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혈 미인
혼혈이야기가 나온 김에 하나 더 해보자.
혼혈이 아니면서 흡사 서양사람 같이 눈이 유난히 크고 살결이 흰 소위 서양식 미인을 간혹 TV나 길거리에서 마주칠 때면 "저 사람 조상 중에 분명 서양사람이 있었던 게 아닐까?" 하는 좀 엉뚱한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우리 나라 사람들 구성 요소 중 남방계가 비교적 얼굴에 비해 눈이 크고 서글서글한 편이긴 하지만 저처럼 큰 편은 아니고 살결은 오히려 가무잡잡한 편이다. 북방계나 중국계가 그럴 리도 만무하다. 그렇다면 어디서 저런 얼굴이며 살결이 나왔을까? 아무래도 직접 서양사람의 피를 물려받지 않고는 그럴 수가 없을 것 같다.
내가 왜 이런 생각을 하느냐 하면, 언젠가 하멜 표류기를 보니 표류한 선원들 중 상당수가 관가의 배려로 관기나 천녀와 짝을 맺어 가정을 이루고 있다. 그들보다 앞서 와서 조선에 눌러 살고 있던 벨테브레(박연) 일행도 조선여인과 결혼하여 자녀들을 둔 것으로 되어 있다. 신라시대에도 아랍계 사람들이 경주에서 가정을 이루고 살았다는 설이 있다. 그렇다면 이들의 피가 어디로 흘러갔을까? 혹시 보일 듯 말 듯 가늘게 흘러내려 오다가 한번씩 조화를 부려 그들 비슷한 얼굴을 만들어낸 것이 바로 오늘날 흡사 서양사람처럼 생긴 저들이 아닐까 싶은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다가 혼자 실실 웃음이 나올 때가 있다. 살결이 흰 것을 부러워한 것 외에는(문제의 표류기에 보면 이웃에 살던 여자들이 하멜 일행의 흰 살결을 몹시 부러워 한 구절이 나온다) 완전 서양도깨비 취급을 하며 당시로는 천하디 천한 여자들과 짝을 맺게 해 주었는데, 먼 훗날 그들의 후예일 것도 같은 사람들이 미남 미녀로 많은 사람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고 있으니 이야말로 진짜 수 백년을 두고 벌어지는 새옹지마로구나 싶었기 때문이다.
언젠가 KBS에서 임진왜란 때 침략군으로 왔다가 귀화한 김충선(金忠善)장군 얘기를 하면서 대구 달성군 우록동에 있는 김장군 후손들인 사성(賜姓) 김해김씨 집성촌을 보여 준 적이 있다. 그 때 후손 몇 분들이 평상에 모여 앉아있는 장면을 보다가 하마터면 탄성을 지를 번 했다. 그들 중 몇 분이 영락없는 사무라이 얼굴 그대로였기 때문이다. 정말 피는 못 속이는구나 싶었다.
그 뿐이 아니다. 정말 우연인진 모르지만(아마도 우연일 것이다) 내가 만난 김해 김씨와 김해 허씨 그리고 덕수 장씨들은 한결같이 눈이 비교적 크고 쌍꺼풀이 있어 요즘의 미적 기준으로 보아 아름다운 눈을 가진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았다. 그들의 시조 이야기, 이를테면 인도인 부인을 맞은 김수로왕이나 원나라 때 색목인(色目人)으로 고려에 와 벼슬을 살고 성을 하사 받은 장순룡(張舜龍)을 염두에 둔 선입관 때문인가 싶어 다시 그들을 살펴봐도 분명 그랬다. 전설 같은 그들의 조상 이야기가 분명 사실인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지금 우리 나라에서 서양식 표준으로 미남이네 미녀네 하는 사람들은 친가 쪽이든 외가 쪽이든 모두 외국인들의 피가 섞인 사람들이 아닌 가도 싶다. 엊그제 보도를 보니 최근 외국인과의 혼인비율이 부쩍 늘어났다고 하는데(2000년에 3.69%이던 것이 2003년엔 8.41%) 앞으로는 그런 미남 미녀들이 수도 없이 나올 것 같다. 그 바람에 탤런트나 모델 등의 경쟁률도 지금보다(지금도 높지만) 훨씬 더 높아질 것 같다. 소위 서양식 얼굴을 한 사람들은 모두 그 쪽으로 가는 경향이 있으니까.
20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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