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명 |
삼천리 제1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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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
제1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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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년월일 |
1929-06-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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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제목 |
眞書와 原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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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
東京에서 薛義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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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형태 |
세태비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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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서 한문글자를 眞書라고 하오. 일본서 歐文冊子를 原書라고 하오. 玄海를
사이에 두고 미상불 흥미 잇는 聯句의다. 眞書라는 문구를 어느 碩儒가 창작하얏는 지는 모르거니와 적어도 이조 이래의 철저한 사대사상과 때를
갓치 하엿슬 것이오. 제 글을 『諺書 개글』이라 하고 『俗字 諺解』라 하고 『宣當懇吐之用』이며 『閭?兒女之文』이라고 한 李朝累百年間의 문화를
밧삭 줄이면 『眞書는 한문』이란 다섯 글자가 되오. 聖君賢臣이 이리하엿고 公卿大夫가 이리하엿고 有司都監이 이리하엿고 士人庶民이 이리하여 남의
발바닥만 할다가 할다가 氣盡力盡으로 넘어진 것이 조선 末路엿소. 原書라는 술어를 어느 학자가 주창하얏는 지는 모르거니와 적어도 明治이래의
열광한 歐化主義와 때를 갓치 하엿슬 것이오. 정치경제를 번역하고 부국강병을 번역하고 禮, 樂, 風, 習을 번역하고 術, 數, 技, 藝를 번역한
維新 육십년간의 문화를 한데 뭉치면 『原書는 歐文』이란 다섯 글자가 되오. 上下老少가 이리하엿고 遠近都鄙가 이리하여 서쪽만 처다보다가 보다가
『行詰』하여 허둥거리는 것이 이곳의 현상이오. 조선도 깨엿소. 그래서 한문만이 『眞書』가 아닌 것을 알앗소. 일본도 깨엿소. 그래서
歐文만이 『原書』가 아닌 것을 알게 되엿소. 그러나 眞書眞書하고 推載하여 온 固習과 原書原書하고 欽仰하여온 정력은 맛츰내 그저 『眞書眞書』라하고
『原書原書』하기에 자타가 無不識無關心이오. 독립자주와 자작 독창의 의식이 업고 각오가 업고 이상이 업고 실행이 업는 자의 말로는 대개
이러함을 史乘이 증명하오.〈4〉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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