成果給 斷想
(2001년 6월18일)
남도 사투리에 <돈내기(발음은 '돗내기')>라는 말이 있다. <돈을 걸고 내기한다>는 뜻이 아니라 <成果給>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이에 대칭 되는 말이 <날일>인데 <日給>이라는 뜻이다.
이 두 낱말로 이루어진 우스개 소리라고 해야할지, 속담이라고 해야할 지에 [조선사람, <날일>주면 장승될까 겁나고, <돈내기>주면 엎어져 죽을까 겁난다]는 말이 있다. 아마도 일제시대에 만들어졌음직한 말인 것 같은데, 일본사람들이 조선사람들을 비꼬느라 만든 것인지, 조선사람들 스스로 자기비하를 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어릴 때부터 곧잘 이 속담인지 우스개 소린 지를 들을 때마다 처음엔 웃다가 곧 씁쓸한 기분에 젖곤 하던 기억이 난다. 핵심을 찌른 말인 것 같기에 웃음이 나왔고, 곧 이어 한국사람들은 왜 그럴까 하는 생각에 기분이 착잡해진 것이다.
어른들 얘기를 들어보니 이 말이 한창 유행할 무렵엔 시골에서 공공사업이래야 주로 강둑막이와 신작로 공사였는데, 수십, 때로는 수백 미터 떨어진 곳에서 흙을 파다가 새끼줄을 쳐 논 현장에다 퍼붓는 일이었다. 처음엔 <날일>도 시켰던 모양이고, 그러나 감독이 잠시 눈만 돌리면 게으름을 피워대는 바람에 도무지 능률이 오르지 않자 마침내 <돈내기>로 바꾼 것 같다. 예컨대 1 미터 정 육면 구덩이 흙을 다 옮겼을 때 얼마를 준다는 식이었다.
문득 북한 TV에서 어지럽게 펄럭이는 깃발이며 플래카드를 배경으로 남녀노유들이 부지런히 흙을 퍼 나르는 한편에서 악대가 쿵닥 쿵닥 음악을 연주하고 있는 장면이 생각난다. 거기엔 개인별 <돈내기>라는 것은 없는 대신 단체 할당량이 있는 것 같고 감독하는 눈이 엄청 많은 것 같았다. 쉴새없이 감독하고 몰아 부치지 않으면 소정의 성과를 거두기가 꽤 어려울 것임이 분명하다. 멸사봉공이란 말이 과거 일제 군국주의시대에 나온 말이지만, 군국주의나 공산주의나 멸사봉공하는 정신에만 의존해선 유지가 되지 않을 것이고 결국 <돈내기>를 주거나 강압적인 수단을 쓸 수밖에 없을 게다. 그러고 보면 북한은 체제상 개인별 <돈내기>를 줄 처지도 못되고 결국 선전 선동이나 강압적인 수단에 의존해야 할 터이니 북한 당국자들도 나라 다스리기가 꽤 힘들 것 같다. 우리 나라 사람들 적성에 공산주의란 게 근본적으로 맞지 않는 게 아닌 가도 싶다.
중동 건설 붐이 한창이던 때 현장 소장이나 관리자들한테서 이런 푸념들을 자주 들었다.
"인도나 방글라데시 사람들에게 일을 시켜보면, 감독이 있을 때나 없을 때나 한결같은 대신 아무리 가르쳐도 일머리를 잘 모르고 동작이 너무 굼떠 애가 타고, 한국사람들에게 일을 시켜보면, 일머리도 잘 이해하고 척척 일도 잘하는 대신 감독이 잠시라도 자리를 비우기만 하면 그냥 앉아서 노닥거리는 바람에 애가 탄다."
중동의 모 항만공사를 조금 가까운 곳에서 지켜보았던 경험담이다. 수 톤이나 되는 시멘트 블록들을 수심 약 12미터의 바다 속에 쌓아 올려 부두를 축조하는 공사였는데, 이 블록들을 하루에 몇 개나 쌓느냐에 따라 공사의 성패가 달려 있었다. 대형 바지선 2척에 대형 크레인 4대, 그리고 몇 개의 잠수조와 육상조가 동원되어 서로간 입체적으로 아귀가 척척 맞아야만 능률을 올릴 수 있는 작업이었다. 물론 모두 한국 근로자들이었다. 그 때만 해도 외국인 근로자들에게 감히 이런 고난도의 작업을 시킬 수 있는 입장이 못됐다. 당초 목표는 하루에 30개의 블록을 투하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막상 시작해보니 그 절반도 투하가 되지 않았다. 소장과 관리자들이 애가 타 독촉이라도 할라치면 서로간 남 탓만 해댔다. 이러다간 공기를 맞추기가 어렵고 공기가 생명인 건설현장에 공기가 늦어지면 어마 어마한 지체보상금도 보상금이지만, 그 많은 인력들에 대한 추가 임금 때문에 거들이 날 판이었다.
본사 고위층이 나오고 하여 고심 끝에 결국 인센티브제를 도입했다. 당초 계약한 일당 외에 블록 1개당 얼마를 보너스로 준다는 안이었다. 보너스 액수 때문에 실랑이가 있었지만, 일단 결정이 되자, 이게 웬 일인가. 하루에 고작 14, 5개 투하되던 것이 며칠만에 서른 개, 다시 며칠이 지나자 쉰 개, 나중엔 최고 여든 몇 개까지 투하됐다. 블록제조공장이 미쳐 블록을 댈 수가 없어 투하조들이 손을 놓고 기다려야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공기를 크게 앞당긴 것은 물론 당초 계산보다 훨씬 많은 이익을 내고 공사를 끝마칠 수 있었다.
앞의 강둑막이 및 신작로 공사나 이 항만공사에서 보듯, <성과급>이 어쩐지 한국사람들의 성향에 알맞아 보인다. 때마침 이 <성과급>이 세계적인 추세인 점을 감안하면 모처럼 한국사람들이 마음껏 "기량"을 펼칠 때가 된 것도 같다. 그렇지 않아도, '과거 굴뚝산업시절엔 단합 잘하기로 소문난 일본인들이 방방 떴지만, 다가온 정보화 시절엔 개인주의(좀 더 심하면 이기주의)적인 한국인들이 큰소리 칠 때가 됐다.'는 말이 벌써부터 인구에 회자되고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90년대 정보화시대가 열리면서부터 일본이 뭔가 옛날 같지가 않았다. 나름대로 노력은 하는 것 같은데도 결과가 별 신통치가 않은 것이다. 아직도 제조업은 그런 데로 과거의 영광을 간직하고 있는 것 같지만, 정보산업으로 눈을 돌리면 자기들 스스로도 2류국으로 자리 매김을 할 정도다. 구미, 특히 미국을 본떠서 한 때 성과급 바람이 불기도 했는데, 벌써부터 볼멘소리가 나오는 걸로 봐서 이것 역시 체질에 맞지 않은 모양이다. 최근 일본의 어떤 잡지에 실린 글을 보니, 성과주의가 경쟁력을 떨어뜨린다며 여러 가지 문제점을 제기하고 있다. 남보다 앞서 1993년부터 이 제도를 도입한 후지쓰社는 4월부터 이 제도를 바꾸기로 했다고 한다. 성과주의의 가장 큰 문제가 '종업원들 사이에서 실패를 두려워하는데서 오는 挑戰心 억제로 히트상품이 나오지 못하게 되었으며, 애프터 케어 등의 일상업무가 등한시되어 고객들과의 충돌이 증가하는 등의 폐해가 속출하는 점'이라고 했다.
일본은 설사 공산주의를 해도 아무 문제없이 모범적으로 했을 것이란 말이 나올 정도이고 보면, 개인주의 내지 이기주의에 바탕을 둔 성과급이 영 체질에 안 맞을 것은 당연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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