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키아벨리의 정치사상
홍성수
http://user.chollian.net/~materias
고려대학교 대학원 법학과 석사과정 3학기
1.들어가며
2.시대적 상황과 마키아벨리의 생애
1) 시대적 상황
2) 마키아벨리의 생애
3.마키아벨리의 국가철학 - 현실주의 정치사상
1) 마키아벨리가 본 인간의 본성
① 마키아벨리의 부정적 인간관
② 정치기술과 국가의 필요성
③ 마키아벨리의 이중적인 인간관
2) 마이아벨리의 현실주의 정치사상
① 정치영역의 자율성과 독자성 : 서양근대정치사상의 시작
② 마키아벨리의 정치기술
4.공화주의자.법치주의자로서의 마키아벨리
1) 공화주의자로서의 마키아벨리
① 마키아벨리의 정치사상에 대한 논쟁
② 공화정의 옹호자로서의 마키아벨리
2) 법치주의자로서의 마키아벨리
5.마키아벨리의 정치사상에 대한 평가
1) "이중적인 상황의 가정"에 대하여
① 이중적 상황의 가정
② 평가
2) 안전국가.법치국가 논의에 비추어본 마키아벨리
3) 다른 사상들과의 비교
① 韓非子와의 비교
② 홉스와의 비교
4) 국가권력의 문제와 마키아벨리 : 마키아벨리즘의 현대적 의의
6.결론
1.들어가며
흔히 "마키아벨리즘"이라고 하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신의 이익을 관철시키려는 태도를 일컫는다. 그리고, 이렇게 행동하는 사람들(특히, 정치인)을 "마키아벨리스트"라고 부른다. 그외에도 "권모술수의 화신" 등 마키아벨리는 부정적인 이미지로 가득하다. 하지만, 그의 저작을 살펴보면, 마키아벨리의 정치사상이 그리 단순하고 속류적인 것이 아니며, 다름의 체계와 관점을 가지고 있는 이론이라는 점을 쉽게 알 수 있다. 즉, "마키아벨리의 정치사상"과 "통상적 의미의 마키아벨리즘"은 분명히 구분되는 것이다.1) 아래에서는 물론 전자를 다루려고 한다. 일상적으로 잘못 인식되어 있는 마키아벨리의 정치사상이 실제로 어떠한 것이었으며, 이는 "법치국가 사상"의 관점에서 어떻게 평가할 수 있는지에 대해 집중적으로 고찰하고자 한다.
본문의 서술은 다음과 같은 방식에 의한다. 먼저, 마키아벨리가 골방에 틀어박혀 책을 써낸 이론가라기 보다는 현실정치 속에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부단히 노력한 실천가라는 점을 감안하여, 당시의 시대적 배경과 마키아벨리의 생애를 간략하게 나마 살펴본다. 우리는 이를 통해, 마키아벨리가 왜 현실주의적 정치사상을 펼쳤는지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다음으로는 그의 이론의 토대가 되는 부정적 인간관으로부터 시작하여, 그의 현실주의적 정치사상에 대해 자세히 살펴볼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마키아벨리의 주저인 "군주론"2)과 "로마사론"3)을 집중적인 검토대상으로 삼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법치국가 사상"의 관점에 비추어 마키아벨리의 견해를 평가해 보고, 특히 홉스, 한비자 등과의 비교를 시도함으로서, 마키아벨리의 정치사상이 가지는 의미를 심도 있게 고찰해보도록 하겠다.
2.시대적 상황과 마키아벨리의 생애
1) 시대적 상황
마키아벨리(1469~1527)가 살던 시대는 르네상스 시대였다. 그리고, 마키아벨리가 활동했던 이탈리아의 피렌체는 유럽 르네상스의 중심이었다. 그러나 인간위주의 화려한 문화가 발달했다는 것은 표면적인 현상일 뿐이었고, 사실은 엄청난 위기와 투쟁이 상존했던 격동의 시대이기도 했다. 당시는 정치사적으로 민족을 기반으로 한 강력한 근대국가 형성기로서, 민족국가를 건설하기 위해 침략과 방어가 끊이지 않던 그러한 시대였다.
이제 국가들은 점점 자국의 운명이 그들 자신의 손안에 있으며, 순전히 민족적 이해관계에 따라 좌우될 수 있다는 점을 각성해가고 있었다.4) 그리고, 군주들은 더 이상 신성로마황제와 교황의 권위와 권력을 인정하지 않은 채, 군주 자신의 몫을 주장하기 시작했다. 군주권력의 강화는 신흥 상인계급의 지지를 받으면서 더욱 확대되었으며5), 그결과 느슨한 권력분산체제인 봉건제도가 무너지고 중앙집권적인 절대군주정이 곳곳에서 성장하게 된다.6)
하지만, 이탈리아만큼은 예외적으로 통일된 민족국가가 아직 형성되지 않은 나라였다. 반면, 이탈리아 국경 알프스 이북의 여러나라에서는 프랑스 등 강력한 근대국가가 건설되었고, 이는 이탈리아에 대해서는 큰 위협으로 작용하였다. 실제로, 주변국가들은 이탈리아를 주된 공격대상으로 삼았고, 이탈리아는 내외적으로 큰 시련을 겪었다.7) 1492년에는 프랑스의 샤를 8세가 피렌치를 침공하여 메디치 정권을 붕괴시키기도 하였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이탈리아의 지도자들이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이탈리아를 지켜내기 위한 방안을 마련하는데 골몰했음은 당연한 귀결이다.
내적으로도 역시 큰 문제가 도사리고 있었다. 외부세력이 강력한 근대국가를 형성하고 있는데 반해, 이탈리아는 본래 무수한 소국으로 분열되어 있다가, 13세기에 들어서 겨우 몇나라로 정리되기 시작한 나라였다. 15세기에도 여전히 4~5개의 왕국(밀라노, 피렌체, 나폴리 등)이 혼재해 있었으며, 내부적으로는 급격한 충돌과 치열한 경쟁이 계속되었다. 게다가 피렌체 같은 경우에는 형식상 공화정체제임에도 불구하고, 내적으로는 사회 각계층간의 불안정한 연합으로 운영되고 있어서, 각계층간의 불화와 갈등이 끊이지 않고 있는 실정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탈리아 지도자들에게는 이러한 분열상을 수습하고 정리하는 것이 최대의 과제였다.
요컨대, 이탈리아의 이러한 내외적인 어려움은 이탈리아의 지도자들에게 "어떻게 하면, 이러한 내외적인 어려움을 극복하고, 강력한 통일 이탈리아를 지켜낼 수 있는가"하는 것을 최대의 화두로 던져주었으며, 마키아벨리의 사상도 여기서부터 출발한다고 하겠다.
2) 마키아벨리의 생애
마키아벨리는 1469년 피렌체에서 태어났다. 교육적인 분위기에서 순탄하게 자라난 마키아벨리에게 첫 번째로 큰 충격을 준 것은 바로, 그가 25세일 때 발생한 프랑스 샤를8세의 피렌체 침공이었다.(****년) 권력자들의 변동, 왕국의 전복, 농촌의 황폐, 도시의 살육, 잔혹한 살생, 피비린내 나는 전투양식 등 골육상잔의 가혹한 세태 속에서 인심은 나날이 흉악해지고 도의심은 땅에 떨여졌다. 샤를8세의 침공은, 외세의 침입으로 겪어야 하는 약소국의 비침함이 얼마나 큰지를 마키아벨리에게 똑똑히 보여주었던 것이다.8)
다음으로 마키아벨리에게 문제의식을 던져준 것은 사보나롤라였다. 사보나롤라는 본래 피렌체의 수도원장 출신으로 1494년 샤를8세의 이탈리아 침공을 계기로 메디치가를 추방하고 인민정부를 수립한 사람이었다. 그는 시민들의 열렬한 지지를 기반으로 하여, 일종의 神政을 꿈꾸었다. 그리고 그러한 神政을 통해 모든 시민이 기독교 신자다운 생활의 재생을 누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철저하게 기독교 정신에 의한 사회개혁을 꿈꾸었던 것이다. 또한 사보나롤라는 시민들의 열렬한 지지를 중요시했고, 실제로 민중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로마교황청과의 불화, 피렌체 내부의 반대파 등장, 경제위기 등으로 인해 파탄나게 된다. 결국, 1498년 사보나롤라는 화형대에 오르게 되고, 시민들은 죽은 시체에 돌을 던진다. 마키아벨리는 이러한 모습을 보면서, 두가지 교훈을 얻게 된다. 하나는 훌륭한 도덕심(도덕적 이데올로기)과 정신력만으로는 강력한 국가를 이룩할 수 없다는 것이었고, 또 한가지는 민중의 지지가 중요하기는 하지만 민중에만 의존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것이었다.9) 그런데 우연히도, 사보나롤라가 화형당하던 바로 그날, 마키아벨리는 29세의 나이로 드디어 공직(제2정무처장)에 오르게 된다. 이때는 프로렌스공화국의 소델리니 정권이 시작된 날이기도 하다.
마키아벨리의 임무는 주로 외교분야였다. 그는 중요한 외교임무를 띠고 동분서주했다. 그는 주로 외국에 나가 활동하면서 상세하고 정확한 현지보고서를 많이 제출하는 등 성실하게 일했다. 그는 적은 봉급에 오랜 외국생활로 가난과 싸우면서, 헌신적으로 국가를 위해 봉사했다. 이때 외교사절로서 겪은 수많은 경험들은 나중에 "군주론" 등의 저작을 집필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10)
1512년에는 새로운 시련이 시작되었다. 스페인군이 이탈리아에 진격하여, 피린체를 정복한 것이다. 그리고, 피렌체에는 소데리니가 축출되고, 18년만에 다시 메디치 가문의 왕정이 복원되었다. 마키아벨리는 공직에서 추방되고, 설상가상으로 1513년 2월에는 메디치 정부를 전복하려는 음모를 꾸몄다는 이유로 체포되어, 고문을 받고 투옥되기에 이른다. 1513년에 특사로 석방되자, 마키아벨리는 메디치가로 하여금 자신이 쓸만한 인물이며, 그냥 놔두기에는 아까운 전문가라는 점을 명확히 인식시키게 위해 "군주론"을 집필한다.11) 마키아벨리는 메디정권 하에서도 공직에 오르기 위해 갖은 노력을 아끼지 않았던 것이다. "군주론"은 당시 군주인 로렌즈에게 헌정되지만, 그의 생각과는 달리 받아들여지지 않고, 관직에의 꿈은 멀어져간다. 낙심한 마키아벨리는 결국 피렌체 교외에서 침거생활을 하면서, 여러 가지 저술활동에 돌입한다. "전술론"(1519~1520), "로마사론"(1513~1519) 등의 저작은 이때 집필된 것이다.
1527년에 프랑스군의 로마 약탈, 교황의 도주, 메디치 가문에 대한 인민봉기 등으로 메디치 가문은 마침내 붕괴되고, 피렌체에는 공화정이 복원된다. 마키아벨리는 다시 공직에 오를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되지만, 안타깝게도, 같은 해에 57세의 나이로 세상을 뜨고 만다.
3.마키아벨리의 국가철학 - 현실주의 정치사상
1) 마키아벨리가 본 인간의 본성
① 마키아벨리의 부정적 인간관
마키아벨리의 정치사상을 직접 검토하기 전에 미리 살펴야 하는 것은 바로 마키아벨리의 인간관이다. 마키아벨리의 인간관은 그의 현실주의적 정치사상에 깊은 토대가 되고 있다. 마키아벨리는 인간의 본성을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인간이란 은혜를 모르고 변덕스러우며, 위선자인데다 기만에 능하며, 위험을 피하고 이득에 눈이 어둡다... 인간은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는 자보다 사랑을 받는자에게 해를 끼치는 것을 덜 주저한다. 왜냐하면 사랑이란 일종의 의무감에 의해서 유지되는데, 인간은 지나치게 이해타산적이기 때문에 자신들의 이익을 취할 기회가 있으면 언제나 팽개쳐 버린다. (군주론, 116쪽)
더군다나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기 때문에 (그 이유는 인간이 모든 것을 바라는 힘과 욕망을 자연으로부터 부여받았으나 운명으로부터는 욕망을 성취할 힘을 적게만 부여받았기 때문이다.), 마음 속으로 언제나 불충분하다고 생각하며, 자기가 얻은 것에 대해 언제나 실망한다. (Discourse, Second Book, Introdution, p.274)
결국, 미키아벨리에게서 인간은 자신의 욕망을 무한히 확장하는 욕구의 존재인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욕구의 무한성과 충족수단의 유한성으로부터 결국 공격적인 경쟁과 분배 투쟁을 수반하는 사회적 갈등이 발생하는 것이다.12) 이는 홉스의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상태"라는 개념과 매우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둘은 모두, 부정적 인간관으로부터 자신의 정치사상을 도출해내는 것이다.
② 정치기술과 국가의 필요성
그렇다면, 부정적 인간관으로부터 도출되는 결론을 두가지로 나누어 살펴보자. 먼저, 군주가 한없이 선할 수만은 없으며, 때로는 부도덕한 정치기술도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 역사 속에서 수많은 평화조약과 협정이 신의 없는 군주들에 의해서 파기되고 무효화되어 왔다는 엄연한 현실 속에서(군주론, 121~122쪽), 그리고 악한 자들만이 존재하는 엄혹한 현실 속에서, 군주가 선을 유지하는 것은 오히려 미움을 초래할 수도 있으며(군주론, 133~134쪽), 국가를 파멸의 길로 몰아갈 수도 있는 것이다. 따라서 "국가를 건설하고, 법을 만들려고 하는 사람은, 모든 사람이 악하고 또 그들은 기회가 주어지면 항상 악한 본성을 나타낼 것이라는 것을 가정해야 한다"(Discourses, First Book, Cha.3, p.117)고 본다. 또한 "인간이 어떻게 사는가와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는 분명 다른 문제"(군주론, 106쪽)이기 때문에, 군주는 필요하다면, 부도덕하게 행동할 태세가 되어 있어야 하며(군주론, 107, 123쪽) 약속을 맺은 이유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면, 약속을 지킬 필요도 없다.(군주론, 121쪽) 여기서 마키아벨리의 인간본성론과 현실주의적 정치사상이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잘 알 수 있다. 인간의 본성이 악하기 때문에, 나라를 지켜야 하는 군주는 부도덕적인 태도를 가질 필요도 있는 것이다.
두 번째로는 인간의 본성은 본래 악하기 때문에 인간의 내면에 존재하고 있는 공격적 본성을 제압할 수 있는 "외면적 강제장치"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도출한다.13) 질서와 이성은 국가라는 "외면적 강제장치"를 전제하는 것이며, 좋은 정치는 인간의 무한한 욕망에 한계를 설정하고 질서를 유지할 수 있는 강력한 법과 권력을 확립하는 정치이다. 마키아벨리는 인간의 부정적 본성에 근본적 의미와 실체적 성격을 부여함으로서, 국가.법.권력.정치의 강제권을 정당화하는 것이다. 이는 홉스가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상태를 극복하기 위해 국가를 건설해야 하며, 이렇게 건설된 국가는 자연상태를 극복하여, 외적의 침입과 인간상호간의 침해로부터 만인을 보호하여 안전을 확보하여 준다"14)고 한 것과 거의 일치한다. 이점에 대해서는 뒤에서 다시 자세히 언급할 것이다.
③ 마키아벨리의 이중적인 인간관
이 때, 마키아벨리의 인간본성이 주어진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다고 보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마키아벨리의 인간학은 주어져 있는 정치적 상황에 따라서 "이중적인 성격"을 갖는다.15)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인간의 이기적 욕망이 표출되는 위기의 상황에서 인간은 신뢰할 수 없는 존재이다. 그러나, 강력한 국가에 의해 질서가 안정된 상황에서의 인간은 선한 존재로 인식되고 있다. 마키아벨리는 고대로마를 자신의 이상으로 삼으면서, "지배자가 존경을 받고 명예의 영광을 차지하며, 민중의 삶은 사랑과 신뢰로 가득차는" 사회를 꿈꾼다. 그리고 이러한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일정한 통제장치(법)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일정한 통제장치만 마련된다는 인간은 선한 존재가 되는 것이다.
인간은 그 본성상 그들이 받은 은혜는 물론 베푼 은혜에 의해서도 유대가 강화되는 존재이다.(군주론, 77쪽)
그들이 가난과 굶주림이 인간을 근면하게 만들고, 그리고 법은 인간을 선하게 만든다. 운좋은 환경이 선을 통제가 없이 가능하게 한다면, 법은 필요없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러한 행복의 영향이 부족하다면, 법은 즉각 필요하다. (Discourse, First Book, Chap.3, p.118, 강조는 필자의 것)
그들(군주와 인민)의 행동에 있어서 차이는 그들의 본성에서의 차이 때문이 아니고,(왜냐하면, 그들의 본성은 동일하며, 만약 선에 대한 어떠한 차이가 있다변, 인민이 더 선하다) 그들이 개별적으로 지켜야하는 법에 대한 존경심 때문이다. (Discourse, First Book, Chap.58, p.264)
그렇다면, 마키아벨리 인간관의 실천적 결론은 인간의 보편적 욕망과 본성이 공동선을 지향하도록 "법과 제도의 확립"이라는 조건을 마련하고, 이 속에서 인간의 "제2의 본성", 즉 "공동체 전체의 복지와 선의 유지를 위한 공동적 삶의 영위라는 후천적 본성"을 얻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16) 하기에 마키아벨리는 확고부동한 민족국가를 건설함으로서, 바람직한 인간본성(제2의 본성)이 구현되는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 것이다. 그의 현실주의적 정치사상도 이러한 목적 하에서, 시급히 통일국가를 건설하는 방법론으로 제시되었다고 볼 수 있다.
2) 마키아벨리의 현실주의 정치사상
① 정치영역의 자율성과 독자성 : 서양근대정치사상의 시작
ⅰ) 도덕.종교.윤리와 정치의 분리
마키아벨리를 서양근대정치사상의 시조라고 보는 이유는 그가 정치영역을 윤리, 도덕, 종교의 영역으로부터 분리해 냈기 때문이다. 마키아벨리에게 던져진 핵심적인 문제는 "정치와 도덕의 관계"였으며, 그는 이 문제에 대해 "정치의 탈도덕화"로 대답하였다.17)
그리스 사상가나 중세의 정치사상가들은 정치를 윤리, 도덕, 종교의 하부구조로 보았으며, 그 독립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들은 정치영역에서 철학적 진리나 종교적 진리를 구현하려고 했으며, 정치현상을 이러한 원리에 따라 규율하고자 했다. 그들은 도덕과 정치가 일치해야 한다는 견해를 가지고 있었으며, 차이가 있다고 주장하는 경우에도 정치는 어디까지나 도덕에 종속되어야 하는 것이었다. 예컨대, 플라톤의 경우 정치권력은 선의 이데아를 실현하고자 하는 것이며, 그 정당성 역시 철학적 지식에서 나온다고 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치란 언제나 선한 목적을 가지고 있다는 전제 아래 "예외적인 통치방법"을 비판하였다. 키케로는 "도덕적인 것은 합리적"이기 때문에 도덕과 이익이 근본적으로 서로 어긋나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또한 그는 절절함은 도덕적 올바름에 필수적이고, 따라서 관직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그들의 개인적인 생활에 있어서 모든 비행을 삼가야 한다고 한다고도 하였다.
그러나 마키아벨리가 보기에 정치영역은 오로지 물고 물리는 치열한 투쟁이 있는 현실만이 존재하였다. 하기에 추상적인 도덕법칙으로부터 정치의 문제를 사고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보았다.18) 그래서 그는 정치현상을 종교적 가치나 윤리적 고려를 배제한 채, 순수하게 권력의 획득.유지.팽창의 차원에서 조망하였으며,19) 다른 어떤 제도나 가치보다도 최우선적으로 국가 그 자체를 고려했다.20) 고전적 정치가 사회적 존재로서의 인간에게 자연적으로 주어진 목적과 공동선이 무엇인가를 찾는 것이었다면, 마키아벨리의 주된 관심은 "어떻게 하면 국가권력을 다시 확고부동한 토대 위에 정립할 수 있는가"하는 것이었다.21) 마키아벨리에게 철학이 있다면 국가의 생존이고, 생존을 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힘을 지상의 도덕으로 생각했다.22) 그는 이전의 도덕철학자나 정치철학자들이 이제껏 전적으로 가상의 공화국이나 군주정에 관해서만 논의했을 뿐, 군주가 실제로 활동해야 하는 현실의 세계에 대해서는 아무런 지침을 제공하지 않고 있다고 비판하면서 철저히 현실에 기반한 정치사상을 전개하는 것이다. 스스로도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나는 이 문제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유용한 것을 쓰고자 하기 때문에 이론이나 사변보다는 사물의 실제적인 진실에 관심을 경주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많은 사람들이 현실 속에 결코 존재한 것으로 알려지거나 목격된 적이 없는 공화국이나 군주국을 상상해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이 어떻게 사는가'는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와는 너무나 다르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행해지는 바를 행하지 않고 마땅히 해야 하는 바를 고집하는 군주는 권력을 잃기 십상이다. (군주론, 106~107쪽, 강조는 필자의 것)
ⅱ) 도덕의 문제 : 사적인 덕과 공적인 덕의 분리
하지만, 마키아벨리가 칸트가 비판하는 정치적 도덕가와 일치한다고 보기는 어려울 듯하다. 칸트는 정치기술이 도덕에 선행한다고 했다기 보다는 "사적인 덕과 공적인 덕이 가지는 차이"를 지적한 것이기 때문이다. 아래에서는 이점에 대해서 상세히 살펴보도록 하겠다.
먼저, 마키아벨리는 군주에게 요구하는 덕(virtu)의 개념상 혁신을 시도한다. 이전에는 군주의 덕으로 기독교적인 의미의 덕 - 겸손함, 자선, 경건함, 정직함 - 등을 요구하였다. 하지만 마키아벨리는 이러한 기독교적인 덕의 개념에 반기를 들면서 군주에게 요구되는 덕으로서 고대 로마공화정 당시의 덕에 해당하는 "남성다움, 용맹스러움, 단호함, 상황에 대한 기민한 판단력" 등을 강조하였다.23) 일반적인 사적 생활에서는 윤리적이고 종교적인 덕이 중요할 지 모르지만, 정치적 행위자에게는 그와는 다른 정치적인 덕이 요구된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마키아벨리가 윤리적인 덕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식으로 이야기하거나 비도덕성이 우월하다는 식으로 이야기한 것은 결코 아니다.24) 다만, 정치의 영역에서는 윤리적인 덕이 공적인 덕으로 전환되지 않으며, 사적으로는 비윤리적인 행위가 공적 영역에서는 덕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자 한 것이다. 정치적 행위자는 정상적인 환경에서는 기존의 도덕률에 따라 행동하지만, 불가피한 상황에서는 새로운 지식이 수반된 독자적인 정치적 윤리가 작용하게 되는 긴장된 분위기에서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 것이다.25) 예컨대, 남을 잘 신뢰하고 약속을 지키는 것이 사적인 영역에서는 유덕한 행위이지만 인간의 이기심과 재화의 희소성으로 인해 폭력과 기만이 난무하고 한 개인의 사활이 아니라 공동체 전체의 사활이 걸린 정치영역에서 그러한 행위는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에 공적으로는 유덕한 행위가 되지 못할 수 있다는 점을 마키아벨리는 지적하고자 했다. 마찬가지로 사적인 영역에서 남을 속이거나 폭력을 수반하는 잔인한 행위는 유덕한 행위가 아니겠지만, 공적인 영역에서는 전체 공동체에 유익한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에 유덕한 행위가 될 수 있다고 한 것이다. 즉, 마키아벨리는 대부분의 정치적 상황이 불안정하고 유동적이기 때문에 국가공동체와 인민은 사적인 개인과는 다른 방법으로 통치된다는 것을 지적하고자 한 것이었다.26)
그리고 되도록 정치행위자는 통상의 윤리를 좇아서 행동하라고 주문함으로써, 궁극적으로 독자적인 정치적 윤리 보다는 통상적 윤리가 우월하고, 우선적이라는 점을 인정하기도 했다. 왜냐하면, 사악함 그자체로는 권력을 얻을 수 있을지언정 영광을 얻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Discourse, Third Book, Chap.41, pp.526~527) 또한, 정치가 언제나 윤리적인 도덕과 상반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것도 아니다. 마키아벨리는 정부가 안정되고 확고한 상황에서 운영된다면 정부는 연민, 신뢰, 정직함, 인륜, 그리고 종교와 같은 기존의 덕에 따라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27) 그리고 이러한 상황 하에서는 공적인 도덕과 사적인 도덕이 일치하여야 한다고 역설했다.
ⅲ) 칸트.키케로와의 비교
이점을 키케로나 칸트의 도덕론과 비교해 본다면 보다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다. 먼저 키케로부터 살펴보자.28) 키케로는 "도덕적 의무론"에서 관후함이야말로 다른 무엇보다도 우리로 하여금 지도자가 그러한 덕을 가진 자들을 사랑하도록 만드는 덕목들이라고 주장했지만, 마키아벨리는 관후함이 덕의 일종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군주에게 커다란 해악을 끼칠 수 있다고 주장한다.(군주론, 109~113쪽) 키케로는 두려움을 몰아내고 굳게 사랑에 의지하는 것이 타인에 대한 우리의 영향력과 동시에 우리의 안전을 유지하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주장하지만, 마키아벨리는 "동시에 둘다 얻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굳이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나는 사랑을 받는 것보다 두려움을 받는 편이 훨씬 더 안전하다"면서, 처벌에 대한 두려움도 필요하다고 본다.(군주론, 116쪽) 또 키케로가 약속을 지키는 것이 정의의 토대를 표상하는 것을 공리로서 받아들이는데 반해, 마키아벨리는 필요에 따라서 약속을 어길 필요도 있다는 현실론을 주장한다.(군주론, 121~122쪽) 또한, 키케로가 인간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방법으로 "논리에 의한 것"과 "힘과 기만에 의한 것"이 있지만, 철저히 전자에 의할 것을 주장하는데 반해, 마키아벨리는 비슷한 분류를 제시하면서도,("법에 의한 것"과 "물리적 힘에 의한 것") "전자로는 종종 불충분하기 때문에 후자를 사용할 줄 알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요컨대, 키케로가 고전적인 선악의 구별을 이야기한다면, 마키아벨리는 철저하게 현실적인 도덕론을 주장하는 것이다. 마키아벨리는 이런 식으로 공적.정치적 덕과 사적.종교적.윤리적인 덕을 철저하게 구분하였다
다음은 칸트와 비교해 보자. 칸트도 도덕과 정치(법)의 역할을 분리하기는 했지만, "도덕은 우리가 그것에 따라야만 하는 무조건적인 명령적 법칙의 총체이기 때문에"29) 기본적으로 정치는 도덕법칙에 예속되어야 한다고 본다. 도덕은 실천 이성 자체로서 현실적으로 제한된 실천인 정치에 대해 우선권을 가지는 것이다. 그리고, 칸트는 경험적 권력정치의 대변인으로서 도덕을 정치의 수단으로 사용하는 사람을 "정치적 도덕가"로, 정치를 도덕의 수단으로 파악하면서, 국가권력의 원칙들을 도덕에 의거하여 입법하는 사람을 "도덕적 정치가"로 규정한다.30) 그러면서, (마키아벨리가 추구하는 것과 같은) 정치적 도덕가가 얼마나 위험한지를 설명한다. 그들은 인간에 대한 이해라든가 인간이 무엇을 이루어낼 수 있는가에 대한 이해없이 마치 인간을 아는 것처럼 떠벌리면서 자랑하지만, 그들은 결국 궤변만을 늘어 놓게 될 것이라고 본다. 그들은 이념은 무시하고 경험에만 의존하는 자들이며 정치적 명예와 권력의 확대만을 추구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도덕적 정치가는 그러하지 않다. 도덕적 정치가는 불변의 도덕법칙을 준수하는 가운데에서 자신의 역할을 수행한다. 이는 객관적(이론적)으로는 도덕과 정치 사이에 아무런 갈등도 없기 때문에 가능하다. 그러나 때로는 인간의 이기적 성향 때문에 도덕과 정치의 갈등이 주관적으로 존재할 수는 있다. 그러나, 우리는 악의 원리를 찾아내고 그것을 정복함으로서 궁극적으로 도덕의 완성을 지향해야 한다고 본다.
진정한 의미의 정치는 도덕성에 충실하지 않고서는 일보도 전진할 수 없다. 비록 정치 자체가 어려운 기술이라고 해도, 정치와 도덕과의 결합은 결코 기술이 아니다. 왜냐하면 이 양자가 서로 충돌하자마자, 정치가 풀 수 없는 매듭을 도덕은 풀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권리는 비록 그것이 지배세력에게 아무리 많은 희생을 요구한다 할지라도 신성하게 지켜지지 않으면 안된다. 사람들은 여기에 타협해서 (정의와 이익 사이의) 실용적으로 제약된 법이라는 중간노선을 추구해서는 안된다. 모든 정치는 도덕 앞에 무릎을 꿇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나 이렇게 함으로서 정치는 비록 완만하기는 해도 영원히 빛나게 될 단계에 도달할 것을 희망할 수 있다.31)
그러나, 마키아벨리가 이들의 도덕론과 정면으로 반대라고 이야기하기는 힘들 것 같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마키아벨리는 국가존립 자체가 위험한 상황에서는 (예외적으로) 군주가 가져야 할 윤리가 일반적 윤리와 분명히 달라야 한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일반적인 도덕에 따라 통치되는 것을 지향했다고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본다면, 칸트나 키케로의 도덕론과 구별되면서도, 상반된 견해를 가진 것은 아니라고 평가해볼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마키아벨리가 정치적 상황 자체를 이중적으로 나누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② 마키아벨리의 정치기술
한편, 위와 같은 논의(를 바탕으로 하여(마키아벨리는 군주가 안팎의 위협으로부터 국가를 지켜나감으로서, 정치적 공동체의 확고부동한 토대, 즉 국가를 구축할 수 있도록 "정치기술" 또는 "통치술"에 집중적인 관심을 기울였다. 악명높은 마키아벨리즘의 유래는 여기에서 기인한다. 그는 정치를 기독교 윤리의 틀 속에서만 고려하던 중세적 한계를 벗어나, 군주의 세속적 행위기준을 제시하고 독립적 주권을 옹호함으로써 독립국가를 보존하고자 했다. 이제 군주는 더 이상 신법이나 자연법과 같은 상위법의 제약 없이 오지 국가의 보존과 유지만을 지상목표로 삼으면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목적을 위해서 군주는 종교와 도덕이 명령하는 당위성에 따르기보다는 항상 본심을 감추고 운명과 상황변화에 따라 적절히 처신해야 한다.
자비롭고 신의가 있고 인간적이고 정직하고 경건한(종교적인) 것처럼 보이는 것이 좋고, 또한 실제로 그런 것이 좋다. 그러나 달리 행동하는 것이 필요하면, 당신은 정반대로 행동할 태세가 되어 있어야 하며, 그렇게 행동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군주는, 특히 신생군주는 좋다고 생각되는 방법으로 처신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이해해야 한다. 왜냐하면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그는 종종 신의 없이 무자비하게 비인도적으로 행동하고 종교의 계율을 무시하도록 강요당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는 운명의 풍향과 변모하는 상황이 그를 제약함에 따라서 자신의 행동을 거기에 맞추어 자유자재로 바꿀 태세가 되어 있어야 하며, 내가 앞에서 말한 것처럼, 가급적이면 올바른 행동으로부터 벗어나지 말고 필요하다면 비행을 저지를 수 있어야 한다. (군주론, ***쪽, 강조는 필자의 것)
이러한 점은 마키아벨리가 정치현상을 도덕과 종교와는 분리되는 독립적인 영역으로 상정했음을 잘 나타내는 것이며, 이런 점에서 대부분의 학자들이 마키아벨리를 "근대정치사상의 시조"로 보는 것이다. 그리고 이점은 다음에 계속되는 항목을 통해서도 잘 드러난다.
ⅰ) 이익지향과 폭력의 문제
마키아벨리의 현실주의적 정치사상은 먼저 철저하게 이익지향적이다. 이익의 개념은 두가지 측면을 내포하고 있는데, 한편으로 마키아벨리 이전의 시대에 만연되어 있던 도덕적인 원리나 규범으로부터 정치행위의 독립성을 선언하는 것이고, 다른 한편 그 원리들은 군주에게 명료하고 건전한 지침을 제시하는 동시에 정념이나 일시적인 충동에 의해 오염되지 않은 계산적이고 합리적인 의지를 표상하는 것이었다.32) 냉정하고 계산적으로 특정한 이익(민족국가의 건설)을 추구하는 정치야말로 현실주의적 정치사상의 핵심이었다.
이는 폭력의 문제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폭력은 무조건 나쁜 것이다"라는 식의 견해는 전통적인 도덕원리에 기반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마키아벨리는 폭력도 "이익"이라는 관점에서 적절하게 사용된다면, 오히려 이로울 것이라는 현실적인 대안을 제시한다. 그리고, 폭력은 자신의 목적을 달성함과 동시에 계속해서 감소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나는 이러한 차이는 잔인한 조치들이 잘 사용되었는가 또는 잘못 사용되었는가에 의해서 좌우된다고 믿는다. 그러한 조치들이 단번에 저질러졌다면 ... 잘 사용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러한 조치은 권력을 확립하는데 필수적이며, 연후에는 그것에 집착하지 않고 자신의 신민들에게 가능한 유익한 조치로 전환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잘못 저질러진 조치들이란 처음에는 빈도가 적었으나 시간이 흐를수록 감소하기보다는 증가하는 경우에 해당한다. (군주론, 65쪽)
ⅱ) 외양과 상징, 가장과 위선
마키아벨리는 정치의 핵심을 "외양"과 "상징"으로 파악했다. 다시 말해, 정치는 본질의 영역이 아니라 외양의 영역에 속한다는 것이다. 또한 정치적 행위자로서 통치자는 능란한 위선자요 가장자여야 하며 성실함, 자비, 인간애 및 종교를 지니고 있는 것으로 본다. 마키아벨리는 기만과 폭력이 횡행하는 정치상황에서 정치적 행위자는 정치적 적들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일종의 보호색으로서 능숙한 가장과 위선을 필요한 한다는 의미에서 외양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만약 정치적 행위자가 한결같이 기존의 도덕률을 채택하게 되면, 그의 행위는 적에게 쉽게 노출되고 간파되어 정치적으로 파멸을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 그렇기 때문에, 통치자는 내외부의 적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적절한 기만과 위장을 통해 외양을 조작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를 마키아벨리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모든 사람들이 당신이 어떻게 나타나는가를 볼 수 있는 반면에 당신의 진면모에 대해서 직접 경험할 수 있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다. .... 인간의 모든 행동에 관해서 특히 직접 설명을 요구할 수 없는 군주의 행동에 관해서 특히 직접 설명을 요구할 수 없는 군주의 행동에 관해서 인간은 결과에만 주목한다. .... 왜냐하면 보통사람들은 외양과 결과에 감명받기 때문이다. (군주론, 124쪽)
ⅲ) 목적과 수단의 문제
그리고 이렇게 외양과 상징, 가장과 위선이 어느 정도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인민의 지지를 확보하고 적으로부터 국가를 보호하기 위함이다. 이렇게 정당한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의 위선"도 어느 정도 가능하다고 하는 것이 마키아벨리의 생각이었던 것이다.33)
그렇다면, 자연스럽게 목적과 수단의 문제를 생각해 볼 수 있다. 흔히 마키아벨리즘을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한다"는 명제로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물론 마키아벨리가 이러한 주장을 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 논증과정은 그렇게 간단하지만은 않다. 마키아벨리는 일단 목적은 근본적으로 (가치판단을 해볼 때) 선해야 한다고 본다. 그런데 수단은 언제나 목적에 연관되어 있으며, 이는 그 자체로 가치중립적이라고 보는 것이다.34) 그래서 마키아벨리는 국가가 위기에 처해 있을 때 생명과 자유를 구하기 위해서는 수단의 선악여부는 생각할 필요가 없다고 한다. (군주론, 123쪽) 정리하면, 수단은 목적에 종속되는 것이며, 그 자체로 가치중립적이라는 것이 핵심이다. 하지만,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수단이 되도록 통산의 도덕(선)에 일치하도록 최선을 다하라는 것 또한 마키아벨리의 주문이기도 하다. 이는 그의 결과주의적인 사고와도 관련이 깊다. 물론, 비상상황에서만 그러하다는 단서가 있기는 하지만, 군주는 국가의 보존을 위해서는 어떠한 수단과 방법이라도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 마키아벨리의 생각이다. 국가의 존립에 위기에 처해있다면, 그 위기를 극복하는 것(즉, 군주의 행위의 결과)가 그 과정보다 훨씬더 중요하다고 보는 것이다. 외양과 상징 같은 기만술이 정당화되는 것도 그 때문이다.
4. 공화주의자.법치주의자로서의 마키아벨리
1) 공화주의자로서의 마키아벨리
① 마키아벨리의 정치사상에 대한 논쟁
"군주론"만을 볼 때 마키아벨리는 정치체제로서 군주정을 옹호하고 있는 듯 하지만, 뒤에 쓴 "로마사론"에서는 공화정을 적극 옹호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현실주의적 정치사상은 두 저작에서 모두 일관되게 발견되지만, 마키아벨리가 궁극적으로 지향한 것이 "군주정이냐, 공화정이냐"이냐를 놓고는 여러 가지 견해가 대립되어 왔다.35)
첫 번째 해석은 "군주론"을 마키아벨리의 정치사상에서 일종의 일탈로 해석하는 것이다. 메디치가의 환심을 사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그런 식으로 썼다는 것이다.(몽테스키외, 디디로, 루소) 두 번째 해석은 마키아벨리를 변함없는 공화주의자로 보면서, "군주론"은 군주에 대한 조언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군주의 여러 가지 위선과 기만의 술책을 폭로한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그렇다면, "군주론"은 인민들에게 자유의 정신을 설파하는 일종의 대중교육서 이며, "군주론"은 군주를 위한 것이 아니라, 인민을 위한 것이 된다. (젠틸리, 보칼리니, 스피노자 등) 세 번째 해석은 마키아벨리가 "군주론"에서 옹호하는 군주정을 공화정으로 이행하기 위한 준비단계로 보았다는 것이다. 강력한 민족국가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일반적으로 공화정이 바람직함에도 불구하고) 일단 군주정으로서 위기를 돌파해야 한다고 보았다는 것이다. (헤르더, 헤겔, 피히테) 네 번째 해석은 "군주론"이 군주를 기만하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군주에게 도덕과 윤리보다는 기만적인 술책을 가르쳐 줌으로서 군주를 파멸시키려고 했다는 것이다. (레지날드 폴)
② 공화정의 옹호자로서의 마키아벨리
그러나, 마키아벨리는 근본적으로 공화주의자였으며, "메디치의 군주정"을 지지했던 것은 당시의 상황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당시의 상황으로 미루어 볼 때 마키아벨리는 메디치의 복귀가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위기의 상황에서의 국가의 보존"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는 바람직하다고 보았던 것이다. 그는 메디치가의 복귀를 새로운 역사적 환경의 도래로 이해했고, 그러한 때에 신군주의 신국가 건설에 요구되는 아이디어를 제공하여 조국 피렌체가 외세의 간섭에서 벗어나고 정치적 안정을 누리게 하는 것이야말로 바로 자신의 일이라고 인식했던 것이다.36) 실제로, 마키아벨리가 메디치의 군주정에 참여하기 위해 여러 가지로 노력했다는 점도 이를 뒷받침해준다.37) 결국 마키아벨리는 고대 로마의 공화제가 정치형태상 이상적인 것이긴 하지만, 현실적으로 이탈리아가 분열된 상태에서 통일국가를 형성.유지하는데에는 군주제가 오히려 유리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즉, 이상적인 정치형태는 공화제이지만, 실제 이탈리아적 상황에서는 군주제가 정치발전이나 안정을 가져온다고 판단했던 것이다.38) 결국 마키아벨리가 진정으로 지향했던 바는 공화정이었던 것인데, 이러한 생각은 이미 "군주론"에도 잘 표현되어 있다.
인민들의 재산과 부녀자에 손을 대는 일을 삼가면 항상 성취할 수 있다. (군주론, 117쪽)
자비롭고 신의가 있고 인간적이고 정직하고 경건한(종교적인) 것처럼 보이는 것이 좋고, 또한 실제로 그런 것이 좋다 (군주론, 122~123쪽),
군주는 인민으로부터 미움받거나 경멸받는 일은 무엇이든지 삼가야 한다는 것이다. (군주론, 125쪽),
군주가 가질 수 있는 최선의 요새는 인민에게 미움을 받지 않는 것이다. 만약 당신이 요새를 가지고 있더라도 인민이 당신을 미워하면 요새가 당신을 구출하지는 못할 것이다. (군주론, 148~149쪽)
그리고, 이는 "로마사론"에서 본격화된다. "로마사론"에서는 로마의 공화정의 이상을 예로 들면서, 로마공화정과 같은 공화제가 어떤 것인지 설명한다. 그가 생각하는 공화제란 "소유의 자유", "인간의 존엄의 보호", "기회균등의 원리" 등이 보장되는 사회이다. 우선, "자유로운 정치적 삶의 일반적 이익은 자신의 소유를 아무런 염려없이 자유롭게 향유할 수 있고, 자기 부인과 자식의 명예와 자신의 인격에 대해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것"(Discourse, First Book, Chap.16, p.165)을 의미한다면서, "소유의 자유"와 "인간 존엄의 보호"를 제기한다. 그리고, 관직이 오로지 능력에 의해서만 배분되도록 해야 한다는 "기회균등의 원리"를 언급하기도 한다. (Discourse, Second Book, Chap.2) 또한 시민 상호간의 평등이 지배자(귀족)와 피지배자(평민)과의 대립을 통해 파괴될 수 있음을 경고하면서, 법률을 통해 지배자들의 권력을 통제할 것을 주장하기도 한다.39) 요컨대, 마키아벨리에게 공화정이 궁극적인 지향점이었다는 점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다음의 마키아벨리의 말은 이를 아주 분명하게 보여준다.
공화국헌법을 만드는 모든 입법자는 자유를 보장하고 보호하는 것에 대해 반드시 사전대책을 생각했었다. .... 모든 공화국은 귀족과 인민으로 구성되며, 문제는 자유의 보호를 누구의 손에 위임할 것인지에 놓여 있다. (Discourse, First Book, Chap.5, p.121)
군주는 우선 인민들이 실제로 무엇을 바라는지 확인해야 하며, 그들이 원하는 것을 언제나 찾아내야 한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그들을 노예로 만든 자들에 대해 복수하는 것과 그들의 자유를 회복하는 것이다. (Discourse, First Book, Chap.16, pp.162~163)
2) 법치주의자로서의 마키아벨리
먼저 마키아벨리는 국가를 보존하기 위해 투쟁해야 할 때에는 두가지 방법이 거론될 수 있다고 한다.
그 하나는 법률에 의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힘에 의한 것이다. 첫째 방도는 인간에게 합당한 것이고, 둘째 방도는 짐승에게 합당한 것이다. 그러나 전자로는 종종 불충분하기 때문에 후자를 사용할줄 알아야 한다..... 半人半獸를 스승으로 섬겼다는 것은 군주가 이러한 양면적인 본성을 사용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그중 어느 한쪽을 결여하면 그 지위를 오래 보존할 수 없다는 점을 상징한다.(군주론, 120쪽)
그리고, 위기의 상황에서 국가를 보존하기 위하여, 짐승에게 합당한 방법을 때때로 사용해야 한다고 하기는 하지만, 궁극적으로 법률에 의한 통치를 지향한다고 본다. 마키아벨리는 입법가들이란 시민적 위대함이라는 대의를 발전시키기 위해서 법률을 이용하는 방법을 가장 명확하게 이해한 사람들이라고 한다. 그리고, 우리는 모든 이기적 이익보다도 자신의 공동체의 이익을 우선시하도록 인민을 강제하기 위해 법률의 강제력이 필요하다고 본다.40) 마키아벨리가 "법률이 국민을 선하게 만든다"(Discourse, First Book, Chap.3, p.118)고 주장했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또한, 마키아벨리가 군주와 시민이 똑같이 법에 의해 통제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는 것도 중요하다. 그는 군주와 시민이 모두 법에 규율되어야 하지만, 특히 군주에 대한 통제가 절실하다고 주장하면서(Discourse, First Book, Chap.58, p.264~265) "인민과 군주에게 똑같이 통제를 하는 것은 진리일 것이다. 군주로부터 통제를 제외하는 것은 큰 실수다"(Discourse, First Book, Chap.58, p.263)라고 말한다. 이는 마키아벨리가 권력작용을 법에 구속시키려는 "법치주의사상"과 일치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점은 다음에 잘 요약되어 있다.
군주와 인민의 지배는 오래 지속된다. 그러나 둘은 법에 의해 규율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통제를 모르고, 그의 자의만을 아는 군주는 미친사람과 같이 될 것이며, 원하는대로 마음대로 행동하는 인민은 현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Discourse, First Book, Chap.58, pp.264~265, 강조는 필자의 것)
공화국과 군주국의 복지는 살아있는 동안 현명하게 통치하는 군주를 갖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가 죽은 후에도 스스로 유지되는 그러한 법을 제공하는 군주를 갖는데 있다. (Discourse, First Book, Chap.11, p.148, 강조는 필자의 것)
5.마키아벨리의 정치사상에 대한 평가
1) "이중적인 상황의 가정"에 대하여
지금까지의 논의로부터, 마키아벨리가 군주국을 옹호하고, 부도덕성과 정치기술을 설파한 것은 어느 정도 사실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국가의 존립이 위태로운 상황을 전제한 것이라는 점도 아울러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마키아벨리는 궁극적으로는 시민의 자유가 보장되는 공화정을 꿈꾸었으며, 부도덕성을 옹호한 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렇다면, 이렇게 "이중적인 상황"을 전제하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이지에 대한 평가가 핵심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다음에서는 이에 대해 좀더 자세히 고찰해 보고, 아울러 평가도 내려보겠다.
① 이중적인 상황의 가정
먼저, 마키아벨리는 다음과 같이 정치상황을 두가지로 구별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첫 번째 상황은 "모든 정치적 질서가 붕괴된 위기의 상태에서 강력한 권력을 필요로 하는 군주제의 상황"이며, 두 번째 상황은 "정치적 질서를 보장하는 제도적 장치가 완비된 상태로서 인간상호간의 신뢰가 지배하는 공화제의 이상상태"이다.41)
"군주론"에서의 마키아벨리의 정치사상은 주로 첫 번째의 상황을 염두해 둔 것이다. 16세기 이탈리아의 상황과 같이 국가의 존립 자체가 위태로운 상황에서는 "국가 그 자체를 보존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며, "조국의 안전이 문제가 되는 때에는 정의와 부정의, 인간적인 것과 잔혹한 것, 영광스러운 것과 부끄러운 것을 고려해서는 안되며, 오히려, 다른 모든 고려를 제쳐두고, 조국의 삶과 자유를 구할 수 있는 방법에 관한 문제만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Discourse, Third Book, Chap.41, p.528) 마키아벨리가 "군주론"에서 군주국을 옹호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고 각종 정치기술과 비도덕성을 설파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그러나, 기만과 술책은 결코 어느 시기, 어느 상황에서나 다 타당한 것이라고 주장한 것은 결코 아니다. 왜냐하면 폭펵과 기만, 술책만으로는 결코 이상국가가 성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동료시민을 죽이고, 친구를 배반하고, 처신이 신의가 없고, 무자비하고, 반종교적인 것을 덕이라고 부를 수는 없다. 그러한 행동을 통해서 권력을 얻을 수는 있을지언정 영광을 얻을 수는 없다.(군주론, 61쪽)
모든 것에 있어서 기만이 증오할만한 것이라 하더라도, 전쟁의 수행시에는 칭찬할만한 것이고, 올바른 것이다. .... 그러나 나는 내가 그러한 기만을 맹세한 믿음과 협정를 저버리는 배신과 혼동하지 않았다는 점을 말하고 싶다. 국가와 왕국이 가끔은 배신을 함으로서 획득될 수는 있다. 그러나 그것은 불명예를 가져올 것이다. (Discourses, Third Book, Chap.40, p.526)
그리고, 기민과 폭력이 필요한 것은 어디까지나 긴급상황(첫번째 상황)에서만 그러하며, 일단 국가질서가 확고하게 정립되고 난 이후에는 정치적 지배수단은 폭력에서 법률로, 짐승적 수단에서 인간적 수단으로 이행해야가야 한다.42) 마키아벨리는 국가주권이 부재할 경우에만 특별한 처방을 내리는 것이지, 국가주권의 확립되었을 때에도 비도덕적 정치행위를 정당화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이 때 중요한 것은 "국가 그 자체"를 보존하고자 궁극적인 목적은 오로지 국가의 질서와 자유를 위해서만 정당화될 수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올바른 정치인은 오로지 자유가 실현되고 시민상호간의 신뢰를 배양할 수 있는 정치적 질서를 확립하기 위해서만 폭력을 사용한다. 마키아벨리에게 있어서도 정치의 목적은 모든 시민이 자신의 자유를 실현할 수 있는 삶의 질서인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마키아벨리는 자유가 없는 권력은 단순한 폭력에 불과하다고 단언하며, 자유를 실현할 수 있는 폭력이 진정한 권력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요컨대, 마키아벨리가 "국가 그 자체의 보존"에 중점을 두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국가의 존립 자체가 위태로운 위기 상황(당시 이탈리아와 같은 상황)에서만 그러하다는 것에 주의해야 한다. 비상사태에 놓여 있을 때, 실제로 갖가지 악덕한 수단을 사용해서라도 국가를 존립시킬 것을 요구한 것은 맞지만, 마키아벨리의 궁극적인 목적은 시민의 자유를 보장하고자 했던 것이다. 마키아벨리를 이렇게 "이중적인 상황"을 가정하고 자신의 견해를 밝힌 사상가로 이해할 때만이 우리는 그를 올바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② 평가
물론, 이러한 이중적인 상황의 가정은 엄연한 현실을 생각해 보면 얼마든지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이라고 판단된다. 국가의 존립 자체가 어려운 상황에서 이상적인 도덕원칙만을 이야기할 수는 없는 것이다. 오히려 국가의 존립 자체를 당위적인 명제로 설정하고, 때로는 부도덕하고 기술적인 방법을 사용하는 것이 올바를 수도 있다. 하지만, 궁극적인 목표 자체를 "이상적인 도덕원칙이 구현되는 사회"로 놓는 것은 여전히 중요하다. 보통의 상황에서도 이중적인 상황을 가정한 채 논리를 전개하는 것은, "정의와 평등"같은 보편적 원리 자체를 완전히 파괴할 위험성이 아주 크기 때문이다.
사실, 궁극적인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사상가들도 마키아벨리와 같은 생각을 어느 정도 수용하고 있다. 예컨대, 홉스의 경우, "국가의 존립 자체"를 우선시했는데, 그것은 홉스가 마키아벨리와 같은 상황에 처해 있었기 때문이다. 둘다 나라 안팎의 위기 상황 속에서 국가 자체를 지키는 것이 급선무라고 주장했던 것이다. 둘다 권력국가사상이 아니냐는 오해를 받아온 것도 그 때문이다.
이러한 점이 칸트에게서도 어느 정도 나타난다는 점에 특히 주목할 필요가 있다. 칸트가 도덕에 정치를 종속시킬 것을 주장하기는 했지만, 현실적으로 도덕과 정치가 언제나 일치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은 수용한다.43) 그리고 칸트가 "무법의 자연상태"(ststus justis vacuus)와 "불법(부정의)의 자연상태"(status injustus)을 구분한다.44) 전자는 무법천지의 무정부상태이며, 후자는 불법의 폭정상태로서 국가는 존재하지만 국가가 시민의 자유와 안전을 보호하지 못하는 경우이다. 법철학적으로 법의 이념과 관련시켜 보면, 전자는 법적 안정성이 결한 상태이고, 후자는 정의가 결하여 있는 상태이다. 인간은 그들의 보호 울타리로서 전자의 상태에 대처하기 위하여 권력국가를 만들어 냈고 후자의 상태에 대응하기 위하여 법치국가를 만들어냈다. 국민이 체결하는 사회계약의 1차적 의미는 전자의 것이지만, 사회계약의 2차적 의미는 후자의 것이다. 칸트가 시민의 자유 보호를 궁극적인 목표로 설정하면서도 "국가의 존재가 시민의 보호에 선행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은 이러한 이중성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마키아벨리는 16세기 이탈리아의 "무법의 자연상태"에서는 일단 군주정 같은 권력국가를 건설하여, 일단 무법의 자연상태에서 벗어나는 것이 절실하다는 것을 주장한 것이고, 일단 "무법의 자연상태"를 벗어나면, 시민상호간의 자유와 평등이 보장되는 "공화정"이 건설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마키아벨리는 결코 "정의"마져 결한 상태를 옹호한 것이 아니다.
따라서, 일단 국가의 존재 자체가 중요하다면서, "국가의 존재는 시민의 보호에 선행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한 칸트와 "일단 국가의 보존을 위해서는 정치기술이나 비도덕성도 필요하다"는 마키아벨리의 생각은 거의 비슷하다고 하겠다. 또한, 평상시에는 시민의 자유가 보장되는 공화정이 바람직하다고 보았다는 점에서, 마키아벨리는 사회계약의 두가지 의미인 "무법의 자연상태 극복과 불법의 자연상태 극복"을 모두 인식하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이렇게 본다면, 마키아벨리의 정치사상이 권모술수로 점철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2) 안전국가.법치국가 논의에 비추어본 마키아벨리
그러면 다음에서는 마키아벨리의 정치사상이 법치국가사상에 비추어 어떻게 평가될 수 있는지 살펴보도록 하겠다. 먼저 "안전국가"의 개념을 중심으로 살펴볼 수 있다. "안전국가"는 "절대국가"와 대칭이 되는 개념이며, "형식적 안전국가"와 "실질적 안전국가"로 나누어 볼 수 있다.45) "형식적 안전국가"는 "질서국가, 경찰국가, 권력국가"라고도 불리우며, 개인의 안전보다는 전체의 안전에 우선적 가치를 부여하는 국가이다. 여기서는 형식적인 평화질서 확립자체가 목적으로 되어 있으며 개인의 실존조건의 안전은 이를 위하여 희생될 수도 있고, 또 희생될 것이 강요된다. 반면 "실질적 안전국가"는 "법치국가"로 불리우며, 개인의 안전을 제1차적 목적으로 하고 평화질서의 확립은 이 개인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수단으로 파악하는 국가를 뜻한다.
"법치국가" 개념을 중심으로도 살펴볼 수 있다. "법치국가"란 단순히 법으로써 다스리는 국가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권력을 법에 구속시킴으로서 인간의 자유를 보호하는 국가를 뜻한다.46) 법치국가의 개념도 "실질적 법치국가"와 "형식적 법치국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전자는 1차적으로 법에 의해 권력이 구속되어야 함으로, 그 다음 단계에서는 불변의 가치(인간의 존엄)에 의해 정당화되는 법치국가를 뜻한다. 그러나, 후자의 경우에는 1차적으로 법에 구속되는 것은 알지만, 그 이상의 것은 알지 못한다. 후자는 불변의 가치에 의해 구속받지 않기 때문에, 자칫 권력국가 또는 절대국가로 나아갈 위험성이 존재한다. 또 둘의 관계를 다른 말로 표현한다면, 전자는 자연법에 구속당하는 국가, 후자는 실정법에 구속당하는 국가로 파악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이에 비추어 마키아벨리의 정치사상을 평가해 보자. 먼저, 마키아벨리가 실질적 안전국가 사상을 가졌다는 점은 어느 정도 분명한 것 같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마키아벨리는 국가 그 자체를 목적으로하는 "권력국가"(형식적 안전국가)의 사상을 가지는 듯 하지만, 실제로는 시민의 자유를 최상의 가치로 여겼다. 비록 위급한 상황에서 민족국가 건설이 시급하다고 본 것은 사실이지만, 그가 궁극적으로 지향한 것이 시민의 자유와 평등이 보장되는 "공화정"이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는 시민의 안전을 우선시하는 "실질적 안전국가"의 사상과 일치한다.
또한 마키아벨리는 철저하게 법치주의자라는 것도 분명하다. 앞에서 살펴본 바대로, 그는 인민 뿐만 아니라, 군주의 권력이 법에 의해 구속되어야만 한다고 분명하게 주장하였다. 다만 실질적 법치주의자인가를 이야기하는 것은 간단하지 않은 문제이다. 물론, 그가 "소유의 자유", "인간의 존엄의 보호", "기회균등의 원리" 등이 공화제를 이루는 기초적인 원리라는 점을 분명히 하기는 했다. 하지만 그가 칸트나 루소와 같이 철학적 성찰로부터 자연법적 원리를 도출해낸 것은 아니다. 그는 로마공화정을 이상적인 모델로 삼고, 그곳에서 행해졌던 상황을 충실히 분석했으며, 그로부터 공화제의 원리들을 귀납적으로 도출해냈을 뿐이다. 이렇게 본다면, 마키아벨리가 법치주의를 지향했음은 분명하지만, 실질적 법치주의를 지향했다고 보기는 힘들게 된다.
3) 다른 사상들과의 비교
① 韓非子와의 비교
흔히들 韓非子를 동양의 마키아벨리로 비유하기도 하며, 일견 이둘은 비슷한 점이 많아 보이기도 한다. 그리고, 韓非子와 마키아벨리가 처한 시대적 상황은 거의 흡사하다. 韓非子는 전국시대의 전쟁상태에서 강력한 통일국가를 이루고자 하였으며, 마키아벨리는 16세기 유럽의 혼전 양상 속에서, 조국 이탈리아를 지켜내고자 했다.
먼저 韓非子의 법사상을 간략하게 요약해보자.47) 韓非子는 전국시대 후기에 법가의 제학설을 집대성하여 법가이론을 완성한 사람으로서, 수세기에 걸친 전쟁과 혼란으로 점철된 천하대란의 상태를 안정으로 이끌기 위하여 강력한 군주중심의 국가체제를 정립하고자 했다. 이러한 목적 하에서 전개된 韓非子의 법사상은 크게 法治, 術治, 勢治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신하들과 백성의 일체의 언행을 통제하기 위한 法治, 신하들로부터 군주의 권한을 보호하기 위한 술책으로서의 術治, 신민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천하를 호령하려고 하는 勢治 등은 하나 같이 군주 중심의 권력국가 사상을 대변한다. 韓非子의 최종목적은 군주의 이익을 보호하고자 하는 것에 놓여 있는 것이지 인민의 이익에는 관심이 없다. 法治는 권력을 실현하기 위한 도구일 뿐이며, 術治는 군주를 위한 술책이다. 勢治는 천하를 호령하기 위한 전제에 불과하다. 이렇게 본다면, 韓非子의 법치주의는 모든 사람(특히 정치권력)을 법의 지배 하에 두고자했던 서양의 법치주의사상와는 무관하다. 한비자의 법치주의는 군주를 구속하려고 했던 것도 아니었고, 인민을 위한 것도 아니었다.
그러면, 한비자를 마키아벨리과 비교해 보자. 흔히 마키아벨리의 여러 가지 비도덕적 정지지침과 한비자의 술치를 비교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이둘은 그점에서 매우 비슷하다.
한비자 : 군주는 그의 의도를 드러내지 말아야 한다. 군주가 그 속마음을 드러내 보이면 신하는 자신의 표현을 달리 꾸밀 것이다..... 군주는 지략이나 지혜도 감추어야 한다48)
마키아벨리 : 자비롭고 신의가 있고 인간적이고 정직하고 경건한(종교적인) 것처럼 보이는 것이 좋고, 또한 실제로 그런 것이 좋다. 그러나 달리 행동하는 것이 필요하면, 당신은 정반대로 행동할 태세가 되어 있어야 하며, 그렇게 행동할 수 있어야 한다. (군주론, 123쪽)
하지만, 궁극적인 목적이 무엇이냐에 대해서는 둘은 전혀 다른 결론을 도출한다. 한비자는 "군주의 이익" 그 자체가 목적이었기 때문에, 어떠한 상황에서도 계속하여 권력국가사상을 유지하였다. 전국시대의 천하대란을 평정하고 천하통일을 가져오게 한 권력국가론을 전개한 것은 그 당시의 시대적 요청에 맞는 것이었으나, 천하통일 후에도 (법치국가로 이행한 것이 아니라) 권력국가를 계속 유지한 것은 문제였다. 이를 받아들인 진나라가 천하통일을 하긴 했지만 곧 망한 것도 마찬가지의 이유이다.49)
그러나, 마키아벨리의 경우는 다르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마키아벨리는 궁극적으로 시민의 자유와 평등이 보장되는 "공화정"을 꿈꾸었으며, 당시의 시대적 상황 속에서 일단 "무법의 자연상태"를 벗어나고자 했던 것이다. 그래서, 일반적인 도덕이 우위에 있다는 사실을 언제나 인식했으며, 다만 위기 상황 속에서는 "비도덕적 정치행위"를 사용해서라도 일단 국가를 보호해야 한다고 했던 것이다. 일견 비슷해 보이는 "정치기술"들도 실은 그 이유가 전혀 다른 것인데, 한비자가 이를 "군주의 이익'을 위해서 사용한 것이라면, 마키아벨리는 이를 "시민의 자유보호"를 위해서 사용하려고 했던 것이다. 따라서, 단순히 마키아벨리와 韓非子의 정치기술이 유사하다고 해서 둘을 동일시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하겠다. 그리고, 이렇게 본다면 마키아벨리는 韓非子 보다는 오히려 홉스와 유사한 점이 더 많다고 하겠다.
② 홉스와의 비교
홉스가 처한 상황(종교전쟁과 내란)은 마키아벨리와 거의 유사했으며, 그들이 내놓은 대안 역시 거의 일치한다고 보여진다. 먼저, 홉스가 "만인에 의한 만인의 투쟁상태"를 벗어나는 것 자체가 급선무라고 본 것과 마키아벨리가 일단 "국가 그자체"를 보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았다는 점은 같다. 그리고 홉스가 "국가의 목적은 개인의 안전이다"50) (앞서 지적한 바대로) 마키아벨리가 자신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공화정의 최대가치를 "시민의 자유 보장"에First Book, Chap.16, pp.162~163)에 두었다는 사실과 완전히 일치한다. 게다가 두 사람 "국가 그 자체의 존속"을 상당히 강조함으로서, 권력국가사상이 아니냐는 의혹을 끊임없이 받았다는 점까지 비슷하다. 그러나 두사람은 "전쟁상태"에서 일단 국가를 보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 것이지, "권력국가사상"을 궁극적으로 지향한 것은 결코 아니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하지만, 홉스나 마키아벨리는 모두 "인간의 존엄"이나 "인권"을 자연법적인 법가치로 파악한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자연법이 실정법의 우위에 있으며, 실정법이 이에 구속되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하지는 못했다. 이점은 그들의 사상이 "실질적 법치국가"를 지향했다고 보기 힘들게 만드는 이유이다.
4) 국가권력의 문제와 마키아벨리 : 마키아벨리즘의 현대적 의의
논의가 여기까지 이르렀다면, 이제 마키아벨리의 현대적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해 논의해볼 필요가 있다. 일단 마키아벨리의 정치사상을 악명높은 "통상적인 의미의 마키아벨리즘"으로부터 구출하는 데에는 어느 정도 성공한 듯 하다. 이로서, 마키아벨리의 맺힌 恨은 풀어주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500년 전 한 인물의 맺힌 恨을 풀어주었다는 것에 무슨 현대적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다. 두 번째로 우리는 마키아벨리의 정치사상이 근대적 법치국가사상에 근접해 있다는 점도 찾아낼 수 있었다. 하지만, 이것 역시 만족스러운 성과는 아닌 듯하다. 이미 수많은 사상가들이 잘 정리해 놓은 견해를 "심지어 마키아벨리에게서도 발견했다"는 것이 무슨 큰 의미를 가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마키아벨리에게서만 찾을 수 있는 현대적 의미는 없는 것일까?
마키아벨리의 현대적 의미는 오히려 국가권력문제에 대한 마키아벨리의 진지한 성찰에 있다고 보는 것이 올바를 것 같다.51) 서구 맑시즘 사상가인 알튀세(Louis Althusser)와 그람시(Antonio Gramsci)는 지금까지와의 논의와는 다소 다른 맥락에서 마키아벨리를 재평가한다. 그람시는 군주론이 "체계적인 논술이라기 보다는 정치이념과 정치과학이 극적인 형태의 신화 속에 혼합되어 있는는 생동적인 작품"52)으로 보아야 한다면서, 군주론을 "특정한 정치적 목표를 지향하는 하나의 집단의지가 형성되는 과정을 보여줌에 있어, 길게 꼬여가는 논술이나 행동방식의 원칙이나 기준에 대한 현학적인 분류에 의존하지 않은 책"53)으로 파악한다. 그리고 그들은 마키아벨리를 국가와 권력의 본질에 대해 국가와 권력의 본질을 신비주의나 관념론에 파묻힘이 없이 명쾌하게 기술한 사상가로 높이 평가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마키아벨리가 각종 부르조아 이데올로기의 본질을 파헤친다는 점이라고 본다.54) 부르조아 이데올로기들은 국가의 기원에는 공포스러운 것은 아무것도 없고 오직 자연과 법만이 존재한다는 점을 보여주려고 하고, 국가란 법에 다름아니고 법만큼 순수하며, 이 법이 인간적 본성에 속하듯이 국가보다 더 인간적인 것은 있을 수 없다는 점을 제기한다. 그러나 국가의 기원은 그런 것이 아니라, 폭력과 투쟁, 술수와 속임수로 점철되어 있다는 점을 마키아벨리는 분명히 제시했다는 것이다.
국가가 법과 자연으로부터 태어났다고 말하는 대신에 그(마키아벨리)는 어떤 국가가 민족국가가 되기에 충분할 만큼 지속되고 강력해지려면 어떻게 탄생되어야 하는가를 말해줍니다. 그는 법의 언어로 말하지 않으며, 모든 국가의 형성에 필수불가결한 무장력의 언어로 말합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종교를 활용해야 하는 종교없는 정치의 언어로, 도덕적이어 하나 도덕적이지 않을 수 있어야 하는 정치의 언어로, 증오를 물리쳐야 하나 공포를 불러일으켜야 하는 정치의 언어로 말합니다. 그는 계급들간의 투쟁의 언어로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권리와 법과 도덕은 적절한 종속적인 지위에 놓습니다.55)
사실, 우리가 국가라는 테두리 속에서 삶을 영위하는 한, 마키아벨리즘은 결코 제거될 수 없다. 마키아벨리즘이야말로 근대국가를 존재케 한 이념적 기초들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이다. 마키아벨리즘은 국가와 권력이 있는 한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아무리 고상한 논리와 원리로 국가의 개념을 설명한다고 해도, 국가와 정치가 근본적으로 폭력과 권모술수로 점철되어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그리고 국가의 이러한 본질을 이야기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두려운 일일지도 모른다.56) 하지만, 차라리 이런 현실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인정하는 것이 문제의 해결에 오히려 도움이 될 것이다. 국가와 권력은 원래 폭력과 권모술수로 일관되어 있다는 점을 인정하고, 이를 이성과 법을 통하여 어떻게 적절히 제어할 것인가를 성찰하는 것이 훨씬 현실적인 방안인 것이다.57)
그리고 더 나아가, 국가와 권력의 폭력성과 기만성이 나타나게 되는 근본적인 이유를 따져보아야 한다. 그리고, 국가의 폭력성과 권력의 자의성이 근본적으로 소멸될 수는 없는지 진지하게 생각해 보아야 한다. 마키아벨리는 국가의 존립 자체가 위태로운 상황에서는 정치기술이 필요하지만, 그렇지 않은 공화제에서는 그럴 필요도 없고, 그러해서도 안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는 너무 순진하게 생각한 듯하다. 국가의 존립이 안정화된 상황에서도 마키아벨리가 지적한 권력의 기만성과 폭력성은 계속해서 나타난다. 정치인들은 끊임없는 속임수로 국민들을 현혹시키고, 국가권력은 계속해서 남용되는 것이 현실이다. 우리는 "위기상황"에서 뿐만 아니라 "일상상황"에서도 왜 그런 일이 반복되었는지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분석해야 한다.
요컨대, 마키아벨리는 비록 "위기상황"에 한정시키기는 했지만, 국가와 권력의 본질을 그 누구보다도 생생하게 그려냈던 사람이다. 너무도 당연한 현실이지만 감히 이야기할 수 없었던 국가와 권력의 본질을 묘사함으로서, 우리에게 새로운 성찰의 계기를 던져주었던 것이다 이것이 16세기의 마키아벨리가 21세기를 앞둔 우리에게 제시하는 "마키아벨리즘의 현대적 의의"일 것이다.
6.결론
지금까지의 내용을 간략하게 요약해보자. 일단, 우리는 두가지 전제를 제시했다. 하나는 마키아벨리가 "조국 이탈리아의 보존"이라는 절대절명의 과제에 앞에 서있었다는 점이다. 마키아벨리는 이를 위해 강력한 통일국가를 건설하고자 했다. 다른 하나는 마키아벨리의 부정적 인간관이다. 그는 인간이 본래 악하기 때문에, 한없이 선하기만 해서는 인민의 지도자가 될 수 없으며, 인간의 악한 본성을 통제하기 위한 법과 제도가 필요하다고 보았다.
그리고 마키아벨리는 통일국가 건설을 위해서라면 때로는 권모술수가 필요하며, 윤리적.종교적 덕을 정치에 그대로 끌어들이다면, 강력한 국가를 이루는데 있어서 실패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우리는 이를 "현실주의적 정치사상"이라는 말로 요약하였다. 그러나, 마키아벨리가 권력국가 자체를 지향한 것은 아니었으며, 통일국가를 건설한 후에는 로마공화정과 같이 "시민의 자유와 평등"이 보장되는 공화정을 지향했다는 점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이점은 마키아벨리가 "이중적인 상황"을 전제로 했다는 점을 통해 잘 알 수 있었으며, 이를 법치국가사상과 비교하기도 하고, 여러 사상가들과 비교고찰해 보기도 했다.
마지막으로는 지금까지 논의 성과로 "통상적인 의미의 마키아벨리즘"과 "마키아벨리의 정치사상"은 다르다는 점을 알게된 것, 마키아벨리에게서도 칸트, 홉스 등의 견해가 발견된다는 것 등이 있다고 말했다. 한편, 이것이 분명 성과이기는 하지만, "현대적 의의"가 될 수는 없다는 점을 아울러 지적했다. 그리고 마키아벨리 정치사상의 현대적 의의는 오히려 권력의 문제를 생생하게 묘사함으로서, 국가와 권력의 문제에 대한 진지한 성찰의 계기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찾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하는 것으로서 글을 마무리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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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키아벨리/김영국 역, 마키아벨리와 군주론, 서울대학교 출판부,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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홉스(Thomas Hobbes)/한승조 역, 라비아이던, 군주론/리바이어던, 삼성출판사, 1990
1) 그래서, 마키아벨리즘의 개념을 1) 공익이나 국가이익을 도덕적 선악과 구별하려는 "마키아벨리 자신의 정치사상" 2) 대부분의 사람들이 통상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으로서, "공익을 도외시하면서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오직 어떤 개인이나 파당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정치관행" 3) 가장 광범위한 의미로서 "정치라는 범주를 떠나 사회의 삶 속에서 자기 자신의 이익을 위해 거리낌없이 남을 희생하는 처세방식" 등으로 나누어 보기도 한다.(곽차섭, 마키아벨리즘, 김영한.임지연 편, 서양의 지적운동, 지식산업사, 1994, 216쪽)
2) "군주론"의 원제는 "Il Principe"이며, 국내 번역본으로는 강정인, 군주론, 까치, 1994 ; 김영국, 마키아벨리와 군주론, 서울대출판부, 1995 ; 임명방/한승조 역, 군주론/리바이어던, 삼성출판사, 1990 등이 있다. 군주론에 대한 인용은 강정인 교수의 번역서를 사용했으며, 쪽수를 본몬 속에서 괄호 안에 적어놓는 방식(군주론, **쪽)으로 인용한다.
3) 원제는 "Discorsi sopra a prima decade di Tito Livio"이며, 한국말로는 "로마사론", "리비우스론", "디스코르시" 등으로 번역하고 있다. 이 글에 대한 인용은 Machiavelli / Detmold(tr.), Discourses on the Fiirst Ten Books of Titus Livius, The Prince and the Discourses, NewYork : The Modern Library, 1950 을 이용하였으며, 쪽수를 본몬 속에서 괄호 안에 적어놓는 방식(Discourses, **쪽)으로 인용한다.
4) 헤일, 마키아벨레와 자급자족국가, 톰슨 편/김종술 역, 서양근대정치사상, 서광사, 1990, 38쪽.
5) 세이빈.솔슨/성유보.차남희 역, 정치사상사1, 한길사, 1997, 512~513쪽.
6) 위의 책, 514~517쪽.
7) 김영국, 마키아벨리와 군주론, 1995, 서울대 출판부, 6~7쪽.
8) 위의 책, 20~21쪽.
9) 위의 책, 24~25쪽.
10) 강정인, 서양근대정치사상의 탄생 : 마키아벨리의 현실주의, 사상, 1999 봄호, 200쪽.
11) 스키너/강정인 편역, 마키아벨리의 이해, 문학과 지성사, 1993, 63쪽.
12) 이진우, 마키아벨리의 부정적 인간간과 정치기술, 사회철학대계1, 민음사, 1993, 238쪽.
13) 이하 설명은 이진우, 마키아벨리의 부정적 인간관과 정치기술, 238~239쪽 참조.
14) 심재우, Thomas Hobbes의 법사상, 법사상과 민사법(현승종박사 화갑기념논문집), 법문사, 1979, 68~75쪽.
15) 이진우, 마키아벨리의 부정적 인간관과 정치기술, 240쪽.
16) 정승현, 정치질서를 통한 인간본성의 馴致 : 마키아벨리의 정치사상을 중심으로, 현대사회 28, 1987 겨울호, 249쪽.
17) 이진우, 마키아벨리의 부정적 인간관과 정치기술, 230쪽.
18) 이러한 생각은 인간의 정치적 상황에 대해 환상을 전혀 갖지 않는 독특한 것이라고 할 수 있으며, 홉스, 로크, 흄의 정치사상에서 계속되었다. (월린, 마키아벨리의 정치사상 : 정치, 그리고 폭력의 경제학, 스키너 외/강정인 역, 마키아벨리의 이해, 문학과 지성사, 1993, 223쪽)
19) 강정인, 서양근대정치사상의 탄생, 210쪽.
20) 곽차섭, 마키아벨리즘, 219쪽. ; 이렇게 국가를 보존하기 그 힘을 증대시키기 위해서 정치가가 반드시 따라야 하는 통치원리를 "국가이성"라고 불렀으며, 이는 17세기 "국가이성"에 대한 격렬한 논쟁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논쟁의 시발이 마키아벨리의 현실주의 정치사상이었음은 물론이다. (국가이성 논쟁에 대한 간략한 개요는 곽차섭, 마키아벨리즘과 근대국가, 한국사 시민강좌 17권, 1995, 193~207쪽 참조 ; 마키아벨리를 국가이성의 창시자로 보는 대표적인 책으로는 마이네케, 국가권력의 이념사, 민음사, 1990, 57~83쪽 참조)
21) 이진우, 마키아벨리의 부정적 인간관과 정치기술, 230쪽.
22) 이신일, 마키아벨리즘에 관한 연구, 국제문화연구(청주대), 19877쪽.
23) "덕"의 개념에 대해서는 마키아벨리/강정인 역, "군주론" 의 "부록2", 195~197쪽 참조.
24) 이하의 설명은 강정인, 서양근대정치사상의 탄생, 212~214쪽에 주로 의존함.
25) 월린, 마키아벨리의 정치사상, 205쪽.
26) 위의 책, 203쪽.
27) 위의 책, 203쪽.
28) 키케로의 도덕론에 대한 설명은 마키아벨리/강정인 역, 군주론, 역자해제, 232~235쪽을 참조한 것이다.
29) 칸트/이한구 역, 영원한 평화를 위하여, 서광사, 1992, 61쪽.
30) 칸트, 영구평화론, 64쪽~69쪽.
31) 앞의 책, 76쪽. (강조는 필자의 것)
32) 강정인, 서양근대정치사상의 탄생, 208쪽.
33) 한편, 이러한 마키아벨리의 주장은 (비록 외양의 조작을 통한 것이지만) 군주에게 대중의 지지가 필수불가결함을 역설함으로써, 그의 공화주의적 사상을 잘 보여주고 있다고 해석하기도 한다. (강정인, 서양근대정치사상의 탄생, 216쪽.)
34) 이진우, 마키아벨리의 부정적 인간관과 정치기술, 253쪽.
35) 다음의 견해대립에 대한 소개는 강정인, 서양근대정치사상의 탄생, 218~221쪽, 진원숙, 군주론의 서술동기 일고, 동서문화(계명대), 제26집, 1994를 참조했음
36) 진원숙, 군주론의 서술동기 일고, 164쪽.
37) 군주론의 제일 첫장에는 마키아벨 리가 메디치 전하에게 이글을 헌정한다는 내용(헌정사)이 담겨져 있다.
38) 이신일, 마키아벨리즘에 관한 연구, 256쪽.
39) 이진우, 마키아벨리의 부정적 인간관과 정치기술, 250~251쪽.
40) 스키너, 마키아벨리, 113~114쪽.
41) 위의 책, 241쪽. : 이진우 교수는 이 외에도 "이 두 극단의 중간에 처해 있는 상태"도 전제하고 있다고 한다.
42) 위의 책, 242쪽.
43) 칸트, 영구평화를 위하여, 75쪽.
44) 심재우, 인간의 존엄과 법질서, : 특히, 칸트의 질서사상을 중심으로, 법학논집(고려대), 제12집, 1974, 122~123쪽.
45) 심재우, Thomas Hobbes의 법사상, 72~75쪽 참조.
46) 심재우, 법치주의와 계몽적 자연법, 법철학연구, 제1권, 1998, 11쪽.
47) 아래의 韓非子에 대한 설명은 심재우, 韓非子의 법사상, 법학논집(고려대), 제32집, 1997 과 조천수, 법가의 법치주의사상 연구, 고려대 박사학위 논문, 1996, 131~157쪽 에 전적으로 의존하였다.
48) 韓非子, 主道編,. (심재우, 한비자의 법사상, 255쪽에서 재인용)
49) 심재우, 韓非子의 법사상, 264쪽.
50) 홉스/한승조 역, 리바이어던, 임명방.한승조 역, 군주론/리바이어던, 삼성출판사, 1990, 260쪽
51) 이러한 평가에 대한 간략한 소개로는 곽차섭, 마키아벨리즘, 239~241쪽
52) 그람시/이상훈 역, 그람시의 옥중수고1, 거름, 1997, 123쪽.
53) 위의 책, 같은 곳.
54) 위의 책, 235쪽.
55) 알튀세/김석민 역, 마키아벨리의 고독, 새길, 1992, 236쪽.
56)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이 "교황청"에 의해 금서가 된 것도 같은 이유에서 였을 것이다.
57) 곽차섭, 마키아벨리즘, 24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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