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다싶은 詩 모음

수라(修羅) - 白石

이강기 2015. 8. 31. 10:44
 
 

수라(修羅)

                  白石

 

거미새끼 하나 방바닥에 나린 것을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문밖
으로 쓸어버린다
차디찬 밤이다

언제인가 새끼거미 쓸려나간 곳에 큰거미가 왔다
나는 가슴이 짜릿한다
나는 또 큰거미를 쓸어 문밖으로 버리며
찬 밖이라도 새끼 있는 데로 가라고 하며 서러워한다

이렇게 해서 아린 가슴이 싹기도 전이다
어데서 좁쌀알만한 알에서 가제 깨인 듯한 발이 채 서지도 못
한 무척 작은 새끼거미가 이번엔 큰거미 없어진 곳으로 와서 아
물거린다
나는 가슴이 메이는 듯하다
내 손에 오르기라도 하라고 나는 손을 내어미나 분명히 울고불
고 할 이 작은 것은 나를   무서우이 달아나버리며 나를 서럽게 한다
나는 이 작은 것을 고히 보드러운 종이에 받어 또 문밖으로
버리며 이것의 엄마와 누나나 형이 가까이 이것의 걱정을 하며 있
다가 쉬이 만나기나 했으면 좋으련만 하고 슬퍼한다

 


    수라(修羅) : 싸움을 일삼는 귀신.
    싹기도 : 흥분이 가라 앉기도.
    가제 : 방금, 막.


'좋다싶은 詩 모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묘비명 - 강파월   (0) 2015.08.31
오적(五賊) - 김지하 (다시 읽어보는 재미로)  (0) 2015.08.31
애장 터 - 박근수  (0) 2015.08.31
거울보고 늙음이 기뻐서 - 白居易   (0) 2015.08.31
故鄕 - 백석  (0) 2015.08.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