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 박원환
1
주여 갑자기 내 일상 한 복판으로 바람이 불어옵니다. 붉은 감 가지 꺾어든 가을 천천히
걸어가고 마주 웃으며 손잡은 연인들 지나는 거리에 울음 참고 선 저녁 쓸쓸하여 지난여름 영광과 충만함 벌써 기억할 수
없습니다.
2
주여 당신은 보여주었습니다. 차디찬 허무 바닥에 누운 검은 관같은 삶의
얼굴 애정과 미움 흔적 없는 텅 빈 육신이 꺼져 가는 등불 들고 당신 발자국 소리만 귀기울이고 있었습니다.
주여 눈같은 당신 흰 옷자락으로 그가 살 동안 눈물과 슬픔 위로하여 주소서 그가 지금까지
얼마나 아름다운 비단을 짜며 얼마나 눈물 젖은 빵을 씹어왔듯 주여 저도 살고 있습니다. 아침 식탁마다 한 송이 분홍 장미
꽂으며 내 끈끈한 혈육 일상 구석구석만 쓸고 닦으며 살아왔습니다.
3
지금껏 내 생을 깊은 밤 강물처럼 출렁이던 절망과 욕망이 나를 얼마나 슬프게 하고
이웃을 얼마나 아프게 하여왔는지 주여 저는 몰랐습니다. 내 목 쉰 기도마다 응답하여 주신 주여 이제 무릎꿇어 당신
오실 이 험한 길목에 기름 준비한 등불 밝히고 당신 주신만큼의 시간을 내 영혼 등피 닦고 닦으며 당신을
기다리겠습니다. 지금껏 내가 사랑했던 사람들에게 조금씩 조금씩 보이지 않는 손수건 흔들며 참회와 감사로 식탁 차려 그들을
대접하고 기도와 믿음 씨뿌리고 가꾸어 거칠어진 내 손을 자랑스럽게 살아가게 하소서.
- 아멘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