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鄕

그리운 강남

이강기 2015. 9. 16. 09:22

유년시절, 옆집 자야 누나도 뒷집 숙이 누나도 고무줄놀이를 하며 곧잘 <그리운 강남>

이란 노래를 불렀다. 노래에 딱 맞게 다리를 폴짝 폴짝 치켜들어 고무줄을 감았다

풀었다 하는 동작이 재미있어 넋을 잃고 구경하곤 했다. 그 때 어깨너머로 배운 것

 

정 이월 다 가고 삼월이라네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오면은
이 땅에도 또다시 봄이 온다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강남을 어서나 가세.

 

였다. 누나들도 여기까지만 불렀던 것 같다. 어린 마음에도 노래가 참 좋다 싶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민요조의 곡에 노랫말도 쉽고 우리 정서에 딱 들어맞아 그런 생각

이 들었던 게 아닌가 싶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이 노래를 부르는 아이들을 구경할 수 없게 되었다. 이 노래와

함께 또 하나 사라진 노래가 있다.

 

따뜻한 봄날에 동무들과
백제의 옛 서울 찾아 드니
무심한 구름은 오락가락
바람은 예대로 부는구나

 

하는 노래였다. 이 역시 약간 애조를 띄어서 그랬는지 참 듣기가 좋은 노래였다.

우리 또래가 초등학교를 들어간 이후에도 물론 이런 노래들은 배우지 못했다. 왜

이런 노래들이 사라져버렸는지 그 이유는 지금도 모른다. 얼핏 옛날에 들었던 얘기

는 이 노래들의 작곡간지 작사잔지 하는 사람이 월북을 했기 때문이라고 했는데, 흘

러 다니는 소리를 들은 것이어서 긴가 민가 했다.

 

사실 이 <그리운 강남>은 북한에서 만든 노래가 아니라 남북한이 갈라지기 훨씬 이전

인 1928년에, 당시 이화여자전문학교에 재직 중이던 안기영(安基永)교수가 작곡한 노

래다. 노랫말은 1929년 4월1일자 “벌건곤”이라는 잡지에 발표된 김석송(金石松)시인

의 “江南曲 - 그리운 江南”에서 따 온 것이다. 작곡보다 노랫말이 뒤에 발표된 연유

는 잘 모르겠다. 노랫말부터 먼저 만들어 작곡을 한 후 그 노랫말에 살을 붙여 훗날

시로서 발표한 게 아닌가도 싶지만 어디까지나 추측일 뿐이다.

앞의 글에서 북한당국이 노랫말에 약간의 정치색을 가미하여 3,4절을 남북분단에다

비유했다는 말은 나의 착오였다. 북한에서 노랫말을 고친 게 아니라 원작 시(詩)에서

자기들 취향에 맞는 부분만 골라내었다는 말이 정확할 것 같다. 원작 시의 내용은 이

랬다.


江南曲 - 그리운 江南

正二月 다가고 三月이라네
江南갓든제비가 도라오면은
이 땅에도 또다시 봄이 온다네

三月도 초하루 당해 오면은
갓득이나 들석한 이내가슴에
제비 떼 날너와 지저귄다네

江南이 어듼지 누가알니요
맘홀로 그린지 열도두해에
가본적 업스니 제비만아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江南을 어서가세

집집에 옹달샘 저절로솟고
가시보시맛잡아 질겨살으니
千年이 하루라 平和하다네

저마다 일하야 제사리하고
이웃과 이웃이 서로미드니
빼앗고 다툼이 애적에 업네

하늘이 푸르면 나가일하고
별 아래 모히면 노래 부르니
이 나라 일홈이 江南이라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江南을 어서가세

그리운 저江南 두고 못 감은
三千里 물길이 어려움인가
이발목 상한지 오램이라네

그리운 저江南 언제나 갈가
九月도 九日은 해마다 와도
제비가 갈 제는 혼자만가네

그리운 저江南 건너 가랴면
제비 떼 뭉치듯 서로 뭉치세
상해도 발이니 가면 간다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江南을 어서가세


이 노래는 발표 후에 대단한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본래 가곡으로 작곡된 노래지만,

일반 가수가 대중가요로도 불렀다고 한다. 한 때 박화목 작시, 윤용하 작곡의 “보리

밭”이 대중가요로 인기가 있었던 것과 같았던 모양이다.

이 노래가 금지곡이 되고 남한에서 잊혀 지게 된 것은 작곡자인 안기영이 6.25 직전

월북하여 평양음악무용대학 교수가 되고 작사자인 김석송도 6.25때 납북되어 북한에서

활동한 탓이 아닌가 싶다.

노랫말의 내용 때문인지 아무튼 북한 당국자들이 이 노래를 몹시 좋아하는 것 같다.

지난 번 평양에서 열렸던 남북통일축구대회 때도 이 노래가 개막곡으로 불렸다고 한다.
(2004.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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