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웨이트 추억(討후세인)
(2003년 3월23일)
한 낮에 쉐라톤호텔에서 살미에까지 길게 뻗어 있는 궁형(弓形) 해변을 차로 달리다 보면 차창 밖으로 펼쳐진 호수 같은 바다는 마치 연한 초록색 물감을 풀어놓은 듯 푸르게 반짝거린다. 흰옷을 입은 체 풍덩 들어갔다 나오면 금새 푸른 옷이 되어 연초록 물감을 뚝뚝 떨어뜨릴 것 같고, 큰 붓이 있으면 쿡 담가서 도화지에 초록색 그림을 그려도 될 것 같다.
쿠웨이트는 참으로 아름다운 도시였다. 한 때 베이루트를 중동의 진주라고 했지만 70년대 초 내전으로 쑥대밭이 된 이후에는 쿠웨이트야말로 중동의 진주라 할만 했다. 바레인과 두바이는 구 건물이 많아 뭔지 좀 지저분했고, 아부다비와 도하는 신식도시이긴 했으나 뭔지 좀 엉성했다. 그에 비하면 쿠웨이트는 신.구 건물들이 스카이라인을 잘 맞추어 늘어서 있고 그 사이로 쭉쭉 뻗은 거리, 거기서 조금 들어가면 아담한 동네 골목길, 담 너머로 비죽이 고개를 내밀고 있는, 종이꽃 같은 붉은 꽃들, 교외의 잘 정비해 논 고속도로, 밤에 전조등을 켜지 않고 달려도 될 정도로 밝은 가로등(쿠웨이트의 밤 경치는 정말 가관이다), 겨울이면 온통 꽃밭으로 변하는 교외의 사막.... 20여 년 전 일이건만 어제 일처럼 선하고 그립다.
이 아름답고 평화롭던 도시를 사담 후세인이 기습 점령하여 하루아침에 지옥으로 만든 적이 있다. 미쳐 피난가지 못한 쿠웨이트인 수만 명이 자기들에게 협조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지독한 고문을 당하거나 사살되거나 했다. 후세인은 쿠웨이트의 관청이나 일반 기업체에 고용돼 일하던 팔레스타인 인들을 이용해 이 나라를 이라크의 쿠웨이트주(州)로 만들려고 갖은 공작을 폈다.
쿠웨이트가 이라크에 적대감을 보였거나 이라크의 적국인 이란 편을 들어서가 아니었다. 눈곱만큼도 후세인이 쳐들어와야 할 이유가 없었다. 이유는 단지 쿠웨이트가 아주 옛날에 이라크 땅이었기 때문에 도로 찾겠다는 것이었다. 스스로 옛 바빌로니아의 영광을 되찾겠다고 선언하고 자신을 고대 바빌로니아의 네브카드넷자르 대왕에 비교하곤 하던 후세인은 이란과 영토전쟁을 벌여 독개스탄으로 죽은 이란 젊은이 만여명을 포함하여 양국 젊은이 수십만 명을 죽였으나 전세가 지지부진해 지자 휴전한 후 이제 쿠웨이트에 야욕의 손길을 뻗친 것이다. 그의 야심은 쿠웨이트 점령 후 곧 사우디아라비아의 석유 보고인 걸프지역(다란, 담맘지역)을 점령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되면 세계 석유산출량의 절반 가까이가 후세인의 손아귀에 들어가는 것이다. 석유로서 세계를 지배하겠다는 것이 그가 쿠웨이트를 침공한 근본 목적이었다. 미국이 반격하지 않았다면 지금쯤 온 세계가 후세인을 상전으로 모시고 머리를 조아리고 있을 것이다.
후세인이 얼마나 악랄하고 비열하고 용서 못할 인간인가 하는 것은, 걸프전 때 쿠웨이트를 버리고 퇴각하면서 보여준 행태에서 잘 나타난다. 불을 질러 미국군함들의 근접을 막는다는 이유로 그 아름답던 해변에 원유를 쏟아 부어 지옥의 바다로 만들었는가 하면, 유정이란 유정은 모두 폭파하고 불을 질러, 수복 후 수개월간 검은 매연이 쿠웨이트 하늘을 덮어 해를 볼 수 없게 만들어 놓았다.
이 대명천지에 그런 인간이 그냥 권좌에 남아 세계를 불안하게 만들도록 내버려둬서는 안 된다. 아무 죄 없는 이라크 백성들이 죽고 다치게 되는 것이 가슴아픈 일이긴 하지만, 웬만큼 희생을 감수하더라도 후세인을 제거해야만 그들에게 더 밝은 미래가 펼쳐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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