飜譯글

三重의 停滯에 빠진 북한

이강기 2015. 9. 15. 21:56

三重의 停滯에 빠진 북한

 

 

 

(2001년 6월18일 - 에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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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5 선언' 1주년을 맞아 KBS와 MBC가 옛 필름들을 돌려가며 부산을 떨고 있는데 도무지 가슴에 와 닿지 않는다. 이젠 좀 차분해 질 때도 된 것 같은데 여전히 국민들의 감성에 호소하여 북을 향한 유화기운을 돋구려고 애를 쓰는 것 같다. 지금은 이성이 필요할 때다. 아래 글은 4월 20일자 산께이 신문에 실렸던 카미야 후지(神谷不二) 에이와 대학교수의 같은 제목의 글을 옮긴 것이다. 산께이신문이라면 일본의 우익신문이니까 뻔한 소리 아니겠느냐며 미리부터 거부감을 보이는 사람도 있지만, 이런 때일수록 그런 신문에 실린 글도 읽어볼 필요가 있을 것 같아 옮겨 보았다. 사실 역사교과서문제에 화가 난 한국 네티즌들의 공격 때문이었는지는 몰라도 4월 1일 이후 줄곧 산께이신문에 접속이 안되다가 오늘(6월 15일)에야 가능했다. 듣기 싫은 소리한다고 그걸 봉쇄한다는 것도 민주적인 처사는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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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得意의 絶頂은 어디로

나는 제 2차대전후 반세기동안의 한반도를 가능한 한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관찰해 왔다. 이데올로기적 편견을 배제하고 희망적인 관측을 피하며 오직 현실을 직시하려고 애를 썼다. 이러한 안목에서 보아, 지난 해 6월의 남북정상회담후의 한국은 지나치게 고무돼 있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50년 동안 쌓여온 분노와 증오를 마치 하룻밤 사이에 모두 잊어버린 것처럼 매스컴도 일반대중도 북의 독재자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였다. 서울거리에선 김정일 캐리커쳐를 넣은 상품이 날개돋친 듯 팔리고 남쪽 대통령 이상으로 북의 독재자가 인기가 있었다.

하지만, 한국이상으로 고무된 곳은 물론 북한이었을 것이다. 국력이 현격하게 큰 한국으로부터, 더욱이 장유유서를 중히 여기는 문화권에서 훨씬 연상인 김대통령을 불러오는데 성공함으로써 김정일 총서기는 득의만면했다. "주체사상"이 "햇볕정책"을 압도한 것이라고 그는 믿게 되었다. 거기에다 미 국무장관의 최초의 방북은 미국대통령의 평양참배 마저 약속하기에 이르렀다. 김정일은 그가 이룩한 외교적 위업에 스스로 도취됐음이 틀림없다.

한국을 구스러고 미국을 교묘하게 조종하면 일본쯤 다루는 것이야 식은 죽 먹기다. 한국이 6.25 사변도, 아웅산 테러도, 대한항공 폭파사건도 문제를 삼고 있지 않은 마당에 일본인들도 "일본인 납치"사건 등에 더 이상 이러쿵저러쿵 하지 않을 것이다. 일본과 국교정상화가 되면 일본으로부터 어마 어마한 보상금을 받아 경제재건도 체제강화도 쉽게 이룰 수 있다....
아마도 김정일은 이런 단꿈에 젖어 있었을 것이다.


<> 興盡悲來

한국과 북한이 한 때 푹 빠져들었던 유포리아(도취감)는 그러나 이제 급속히 식어가고 있다. 김대중, 김정일의 양김씨, 특히 김정일은 지금 필자가 "三重의 停滯"라고 부르는 현실에 직면하여 깊은 시름에 빠져있다. "興盡悲來"라고 했던가.

"삼중의 정체"라는 것은, 남북관계, 한미관계, 북일관계의 3개가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제 2차대전 이후 50여년.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외교를 미국이 도맡아 관리해 왔다. 냉전이 종결되고 북한의 국력 쇠잔이 누가 보아도 뚜렷한데도, 한국은 미군의 주둔을 한결같이 소망하고 있다. 김일성 이후의 북한도 위기에 처한 체제존속을 대미접근에 의해 확보하려 하고 있다.

美日안보 조건 중 하나는 장기간의 한반도 안정이었다. 중국도 한반도에 대한 미국의 이니시에티브에 저항하는 자세를 신중하게 자제하고 있다.

남북쌍방은 이 미국주도의 구조에 다른 시각을 보였다. 김대중은 한미동맹과 남북화해의 결합을 순진하게 믿었으며, 김정일은 "민족"과 "통일"이라는 케치프레이즈로 한미관계보다 더 강력한 북미관계를 구축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것들은 모두들 자기과신에 지나지 않았다.


<> 對日협박 방침에는 변화 없어

한국의 김대중 지지율은 노벨평화상 수상 때 피크를 이뤘는데, 지금은 非지지율을 하회하고 있다. 인권문제의 챔피언이었던 그가 지금은 햇볕정책 추진 때문에 북한비판을 터부시하고 있으며 "逆 메카시즘"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국내 언론통제에 여념이 없다.(파 이스턴 이코노믹 리뷰, 2000년 12월 28일-2001년 1월 4일 합병호). 남북화해가 지나치게 일방적이라고 하는 불만이 국내에서 높아지고 있다. 게다가 한국경제의 북한지원 능력은 결국 일본경제력 없이는 청사진을 그릴 수 없게 되어 있다. 이상이 남북정체의 제 요인이다.

한편 미국으로서는 국익중시를 내건 부시정권이 등장하여 평양에 대해 펴온 장기간의 "유화정책"을 반성하고 있다. 특히 그것의 출발점이었던 1994년의 미북간의 "개략적 합의"에 대한 재검토를 하게 된 것은 언젠가는 그런 때가 올 것이라고 말해왔던 필자로서는 당연한 것으로 생각된다.

실제로 100만 킬로와트의 경수로형 원자로 2기를 2003년까지 인도키로 한 약속이 빨라야 2008년에 완공될까 말까 이며, 당초 30억 달러라고 하던 예산이 벌써 46억 달러라고 하고 있는데 앞으로 얼마나 더 불어날지 모르는 일이다. 따라서 미북관계도 당분간 정체를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끝으로 북일 국교정상화교섭은 신 카네마루(金丸) 부수상의 방북(1990년) 1년 후부터 시작됐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사태는 전혀 진전이 되지 않고 있다. 북의 대일 자세도 전혀 변하지 않고 있다. 대미, 대남외교에서 협박전략이 성공했다고 생각하는 한, 북한의 대일협박정책에 변화가 없을 것이며, 납치사건 교섭에 응할 것 같아 보이지 않는다. 북일관계도 이처럼 여전히 정체를 면키 어려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