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명 |
삼천리 제3권 제10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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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
제3권 제10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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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년월일 |
1931-10-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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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제목 |
朝鮮日報 東亞日報 社長公薦 結果發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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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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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형태 |
소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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今春 본사에서 조선사회의 중요기관인 朝鮮日報 及 東亞日報 社長의 공천을 널니
半島人士에게 요청하엿든 바 규정대로 모집기일까지 전부 1,032 표의 多數한 투표가 海內海外로부터 잇섯사외다. 이것이 어느 정도로 우리들
사회민중의 의사를 결합 반영한 것이라고 밋고 이에 그 결과를 如左히 발표하나이다.
단, 신간회 중앙위원장에 대한 공천결과는 부득이한 사정으로 눈물먹으며 그
발표를 중지하게 되엿사오니 投票諸氏의 심심한 양해를 바라거니와 더욱 이와 가치 신간회의 지도급 인물의 公薦諸氏를 발표하지 못하게 되눀” 관계상
幾多 知名人士의 氏名을 일제히 대중의 시야에 제공하지 못하게 되어 전체의 인물배치상 균형을 이른 유감된 결과를 초래하엿나이다. 그러나 그
역부득이한 사정임으로 위선 가능한 兩 新聞社長 만이라도 이에 발표하는 바외다.
朝鮮日報 社長 安在鴻......112표 申錫雨......91표 宋鎭禹......8표 尹致昊......6표 金性洙......5표 崔麟......4표 李相協......4표 許憲......3표 韓基岳......3표 李光洙......3표 申興雨......3표 李晶燮......3표 柳光烈......3표 安昌浩 金俊淵 洪命憙 徐廷禧 鄭仁果 朱耀翰 李種浩 張志暎 각 2표 (1표는 생략)
東亞日報
社長 宋鎭禹......164표 李光洙......24표 金性洙......13표 安在鴻......7표 崔麟......6표 張德秀......6표 朱耀翰......6표 申錫雨......5표 尹致昊......5표 呂運亨......4표 曹晩植 金炳魯 許憲 李相協 각
3표 朴泳孝 閔泳徽 洪命憙 鄭雲永 薛義植 李敦化 兪鎭泰 玄相允 韓炳洛 申興雨 각 2표(1표는 생략)
追告=투표 인원 총수는
1,032 인이엇스나 其中에 신간회 중앙위원장에 대한 多數 표수를 控除하여 버린 결과 前示와 如히 朝鮮 東亞 兩 新聞社長에 대한 투표만을
計上하여 발표한 것이로소이다.
투표하신 분에게 규정에 의하야 투표총인원 1,032씨 중으로부터 左記 50 인을 抽籤으로
엄정 선출하옵고 이분들에게 略少하오나 本誌 1개년 분을 無代進程하기로 하엿나이다. 다만 신간회 중앙위원장에 투표한 諸氏에게만은 아모 것도 사례를
못하게 됨이 죄송하외다. 다른 기회, 다른 형식으로 그 후의를 보답할가 하옴.
濟州道 高詩珍 京 城 金?世 北間島 元忠淳 咸北 鍾城 金七星 仁 川 河桂憲 平南 平原 申榮壁 全南 咸平 李載淵 鎭南浦 朴敬元 大 阪 吳日龍 京 城 河容洛 忠南 保寧 黃暎秀 上 海 朴金錫 北 靑 韓瑞鎭 宣 川 許恒術 平 壤 崔惠男 黃海 金川 朴鎬憲 平南 平原 千利浩 大 邱 徐希 平 壤 崔得彦 京畿 振威
李喜秀 咸北 淸津 禹錫九 平北 定州 朴德根 京畿 高陽 金敦鳳 全南 靈光 鄭鍾五 平北 宣川 吳應漢 黃海道 白川邑 趙台濬 江原道 華川 李俊命 平北 新義州 洪海德 同 郭山 朴忠健 京畿道 加平郡 王天一 北滿 吉林 金奎一 咸北 茂山 方萬金 大 阪 金炯培 元 山 金演義 全南 咸平 秋園 咸南 端川 李英喆 慶南 咸安
趙鵬來 平南 价川 安道珍 慶南 固城 李項洙 新義州 崔仁葉 平北 鐵山 金子鎭 全平 羅州 朴
準 平南 龍岡 金俊世 布? 호노루루 李元錫 平南 平原 金衝胤 京釜線 平澤驛前 趙成河 慶北 榮州 尹鎬? 市內 光化門通 金明圭 高陽郡 延*面 金慶* 平南 平原 金利筆 〈37〉 〈3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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