飜譯글

북한군은 하나도 변한 것이 없는데 기분으로 평화를 논해서는 안된다

이강기 2015. 9. 15. 21:55

북한군은 하나도 변한 것이 없는데 기분으로 평화를 논해서는 안된다

 

(2001년 4월22일 - 에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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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일본의 한 인터넷 잡지에 게재된 佐佐木敏이란 SF작가의 같은 제목의 글을 옮긴 것이다. 그는 "게놈의 方舟"란 SF 소설을 발표한 것으로만 돼 있을 뿐 그의 이력에 대한 다른 설명이 없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어떤 사람인지는 알 수가 없다. 그러나 그가 쓴 이 글을 통해서 보건대 그는 우익성향의 일본 지식인의 한 사람이 아닌가 싶다. 남북통일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 등 몇 군데 한국인으로서 분격을 느끼기에 충분한 구절들이 있긴 하지만, 남북정상회담에 대한 그의 독특한 시각이 현재 "포용정책"에 대해 갈등을 겪고 있는 한국인들에게도 약간의 참고가 될 것 같아 옮겨 보았다. 일본 우익지식인들이 한국의 "포용정책"에 대해 구체적으로 어떤 생각을 갖고 있나 하는 것을 아는 데도 도움이 될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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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한국의 이상한 미디어 환경
2. 한국에서는 "여론"이 없다
3. 간파된 "한국의 약점"
4. 군축 없는 화해무드의 무의미성
5. 미,북의 이외로운 일치점
6. 미군은 "화해무드" 정도로 철수하지 않는다
7. "불가해한 나라"를 몸소 연출
8. 단순한 "평화" "통일"의 위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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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국의 이상한 미디어 환경

1998년 한국 영화계에서 가장 크게 히트를 친 "쉬리"는 2000년 연초에 일본에서도 공개되어, 어느 정도 히트를 기록했다. 한데, 그 내용의 잔인성, 조잡성에 기가 막힌 것은 비단 필자뿐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이 영화는, 도청, 역탐지, 총격전 등으로 채워져 있는데, 서스팬스 액션영화의 기본이 전혀 돼 있지 않아, 한국 영화인들이 모범으로 삼아야할 외국 영화를 거의 보지 않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일본문화침략 방지", "국내영화 보호", "살인장면 금지" 등등의 무의미한 예술억압정책으로 美.日의 우수영화 수입금지, 그 가운데서도 (일본 군국주의 문제와 무관한, 단순히 열등감의 문제 때문에) 黑澤明감독 작품의 거절이라고 하는 세계 예술사를 모독하는, 가련할 정도의 어리석은 정책으로, 한국 영화감독들이 완전히 무능해졌다는 것을 보여주기에 충분한 "증거"가 바로 이 "쉬리"였던 것이다.

또한 이러한 무능한 감독이 만든 저질 영화를, 언론이 통제되고 표현의 자유가 있는지 없는지 잘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에서 매스 미디어나 평론가들이 찰싹 달라붙어 대 히트작이라고 늘어지게 칭찬을 늘어놓는 것은, 대충 생각해봐도 영화산업의 육성에는 최악의 환경이 한국에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 "쉬리"의 내용이 십이분 보여주었다.

(1998년에 한국에서 공개된 영화 중 최대 히트작이 "쉬리"이며, 관객동원수가 "타이타닉"을 능가했다고 하는, 어처구니없는 얘기다. 한국 정부가 악의를 갖고 "한국에도 훌륭한 영화가 있으며, 영화감독도 있다"고 떠벌리기 위해서 여론조작, 마인드 컨트롤, 또는 우민정책을 펴고 있지 않는 한, 졸작인 "쉬리"가 영화사에 남을 걸작인 "타이타닉"을 능가하는 관중을 동원했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것이다. 한국정부는 세계 예술사와 표현의 자유를 모독하고 있다는 것을 조금이라도 유념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일본 좌익들은 잘 알고 있겠지만, 한국은 건국이후 장기간 계엄령과 군정 하에 있었으며, 민주적인 대통령 선거가 재개된 것은 겨우 1988년 서울 올림픽 직전이었다. 말하자면 한국의 언론자유와 민주주의의 역사는 겨우 10년 남짓 밖에 되지 않는 것이다.

일본 좌익계 매스컴과 문화인(뿐만 아니라 우익.보수계 세력의 태반도)들은 서울 올림픽이래 거의가 이러한 사실을 망각해버렸으며, 한국의 오랜 기간에 걸친 "언론통제의 전통"에서 오는, 언론의 자유와 인연이 없는 매스미디어들이 "한국에는 일분문화에 대한 반발이 있다."고 말하면, 그 "大本營 발표"를 잘 이해하지 못하고 그냥 받아들여, 전혀 이면 취재를 하지 않고 "한국에는 反日的인 여론이 있다" 든가 "일본은 과거의 역사를 반성해야한다"는 식으로 조건반사적으로 보도하는 습성을 갖게되고 말았다.

일본처럼, 중요한 정치문제에 관해(예컨대 안전보장문제에 관해 비무장론자로부터 중무장 독립론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의견을 발표하는 환경이 한국에는 없다. 수년 전 일본의 어느 아침마당 생중계 TV에 출연한 한국 유학생이 종군위안부 문제에 관해 "이 문제는 한국에서는 이미 논쟁 끝에 진작 결론이 난 문제인데, 왜 일본에서는 언제까지나 이처럼 진상이 어떻다는 등으로 논쟁만 하고 있는가?"고 불만을 드러냈는데, 만약 이것이 한국 국민들의 일반적인 "여론"이라고 한다면 심각한 일이다.(전 아사히신문 기자인 筑紫哲也등 일부 일본의 언론인들도 "무라야마 정권시대의 고노 관방장관의 담화로 이미 매듭이 지어졌다"고 단언하고 있는데,  이것 역시 심각한 시각이 아닐 수 없다.)

생각해 보라. 역사의 진상을 논하는 것에 "매듭이 지어졌다"라는 말이 있을 수 있는 것인가? 필자는 그 무렵(2000년 10월) SF 작가로서 데뷔했는데, 그 전에는 역사작가로 데뷔하기 위해 일본역사상의 몇몇 중대사건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었다. 그 가운데 "혼노지노 헨(本能寺의 變: 일본 전국시대를 주름잡던 오다노부나가가 그의 부하인 미쓰히데에게 혼노지에서 살해된 사건 - 역자)"은, 필자를 포함한 다수의 역사작가, 역사연구자, 역사 애호가들에 의해 가장 중요한 테마로서 다루어지고 있는데, 그 "진상"에 관해서는 400년 이상 경과한 지금까지 몇십 종류의 설이 있지만, 여전히 진상을 추구하려는 독자적인 새로운 가설이 전개되고 있는 실정이다.

"매듭지어졌기 때문에 논하지 않는다"는 것은, 역사학과 언론의 자유에 대한 명백한 모독이다. 오해가 있을까봐 미리 말해 두는데, 필자는 물론 "종군위안부문제에서 일본정부의 책임을 추궁하는 것에 반대"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많은 독자들이 잘 알고 있는 바와 같이 필자는 본건에 관해 중립적인 입장을 갖고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매듭이 지어졌기 때문에 논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은 중국과 북한과 같은 독재국가의 발상이다. 만약 상기 한국유학생이나 筑紫哲也기자의 의견이 "쇼와 천황의 전쟁책임"으로까지 연결되면 어떻게 될 것인가. "도쿄재판에서 결정되었기 때문에 쇼와 천황의 전쟁책임에 관해서는 어떤 연구도 할 필요가 없다"고 하게 되고 말 것이다. 이것이 분명 언론억압이라는 것은 좌우 양익의 입장에서 보아도 명백한 사실일 것이다.

옛날에 한국에서 숙군 쿠데타와 광주폭동 진압으로 全斗煥 대통령( 및 그의 후계 대통령이 된 심복인 盧泰愚)이 정권을 장악했을 때, 광주폭동은 국가에 대한 반역이기 때문에 그에 대한 무력진압과 거기에 따른 시민들의 死傷이 정당화되었으며, 그후 "이미 매듭이 지어졌으니까 논하지 않는다"로 되었다.

90년대에 盧泰愚 정권이 퇴진하고 金永三 정권이 탄생하자, 사태가 일전하여 "아직 매듭지어지지 않았다"로 되고, 全, 盧 2인의 전 대통령은 선량한 광주시민을 학살한 독재자로 되어, 재판에 회부되고 투옥되었다.


2. 한국에는 "與論"이 없다

한국에는 일본이나 서구제국과 같은 의미의 "與論"이라고 하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적어도 다양한 언론기회를 주어 그로부터 다수파를 형성해 가는 프로세스가 없는 것이다. 항상 "전부 아니면 전무(all or nothing)"였다.

이러한 실정의 한국에서 "쉬리"같은 졸작 영화가 개봉되어 대 히트를 친 것이다. 보다 정확히 말하면, "쉬리"가 걸작인지 어떤지에 대해 논의하는 것을 봉쇄하는, "이미 매듭이 지어졌다"고 하는 분위기가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그 영화 가운데 이러한 대사가 있다.

[(북한이 서울 올림픽 스타디움에서 테러를 행할지도 모른다고 하는 것은) 최근 북한의 남북화해무드에 반하는..........]

필자는 이 대사에서 구역질을 느꼈다. 싸구려 "무드"와 같은 것으로 국가안전보장이 좌우된다고 하는 취지의 이 대사는, 평화무드로 멍청해진 일본 좌익문화인들이 감독한 영화라면 몰라도, 국민 皆兵制(남자들에 한해)를 실시하는 臨戰體制下에 있는 나라에서, 군 복무경험을 가진 감독이 만든 작품의 대사로는 도저히 생각되지 않는다.

사실 오랜 기간 "여론"도 "언론자유"도 없는 사회주의 국가들과 같은 미디어 환경에서 살아온 한국국민들의 "현실인식" 능력은 겨우 이 정도인 것이다. "여론"은 오로지 "전부 아니면 전무" 뿐인 것이다. 그래서 북한에 대한 경계감이 하룻밤 사이에 친근감으로 일변되는 일이 가능한 것이다(종전후의 일본인들의 대미감정이, 하룻밤 사이에 "鬼畜美英"에서 "Give Me Candy!"로 변한 예와 비슷한 경우이다). 북한 정권 지도자 가운데서 "쉬리"를 본 자가 있다면, 남한의 이런 점을 간파하고 회심의 미소를 지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리고 실제로 "쉬리"를 보았던 북한 지도자가 있었다. 누구랄 것도 없이 바로 김정일이었다. 이러한 사실은 김정일 자신이 6월의 남북정상회담 때 한국측 동행기자단에게 이야기함으로써 밝혀졌다.

그의 아버지 김일성은 "토라(寅)씨" 시리즈를 전부 보았다고 할 정도의 열광적인 일본영화 팬이었으며, 아들 역시 방대한 할리우드 영화(영국의 007 시리즈를 포함하여) 비디오 콜렉션을 보유하고 있는 세계굴지의 "映畵通"이다. "쉬리"가 졸작이라는 것도, 졸작에 열광하는 한국국민들에게 주어진 미디어 환경의 열악함도 김정일은 일목요연하게 알고 있음이 틀림없다.


3. 간파된 "한국의 약점"

이러한 "한국의 약점"을 간파하고 김정일은, 남북정상회담에서 극적으로, 한국에 대한 "여론조작"에 나선 것이다. 어떻게든 무드를 변경시키면, 남한 국민들의 "여론"이 쉽게 변화된다는 것을 그는 훤히 꿰뚫고 있는 것이다. 한국 미디어들이 군사정권시대부터 지금까지 "敵"이며 독재자인 자신에게 지나치게 악의에 찬 비난 캠페인을 벌여, 자신을 악마나 무슨 괴물처럼 취급해 온 사실도 물론 그는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저 조금이라도 "인간성"을 보여주게 되면, 한국의 愚民들은 열광할 것에 틀림없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영화감독이 될만한 재능이 있다고 알려진 김정일은 그 재능을 멋지게 발휘한 것이다.

6월의 남북정상회담 당일, 처음으로 한국 미디어의 영상에 생중계로 그 모습을 드러낸(축 처진 아랫배를 내밀고) 김정일은 김대중 한국 대통령과 악수하고 거의 처음으로 확실한 자신의 육성을 들려주며 그것을 보도하게 했다.

長幼有序를 중히 여기는 유교의 나라 한국(북한)에서 연하의 사람은 연상의 사람에게 공손해야하는데도 김정일은 그러한 유교도덕은 일체 무시하고 자기보다 훨씬 연상인 김대중 대통령 앞에서 방자한 태도를 취하며 이것 보란 듯이 입심 좋게 마구 지껄여댔다.

그것은 냉정히 보면 독재자의 위장한 태도에 지나지 않는(산께이 신문의 구로다 서울 특파원 표현) 것이지만, 오랜 기간 지나친 적대보도와 정보부족으로 북한 지도자에 대해 과도하게 나쁜 환상을 갖고있던 남한 국민들에게 그것은 "인간성이 넘치는 지도자의 등장", "그도 역시 인간이다"고 하는 감동적인 "발견"이 되고 만 것이다.


4. 軍縮 없는 화해무드의 無意味性

이것이 바로 정상회담 이후의 "남북 화해무드"라고 하는 것의 정체다. 그 동안 북한이 허용한 것은 "남북이산가족 재회" 이외에 구체적으로 화해로 연결될만한 시책은 하나도 없다.

북한측은 아직 명백한 "화해"의 제안을 한 것이 하나도 없다. 군축제안, 한국.일본에 대한 간첩공작 중지, 납치일본인의 귀환, 일본에 있는 북한과 연결된 저널리스트와 문화인(이른바 스파이 문화인)의 명부 제출, 그리고 오랜 기간 테러, 화폐위조, 마약밀매에 관해 일본에 대한 사죄 등 어떤 것도 없다. 단지 "독재자가 배를 내밀고 오만한 태도를 취한 것" 뿐이다.

구체적인 군축제안이 일체 없었기 때문에 이번의 움직임은 "화해"로 이어질 수 없는 것이고, 더욱이 "주한미군의 철수" 등으로 연결되지도 않을 것이다.


5. 미국.북한의 이외의 일치점

설사 북한측에서 군축제안이 있었다고 해도 그것이 곧장 주한미군철수로 결부되지는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바로 북한측이 그것을 바라지 않기 때문이다.

북한은 오랜 기간 "한반도로부터의 외국군대의 철수"를 주장해 왔다. 그리고 1950년에 한반도 남부로부터 미군이 철수하자 곧 남침을 했기 때문에 북한의 미군철수주장에 대한 궁극적인 목적은 남침에 있다고 보는 의견이 지금도 전문가들 사이에서 적지 않다.

그러나 현재의 북한 군사력은, 병력 수는 크게 앞서고 있지만, 현대적 병기가 부족하고, 또한 경제피폐로 부품이나 연료의 확보가 원활하지 못하기 때문에 한국군과 단독으로 전쟁을 하게되면(개전 초기에는 서울에 큰 타격을 주겠지만) 당연히 참패한다. 그래서 한국의 보수정치가, 군인들 사이에는 "북진통일"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적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주한미군 쪽은 어떠냐 하면, 한국이 북진하여 북한을 무력으로 병합하는 사태가 되면, 미국의 동맹국인 한국과, 동맹국이 아니면서 경제적 권익을 추구하고있는 대 시장인 중국이 중국국경에서 직접 접하게 되며, 美.中관계에 쓸데없는 군사적 긴장을 만들 수 있기 때문에 "북진통일"에 반대하고 있다.

그래서 북한이 주한미군을 그대로 두는 것을 선호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전혀 이상할 것이 없는 것이다. 전쟁을 예방하는 최대의 수단은, 결코 걸프전쟁 때 사회당의 도이(土井) 위원장의 경우처럼 "한 사람의 병사도 보내지 않는다" 고 큰 소리를 치는 것이 아니고, "싸울 의지가 없는 대군을 전선에 보내놓고, 만일의 경우 '싸우지 말라'고 말해주는 것"이다.(필자는 도이 다까고의 주장을, 인명경시의 "사람죽이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북한과 싸울 맘이 없는 미군들을, "북진통일"을 방지하기 위해서만 한국에 주둔하기를 북한이 원하고 있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귀결이다.(이것은 남북 정상회담직후의 아사히신문기자의 의견이기도 한다.).

만약에 "주한미군이 북의 공산주의 위협으로부터 한국을 수호하기 위해 존재한다"고 하는 원칙이 100% 옳다면, 북한이 한국이나 미국과 화해하여 경제와 사회시스템을 "대외개방"했다고 해도, 그것이 바로 주한미군의 철수로 연결된다고 하는 이유가 될 수 없는 것이다.


6. 미군은 "화해무드" 정도로 철수하지 않는다

예컨대 나토는 미국과 서구제국이 소련과 동구 공산권제국의 군사동맹인 바르샤와 조약기구의 침략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었는데, 91년의 소련 붕괴로 바르샤와 조약기구가 없어졌는데도 나토는 없어지지 않고 미군도 유럽기지에서 철수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나토는 확대되고 있다. 냉전시대 바르샤와 조약기구에 가맹하고 있던 폴란드, 체코, 항가리의 구 사회주의 제국이 나토에 가맹함으로써, 나토는 "敵"인 소련과 그의 군사동맹이 소멸된 후 거꾸로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이유는 물론, 새 가맹국인 3개국을 포함한 거의 전 유럽이 여전히 러시아(구 소련)의 위협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며 거기에 대항하는 데는 미군의 지원이 불가피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소련(러시아)은 연방을 해체하고, 군사동맹(바르사와 조약기구)을 해산하고, 페레스트로이카를 거쳐 민주화도 달성했다. 그럼에도 소비에트 러시아의 침략주의적인 본질은 변하지 않고 있다고 유럽 제국들은 보고있는 것이다.

(러시아는 선량해 진 것이 아니고, 약해진 것에 지나지 않으며, 약해진 것에서 선량한 것으로 변하지 않고, 장래 다시 강해지면, 또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고 하는 것이 폴란드, 독일 등 러시아에 괴로움을 당해온 나라들의 생각이다. 이 말은 바로 그대로 북한에도 적용할 수 있는데, 한국국민들의 현실 인식능력이 현저하게 낮아, 이것을 경계하지 않는 것은 곤란한 일이다. 韓日간의 "역사인식"이 점점 일치하고 있지 않는 것도 당연한 일이 아닐까한다.)

이러한 유럽의 "상식"에 비춰보면, "김정일이 아랫배를 내밀고 오는 것을 보고 주한미군이 철수해야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얼마나 비상식적인 것인지 누구의 눈에도 분명하게 비쳐질 것이다.


7. "불가해한 나라"를 몸소 연출

2000년 9월 5일, 金永南 북한 최고인민회의상임위원장(국가원수)등 북한 외교 사절단 일행이 독일에서 뉴욕행 비행기에 탑승하려고 했을 때, 미 항공회사(아메리칸 항공) 직원들이 윗도리와 구두를 벗기는 등 집요한 "신체검사"를 하는 것에 불만을 품고, 뉴욕에서 열리는 유엔 가맹국 정상회담인 "밀레니엄 서미트"를 불참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아무리 미국과 국교가 없는 "불량배 국가"(테러지원과 마약밀매 상습범)의 외교사절단이라고는 하지만, 일국의 국가원수 일행에게 "집요한 신체검사"를 하려했던 아메리칸 항공의 대응은 다소 무례했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다른 "무뢰배 국가"인 쿠바와 이란 등의 대표들은 무사히 뉴욕에 들어왔기 때문에) 그들이 아메리칸 항공 대신 다른 비행기를 예약하면 유엔 서미트에 충분히 참석할 수 있었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더욱이 뉴욕에서 정상회담을 예정하고 있던 상대국인 한국과 일본에 대해 회담을 일방적으로 취소하는 실례를 범하기까지 하면서 태연히 북한으로 되돌아 가버리는 그들의 태도는 도무지 상식적으로 해석이 안 된다.

이것은, 이상한 나라의 "당돌한 결정이 국제사회의 이해를 구하기 어려울 것"(아사히신문 2000년 9월 6일 조간 7면 기사)으로 생각되며, "북한의 행동은 예측할 수 없다고 하는 인상을 다시금 국제사회에 보여주었다."(같은 기사)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북한의 "이미지 다운(image-down) 전술"은 미.북 쌍방에게 남북의 급격한 화해(그리고 주한미군 철수)를 바라지 않는다고 하는 "이해의 일치"가 있었다고 생각하면 쉽게 설명이 가능하다.

이 "유엔 서미트 취소사건"은 아메리칸 항공의 대응이 나빴으며, 미북간의 연락이 잘 되지 않았다고 하는 지엽말단적인 억측을 하기보다는 "미.북이 공모하여 연출한 불행한 행동에 지나지 않는다"고 해석하는 것이 훨씬 자연스럽지 않을까 한다.

실제로 만약 김영남위원장이 뉴욕에 왔다고 한다면, 한국, 일본과의 정상회담이 행해지고 관계개선이 일시에 (지나친 속도로) 진행되고 말 것이라고 하는 우려가 북한측에 있었다고 상상하는 것이 어렵지 않다. 거기에다 2000년에 들어와서부터 G7국 가운데서 처음으로 이태리와 국교를 수립하는 등, 외교활동을 활발히 하고 있는 사실을 미루어보면, 외부에 보도되지는 않았지만 정상회담이 "취소된 것"은 한.일만이 아니라 실은 다른 서방측 나라(예를 들어 영국, 독일, 프랑스 등)들과의 비밀외교절충도 준비되어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한 외교활동에 의해 북한의 서방측에서의 이미지가 좋아지는 것은 미국과 그리고 북한 자신이 (주한미군의 계속 주둔과, 북한 인민군들의 사기진작을 위해서도) 좋지 않을까고 판단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싶다(이른바 북한 자신이 자신에게 브레이크를 건 것이다.).


8. 단순한 "평화", "통일"의 위험성

敵과 我의 관계는, 아마추어 평화주의자들이 생각하는 정도로 그렇게 단순한 것이 아니다. 그리고 평화도 또한 겉치레의 "전면군축"이나 "남북통일"에 있는 것은 아니고, 적당히 긴장감을 가진 대립(냉전) 가운데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한반도의 불행은 같은 민족이 2개의 민족으로 갈려져 있는 것은 아니고, "서로 대립하는 데"에 있다. 예를 들어 독일과 오스트리아는 같은 민족이면서 2개의 나라로 나뉘어져 있는데 대립하지 않고 양 국민들끼리 왕래도 자유롭기 때문에 별로 비극적이지 않다.

"세상없어도 통일 뿐"이라고 하는 것은, 지나친 네셔널리즘이며, 오스트리아와 독일의 통일을 꿈꿨던 히틀러의 발상과 같은 것이다.

만약, 남북이 하나의 나라가 된다면, 남한국민들은 그 부의 태반을 투입하여 극빈의 북한경제를 살려내야 한다. 인구 6,400만의 서독이 1,500만의 동독경제를 살려내는데도 굉장한 고생을 아직도 하고 있다. 하물며 서독보다는 훨씬 작은 4,200만의 남한인구가 인구 3,000만의 북한 경제를 살려낸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렇게 되면 남한의 경제수준이 제 2차 세계대전 직후의 수준까지 내려갈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남한 사람들은 정작 실제로 통일이 가까워졌을 때는 "화해무드"등은 잊어버리고 필경 뒷걸음질 칠 것이 틀림없다. "전부 아니면 전무" 여론의 대 전환이다.

그럼에도 "무드"에 젖어있는 한국의 "여론"이 어디까지나 남북통일을 고집하면 어떻게 될까? 남측의 대도시에는 북측 난민들이 흘러 넘칠 것이며 그들은 일용노동 등의 불안정한 일거리 밖에 구할 수 없어 대부분은 반실업자에 집 없는 사람들이 되어, 한국의 치안을 악화시킬 것이다. 남쪽 사람들의 "북의 동포"에 대한 친근감은 하룻밤 사이에 일변(다시금 "전부 아니면 전무"의 대 전환이 일어난다)하여 북쪽 사람들을 싫어하고 노골적으로 차별하게 될 것이다(이것은 "통일 독일"에서 구 동독인들의 신변에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이런 상태가 계속되면 나라가 붕괴되고 말 것이기 때문에 "통일한국"에서는 국가통합을 위해 공통의 적(일본이나 중국, 미국)이 필요하게 되며, 대외강경론과 네오 네셔널리즘이 대두하게 될 것이다. 구 북한에 인접하고 있는 중국 길림성 연변 조선족 자치구에 살고있는 조선족의 "민족감정"을 자극하여, 중국과 통일한국 사이에서 국경분쟁이 유발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분쟁이 제 3차대전으로 연결될지도 모르는 두려운 사태를 피하기 위해서는 (북한의 독재체제하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가혹한 일이지만) 남북의 냉전구조를 당분간 유지하기를 원하는 것이 결코 호전적인 것이 아니라 오히려 평화주의적인 것으로 생각되는 것이다.

오히려 "동아시아의 냉전구조를 끝내게 하지 않으면" 등의 묘한 힘으로 일본 주위가 과도하게 평화외교를 활성화시키면, 결국 냉전이 "열전"이 되고 말 것으로 생각된다.

평화는 결코 단순한 슬로건으로 실현되는 안이한 것이 아니다. 세상사는 복잡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