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카시즘과 도그머티즘과 극단주의
(2000년 10월27일)
한 때 메카시즘이 유행하던 시절이 있었다. 정적을 제거하기 위해 혹은 국민들의 여론을 호도하기 위해 바른말하는 사람들이나 항의하는 사람들을 걸핏하면 간첩이나 빨갱이로 몰았다. 법정에선 예사로 전문(傳聞)증거와 협박과 고문에 의한 증언을 근거로 언도가 내려지곤 했다. 이 때문에 막상 진짜 간첩이 잡혔을 때도 또 조작한 것 아닌가, 혹은 정치놀음 아닌가 하고 국민들은 미심쩍어했다. 간첩.빨갱이와 민주투사.양심수의 구분이 모호해져버린 시대였다.
메카시즘은 이제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 얘기가 돼 버렸다. 김창룡 특무대장도 오제도검사도 그리고 김형욱같은 정보부장도 비명에 죽거나 설사 살아있다 해도 이빨 빠진 호랑이 축에도 못 들게 됐다. 국가보안법도 대통령이 앞장서서 유명무실화시켜버렸다. 보도에 의하면 보안법 혐의로 입건되는 사람들의 8,90%가 경찰, 검찰, 법원의 단계를 거치며 무혐의 내지 무죄로 풀려난다고 한다. 격세지감이다. 역사가 발전한 것일까?
그러나 속단은 아직 이르다. 비정상의 시대가 가면 응당 정상의 시대가 와야할 터인데 또 다른 비정상이 판을 치고 있다. 메카시즘 대신에 이젠 전혀 엉뚱한 도그머티즘이 그 자리를 차지한 것이다. YS 시대엔 "문민"과 "역사바로 세우기"라는 도그머티즘에 빠져 나라꼴이 어지럽더니 이젠 "DJ식 대북정책"이라는 도그머티즘이 또 많은 사람들을 걱정스럽게 하고 있다. DJ식 대북정책은 이제 부동의 진리가 돼버렸다. DJ식 대북정책도 우리가 취할 수 있는 수많은 대북정책 중 한가지에 불과하련만, 오직 이것만이 유일무이한 정책인양 각색해간다. 이 도그머 역시 이성적인 비판도 반대도 허락하지 않는다. 법도 소용없게 돼 버렸다. 국시도 국체도 무색해져버렸다. 역사의 정통성이 어떻게 되든 관심 없게 돼 버렸다. 입만 열면 자유니 민주니 인권이니 하면서 정작 2천여만명의 동족이 사상 유래가 드문 혹독한 억압에 신음을 해도 그렇게 만들고 있는 사람들을 마음놓고 한번 나무라기조차 힘들게 되고 있다. 신문도 방송도 북한에 관한 한 한 목소리를 내야지 다른 소리하다간 온갖 있는 죄 없는 죄 들추어내고 사설하나 기사 하나까지 트집을 잡고 물고 늘어진다. 이젠 오히려 북의 위정자들이 남쪽의 어느 장관이 이러니 저러니 하면서 공공연히 내정간섭을 하는 세상이 돼 버렸다. 나중엔 남한 신문의 기사검열을 하고 각료임명과 대통령후보지명에까지 간섭할지도 모르게 됐다. 그런데도 이쪽의 일부 인사들은 미우나 고우나 오늘의 대한민국을 있게 한 이승만과 박정희는 죽일X으로 몰아세우면서 김일성이나 김정일엔 싫은 소리 한마디 안 한다. 어쩌다 눈치 없는 사람들이 그들을 비판하다간 영락없이 반통일세력으로 몰린다. 메카시즘이, 적어도 한국에서, 독재가 내뿜는 독소라면, 도그머티즘은 독재를 기를 수 있는 자양분이 된다. 총칼로 내려 누르고 감옥에 잡아넣고 하는 것만이 독재가 아니다. 수카르노와 나세르가 국민들을 총칼로 탄압해서 독재자란 소리를 들은 게 아니다. 어떤 도그마를 앞세워 국민들을 일렬횡대로 세워 일사불란하게 그걸 따르게 하면 비록 총칼을 들지 않아도 독재라는 소리를 듣게 되는 것이다. 수카르노와 나세르를 교조주의적 독재자라고 부르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그런데 더 무서운 게 있다. 다음에 올 "반(反)"이 또 극단으로 흐르는 경우이다. 우리의 지나온 역사를 되돌아보면 헤겔의 변증법칙에도 따르지 않는 이상한 면을 발견할 수 있다. 정반합(正反合)이 돼야 할텐데 정반(正反)만 되풀이된 때가 많기 때문이다. 입으로는 중용을 외치면서도 기실 극단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이런 극단적인 "정반"이 되풀이되는 것이 두려워서 중도라고 자처하는 나는 오늘도 이렇게 인격적인 모독까지 당해가며 쓴 소리를 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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