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는 과연 어떤 세기였던가?(6)
일본에서 맑스 경제학이 발전된 이유
- 글: 네기시 다까시(根岸
隆)
(1933년생, 동경대학 명예교수,
이론경제학의
연구업적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음,
근년에
는 경제학사를 주요 연구테마로 하고 있음.)
20세기의 일본경제학은, 수량경제학에 대한 현저한 공헌과 함께 맑스경제학을
독자적으로 크게
발전시켰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주류파 경제학이 남성적인
세계관에 입각한 <선택>이론이라고 한다면, 맑스경제학은
<관계>를 중시하는 여
성적인 철학에 기초를 두고 있다. 일본에서 맑스경제학이 발전된 것은, 일본사
회의 가치관이 서구보다
여성적이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 수량경제학으로 국제적 공헌
20세기의 일본은 전반기의 군사대국에서 후반기로 넘어오면서 경제대국으로 잽싸
게 변신했다.
그런데 영국, 프랑스, 독일, 오스트리아, 미국등 역사상에서 경제
대국으로 불려진 나라들은 또한 모두 경제학 대국이기도 했는데, 경제대국이
된
일본의 경우엔 과연 어떠할까?
만약 21세기에 가서 어떤 경제학사 연구자가 20세기의 일본경제학에 관심을 가지
게 된다면,
그는 아마도 다음 2가지 테마를 연구대상으로 삼을 것이다. 하나는 수
량경제학의 국제적인 발전에 대한 일본의 현저한 공헌일 것이며, 다른
하나는 맑
스경제학의 독자적인 발전일 것이다.
수량경제학이라면 수리경제학과 계량경제학이 합쳐진 것으로 생각해도 좋다. 영어
실력도
변변찮으면서 뭘 한다고 저러냐는 식의 험담을 듣기도 했지만, 2차 세계대
전후의 일본경제학의 국제적인 공헌은 수리경제학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시장균형
이나 경제성장의 추상적 수리로부터 시작해, 재정, 금융, 무역, 산업조직등의 응
용경제학에 대한 수리적인 분석과 실증적
계량적인 수법이 추가되어 수량경제학으
로 발전했던 것이다.
20세기 수량경제학의 국제적인 발전무대는 "이코노미트릭 소사이어티"이다. 이 소
사이티는
7천명의 회원을 가진, 경제학에서는 세계 최대의 국제학회의 하나이다.
"수학이나 통계학과의 관계에 있어서의 경제학의 국제적인 발전을
도모할" 목적으
로 슘페타, 프릿슈, 어빙 피셔등 경제학사상의 거인들이 주동이 돼 1930년에 창설
한 것이다.
이 학회 기관지인 "이코노미트리카"에 논문이 게재되는 것이 수량경제학자의 국제
적인
등용문이기도 한데, 일본인 학자들의 논문도 상당수 실렸다. 또한 기관지의
편집이나 학회의 운영을 담당하는 일본인 역원의 숫자도 많아지고
있다. 이것은
일체의 정치적 고려를 배제하고 모든 회원개인의 연구업적에 대한 평가를 중시해
온 결과이다.
이코노미트릭 소사이티는, 1965년부터 5년마다 세계대회를 개최하여, 글자 그대로
세계적
규모의 효율적인 연구교류를 해 왔다. 최초의 6회는 유럽 및 북미 여러 도
시에서 개최되었지만, 1995년의 제 7회는 처음으로 구미
이외의 장소인 동경에서
개최됐다.
7회 대회는 일본의 대표적인 이론계량경제학회나 게이오대학을 위시한 많은 대학
들의 호의에 찬
후원에 힘입어 대 성공을 거두었다. 그것을 가능케 한 것은 일본
의 전중, 전후에 태어난 세대에 속하는 수량경제학자들의 업적과 활동이
국제적으
로 높은 평가를 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제적이라고는 해도 일본 수량경제학자들의 눈은 결코 구미만을 쳐다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코노미트릭 소사이어티의 지역회의는 유럽과 북미의 그것이
역사적으로 오래되긴 했지만, 최근에는 일본을 중심으로 극동지역의 회의가
활발
해지고 있다. 1987년의 동경회의를 위시하여, 경도, 서울, 대북, 홍콩(97)에서,
세계회의를 개최하는 해를 제외하고
격년으로 열리고 있다.
<> 독자적으로 발전한 맑스 경제학
그러나 수량경제학은, 이데올로기나 웅변술이 아닌 사실인식에 기초한 실증적이론
의 발전이라고
하는 20세기 후반의 주류파 경제학의 한 날개에 불과하며, 그것이
일본독자의 것은 아니다. 21세기 경제학 사가들이 흥미를 느끼는 부문은,
결코 공
산권의 어용경제학이 아닐 것이고, 자본주의 국가인 미국이나 유럽, 일본에서 맑
스경제학이 독자적으로 크게 발전한 사실일
것이다. 이것은 경제학사상의 수수께
기라해도 과언이 아니다.
20세기의 일본의 자연과학연구는, 국제적으로 유행하는 테마를 잡아서 국제적으로
The Best
one을 만드는 것이었지, 외국에 없는 독자적인 연구를 해 The only one
을 만드는 데는 역부족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점은 경제학의 경우에
는 사정이 다소 달라진다.
1995년에 경제학사 연구의 국제적인 전문잡지인 "History of Political
Economy"
는, "사회주의경제의 붕괴후에 맑스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하는 지상 심포지
움을 개최했다.
하기는 사회주의경제의 붕괴와 맑스경제학과는 직접적인 관계는 없다. 이데올로기
로서의 사회주의의
구가는 있어도 과학으로서의 맑스 경제학의 목적은 주로 자본
주의 경제학을 분석하기 위해서였다. 오히려 자본주의의 경쟁적 시장균형과
사회
주의의 계획경제를 동일시하는 오류를 범하며 사회주의경제의 가능성을 논한 것
은, 주류파 경제학이었던 것이다.
그것은 차치하고, 20세기 후반의 주류파경제학의 맑스에 대한 평가는 아주 낮다.
영국학자가
만든 이 심포지움의 기조논문은, 경제학의 주류에 대한 맑스의 영향은
거의 없었다고 단정하고 있다. 그 증거로서 유명한 마샬의
"경제학원리"가 맑스의
이름을 통털어 3회밖에 인용하지 않았다는 것을 들었다.
이에 대해 지상 심포지움의 한 참가자는, 일본의 대표적인 맑스경제학자의
저작인
"경제원론"에서는 맑스에 관한 언급은 통털어 1회 뿐이었다는 것에 주목하고 있
다.
이를테면 주류파의 경제학과 맑스경제학과는, 과학사에서 말하는 완전히 이질적
인 패러다임 또는
리서치 프로그램이며, 상호교류 없이 독자적으로 발전돼 왔던
것이다.
패러다임이 다른 것은 기본적인 전제가 다르기 때문이다. 주류파 경제학과 맑스
경제학 사이에서
그토록 다른 점은 무엇일까? 다시 지상 심포지움의 기조논문으
로 돌아가서, 그것을 쓴 사람도 역사학, 정치학, 사회학등의 다른
사회과학분야에
맑스가 끼친 큰 영향력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 선택보다도 관계를 중시
요컨대 이들 2개의 경제학의 차이점은, 주류파경제학자가 그 기본적인 전제로서의
역사적 정치적
사회적 제 요소를 지나치게 단순화시키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
을 수 없다.
바꾸어 말하면, 맑스는 주류파경제학에서의 비판적인 경제이론에 큰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이다.
그 가운데 하나인 미국의 페미니스트 경제이론의 의하면, <선택>이
론을 중심으로 하는 주류파경제학자는, 인식하는 주체인 자아와
인식받는 대상과
를 대립하는 것으로 파악하는 데카르트 이래의 남성적인 철학에 기초를 두고 있다
한다.
그와 같은, 인간과 세계와를 분리.대립시켜 생각하는 독립적인 개인의
<선택>의
경제학에서가 아닌, 인간생존의 문제를 주위 세계와의 <관계>로 파악하려고 하는
여성적인 철학에 기초한
경제학도 필요한 것이다.
페미니스트 경제이론대로 하면, 남성적인 세계관의 주역은 <선택>에 있고, 여성적
인
세계관의 주역은 <관계>에 있는 것이 된다. 따라서 남성적 세계관에 기초한 주
류파 경제학에 대립하는 맑스경제학은, 페미니스트
경제학이 제창하는 보다 여성
적인 세계관에 입각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어쩌면 21세기 경제학 사가들은, 20세기의 일본에 대해 맑스경제학의 발전의 원인
을, 당시의
일본사회를 지배한 세계관이 서구의 그것에 비해 보다 여성적이었다는
데서 해답을 구할지도 모르겠다.(니혼게이자이, 97. 9.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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