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의 송두율교수 "특집"을 보고
시쳇말로 그와는 코드가 맞지 않는 것 같았다. 몇 년 전 잔뜩 기대를 하고 그의 책 "역사는 끝났는가?"를 샀는데, 채 5 페이지를 읽지 못하고 집어던져 버렸다. 운동권 학생들, 운동권 사람들이 하는, 뻔한 소리 그대로였기 때문이다. 이모교수의 "좌우날개가..." 어쩌고 하는 것과 강모교수의 "민족의 생명권이..." 어쩌고 하는 책을 채 몇 페이지도 읽지 못하고 집어던져 버린 것과 비슷한 경우였다. 좀 전에 황모 작가의 "그 곳에도 사람이 살고..." 어쩌고저쩌고 하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것도 읽어야만 사고의 균형을 맞출 수 있다"고 스스로 채근해 가며 억지로 읽어보려고 해도 그들의 일사불란한 좌 편향 시각에 도무지 열 불이 치밀어서 읽을 수가 없었다. 나도 그들이 걸핏하면 입에 올리는 "수구골통"의 아류쯤 되기 때문일까? 그러나 내가 보기엔 그들이야말로 시대착오적이었다.
오늘 저녁(5월11일) KBS는 일요스페셜 시간에 "경계도시"라는 말하자면, "송두율 특집"을 방영했다. 평소에 그의 논설을 읽으면서도 너무나 편향된 논조에 거부감이 일던 사람이 사장으로 가더니 벌써 푯대를 내기 시작하는 구나 싶었다. 영상은 마술적인 면이 있다. 송두율교수가 아니라 무기징역을 받은 사상범도 그런 식으로 영상화시키면 주인공을 영웅으로 만들 수도 있을 것이고, 무슨 영화젠가에 가서 상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송두율교수는 예의 그 프로에 나와서 자기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치국 후보위원 서열 23위 김철수라는 혐의를 완강히 부인했다. 그러면서 김일성 조문단에 끼여 있는 자기의 사진을 보여주었다. 비밀유지를 위해 (방북)사진도 찍지 않았다는 남한 수사당국의 발표를 반박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2000년 7월초 서울 모 단체의 강연초청에 응하여 비행기표까지 샀으나, 국정원의 준법서약서 요구를 이유로 귀국을 포기했다. 그 보다는, 자유로운 상태에서 수사를 하겠다는 당국의 태도가 마음에 걸렸던 것이 아닌가 싶었다.
정말로 정치국 후보위원 23위가 아니라면 왜 당당하게 서울에 와서 조사를 받고 결백을 밝히지 못하는 것일까? 그가 그런 위치였다는 것을 최초로 밝힌 사람은 황장엽 선생인 줄로 안다. 북의 최 고위층의 일원이었던 황선생이 무슨 억하심정에서 없는 얘기를 만들어 냈을까? 전 임동원 국정원장의 경우는 또 어떤가? 그는 "송두율 교수가 북한 정치국 후보위원 23위 김철수가 맞는가?"하는 의원들의 질문에 분명히 "자기도 그렇게 생각한다"고 답했다. 다른 사람도 아닌, 대한민국에서 대북 기밀을 가장 많이 접하고 있다고 할 수 있는 국정원장이, 더욱이 남북화해교류에 앞장섰던 사람이 그처럼 중요한 문제를 확신이 가지 않고서야 그렇게 단언할 수 있었겠는가? 생각할수록 이상하다.
송교수는 그 프로에서, "욕심이 많다고 할지 모르겠지만, 할 수만 있다면 북에 가서도 강의하고 남에 가서도 강의하고싶다"며 자기는 어느 한 쪽 편만을 절대로 들고싶지 않음을 누누이 강조했다. 숫제 남쪽 체제나 북쪽 체제나 동열로 놓고 보겠다는 얘기 같았는데, 명색이 철학을 전공했다는 그의 사고엔 자유와 민주의 가치 따위는 아예 하찮은 것으로 보이는 지도 모르겠다. 그가 정말 양심적인 지식인이라면 김일성 장례식 따위엔 아예 가지도 않았어야 했고, 김정일의 사상유례가 드문 악정엔 소리 높여 질타해야 옳을 것이다.
정말 어안이 벙벙한 프로였다.
(2003년 5월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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