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명 |
대동아 제14권 제3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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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
제14권 제3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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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년월일 |
1942-03-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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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제목 |
大東亞戰爭과 中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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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
汪兆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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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형태 |
논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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武裝同志 諸君. 우리는 오늘 여기에 戰略演習을 개시하기로 되였는데 때는
마침 日本이 英米에 대하야 개전한 제3일채임니다. 이제 戰略演習 개시 때에 一戰이 이미 도래하였든 것임니다. 戰略演習은 원래부터 중대한 의의를
가진 것인데, 금일 개시한 이 의의는 더욱더 중대한 것입니다.(중략-원문) 國父가, 民國 14년 3월 12일 서거한 후는 뒤에 죽은 동지가
遺志를 계승하여 7월 1일에 廣州에서 國民政府가 성립되고, 나는 國民政府 主席이 되고, 6월 23일 沙基의 暴虐事件後를 이어 곳 英國에 대하여
不買同盟을, 또 香港에 대한 大罷業을 발동했고, 그리고 日本에 대하여서는 友誼를 지속하였다. 여기에 있어선 누구나 다 아는 바이다. 이어서
17년 5월 3일 蔣中正은 北伐 때문에 濟南事件을 引起하고 곳 英米를 이용하여 日本을 견제하는 策略을 결정했다. 이로부터는 여기에 쪼차 國民
20년 9월 18일의 瀋陽事變(註 滿洲事變을 示함)에 이르러 더 한층 치열해젔다. 武裝同志 各位여 내 이 말은 결코 책임을 회피하려는 의지가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나는 명백히 말하지 않을 주 없는 것은 9·18이후 本黨의 동지는 2派에 나뉘였다는 것이다. 一派는 英米를 이용해서
日本을 견제하는 것을 주장하고, 徹頭徹尾 절대로 이것을 변경하지 않으려고 하는데 이것은 본래부터 國父의 遺訓과 전혀, 상반하는 것니다. 다른
一派는 中日間의 形勢惡化를 보면서도 오히려 마음을 다하고 힘을 다해서 挽回를 謀하며, 또한 逆轉으로부터 好轉에 이르게 하려는 것인데〈78〉 이거
亦 본래부터 國父의 遺訓을 준수하고, 中國이 결렬하여 興亞前途가 泡?에 歸함을 원치 않는 것이다. 었쨋든 당시의 民風은 浮華淺薄할 뿐 아니라,
공산당이 중간에서 조종하고, 다시 또 英米의 도발에 의한 前者 一派의 기세는 날이 갈사록 後者 一派의 동지는 孤獨辛勞함에도 불구하고 드디여 죽는
자는 죽고, 상하는 자는 상하여, 蘆溝橋事件의 폭발을 제지할 수 없게 되였다. 蘆溝橋事件 발발 후 中日兩國은 提携合作의 희망이 끊어진 것
같았으나 그러나 27년 11월 3일 日本近衛 內閣聲明을 發함에 있어서 日本의 眞意는 中國 멸망에 있지 않고, 中國 興隆에 있고, 日本과 가치
東亞 新秩序 건설의 책임을 공동부담하자고 說한 다음, 12월 23일에 이르러 다시 中國合作의 원칙을 구체적으로 列出하여, 善隣友好, 共同防共,
經濟提携를 하고, 최후에 다시 聲明하여 日本은 오직 中國의 발달을 阻止하지 않을 뿐 아니라 되려 中國를 援助하여 또 현대국가로서의 필요조건인
租界返還, 治外法權廢止 등을 具備한다고 했다. 이 意義는 무었인가. 이것이 日本이 和平을 바라고 中國이 恨을 풀고, 다시 제휴하여 亞細亞에
해방에 노력하려고 하는 것이다. 日本이 임이 이 결심이라면 中國 眼前의 분규도 자연 해결의 방법이 生할 것이고 또 이것만이 아니고, 國父의
大亞細亞主義도 여기 따라 실현의 기회를 얻을 것이다. 이런 까닭에 나는 소위 29일 通電을 發한 것이다. 이것은 결코 새로운 주장도 아무것도
아니고 오히려 國民革命 이래의 終始一貫한 신념인 것이다. 가령 그 당시 나의 29일 通電의 주장이 실현되였다면 28년 8월말부터 9월초,
歐州戰爭 再發 때 中日兩國은 임이 古傷을 곤치고, 새 원기를 배양하여 東亞新秩序를 건설하며, 또 기타 세력이 圍繞하고 阻害를 가하는 일이
없었다. 그러면서 重慶方面은 頑迷하여 깨달지 못함으로 실로 痛切하지 않을 주 없었다. 歐州大戰 再發 후 나는 重慶方面에 다시 소위 17일 전보를
發함에 이르러 간절히 설명하여 「中日兩國이 만약 이때에 전쟁을 終*하고 평화를 영도한다면, 日本은 본래부터 重한 지위를 보존하여, 경제상의
번영을 넓히 취하고, 中國은 특히 이것으로 말미아마 휴양하여 생활하며, 工商業의 발달을 計할 주 있음으로, 戰後의 疲憊를 회복하고, 따라서
三民主義 中華民國의 건설을 완성할 주 있다.」 만약에 이렇게 할 주 있다면 「경제침략주의 及 공산주의는 東亞의 천지에서 자최를 감출 것이고,
그러느라면 스사로 성공은 3倍할 것이다.」하고 했든 것인데 유감스럽게도 重慶方面은〈79〉 頑迷하여, 더욱 前보다도 심하게 이 기회에 一擧하여,
경제침략의 桎梏을 타파하려는 생각을 하지 않을 뿐 아니라 되려 오직 이 桎梏을 잃을 것을 두러워 하듯, 또는 물에 덤벙 볼에 덤벙하듯 드디여,
英米의 慫慂에 죽엄도 아까워 안하며 그 결과 中國軍隊는 英國의 雇傭兵이 되고, 中國人民은 英米의 희생품이 되고 말았다. 이런 盾顚倒는 실로
침통하지 않을 주 없다. 이제 日本은 英米에 대해서 開戰 했는데 重慶方面은 이것이 경제침략을 타파하고 亞細亞는 해방하는 역사적 사명임을
깨닷지 못하고 꺽구로, 되려, 英米의 책동에 盡力하고 있고 일반 공산당은 蘇聯의 使嗾을 바더 英米를 적대시하고 있었는데 이제 와서는 英米의
고용병이 되려고 한다. 그들의 유일의 「슬로간」은 英米의 戰勝 日本의 敗戰이다. 만약에 英米가 이기고 日本이 패한다면 中國은 무슨 이득이
있는가. 中國에는 현재 해군도 없다. 英米가 日本을 이긴 후에는 何等의 주저도 없이 中國에 드려올 것이다. 그렇게 되면 100년 이래의 경제침략
桎梏은 해제 못될 뿐 아니라 中國은 印度와 가치 되여 갈 것이리라. 그래서 亞細亞인은 「오-스트라리야」3州의 土人과 가치 되든지 그렇지
않으면 종족를 멸하는 一途를 밟을 뿐이리라. 다시 뭇는다. 英米가 이기고 日本이 지는 날, 中國에 무슨 이득이 있느냐 말이다. 하믈며
重慶方面의 英米戰勝, 日本敗戰의 웨침은 一場의 꿈이 얘기에 지나지 않는다. 重慶方面에는 지금 하나의 웨침이 있다. 그것은 日本이 전쟁에는
이기나 持久에는 못 견듼다. 웨냐하면 日本資源은 英米를 따를 수 없다고. 이 웨침도 또 꿈이 얘기다. 소위 자원이란 것도 인간과 물자 외에 있을
주 없다는 것을 알지 않어선 안된다. 먼저 사람에게 관해서 말한다면 日本이 지금 進攻한 곳은 米國의 식민지인 檀香山(註하와이島) 比律賓, 英國
식민지인 南洋群島, 緬甸 及 和蘭 식민지로 이들 식민지 중, 英米는 군대는 없지만 이들 太半 土人으로서 충당하고, 이들 土人은 평소 植民待遇에
痛心疾苦하고 있음으로 아무리 하드래도 英米를 대신하여 죽엄을 아끼진 않으리라. 고로 日本 군대와 遭遇하면 승패의 수는 말할 것도 없다. 다시
물자에 대해서 말하면, 以上 식민지에 소유하는 예를 들면 석유라든가, 고무, 錫 같은 것은 어느 것이나 中日의 필요 것으로, 그밖에 綿, 鐵,
石炭, 米 등 中日의 부족을 보충할 수 있다. 日本이 만약 以上 식민지를 취득한다면 日本 물자는 결핍의 염려가 없고 여기에 반하여 英米는 이들
식민지를 잃은 것이고 以上의 공급이 단절 될 것이고 장기전에 결핍을 느낄 것은 英米일 뿐, 日本은 아니다.〈80〉 이상 각 點에 대해서
임이 설명했으나, 이제 말하러고 하는 것은 즉 中國 자체다. 中國 자체는 이 시기에 어떻게 해야할까. 흔이 사람들이 國民政府는 還都이래 1년
有餘에 지나지 않고, 군의 정비, 武의 단련은 倉卒間 되는 것이 아니고 日本과 협력할 생각이 있어도 협력이라 하지 않을 것 또 혹은 日本은
此시기에 我等의 협력을 要할 것일지 안 할 것인지 이렇게 의심하고 있다. 나는 이제 무장동지 諸君에게 정중히 告하러 한다. 이 두 懸念은
어느 것이나 필요하다. 내가 언제나 하는 말이지만 中國은 日本과 東亞新秩序의 동반자가 될 것을 要한다. 소위 동반자라 함은 당연히 有力한
동반이다. 만약 無力한 동반자라면 또 어떤 역할을 해야 될까. 日本은 이 시기에 결코 동반자가 필요 없을 것은 아니고 혹 동반자를 구하지
않드래도 이 동반자가 無力에 頹廢할 것을 바랄 필요가 없다. 그러므로 이 두 가지의 懸念은 전혀 不要하다. 우리는 이때를 당하여 오직
同心협력해서 동반자가 되고, 또 전심을 다하여 자기를 檢討하고 자기를 연구하여 어떻게 하면 역량을 더하여 유력한 一個의 동반자가 될까를 생각해야
할 것이다. 즉 今次의 戰略演習으로 논한다면, 日本은 우리들에게 적지 않은 원조를 하고 있는데 이것이 즉 日本은 우리들의 동반자 되는 것을
바라는 증명이다. 吾人은 今次 戰略演習 중에 자기소유의 역량이 幾何를 부담할 수 있는가를 檢討하고 또 如何히 하면 자기의 역량을 더하여 더욱더
중대한 책임을 부담할 수 있는가를 연구할 것이다. 古人이 말하기를 「나를 다하라」고 했다. 我等은 유력한 一個의 동반자가 되려면 「나를
다한다」는 데 있을 뿐이다. 우리들은 결코 36년 전 日露戰爭 당시 같아선 안 된다. 吾人은 반다시 마음을 같이하고 덕을 같이하여 마음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今次 日本의 對英米전쟁 중에 유력한 동반자가 되여 100年 이래의 경제침략의 桎梏를 打破하고, 國父의 국민혁명의 遺志를
완성하고 中國으로 하여곰, 自由平等을 얻게 하자. 그래서 東亞의 해방을 얻자.(끝)
면적(%) 인구(%)
馬來
13.7 - 萬方? 544 - 萬人
英 北보루네오 7.5 - 30 -
國 사라와크 12.9 - 44 -
領 벨마 50.5 1,602 -
계 94.7(24.2) 2,300(18.7)
佛國領 印度支那
74.0(18.9) 2,303(18.7)
和蘭領 東印度 190.4(48.8) 6,073(49.3)
米國領 比率賓
29.6(7.6) 1,600(13.0)
葡萄牙領 치모-르 1.9(0.5) 45(0.3)
총계 390.6(100)
12,322(100) 〈81〉
〈78-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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