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人間> 1920년대 초에 발행된 <開闢>誌들을 뒤적거리다가 재미있는 사실 하나를 발견했다. 당시 일본에 살고 있던 丁炳基라는 사람이 月灘 朴鍾和 앞으로 쓴 항의조의 편지글에서, <사람>과 <人間>은 전혀 다른 뜻의 낱말인데 박종화가 이를 같은 뜻으로 쓰고 있다며 나무라고 있는 것이다. 정병기에 따르면 일본어에서는 <人間>이라는 말을 <사람>이라는 말과 같은 뜻으로 쓰고 있지만 한국어에서 <人間>은 <世間>이라는 의미이기 때문에 <사람>의 의미로 써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別有天地非人間이란 말에서의 <人間>도 <世間>을 의미하는 것이며, 人間七十古來稀란 말도 “世間에서 70이라는 長壽를 稀罕하게 생각된 줄로 알고 있다”고 했다. 또한 古代小說에 “人間에서 犯罪한 者를 閻羅國에서 審判하라”, “仙界에 作罪한 仙官을 人間 或 下界에 보내“라는 말에서도 <人間>이 <世間>을 의미함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경상도 지방에서 ”못된 人間!“이라고 할 때처럼 간혹 <人間>을 <사람>과 같은 의미로 쓰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도 일본 영향을 받은 탓이며(지리적으로 일본과 가까워서일까?), 주로 젊은 사람들이 쓰는 낮춤말이고, 또 이때도 ”못된 인사“라고 해야 옳은 것이며 실제 어른들은 그렇게도 쓰고 있다는 것이다. 丁炳基의 이 글이 <開闢>지에 실리게 된 동기도 알고 보면 재미있다. <開闢>지 제31호(1923년 1월1일자 발행)에 실린 박종화의 문학비평문 <文壇의 一年을 追憶하야 現狀과 作品을 槪評하노라>를 같은 잡지 제32호(1923년 2월1일 발행)에서 金億(岸曙)이 <無責任한 批評, -「문단의 일년을 추억하야」의 評者에게 抗議->라는 제목의 글로 호되게 비판했고 박종화가 다시 제35호(1923년 5월1일 발행)에서 <抗議 갓지 안흔 抗議者에게>라는 제목의 글로 재비판한 적이 있다. 김억은 그의 글에서 박종화의 비평만 비판한 것이 아니라 한 술 더 떠 박종화가 <人間>, <未練>, <過卷>, <洞窟> 등과 같은 “일본어적 조선어”를 함부로 사용하고 있다며 그럴 바엔 차라리 일본어로 글을 쓰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박종화의 자존심을 여지없이 긁어놓고 있다. 이에 박종화는 <人間>과 <洞窟>은 옛 선현들이 자주 써 오던 우리말이라고 몇 가지 사례를 들며 항변하고 있다(<未練>과 <過卷>에 대해선 말이 없는 것으로 보아 김억의 지적을 수긍한 것 같다). 이 박종화의 마지막 글을 보고 정병기가 위와 같이 토를 단 것이다. 지금은 너나없이 <人間>이란 말을 <사람>이란 뜻으로 사용하고 있고 어느 누구 하나 여기에 토를 다는 사람이 없는 줄 알고 있다. 80년이란 세월이 흐르긴 했지만 언어는 역시 살아있는 생물이구나 싶어 새삼 놀랍다. (2006.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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