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년시절, 옆집 자야 누나도 뒷집 숙이 누나도 고무줄놀이를 하며 곧잘 <그리운 강남> 이란 노래를 불렀다. 노래에 딱 맞게 다리를 폴짝 폴짝 치켜들어 고무줄을 감았다 풀었다 하는 동작이 재미있어 넋을 잃고 구경하곤 했다. 그 때 어깨너머로 배운 것 이
정 이월 다 가고 삼월이라네
였다. 누나들도 여기까지만 불렀던 것 같다. 어린 마음에도 노래가 참 좋다 싶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민요조의 곡에 노랫말도 쉽고 우리 정서에 딱 들어맞아 그런 생각 이 들었던 게 아닌가 싶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이 노래를 부르는 아이들을 구경할 수 없게 되었다. 이 노래와 함께 또 하나 사라진 노래가 있다.
따뜻한 봄날에 동무들과
하는 노래였다. 이 역시 약간 애조를 띄어서 그랬는지 참 듣기가 좋은 노래였다. 우리 또래가 초등학교를 들어간 이후에도 물론 이런 노래들은 배우지 못했다. 왜 이런 노래들이 사라져버렸는지 그 이유는 지금도 모른다. 얼핏 옛날에 들었던 얘기 는 이 노래들의 작곡간지 작사잔지 하는 사람이 월북을 했기 때문이라고 했는데, 흘 러 다니는 소리를 들은 것이어서 긴가 민가 했다.
사실 이 <그리운 강남>은 북한에서 만든 노래가 아니라 남북한이 갈라지기 훨씬 이전 인 1928년에, 당시 이화여자전문학교에 재직 중이던 안기영(安基永)교수가 작곡한 노 래다. 노랫말은 1929년 4월1일자 “벌건곤”이라는 잡지에 발표된 김석송(金石松)시인 의 “江南曲 - 그리운 江南”에서 따 온 것이다. 작곡보다 노랫말이 뒤에 발표된 연유 는 잘 모르겠다. 노랫말부터 먼저 만들어 작곡을 한 후 그 노랫말에 살을 붙여 훗날 시로서 발표한 게 아닌가도 싶지만 어디까지나 추측일 뿐이다. 비유했다는 말은 나의 착오였다. 북한에서 노랫말을 고친 게 아니라 원작 시(詩)에서 자기들 취향에 맞는 부분만 골라내었다는 말이 정확할 것 같다. 원작 시의 내용은 이 랬다. 일반 가수가 대중가요로도 불렀다고 한다. 한 때 박화목 작시, 윤용하 작곡의 “보리 밭”이 대중가요로 인기가 있었던 것과 같았던
모양이다. 월북하여 평양음악무용대학 교수가 되고 작사자인 김석송도 6.25때 납북되어 북한에서 활동한 탓이 아닌가 싶다. 지난 번 평양에서 열렸던 남북통일축구대회 때도 이 노래가 개막곡으로 불렸다고 한다. | ||
|
'故鄕'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신작로(2) (0) | 2015.09.16 |
---|---|
뱅기미 (0) | 2015.09.16 |
그 시절 아이들은 무슨 놀이를 하며 놀았나 - 50년대 초 농촌풍경(1) (0) | 2015.09.16 |
전시수업 - 50년대 초 농촌 풍경(2) (0) | 2015.09.16 |
고향이야기 (0) | 2015.09.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