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비밀 노동당원 宋斗律이 쓴
「통일의 논리를 찾아서」(한겨레신문사, 1995년 8월)란 책에는 남북한의 여성 지위를 비교한 대목이 있다. 宋斗律은 북한의 탁아소나 유치원
제도를 남한보다 높게 평가하고, 여성의 産前産後 휴가를 비교하여 북한이 남한보다 진보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는 『350만
명의 어린이들이 무상으로 탁아소나 유치원에서 보호받고 있는 북한에 비하여, 남한에서는 150만 명에 달하는 맞벌이 부부 가정의 약 100만 명에
이르는 자녀들을 위한 어린이 위탁시설이 절박하게 요구된다고 하겠다. 1993년 9월 현재 위탁시설에서 보호되는 어린이 수는 15만 명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宋斗律은 「북한의 여성정책에서 보이는 이러한 상대적 진보는 남한에서도 최근 논의의 대상이 되고
긍정적으로까지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썼다. 수치를 인용한 宋斗律의 이 비교는 「10만 마리의 개미군단은 1000마리의
코끼리 부대보다 무섭다」고 말하는 꼴이다. 비교의 기준이 엉터리이다. 1994년부터 본격화된 대기근으로 북한에서는 어린이들이 가장 많이 굶어
죽었다. 탁아소와 유치원에는 쌀이 배급오지 않아 문을 닫아야 했다. 宋斗律은 이들이 「보호」받는다는 표현을 썼는데 이들은 金正日 정권에 의해
버림을 받았다. 1999년 미국 존스 홉킨스 의과대학이 발표한 북한 大飢饉(대기근) 관련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이 기간에
북한에선 노인들과 어린이들이 특히 많이 굶어 죽었다. <영아 11명 중 4명 사망=사망률이 높은 연령층은 노년층과
어린이들이었다. 1995∼1997년 사이 65세 이상에서는 사망률이 연간 1000명당 131.8명으로서 이 기간 평균 사망률의 약 세 배나
되었다. 5세 이하의 사망률도 年間(연간) 1000명당 88.9명으로 全연령층 평균의 약 두 배이며 1세 이하 영아 사망률은 더 높고 해가
갈수록 높아가고 있다. 440명의 탈북자들이 속한 1782명의 가족 가운데 1995~1997년까지 3년간 55명이
출생했다. 그들 중 대기근이 시작된 1995년에 태어난 23명은 아무도 죽지 않았다. 다음해에 태어난 21명 가운데는 5명이 죽었고,
1998년에 태어난 11명 가운데서는 4명이 죽었다. 남자의 사망률은 年間 1000명당 49.8명으로서 여자의 1000명당 35.4명보다
높았다> 宋斗律은 북한의 탁아소 등 제도가 남한보다 진보되었다고 하는데, 왜 북한에선 어린이들이 집중적으로 굶어 죽고
남한에서는 어린이 비만을 걱정해야 했나. 식량이 내려오지 않는 탁아소가 1억 개인들 무슨 소용이 있는가. 탁아소 수치를 가지고서 여성정책에서
북한이 남한보다 더 진보되어 있다고 논한다는 것이 과연 과학을 아는 이가 할 일인가. 그 탁아소가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를
살펴보지 않고 북한 정권이 제공하는 수치놀음만 하면서 감히 북한체제가 남한보다 우월하다는 결론을 도출하는 사람, 그가 宋斗律이다. 이런 사람이
과연 지식인인가. 11명의 어린이가 태어나면 1세가 되기 전에 4명이 죽어 나가는 이런 인간지옥이 남한보다 진보되어 있다니…. 宋斗律은 지옥이
천당보다 낫다는 결론을 내는 논문도 충분히 쓸 수 있는 사람이다. 宋斗律은 북한 정권이 제공한 수치를 아무런 검증 없이 받아들여 남한을 공격하는
데 써먹은 어용 지식인일 뿐이다. 宋斗律 말장난 ② / 北은 지식인을 중시! 宋斗律은 「통일의 논리를
찾아서」란 책에서 북한을 「지식인 계급을 중시한 엘리트 체제」라고 주장했다. <한국전쟁 기간에도 남한 출신 지식인들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이는 정책을 폈다. 조선 노동당의 黨旗(당기)에 붓이 그려져 있다는 사실에서 우리는 당시의 북한 지도부가 얼마나 지식인에 대한
비중을 높이 평가했는지를 엿볼 수 있다> <북한은 일반적으로 사회주의 사회에서 논의되었던 두뇌노동과 육체노동의
차이의 극복수단을 지식인의 「하향평준화」가 아니라, 全인민의 「상향평준화」에서 찾고 있다. (중략) 북한이 북한식 사회주의의 가장 중요한 업적의
하나로 내세우는 것은 현재 160만 명에 달하는 지식인 집단의 형성이다> 全인민의 상향평준화를 이룬 나라에서 어찌하여
난쟁이 같은 체격과 비판을 모르는 로봇 같은 사람들이 나타나며 우리가 민족의 劣性化(열성화)를 걱정해야 하는가. 160만 명이나 되는 지식인
집단이 있는데 어찌하여 수령독재체제에 대한 비판이 없는가. 비판의식이 제거된 집단이 어떻게 지식인으로 분류된단 말인가.
지식인의 2大 조건은 비판의식과 전문성이다. 북한의 자칭 지식인 계급은 이 두 가지가 없다. 다만, 黨과 수령이 시키는 대로 말하고 쓰는
기능공이 있을 뿐이다. 위의 인용 글에서 전형적인 宋斗律식 북한 정권 선전술이 나온다. 그는 북한을 主語로 하여 북한이
주장하는 바를 소개한다. 그렇게 해놓고 『그것은 사실이 아닌데』라고 비판하면 『그것은 나의 주장이 아니라 북한의 주장이다』라고 빠져나갈 구멍을
만든다. 宋斗律은 북한 측 주장과 통계를 소개할 뿐 그 통계와 주장을 검증도 비판도 하지 않는다. 이것이 그의 소위
「내재적 접근법」의 실상이다. 비판의식이 결여된 내재적 접근법이란 북한 정권의 문서나 그들이 주장하는 바를 앵무새처럼 옮기는 것이다. 그의
내재적 접근법이란, 선전원의 논리에 갖다 붙인 말장난이다. 宋斗律은 독재자의 선전원이며 대변자이다. 그 또한 지식인이 아니다.
宋斗律 말장난 ③ / 비장한 북한
지성 1991년 한길사에서 펴낸 「宋斗律의 현대사상강좌②/전환기의 세계와 민족지성」이란 책에는 「동구의
지성, 북한의 지성」이란 章이 있다. 이 글에서 宋斗律은 공산당을 붕괴시킨 東유럽의 지성을 비판하고 수령지배체제에 복종하는 「북한의 지성」을
찬양하고 있다. 宋斗律은 東유럽의 지성을 『재빨리 변신하여 반공을 주장하는 사람, 냉소주의자로 변한 사람, 그래도
자본주의가 인류의 대안일 수는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표현한다. 이런 東유럽 지식인들의 대부분은 『자신의 면죄부로서 북한의 「스탈린주의」를
고발하고 있다』고 그는 못마땅해한다. 그는 1991년 북한의 사회과학원 초청으로 북한에 가서 만난 「북한의 지성」에
대해서는 극찬한다. 〈그들은 민족의 존엄은 스스로의 힘에 의해서만 유지될 수 있다는 것을 확신하고 있고, 설사 경제적으로
조금 어렵더라도 구걸보다는 허리띠를 더 졸라맨다는 집단적 의지에 미래를 맡길 수 있다고 확신한다. 사회주의를 고수하는 마지막 지성의 외로움과
동시에 비장한 각오를, 필자는 北의 지성과의 대화에서 종종 느낄 수 있었다. 이러한 분위기는 현재는 물론 과거에도 東유럽 지성에게서는 그러나 볼
수 없었다〉 東유럽을 민주화시킨 지식인보다도 독재체제를 고수하려는 지식인 아닌 수령의 제자들을 더 높게 평가한 이 글은
宋斗律을 지식인이라고 상정하면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글이다. 하지만 그가 지식인으로 위장한 북한 정권의 공작원이었음이 드러난 지금 읽어 보면
쉽게 이해가 된다. 이 글은 한국인들에게 북한 정권에 대한 환상을 심어 줄 목적으로 쓰여진 공작문서인 것이다.
구걸하기보다는 허리띠를 졸라맨다던 북한 정권의 지식인들은 지금 어떻게 되어 있는가. 구걸과 앵벌이로 생존을 이어가는 북한 정권의 현실에 대해
宋斗律은 무슨 말을 할 것인가. 하기는 공작원에게 해명을 요구하는 것이 우습다. 宋斗律 말장난 ④ / 북한 농업은 세계 최고
북한 비밀 노동당원 宋斗律은 대기근이 진행되던 1995년 8월에 낸 「통일의 논리를 찾아서」(한겨레신문사)란 책에서 식량위기는 「과연
사실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스스로 답한다. 그는 먼저 「최근에 북한은 에너지 부족현상과 더불어 극심한 식량난을 겪고
있고, 인민들이 소요를 일으키고 있다는 소문도 나돌고 있다」고 의문을 던진다. 여기에 대해서 그는 이렇게 답한다.
<그러나 로마에 있는 「세계식량농업기구」의 1980년대 통계자료는 북한이 全세계에서 1헥타르당(未탈곡 상태로) 제일 높은 쌀 생산량을 내는
국가라는 사실을 보여 주었다> 그는 북한이 식량난을 겪고 있다는 소문을 사실로 인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북한 정권
측의 입장을 설명한다. 그 입장이란 것이 중국식 농업개혁을 비판하고 북한식 농업정책이 결국 성공할 것이란 주장이다. 북한 농업에 대해서 宋斗律은
아무런 본질적 비판도 하지 않고 북한 측 변명만 소개한다. 그가 내재적 접근법이란 말장난을 하고 있던 그 순간 북한 주민들은 하루에도 수천 명씩
굶어 죽고 있었다. 宋斗律은 대기근이 일어난 사실을 몰랐을 수도 있다. 金正日의 호화판 생활 속에 있었다면 말이다.
宋斗律이, 동포가 한 해에 수십만 명씩 죽어 가는 그 속으로 여행하고서도 대기근이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다면 그는 지식인이 아니라 둔재이고
바보이다. 만약 민족사적 비극을 알고도 모른 척했더라면(이 가능성이 더 높다) 宋斗律의 죄는 반드시 역사의 법정에서 심판되어야 할 것이다.
「식량위기는 과연 사실인가」란 문제를 제기한 宋斗律이 쓴 결론부는 이러했다. <북한은 4년
이내에 「농업의 산업화」 수준을 최고로 높이겠다는 목표를 설정하고, 현재 50여 개 군에서_북한에는 약 200개의 군이 있다_전기화, 기계화,
화학화, 그리고 농수로 시설 개선 등을 추진하고 있다> 宋斗律이 북한 노동당원으로서 쓴 모든 글은 이런 말장난처럼
북한 정권 선전물의 남한판이었던 것이다. 宋斗律 말장난 ⑤ / 조문 안 한 한국 측 비난 북한 비밀
노동당원인 宋斗律은 1995년 여름에 쓴 「통일의 논리를 찾아서」라는 책에서 민족반역자 金日成이 죽었을 때 한국의 초보수 강경파가 조문을 막은
것이 남북관계 악화의 한 원인이었다고 썼다. <1994년 7월8일 金주석의 사망으로 인해 남북 頂上회담은 무기한
연기되었다. 그 이후 남북한의 관계는 눈에 띌 정도로 악화되었다. 이에 대한 원인 중의 하나는 소위 「조문파동」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적대국인 미국의 대통령 클린턴이 즉각적인 조의를 표한 데 비하면, 남한 정부의 처사는 북한의 지도부에 상당한 마음의 상처를 주었다.
남북 頂上회담의 계획이 발표되자 불안감으로 방향을 상실했던 남한의 초보수 강경파는 이 조문파동이 터지자 활개를 폈다. 그들은 앞으로
남북대화의 원활한 진전을 위해 조문사절을 보내야 한다는 야당과 재야 인사를 몰이사냥하듯 몰아붙였다> 6·25 전쟁을
일으켜 약 300만 명이 한반도에서 죽게 한 전쟁 범죄자가 죽었다면 축하해야 할 일인데 피해자인 한국 정부가 조문을 하지 않았다고 宋斗律은
우리를 비판하고 있다. 朴正熙 대통령이 서거했을 때 金日成이 조문을 했던가를 그는 따지지 않는다. 그는 조국을 일단 먼저 비난하고 보는
인물이다. 宋斗律 말장난 ⑥ / 詐欺의 구조 宋斗律의 글을 읽어 보면 난해하기
그지 없다. 어렵지도 않은 주제를 애써 어렵게 설명한다. 읽으려면 인내가 필요하다. 그 이유는 남북한 사이의 경계인인 척하면서 실제로는 북한을
비호하려니까 어렵게 쓰는 것이다. 거짓말을 논리적으로 하려니까 문장이 어려운 것이다. 그는 북한 편을 들 때 남북한 사이에
객관적이거나 중립적이란 포즈를 먼저 취한다. 예컨대 1991년 한길사에서 펴낸 「전환기의 사회와 민족지성」이란 책에 이런 문장이 나온다.
〈남북한 유엔가입이 기정사실화되어 가고 있는 오늘 이 문제에 다시 우리의 주의를 돌리는 것은, 유엔 속에서 남북한 사이의
외교경쟁이 더욱 치열해져 통일로 이르는 공존적 삶의 원칙마저 안중에서 사라지고 말 위험성이 너무나도 크기 때문이다〉 위의
글은 「남북한 사이의 외교경쟁」이란 키워드에서 양쪽 편을 공평하게 우려하는 것처럼 위장하여 일단 독자들로 하여금 필자가 객관적 입장에 서 있다는
허상을 던져 준다. 미끼인 것이다. 그런 다음 宋斗律은 이른바 내재적 입장에 의거하여 북한 입장에서 이 문제를 보는 시각으로 전환한다.
〈북한이 유엔가입이라는 어려운 결정을 하는 데 있어서 그러면 어떠한 점을 긍정적으로 보았는가? 북한은 「신세계질서」 수립을
공공연히 호언하는 미국의 직접적인 예봉을 피하면서 남한 사회의 냉전적인 정치·군사적 대결구조의 변화를 유도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고 있다〉
위의 문장은 완전히 북한 정권 대변이다. 요컨대 북한이 한국과 함께 유엔에 동시가입하기로 한 것은 미국과 남한의 공격적이고
냉전적인 자세에서 일단 피해보자는 뜻이라는 것이다. 「남한사회의 냉전적인 대결구조」란 표현은 북한 정권 편에 서서 남한 사회를 공격하는 필자의
입장을 보여 준다. 그 다음 단계에서 宋斗律은 자신의 북한 입장을 딛고 한걸음 더 나아간다. 〈『남북한의 유엔 동시가입이
결국에는 한반도內에서 두 체제가 공존적 삶을 적극적으로 건설하기보다는 오히려 불신과 대결의 골을 더 깊이 만드는 방향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엄연한 가능성을 무시하면서 서독과 동독 또는 남부예멘과 북부예멘의 유엔 가입으로부터 안이한 유추해석을 이끌어 내어 남북한의 유엔 가입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남북의 유엔 동시가입은 역시 남북의 공존적 삶을 지향하는 통일에 비추어볼 때 하나의 장애요 난관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된다〉 宋斗律은 여기에 와서는 북한의 입장을 객관적 진실인 것으로 결론 내린다. 북한이 유엔 동시가입에 반대했던 입장이
정당하다는 결론인 것이다. 宋斗律 논법의 3단계 1단계: 자신이 남북한 사이에서 객관적 입장에
서 있다는 인상을 준다. 2단계: 북한 입장에서 문제를 보는 내재적 접근법을 쓴다. 3단계: 2단계의
입장이 정당하다는 결론을 내린다. 宋斗律의 내재적 접근법이 북한 정권 옹호를 위한 속임수임이 드러나는 것은 3단계에서이다.
논리상 3단계에서는 2단계에서 소개한 북한의 입장을 과학적으로 비판하고 검증해야 하며 4단계에서 평가해야 한다. 宋斗律은 그런 비판 과정을
생략하고 바로 평가를 내림으로써 북한의 입장을 無비판적으로 소개하는(사실은 선전하는) 것이다. 宋斗律은 북한 정권의 논리를 선전이 아닌 방법,
즉 객관성으로 위장하여 선전하기 위해 문장을 그렇게 어렵게 쓰고 있는 것이다. 쉽게 써도 되는 것을 어렵게 쓰는 사람은 뭔가 불순한 의도를 가진
법이다. 宋斗律 말장난 ⑦ / 책임전가術 학자로 위장한 북한 비밀 노동당원
宋斗律이 북한 정권 편을 들고 그들을 선전하는 수법의 한 공식은 북한 정권의 책임을 미국과 한국 측으로 떠넘기는 것이다. 이런 책임전가의 공식이
적용된 예가 북한경제의 침체를 설명할 때이다. 그는 책 「통일의 논리를 찾아서」에서 「북한경제 침체론의 허상과 실상」이라고 주제를 설정한 다음
원인을 규명하는 척한다. 당연히 지적되어야 할 북한 지도부의 정책 실패, 즉 폐쇄적 경제운영, 우상숭배 등 낭비적 투자,
사회주의 제도의 非능률성은 무시된다. 그 대신 속죄양이 등장한다. 〈지난 20여 년 동안 축적되어 온, 북한에 대한 다양한
연구들은 북한경제가 두 가지의 중대한 구조적 문제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첫 번째 문제는 국방비 지출의 과중한 부담이고, 두
번째는 서방국가들의 對북한 금수조처로 인해 북한이 자본주의 국가들과 협력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이다〉 집단농장의
개혁이라는 가장 손쉽고 효과적인 개혁조차도 거부하여 수백만 명을 餓死로 몰아넣은 북한 정권의 守舊的 자세를 그는 지적하지 않는다. 오로지 외부의
위협 때문에 북한경제가 어렵게 되었다는 설명이다. 그런 위협과 고립을 자초한 북한의 잇단 對南도발에 대해서 宋斗律은 지적하지 않는다. 지금이야
밝혀진 사실이지만 그는 북한 노동당원이었으니까! 宋斗律의 이런 책임전가術은 한국內 親北세력이 북한 정권을 옹호하는 데 쓰는
흉기로 이용되었다. 고립을 자초한 북한 정권의 전쟁도발, 6·25 남침, 아웅산 테러, 육영수 여사 암살, 대한항공 폭파에 대해서는 언급함이
없이 한국과 미국의 군사력 건설과 對北 경제제재만 도마 위에 올리는 수법이다. 宋斗律의 모든 지식은 독재정권을 변호하는 거짓말을 「논리적」으로
하기 위한 기술(또는 詐術)로 쓰이고 있는 것이다. 宋斗律 말장난 ⑧ / 북한 농촌은 田園! 사람이 지식을 속임수에
쓰기 시작하면 말이 어느 정도 타락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가 있다. 학자로 위장한 북한 노동당원인 宋斗律은 1995년 북한에서 대기근이
발생했을 때 쓴 「통일의 논리를 찾아서」란 책에서 북한 농민들이 남한 농민들보다 낫다는 주장을 과감하게 편다.
<북한의 사회적 변화는 따라서 남한의 농민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위상을 갖는 농민을 창출했다. 남한의 농민이 사회발전의 희생양으로 되고,
최근에는 우루과이라운드 이후 외국 농산물의 수입개방으로 사회의 주변부로 더욱 더 내몰리는 데 비해, 1964년의 「농업테제」에서 드러난 「농업의
산업화」와 都農 간의 격차를 극복하기 위한 사회주의적 발전계획의 시행결과로 북한의 농민은 사회주의적 발전노선 안에서 일정한 안정을 취할 수
있었다. 그들은 남한 농민들이 겪고 있는 주변화의 압박과 같은 문제를 안고 있지 않다. 게다가 남한 농촌은 젊은층의
도시로의 유출로 인하여 왜곡된 인구구성을 보여 주고, 이에 따라 농민의 수도 1960년대 초반 전체인구의 약 60%에서 1980년대에 약
40%로 줄어들었지만 북한 농민의 연령층 분포는 여전히 피라미드형을 이루고 있다. 물론 북한의 경우 사회적 이동은 국가에 의해 계획적으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이상의 글에서 宋斗律은 불가능한 것을 가능케 했다. 지옥을 천국처럼
그리는 데 성공한 것이다. 그가 북한 농업을 찬양하고 있던 1995년 여름 그 순간 북한 농민들은 무더기로 굶어 죽어 가고 있었다. 「농업의
산업화」는 종이 위에서 이뤄진 것이지 북한의 집단 농장에서 이뤄진 것이 아니다. 宋斗律의 내재적 접근법은 북한 정권의
선전문서를 접근의 수단으로 삼는다. 그는, 이 문서가 「농업의 산업화」라고 했으니 북한의 농촌은 산업화되었고 따라서 남한보다 앞서 있다는 결론을
내린다. 宋斗律의 머리에 들어가 있는 북한은 實在(실재)하는 북한이 아니라 관념으로 존재하는 가공의 북한, 잘 나가는 북한이다. 그는 이 가공의
북한, 괜찮은 모습의 북한을 내재적 접근법으로 포장하여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팔아먹은 것이다. 한국의 수많은 젊은이들이 지닌
맑은 영혼을 파괴한 이가 바로 宋斗律이다. 아우슈비츠를 요양원으로 묘사한 것과 같이 인간지옥인 북한 농촌을 풍요한 田園(전원)으로 묘사한 민족의
배신자인 셈이다. 宋斗律 말장난 ⑨ / 北核은 없다! 북한 노동당원 宋斗律이 쓴
「통일의 논리를 찾아서」란 책에서 「핵문제를 둘러싼 갈등」이란 章을 만들어 불가능한 것같이 보이는 북한의 핵무기 개발을 변호하려고 시도한다.
이 章에서 그는 한 번도 북한 정권이 핵무기를 개발하고 있다는 명백한 사실을 시인하지 않는다. 왜인가. 그의 내재적 접근법
때문이다. 그의 내재적 접근법을 그는 가끔 「내재적 비판적 접근법」이라고 부르지만, 그는 항상 북한의 발표문을 비판없이 무조건 신뢰한다. 북한이
그때는 한번도 핵무기 개발을 시인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도 핵무기 개발을 시인하지 않은 것이다. 그는 『북한의 완강한
사찰거부 자세가 바로 핵무기 개발 계획의 實在를 입증하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주장은 미묘한 정치적 내용을 지닌 핵문제의 전략적 의미를 간과하는
단순논리 위에 서 있다』고 말한다. 핵무기를 개발하지 않지만 다른 전략적 이유로 사찰을 거부하고 있을 것이란 의미를 전하려고 애쓴다. 그는
이어서 이렇게 썼다. <핵개발은 당연한 에너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순전히 평화적인 목적만을 갖고 있다고 북한이 누차
강조했음에도 불구하고, 조성된 국제정치적 분위기는 결과적으로 북한에게 핵협상 카드를 쥐어 주었다> 북한이 개발하지도
않는 핵무기를 개발한다고 국제사회가 떠드는 바람에 북한이 공짜로 핵카드를 갖게 되었다는 기발한 설명이다. 그는 또 제네바
협정으로 북한에 짓도록 된 경수로 건설에 대해서 이런 해석을 한다. <북한이 남한의 경수로를 수용한 사실 속에서
우리는 이 책의 서두에 화두로 삼았던 「배제하고 통합하는 제3」의 의미를 구체적으로 발견할 수 있다. 이는 완전히 상대방을 배제하지도 않으면서,
그렇다고 또 완전히 서로 통합되지 않는 긴장을 보여 주었다고 할 수 있다. 북한 핵문제를 둘러싼 정치적 갈등과정은 남북이 민족적인 차원에서
합의를 도출하지 않으면 모두가 다 패자가 된다는 교훈을 새삼 일깨워 주었다> 알듯 모를 듯한 애매모호한 표현의 결론은
민족적인 차원에서 북한 정권의 잘못을 덮어 주자는 뜻인 것 같다. 그가 말하는 민족적이란 말의 진정한 뜻은, 민족반역집단인 金正日 정권이
내세우는 가짜 민족주의 노선을 수용하자는 것임을, 그의 정체가 북한 노동당원임이 밝혀진 오늘 더 확실하게 알 수 있게 되었다.
宋斗律 말장난 ⑩ / 연방제
찬성 宋斗律이 쓴 모든 책은 북한 노동당원의 임무를 다하기 위하여 쓴 것으로 보아야 한다. 그 임무는
대한민국을 적화혁명으로 때려엎는 것이다. 지식인으로 위장한 金正日 똘마니가 어떤 논법을 구사하는지를 알려면 宋斗律을 사례연구하면 된다.
宋斗律식의 言辭를 구사하는 인간은 일단 의심해야 한다. 宋斗律은 惡의 논리로 대한민국을 해체하려고 했다. 이제는 宋斗律을
해체함으로써 金正日 추종자들의 정체를 백일하에 드러낼 수 있게 되었다. 대한민국 세력이 공격할 수 있는 표적이 매우 넓어지고 거리가 좁혀진
것이다. 애국 우파 자유세력은 대단한 전략적 우위를 점하게 되었다. 宋斗律은 예상했던 대로 金正日의 對南적화전략의 핵심인
연방제 통일방안을 지지한다. 연방제 통일방안이란 것은 南과 北의 각기 다른 체제를 지금처럼 그대로 두고 그 위에다 고려민주연방공화국 정부라는
것을 씌우고 이 중앙정부에 외교 국방을 위임하자는 것이다. 이것이 속임수라는 것은 삼척동자도 알 수 있다. 남북한 분단은
민족이 달라서가 아니라 이념이 달라서 생긴 것이므로 통일은 남북한의 이념을 단일화하는 일이다. 이념이 다른 것을 그대로 두고 중앙정부를 만들자는
것은 통일을 하지 않고 분단을 고착화하겠다는 反통일안이다. 그럼에도 이를 연방제 통일안이라고 주장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연방제를 도입한다는 명분하에 대한민국으로 하여금 국가보안법을 폐지하고 駐韓미군을 철수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대한민국 안에서 金正日 추종세력의
활동이 보장되면 적어도 국민의 半은 북한 정권 편으로 돌려놓을 수 있다고 金正日은 믿고 있다. 그렇다면 북한의 2000만 명과 남한의 2500만
명을 합쳐 4500만 명을 자신들의 편으로 확보한 다음에는 자유선거를 해도 자신이 있다는 것이다. 宋斗律은 무엇이라고
변설하고 있는가. <우선 남북의 화해와 협력, 그리고 교류를 탄탄하게 보장할 수 있는 민족 내부적 공감대를 제도적으로
마련하여 초보적 수준이라 할지라도 연방제적 구조를 구축하는 문제가 시급하다. 왜냐 하면 南北 간 상호이해의 현재 수준으로는 東北亞의 새로운 질서
속에서 한반도의 전체적 이익지향은 극히 힘들어 보이기 때문이다.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완화와 함께 복잡해질 東北亞 지역 내의
이해갈등에 대비한 남북한 공동의 외교적 역량강화라는 견지에서도 연방제적 구조는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다. 민족적 차원에서 상호이해가 촉진되었을
때 체제와 사상의 절대적 위치도 변하게 마련이다> 남북의 화해 협력 교류를 촉진시키기 위하여 우선 연방제로
통일되었다는 선언을 하자는 이야기이다. 그렇게 한 다음 「통일된 마당에 왜 주한미군이 필요한가」, 「왜 국가보안법이 필요한가」, 「왜 국정원이
필요한가」라고 문제를 제기하여 이 장애요인들을 철거한 뒤 남한을 먹어치우겠다는 것이다. 이 전략을 宋斗律은 남북 간 화해 협력의 촉진이란 말로
미화, 호도하고 있는 것이다. 「민족적 차원에서 상호이해가 촉진된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남북한 양쪽이 이념을 따지지
말고 같은 민족끼리 뭉쳐 외교도 하고 국방도 하다가 보면 이념의 중요성이 약해지고 우선 한 민족으로 합치게 될 것이란 뜻이다.
한 민족이란 누구를 가리키는가. 金正日 정권과 연방제를 받아들인 남한의 親北정권을 가리킨다. 宋斗律은 남북한의 민족반역 정권을
「민족」이라 부르고 있다. 宋斗律이 말하는 민족개념에는 북한 주민들이 철저히 배제되어 있고 金正日 정권이 민족의 챔피언으로
등장한다. 민족반역자를 민족의 대변자로 만들어 놓고 하는 민족통합이란 金正日한테 민족을 갖다 바치겠다는 뜻이다. 宋斗律이 「북한」이라고 부를 때
그것은 북한 주민이 배제된 북한정권, 즉 「金正日」이다. 宋斗律이 「민족」이라고 부를 때 그것은 남북한 민중이 배제된 민족반역자 「金正日
세력」을 가리킨다. 宋斗律의 「민족」, 「북한」 용법을 분석하면 그는 북한과 한민족을 金正日 세력의 사유물로 인정하는 것을
알 수 있다. 독재자의 심부름꾼이니까 그런 발상이 가능하다. 宋斗律 말장난 ⑪ / 朴正熙 모함 宋斗律은 희대의 독재자이자
민족반역자인 金正日이 지령한 범죄인 아웅산 테러, 대한항공 폭파, 북한동포 餓死, 아우슈비츠 같은 강제수용소 운용, 외국인 납치에 대해서 한
마디도 하지 않는다. 宋斗律은 金日成·金正日에 비교한다면 천사로 불려야 할 李承晩, 朴正熙를 집중적으로 공격하고 있다. 宋斗律은 인간이 인간이게
하는 최소한의 균형감각도 없는 것이다. 1995년 여름에 한겨레신문사에서 펴낸 「통일의 논리를 찾아서」란 책에서 그는
「金正日에 의해서 주체사상은 체계적으로 정리되기 시작했다」면서 소위 주체사상을 격찬하고 있다. 그의 글에서 金正日은 주체사상을 정리한 철학자로
묘사된다. 金正日이 주체사상을 정리한 것이 아니라, 黃長燁씨가 주체사상을 정리했다. 黃長燁씨는 자신의 사상체계가 金日成·金正日에 의해
도용되었다고 고백한 바 있다. 宋斗律은 누가 주체사상을 정리하였는가 하는 사실관계를 파악하려 하지 않는다. 그는 金正日에게 불리한 사실은 있는
것도 없애려 한다. 굳이 캐낼 입장이 아니다. 그는 대기근이 한창 진행 중일 때 쓴 책에 북한의 식량위기를 부정하는 글을
쓴 인간이다. 그러면서 宋斗律은 朴正熙에 대해서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 『그(박정희)는
「오카모도」라는 이름으로 당시 만주에서 활동하던 항일유격대를 토벌하던 장교였다』는 것이다. 朴正熙는 만주에서 항일 유격대를 토벌한 적이 없다.
「다카키 마사오」로 창씨개명한 朴正熙는 만주군관학교와 일본 육사를 졸업한 뒤 北중국 熱河지방의 만주군에 배치되어 毛澤東의 팔로군과 대치했을
뿐이다. 朴正熙에 대한 초보적인 사실부터 왜곡한 그는 金日成·金正日에 대한 극찬의 기준을 李承晩·朴正熙에게는 적용하지
않는다. 한국인들이 광복 이후 최고 성과 중의 하나로 보는 「새마을운동」에 대해서는 「터무니 없이 조직된 이러한
이데올로기는 개발독재에 의하여 기층에서부터 점차 형성되기 시작한 저항운동에 대한 예방조치였다」고 비웃었다. 그는 한국 근대화의 성과를 사사건건
부정하려 든다. 그는 남한 모델은 결코 일본 모델이 될 수 없다면서 일본을 들어서 한국의 낙후성을 지적하는 데 쾌감까지
드러내고 있다. 「남한이라는 소년이 머지않아 일본이라는 어른이 될 것이라는 생각 속에는 韓日 두 나라 사이의 질적인 구조 차이를 쉽게 망각하게
되는 함정이 숨어 있다」고 한다. 그는 남북을 하나의 민족경제권으로 묶으려는 논리는 자본의 논리나 시장의 논리여서는 안
되고 새로운 사회적·문화적 논리의 개발을 요구하고 있다면서 이런 황당한 주장을 한다. <이러한 새로운 논리를 개발하기
위한 하나의 절대적 요건은 북한 사회의 핵심적인 이데올로기라고 할 수 있는 주체사상을 검토해 보는 데 있다>
주체사상으로 민족경제의 새 이정표를 찾자는 논지로 이해된다. 이제는 알 수 있다. 그가 왜 이처럼 철면피한 글을 썼는지. 그는 북한 노동당원
宋斗律이었던 것이다. 분석 / 宋斗律은 왜 북한동포의 원수인가 1973년 이후 宋斗律이
북한 노동당원으로 쓴 모든 글은 對南공작 문서이다. 내용이나 의도가 그러하다. 이제는 암호처럼 난해한 그의 글을 해독할 수 있게 되었다. 이
해독의 공식으로 다른 불온문서를 판정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는 1991년 한길사에서 펴낸 「전환기의 세계와 민족지성」이란
책의 맺는 말에서 독일의 詩人 하이네 이야기를 꺼낸다. 1844년 파리에서의 망명생활을 거두고 잠깐 조국 땅을 밟은 하이네가 다시 망명의 길을
떠나면서 「독일: 하나의 겨울 이야기」에서 쓴 말을 인용한다. 宋斗律은 『이성적이고 좋은 사람이라면 그가 설사 프랑스
사람일지라도 친구가 될 수 있다』는 요지의 하이네 말을, 자신의 처지를 변호하는 구절로 쓰고 있다. 그는 『우리는 다른
민족도 아닌 같은 민족을 만나면 반쪽짜리 조국의 배신자가 될 수밖에 없는 기막힌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이다. 宋斗律이
하이네를 들었으니 우리도 질문할 권리가 있다. 당신은 북한에서 정말 하이네처럼 이성적이고 좋은 사람의 친구가 되었는가.
金日成·金正日이 이성적이고 좋은 사람인가. 당신을 조종한 김용순과 임동욱이 그런 사람이던가. 당신은
이 세상에서 가장 악랄한 인간들과 친구가 된 것이 아닌가. 당신은 맞아죽고 굶어 죽는 북한동포와 친구가 되어야 했다. 그랬다면 아무도 당신을
조국의 배신자로 몰지 않았을 것이다. 당신은 「이성적이고 좋은 사람들」일 가능성이 높은 북한동포들을 배반하고 북한동포들을 죽이고 굶기고 착취해
온 金正日 편에 섰기 때문에 조국의 배신자가 된 것이다. 金正日은 농장과 공장을 방문할 때 농장원과 공장 노동자들을 창고에
격리시키도록 한다. 그는 북한동포들을 적으로 간주하고 북한동포들은 金正日을 원수라고 생각한다. 당신은 북한동포의 원수인 金正日의 심부름꾼이 되어
한국 사람들로부터, 북한동포들에 대한 동정심과 金正日에 대한 경계심을 없애려고 했던 사람이 아닌가. 그러니 당신은 민족과 조국의 배신자인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