언어 이외의 언어로 표현하는 것으로서, 우리말이나 글로 되어 있는 원저작물을 다른 나라 언어, 즉 외국어로
바꾸거나 외국어로 되어 있는 저작물을 우리말이나 글로 바꾸는 것”을 말한다. 이 경우에 언어체계가 상당히 다르다면―예컨대, 고전을 현대어로
새롭게 표현하는 것처럼―굳이 외국어가 아니더라도 번역의 범주에 포함시킬 수 있다. 그리고 번역은 내용과 문체에 있어서 충실하고 정확하게
원저작물을 표현해야 한다. 이렇게 했을 때 번역자는 다른 언어를 창작적으로 표현한 점을 인정받아 별도의 저작권을 부여받는다. 물론 2차적
저작물이라고 하여 원저작물에서 바로 파생된 저작물만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즉, 우리 글로 된 저작물을 원저작물, 즉 1차 저작물이라고 할 때,
그것을 토대로 일본어 번역이 이루어졌다면 그것은 2차 저작물이지만, 그 다음에 일본어 번역물을 토대로 영문 번역물이 나왔다면 그것은 엄격한
의미에서 3차적 저작물이 되는 것이다. 이 경우에 권리관계의 측면에서 본다면 3차적 저작물의 작성자(영문 번역자)는 2차 저작물의 작성자뿐만
아니라 원저작자인 1차 저작물의 작성자로부터도 허락을 얻어야만 정당한 권리자가 된다. 따라서 4차는 물론 5차적 저작물도 가능하지만 통상적으로
원저작물 이외의 저작물을 모두 일컬어 ‘2차적 저작물’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렇듯 여러 가지 방법에 의해 원저작물을 토대로 작성된 2차적
저작물은 원저작물과 관계없이 ‘독자적인 저작물’로서 보호된다. 2차적 저작물의 작성은 원저작물의 저작자의 허락을 필요요건으로 하지 않기
때문이다. 원저작자의 허락 여부와는 관계없이 일단 작성된 2차적 저작물은 저작권법에 따라 보호된다는 뜻이다. 그러나 그것이 원저작물을 창작한
저작자의 권리를 침해해도 좋다는 뜻은 아니다. 원저작자의 허락 여부와는 관계없이 2차적 저작물의 작성자에게 부여되는 권리가 있기는 하지만,
그것이 원저작자의 권리를 침해했다면 그에 따르는 책임은 별도로 발생하는 것이다. 결국, 2차적 저작물을 작성한 사람이 그에 따른 권리를 정당하게
행사하기 위해서는 먼저 원저작자의 허락을 받는 것이 가장 안전한 절차라고 하겠다. 번역의 경우를 예로 든다면, 저작물의 번역권 자체가 저작권의
구성요소이기 때문에 번역을 하기 위해서는 적절한 경로를 통해 원저작자로부터 허락을 받아야 하는 것이며, 그렇지 않을 경우에 그에 따른 원저작자의
권리침해 문제가 별도로 제기될 수 있다. 위의 사례에서 국내 번역작가에게는 해당 번역물에 대한 저작권만이 주어지지만, 원저작자인 프랑스
작가에게는 기본적인 저작재산권을 포함하여 자신의 저작물을 토대로 만들어지는 모든 2차적 저작물에 대한 권리가 주어지므로 경우에 따라서는 여러
종의 국내 번역물이 출판될 수도 있다. 저작권 자체의 본질에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원저작자와 번역자의 저작권에는 미묘한 차이가 분명히
존재하는 것이다.
김기태 출판평론가 세명대학교 미디어창작학과 교수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와 같은 학교 대학원 신문방송학과 졸업(정치학 박사). 다년간
출판실무자로 활동한 경험을 살려 출판학 및 저작권에 관한 연구에 정진하고 있으며, 경희대 언론정보대학원과 중앙대 신문방송대학원,
서울북인스티튜트(SBI) 등에서 저작권 강의를 맡고 있다. 현재 대한출판문화협회 저작권상담실 전문위원으로도 활동 중이다. 주요 저서
<한국저작권법개설>(2005), <매스 미디어와 저작권>(2005), <유비쿼터스 시대의 저작권 상식
100선>(2005), <디지털 미디어 시대의 저작권>(2005)
츨처:북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