解放前 雜誌記事 모음

國境의 匪賊首魁 金日成 會見記

이강기 2015. 9. 5. 11:52
   
 
 
잡지명 삼천리 제9권 제5호
호수 제9권 제5호
발행년월일 1937-10-01
기사제목 國境의 匪賊首魁 金日成 會見記
필자
기사형태 회고·수기

白衣同胞 14명과 함께 인질로 「마적」대에 잡혀서
長白山 밀림 속에 인질로 잡혀가서 인간의 고초란 고초를 다 맛보고, 요행 탈출하여 나온 이 피의 눈물의 기록

長白縣은 白頭山 밑 무서운 드메산꼴임으로 매우 숲 깊어서 본래 마적의 소굴로 유명하거니와 昨秋부터는 北滿 일대에 있는 마적까지 엄습하여 큰 수라장을 일우어 놓었다.
縣內 우리 동포가 3천 호=2만 여의 인구를 算하는데 작년 7월 이후 6ケ月間, 勿驚! 放火 燒失된 가옥이 천여 호=피해 인원이 萬에 달하거니 그 참담한 광경은 너머나 심하지 않었는가. 더구나 이것이 천재지변이 아니고 인간의 작난인데야 어지하랴! 돈을 빼았기고 양식과 집을 잃은 수많은 동포들은 雪風찬 이역에서 주린 창자를 움켜쥐고 지금 어느 곳에서 눈물과 한숨으로 이 봄을 맞이하는가.
北國의 봄은 오로지 유랑민의 봄이다. 鴨綠江 頭에는 보찜과 이불찜에 박아지를 조롱조롱 매여달고 강을 건너가는 이도 많지만 대부분이 강을 건너온다. 웨-滿洲에 살지 않고 오느냐고 무르면 그들은 힘없는 소리로 「그놈들의 성화에 집 불 질으고 양식 빼앗기고 어찌 살겠오...」하고 한숨을 지운다. 어느 해인들 강을 건느고 오는 이 없으리 마는, 이 해 이 봄은 그 수가 더욱 많은 데야 어찌하랴!
마적! 그들은 웨 산중에서 칼을 갈지 않으면 안 되는가. 인간을 잡어 먹는 업을 가지지 않으면 안 되는가... ...지난 4월, 長白縣의 被拉同胞 14명이 일시에 마적굴을 탈출하여 나왔다.
그들의 모험담과 魔窟의 黑幕을 알고저 필자는 長白 시내의
金鼎富· 鄭道益 兩氏를 찾었다. 그들은 마적굴에서 7, 8개월이나 신음하든 분이라 얼굴이 붓고 상처가 많으며 苦勞가 역력해 보인다. 病餘의 몸이라 겨우 이야기는 시작되였다.

劇的 光景의 拉去
鄭道益氏가 붙잡히든 때는 작년 9월!
「山雨慾來風滿樓」!
비가 오려면 바람이 가득 찬 것 같이 그 때의 長白 18道溝 일대는 긴장된 공기 속에서 개만 짖어도 가마귀만 울어도 야릇한 생각만 떠돌았다.
「쉬-총소리가 나네」
「이 사람들 도망갈 생각말고 꼼짝 말고 업드리게」
이렇게 노루 잡는 포수의 총소리에도 가슴을 놀래이며 불안과 공포 속에서 그날 그날을 보내였다. 18道溝 新道里村- 그 곳에는 10여 호 소작 농가가 있다. 바로 이 마을의 地主님도 벌서 마적의 毒牙에 사로잡히였고 어느 날 새벽에는 그네의 大部隊가 이 동리를 통과하였고 翌朝에는 서슬이 시퍼런 토벌대가 들어 밀었다.
총칼이 번적이고 말발굽 소리가 요란할 때 軍隊 通譯님이 무엇이라 말을 전하였는지 그들은 눈알을 굴니며 호령을 나리면 어찌할 바를 모르고 벌벌 떨기만 하는 것이다.
이 동리에 2, 3차나 폭풍우가 지나간 9월 19일 밤 마적의 일단이 鄭씨의 집을 돌격-덮어놓고 결박을 지여 끌어가니 그 날 그 밤의 18道溝 일대는 먼 촌의 개 짖는 소리조차 무시무시한 판이니 험악한 대륙의 공기는 모든 인간을 삼킬 듯이 암흑의 입을 버리고 있지 않은가.

暗夜苦行百餘里
30여 명 마적이 滿人 地主 7인을 벌서 묶어 오고 黃牛 20여 首를 약탈해 오고 식량을 공작해 온 것이 그 運搬人夫만 100여 명! 이렇게 그들은 이번 길에 득의 양양하야 本窟로 行脚하는 판이다. 이 밤에 東天을 바라보니 二道崗市街가 火光이 衝天이요 총성이 殷殷하니 저기도 습격을 당하야 수많은 사람의 가슴을 아프게 할 때에 잔학한 그들 행동이 더욱 알미워었다.
鄭씨는 두 팔에 팔자에 없는 결박을 당한 채 어슬넝 어슬넝 끌려가는 소(牛)모양으로 오라는 이도 없고 가라는 이도 없것만 아니 끌여가지 못하는 서름 길을 어이하랴!
이대로 끌여가서 영영 죽엄 길이나 그렇지 않으면 다시 인간 셰상을 보는 날이 올까 하고 실망과 희망의 길이 괴로운 가슴속을 설네였다고 한다.
밀림 속으로 밀림 속으로 밤길 100리를 엎어지며 잡바지며 힘없이 끌여오고 나니 날이 밝었다는데 黑사자골에서
金日成을 두령으로 한 本隊에 와서 3일을 留하게 되였다.

森嚴한 訓陳
첩첩산중 골 깊은 곳에 삼림이 無盡藏으로 쌓여 있고 그 속에 나무를 베여 겨우 적은 비를 피할 만큼 적은 초막을 10여 個所 지여 놓고 약 300명의 一隊가 주둔하고 있다. 茶褐色 혹은 黃褐色 군복에다 가죽(狗皮)모자와 地下다비신을 신었고 擔銃한 무기는 具備하였다고 한다. 비록 그들은 산중으로 潛行하며 조밥을 먹으며 단여도 검으테테한 그 얼굴은 모다 씩씩해 보였고 건강해 보였다고 한다.
그들의 말을 들으면 馬賊團하고도 小派黨들을 總 聯合시켜 「抗X聯合軍」이라 하고 연설도 하고 격려도 해 가며 정신적 훈련을 해 간다고 한다.
중에는 滿洲人과 朝鮮人이 各 半數를 점하였으며 擔銃軍服한 여자도 10여 명 있었다고 한다.
그들의 조직체계를 보면
十名爲 一班
三班爲 一牌
三牌爲 一團
三千名爲 一師
이렇게 班에는 반장이 있고 牌에는 牌長, 團長 師長 등 지휘자가 있어서 군령을 절대 복종하여 一動一靜을 一絲不亂히 한다고 한다. 探報軍이 消息通을 가지고 通信連絡을 敏速히 하고 出張隊가 식량을 탈취해 오고... ...쉬- OO에서는 지금 전쟁을 하는 중이며 토벌대는 OO溝까지 돌입하였다. 그리고 군대 밀정인 듯한 수상한 사람이 나타났다... ...」 이런 정보가 飛來하기도 한다.
그러면 그들 首腦部는 긴장한 얼굴로 首*密議某班某隊를 명하야 第一線의 방어진을 배치하는 것이다.

隊內에는 비품, 식량 공급 등 내부적 역할을 다하는 內務部가 있고 군대의 감독 원정 등을 지휘 外征을 總攝理하는 外務部를 두고 각 부에는 副官을 (呼名曰 푸관)두어 일을 처리해 간다.〈40〉 내무부는 深深山谷, 雲深林深不知處에다 그 사무소를 두고 首腦部 이외에는 그 소재를 알지 못하게 되여 있고 위험하게 되면 內務室을 어데로 이전하겠다는 만일의 준비까지 정돈하고 있는 모양이다. 外務部에서 공작해 온 식량과 물품과 병기는 전부 內務室에 보관해 둔다.
「푸관님 신 한커레 주소. 다 헤여젓읍니다」하고 아츰마다 병졸들이 청구하는 것을 보았다고 한다.
엇잿든 內務室은 그들의 생명의 창고다. 이것을 토벌 당하는 날 그들의 생명도 마지막이다.

매일 수백 명 인부가 식량을 가지고 이 山谷으로 저날은다. 그리고 탈취해 온 牛馬 수백 首!

農民 二重苦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진다」는 말이 있거니와 마적과 토벌대 등살에 죽어 나는 것은 농민이다.
朝鮮에서 越江한 窮民이니 山間 화전에 귀리 감자를 심어 연명하는 그들이어니 마적들은 *착하게도 양식을 빼아서 가지고 토벌군과 연락을 취한다는 구실노 덮어놓고 구타도 하고 방화도 한다. 그리고 一時에 수백 명식 양식을 지여 가지고 목동이 도야지 떼를 몰고 가듯이 사정없이 채찍으로 때려 가며 산중으로 몰고 가는 것이다. 寒雪北風-눈길 백 리를 끌여갔다 온 그들은 수족이 얼고 끈어지고 생명까지 잃은 자가 長白 일대에 너머나 많다는 悲報를 필자는 恒茶飯의 일같이 들었다.

「마적에게 식량과 금품을 공급하거나 연락을 취한 자는 마적으로 認하고 즉시 총살함」 이것은 縣內 要處에 붙은 서슬이 시피런 佈告文이다. 상기와 같은 죄명으로 2개월 전에 K라는 사람이 총살당하는 것을 目眺하였고 H, K, K 8인의 벗이 의심을 받어 1개월 동안이나 獄中苦를 겪든 일을 나는 기억한다. 「여보게 極秘密일세. 손발이 얼어 떠러저도 방안에서 고이 죽지 마적에게 양식을 날너주었다는 소문이 나면 큰일나네」 이렇게 벌벌 떨기만 한다.
토벌군도 산간 농가에 방화를 한다. 그 이유는 산간에 농가가 있음으로 마적이 依接한다는 것이다. 지금 집단부락을 실현 중이어니와 천여 호 방화를 맞인 농가이다.
長白縣內 방화 소실된 가옥을 略記하면
十六道溝頭道小溝 66호
大德水村 42호

新昌洞 50호

小文彦洞 15호

七兄弟洞 72호

天橋學校村 60호

咸興村 46호

軍糧洞 50호

獨洞德里 50호

要房子 50호

桃泉里 107호

逃亡골 70호

金鼎富村 140호

馬O子 20호

三溝上里 20호

二十道溝上里 20호

八道溝內面 300여호

(작년 12월말 현재)

監獄行
각지의 出張隊가 활동을 해서 糧食바리가 들어오고 인질도 잡어오는 사람이 하나하나 늘어가더니 鄭氏는 4, 5인 마적에게 擁護되여 백여 리 되는 深谷監獄으로 들어가는 판이다. 저승길을 것듯이 한없이 적막하고 쓸쓸한 길이였다.
때때 9월! 滿洲의 가을은 덧없어서 어느 듯 백설이 날니고 모진 북풍이 사정없이 불고 주인도 없는 듯한 황막한 들판 - 노루와 사슴이 멋대로 뛰고 松風은 스르릉- 물 흘으고 새가 노래하는 대자연의 雅趣야 변함이 있으랴- 그러나 두 팔을 묶기여 가는 그에게는 모든 것이 울음이요 서름이였다.
落葉! 그는 발길에 짓밟히는 가여운 낙엽이 아니냐. 그는 아픈 가슴을 부둥켜안꼬 오직 한올을 처다보고 ?*을 읍였다.
「하눈님이여!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여 이 죽엄 길을 것게 하나이까. 그저 불상히 역이사 살여주옵소서」
이렇게 그는 몇 번이나 눈물을 흘니며 애원했는지 모른다.
아-가여운 인생의 마지막 길이여!

獄中逢故人
옥! 그 곳은 방향조차 알 길이 없는 深谷! 울창한 수목, 길 넘는 黃草 속, 겨우 風雨를 피하도록 草幕을 지여 놓고 그 속에 결박을 지여 앉처 놓았는데 그 중에서 鄭氏는 자기보다 1개월이나 먼저 入獄한
金鼎富, 金鼎七, 許鳳來, 許龍* 諸氏를 반가히 맞났다는데 獄中 逢故人은 더 한층 반가웟다고 한다.
이 獄에는 朝鮮人이 5인 滿人이 9인 그리고 간수가 6인 여간수가 1인! 이렇게 옥중 살님을 게속해 간다.
오던 날 翌日 아츰 滿人 姜壽山씨가 絶命! 그는 60 高齡이라 食飮의 不適 심신의 과로 등으로 기진 맥진하야 죽었는데 氏는 일즉이 長白縣立 正蒙學校長으로 있든 분으로 지덕이 겸비한 노인이였다는데 이렇게 비통한 최후를 마치게 됨에 일반은 눈물노 吊意를 表했든 것이다.
바로 姜氏가 죽기 수일 전
鄭致鎭氏(二十道溝 鐵路頭人)는 그들에게 총살을 당하였다고 한다. 이렇게 한 달에도 몇 번식 初喪을 치른다고 하는데 그들의 애닯은 혼이 있다면 밤마다 소리처 울 것이다.

獄中七個月
옥중의 일상 생활은 극히 간단하다.
1일에 보리죽물 二腕식 먹는 것.
睡眠은 1일에 꼭 3시간 자는 것.
대소변은 1일 2회 여렀이 일시에 출입하는 것.
이것은 어대까지 규칙적 實行이다. 만일 조을거나 바지에 소변을 싸게 되면 규칙 위반이니 간수님은 사정없이 방망이로 내려 갈닌다. 그들이 深深山谷 옥중에서까지 팔에 노끈을 풀지 아니하고 혹독한 악형을 가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마적과 옥중인은 서로 적이 아니냐. 적을 養하는 것은 위험을 자초하는 것이다. 獄人은 언제나 마적을 타살하고 도주할 기회를 였볼 것이니 차라리 그들의 營養을 부족케 하고 수면을 적게 하야 원기를 죽여서 도주할 기력이 없도록 만들어 놓는 것이 그들의 유일한 자위책인 것이다.
그들의 정책이 이러하매 육신의 지배를 받는 인간이라 犯則을 아니해 내는 재간이 없다고 한다. 하로에 몇 번식 조을고 어더 맞고 바지에 오줌을 싸서 머리를 〈41〉 얻어맞고... 이와 같은 일은 보통으로 당하는 일이어니와 속탈이 나서 설사를 맛났을 때 鄭氏와 李氏가 옷에 오물을 싸서 멫 번이나 독한 매를 얻어 맞었다고 한다. 아-그들도 감정을 가진 인간이리라. 너머나 심하지 안으냐... ...아니, 그래서 「마적」이란 별명을 가지지 않었든가.
일과는 매일, 판에 박은 듯이 한걸같었다. 조을고 매맞고 오줌싸고...이렇게 한 달을 지내고 보니 영양이 극도로 부족되여 언제든 밥이나 한번 먹어 보았으면-하고 願뿐이였다고 한다.
밥으로 사는 인간이 밥을 못 먹을 때에 괴로움! 그것은 너머나 큰 고통이 아닐까. 오직 눈에 보이는 것이 밥 뿐이요 그 때에 전부는 밥! 그것 뿐이였다 한다. 10월에 어느 날 아츰 샘(泉)에 물 길너 가든 틈을 타서
金萬春君이 놈들의 총알과 競走를 해 가며 도망해 나왔다. 그는 용감한 남아다. 그 鐵網을 버서나 뛰어나온 것은 凡人으로 하기 어려운 일이다. 이 사건이 있은 후로부터는 박해가 더욱 심하야 金의 괴로을 獄人들이 분담하였다고 한다.

10월, 11월 옥중에도 뜻 없는 세월은 흘넜다. 자연의 節侯야 事情이나 있으랴. 滿洲의 山野에는 길 넘는 백설이 덮이고 때때로 매운 바람은 불어서 치위는 빼살을 어여냇다.
온돌도 없는 초막 속에 우등불 놓고 쪼인다. 8, 9월에 겹옷을 입고 간 것이 겨을 한 바람에야 그 무슨 防寒이 되랴. 그저 살이 노랗게 구어지도록 이렇게 5개월 간이나 우등불을 쪼이고 나니 얼굴이나 살이나 모다 시커먹코 눈만 샛별처럼 멀둥 멀둥한 것이 건들바람에도 쓸어질 듯한 허수아비와 같은 인형! 흑인도 황인도 아닌 산중의 一大怪物임에 틀임없었다.

獄에서 20리 相距되는 곳에 내무 푸관실이 있다. 간수님이 푸관에게 한 번식 갔다 오면 大牛殺食! 탈취한 소를 잡는다. 그 고기는 놈들이 한 달이고 두 달이고 눈 속에 파묻어 놓고 저이들끼리 먹고 겨우 먹다 남은 앙상한 빼만 獄人에게 주는 것이다. 그러면 그 빼를 가지고 喪家狗爭骨格으로 싸움판이 벌어저서 서로 먹고살겠다고 눈이 벌것다 한다.

金鼎富翁은 當年 73. 그는 官房子의 지주였든 관계로 이 늙은이는 이 몹쓸 고생을 겪는데 이번까지 마적에게 拉去呻吟하기 凡 3차. 1년 혹은 半年 식 가진 고초와 풍상을 다 겪은 옥중의 가장 원로요 경험자다. 그러므로 대소사를 그의 지시로 處事한 일이 많었다고 한다. 老人이라 마적들도 厚待는 하였다고 하나 그의 원기는 아직도 씩씩하고 老當益壯하시다.
翁의 이야기로 들으면 마적단도 10년 전보다는 개명하였다고 한다. 위선 아편을 들 먹는 것. 규율이 엄정한 것. 훈련을 잘 받은 것 등 그들도 이지적으로 일을 전개시킨다고 한다.

金日成會見
「마적 대장
金日成」이라 하면 국경 일대에선 너머나 알니엇고 新聞紙나 본 사람은 누구나 기억하리라.
總師長이란 이름을 가지고 X에 가까운 滿人, 朝鮮人 부하를 이리저리 통제해 가며 습격 싸홈, 완강히 군대와 저항해 가며 산중 소굴을 지휘해 가는 그! 그는 과연 어떤 인간인고?
金鼎富翁은 많은 흥미를 가지고 이 수수꺽기의 인간을 회견하였든 것이다.
후리후리한 키, 우락부락한 말소리 음성을 보아 고향은 平安道인 듯. 예상보다 연령은 너머나 젊은 血氣方丈의 30미만의 청년. 그는 滿洲語에 정통, 어대까지 대장이란 標的이 없고, 복장, 食飮에까지 하졸과 한가지로 기거를 같이하며 甘苦를 같이 하는데 그 감화력과 포용력이 잇는 듯하게 보엇다.
「老人님 추운데서 얼마나 걱정되십니까」 그는 먼저 이렇게 부드러운 말노 인사를 들이고는
「某側의 정보에 의하면 老人님이 5만원의 재산을 소유하고 있다고 해서 拉來한 것인데 其後 사실을 조사한 결과 무근의 설임을 알었읍니다. 老人님이 設使 기천 원의 전 재산을 우리에게 납부하는 것은 우리는 남의 돈을 빼았는 것이여서 즐겨하지 않읍니다. 그리나 우리는 우리 일이 잇스니 부득이 하지요... 」
「이런 고생을 왜 시키느냐구요? 老人님 우리가 고생하는 걸 좀 체험하시여 甘苦를 아시라는 것입니다. 우리 젊은 몸이 따뜻한 자리 평안한 생활을 누가 싫여하겠오. 2, 3일식 보리죽도 못 얻어 먹어 가며 이 고생을 달게 하는 것은 다 그리되어 그리것이요. 나도 눈물도 있고 피도 있고 혼도 있는 인간이요. 그러나 이 추운 겨을을 우리는 이러케 도라다니는 구려」
그는 생각든 바와는 좀 달느게 匪賊首魁답지 안케 音聲도 조용하고 태도도 우락부락하지 안엇다.
그는 金翁을 여러 가지 말노 慰撫해가며 지금은 엄동이라 雪中에 寸步를 옴길 수 없고 새 봄에는 꼭 老人님을 還家시킬터이니 안심하라고 하고 부하 간수에게 특별 우대하기를 명하였다고 한다.
金日成-匪賊首魁인 그는 골격이 여무러 보이고 말 잘하고 뱃심 있어 보이는 그! 나이에 비해서 풍상을 겪은 지라 老熱해 보이는 그! 그는 마적 대장이라 자칭함이 그럴듯하더라고 金翁은 여러 번 말하였다.
과연 그는 滿洲 벌판이 좁다 하고 마적 대장으로 一生을 마칠 터인가. 그의 나이 아직 점거니 방향을 전환할 것인가 써! 將來如河?

「토벌군이 온 듯하니 시급히 獄을 이전하라」 그 內務 부관의 通牒이 왔다. 그리고 부관이 明日에 獄으로 갈 터이니 내일 꼭 이사하도록 준비하라는 것이다. 翌日 아모리 內務員을 苦待하여도 오지 않음으로 그 곳에서 5리 되는 곳으로 獄을 이전하였다. 그 집은 만일의 위험을 방비하기 위하여 여름에 초막을 미리 지여 두었든 것이다. 온다고 약속한 부관은 其後 3일이 지나도 소식이 沓然하고 식량은 벌서 다-먹어 버리고... ...일은 점점 미궁으로 들어가는 판이다. 생각다 못해 얼어죽은 말고기(馬肉)를 가저다 벌서 3일이나 먹었는데 內務部로 가고 보니 어대로 도망을 갔는지 탱비여 있다는 보고가 왔다. 그리고 간수 한 놈이 땀을 흘니며 달녀오드니 밀정인 듯한 2명을 발견하였다. 不遠에 이곳을 습격할넌지 모르니 至急히 避身하자는 것이 그 놈의 제안이다. 놈들은 눈이 둥그렇다. 일은 났다.
「하누님이여! 이 魔窟의 열쇠를 열어주옵소서」하고 獄人들은 얼마나 祝願했는지 모른다고 한다.
양식도 끈어지고 여기서는 그냥 雪中孤魂될 것이니 人間村으로 찾어가자고 보찜을 지고 떠나려고 할 때에 간수들은 너히들은 우리가 가서 식량을 얻어 올 때까지 여기에 있으라는 명령인데 그 동안에는 小米 1斗와 甘粉 1升이 있으니 연명하라고 하며 그들은 가 버리였다. 말하자면 그들은 窮餘一策으로 줄행낭을 놓는 판국이였다.

넌센쓰劇 一幕
간수 일행 떠난 지 20분도 채 못 되여서 총성은 나기 시작하였다. 콩 볶는 듯한 총소리! 그것은 너머나 壯快한 소리다.
총살이 비 오듯하는 獄中에는 一場喜劇이 열니였다. 죽은 말고기 빽다귀 싸움. 이것은 먹고 살기 위한 너머나 무서운 싸음이 아니냐. 馬骨爭奪戰! 힘세고 억센 껑哥놈이 鄭氏가 쥔 것을 전부 받았고 滿人끼리 合勢를 해서 鄭氏의 말빽다귀를 빼앗고 老黨들은 勢力家들에게 구걸해 먹고... 시급한 대로 甘粉으로 범벅을 끌여먹는데 서로 많이 먹겠다고 입술에다 얼굴에다 발너놓고 마지막에는 껑씨와 鄭氏가 남비 채로 들고 도망을 가서 獨食을 하면 老派에서는 힘센 놈만 살고 늙은 것은 죽어야 하느냐고 불평이 籍籍하든 일은 一笑를 不禁하려니와 조밥을 또 지여가지고 쌀이 半도 익기 전에 밥 싸움을 하던 광경은 이야기만 들어도 요절할 일이다. 인간이란 먹고 배부른 후의 일이다. 배 곺은 때에야 예절을 차릴 것이 무엇이며 禽獸에 다를 것이 무엇이랴! 층소리야 나거나 말거나 그런 것은 지금 상관할 배 아니라는 듯이 밥 싸움으로 한나절을 보내였든 것이다.

脫出! 脫出!
조곰 있드니 간수가 6인 중에서 2인은 어대로 가고 마러 버리엇다. 위기일발 사람을 살니라는 듯이 헐덕이며 지금 토벌군이 따라오니 주의하라는 말을 남기고는 숨을 돌닐 새도 없이 어대론지 뼁손이를 첬다.
일은 一段落을 고한 듯 싶다. 7, 8개월을 굼다가 처음으로 배불니 먹어 놓으니 밥에 취해서 그냥 그냥 그 자리에 쓸어저서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다. 元老인 金令監을 모시고 會議- 양식이 떠러젔으니 여기에 있어도 죽을 바에야 人間村을 찾어가다 죽는 것이 죽어도 한이야 없지 않겠느냐」고 一致可決! 석양의 山 그늘이 길에 눗고 無色한 落照가 미련을 남긴 듯이 西山에 걸여 있을 때 그들은 지팽이를 집고 이 獄을 떠나게 되였다. 기진 맥진해 넘어진 노약자 5인은 그냥 버리고 元氣 있는 사람이나 살어야 한다고 9인만 눈길을 밟어 나왔다. 5리 길도 못되는 곳을 어두울 때까지 기여나오니 군대에선 敵인 줄 알고 총을 연발한다. 其實은 咫尺地點에까지 군대가 와서 있고 內務室과 獄의 통로라고는 東西北 3면이 전부 雪城으로 막켜저 있고 오직 南行 路 一線밖에 없다. 군대에서는 이것을 알고 벌서 1개월 전부터 이 통로에 營舍를 건축하고 식량이 盡해서 나오기를 기다렸다. 이 정책은 완전히 성공을 해서 賊들은 內部 副官 이하 산산히 분산되고 獄吏들도 도망, 獄도 破獄! 간수 2명이 이 길노 나오다가 총살을 당했으며 그 산중에 남어 있든 간수들도 식량도 없는 곳에서 속수무책으로 餓死凍死하는 외 他道가 없었으리라고 한다.
아-반가울사! 꽝-하고 토벌군이 놓는 반가운 총성이여- 神明이 무심치 않어 그들은 재생의 기쁨에 넘처 사력을 다하야 고함을 첫다. 「우리는 방표인이다」라고.(방표인은 적에게 붙들려갔든 사람임)
翌朝 50명 군대와 같이 獄으로 가서 넘어진 5인을 구출해 오고 매맞고 원망스럽든 魔의 獄에다 불을 활-활 질너버리니 그 때의 통쾌하던 마음은 비할 데 없었다. 그리고 기운 없고 당금 넘어저가는 늙은이들도 다같이 손을 들어 「萬歲」를 섀Œ리 높여 불넜다고 한다.
(惠山鎭·
梁一泉記) 〈41〉
〈40-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