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명 |
삼천리 제7권 제9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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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
제7권 제9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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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년월일 |
1935-10-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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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제목 |
民族에 關한 멧가지 생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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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
李光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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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형태 |
논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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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참으로! 참으로! 거즛말, 거즛일을 不共戴天之讐로 알고 생전 다시는
대면 아니하리라, 하고 저마다 自覺하고 결심하는 것이 첫재겟지오. 개인의 신용의 원천이 참이니까요. 작난으로라도 거즛말하는 사람의 말을 어떠케
믿어요? 안 믿는 곧에 어떠케 상업은 興旺하고 조합이나 회사는 잘 되고 단결은 되겟서요. 朝鮮이 여러 가지로 발달하엿지마는 거즛도 그와 함께 더
발달되지나 안앗는가. 도로혀 그 거즛이 哲學化하고 道德化하고 藝術化하지 않앗는가 합니다. 朝鮮의 생명은 眞理把持에서 시작될
것입니다. 거즛없기 동맹을 禁酒斷煙同盟 모양으로 하여 보앗으면 좋겟습니다. 이 風潮가 술의 보급과 같은 정도로 보급되엇으면 좋겟습니다.
참을 위하야 殉節하는 사람이 생겻으면 좋겟습니다. 참으로! 진리에!는 우리에게 최대한 술로 간이겟지요.
2. 行의 禮讚
사실상 보통이하가 아닌 사람은 제가 해서는 안될 것과 해야 할 것을 지식으로는 다 가지고 잇습니다. 가령 청결, 절약, 근면, 공익,
이런 것은 다 좋은 것으로 알고 잇습니다. 하물며 거즛은 나쁘다, 신용이 좋다, 飮酒喫煙 다 해롭고 뒷 公論 좋지 못하고, 남의 欠讀 옳지
않고, 이런 것 다 알고 잇습니다. 「나도 알어」하고 누구나 뽑냄니다. 만일 우리네가 옳지 아니한 줄로 아는 것을 곧 고만두고 옳다고 아는 것을
곧 행하기만 한다고 보면 朝鮮은 一日之內에 도덕적으로나 富力으로나 딴 세상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行에는 意志力이 필요한데 病弱한 사람이나
기생충이 잇는 사람이나 정신적으로 頹廢한 사람에게는 이 意志力이 부족한 것이 특징이기 때문에 행하기는 딱 싫습니다. 이에 손 발은 죽고 입만
산〈60〉 사람이 됨니다. 저마다 저를 행하는 사람을 만들자면 적어도 일주일의 苦役的 노력은 필요합니다. 일주일만 저를 行의 軌道에 몰아넣고
족처대면 정 모쓸 爲人이 아니고는 대개는 行의 습관이 형성되리라고 믿습니다. 曲馬團에서 아이들 재주 가르켜 듯, 즘생에게 재조 가르키 듯
저마다 제 調御師가 되어 鐵鞭을 들고 제둥과 종아리를 후려 갈기며 惡習떼기, 새 習慣 형성하기에 100일을 노력한다면 그는 신뢰할 만한 公民이오
紳士가 될 것입니다. 行의 예찬이라기 보다도 우리네는 안저 뭉개는 사람들로서 거르마를 배워야 하겟지오.
3. 信仰 예수를
믿거나 佛敎를 믿거나, 孔孟을 믿거나, 또 老莊을 믿거나, 또 自然科學을 믿거나, 또는 하나님을 믿거나 山神님을 믿거나 또는 오직 제 양심 또는
良知良能이라는 것을 믿거나 무엇이나 한가지 꼭 믿고 숭배하고 그 명령에 절대로 복종할 「무엇」을 가지고 싶읍니다. 세상에는 마몬(財神)을 믿는
이가 많거니와 財神과 戀愛神을 믿는 사람은 無所不爲여서 도모지 신용할 수 없고 위험하기가 燥暴性精神病者나 市街에 내어놓고 猛獸毒?과 같읍니다.
그리고 아무것도 믿는 것이 없는 사더들이 모여사는 곧이 어떠케 보잘 것이 없음은 우리 자신이 가장 좋은 표본일 것입니다. 그런대 우리는
거즛과 無行의 사람들이기 때문에 설사 무엇을 밋는다는 사람들도 거즛으로 말만으로, 가장 好意로 해석하면 속만으로 믿는 이들이 많지 아니한가
합니다. 정말 무엇을 믿고 그 믿는 바를 따라서 수행하는 사람은 一言一動에도 그 믿음이 들어날 뿐더러 그 용모에도 들어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믿는 바가 없는 사람은 보기만 해도 精神ㅅ긔가 없고 言行에 常軌가 없어서 或善, 或惡, 或正, 或邪, 或是, 或彼, 도모지 종잡을 수가
없습니다. 이러한 사람은 交友의 대상이 될 수도 없고 약속의 對手, 商去來의 對手도 삼을 수가 없습니다. 이른 바 耳懸鈴鼻懸鈴이오,
不畏天不畏人이오, 개인으로는 인생의 방랑자요 단결의 一員으로는 끄님없는 謀反者일 것입니다. 한가지를 턱 믿고 그 믿는 바를 따라서 마음을
떡 정한 사람, 그래서 그의 一言一動이 다 그 자신의 第一原理에 맞는 사람이라야 비로소 인격자로서 신용의 주체가 될 수 잇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 잇어서 우리네는 朝鮮民族의 傳統的 宗敎, 哲學의 再認識, 各種 旣成宗敎의 再認識, 인생관을 포함한 各種思想의 탐구와
再認識이 다만 學的 흥미뿐으로가 아니라 우리네 生活改造上 필요한 일입니다.〈61〉
4. 女子敎育의 重要性 朝鮮民族을
개조하는데 가장 큰 所任을 가진 이는 妻와 母로서의 朝鮮女子입니다. 아동의 어른의 아버지라 하거니와 아동시대의 훈련이 잘못되고는 좋은 어른을
얻기 어려울 것입니다. 인격이란 기초되는 신앙우에 세워진 여러 가지 情意的 習慣의 總和를 의미하거니와 세 살적 버릇은 아흔살 가도 못 고친다는
格言모양으로 어려서 가정에서 일러진 情操, 禮儀, 習慣등은 일생의 인격의 기초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家庭薰陶의 任을 맡은 聖者는
여자입니다. 예전 獨逸皇帝 카이세르가 좋은 국민을 짓기 위하여서는 k字 세 개, 즉 교회과 부엌와 유치원이라 하엿거니와 부엌이란 곧 가정의
女子의 영역이란 뜻입니다. 과연 지당한 말이라 할 것입니다. 그런데 現今 朝鮮에서는 여자교육을 한 餘興으로 아는 경향이 잇고, 또
여자교육기관의 교육방침도 어떠한가입니다. 勤勞는 朝鮮農村女子의 美風이어니와 獻身奉仕도 그러합니다. 이 勤勞와 奉仕의 德은 남녀에게 다 필요할
것이지마는 특히 자녀를 양육훈련하는 母性으로서는 德性의 基調가 될 것입니다. 깨끗한 세레질, 깨끗한 빨래, 깨끗한 걸레질, 嚴正한 질서, 모든
이기적 安閑과 亨樂를 제거한 자기희생적 獻身奉仕―자녀가 그 어머니에게서 이 정신을 배와가지고 사회에 나온다 하면 그는 반드시 개인으로는 성공하는
사람이 되고 사회로는 有用한 인재가 될 것입니다. 하믈며 신앙, 도덕의 모든 귀중한 情操는 어머니에게서 받음이 가장 많음에랴. 그럼으로 어머니는
가정의 敎主요 聖者라야 할 것이니 이것이 인생에 가장 高費한 職分이라고 아니할 수 없습니다. 가정에 이러한 聖者가 없이 좋은 민족은 양성해
낼 수가 없으니 여자교육이라는 것이 어떠케 민족적 生命攸關의 重大事가 아닙니까. 그럼으로 民族改造는 반드시 여자교육에서 始할 것이오 여자교육의
기초는 母性訓練에 잇다고 할 것입니다.
5. 子女本位의 가정과 사회 자녀는 우리의 생명의 연장이어서 우리는 오직 자녀를
통하여서 우리의 육체적 생명의 永生과 아울러 정신적 문화적 생명의 永生을 얻는 것입니다. 우리네의 일생의 勞役은 자녀를 위함이라야 할 것입니다.
사람은 제 亨樂을 구할 때에 타락하는 것이어니와 사람은 자녀를 생각할 때에 자기희생의 열정이 솟고 용기가 솟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가정도
子女本位로, 직업도 子女本位로, 사회의 모든 제도도 활동도 子女本位로 할 것입니다. 더욱이 우리네 朝鮮人은 후손의 영광이라는 희망을 뗄때에 전혀
암흑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子女中心, 子女本位에 대한 인식이 부족합니다.〈62〉
6. 模範部落創立 民族改造의 실행 방법으로
가장 有效한 것은 模範部落의 창립이라는 것이 安島山의 생각인 모양입니다.
개인의 內的 改造運動의 결과는 模範部落에서 구체적 실현을 볼 것입니다. 더욱이 사람의 생활은 共同的이어서 一個人을 共同體에 따로 떼어서 완성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安島山의 意向에는 우리네 중에서 新生活을 원하는 무리가 특정한 一地點에 모혀서 朝鮮이 높은 문화의 사회가 되자면
各部落이 이만은 해야겟다하는 程度의 문화적 조직과 시설과 정신을 가진 部落을 건설하자는 것인데 島山의 이 案은 空想的인 超人間的인 理想鄕의
實現에 잇는 것이아니라, 朝鮮의 現在情勢와 將來展望에 적합할 실제적인 理想部落을 세워서 部落自體로는 新實驗의 경험을 얻고 밖에 대하야서는 넓히
實物模範을 주자는 것입니다. 이 模範部落은 職業學校를 포함하야 그 속에서 직업교육을 施하야 一人一業으로 熟鍊한 직업기술을 가진 사람을
양성하는 동시에 그들로 하여금 각각 자기가 定住한 部落改造의 使徒가 될 정신과 기술을 주자는 것입니다. 島山의 이 「模範村」案은
民族改造運動에 가장 實際的이오 有效한 방법이라고 믿습니다.
7. 科學的 신앙과 과학은 背置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미신이
과학의 적입니다. 진정한 신앙은 과학적일 것입니다. 다만 오늘날의 과학은 아직 發達途中에 잇기 때문에 과학으로 설명하지 못하는 것이 잇지마는
과학적인 정신은 인류를 不合理에서 구제하는 등불입니다. 그러면 과학의 적인 미신이란 무엇이냐 하면 그것은 원인없는 결과를 바라는 것, 즉
偶然이나 요행을 바라는 마음입니다. 이 미신은 아직도 朝鮮人의 마음을 꽉 그러쥐어서 제 개인의 장래에 대하야서냐 제 민족적 장래에 대하여서냐
(장래에 대하여서 뿐이 아니라 현재를 설명하는데도) 因果의 理를 承認하지 아니하고 運이니 八字니 大勢니 하는 관념을 믿고 잇습니다. 鄭道令의
출현을 기다리는 생각은 이 非科學性, 非因果性을 가장 잘 實證하는 것입니다. 심지어 건강과 수명에 대하여서도 非因果的으로 생각하고
잇습니다. 과학적인 第1條는 내나 우리의 今日의 처지는 내나 우리의 昨日까지의 행위의 결과요. 내나 우리의 今日까지의 행위가 내나 우리의
明日의 禍福을 결정한다는, 鐵則을 믿는 것입니다. 이 鐵則을 承認하는 데서 우리네의 생활은 再出發을 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미 가진
모든 과학의 진리(특히 자연과학의)를 이용하야 怨咎없이, 불평없이, 희망과 신념을 가지고 明日의 결과의 因을 作하기에 勤勤孜孜할
것입니다.〈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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