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鄕

전시수업 - 50년대 초 농촌 풍경(2)

이강기 2015. 9. 16. 09:19

전시수업 - 50년대 초 농촌 풍경(2)

 

6.25 전시 중이나 그 후 몇 년간의 학교생활은 도시도 어련했을까마는 특히 농촌에서는 요즘 TV를 통해 간혹 볼 수 있는 아프카니스탄이나 이라크의 초등학교 학생들이 겪는 사정이나 거의 다를 바 없었다. 불타버린 본관 아래쪽 공터에 얼기설기 엮어 논 초가지붕 가교사에서 내내 나머지 초등학교 시절을 보냈는데, 책이래야 탱크, 비행기, 군함 등의 그림으로 채워진 전시교재에 용감한 우리 국군이 어쩌고저쩌고 북괴군과 중공오랑캐가 어쩌고저쩌고하는 것들이 대부분이었고, 그마저 채 몇 쪽도 배우지 못하고 한 학기가 훌쩍 지나가 버리곤 했다. 걸핏하면 자습을 시키거나 이리 저리 끌고 다니며 사역을 시키는 데에 시간을 다 보냈기 때문이다. 여름이면 운동장이나 학교 구석구석에 난 잡초를 뽑거나 불탄 본관 터에 심어 논 토마토 등 채소를 가꾸거나 그것들을 위한 퇴비용 풀을 베러 가거나 하고 겨울이면 교실 난로용 및 선생님들 사택용 땔감을 구하기 위해 산에 가서 솔방울과 삭정이를 주어 오기도 했다. 한번은 전교생이 죄다 책보 보자기를 들고 2km 남짓 떨어져 있는 "백두산"(머리에 하얀 흙을 이고 있다 하여 백두산이라 불렀다)에 가서 백토(白土)를 퍼 나르기도 했다. 그 백토를 가교사 벽에 바르면 석회 바른 것처럼 하얗게 멋이 날 줄 안 교장선생님의 "기발한 아이디어"로 하루 수업을 공쳐가며 한 사역이었는데 나중에 보니 벽이 왼 통 얼룩덜룩 해져 오히려 안 함만 못하게 돼 버렸다.

교실에 앉아 있는 시간도 태반은 자습이었다. 자습시간은 떠들고 까불고 장난하고 싸움하는 시간이었다. 얼마나 법석을 떨곤 했는지 간혹 다른 반 선생님들이 불시에 나타나 야단을 치고 몇몇 녀석들을 잡아내 벌주곤 했다. 자습시간이 많아진 것은 해방 된지가 일천해서 그런지 근본적으로 선생님들 수가 부족했던 데다가, 있는 선생님들마저 갑자기 군에 징집돼 가는 바람에 후임자가 얼른 보충이 되지 않거나, 근무기강이 해이해 져 자주 결근을 하거나 하는 선생님들이 많았기 때문이었는데, 특히 우리 담임이셨던 김XX 선생님은 거의 한 달에 한 번씩 가족이 있는 부산에 "출장"을 가버리는 바람에 때로는 1주일씩 자습시간이 계속 되곤 했다. 그 기간에 간혹 다른 반 선생님들이 와서 한 시간씩 보충해 줄 때도 있었으나 산만한 수업분위기에 거의가 혀를 내둘렀다. 한번은 성격이 괄괄하고 급하기로 소문난 박XX 선생님이 들어 오셨는데 처음에는 야단을 쳐가며 수업을 하려고 애를 쓰시다가 도무지 안되겠는지 "아이구, 내 너희들 데리고 수업 못하겠다."하시며 휑하니 나가버렸다. 우리 반 아이들이 특히 별났던 것은 자주 수업을 거르는 담임 선생님 탓도 있었던 것 같다.  

엉성하게 지은 가교사는 전혀 공부하는 장소와는 거리가 멀었다. 수수깡을 엮어서 진흙을 바른 홑벽에, 천장은 앙상한 서까래와 지붕을 이은 짚이 그냥 드러나 있었고, 바닥은 천연 흙바닥, 창문이랍시고 불타다 남은 옛 본관 창틀을 주어 몇 개 만들어 창호지를 발라 놓았지만 아이들 등쌀에 온존할 리가 없었다. 창문이 얼마나 허술했으면, 한번은 안XX이라는 아이가 콧구멍을 창문 바깥으로 겨냥하여 전통 방식으로 코를 홱 풀었는데 물총에서 뿜겨져 나가는 물보다 더 빠른 속도로 날아간 시퍼런 콧물이 하필이면 그때 막 그 앞을 지나가던 담임선생님 옷자락에 정통으로 달라붙어 버렸다. 손이며 얼굴에도 콧물이 튀었음은 물론이다. 그 후에 벌어진 험악한 사태는 굳이 이야기 할 필요도 없겠다. 

여름은 그런 대로 견딜 만 했으나 겨울은 오돌오돌 떠느라 공부고 나발이고 머리에 들어 올 리가 없었다. 뜯겨지고 부서진 창문으로는 황소바람이 그냥 들어왔고 난로란 게 있긴 했으나 꺼져 있기가 태반이고 켜 있다 해도 용량이 작아 운 좋게 그 주위에 앉은 아이들에게만 겨우 온기를 주고 있었다. 한 겨울에는 수업이 끝나기만 하면 우르르 양지쪽으로 몰려가 해바라기를 하는 것이 일이었다. 옷이며 신발이 부실해서 그랬는지, 아니면 진짜 기온이 지금보다 낮아서 그랬는지는 모르겠으나 그 시절의 추위를 생각하면 지금도 몸과 마음이 오싹해지는 것 같다.(이 글은 2004년 초 모교인 지정초등학교 홈페이지에 올렸던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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