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이야기 | ||
조사연님이 합천 이야기를 꺼내니 갑자기 고향생각이 간절해진다. 내 고향이 바로 그 아래 에 있는 의령이기 때문이다. 고향을 떠난 지 벌써 반세기가 가 까워 오고 고향에서 생활한 기간이 겨우 10년 남짓한 어린 시절에 불과하건만, 요즘도 꿈만 꾸면 거의 90% 이상이 고향을 배경으로 한다. 물렛골, 가락등, 불당곡, 서당골, 도덕골... 어느 골, 어느 산등성이 하나 눈에 선하지 않은 곳이 없다. 서울 생활이 40년이 훨씬 넘었는데도 항상 낯설기만 한 것과 비교 하면 참으로 신기하다. 수구초심이란 옛말이 빈말이 아니었구나 싶어 숙연한 마음까지 든다. 을 이루고 있는 지역이 의령이다. 척박하기 그지없는 곳이다. 누가 지방으로 이사가는 사람이 있으면 "두 강이 합쳐지는 역삼각형 땅은 반드시 피하라"고 내 꼭 당부하고 싶다. 양쪽으로 강이 흘러 한 지점에서 합쳐지게 되면 유속역 학상(이런 말이 있는지 모르겠다) 강물이 안쪽으로 휘어져 흘러가기 때문에 강 사이에 있는 지역의 흙을 모두 건너편으로 옮겨버린다. 실제로 고향에 가서 낙 동강과 남강 쪽 양안을 다녀 보면 의령 쪽은 바위 절벽만 연속일 뿐 어느 한 곳 평야가 제대로 발달된 곳이 없다. 반대로 남강 건너편인 함안 쪽과 낙동강 건너 편인 창녕 쪽은 광활한 평야가 펼쳐져
있다. 팔라 그 흔한 과수나무 하나 제대로 꽂을 곳이 별로 없고 들이란 들은 그 사이로 흐르는 개천 빼고 나면 별로 남을 곳이 없는 형편이다. 그렇다고 산이라도 높았 으면 물이라도 흔하고 경치라도 좋으련만, 자굴산 하나 빼고는 모두 어중간한 높 이어서 잡목이나 자라게 그냥 내버려 둘 뿐 별로 쓸모가 없다. 앞산과 뒷산의 거 리가 하도 가까워 우스개 소리로 "앞 뒷산에 간떼이(긴 대나무 막대기) 걸쳐 빨 래 널어도 되겠다"는 곳이 많다. 6.25 때 미군기들이 연락부지로 날아와 폭격을 해대는 바람에 성한 마을이 거의 없었는데, 의령에는 폭격한번 받아 보지 않은 마을이 꽤 많이 있었다. 날아오는 비행기들이 주로 무스탕이나 그라망 급강하 폭격기들이었는데, 도무지 산 능선들이 가로막아 내려꽂을 엄두가 나지 않는지 공중에서 빙글빙글 돌다가 그냥 돌아가곤 했다.
갈 때까지 쌀 두 되박 먹기가 힘들다는 마을들도 숱하게 많았다. 몽리면적이 좁 아 경제성이 없어서인지 그 흔한 저수지도 별로 없고 주로 천수답이었는데, 옛날 에 흉년이 들면 영락없이 기근이 들고도 남을 자연환경이다. 웅덩이 물을 퍼 올 려야 할텐데 냇물을 못 건너 건너편에 있는 논을 말린다는 우스개 소리도 있었 다. 했다. 6.25 때는 말할 것도 없고 삼국시대에도 신라와 백제간의 전쟁터가 곧장 되곤 했던 것 같고, 임란 때도 왜군들이 부산에서 전략물자를 싣고 낙동강 남강 을 거처 진주 쪽으로 가기 위해 올라오다가 바로 의령의 기강과 정암에서 곽재우 의 의병군에게 크게 혼이 나곤 했던 모양이다. 고향 마을에서 산 하나 넘으면 곽재우가 북을 쳐 의병군을 소집했다는 세간마을과 북을 매단 나무가 있다. 초등 학교 땐 기강 쪽에 있는 곽재우 사당에 군수와 교육장이 제사 모시려 온다 하여 전교생이 가서 들러리를 서기도 했다.
자연환경이 척박하여 살기가 어렵다 보니 일찌감치 객지로 나간 사람들이 많아 서 그렇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그럴싸했다. 바로 뒷산 너머 이웃 동네인 두곡 에선 이극로가 났고, 북쪽 산너머 세간에서 조금 떨어진 설뫼라는 곳에서는 안 호상과 안희재가 났다. 그리고 앞산 너머 정곡(중교)이라는 곳에서는 이병철이 났다. 옛날 의령 읍에 이XX라는 만석꾼이 있었고, 그 분이 주동이 돼 의령에서 제일 머리 좋은 사람 둘을 뽑아 외국유학을 보냈는데 그 분들이 바로 이극로와 안호상이라고 했다. 특히 이극로는 같은 집안이기도 하여 어른들이 꽤 큰 소리 로 자랑께나 했겠는데, 불행히도 그분이 6.25 이전에 이북으로 넘어가는 바람에 어른들이
쉬쉬하면서 아이들에게 소곤소곤 들려주곤 했다. 6.25때 내려온 인민군 하던 어른들 얼굴이 지금도 선하다. 나무하러 가서 지게를 때려 부셔버리고는 마산으로 도망 가 어떤 초등학교 소사로 있으면서 창 너머로 공부를 했다는 일 화도 듣곤 했다. 공부 열심히 하라는 말끝에 <이극로 할아버지는.....> 하며 후 (2004.9.1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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