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東錫 評論集

大韓과 朝鮮

이강기 2015. 9. 1. 22:50

(이 글을 다시 읽어보니 해방 직후 좌우갈등의 골이 얼마나 깊었나를, 그리고 당시 좌익들의 논리가 얼마나 나름대로 정연하며 선동적이었나를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앞서 "朝鮮의 思想"에서 말한 그 "집안 아저씨"도 이 같은 논리에 경도된 것이 아닌가도 싶다. - 이강기)

 

大韓과 朝鮮


   - 金東錫

 

   시방 이 땅엔 두 나라 사람들이 싸우고 있다. 그것은 美國과 蘇聯을 意味하는 것이 아니다. 美蘇는 對立되어 있는지는 또 모를 일이로되 싸우고 있지 않으며 또 앞으로도 싸울 것 같지 않은 것만은 明白한 事實이다. 그러면?


   大韓과 朝鮮 - 이 두 나라 사람들의 싸움은 시방 最高潮에 달해 있다. 한쪽에서
 

  「大韓사람 大韓으로」하고 노래를 부르면 또 한쪽에서


  「朝鮮사람 朝鮮으로」하고 應하는 것쯤은 좋다. 이만한 對立이야 어느 나라엔 없겠느냐. 아버지의 世代와 아들의 世代가 잘 調和될 수 없다는 것은 歷史的 必然인 것이다.


   하지만 大韓사람과 朝鮮사람의 對立은 그냥 時代的 差라고만 볼 수 없게스리 深刻하다. 그러면 무엇이 이 두 世代의 對立을 이렇게 激化하게 했느냐? 우리는 大韓과 朝鮮 사이에 三十六年의 汚辱의 歷史가 있었다는 것을 언제고 잊어서는 아니 될 것이다. 이 더럽힌 歷史가 大韓과 朝鮮을 合칠 수 없는 두 나라로 만들었으며 이리하여 大韓사람과 朝鮮사람은 싸우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같은 지붕 밑에서 살아도 아버지와 아들의 뜻이 맞기 어렵거늘 三十六年동안 헤어졌던 아버지와 아들이 相逢했음에랴. 하물며 이 두 世代를 이간질하는 者가 있음에랴.


   大韓사람과 朝鮮사람은 이렇게 기쁘고도 슬픈 對面을 하게 된 것이다. 아니 인제는 서로 외면을 하게 된 것이다. 그것은 아버지의 잘못도 아들의 罪도 아니다. 日帝에 蹂躪되기 前 그 옛날을 그리워하는 大韓사람과 日帝의 植民地에 태어났음을 지긋 지긋이 여겨 모든 日帝的인 것을 벗어버리고 앞으로 앞으로 달음질치려는 朝鮮사람들의 갈 바 길이 反對方向으로 나있기 때문이다. 過去와 未來, 共通된 現在는 日本과 親日派의 것이기 때문에 한쪽에선 過去로 逃避하자 하고 또 한쪽에선 未來로 突進하자 하는데서 悲劇的인 決裂이 생긴 것이다. 


   大韓사람이 朝鮮사람이 되든지, 朝鮮삶이 大韓사람이 되든지. 다시 말하면 日帝가 朝鮮을 占領하기 前에 그 옛날의 大韓을 復舊하든지 새로운 朝鮮을 建設하든지 現在에서 兩者가 한데 뭉치기는 어려운 形便이다. 日帝의 殘滓가 이간을 부치기 때문에. 設使 한데 뭉칠 수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더럽힌 歷史 속에 그대로 晏如하자는 것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結論은 뻔하다. 歷史가 거꾸로 흐를 수는 없는 것이다. 大韓사람이 朝鮮사람이 되도록 努力할 것이다. 그것이 朝鮮이 統一될 수 있는 唯一한 原理요 原則이다. 이 原理原則을 無視한다면 朝鮮이 또다시 靑春없는 老廢國이 되어나 流血革命이 오거나 自主獨立國家가 되지 못하거나 세 가지 중에 하나밖에 길이 없을 것이다.


   歷史는 結局 갈 데로 가고야 말 것이다. 하지만 三十六年의 苦難과 窮乏과 虐待를 무릅쓰고 民族의 解放과 獨立을 위하여 싸워온 愛國者가 千載一遇인 이 마당에 있어서 骨肉相爭의 悲劇을 演出하려는 것은 웬 일이냐. 두렵도다. 民族과 歷史를 背反하는 무리들의 謀略策動이여! 우리의 살길은 오로지 새로운 朝鮮建設에 있는 것을 그래 大韓人들은 모른단 말인가?(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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