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東錫 評論集

民族의 良心

이강기 2015. 9. 1. 22:44

民族의 良心


   - 金東錫

 

 

 

「그대들은 이 땅의 소금이니라. 然이나 그 소금이 짠맛을 잃었다면 무엇으로 그것을 짜게 할 수 있을 것이냐? 소금은 그때부터 無用之長物일지니 내버림을 당하여 사람들의 발아래 짓밟히게 되리라.」


   弱小民族이오 被壓迫民族인 猶太가 낳은 偉大한 革命家 예수는 山上에서 이렇게 弟子들에게 외친 일이 있다. 反動的 團體인 바리새와 사두개의 무리들이 權力을 다투고 있을 때, 로마帝國의 槍劍을 믿고 謀利의 行爲만을 일삼는 무리가 늘어갈 때, 自暴自棄의 毒酒를 마시고 비틀거리는 무리가 거리거리를 가로막을 때, 이렇게 나날이 더럽혀져 가는 民族性을 純化 淨化하는 소금이 되고자 한 것이 예수와 그의 弟子다.


   그런데 二十世紀 朝鮮에 있어서 이 말이 뼈아픈 眞理인 것을 예수 敎徒들도 모르는 모양이다. 그렇지 않고야 天照大神을 祭壇에 모시고 美英을「鬼畜」이라 부르던 牧師와 神父가 如前히 說敎를 하게 내버려 둘 까닭이 없다. 하물며 그들이 政治 브로커가 되고 謀利輩가 되는 것도 모른 척 한다면 예수敎徒 自體가 소금의 맛을 잃어버렸다 아니할 수 없다. 예수의 참뜻을 모르는 예수敎徒 - 그들은 似而非 예수敎徒가 아니냐. 그대들은 이 땅의 소금이 되어야 할 것이다.


   猶太民族을 짓밟던 로마 帝國, 朝鮮을 짓밟던 日本帝國主義도 그만 못지 않은 虐政者였다. 그러면 그 밑에서 果然 누가 예수였으며 누가 사두개와 바리새였으며 누가 유다였더냐. 피를 흘린 사람, 鐵窓에 呻吟한 사람, 남몰래 괴로워하면서 民族의 길을 가르쳐 준 사람, 그 사람들만이 朝鮮의 예수였다. 사두개와 바리새는 大地主와 資本家였으며 유다는 말하고싶지도 않다. 스스로 反省함이 있을진저......


   그러나 시방 朝鮮이 지닌 더 크나큰 슬픔은 過去 三十六年동안 民族의 良心을 간직해 온 사람들 가운데 소금의 짠맛을 잃어 가는 사람이 있다는 事實이다. 民族을 위하여 싸워 왔다는 사람 가운데 民族을 짓밟고라도 올라서려는 사람은 없는지. 조선은 아직도 弱하고 가난한 民族이라는 것을 夢寐間에도 잊어서는 指導者 될 資格을 喪失할 것이다. 朝鮮民族의 大多數가 아직도 가난과 핍박 속에 있거늘, 몇몇 分子만이 잘먹고 잘산다고 民族全體가 잘 살게 된 것은 千萬 아니다. 그런데 그런 者들에게 에워싸여서 朝鮮現實에 눈 어두워진 指導者는 없는지. 指導者는 이 땅의 소금일진데 짠맛을 잃는다면 짓밟혀버릴 것을 알라.


   「日帝」의 총칼 밑에서 象牙塔을 死守한 文化人들도 또한 소금의 짠맛을 잃어 가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짠맛이 없이 어찌 남을 짜게 할 수 있으랴.「象牙塔」(잡지 이름)의 예술가와 과학자는 누구보다도 먼저 民族良心의 師表가 되라.「象牙塔」은 良心의 象徵이 되고자 한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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