歷史

문명의 버블 붕괴와 그 이후

이강기 2015. 9. 19. 11:30

문명의 버블 붕괴와 그 이후

 

배영순(영남대 교수)
2006/10/16 문화일보
1.
문명도 수명이 있다. 고대문명이 그러했던 것처럼, 중세문명이 그러했던 것처럼 근대문명도 무한한 것이 아니다. 논자에 따라서는 과학기술의 진보를 거듭하고 있는 현시점에서 근대문명의 생명력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것처럼 생각할지 모르지만 이미 세계사는 근대문명 그 이후를 향해 요동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근대문명의 생명력이란 것을 놓고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역사는 발전한다, 진보한다고 믿고 있다. 그것을 말하는 결정적인 근거는 생산력의 발달 내지 그것을 뒷받침하는 과학 기술의 발달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그렇게 역사는 발전해왔다. 이를테면 석기에서 철기시대로 그리고 증기로 전기로 그리고 원자력의 시대로 그렇게 진화했다.

그러나 생산력의 발달 = 역사의 진보라는 등식이 언제까지나 성립할 수 있는 것일까? 이점이 문제인 것이다. 물론 생산력의 발달, 과학기술의 수준에 비례해서 인간의 사회성과 도덕성이 같이 비례적으로 발달한다면, 그것은 진보의 동력으로 작동할 수 있다. 그렇지 않다면, 생산력의 발달은 자기 파괴적, 인간 파괴적으로 작동한다.

예컨대 최근 핵위기를 놓고 세계사가 요동치고 있지만 핵위기라는 것은 실은 핵 그 자체에서 발생한 위기가 아니라 인간의 위기다. 기술적 수준은 원자력개발에 이르렀지만 인간의 사회, 도덕성이 원자력 기술을 감당할 수 없는데서 발생한 위기인 것이다. 달리 말하면 기술적 수준과 도덕성의 격차에서 발생한 위기다. 철학적 표현을 빌자면 인간의 도구적 이성과 사회도덕성간의 격차에서 발생한 위기라고 할 수 있다. 한마디로 인문(人文)의 위기라는 것이 이것일 터이다.

그러니까 생산력의 발달은 지속적 상승 곡선을 그리지만 인간의 사회성, 도덕성이 그렇지 못하다는 것, 어떤 면에서는 오히려 퇴행적 곡선을 그리면서 기술적 수준과 도덕성의 수준, 이 양자의 갭이 증폭되고 있다는 것, 이것이 근대문명의 함정이다. 말하자면 인간이 개발한 생산력을 인간 스스로가 감당할 사회성과 도덕성이 없다는 것, 이것이 근대문명의 근본적 위기다. 근대문명의 생명력이 고갈되어간다는 반증이다.

생산력의 수준과 인간의 사회도덕성의 수준, 이 양자의 갭은 무한정 벌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거기에는 분명히 임계치가 있다. 인간의 도덕성이 감당할 수 없는 문명이란 것이 언제까지나 지속될 수 없는 것 아닌가? 인간의 사회, 도덕성이 감당할 수 없는 문명이란 것, 이것은 문명의 버블(bubble)현상에 다름 아니다. 문명의 버블, 거품이란 것은 꺼지기 마련이다.

문명의 버블현상이란 것, 핵위기만도 아니다. 자연생태계의 위기도 그런 것이다. 인간의 탐욕스런 자연개발, 사회도덕성을 결여한 개발론이 자초한 자업자득이다. 도덕성을 상실한 생산력발달의 위기의 또 다른 반증일 것이다.

세계사적 경제위기도 그럴 것이다. 역설적인 이야기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경제위기를 초래하는 결정적인 요인은 생산력이 발달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생산력이 과잉발달하고 있다는 것, 즉 과잉생산이 그 요인일 것이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면 생산력의 발달 그 자체가 문제인 것이 아니라 인간의 사회, 도덕성이 감당할 수 없는 생산력의 발달, 그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2.
그러면 근대문명의 미래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근대문명의 버블은 어떻게 해소 가능할 것일까? 크게 보면 두 가지로 예측 가능하다.

첫째, 인간의 사회, 도덕성이 생산력의 발달수준과 비례적으로 발달하면서 위기를 극복하는 것이다. 이 경우가 가장 바람직하고 희망적인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되자면 인간의 도덕성이 비약적으로 발전해야 한다. 문제는 세계사적 현실에 있어서 인간의 사회도덕성의 발달을 기대할 수 있는 구체적인 근거와 지표를 발견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둘째, 근대문명이 인간의 사회도덕성의 수준으로 무너지는 것이다. 말하자면 현실의 인간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까지 근대문명의 버블이 붕괴하는 것이다. 그럴 경우, 이 역사적 조정과정은 대단히 파괴적이고 혹독하게 진행된다는 것이 문제다. 이 조정과정은 근대문명의 시스템 자체를 마비시키는. 근대문명의 비극적 몰락을 의미한다.

과연 세계사는 전자의 길을 걸을 것인지, 후자의 길을 것인지? 아니면 또 다른 제 삼의 길을 찾을 것인가? 이점에 대해서 필자도 단언하기는 어렵다. 희망사항이긴 하지만, 전자의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기대한다. 그러나 그런 희망을 갖기에는 오늘의 세계사적 조건들, 이를테면 패권주의 각축이 빚어내고 있는 야만의 그늘이 너무나 짙다.

분명한 것은, 세계사가 전자의 길을 가든 아니면 후자의 길을 가든 역사의 조정과정은 필연적이라는 것, 21세기 전반기가 그 조정과정일 것이며 그래서 세계사는 요동칠 것이라는 점이다. 우리가 세계화를 말하고 구조조정을 말하지만 세계사도 또한 근대문명의 버블을 해소하는 조정과정을 거치고 있다는 것, 그러한 역사적 조정과정이 진행되고 있다는 점을 놓쳐서는 안 될 것 같다.

여기서 더 이상 길게 말할 여지는 없지만, 근대문명의 버블이 붕괴되는 세계사적 조정과정을 거쳐 역사는 그 다음 단계로 진입하지 않을까? 인간의 도구적 이성과 사회도덕성이 합치하는 그 지점에서 다시 새 출발을 하지 않을까? 도구적 이성과 사회도덕성이 분열되지 않는 총체적 인간발달, 이것이 미래적 인간형 - 새로운 역사주체의 등장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배영순(영남대 교수)
기사 게재 일자 2006/10/16 문화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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