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명 |
삼천리 제3권 제10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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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
제3권 제10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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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년월일 |
1931-10-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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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제목 |
張德秀씨의 與하는 公開狀, 그의 歸國의 報를 듯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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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
滄浪客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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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형태 |
논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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張德秀씨! 귀하는 金性洙氏의 말을 듯건대 近近 8個년 만에 귀국 하리라 傳함니다.
1928년 미국 콜넘비아대학에 「맑스의 국가관념 비판」이란 一文을 박사논문으로 제출한 뒤 歐洲의 정치사정을 연구하기 위하야 각국을 行脚한다드니
이제 東亞日報의 多事를 생각하엿슴인가, 반도의 미묘한 정치적 동향에 무슨 激情을 늣기엇슴인가, 太平洋 건너는 귀국의 船便을 초조하게 고대하고
잇다하니 吾人은 귀하의 動靜에 또한 등외시하지 못할 새로운 「썸싱」을 발견하게 됨니다. 약소민족이 가진 신문기자 중 다소라도 진취적 의도가
잇는 자로써 정치운동에나 사회운동에 가담 아니하는 자가 별로 드문 例에 쪼차서 귀하 또한 동지와 함께 東亞日報를 창간한 뒤 초대의 某 결사운동에
책임을 지엇다가 一世의 叱罵를 밧을 과오를 범한뒤 「不歸國者」의 一人이 되어 멀니 해외에 몸을 運去 하엿슴은 吾人을 식혀 귀하에 대한 관점을
一變케한 醜恨事 엇슴니다. 그 뒤 東亞紙에 寄한 「在米通信」이란 단문과 또 北米로부터 도라오는 人便에서 薺來되는 귀하의 소식를 드를 때마다
「昨日의 張德秀」에 대한 관념이 수정되기를 얼마나 기대하엿스리까. 그러나 前記한 「맑스의 국가관념 비판」의 一文은 아직 발표되지 안엇스니까
思想上 변천은 모르겟스나 在米 8년 중에 별로 뚜드러진 정치행동을 통하야 과거를 청산하엿다는 보도도 업슬 때에 吾人은 아직도 귀하에 대한
재평가의 시기가 오지 안엇슴을 슬퍼함니다. 그러나 생각건대 귀하는 熱의 人이라 弱冠 30에 東亞日報 主筆로서 보여주든 그 眞知한 노력이
또다시 계속될 것을 기대되며 귀하는 才의 人이라 룻로 몬데규스流의 人權自由를 고조하든 초기적 사상에서 一段의 진전이 잇서 精悍한 기상과 아울러
우리 사회에 무엇인가 기여할 것을 念하고 잇슬터이매 그 성의와 재간를 밧어드리기를 거부하면서까지 8년 전의 過誤만 헤기에 급하려 하지 안슴니다.
要는 귀국 후에 몸으로써 속죄하는 一路가 남엇슬 뿐이니 吾人은 여기에서 냉정히 「明日의 張德秀」를 응시할 시간상의 여유를 가지려 함니다. 그런
까닭에 귀하는 故土를 밟은 第一步의 순간에서 깁흔 반성과 강력한 새 선서가〈12〉 잇서저야 하기를 기다리는 의미에서 이 短文을
草하나이다. 張德秀씨! 생각건대 귀하의 일홈이 우리 압헤 보여진 것은 지금은 대전감옥에 가치어 잇는 呂運亨이 東京에 나타나 日本政界에 旋風을 이르키든 그 劇的
場面에서부터일 것이외다. 傳聞함에 의하면 그 이전에도 早稻田大學 政經科에서 항상 수석을 다툰 特待生이엇고 留學生友會 회장으로서도 잇서 異數의
활약을 보엿다 하나 年少氣銳한 귀하의 성장을 주시한 이는 극히 좁흔범위엇고 대중의 시야에 처음 나타나기는 역시 呂運亨사건 及 東亞日報 주필
이후라 할 것이외다. 實로 己未 卽後에 귀하에게 제공된 정치적 무대는一世를 경악하기에 足한 深度와 震幅을 가추고 잇섯스니 原敬을 主席으로
한 당시 내각은 조선문제에 대하야 寒氣와 濃霧 때문에 한갓 優柔不斷, 사태는 더욱 심화 강화하여 갈 뿐임으로 나종에 민족운동의 領袖들과 회견하여
기회 조흐면 歸順懷柔까지라도 하여 보리란 최고정책을 세우고 당시 上海XX政府 樞要의 지위에 잇는 呂運亨을 拓殖局 長官 古賀廉造의 알선과 上海
日本 總領事의 보증으로 (이 보증이라 함은 呂가 東京에 갈지라도 절대로 체포투옥치 안켓다는 것과 그 대신 呂의 朝鮮 通過를 거절하겟다는 彼此의
공약) 東京에 오도록 하엿슴니다. 그때 呂가 영어통역이자 동지이자 비서의 一人으로 張德秀의 동반을 주장하엿스니 그때 귀하는 東京서 己未事變을
이르키고 上海에 走하야 XX신문 주필로 잇다가 조선 內地에 대한 某種 운동을 생각하고 황해바다를 밀항하다가 日本관헌에 체포되어 全南 多島海 중의
一孤島에 유배되고 잇든 때이라 上海시대의 知友가 부를 때 귀하는 日本관헌이 포승줄을 끌너주기를 밧부게 呂의 身邊으로 뛰어간 것은 물론이엇더이다.
그 뒤 原敬, 犬養毅, 大?, 加藤등 朝野要人과의 회견과 중앙 政客을 제국호텔에
초청하고 朝鮮問題를 說往說來할 때의 그 기개와 포부며 東京유학생들과 連夜抱頭相哭한 情景이며 日本 전국 신문에 발표된 사절로서의 열화 가튼
「스테트멘트」등 어느 한가지인들 半島人士의 뇌리에 심대한 충격을 주지 안은 것이 잇섯스리까. 물론 이 모든 風雲의 정면에는 呂가 나섯스나 귀하의
志士的 동작이 이에 따르지 안엇더면 이러틋 內外에 거대한 쎈세슌을 이르키지 못하엿슬 것이외다. 未幾에 통치의 수뇌자가 갈님에 따라
民間新聞을 허락할 방침이 섬애 귀하 金性洙 柳瑾 宋鎭禹 등과 相携하여 東亞日報를 창간하고 그에 健筆을 揮할 새
徐載弼 尹致昊 등의 獨立協會 當時의 獨立新聞時代에서도 발견할 수 업든 인민의
열광을 밧지 안엇슴니까 나는 기억함니다. 그리는 한편 朴珥圭 등과 함께
勞?聯合會를 창설하고 각금 鍾路靑年會? 연단에 올나서 사회문제
사상문제를 擧하야 사회민중에 작용하기를 잇지 안튼 일을. 民立大學이 발기됨애 그에 분주하고 米國議員團이 來京함애 그를 통하여 기회를 지으려
애썻스며 外地에 同胞慰問運動을 이르켯고― 엇잿든 東亞日報를 근거 삼고 다각도로 조선사회의 제반운동에 분주하든 귀하의 자태는 여러 사람에게
미덤즉한 인물, 실수 업슬 일꾼이란 늣김을 주엇슴니다. 이러케 귀하의 一動一靜은 多數人의 관심을 끄을게 되엇스며 귀하의 사회적 정치적
세력범위는 점차 증대하여 가려할 때에 때마츰 국경외로 放散하든 우리 운동의 요소를 재 引入하기 위한 모종의 작용이 잇자 불순한 私心으로
九天一落의 불운에 몰닌 것이 아님니까 귀하는 智가 過하여 「盲」하엿고 귀하는 心이 驕하야 畢竟 30半 生를 매장한 것이라 민중의 激怒는 실로
정당하엿든 것임니다. 張德秀씨! 그러나 가만히 안저서 과거의 罪過나 數하며 또한 회고를 是事함은〈13〉 老衰한 사회에서 보는
현상이고 新進하는 우리 청년사회에서는 그 장래를 설계하기에 오히려 더 밧버야 할 것이외다. 그럼으로 當面의 문제는 귀하의 장래에 잇슬
것이외다. 생각건대 귀하가 현재 부사장으로 잇는 東亞日報는 확실히 우리 사회의 一方의 위력됨에 틀님업나이다. 그러나 이 신문이 근래에는 그
위력을 順當하게 覇道로 발전식히지 안코 걸핏하면 통한스러운 狹路로 引入하는 것을 봄니다. 그가 日夜 商事機關 되기에만 충실하려는 점 그가
정치운동의 圈外도 一路脫落 遁走하려는 점 등등. 무엇이 商事機關 됨에만 충실하려는가고 함니까? 대체로 이 신문은 근래에 돈을 너무 암니다.
美麗極致하야 女兒의 粉面 가튼 光化門通의 사옥은 우리들 동지 독자인 「서민」들의 가옥과는 너무 비참한 대조를 보여주며 광고 제일주의로 광고요금
압헤는 날마다 매독 마질약까지 東京 大阪으로부터 순진한 조선인의 가정에 搬來하기에 여념 업스며 日本의 사탕업자가 來京하여도 비료상인이 來京하여도
간부 總出로 영접에 寧日이 업슬 뿐더러 지면에 그네들 사진과 기사를 내어 수만 독자에게 존경을 강요하며 又 가튼 광고주라도 산업보호상 조선광고를
오히려 優遇하여야 할 터인데 일본의 或種광고는 一行幾許인 것을 조선에게는 그보다 더한 고액을 밧지 안으면 내어주지 안는 등
이제는(此間中略-원문) 자본가의 化身이 되어 一種暴君의 姿態로 조선인의 상공 광고주 압헤 위협적으로 挑臨하고 잇는 그 모양 등등 이것은 비록
영업방면의 事나 최초에 귀하가 주필시대에 약속한 바 「조선민족의 福利」와는 점점 거리가 머러저 가는 경향 중 한가지가 아니리까. 又 근래의
東亞日報에는 積端的의 社是가 잇는 듯 십지 안슴니다. 이것이 一路政治圈外로 탈주 식히는 동인이 되엇겟습지요. 이 문제는 따로히 近近 취급할
예정이겟기에 끈치거니와 여하간 귀하가 首腦者의 一人으로 采配를 둘늘 때와는 대단히 그 意氣 그 정신에 잇서 저조된 점이 잇슴을 不誣할 사실로
암니다. 귀하는 이제 다시 부사장으로 취임하겟지요. 취임하거든 昔日의 耳軌로 돌려노으시오. 약소민족적 신문의 特質을 가춘 우리의 기관으로
돌너 노으시오. 東亞日報에 대한 기대가 큼애 귀하를 통하여 吾人의 平日의 유감을 씻고저 함니다.(中略-원문) 「低調된 공기」 「밀폐된
동아일보의 門戶」 여기에다가 우리는 귀하를 연관 식혀노코 귀하의 귀국에 意義를 부쳐보고저 함이 그른 기대리까. 귀하 虛位에 安然할 식객이
안닐진대 이 기대를 저바리지 말어야 할 것임니다. 張德秀씨! 귀하는 지금 偶合적인 東亞日報의 地盤을 除한 外는 온전히 뿌리 업는
풀이외다. 어느 곳을 바라봐도 귀하를 受入할 정치적 사회적의 一角은 보여지지 안슴니다. 한 개의 노동조합, 한 개의 청년단체, 한 개의 敎壇조차
가지지 못한 귀하의 세력은 *에 갓갑슴니다. 그러나 그 반면에 만일 8년 전과 가튼 非氣節*인 그러한 濡夫의 進退를 버리고 空全히 조선문화의
再建에 *혈을 바친다 할진대 當下를 위하야 새로운 支持層이 축조되지 안으리라고 누가 하리까. 新幹會 解消 이후 勞農運動은 대부분이 지하에 汲入되고 天道敎는 自重의
**으로 無爲를 의심케 하고 그러고 사회인민* 생활은 日落하야 이제 空氣一新을 기다리는 소리 漸急한 때* 待望하든 鬪志滿腹의 新人이 나올이
얼마나 정당한 일이리까. 귀하가 이「新人」의 일부 역할을 하게 될는지 말는지 또 旣成勢力에 무력하게 溶入되고 말는지 新세력을 만들어 風雲을
탈 것인지 모다 내일에 속하는 일임으로 이 자리에선 아모 말도 할 거리가 못되거니와 엇재든 귀하의 귀국으로 침체*調된 東亞日報 코-쓰가 전환되고
사회의 一面에나마 淸新한 공기가 주입된다면 또한 幸일가 하나이다. 인생 一代엔 順風만 잇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一沫의 飛瀑 때문에 破船
당하는 일도 잇다. 春秋 38에 불과한 귀하는 이대로 영원히 破船된 船腹에서 장사지낼 것인가. 힘굿세인 뱃사공으로 그 배 선창의 구멍을 막고
운행할 것일가? 귀하에 대한 一切의 재평가를 보류하며 爲先 「張德秀의 明日」을 바라볼가 하나이다. (필자―當面 문제의 인물에 대한 公開狀은
압흐로 매월 계속하여 본지에 발표하겟슴니다.)〈14〉 〈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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