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鄕

하루오 지서장

이강기 2015. 9. 16. 09:25

 

하루오 지서장

 

 

일제강점기 말기에 의령군 지정 지서장으로 있던 이 일본인 경부에겐 망측한버릇이 있었다. 여름날 오후 서너 시 쯤 되면 곧잘 훈도시 바람으로 젖먹이 아이를 안고 딸각 딸각 게다 소리를 내며 면 소재지 대로를 오르락내리락 산보를 하는 것이었다. 우연히 맞은편에서 오던 부녀자들이 질급을 하며 고개를 숙인 채 옆 골목으로 종종걸음을 치는 등 자신의 행각이 이 조용한 시골 마을에서 일대 소동을 일으키는 줄 뻔히 알면서도 그는 천연덕스럽게 꽤 자주 그 같은 백주의 누드 쇼를 즐겼다. 앞쪽은 안고 있는 아이의 엉덩이가 훈도시를 가리고 있고 뒤쪽은 훈도시의 끈이 양쪽 엉덩이 둔덕 사이에 들어가 있으니, 얼핏 보면 멀건 남정네가 그냥 발가벗고 거리를 활보하고 있는 형상이었다.

 

, 살다 살다 별꼬라지 다 보겠네! 아무리 삼강오륜을 모르는 개돼지 같은 놈들이라지만 벌건 대낮에 저게 무슨 꼴고!” 사람들은 돌아서서 욕을 바가지로 퍼부어댔지만 그 뿐이었다. 감히 일본인 지서장한테 항의를 하거나 완곡하게 건의를 하는 사람도 없었다. 당시의 시대상이 그러했다.

 

응당 조선풍습을 모를 리 없는 하루오 지서장의 그 같은 행위는 분명히 의도적인, 오만방자한 시위였을 것이다. 어쩌면 그는, “조센진 미개인들아, 너희들 조상들이 야만국이라고 비웃던 선진국 대일본제국의 풍습이 어떤 것인지 너희들 눈으로 똑똑히 보아라.”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을 지도 모를 일이었다.

 

한일국교정상화 후 일본당국이 장기근무차 한국에 나가는 일본인들에게 한국에서 살면서 주의해야할 사항 중 재삼재사 당부하는 게 하나 있었다. “절대로 훈도시 차림으로 집 밖을 나서지 말라.”는 거였다. 그랬다간 몰매를 맞고 죽거나 큰 봉변을 당해 한.일간의 외교문제로까지 번질 게 뻔해 보였기 때문이다. 제 나라가 있고 없는 것이 이렇게 차이가 났다.

 

해방될 때 지정지서장으로 있던 사람이 이 하루오 경부였는지는 정확하지 않다. 위의 이야기를 전해주는 분의 기억이 아련하기 때문이다. 아무튼 해방 된 후 지정의 일본인 지서장이 도보로 의령 읍 쪽을 향해 도주를 하다가(아마도 일인 경찰들이 읍에서 함께 모여 일본으로 철수키로 한 모양이다), 지서에서 한 마장쯤 떨어진 신작로에서 때마침 내려오던 안 아무개씨를 만났다. 원수가 외나무다리에서 만난 격이었다. 이 안 아무개씨는 무슨 일로 지서에 잡혀가 경찰서로까지 넘겨지고 고초를 받다가 이제 풀려나 집으로 돌아오던 길이었다. “너 이OO 잘 만났다. 세상이 뒤집어진 줄 알렸다.” 하며, 좀 전까지만 해도 감히 똑 바로 쳐다보지도 못하던 지서장을 차고 밟고 했다. 지서장이 손을 싹싹 빌고 하이, 하이하며 살려달라고 애원했음은 물론이다. 동리 어른들이 몰려나가 말리지 않았다면 이 일본인 지서장은 아마도 성한 다리로 돌아가지 못했을 것이다.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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