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東錫 評論集

象牙塔

이강기 2015. 9. 1. 22:41

象牙塔

  - 金東錫

 

 

   低俗한 現實에서 超然한 것이 象牙塔이다. 그러나 그것은 쌩트 삐어브가 詩人 알프렛 드 비니를 批評할 때 쓴 "tour d'ivoire"라는 말과는 意味가 같지 않다. 말은 現實의 反映이라 時代를 따라 그 意味한 바 內容이 變한다. 드 비니는 佛蘭西의 貴族이요 이 貴族이 들어 있던「투우르 디보아르」는 文字 그대로 現實을 無視한 觀念의 世界였지만 日帝의 彈壓 밑에 이룩한 朝鮮의 象牙塔은 짓밟힌 現實 속에서 피어난 꽃이었다. 朝鮮民族은 굶주리고 헐벗고 쪼들린 民族이니 밥과 옷을 장만하기 前에는 꽃이 다 무슨 말라비틀어진 꽃이냐 하면 問題는 닳다. 三千萬이 다 앞을 다투어 勞動者 農民이 되어 果敢히 鬪爭을 展開한다면 朝鮮의 生産力은 飛躍的으로 發展할 것이오「託治」니 무어니 하는 것이 애시당초부터 걸리적거릴 이치가 없지 않느냐.


   그러나 食口가 百萬이 넘는 서울을 비롯해 日帝 搾取의 司令部이던 都市에는 勤勞하지 않고 먹는 사람들이 왜 그렇게 많은지.「내 땅에서 나는 쌀 가지고 먹는데」라든지「내 會社에서 나는 利益을 가지고 먹는데」하는 따위에 地主나 資本家는 물론, 이른바 精神 勤勞者들 가운데에도 日本帝國主義가 물려준 遺産의 德으로 好衣好食하는 者가 많다.


   朝鮮民族은 그렇지 않아도 가난한 民族이다. 이 많은 寄生的 存在가 營養分을 빨아먹고 있는限 强大해질 수는 없다. 그런데 이 寄生蟲的 存在는 勤勞하는 朝鮮民族에게 感謝는 고사하고 財物과 權力과 知能을 가지고 파시스트로 君臨하려 한다. 이러한 現實 속에서 藝術의 殿堂이오 科學의 牙城인 象牙塔을 建設하려 애쓰는 사람들 - 名利를 超越하여 自己의 時間을 全部 바쳐서 朝鮮의 자랑인 꽃을 가꾸며 自然과 社會의 秘密을 여는「깨」를 거두는 藝術家와 科學者들은 象牙塔밖에는 아무 데도 갈 곳이 없다. 農村! 工場! 물론 革命的인 인텔리겐차는 벌써 다 그 속에 들어가 있을 것이다. 歷史를 움직이는 힘은 生産力이오 生産力을 發展시키는 原動力이 工場과 農村에 있거늘 歷史를 움직이려는 革命家들이「소돔」이나「고모라」같이 腐敗한 都市에서 觀念을 무슨 原子爆彈이나 되는 것처럼 자랑하는 街頭政治家가 될 말이냐. 서울 같은 데서 가장 政治를 아는 체 떠들어대는 인텔리겐챠의 主觀이 外國通信하나로 이리 댓둥 저리 댓둥 하는 것을 볼 때 그들을 象牙塔에다 잡아 가두고 싶은 생각이 어째 안 나겠느냐. 朝鮮의 歷史와 運命은 朝鮮人民의 血管 속에 흐르고 있는 것이어늘 그들 속에 들어가 그들의 손을 잡지 않고 浮動하고 있는 인텔리겐챠여, 섣불리 政治를 건드리지 말라. 朝鮮語學會를 비롯해 象牙塔 속에선 進步的 役割을 하던 文化團體가 政治舞臺에 나설 때 얼마나 서투르고 보잘 것 없는 俳優이었느냐. 八.一五와「託治」의 興奮이 그들의 馬脚을 드러내고 말았다. 


   象牙塔은 희고 차다. 그것은 朝鮮의 理性을 象徵한다. 또 그것은 産卵때가 되어 물위에 튀어 솟는 白魚와 같은 生命의 躍動을 意味하기도 한다. 文化設備를 獨占하고 있는 都市엔 謀利의 濁流가 흐르고 있거늘 理性과 躍動이 없이 文化의 象牙塔이 그 속에서 솟아날 수 있겠느냐. 文化人이여, 힘을 합하여 象牙塔을 키우자.(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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