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노자
지금 박노자는 재정 러시아 말기 무정부주의자들이나 좌경 지식인들이 가졌음직한 지식체계와 사고로 21세기의 한국을 제 맘대로 재단하고 있다. 때로는 마치 조자룡이 헌 칼 쓰듯 마구 휘두르는 그의 칼날에 수 천년의 한국 역사가, 한국적인 전통이, 한국적인 가치가 난도질당하기도 한다. 그가 휘두르는 칼이 얼마나 어지럽고 무자비한지 최근 몇 년간 주로 신문에 실린 그의 글을 읽으면서 뽑아 논 "눈에 거슬리는 구절"들을 좀 길지만 나열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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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건적 지배층의 영웅' 이순신이 1960년대 세대에 '민족적 가치'의 동의어가 됐다. 민중해방의 논리로 봐서 이는 '역행'이다."
"일제시대 조선이 '아시아 진보투쟁의 선봉'으로 불려질 만큼 조선의 지식인계는 이미
그때부터 상당부분 사회주의 진보주의자로 구성됐는데 분단과 6.25의 비극 속에서 남한에서는 멸균실 수준의 반공적 규율이 강요됐다. 그것이 세계의
반자본주의적 투쟁전개의 관점에서는 '역행'이 아닐 수 없다."
"남한이 미군정과 토착매판(친일) 세력의 야합에 의해서 종속정권으로 탄생한 만큼 그 지배자와 피지배자 사이에는 메울 수 없는 엄청난 괴리가 벌어졌다."
"관료층 상부와 밀접하게 유착한 골수 보수주의자 도스토에프스키를 '대표적인 지성인'으로 꼽는 다는 것은, 미국과 서구 보수층의 '가치서열'을 그대로 따르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매체·관변 학상배(學商輩)에 의해서 조작되는 국가·자본에 대한 우리의 환상이 얼마나 근거 없는 것인지 당장 알 수 있을 것이다."
"상아탑의 노예(대학 시간강사)"
"한국의 노동시간, 노동환경, 상사와 부하와의 관계는 거의 수용소 수준이다."
"한반도를 미증유의 폭력의 장으로 만들어 낸 바 있는 세계 최대 폭력집단인 미국이 새로운 살인적 발악에 돌입하고 있고"
"대미종속을 전제로 하는 관제 민족주의"
"부시는 미국 극우들의 괴수"
"월드컵 열기는 광기, 집단적 히스테리, 1937년 뉴른베르그에서 열린 나치대회를 연상케 하는 관제 부르조아 민족주의 아류에 불과하며"
"민족을 사칭한 자본가와 관료들의 국가가 만들어 낸 스포츠 애국주의와 광기는 진보적 계급의식을 갖는데 큰 걸림돌일 수밖에 없다."
"자본주의 국가의 군대라는 것은 노동자를 비롯한 민중을 총알받이로 만들어 지배층을 위한 살육의 도구로 사용하는 존재에 불과"
"계급국가(상명하복)의 폭력기구인 군대에서는 최하층 출신의 병사가 말 그대로 인간이 아닌 소모품"
"피착취층의 젊은이들(하급병사들)이 착취자들(상급 지휘관)에게 인간으로 보이지 않았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한국군대만큼 개인의 인격을 파괴할 뿐 아니라 민중투쟁에 방해가 되는 극우적 헤게모니 기구가 없으며"
"한국군대의 인권현실이 북한의 그것보다 낫다고 할 수 없다."
"계약직 직원은 신판 머슴이고 외국인 노동자는 신판 노예"
"재벌의 경영방식은 일제군벌보다 더 일제식(日帝式)"
"한국은 아이엠에프 환란 때 지배층의‘협력’으로 후기 제국주의의 금융자본의 수탈 체제 아래로 들어갔고"
"한국엔 경제적 투쟁과 아울러 본격적인 변혁을 위한 정치투쟁이 대중화돼야 노동자의 절반 이상을‘불안의 노예’로 만든 이 체제에
의미 있는 변화가 생길 것이다." 또 하나는 그의 글에서 풍기는 냉혹성(잔인성이라 해야 할 지 모르겠다)이다. 앞서 말한 식민지 종속론자들이나 좌경 지식인들의 글에서는 느끼지 못한 감정이다. 그들 역시 과격한 용어들을 함부로 남발하고 상황을 자기들 편리한대로 견강부회하는 버릇이 있어 거부감이 들긴 하나, 그러나 그 이면 어딘가에는 조국과 민족에 대한 그들의 따뜻한 애정이 스며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을 박노자의 글에선 눈을 닦고 봐도 찾을 수 없는 것이다. 혹시 그가 귀화 외국인이라는 선입관 때문이 아닌가 싶어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그의 글을 읽어봐도 마찬가지였다. 혹자는 그것을 서양인들의 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냉정성이라고 평가할 지도 모르겠지만, 냉정과 냉혹을 구분 못할 내가 아니다. 한국에 대해 외국인들이 쓴 수많은 글들을 읽어왔지만 우리들이 수 천년간 일궈 왔던 것을 이 사람만큼 철저하게 부정하고 멸시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물론 그는 자신이 외국인이 아닌 한국인으로서 쓰고 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인지 글 군데군데 "우리" "우리의" 라는 말을 자주 쓰고 있지만, 누가 그걸 실감나게 받아들일 것인가? 어느 분(인하대 김진석 교수)은 박노자를 "서구적 기준을 보편적 기준으로 오.남용하며 도덕적 근본주의 시각에서 폭력을 바라본다"는 정도로 비판했지만("위험한 근본주의에 빠진 일상적 파시즘론과 비폭력주의" - 사회비평 가을호), 박노자에겐 그런 점잖은 얘기보다는 좀 더 혹독한 비판이 뒤따라야 할 것 같다. 우선 듣기에 속시원한 그의 무책임하기까지 한 파괴적 언설이 이제 막 이념에 눈을 뜨는 어린 학생들에게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적이 염려스럽다. "박노자교수를 제외한 한국의 국사학자들은 대부분 가짜입니다."라는 소리까지 나올 정도다. 그는 살만 루시디의 이슬람 비판을 "사회 현상의 표피 뒤에 숨겨져 있는‘도전에 대한 응답’이라는 인과론적 구조를 전혀 의식하지 못한 것"이라고 비판하고, 토인비를 관념주의적이라고 폄훼하고 있지만, 그 자신이야말로 한국사회현상의 표피 뒤에 숨겨져 있는 '도전과 응답'이라는 인과론적 구조를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있고 관념주의적으로 한국의 역사, 전통, 가치를 재단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법적으로는 분명 한국인이지만, 어쩌면 영원히 진정한 한국인이 될 수 없는, 디아스포라의 유대인 불리디미르 티호노프인 것 같다. (2004.12)
이강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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