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宇中씨의 경우
(2001년 2월8일)
거 참 이상도 하다. 왜 갑자기 김우중씨가
백주대로에서 "인민재판"식으로 "난도질"을 당하고 있는 걸까? 정부에서 발표한 것을 인용한 언론보도대로라면 그런 대접을 받아도 싼 것 같긴
한데, 그러나 그 타이밍이며 족치는 방법이 영 뒷맛이 개운치가 않다. 김우중씨는 이 정부 들어서고 난 후 전경련 회장으로 있은 사람이다. 그게
어쨌다는 거냐고 할지 모르지만, 전경련 회장은 아무나 하는 자리가 아니고, 또 100% 회원사들의 뜻으로만 정해지는 자리도 아닌 줄 알고 있다.
적어도 정부 당국과의 조율에 어느 정도 호흡이 맞아야 버티어 나갈 수 있는 자리로 이해하고 있다.
내가 경제를 잘 몰라서 그런 건지 정치를 잘 몰라서 그런 건지 아리송하긴 하지만, 이른바 분식회계로 이익을 조작해 국내외에서 엄청난 자금을 끌어들였다고 하는데, 글쎄 우리 나라 기업들의 회계처리가 국제사회에서 불신을 받고 있는 것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라는 보도가 사실이라면, 유독 대우만이 그런 짓을 했나 하는 의문도 남는다. 그리고 검찰발표대로라면 "지난 3년간 무려 41조원을 분식결산하고 영국 런던 비밀금고인 BFC를 통해 25조원을 관리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했는데, 지난 3년이라면 바로 현 정권이 들어서고 난 후의 일이라는 얘긴데, 정부는 그간 뭣하고 있다가 이제 와서 이런 난리들인지 이해가 잘 되지 않는다. 몰라서 그랬다해도 직무태만이며 유기가 아닐까? 직무태만 얘기가 나왔으니 하는 말이지만, 소위 공적자금이 당초보다 수십조원이나 불어난 것도 대우 파산 때문이라는 정부 당국자의 변명이었는데, IMF 사태로 왼 나라가 휘청거릴 때도 대우는 세계를 싸돌아다니며 확대경영에 여념이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때 정부는 팔짱을 끼고 구경만 하고 있었단 말인가? 아니면 어어! 하다가 일을 키우고 말았단 말인가? 구경만 하고 있었다면 직무유기고, 어어! 하다가 기회를 놓쳤다면 무능이니, 이래저래 정부의 책임을 면할 수 없을 것 같다.
단죄의 방법에도 문제가 있다. 설사 그가 각 게시판에 내뱉어지고
있는 말처럼 "망국노"라고 해도 그도 엄연히 인격체를 가진 인간이다. 더욱이 한 때는 이 나라 경제발전을 위해 애쓴 공로, 기부의 공로, 갖가지
선행 공로로 국가나 단체로부터 훈장이며 표창장이며 감사패를 수도 없이 받았을 사람이기도 하다. 그런 사람을, 설사 그가 중죄를 지었다 할지라도
과연 이런 식으로 그가 내팽개쳐져도 될 일일까? 아니 지금 그의 죄라고 하는 것도 검찰에서 발표한 것일 뿐 아직 재판도 받지 않았으니 확정된
것도 아니다. 어쩌면 그의 귀국을 종용하다가 말을 안 들으니까 아래 사람들을 잡아들이고 여론몰이를 하는 인상도 없지 않은 것 같은데, 정말
그렇다면 치졸하기 짝이 없는 방법이다. 오늘 뉴스를 보니 무슨 활빈단인가 하는 '시민단체'에서 사설 체포조를 구성하고 또 현상금 1천만원을
걸었다고 한다. 활빈단이 뭣하는 곳인지도 어떤 사람들로 구성된 단체인지 알지도 또 알 필요도 없지만, 아무튼 이렇게 어깨춤을 추며 날뛰는
사람들이 벌이는 해프닝이 나라가 위기에 처하거나 혼란스러울 때 약방감초처럼 빠지지 않았던 게 우리의 역사 속의 서글픈 현실이기도
했다.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는 그의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고
그의 인기가 하늘을 찌를 때, 나는 장마 도깨비 여울 건너가는 소리로,
"나랏돈 써 가며 잘도 논다, 저 사람 언젠가는 큰 일 한번 내지.." 하며 중얼거렸다. 아주 친한 사람에게는 "김우중이 저 사람 반쯤은 사기꾼"이란 말도 했다.
그러나 며칠 전 "망국노"라며 뭇 사람들이 그에게 마구 칼질을 해댈 때 나는 비 맞은 중 담모롱이 돌아가는
소리로 이렇게 중얼거렸다.
"그가 망국노면 우리 나라 대재벌 총수들 망국노 아닌 사람 몇이나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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