飜譯글

20세기는 과연 어떤 세기였던가?(5) - 극적으로 변한 인간 가치관의 세기

이강기 2015. 9. 9. 12:20

20세기는 과연 어떤 세기였던가?(5)

 

극적으로 변한 인간 가치관의 세기

 

                     - 글: 도미니크 모이지 -
                     (46년생, 프랑스국제관계연구소 부소장, 파리고
                         등 정치학원교수, 폴리띠끄 에뜨랑제르誌 편집
                         장 역임, 유럽을 대표하는 국제정치경제학자)


  ┌───────────────────────────────┐
  │20세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핵에 대한 공포나 長壽化등을 통해 │
  │인간의 존재에 대한 혁명적인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미국의 승리 │
  │나 아시아의 재생은 부차적인 현상에 불과하다. 유럽은 이미 세계 │
  │역학의 중심에서 밀려나고 있지만, 감정이나 사회성이라고 하는 인│
  │간의 존재를 지켜주는 가치관을 찾는 활동을 계승하고 있다. 유럽 │
  │모델 자체가 경제발전과 인간성을 양립시킨 다음 세기의 메시지가 │
  │돌 것이다.                                                    │
  └───────────────────────────────┘

<> 공포와 진보의 확연한 대조

"좋은 시대였으며 나쁜 시대였다. 지혜의 시대였으며 바보천치의 시대였다. 신념
의 시대였으며 불신의 시대였다. 빛의 계절이었으며, 어둠의 계절이었다. 희망의
봄이었으며 절망의 겨울이었다. 전도가 양양하였으며, 눈앞이 캄캄했다......"

챠알스 디킨즈의 [두 도시 이야기] 첫 귀절은, 20세기가 어떠했는가를 정의하기
위해서 특별히 주문받아 쓴 것처럼 보인다.

필자에게 있어서의 20세기는, 1914년의 제 1차 세계대전 발발로 막을 열어 89년의
베를린 장벽 붕괴로 막을 내렸다.

20세기는 특히 짧았으며, 동시에 극히 비극적인 세기였다. 20세기와 비교할 수 있
는 것으로는 유럽의 인구를 격감시킨 페스트균이 날뛰던 14세기나, 30년 전쟁이
일어난 17세기 정도가 아닌가 한다.

유럽인들에게 있어서의 20세기는, 과학의 진보와, 인간이 만들어 낸 공포의 집적
물(핵무기), 이 두개가 확연히 대조를 이루는 세기였다. 공포의 정점은, 독일의
나치스나 스탈린의 범죄 가운데서 다시 그 자태를 나타낸 야만성과 미개상태이다.
유럽에서 태어난 이데올로기는 복잡하고 모순에 찬 과정을 거치면서 유럽의 자기
붕괴를 가져오고 말았다. 너덜너덜해진 유럽대륙을 재통일하려는 기운이 생겨나고
있지만 그것을 루네상스와 비교하는 것은 아직 무리다.

20세기는 미국의 세기였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소련의 세기로
서 기억될 지도 모르겠다. 러시아에서 일어난 2번의 대 사건이 역사의 흐름을 바
꿨다. 하나는 1917년에 일어났다. 10월 혁명으로 맑스주의가 권력을 장악하여, 국
제적인 구조가 근본적으로 변화됐다. 두번째는 1989년의 베를린장벽 붕괴다. 페레
스트로이카(개혁)와 크로스노스트(개방)라고 하는 1개의 원리를 도입한 맑스주의
진영의 지도자인 고르바쵸프가 스스로의 뜻과는 전혀 상관없이, 20세기를 지배했
던 맑스주의라고 하는 이데올로기극의 막을 내렸다.

그러나 맑스주의의 패배가 반드시 여러 이데올로기의 종언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
며, 샤무엘 헌팅턴교수가 주장하고 있는 것과 같은 냉철한 "문명의 충돌"로 연결
되는 것도 아니다.

사실, 21세기의 입구에 서서 보면, 20세기에 가장 영향을 끼친, 더욱이 다음 세기
가 되어도 어쩌면 가장 큰 의미를 가지게 될 몇개의 변화는, 정치 쪽에 있지 않고
인간의 존재와 관련있으며 혁명이라고도 불릴 수 있는 것과 결부되어있는것 같다.

<> 국력의 변화는 부착적 현상

이러한 변화의 첫째는, 인간이 집단적으로 스스로를 멸망시킬 능력을 가지고 있다
는 사실이다. 1945년 8월의 히로시마, 나가사끼 원폭투하 이래, 인간성은 자기파
괴의 가능성을 숨겨논 도구의 컨트롤 아래 두고 있다. 핵무기의 발명으로 야기된
근원적인 변화는 앞으로도 계속 우리들을 지배하게 될 것이다.

핵폭탄의 존재로 보다 집단의 책임이나 가치라고 하는 감각이 강해졌지만, 세계에
격변을 가져다주는 파멸에 대한 공포는 변하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을 것이다.
일단 열리고 만 핵 판도라 상자를 간단하게 닫아서 없었던 일로 할 수가 없기 때
문에 21세기에도 끊임없는 공포의 그림자 아래서 살아가야 할 것이다.

둘째로, 그런 한편으로 인류는 자기들의 생명을 연장하는 길도 고안해 내고 있다.
20세기에 일어난 또 하나의 혁명은 수명의 변화다. 유럽, 북미, 그리고 아시아의
많은 지역에서 여성의 평균수명이 2배로 연장되고, 남성도 상당히 오래 살 수 있
게 되었다.

제 3의 혁명적인 사건은 유전자기술의 발전이다. 유전자 연구가 진행됨으로써 인
류는 역사상 처음으로 생명의 본질에 손을 델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되었다. 여
러가지 윤리적 구조를 만든다고 해서 유전자기술이 가져다 준 혁명이라고 하는 또
하나의 판도라 상자를 완전히 닫을 수는 없다. 그것은 일반적으로 건설적인, 그러
나 터무니없는 두려운 변화를 가져다 주는 혁명이다.

이러한 지구규모의 근본적인 변화에 비한다면, 이른바 미국의 승리, 아시아의 재
생, 유럽의 장래에 대한 불안이라고 하는 현상은 부차적인 것이다. 한 사람의 유
럽인이며 철학자인 체코 대통령인 바츠라프 하벨의 말을 인용하고 싶다. 수년전
그는 이렇게 자문했다.

"유럽은 앞으로 어떠한 곳이 될 것인가. 죠지 오웰이 묘사한 것과 같은 돌출된 권
력구조를 가진 곳은 되지 않을 것이며, 거대한 요새도 되지 않을 것이다. 작지만
지금보다 아주 근사한 장소가 될 것임에 틀림없다. 제임스 죠이스나 마르셀 프르
스트뿐 아니라 카프카, 도스토에프스키, 포크너를 길러낸 품속 깊은 곳을 갖게 될
것이다."

<> 글로벌화에 대한 대답

이렇게 시야가 넓고 또한 겸허한 유럽의 장래상은, 유럽이 21세기의 세계에 현실
적으로 내놓게 될 메시지와 확실히 일치한다. 유럽은 단순히 전통적인 지정학상의
대국으로서 뿐만 아니라 도덕적, 문화적으로 큰 영향력을 갖게 될 것이다.

오늘날 유럽 사람들은 경제적 번영에 대한 욕망과 함께, 사회적인 문제도 해결하
려는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그기에는 끝간데를 모르는 아시아의 경제성장이나 로
라 코스타에 올라 탄것 같은 미국경제에 비해 유럽모델은 장기적으로 보아 안정돼
있다고 하는 말없는 전제가 따르고 있다.

화란의 경제가 지금 좋아지고 있는 사실은 이러한 꿈이 성취될 수 있다는 것을 증
명하고 있다. 프랑스가 보다 사회성있는 유럽을 만들자고 호소하고 있는 것도 어
디까지나 자국의 문화를 지키며 독특하기까지 한 자기탐닉적인 욕구만을 추구하는
것은 아니다. 글로벌리제이션에 대해 유럽인으로서 진지하게 대처할 수 있는 해답
을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다이애나 영국왕세자빈의 장례식에 참가한 수백만명의 사람들, 로마 법왕 요하네
바울2세가 참석하여 파리에서 개최된 카톨릭교도 집회에 모인 수백만명의 젊은이
들, 그들은 모두 정신자세나 집단으로서의 일체적 감정을 탐구하고 있는 것이다.

다이애나세자빈의 장례때에 영국국민들이 보여줬던 "순응하든지 소멸하여 없어지
든지" 하는 메시지는, 영국 왕실이나 영국에게만 큰 의미를 가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전 유럽의 정치가들에게도 해당되는 것이며 또한 21세기를 위한 중요한 메
시지기도 할 것이다.

어떤 책에 의하면, 사물의 스타일이나 양식이 바로 본질이라고 했다. 미디어가 지
배하는 이 시대에 지도자들은 정직하고 겸허하여 잘난체하지 않아야 할 뿐 아니라
동정심이 깊고 대중에게 항상 친근감을 주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나 스타일을 뛰
어 넘는 곳에 메시지의 본질이 있다. "사람은 빵만 보고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
꿈을 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정치로부터 감정을 배제하는 것이 가능하기나 할까?

1930년대의 나치스 독일에서는 가장 나쁜 야만인의 대의때문에 감정이 억제되었
다. 다이애나세자빈의 장례나 로마 법왕의 집회가 우리들에게 가르치고 있는 것은
올바른 방향으로 향한 전향적인 감정을 받아드릴 여지가 아직 남아있다고 하는 것
이다. 이른바 유럽은, 특히 유럽의 젊은 세대들은 지켜야하는 가치관을 탐구하는,
옛날부터의 감각을 계승하고 있는 것이다.

유럽은 비참하게 모순을 겪은 과거를 갖고 있으며, 현재는 세계 역학의 중심으로
부터 멀어지고 있다. 바로 그 이유로 해서 유럽은 21세기를 향한 메시지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이 메시지를 갖게 되면 안으로는 보다 인간적인 경제발전 모델을
만들어 나가고, 밖으로는 인도적인 문제의 개선에 공헌할 수 있을 지도 모르는 것
이다.(니혼게이자이, 97. 9.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