解放前 雜誌記事 모음

社會主義 學說 大要

이강기 2015. 9. 5. 12:28
   
 
 
잡지명 개벽 제40호
호수 제40호
발행년월일 1923-10-01
기사제목 社會主義 學說 大要
필자
기사형태 논설

이 글은 堺利産氏의 강연을 필기한 것으로 建設社版 팜풀레트를 번역한 것임니다.
『社會主義』라는 한갓 漠然한 이름의 憧憬보다도 한 거름 더 나가 ?育的 설명을 바라는 경향이 뵈이나 尙今人것 何等의 理論에 대하야 체계적 소개가 업슴으로 그 요구에 응하아 尤先 時急한대로 알기 쉽고 간단명료한 通俗冊으로 거의 本書를 擇하엿슴니다.
그러나 譯者로서는 本書 내용에 대하야 다소 異議가 업는 바는 안이나 그 異議가 本書의 玉石을 俱焚치 안을 범위 내임을 自許하며 동시에 自他가 서로 알어가며 서로 생각하고자 하는 微意가 잇는 것을 특히 말헤둠니다. ...白綽...

1. 프로데라리아의 독립한 學問

1. 眞理와 時代
내 말은 무엇이나 다 社會主義에 관한 말이지마는 社會主義 선전은 穩當치 안타. 그러나 연구는 無妨하다 하는 것이 정부의 방침이라고 함니다. 따라서 社會主義에 관한 선전연설은 十常八九는 중지나 해산을 당하지마는 사회주의에 관한 학술적 연구는 전혀 無事함니다. 정부의 말을 드러보면 당초에 社會主義者들이 아주 무책임한 연설들을 해서 煽動함으로 구찬타고 함이다. 그래서 나도 그 소위 무책임한 煽動이라는 그것을 間間히 하엿지마는 근래에는 맘을 대단히 고처먹고서 이런 建設者의 講習會가튼 데에 나와서 순수한 학술적 연구를 하게된 까닭임이다. 연구임으로 그 결과는 찬성할 경우도 잇슬 것이오 반대할 경우도 잇슬 것임니다. 諸君의 얼골 모양들을 살펴보니 그럿케 찬성할 뜻한 분이 만허 뵈이지 안슴니다. 그리고 보면<72> 결국 나는 별수 업시 諸君에게 社會主義 반대하는 재료를 공급하는 셈이 됨니다. 社會主義를 아는 것은 찬성하기 위해서만 필요한 것이 안이라 반대하기 위해서는 필요함으로 지금 정부에서는 여러 가지 社會主義에 관한 인쇄물을 관리에게 配布함니다. 이런 것이 모다 社會主義를 반대하고 社會主義를 공격하는 재료로 주는 것임니다.
그런데 이로부터 본강연으로 드러가겟는데 이 강연이 諸君에게 社會主義 반대, 社會主義 공격의 재료를 제공하는 것이 된다하면 나의 同志 되는 社會主義者로 보아서는 이것은 졍말 敵을 위하야 이익을 맨드러 주는 것이 됨니다. 매우 친구들에게 야단을 맛날 염려도 업지 안슴니다마는 그 대신에 정부측으로서는 반다시 칭찬을 바드리라고 생각하고 그 점은 안심하는 터임니다. 그럼으로 諸君도 안심하고 드르시기로 바람니다.
대개 학문이라는 것은 진리를 연구하기 위한 것임니다. 진리를 연구하는 것이라면 無論 들림업시 조흔 것임니다. 그러나 그 조흔 것이 可히 될만한 학문, 즉 진리의 연구가 역사상, 往往히 당시의 권력과 충돌되는 경우가 잇슴니다. 例하면 예전에 태양이 지구의 주위를 돌고 잇다고 일반이 생각하든 시대에, 안이다 그런 것이 안이라 실상인죽 지구가 태양의 주위를 돌고 잇는 것이라고 唱道하야 그 까닭으로 처형까지 당한 자가 잇슴니다.
그 시대의 일을 오늘 안저 생각해보면 참으로 이상한 感想이 發함니다. 마는 하여간 그러한 사실이 잇기는 잇슴니다. 그와 가티 학문은 혹시는 권력 때문에 압박을 당하는 일이 잇스며, 혹시는 압박까지는 당하지 안터래도 무시되는 일이 잇심니다. 뉴-톤이 引力說을 생각해낸 당시에는 겨우 專門家間에나 거의 주의를 惹起하엿슬 뿐이오 일반 사회에서는 몰랏섯슴니다. 그래서 그로부터 50年쯤 지내서 佛蘭西 혁명보다 족음 전에 뷜텔이 뉴-톤의 引力說을 通俗冊으로 써 내여서 그때부터 비로소 일반사회에서 引力說이라는 것을 알게 되엿슴니다.
뉴-톤의 引力說은 웨 50年이나 무시되엿든가. 또 그 무시된 학문이 웨 50年後에 일반에게 알리어 젓는가. 뷜텔이 通俗冊을 쓴 까닭인 것은 물론이지마는 웨 그러한 通俗冊이 50年 前에 쓰이지 안엇든가. 그것은 다름이 안이라, 뷜텔이 그 책을 쓰든 때는 마침 引力說이 사회에서 대환영되는<73> 시대이엿든 所以임니다. 佛蘭西 혁명의 시기가 迫頭하야 사회인심이 그것으로 쏠녓슴니다. 즉 당시의 商工階級이 封建的인 貴族 僧侶에게 반항하는 필요상, 새 학문을 쓰게 되엿슴니다. 즉 뿔조아지가 封建貴族에게 대하야 싸홈하는 전투의 무기로써 새 학문이 필요하게 되엿슴니다. 즉 引力說과 가튼 종래의 전통을 파괴하는 신학문이 일반사회의 대환영을 바든 시대가 닥처온 것임니다. 그럼으로 학문이라는 것은 그 시대 사정을 따라서 혹은 압박도 되며 혹은 무시도 되며 혹은 환영도 밧게 됨니다. 畢竟은 엇더한 새 학문이 세력을 엇고 환영을 밧는다는 것은 그 새 학문이 계급투쟁의 무기로써 사용되는 때임니다. 학문은 틀님업시 진리의 연구지마는 언제든지 그 당시의 사회관계와 여러 가지 밀접한 인연을 맷고 잇슴니다.

2. 階級鬪爭과 進化論
進化論이 19世紀가 되여 새로운 학문으로써 일반사회에 유행하게된 때에도 여러 가지 자미스러운 변천이 잇섯슴니다. 進化論는 더 말할 것도 업시 一切의 동물 식물, 一切의 생물이 神의 지구를 맨들든 때에 각각 맨드어둔 것이 今日까지 계속하엿다고 하는 종래의 基督敎思想에 반대하야 그러한 온갓 생물의 종류라는 것은 예전브터 잇섯든 것이 안이라 극히 간단이 생물이 차차 복잡한 생물로 進化 變遷한 것이라는 것을 말한 것임니다. 이것은 길게 말할 것도 업시 諸君이 이미 아시는 바임니다.
사람의 선조는 원숭임니다. 進化論이라 하면 누구든지 바루 그런 것을 생각함니다. 이가티 一言으로 잘너 말하시는 엄밀한 학문상 이론을 보아서 좀 곤란하겟스나 아직 여긔서는 爲先 그것만 말해 둠니다.
그런데 사람의 선조가 원숭이라고 하는 이 말은 참말로 당시 耶蘇敎에 대하야는 여간한 큰 일이 안임니다. 한우님이 사람을 맨드럿다고 하는 때에 그 선조가 원숭이라고 말해서는 사람의 時勢가 엄쳥나게 落價가 됨니다. 대단히 한우님의 威嚴을 손상식히는 것임니다. 한우님의 위엄을 떠러트리는 것으로만은 실상 아모럿치도 안켓지마는 그 밧게 또 중대한 일이 잇슴니다. 그 당시 정치상 권력을 잡고잇는 귀족이라든가 XX라든가 승려라든가 하는 그 축들로 보아서는 자기들 권력의 배경이 되는<74> 한우님에게 상처가 나서는 큰 걱정임니다. 사람은 한우님의 아들이다. 그 사람 중의 귀족은 한우님의 代理라는 듯한 태도를 부리고 잇는 판에 그 사람이 원숭이의 아들이라는 말이 나서는 참말로 귀족의 존재가 업게 딈니다. 그레서 그러한 封建的 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如何히 하든지 그러한 新說을 壓服하려듬니다. 아까도 말한 인력의 이약이도 如斯한 이유입니다. 그러나 그 귀족 승려에게 반대하는 뿔조아지- 즉 商工階級은 이러한 새 학설을 알고서는 귀족 승려를 대항하기에 제일 좃타, 이것은 封建制度에 대하야 전투하는 무기로 대단히 유효하다고 생각하엿슴니다. 그레서 뿔조아지-는 進化論을 크게 환영하엿스며 따라서 귀족 편에서는 크게 반대하게 되엿슴니다.
학문은 진리를 연구하는 것이지마는 실제는 엇던 계급을 위해서는 이익이 되나 엇던 계급을 위해서는 해가 됨니다. 그레서 저 각각 그 계급을 따라 혹은 찬성하고 혹은 반대하는 것임니다. 進化論은 아시는 바와 가티 英吉利의 따윈이가 먼저 생각해낸 것이지마는 참 우습게도 그 本國인 英吉利에서는 進化論이 그리 평판이 되지 안엇슴니다. 그건 웬 까닭이냐 하면 英吉利에서는 뿔조아지-가 일즉이 발달되여 따윈이 進化論을 唱道할 때에는 뿔조아지-는 이미 세력을 어덧슴니다. 그토록 귀족계급과 싸홈 할 필요가 업섯슴니다. 그럼으로 英吉利의 뿔조아지-는 進化論을 이용할 필요가 업섯슴니다. 進化論을 계급투쟁의 무기로 쓸 필요가 업섯슴니다. 그러한 까닭으로 英吉利에서는 진화론이 그럿케 큰 평판이 되지 안엇슴니다. 그러나 獨逸로 가서는 進化論이 막대한 세력으로 예전 말을 비러다가 말하면 미치 燎原의 火와 갓다고 할만한 격으로 獨逸 본국에 만연하야 따윈說을 성히 鼓吹하며 또 만히 바더드렷슴니다. 중요한 本國인 英吉利에서는 그 進化論이 그리 세력을 엇지 못하엿는데 獨逸만은 이가티 세력이 성해진 것은 대톄 무슨 까닭일까요. 그것은 즉 이것임니다. 獨逸은 사회발달이 뒤젓슴니다. 마침 그때가 뿔조아지-의 勃興期엿슴니다. 아직도 封建的 세력이 강하게 행세하엿슴니다. 그것을 商工階級이 어떠케하면 顚覆을 식힐가하고 잇는 판에 進化論이 드러왓슴으로 이것이 마침 좃타 이것은 매우 유용한 무기라고 생각하고 獨逸 뽈조아지-가 그것을 성히<75> 이용한 것입니다.
따윈은 순수한 생물학자로써 동물과 식물을 연구하야 進化論을 생각하야 내인 것임니다. 그런데 그 進化論을 獨逸로 드려다가 吹鼓식힌 헤켈로 말하면 그는 분명히 매우 유명한 생물학자엿스나 그러나 단순한 학자는 안이엿슴니다. 그는 실로 獨逸 뽈조아지-의 代言者이엿슴니다. 그는 본래브터 상공업에 卽接 關係를 가진 사람은 안이엿지마는 그 상공업계급의 지식적 代表者엿슴니다. 즉 뿔조아지-의 사상적 代言者이엿슴니다. 그는 생물학자엿지마는 한편으로는 정치적 의의를 가진 뿔조아지-의 학자이엿슴니다. 뿔조아지-의 代言者에 불과하엿슴니다. 그런데 좀 성가신 일은 그와 가티 獨逸에 進化論이 성히 유행하기 시작한 그 때에 차차 머리를 들고 잇든 社會主義者 편에서도 進化論을 크게 찬성하엿슴니다. 못처럼 뿔조아지-가 進化論을 무기로 삼고 봉건귀족과 싸홈하는 판에 아래로서 일어선 社會主義者와 노동계급도 역시 그것을 자기들의 무기로 삼고 뿔조아지-에 대한 전투에 이용하엿슴니다. 이것에는 참말로 뿔조아지-가 크게 困境을 당하엿스며 그럿타 하는 헤켈까지도 매우 고통되엿슴니다.
그런데 이것은 進化論뿐만 안이라. 일반 學問界에서도 역시 그가튼 경향이 잇슴니다. 아까도 말한 바와 가티 뿔조아지-는 限死하고 宗敎攻擊에 진력하엿슴니다, 종교를 공격하는 것은 즉 封建貴族을 공격하는 것임으로 대단히 하엿슴니다. 그레서 그네들 귀족의 精神主義에 반대하야 뿔조아지-는 物質主義를 가지고 일어낫슴니다. 그런데 뿔조아지-가 아직 封建貴族을 완전히 顚覆식히지 못한 새이에 벌서 그 밋바닥에서는 노동계급이 머리를 들고 일어낫슴니다. 뿔조아지-는 두 틈바구니에 끼엿슴니다. 즉 우에는 封建的 권력이 잇고 아래에는 새로운 XX적 세력이 생겻슴니다. 뿔조아지-는 큰 곤경에 빠젓슴니다. 그네들은 자기의 상층을 향하야는 物質主義로써 舊制度 權力을 打破키 위하야 宗敎攻擊의 힘껏 하여보고 십지만도 그것을 너무 하고 보면 이번에는 자기 아레에 잇는 노동계급에게 그 까닭으로 도리혀 찔닐 형편이 됨니다.
그레서 일반 學問界의 기분이 변하엿슴니다. 畢竟 학문이라는 것은 그 시대에 세력을 잡고 잇는 계급의 대표적 사상입니다. 더구나 가튼 시대에 제각금<76> 그 계급을 사상으로 대표한 者- 封建的 사상을 대표한 者, 뿔조아지-사상을 대표한 者, 노동계급의 XX적 사상을 대표한 者-가 잇슴니다. 그러나 그 중에 가장 세력이 잇는 계급의 대표사상이 당시에 잇서서 일반으로 보통학문이 됨니다. 따러서 뿔조아지-가 큰 세력을 어드면 그 시대 학문이라는 것은 즉 뿔조아지-의 이익을 대표하는 것이 됨니다. 그 까닭으로 뿔조아지-가 사회의 중심세력을 잡고 반항계급을 鎭撫한다하는 경우가 된 때에는 그 뿔조아지-를 대표한 학문이라는 것은 인제는 벌서 혁명적인 純物質主義는 안임니다. 그레서 19世紀 中葉 이후는 일반 學問界에 精神主義의 경향이 부활하야 그것이 今日까지 계속되엿슴니다. 그레서 그들은 物質主義에 반대하야 이럿케 말함니다. 그럿케 너무 물질만 알어서는 안된다. 정신적 요소도 고려해야 된다. 과학만능이라는 것은 못쓴다. 더욱 정신적이라야 된다. 일반 사회에는 정신적 요소가 매우 막대함으로 그것을 度外視하여서는 정당한 진리에 도달할 수가 업다. 畢竟 이것은 學問界의 역행입니다. 뿔조아지-의 역행입니다. 뿔조아지-의 역행은 上에 대하야서는 반항하고 下에 대하야는 鎭撫하는 中途半端의 矛盾的 態度가 된 것을 말함에 불과함니다.
그래서 이 모양으로 進化論은 非常한 세력으로 유행하엿슴니다. 그래서 그 후에 여러 가지 수정을 가하엿슴니다. 물론 학문상 따윈 一人의 연구가 온갓 방면에 보급된달 수 업슴으로 그 후에도 許多한 학자가 여러 가지로 부분을 난우어 완성에 노력하엿슴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여러 가지 수정과 발전이 進化論 중에 나왓지마는 그것을 한편을 관찰하면 일반 학문계에 在한 역행의 경향이 역시 進化論上에도 나타낫슴니다.
사람은 원숭이의 자손으로 생존경쟁, 自然淘汰를 인하야 점차 발달하여 왓다고 말하나 그러나 自然淘汰라는 것은 그 근본에 疑點이 잇슴니다. 생물의 진화는 自然淘汰만 가지고는 설명을 다 할 수 업지 안느냐는 여러 가지 新說이 생겻슴니다. 이것은 지금 자세히 말할 틈이 업스나 요컨대 이것도 역시 정신적 요소를 더한 심리적 요소를 필요로 한다고 하는 일반 學問界의 시대적 경향이 발현된 것이라고 나는 생각함니다.
또 進化論는 如此한 의미로도 뿔주아에게 이용되엿슴니다. 즉 進化論에 의하면 생물이 如斯히 변천하여온 것은 그리 容易한 一朝一夕의 事가 안이다.<77> 數千年 數萬年 등안 사람의 눈에는 뵈이지 안을 만큼 徐徐緩緩한 진화을 것처서 여긔까지 도달한 것이다. 이것이 뿔주아를 퍽- 깃부게 하엿슴니다. 그럿닛가 또 인간사회에서도 그러한 급격한 변화를 하는 것이 안이다. 그런 말은 學理에 위반되는 것이니 進化論의 가르친 바는 徐徐緩緩히 진화하여간다 하엿거늘 어느 一派들이 사회에 급격한 변화를 일으키려는 것은 대단한 잘못이라.--뿔조아는 進化論을 그러한 방면으로도 이용하야 사회혁명은 進化論의 원칙에 背馳되는 것이라고 단정하엿슴니다. 그러나 또 도푸리스說에 의하면 진화란 것은 반다시 그러케 徐徐緩緩한 변화만은 안이다. 엇던 때에는 급격한 진화를 하는 경우도 잇다. 현재 어느 종류의 花草와 가티 어느 시기에 도달하면 갑작히 빗치 변하며 모양이 변하야 새로운 종류가 된다고 하엿슴니다. 이것은 뿔조아進化論의 徐徐緩緩說에 대하야 突變說 혹은 激變說이라고 云할 만한 新學說이 생긴 것임니다. 도프리-스는 정치라든가 사회와는 관계가 업시 다만 순수한 생물학상의 연구를 발표한 터이지마는 일반사회에서는 과연 올은 것으로 환영을 바덧슴니다. 그 원인은 노동운동이라든가 社會主義運動이 점점 세력을 어더가고 뿔주아進化論의 徐徐緩緩說에 대하야 인간사회에 좀 급격한 변화가 일어나야 할 것과 또 일어나지 안으면 안 된다는 사상이 만연되는 판에 마츰 도푸리-스의 突變說이 발표되엿슴으로 그것이 크게 환영을 밧게된 것인 줄 생각함니다. 실로 학문은 各色으로 이용도 되며 혹은 實用도 되는 것임니다.
그래서 일껀, 따윈은 위대하다 進化論은 학문의 근본이라고 해온 것이 그것은 일시적이 되고 이번에 또 進化論은 아직 한 수수꺼기란 말이 世間에서 떠드러 왓슴니다.(그것은 물론 進化論이 노동계급에게 전투무기로 이용된 以後之事지마는) 뿔조아지-로 보아서는 자기로서는 인제는 進化論에 소용이 업게 되엿슴으로 엇더케 해서든지 進化論에 상처를 내려 하야 進化論의 破綻이니 破産이니 하는 말이 頻頻히 논의된 것은 그 까닭임니다. 마륵스說에도 역시 그 모양으로 마륵스論의 破綻이니 破産이니 하는 말이 참으로 무수히 提唱되엿슴니다. 그러기에 학문이란 참 괴상한 것임니다. 학문은 진리를 연구하는 것이지마는 학교에 가서 선생의 강의를 듯거나 그 著書를 읽어 볼지라도 족음도 당치 안슴니다. 어느 것이 진리인지 전혀 알 수가 업슴니다. 따윈은 자기의 전문연구을 발표함에 불과하지마는 일반사회에서는 여러 가지로 그것을 이용하엿슴니다. 그리고 본즉 맘이 풀리어 책도 읽을 수 업고 학자의 강의도 드를 수 업게 됨니다.
現今 실제잇는 이약이로 이러한 일이 잇슴니다. 유명한 이약이임으로 諸君 중에도 드르섯슬 분도 잇슬 줄 암니다. -(이 다음에)-<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