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本, 韓.日 關係

"한국, 절대 선진국 못돼" 했던 日석학, 지금은…

이강기 2015. 9. 23. 22:21

"한국, 절대 선진국 못돼" 했던 日석학, 지금은…

[중앙선데이] 입력 2012.05.13 02:49 / 수정 2012.05.13 08:40

“한국, 과잉복지로 저성장 맴도는 일본 따라가지 말아야”
세계적 경제·경영 석학 오마에 겐이치 인터뷰

"중앙선데이, 오피니언 리더의 신문"


일본의 세계적 경영컨설턴트 오마에 겐이치(大前硏一·69·사진)는 1999년 “한국은 절대 선진국이 될 수 없다”는 글을 발표해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7년 전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는 “한국이 일본을 따라잡으려면 멀었다”고도 했다. 그의 요즘 생각은 어떨까.

아울러 한국에도 일본처럼 고령화와 저성장·장기침체의 그림자가 드리워지는 이때, 양국을 위한 제언은 무엇일지도 궁금했다. 서면·전화 인터뷰를 요청한 지 여러 달 만에 “기자와 얼굴을 맞대는 인터뷰만 하겠다”는 회신이 돌아왔다. 한국 언론과는 2년여 만의 첫 인터뷰다. 지난 8일 일본 일왕 거처인 고쿄(皇居)와 야스쿠니(靖國) 신사가 자리한 도쿄 중심가 지요다구 그의 사무실을 찾았다.

고색창연한 갈색 벽 2층 건물에 들어서자 1층 로비 벽에 ‘비즈니스 브레이크스루(Business Breakthrough)’라는 안내판이 눈에 들어왔다. 오마에 겐이치가 설립해 학장을 맡고 있는 경영대학원 겸 경영콘텐트 제공업체의 이름이다. 사업의 돌파구나 경영해법 정도의 뜻이다.

인터뷰는 2층 그의 사무실 옆 접견실에서 이뤄졌다. 한국을 200차례 이상 찾은 지한파답게 많은 상패 속에는 고려대 방문교수, 이화여대 명예 석학교수 위촉장이 눈에 띄었다. 회색 줄무늬 양복에 노타이 차림으로 나타난 그의 첫인상은 나이보다 젊고 활기차 보였다. 2시간 반 동안 자리를 뜨지 않고 열변을 토했다.

-요즘 주로 하는 일과 관심사는.

“비즈니스 브레이크스루에서 6000시간 분량의 강의·영상 콘텐트를 만들었다. 삼성 기업지배구조 등 한국 기업의 이슈도 수업 주제다. 전 세계 어디서나 스마트폰으로 공부할 수 있는 모바일 강의 시스템을 구축했다.”

-한국 경제는 어떻게 보나.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한국에 찬사를 보내고 삼성전자 등 많은 대기업이 잘나가고 있다. 하지만 저성장 우려도 크다.
 
“한국은 1997년 외환위기를 겪었지만 내가 한국 경제의 더딘 구조조정을 비판한 99년 이후 13년간 큰 진보를 이뤘다. 삼성전자ㆍ현대자동차 같은 글로벌 기업이 탄생했고, 해외 유학 후 영어와 정보기술(IT)로 무장한 우수 인재가 넘친다. 하지만 한 계단 더 비약하려면 과제가 많다.

먼저 탄탄한 중소기업을 키워야 한다. 현재 한국의 중소기업은 매력이 없다. 대기업의 하청업체일 뿐이다. 이러다 보니 한국 인재들은 대기업 취직이나 공무원 시험에 매달린다. 그런데 한국 대기업들은 글로벌 기업이 되면서 해외 인재 채용 비율을 늘리고 한국 내 채용은 줄이고 있다.

한국의 젊은 인재들이 취업난을 겪는 이유다. 국가 차원에서 청년창업 육성책을 통해 참신한 벤처기업을 많이 탄생시켜야 한다. 이렇게 좋은 인재가 많은데 한국에 ‘아시아의 실리콘밸리’ 같은 걸 만들 생각을 왜 못 하나. 대기업이 대학과 손잡고 청년창업을 적극 지원하면 대기업에 대한 국민 이미지도 개선될 것이다.”

-중소·벤처기업 육성도 좋지만 지금은 대기업도 성장에 어려움을 겪는다.

“대기업들이 지속성장을 하려면 거버넌스(Governanceㆍ통치력)를 확립해야 한다. 삼성ㆍ현대자동차ㆍ포스코 다 마찬가지다. 그중 가장 규모가 큰 삼성을 보자. 그룹 매출 비중의 70%를 차지하는 삼성전자의 경우 외국인투자자가 50% 이상의 지분을 갖고 있다.

이들이 지분만큼 목소리를 높이지 않는 건 이건희 회장의 리더십을 믿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회장 이후의 삼성이다. 실적이 심상찮으면 외국인투자자들은 곧바로 경영권 교체 등을 요구할 수 있다. 대주주의 지분율을 높이면 좋겠지만 돈이 많이 든다. 그게 쉽지 않으면 장기적으로 계열 분리를 할 수도 있다. 일본도 초창기에는 5대 재벌이 이끌었지만 지금은 다들 분화해 기업별 경쟁력과 일본 산업을 키웠다.”

-한국은 12월 대선이 있다. 정치권 과제는.

“훌륭한 지도자상이 절실하다. 한국 내에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겠지만 밖에서 보기에는 김대중 전 대통령과 이명박 대통령을 높이 평가한다. 김 전 대통령은 과감한 구조조정으로 한국을 외환위기에서 구했다. 그가 아니었으면 오늘날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는 없었을지 모른다.

이 대통령은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국가적 위상을 높였다. 미국과의 동반자적 관계를 만든 점 등은 인정해야 한다. 일본에서는 80년대 나카소네 야스히로 전 총리가 그런 역할을 했다. 물론 이 대통령이 ‘747공약’ 등의 실패나 소통 부재 등으로 한국 내 지지율이 낮은 건 알고 있다.

한국의 대선 주자들이 현 대통령을 깎아내리고 국민에게 인기영합을 하려 한다면 국가적 불행이다. 국민에게 아부하고 선심성 정책을 쏟아내는 정치인은 지금 일본에 많다. 필요하면 얼마든지 수입해 가라.”

-일본 얘기를 해 보자. 저성장의 늪이 깊다. ‘잃어버린 10년(일본식 장기 경제 침체)’의 원인은 무엇인가.

“정확히 말하면 90년대 초에 시작해 ‘잃어버린 20년’이다. 일본이 장기 불황에 빠진 건 정치 실패가 한몫했다. 90년대 부동산 거품이 꺼지고 은행 부실자산이 커졌을 때 과감하게 개혁하지 못했다. 천문학적인 국민 세금을 끌어와 거의 한약 먹이는 수준으로 근근이 약발만 유지했다.

결국 정부는 빚더미에 올라앉았다. 정치적으로는 96년 오자와 이치로 전 민주당 대표와 연립했던 호소카와 정권 때 중선거구제를 소선거구제로 바꾼 것이 보디블로(Body blow·결정타)였다. 그때부터 일본 정치인들의 배포가 작아졌다.

예를 들어 요코하마는 시장 한 명에 국회의원 8명이다. 이 때문에 넓은 시각을 갖고 나라 전체와 글로벌 경제를 생각하는 정치인이 줄었다. 대개 지하철역에서 확성기 들고 아주머니들 환심 사는 ‘확성기 정치’에 열을 올리게 된 것이다.”

-국민이 정치를 바꿀 수는 없나.

“국민이 이런 정치권의 잘못에 대해 불만스러워하지 않는다. 특히 일본 젊은이들은 불만은커녕 성공에 대한 욕심도 적다. 현재 상태에 그저 만족한다. 아예 욕심을 버리고 아르바이트로 생활을 잇는 젊은이도 상당수다. 고령층은 주요 선진국 중 돈이 가장 많다.

일본인은 죽을 때 갖고 있는 1인당 총자산이 평균 3500만 엔(약 5억원)에 달한다. 이 돈을 소비하거나 투자하면 경제활력에 도움이 될 텐데, 그냥 갖고 있기 때문에 저성장 흐름을 깨기가 힘들다.”

-일본은 세계 3대 경제대국이다. 위기를 여러 번 극복한 저력이 있지 않나.

“물론 그렇다. 하지만 저성장 흐름을 바꾸려면 꼭 해야 할 것이 있다. 글로벌 시장에 적극 뛰어들고 해외 투자를 유치하는 일이다. 현시점에서 일본 경제에 희망을 주는 건 글로벌 경쟁력을 가진 부품ㆍ소재기업들이다. 전 세계 웬만한 기계나 전자제품에는 일본이 만든 부품이 들어간다. 타이어 생산업체인 브리지스톤, 건설장비업체인 고마쓰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이 일본 경제의 성장을 주도할 수 있다.”

-7년 전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이 일본을 따라잡으려면 아직 멀었다”는 취지의 말을 했다. 지금도 같은 생각인가.

“그 당시 삼성전자가 소니의 실적을 앞질렀을 때다. 삼성이 더 잘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과정에서 나온 말이었다. 다소 오해의 소지가 있었다. 또 그때는 삼성 등 한국 대기업들의 실적이나 미래 비전이 지금보다 뚜렷하지 않았다. 이건희 회장은 2세 경영자로서 열심히 해 큰 성과를 이뤘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한국이 일본을 따라잡는 건 본질이 아니다. 중요한 건 한국이 일본의 실패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한국만의 강점을 살려서 저성장을 극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무엇을 타산지석으로 삼으란 말인가.

“일본은 과도한 복지가 저성장을 낳았다. 그런 측면에서 대선을 앞두고 한국에서 복지 논쟁이 벌어지는 건 안타깝다. 한국은 아직 더 성장해야 할 때다. 복지를 간판 정책으로 선택해 성공한 정부는 전 세계 어디에도 없다. 복지는 마약과도 같다. 한 번 맛보면 헤어나기 어렵다.

일본은 엄청난 국가 부채를 지고 있지만 국민은 구급차를 택시처럼 부르고 매우 싼값에 의료보험을 이용한다. 이제 일본은 결과의 불평등을 인정하지 않는 지경이다. 운동회 때 10명이 달리기를 하면 순위가 갈리게 마련인데, 일본 사람들은 골인지점 앞에서 멈춰서 기다리다가 다같이 손잡고 들어간다. 한국은 그러지 않길 바란다.”

-한국의 강점을 꼽는다면.

“젊은 인재들이 뛰어나다. 저출산ㆍ고령화 때문에 성장이 어려울 거라는 우려는 어떤 점에선 틀렸다. 21세기는 인구의 양보다 질이 중요하다. 한국 인구가 일본의 3분의 1밖에 되지 않지만 해외 유학을 하고 외국어에 능통한 젊은이들을 보면 한국이 일본보다 월등하다. 한국 젊은이들에게 큰 감명을 받고 있다. 한국 대기업과 정부는 이들이 창업해 자기 능력을 맘껏 펼칠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 줘야 한다.”

-소니ㆍ파나소닉 등 일본 간판 대기업들의 퇴조가 두드러진다. 삼성전자ㆍ현대자동차 등 잘나가는 한국 대기업과 대비된다.

“일본과 한국은 저변이 다르다. 일본에는 삼성전자ㆍ현대자동차 같은 글로벌 대기업이 100개가 넘는다. 삼성전자가 소니ㆍ파나소닉을 이기고 글로벌 IT 정상기업이 된 건 국가 대 국가 차원에서 볼 일이 아니다. 기업 세계의 자연스러운 세대 교체다. 소니도 과거 미국 기업을 이기고 정상에 올랐다.

마찬가지로 지금 한국 기업 중 상당수는 차이완(중국+대만) 기업들의 맹추격에 쫓기고 있지 않나. 일본 기업들은 요즘 일본 내에서보다는 해외에 거점을 두고 수익을 내고 있다. 과거 한국 대기업들이 일본 부품을 많이 사서 일본과의 무역불균형이 크다는 지적이 있었다.

최근 한국의 대일 무역적자가 줄어든 듯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많은 일본 기업이 한국에 공장을 차리고 예전보다 훨씬 더 빠르고 쉽게 한국 대기업에 부품을 공급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저성장 극복의 구체적 아이디어는.

“일본 제2의 도시인 오사카의 변신을 눈여겨보자. 젊은 나이의 하시모토 도루 오사카 시장이 이끄는 ‘오사카 도(都) 구상’이 그것이다. 오사카를 중심으로 관서지방을 묶어 경제특구로 지정한 뒤 도쿄에 이은 또 다른 수도로 만들자는 게 핵심 내용이다. 중앙집권이 아닌 지방분권을 통해 도시와 지역경제를 살리자는 취지다.

이를 위해 하시모토 시장은 세금을 더 걷기보다 해외에서 기업과 투자자를 유치하는 방법을 택했다. 국민을 위해 바람직한 선택이다. 일본의 중앙정치는 관료적이고 아마추어 수준이어서 중앙에서 뭘 바꾸기보다 지방에서 이런 성공 스토리를 만드는 게 훨씬 빠르다.

오사카 도가 완성되면 국내총생산(GDP) 기준으로 전 세계 8위 수준의 경제 규모가 될 수 있다. 한국에서는 인천경제자유구역이나 제주특별자치도가 오사카와 비슷한 모델이다. 하지만 한국도 인천이나 제주도보다 훨씬 더 큰 차원의 지역발전 구상을 세울 필요가 있다.”



오마에 겐이치 1999년 7월 일본의 격주간 국제정보지 ‘사피오’에 ‘한국이 경제적으로 일어설 수 없는 이유’라는 자극적인 글을 게재했다. ‘한국 기업은 핵심 부품을 만들지 못하고, 한국 정부는 경제 회생 비전이 없어 절대 선진국이 될 수 없다’는 내용이었다. 이후에도 한국 경제에 대해 날카로운 지적과 비판적 분석을 꾸준히 내놓았다. 미국의 세계 대 경영컨설팅 업체 맥킨지에서 23년간 일하며 일본 지사장과 아시아ㆍ태평양 회장을 지냈다. 일찍이 94년 영국 이코노미스트지는 피터 드러커, 톰피터스 등과 함께 오마에 겐이치를 세계 5대 경영구루(Guruㆍ권위자)로 꼽았다. 「부의 위기」「지식의 쇠퇴」등 100권 이상의 저술이 있고 최근작은 촌철살인 어록을 모아 3월에 출간한 「난문쾌답」이다. 와세다대 이공학부, 도쿄공업대 석사, 미 MIT원자력공학 박사 출신이다.

도쿄=이태경 기자 unipen@joongang.co.kr


[일인 칼럼 파문] "DJ는 한국경제 살리지 못한다"

경제평론가 오마에 겐이치…"한 일은 '한국의 미국화'뿐" .

요즘 정치권과 재계에 일본의 경제평론가 오마에 겐이치 붐 이 일고 있다. 한나라당 이상득 정책위 의장이 7월말 당무위원들 에게 배포한 오마에 겐이치의 컬럼은 일본 격주간 시사지 'SAPIO' (사피오) 최근호에 게재된 것. 제목은 '김대중 대통령이 이끄는 한국이 경제적으로 다시 일어설 수 없는 이유'로 김대중대통령의 경제정책을 비판하는 내용이다.

▲ 일본의 경제평론가 오마에 겐이치는 김대중 대통령이 IMF 경제개혁정책에서 중요한 판단 착오를 했다고 주장한다.

이 글에서 오마에 겐이치는 "김 대통령의 경제정책 방향이 잘 못 설정돼 있으며 독특한 상품을 만들어내지 않는 한국경제는 미 래가 없다"고 비판하고 있다. 또 IMF구제금융에 대해서도 『미국 은행들을 살리기 위한 조치"라고 판정하고 있다. 이 의장은 "김 대통령이 추진하는 경제 정책의 허상을 적절하게 비판한 글로 시 사하는 바가 커 국회의원들에게 참고용으로 번역,배포했다"고 말 했다.

오마에 겐이치는 한국에도 널리 알려져 있는 경제평론가. 와 세다대, MIT대 출신 경영컨설턴트로 맥켄지 일본지사장을 역임했 으며 국내에도 그의 저서가 많이 번역돼 있다. 그의 반미적 시각 에 대해서는 비판도 적지 않지만 최근 IMF 외환위기의 재연을 우 려하는 상황에서 참고할만한 점도 있다는 평가도 나오고있다. 다 음은 칼럼의 요지.

◆미국이 하라는대로 재벌해체 98년 2월 취임 이래 김대중 대통령이 무엇을 해왔는가 내게 묻는다면 결국은 한국을 미국화시킨 것뿐이라고 하겠다. 그는 미 국이 하라는대로 이제까지 한국의 경제 성장을 지탱해 온 재벌을 해체했다. 어떤 새로운 경제회생 비전도 제시하지 못하고 IMF나 미국계 투자은행들이 하라는 대로 재벌 해체 작업을 시작한 것이 다. 소위 미국의 금융 제국주의를 지지하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 다. 당연히 이러한 지도자는 미국내 평판이 좋기 때문에 미국의 타임지는 표지인물로 싣기도 하고, 뉴스위크는 특집을 싣기도 하 는 등 열심히 장단을 맞추고 있다.

어쨌든 한국 경제는 소강 상태를 유지하면서 회복세를 보이고 는 있으나 그 이유는 미국이 하라는 대로 복종하고 있기 때문이 다. 실물경제는 그다지 개선되고 있지 못하다. 원래 한국 경제는 그렇게 나쁘지 않았다. 직접적으로는 중앙은행의 외환 비축이 부 족했기 때문에 위기에 처하게 된 것이며, 간접적으로는 미국으로 부터 지나치게 많은 외화를 빌렸는데-정확히 말하면 미국이 지 나치게 빌려주었다-이러한 사실들이 원인이 되었던 것이다.

◆한국은 절대 선진국이 될 수 없다 한국에 상환능력이 없다는 것을 안 미국은 한국경제가 무너지 자마자 구제금융을 도입했다. IMF는 가맹국으로부터 모은 공적 자금으로 원조하는데 한국의 경우,그것은 한국에 돈을 빌려준 미 국 은행들을 살리기 위한 원조였다. IMF의 구제시스템을 도입함 으로써 한국에 빌려준 자금의 회수를 확실히보장받아 미국은행을 보호했다는 것이 한국경제 위기의 진상이다.

미국계 투자은행들은 재벌해체 과정에서 이득을 보았고, 프랑 스나 영국기업에 매각한 M&A(기업합병-인수) 과정에서 돈을 벌었 다. 미국의 회계사무소들도 그러한 매각 가치 평가를 통해 이익 을 챙겼다. 한 마디로 미국만의 잔치판이었으며 미국은 한국경제 의 미국화를 통해 철저히 우려먹었으며 몇번이고 만만히 본 것이 다.

그 결과 한국은 어떻게 되었는가. 재벌은 약체화되어 자력회 생이 곤란하게 되었다. 게다가 새로운 기업은 아직 성장하지 못 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인들은 일본인들과 달리 저축 성향이 낮아 지금처럼 주가나 통화량이 회복되면 바로 소비를 늘 려 비싼 사치품들을 사기 시작한다.

표면적으로는 미국화가 진행되면서도 한편으로는 한국경제의 근본적인 문제점은 그 어느 것도 해결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한 마디로 미국 은행으로부터 빌린 돈이 IMF로 빌린 돈으로 바뀐 것 뿐이다. 그 부채는 한국 국민이 갚아야 한다.

앞으로 한국의 무역흑자는 어려울 것이고 더욱이 환율은 엔저 로 치닫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은 절대 선진국이 될 수 없 다. 한국은 국민들의 살림이 넉넉해지면 국가가 경쟁력을 잃게되 는 시스템이다.

취임한지 1년 4개월이 지난 김 대통령은 이 기간에 무엇인가 한국의 독자적인 강점을 만들어내려고 했는가. 예를 들어 일본이 만들고 있지 않는 상품을 개발하려 했는가, 또는 아일랜드 핀란 드 싱가포르같은 국가들처럼 작으면서도 일본이나 미국의 환율에 영향받지 않는 산업 구조를 조성하려고 했는가. 그 어떤 것도 하 지 않고 있다.

◆ 패스 스루(Pass Through)의 한국경제 산업의 핵심기반이 되는 부품산업의 유무가 일본과 한국의 최 대 차이이다. 이 때문에 한국은 부품과 공작기계를 일본으로부터 수입해 그것들을 조립수출하는 부가가치가 낮은 '패스 스루(Pass Through)' 경제가 되어 있다. 즉 미국에 대한 수출로 돈을 벌려 고 할수록 일본으로부터의 수입이 증가하는 구조가 돼 버렸다.

한국이 그러한 상황을 장기간 방치해 놓은 것은 정계에도 경 제계에도 장기적인 산업 정책에 관해 진지하게 다루고자 했던 지 도자가 없었기 때문이다. 항상 눈앞의 매출이나 무역수지만을 따 졌기 때문에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드는 부품제조를 전부 생략하 고 겉만 번지르한 반도체, OA기기, 휴대전화를 생산하는 것을 반 복하고 부품산업을 육성하지 않았다. 그러나 무역수지의 가장 중 요한 요소는 부품산업이다. 이것이 육성되지 않았기 때문에 언제 까지나 환율 하나에 국가경제 전체가 부침을 거듭하는 부품의존 형 구조로부터 빠져 나올 수 없는 것이다.

한국에는 한국밖에 없는 상품이 거의 없다. 이러한 본질적인 문제에 손을 대지 않는다면 한국은 자력으로 국가의 미래를 결정 할 수 없다. 또한 새로운 산업을 키운다 해도 일본이 만들고 있 는 물건을 만드는 것은 의미가 없다. 일본과 겹치는 산업영역과 산업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이문제에 관 해 인식하고 있는지 여부가 한국 대통령에게 가장 중요한 조건인 것이다.

그런데도 김 대통령은 미국이 하라는 대로 규제완화, 시장개 방, 재벌해체를 추진하고 긴축재정 정책을 취해 금융을 경색시켰 다. 산업구조 전환의 필요성도 인식하고 있는 것 같지 않다.

◆ IMF 제2막은 아수라장이 될 것 한국은 이제부터 어떻게 하면 좋을까. 우선 일본과 상이한 분 야에서 독자적인 공업화 사회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10년 이상의 시간이 걸릴 것이다. 한국에서는 전통적으로 문과계가 강하고 엔 지니어를 중시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조지 소로스의 충고를 따라서 금융경제로 전환하려고 해 도 한국에는그에 걸맞는 은행이 없다. 한마디로 한국은 사방팔방 이 꽉 막힌 상황인 것이다.

게다가 앞서 말한 바와 같이 김 대통령은 한국경제의 본질적인 약점을 회피하기 위한 조치는 아무 것도 강구하지 않고 있다. 당 장의 위기를 피하기 위해서 미국에 달라붙은 셈이다. IMF 권고의 제1막은 그런대로 괜찮을지 모르지만 제2막은 아수라장이 될 것 으로 생각한다.

한국의 대통령은 5년 단임제라서 전반 2∼3년간은 누구나 복 종하지만, 재선이 안되므로 후반부 2∼3년은 레임덕에 걸려 버린 다. 김 대통령의 경우도 앞으로 1년 정도 지나면 모두 태도가 돌 변하여 무슨 말을 해도 듣지 않게 될 것이다. 그때가 되면 자신 이 앞장서 IMF 권고의 제2막, 즉 제1막에서 약속했던 시장개방을 시작해야 한다. 외국으로부터 압력이 가해져오기 때문에 다시금 경제가 불안정하게 되는 것을 피할 수 없다.

김 대통령은 매우 원기가 넘치고 머리가 좋은 지도자이지만 결 국은 대미 접근 정책에서 판단을 그르쳤다고 생각한다.미국이 얼 마나 다른 나라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는 국가라는 사실을 몰랐던 것이다.그것이 김 대통령의 최대 실패였다고 후세 역사가들이 낙 인을 찍을것이다.

(기자 : may2@chosun.com)


주간조선1999.08.12 /1565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