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잡지사 편집장에게 보낸 편지 | |
000 편집장님, 편지 고맙습니다. 사실 저도 집이 서울 시내였다면 호기심 반 사람구경 반으로 한번쯤은 그 집회에 나가봤을 겁니다. 그러다가 전경들에게 부당한 대우를 받거나 물대포세례라도 받았다면 순간적으로 투사가 되 었을 지도 모릅니다. 어쭙잖은 일로 시작된 것이 운명이 바뀌고 역사가 바뀐 사례가 허다하지 않습니까. 이런 경우 어떤 사람은 이면의 필연성을 이야기하지만 저는 우연성 일 뿐이라고 믿습니다. 몇 번의 집회로 끝났으면 이번 소동도 가치를 찾을 수 있었을 겁니다. 차츰 “꾼”들과 의식화 된 사람들의 정치판 으로 변질돼 갔습니다. 더욱 절망스러운 것은 초기 국민들의 여론이 촛불집회를 지지하고 어떤 전직 대통령이 “위대한 국민 운운“하는 것이었습니다. 과학도 이성도 합리성도 소용 없었습니다. 온 나라에 감성이 충천했습니다. 저가 첫 원고 에서 여우 이야기를 한 것도 그 때문이었습니다. 저가 어릴 때(아마 농촌에서 자란 저 또래의 사람들 대부분이 그랬을 겁니다) 제일 무서워 한 동물이 여우였습니다. 여우가 새파란 각시나 머리 하얀 할머니로 변해 사람을 호려 간을 빼먹는다는 이야기 를 반신반의하면서도 밤에 혼자 나다니기를 무서워했습니다. 그런데 이솝우화나 유럽의 유명 동화에 나오는 여우는 어떻습니까? 꾀 많고 교활한, 때로는 제 꾀에 제가 넘어가는 어리석기조차 한 동물에 불과합니다. 미국산 쇠고기가 한국에 오면 “광우병 덩어리”가 되는 것이 마치 여우가 한국에선 천년 묵은 구미호가 되는 것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젠 이런 감성의 유희에서 벗어나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절대로 진정한 민주주의 국가를, 진짜 선진국을 창조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머리털 홈을 파도 유분수지 TV 토론에 나온 “촛불찬성론자들”이 계속 쇠고기를 물고 늘어지는 모습이 도무지 제정신 가진 사람 같지 않았습니다. 누군가는 직접민주주의 어쩌고 하던데 어릴 때지만 6.25사변을 겪은 저로선 소름끼치는 소리로 들렸습니다. 누구는 민중의 힘을 보여주고 정부에 본 떼를 보여주어야 한다고 하던데 정부의 기를 팍 꺾어놓고 국민들에게 좋을 일이 무어겠습니까? 군사독재정부라거나 부정부패한 정부라거나 한다면 몰라도 민주적 방법으로 정권을 잡은 지 이제 겨우 4개월 된 정부를 주눅 들게 해서 국민이나 국가를 위해 무슨 보탬이 되겠 습니까?
저도 감성적으로는 이명박 정부 좋아하지 않지만, 정말 이것은 아니다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번 원고와는 전혀 관련이 없는 저의 속마음일 뿐입니다. 이00 올림
(2008년 촛불난리 직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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