解放前 雜誌記事 모음

韓國 監獄의 獄中記, 天主敎 神父 佛蘭西人 리델 史話

이강기 2015. 9. 15. 22:13
잡지명 삼천리 제12권 제4호
호수 제12권 제4호
발행년월일 1940-04-01
기사제목 韓國 監獄의 獄中記, 天主敎 神父 佛蘭西人 리델 史話
필자
기사형태 회고·수기

「洋夷侵犯非戰則和, 主和賣國」의 표어 아래 大院君의 天主 殺虐敎이 있었든 것은 이미 주지하는 바 이 「피의 역사」 속에 佛蘭西 신부 한사람이 옥중에 가치여 순교하는 희귀한 기록이 최근에 이르러 알려젔기 신부의 수기 그대로를 번역 기재한다. (때는 1879년 1월)

10년을 거쳐 朝鮮 교회를 再興한 것은 리델 司敎의 가강 중대한 직무였다. 다른 선교사들이 지방을 순회하는 사이에 司敎는 京城에 있어서 學修所를 設하며 인쇄소를 창설하는 등 전심으로 활동했다. 지방에 離散해 있는 신도들은 司敎의 再來로 해서 용기를 얻었다. 신도들은 밤이나 낮이나 새로운 神의 사도를 맞나 그 소리를 드르려고 했다. 하나 일반의 정세를 본 즉 10년 전과는 대단한 변화가 있었다. 天主敎에 대한 금령은 아직껏 철폐되지 않었다. 선교사들은 위험 중에 아모런 방비도 없이 언제 잡혀 갈지 모르는 상태에서 새로운 박해가 이러날 듯한 형세로 전혀 그들을 저주하는 適 中에 그들은 포위되였든 것이다.
그랬는데 1879년 1월 하순 경 滿洲에 있는 눈의 聖母村에서 使者가 京城에 도착할 예정이였다. 한데 1월 26일 아침 여섯시 쯤 리델 司敎의 留宿 주인
崔智爀 노인이 찾어 왔다. 그 낯색을 본 즉 여사가 아니였다. 司敎는 무슨 일이 생긴 것이라고 생각하고 노인에게 물었다.
「웨 무슨 불길한 소식이라도 있든가.」
한 즉, 노인은〈158〉
「滿洲 使者가 국경에서 잡혔었니다. 무서운 고문에 견디지 못해서 전부 자백한 모양입니다. 보고가 어제 도착했는데 捕手를 보내여 司敎님과 신자들을 잡도록 하라고 임금님께서 말슴하였답니다. 1866년의 배신자들은 신자를 수색하기 위해서 죄다 소집한다니까 오늘 여기 올 것입니다.」
「괜찬어 진정한 기독교도가 될 날이 왔다. 이것은 우리들의 과실이 아니다. 신의 뜻이다. 나는 깨끗이 잡히겠다. 신을 위해서 無上의 영광으로 생명을 받칠 각오다. 이 이상 천국에 갈 다른 길이 없다.」
司敎의 이러한 말에 崔노인은 대답했다.
「나두 보시는 바와 같이 늙은 몸입니다. 죽는 것은 무섭지 않습니다. 하오나 司敎님이 도착하자 얼마 안 됨으로 셰레를 안 받은 신도두 아직 많습니다. 유감된 일입니다. 이번이야말로 朝鮮 전도의 최후입니다.」
부랭크 신부의 편지를 보면 이번 불상사의 소식이 잘 알려저 있다.
「리델 司敎의 使者들은 이미 국경을 넘어 아무런 지장도 없이 京城에 도착될 듯 싶을 때 어느 적은 마을에서 도적의 혐의를 받게 되였다. 공교로운 구실 하에 그들 중 한사람이 불리웠다. 그리하여 使者들은 잡히고 荷物을 뒤지고 갖었든 歐洲 문학의 편지 등에 의해서 참담한 고문을 받어 드디어 비밀을 자백하고 말었다. 書狀에 적힌 선교사의 주소까지 발견하자 捕使들은 사교님을 체포하려고 京城을 향하여 드디 그 거처를 알게 되였다.」
리델 司敎는 체포될 운명에 이르렀으므로 그 준비로서 다른 선교사들에게 사건 경과를 통지하고 일체의 위험한 서류를 태워 버리고 전도에 필요한 자금의 잔액을 확실한 신도에게 맡기기로 했다.
1월 28일, 오후 4시경, 捕吏가 거리에서 지키고 있다는 것이 알려젔다. 인제 피할 길은 없었다. 얼마 안 되여 요란한 소리가 들리며 문이 열리면서 한 떼의 사람들이 리델 司敎의 留宿하는 집에 몰려들었다. 십자가는 잠간 사이에 뿌서지고 捕吏가 司敎를 발견하자 그 중 4, 5인은 司敎에게 달려 들어 소리를 지르며 司敎의 머리와 팔을 잡어 신발 신을 새도 없이 다음 室에다 끌어 넣었다. 거기엔 下宿主 崔노인의 가족들도 동시에 잡히여 있었다. 捕吏의 두령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다른 선교사가 네 사람이나 숨겨 있는 것도 알고 있다. 네 사람이 다 자백하기를 귀하가 편지하시요」
「당신은 신부들이 있는 것을 어떻게 아오?」
「나는 무엇이나 죄다 알고 있소. 司敎 동행을 동행합시다. 기도의 암송용으로서 가진 책은 내가 맡아 주지요. 언제든 돌려 드릴 것이니까」
「그런데 어떻게 그것까지 그렇게 잘 아오?」
「10년 전 베르누- 司敎와 다부루이 신부를 잡은 나오.〈159〉 두사람 다 다른 신부들도 알 것이오. 懷中 시계도 있을 것이오」
「세 개 가지고 있소」
「그 다음 포도주도 있지오, 아 그것 참 좋소. 우리들이 먹겠소」
司敎는 몇 개의 상자를 가르처 보였다.
「옳지 이거 내가 맡을테오.」
일즉이 1,800여년 옛날, 橄欖山에서 聖主가 잡히신 당시의 일을 司敎는 생각하며 기를 진정하려 하고 聖主의 발자최를 따르는 행복을 느끼고 主耶? 基督 때문에 잡히는 것을 만족히 역였다. 그러트래도 사랑하는 동료의 선교사와 신도들 생각을 하면 千萬 無量의 감이 가슴에 넘첬다.
지난날, 聖徒 푸랭씨스의 祝祭를 준비하기 위하야 이 위대한 성자의 자비와 忍從에 대하여 명상을 했다. 司敎는 될 수 있는대로 이 성자의 행위를 본바드려고 결심했든 것이다.
집안에서 아직 소음이 끊지 않었다. 어떤 捕吏는 두령의 충고도 듣지 않고 司敎에게 욕을 퍼붓는다. 司敎는 두 사람에게 끌리워 다수의 捕吏와 함께 집을 나섰다. 가엾은 하숙주 崔노인은 司敎와 같은 상태로 잡히든 때 우연히 집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 뒤에 끌려 갔다.
이 소동에 근처에 사람들은 司敎 일동의 통과를 보려고 문 밖에 쭉 뫃여서 있었다. 거리에 나선 즉 이미 저녁은 저물어 통행인들도 별로 없었다. 리델 司敎는 처음으로 首府의 거리를 마음 놓고 돌려 보며 흥미 있어 했다- 싸우는 상인, 노래 부르는 아이들, 청초한 옷을 입은 부녀자들도 보였다. 계속해서 귀족들의 행열이 선구자의 소리 뒤에 따르는 것도 보였다. 추위에 떨고 섯는 거지 아이들은 눈물을 흘리며 행인의 자비를 원했다. 하로가 저물녘이면 首府는 확실히 특이한 현상을 발휘한다. 그것은 여러 가지의 농후한 색채가 錯雜해서 시가에 있는 어던 종류의 이상한 광경을 나타내는 때문이다.
司敎는 포박당한 채 두사람 捕吏에게 엄중히 감시를 당하시면서도 이런 것들은 주의해서 보았다. 그리고 天主를 모르는 가련한 민중의 불운을 생각하고 슬퍼했다. 天主의 도를 전하려고 來鮮했건만 뜻을 못 이루고 잡혔다. 불행한 사람들의 구제를 위해서 사교는 聖主에게 생명을 바칠 것을 결심했다.

리델 司敎의 獄中 生活 (其一)
京城에선 審判廳은 2개의 관청에서 조직되여 하나는 왕궁의 右手에 있어서 이것을 右捕廳이라 부르고 다른 것은 左手에 있어서 이것을 左捕廳이라 불렀다. 右捕廳에선 판관이 증인의 말을 들어 소송의 사실을 심리하고 고문을 가하여 피고의 자백을 강요한다. 左捕廳에선 여기에 대하여 판결을 내리기로 한다.〈160〉
리델 司敎는 최초 右捕청에 불리웠다. 판관은 筵에 앉어 병졸들이 양측에 쭉 느려서고 囚人은 그 면전에 끌리워 갔다. 2개의 초롱불이 이 무대 우에 창백히 陰慘한 광선을 던지고 있다. 이제 곧 신문이 개시되였다. 예의라는 점에 대해선 朝鮮人은 자못 민감한 것을 리델 司敎는 알고 있었음으로 응답엔 존중한 말을 쓰려고 해서 판관에게 향하여 이렇게 말했다.
「나는 예의를 바르게 하여 대답하려고 합니다. 귀국어를 잘 모름으로 실례될지 모르오니 그 점은 용서하십시요」
臨席한 사람들은 모두 이상해서 피고를 보았다. 판관의 신문이 시작되였다.
「성은 무어냐?」
「李(司敎의 朝鮮名)라고 합니다.」
「이름은?」
「福明이올시다.」
「언제부터 朝鮮에 왔든가.」
「7월부터 왔읍니다.」
「어디서 왔는가!」
「黃海道 長淵郡 長山에서 왔읍니다.」
「入鮮의 목적은?」
「카톨릭교의 전도가 목적입니다. 사람에게 선량한 처세 방법을 가르키기 위해서입니다」
「이미 많은 사람에게 가르치지 않었는가?」
「도착해서 얼마 안 됨으로 그리 많이 가르칠 틈이 없었읍니다.」
「누가 귀하를 인도해 왔읍니까.」
이 질문은 많은 사람에게 장해가 되므로 司敎는 대답지 않을 의무가 있었다.
「귀하가 가르친 사람은 어디들 있는가?」
「저는 귀국 사정을 전혀 잘 모르므로 대면한 사람들이 어느 곳 어떤 사람들인지 모르겠읍니다. 그런 이유로 제가 관계한 사람들 이름은 제가 엿줍지 못 하겠사오니 下諒하시옵소서.」
「귀하는 신부-ㄴ가?」
「아니올시다. 司敎입니다.」
「그러면 일즉이 도망한 李신부가 틀림없겠지?」
「말슴대루올시다.」
「그러면 다 됐서. 데려가거라. 친절해줘.」하고 판관은 퇴정을 명했다. 司敎를 警衛隊에게 데려갔으나 휴식도 주지 않고 주위 사람들이 번거롭게 질문을 연발해서 司敎를 괴롭게 했다. 밤이 되매 자라고 하면서 捕吏는 목침을 두고 갔다. 司敎는 기도를 올리고 평안히 잠결에 들었다.
익일 기도를 드리려고 한즉 주위 사람들이 자꾸 질문을 함으로 기도를 바로 못 하고 말었다. 捕吏가 맡았든 기도서를 돌려주었다. 이 책을 읽는 사이에 司敎에게〈161〉 말을 하든지 무익할 것을 捕吏들도 알었다.
잡혀서 이틀 되는 날, 司敎는 義禁府獄에 옮아 갔다. 여기에 貴人 피고인과 國事犯人을 넣는 곳이였는데 여기서 司敎는 「차고」枷 쓰게 되였다. 차고(枷)라는 것은 두 개의 목판으로 된 足枷였다. 길이가 약 400米突, 폭 15? 가량 되는 것으로 아래 목판에 구녕이 뚤여서 거기에 죄수의 발을 넣고 열쇠를 딱 잠가 버리는 것이다. 이래서 囚人들은 도저히 도망할 수없었다. 司敎에게 차고를 채울 때 두 사람의 捕吏는 약간 않되였든지 자기 변명을 했다.
「처음 대하는 손님에겐 누구한테나 다 이렇게 하니까」
「차고」를 채웠으나 司敎는 반드시 누울 수도 있고 옆으로 누울 수도 있어서 새로운 이 생활을 시작해서도 넉넉히 숙면할 수 있었다.
이보다도 더한 고문을 받는 처참한 囚人을 司敎는 보았다. 襤褸를 몸에 걸고 이와 빈대의 밥이 되면서 꿀고 앉었든 두 사람의 重한 죄수를 司敎는 보았다. 불쾌하기 짝없는 이 두 사람의 풍채를 보아서 그들은 반드시 사형이리라고 생각했다. 두 사람은 밀정 손에 잡혀온 것이라는 것을 나종에 알었다.
1월 31일 낮이 된 즉 내일 사형 집행당할 죄수의 이얘기가 났다. 司敎는 철처히 순교하기로 생각했다. 조국을 멀리 떠나 천국에 가까운 牢獄에서 司敎는 그 밤을 어떤 생각으로 밝혔을 것일까. 말할 것도 없이 영원한 보상이라는 그 한가지 관념이 司敎의 결심을 강하게 한케 틀림없다고 할 것이나 그러면서도 자비한 司敎는 그 가족 그 조국 佛蘭西와 사랑하는 朝鮮을 잊지 않었으리라 믿는다.
익일 司敎는 敎曆에 이렇게 적었다.
「9시까지 미사를 드릴 일, 곧 나는 생명을 마친다. 만사를 신께 부탁한다. 耶? 萬歲! 천당에 갈 길이 오라지 않다.」
司敎는 이렇게 적은 즉, 무서운 소리가 獄과 접근한 병사들 室로부터 들여 왔다. 司敎도 이제야 죽을 때가 왔다고 각오하고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聖歌를 높이 불렀다. 하나 신앙 때문에 괴로워 하고 그 때문에 생명을 바치려고 하는 司敎의 열망을 신은 아직 이 使道에게 주지 않었든 모양이다. 閣臣들은 회의를 열 때마다 리델의 문제를 토의했다. 어떤 자는 支那에 송환하라고 하고 또 다른 자들은 사형하라고 주장했다. 선교사 처분에 대하여 피흘리는 것은 주저하긴 이번이 처음이였다.
3월 초순, 한 사람의 警衛隊가 와서 리델에게 고했다.
「네 문제 때문에 天子와 교섭하려고 支那에 使者를 보냈다. 어쨋든 천자의 명령하는 대로 할 것이다.」
말을 듣고 본 즉 사실인 듯하다. 이 말은 司敎에게 한오리의 희망을 주는 동시에 오-랜 고뇌의 형벌을 주었다.
기독교 문명이 浸*해있는 歐洲 제국에선 일체의 자유를〈162〉 빼앗는 옥중 생활은 모든 고뇌의 한 개의 징벌이긴 하나, 모든 우상 예배국과 동일하게 朝鮮에 있는 감옥은 온갖 고뇌의 聚合所였다. 법률상으로 허용된 고문은 대박해를 체험해 온 기도교도에겐 그렇게 무섭지 않은데 가강 무서운 것은 감옥의 淹留다.
독자는 이제 상상해 봄이 좋으리라. 높은 벽으로 둘리운 일곽으로 中庭을 향하여 적은 茅屋이 서 있다. 창도 없고 좁고 좁은 출입구가 있어서 거기로서 겨우 실오리 만한 광선이 흘러 들어온다. 주림과 목마름은 언제나의 고통이다. 때로는 囚人들이 베고자는 썩은 벼집을 먹는 일도 있다 한다.
京城의 감옥은 상술한 바와 같이 귀족 계급을 수용하는 義禁府와 천민 계급의 囚人을 한테 수용하는 拘留間과의 2개소에 나니워 있는데 두 곳에다 50인 씩 捕吏가 있고 여기에 또 警衛隊의 병사, 괴물같이 생긴 사형 집행인과 옥졸이 있다. 捕吏들의 복장은 제각기다. 그것은 범인을 잡을 때 편리하기 위해서다. 다시 말하면 눈을 속히기 위해서다. 捕吏에겐 두목이 있고 그 계급은 軍曹라든지 중위가 있다. 전자는 硬玉의 環을 부친 모자를 쓰고 후자는 金環이 붙은 모자를 썼다. 어느 것이나 警務長에게 직속해 있음으로 평상은 절대의 권력을 가지고 있다. 상호 구별하기 위해서 捕吏들은 깃고 대쪽에 鹿革의 끈으로 목판을 달아 매고 거기에 문자와 印形을 찍었다. 捕吏의 권력은 참으로 크다. 귀족들이 행용 그들을 욕하든지 하는 외엔 누가 한사람 저항할 자가 없었다. 그들 掌中에 들어간 하층 인민은 참으로 가련하다. 그들의 하는 복수 수단은 너무 잔인하다. 개인적 모욕을 받는 경우, 혹은 부자의 재산을 탐내는 때 같은 경우엔 더욱 심했다. 條理라든지 이런 것은 전연 안중에 안 두고 유일의 방법으로서 함부로 고문은 남용했다.
가강 일반적 고문 방법은 팔과 다리를 비트는 것이다. 때때로 불행한 囚人들은 가죽 뿐의 산송장이 된다. 샛발갛게 벳겨서 뼈를 분질르고 데우고 눈섭, 수염 머리는 태워버리니까.
기독교도들이 이들 야만인 손에 들어가서 背敎와 자백을 강요하기 위해서 얼마나 잔혹한 짓을 하는가를 상상할 수 있다. 리델 司敎는 聖主 때문에 괴로워하는 가련한 피고문자의 苦憫 소리를 몇번이나 몇번이나 안타갑게 들었다. 하나 司敎에게 가장 분통이 터질 일은 그들 捕吏와 刑手의 冷嘲와 爆笑였다. 그들한테는 털끝만한 연민의 정이 있을 수 없었다.

리델 司敎의 獄中 生活 (其二)
하나 덕의 힘처럼 위대한 것은 없다. 용감한 신앙의 고백자는 獄吏도 畏敬함에 이르렀다.
「그에게 차고를 어떻게 채울 수 있을가. 그는 朝鮮서〈163〉 볼 수 없는 정당한 사람이다. 그야말로 지상에 내린 王者다.」
옥리들은 司敎와의 담화를 즐겨함에 이르렀다. 歐羅巴 특히 佛蘭西에 관한 질문을 연발하며 四季, 日蝕, 증기선, 기차 등에 대해서 설명을 청한 일이 수 없이 많다. 司敎는 이 기회를 이용해서 카톨닉교, 신의 창조, 天主의 십계 등을 그들에게 설명해 줬다. 司敎는 옥리들과 항상 함께 있었다. 8, 9인, 때로는 20인씩 한테 실내에 들어와서 거진 틈이 없을 만큼 하였다. 그래서 밤이 아니고는 명상할 시간도 없었다. 기도서를 암송하는데도 꽤 힘이 들었다.
司敎의 집에서 압수해 온 각종의 상자는 捕吏들 실에 옮기여 젔다. 쓸데 있을 듯한 것들은 捕吏들이 맘대로 끄집어 내여 그 사용법을 司敎에게 물었다. 어떤 날 한 捕吏가 적은 십자가를 끄집어 내여 이것은 황금제냐고 물었다. 그것은 聖骨을 納入한 성직용의 십자가인 것을 司敎는 곧 알었다. 捕吏가 그것을 打壞해서 태워 버린 것에 틀릴없다. 그 후로는 한 번도 이 십자가를 본 일이 없었다. 또 어떤 날 비누가 부서진 것을 가지고 와서 그것이 무어냐고 물었다. 司敎의 그들은 즐겁게 하려든 게획이 마저 떠러젔다. 비누를 거품을 내여 보였든 것이다. 그런 즉 捕吏들은 제각기 몰려 들고 장관까지 몰려 와서 정신을 잃고 비누 방을 날리고 있었다, 그들은 이 신통한 현상을 알리고저 옥 외의 우인들까지 불너 왔다. 그래서 각기 비누 부스레기를 달라고 했으나 마츰 한 쪽도 없음으로 그들의 소청대로 못 했다.
「비누는 맛이 답니까.」
하고 어느 날 한 捕吏가 물었다.
「아니요 그걸 먹으면 안 돼요. 먹으면 병 나요.」
「한데 올에 열살난 아이에게 비누 부스레기를 조곰 줬으니 과자인 줄 알고 먹어서 지금 병이 대단해요.」
司敎는 이 기회를 이용해서 다른 상자 속에 들어 있는 포도주를 그들이 먹지 못 하게 하려고 설명했다. 그 °ⓒ법을 알고 쓰면 좋으나 모르고 쓰면 크게 위험하다고-.
「아 그래요. 포도주라는 게 달긴 한데 참 몹시 취해요. 그걸 언젠가 몇 병 먹었드니 이튿날까지 그냥 잣버렀어요.」
하고 옆의 한 사람이 대답했다.
그들은 교회에서 쓸 彌撤 聖祭用의 포도주를 수시간 뒤에 먹어 없새였다. 어떤 날 司敎에게 와서 이런 말하는 자가 있었다.
判官長은 귀하가 그림을 그릴 줄 안다고 朝鮮人과 支那人과 그리고 歐洲人의 초상을 그려 달라고 합니다.
司敎는 별로 잘 그린 것도 못 되고 또 거기엔 어떤 계책이 들어 있는 듯해서 처음 주저하다가 너무 간청함으로 마츰내 허락하고 말었다. 朝鮮人이나 支那人을 쉽게〈164〉 그리고 歐洲人은 아모렇게나 마음대로 그려서 判官長에게 보냈는데 참 잘 되였다 하면서 칭찬했다. 그런 즉 다른 자들도 나두 나두하고 소망했으나 최초의 호평을 유지하기 위해서 단연 거절했다.
2월 중순경 1개월 가량이나 계속된다는 支那 정월 遊戱를 사람들이 이얘기하는 것을 司敎는 들었다. 그것은 야만한 오락에 지나지 못 하는 것이였으나 捕吏들은 그 이얘기의 정신을 홀딱 잃었다. 이 遊戱는 진실한 투쟁이였다. 길이 2척 가량의 큰 곤봉을 가진 2, 300인 정도의 사람들이 2군으로 나누여 서게 된다. 지시가 있으면 전사들은 맹열하게 적에게로 돌진하며 전후 좌우로 곤봉 싸움이 이러나게 된다. 드듸여 한 隊가 퇴각한다. 그 결과 억개를 상하는 자. 머리, 목, 다리, 손, 팔, 때로는 죽는 자까지 있게 된다. 京城 시민들은 여기에 無上한 흥미를 느끼는 양으로 전혀 夢中에 빠진다. 이 遊戱의 위험과 부도덕한 것을 司敎가 말한 즉 그들은 이렇게 말했다.
「그런 용기를 가지고 생명두 앗갑지 않게 생각하는 것은 朝鮮 사람밖엔 없을게요. 歐洲 사람이 이런 遊戱에 한번 참가해 봤으면 그 숭고한 관념을 朝鮮 사람한테서 배울 것이겠지요. 朝鮮 사람 같은 것은 없어...」
司敎는 또 몇번이나 병사들을 징벌하는 기회를 보았다. 먼저 죄인에게 足枷를 채우고 세 번 네 번 혹은 열 번까지 매를 때린다. 司敎는 몇 번간 이 집행을 구경하자는 권을 받었으나 捕吏들이 嘲笑하는 통에 그럴 때마다 거절했다. 司敎는 직접 그 징벌받는 것을 목격하진 않었으나 그 비명은 들었다. 죄인을 멍석에 눞어 놓고 主長이 훈계를 한다. 열엔 刑手가 大凡 8척 가량의 봉을 들고 서 있다. 주장의 명령 여하로 刑手의 봉은 휘둘리운다. 마즐 때마다 죄인은 비명을 지른다. 그런 즉 이 비명을 싸버리기 위해서 다른 두 병사는 이상한 소리로 쮸, 오-이 하며 높이 소리를 친다. 타격이 急調로 집행된다. 이 태형은 전혀 희극에 끌이운다. 이 몽치로 열번만 마즈면 대개 죄인은 의식을 잃게 되고 그 全快까진 1개월 가량 걸리게 된다.
이들 귀족이나 관리들은 어느 것이나 孔子의 숭배자로서 이것으로 희생의 제물을 삼는다. 정면으로 그 철학을 논쟁하는 일은 전혀 이익이 없는 일이고 그들에게 부화를 돋궤 주는 밖엔 않되였다. 孔子의 敎가 결코 완전하지 않은 것을 司敎는 몇번 설명했으나 늘 허사였다. 그들에게 개종을 시키려면 기독교의 교리를 설명하고 그 美를 발휘시키고 그 증거를 보이지 않어서는 않되였다. 정면으로 그들의 주의를 공격하는 것은 그들을 개종한다기 보다 오히려 모욕하는 일이였다.
捕吏와 병사 아래엔 사형 집행인과 옥졸이 있었다. 옥졸은 위선과 교활과 短氣한 성격자였다. 혹 연민의 정을 베프는 때가 있다면 그것은 반드시 私利를 위해서 하는 즛이였다.〈165〉 그들은 때때로 사형 집행인의 직무를 마터 보는 일도 있었다. 사람의 목을 짤르는 일은 그들에게 있어서 한 개의 오락이였다. 그들은 다른 사람에게 않 들리기 위해서 곤봉 끝에 바늘과 같은 쇠갈쿠리를 박어 가지고 죄인들을 괴롭혔다.
어?? 날 몹시 열이 심한 기독신자가 목을 축이고서 그들에게 물을 청했을 때
「耶?敎의 개야! 물을 줄테니 받어라」
하면서 그 쇠갈쿠리를 박은 곤봉으로 때려서 囚人은 세시간 뒤에 생명을 끊기웠다. 병으로 죽었다고 하면서 사체는 거리 성벽 밖에 내다 버렸다. 朝鮮 감옥에선 단 한사람의 사망자를 조사한 일이 없었다. 따라 옥졸이 형벌을 받는 일도 없었다.
옥졸 이상으로 교활하고 간악한 자는 사형 집행인이다. 똑 무슨 괴물과 같은 얼굴을 가젔다. 囚人들의 괴로워 하는 꼴을 볼려는 심사에서 수족 두드러 분질르고 가죽을 발르고 五體를 너덜 너덜 뜨더버린다. 전혀 피 냄새를 맡게 되는 셈이다. 감옥 내에 그들이 들어가게 된다는 것은 고문이나 사형 집행을 하기 위해서다. 그러므로 囚人들은 떨게 된다. 같은 사람으로 어떻게 그렇게 타락했으며 잔인 극치할까.
囚徒는 이것을 大別해서 3종으로 분류했다. 도적과 借金 때문의 囚人 及 基督徒다. 그 종류에 따라 수용하는 장소도 다르다. 그 중 도적이 가장 비참하다. 밤낮으로 足枷를 채우고 있어서 어느 것이나 病體다. 상처는 썩어 내려 안고 기아에 견딀 수 없어 하는 양은 참아 눈으로 볼 수 없다. 어떤 자는 가죽과 껍질만 남는다. 한낮에도 보행을 할 수 없어 한다. 어쨋든 이얘기로 더할 수 없다. 한 번 목격하지 않고는 모를 것이다.
잠자는 짓 조차 금한다. 잠만 자면 간수에게 매를 맞는다. 司敎는 이 무지한 간수들한테 밤 중에 몹슬 매를 맞는 囚人의 비명을 몇 번이고 들었다.
도적을 수용하는 獄은 정말 지옥같다. 여기 수용되는 囚人은 대개 나체로 여름이나 겨울이나 손 씻을 물 한방울 주지 않는다. 그들은 어쩌다가 여름 날 어떤 때 마당에 나와서 썩은 웅뎅이 물에 손을 담거 보는 일이 있다. 그것만으로도 그들은 응당 가슴까지 시원해질 지경이리리라.
食物은 아침 저녁으로 2회로 한 공기씩의 쌀밥이다. 영양은 물론 불충분하다. 아모리 頑健하든 囚人도 스므날만 지나면 뼈뿐이다.
도적 이외의 사람 借金 때문에 잡힌 자는 대우가 좀 났다. 이 부류들은 부모나 친우들과 편지 왕래도 되고 외부에서 食物도 差入할 수 있다. 그들은 배골는 도적들 눈 앞에서 즐거운 생활을 하고 있다.
기독교도는 도적 同樣으로 취급되여 외부와 전연 文通을 허락치 않는다. 敎徒에게 대 경멸 심각한 것은 없을 것이다.〈166〉 옥졸이 그 고뇌를 경감해준다. 유일의 慰籍라고 하는 것이 혹시 足枷를 벳겨 주는 것이다. 감방도 도적과 마찬가지였다.
밤에만 닫는 문이 한 개 있다. 天窓인데 유리를 통해서 겨우 광선과 공기가 들어 온다. 벽은 아주 형편없는 판벽으로 지붕도 불완전한 것이였다. 눈비나 겨우 막을 수 있었다.
우리의 경애하는 司敎와 도적보담 더 虛待받는 耶? 敎徒들은 이런 감옥에서 기-ㄴ날을 보내게 되였다. 교도들은 이 불행한 가운데서 냉정과 단념으로 한마디의 불평도 없이 고민과 嘲笑를 참어 갔다. 누가 한 번 찾는 사람이 있을 수 없다. 그들은 인간이라 인정되지 않었다. 동물보다 열등한 취급을 받었다 하나 그들은 天主가 게시여서 자기들을 위로해 준다고 생각하고 아츰 일즉부터 기도를 드리기 시작해서 밤까지에 이르렀다. 司敎는 규칙적 일과를 지여 마음 속으로 미사를 드렸다.

리델 司敎의 獄中 生活 (其三)
3월 16일 司敎가 수용된 감방 앞에 한 채의 駕籠이 준비 되였는데 그것은 사체 운반용이였다.
「司敎 여기 타.」 捕吏의 두목이 명령했다.
「어디 감니까?」
「곧 알테니 어서 타.」
審判廳에 운반되였다. 큰 건물로 그 뒤가 판관의 거실이 되여 있다. 판관은 꽃문채가 색여진 돗자리 우 비단 자리에 기대여 있었다. 위엄을 표상하는 훈장을 부치고 머리엔 羽毛를 양측에 매다른 테 없는 毛帽子, 널직한 絹服, 鼈甲과 보석을 장식한 띠를 매였더라. 도착하자 刑手가 붉은 끈으로 司敎를 묵거 판관 앞에 세웠다. 이 붉은 끈은 重大犯에게 사용하는 것이였다.
「꿀앉어.」
捕吏가 말한 즉 남어지 捕吏들도 다 일제히 「꿀앉어.」 하고 웨첬다.
「귀하가 좋도록 앉으시오.」
司敎는 朝鮮 풍습대로 앉었다. 신문이 시작되였다. 성명, 연령, 京城 주소를 물은 후 판관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귀하의 출생국은 어딥니까.」
「佛蘭西입니다.」
「그걸 쓰오.」
붓과 종이가 왔다. 司敎는 朝鮮말로 썼다. 판관은 이것을 보고
「귀하의 나라말로 쓰오.」
司敎는 썼다.
「귀하가 나라에선 무슨 官位를 가졌오?」
「官位는 없읍니다. 아모 것도 하지 않었읍니다.」
「귀하가 귀국하는 때면 중대한 관직이나 명예를 정부에서〈167〉 줄 것이겠지요.」
「제가 貴國에 온 것은 貴國에서 살고 貴國에서 죽을려고 했읍니다. 그러므로 조국에 도라가드래도 거기선 직무를 않줄 것입니다.」
「귀하의 여행 免狀을 봤는데 그건 어디서 얻은 것이오?」
「支那 조정에서 下附한 것입니다. 선교사에겐 누구에게나 이 免狀을 줍니다. 잡히지 않고 마음대로 여행할 수 있게요.」
「그 우에 찍은 도장은 뭔가?」
「그건 支那 정부의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걸 귀하가 요구했는가?」
「이걸 요구하긴 北京 주재의 佛蘭西 관리입니다.」
「그 관리의 성명은?」
「루이, 드, 죠푸로아라합니다.」
「뭐?」
「루이, 드, 죠푸로아.」
그 때 귀를 기우리고 있든 臨席者들은 그 말을 바더 외울려고 애를 썼다. 마는 그들의 혀는 잘 도라가지 않었다.
「웨 한번 도망했다가 또 다시 왔어?」
「풍랑을 만난 배가 피난했다가 다시 목적지에 향해 가는 거나 마찬가지로 저도 그와 같이 다시 온 것입니다.」
판관은 입 속으로 무었을 중얼거리면서 웃었다.
「그것과는 달러. 무었 때문에 왔어?」
「說敎하기 위해서입니다.」
「어떤 主義를?」
「天主인 신을 찬양하는 일을 主義로 하는 카톨릭 종교입니다.」
「신이란 게 뭔가?」
「천지의 창조주로서 태초에 인간을 지은 것도 즉 신입니다. 우리들은 그 최초의 인간을 시조로 합니다. 인간은 누구나 양친을 존경하는 것인데 전 인류의 아버지를 어떻게 존경하지 않겠읍니까.」
「신을 정말 본 사람이 있는가?」
「신은 사람에게 소리를 치십니다. 인간이 지킬 십계를 준 이가 신입니다. 그 밖에도 신의 존재를 증거할려면 얼마든지 있읍니다. 판관께서 보신 서적은 그걸 가르처 주었읍니다.」
「그 主義는 무슨 소용 있는건가?」
「그건 신을 사랑할 일, 다음엔 자기와 똑가치 隣人을 사랑할 일, 그러면 인생의 행복을 얻고 불행을 피하고 모든 풍속을 개선하고 이 세상 苦에 견디고 死後에 명복을 줍니다.」
「귀하는 죽어서 어딀 갈 힘인가?」
「인간은 누구나 죽은 후 신 앞에서 선악의 재판을 받은 다음 선행의 人은 천국, 악행의 者는 지옥에 갑니다.」
「그러면 귀하는 어딀 가나?」〈168〉
「자신에 관해선 답변치 않겠읍니다.」
「그렇드래도 어듸 가요 싶다는 마음은 있을 것 아니냐.」
「신의 자비로 천당에 가고 싶습니다.」
「귀하는 死를 무서워 하지 않는가?」
「물론 죽엄은 누구나 무서워 하지요.」
「귀하를 死罪로 하면 어떻겠는가?」
「단 한가지를 무서워 합니다. 그것은 죄입니다. 신을 위해서 死罪에 처하는 건 무섭잖습니다.」
「그 때 귀하는 어듸 가려나?」
「천당에요.」
「얼마쯤?」
「永遠無窮이.」
「그 때도 육체는 지상에 남겠지요.」
「육체는 지상에서 썩습니다. 그렇지만 영혼은 불후입니다. 그 우에 또 육체도 부활해서 영혼과 영원히 결합합니다.」
「저리 데려가.」
刑手는 곧 囚人의 끈을 풀어 捕吏들 숙직실로 데려 갔다. 두 판관은 그 밤이 새도록 심의했다. 司敎는 그대로 맨 땅바닥에 누어서 깊이 잠들었다.
3일 후, 3월 19일 捕吏 한 사람이 아주 당황히 司敎에게로 와서 말했다.
「너를 아주 조용한 감방에 옮기라고 명령했다.」
그 방은 평소 도적용에 쓰라든 좁은 감방이였다. 거기 들어간 즉 먼저 눈에 띠운 것은 마저 죽어가는 崔노인요 하네였다. 널판 우에 짚을 대강 깔고 있는데 오랫동안 갈지 않어서 냄새가 푹 끼첬다.
이 방에 들어와서 곧 그 규칙을 물었다. 이것은 獄則을 어기는 일인 줄 알면서도.
「규칙이요. 이렇게 짚 우에 가만 앉어 있는 게지요.」
하고 간단히 설명해 줬다. 司敎는 所定한 자리에 앉어 기도를 드리고 잠이 들었다. 이튿날 아침 눈을 떠본 즉 崔노인은 어둠을 이용해서 명상하고 있었다.
司敎와 거진 같은 때에 잡힌 首府 三敎徒들도 이 옥에 와 있는데 司敎가 여기 왔을 무렵엔 그 중 한 부인이 열병에 걸리워 있다. 26세의 젊은 부인으로 두 애기의 어머니였다. 둘째 아이는 아들로 생후 6개월의 어린애다. 박해 때에 이교도와 결혼하여 세례를 꺼려하는 남편을 권해서 세례를 받게 하고 그리고 시어머니 시아버지까지 개종케 했다. 불행하게도 그는 背敎의 죄를 범한 것이다. 다른 사람 눈에 안 띠게 가만히 司敎를 보면서 몇 번이나 십자를 그었다. 司敎도 그 여자를 불상히 여겼다. 어떤 밤 자기를 간호하는 女囚를 향하여 「내가 이렇게 앓는 것도 전혀 背敎한 죄입니다. 얼마나 죄 많은 여자일까요」하며 눈물을 흘렸다. 감방 내에서 참회를 시키는 것은 도저히 않됨으로 司敎는 그 여자에게 赦免해 주고 싶다는 것을 알였다.〈169〉 아침 시간에 그 여자가 다 준비되였음으로 司敎는 典文을 읽어 줬다. 그 여자는 그 뒤로 병도 덜니여 靜養할 수 있었다. 담화도 할 수 없었으나 그의 신앙도 전혀 부활되고 말었다. 이교도인 그 남편과의 면회는 않되었으나 不淨口로 이얘긴 할 수 있었다. 그래서 외부의 정보를 대강은 들을 수 있었다. 다른 두 여자는 나이가 많었다. 刑手들의 상소리와 난폭한 행동으로 그들의 苦病은 더 했다.
리델 司敎가 이 獄에 옮아 온 이틀 뒤에 한 여자가 죽었다. 그 사체는 5일 뒤에 수용되였다. 쥐와 쪽접이한테 멕키워서 뼈만 남었다. 1주일 동안이나 신자들은 이 무서운 광경을 보고 있었다. 이러한 분위기 사이에서도 신자들은 영혼을 하느님께 받친다고 기도했다.
부활제날 京城 獄에서 감개 무량한 식이 거행되였다. 司敎는 그날 朝鮮 전민족을 위해서 기도하라고 신도들에게 말했다. 그들은 司敎의 말슴대로 이교도의 영혼을 天主에 인도하고저 했다.〈170〉
〈158-1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