解放前 雜誌記事 모음

宋鎭禹氏가 東亞日報社長이 되기까지

이강기 2015. 9. 28. 09:07
잡지명 별건곤 제52호
호수 제52호
발행년월일 1932-06-01
기사제목 그가 新聞社長이 되기까지
필자
기사형태 소식

宋鎭禹氏가 東亞日報社長이 되기까지

송진우(宋鎭禹)씨가 동아일보의 사장이 된 경로는 노정일(盧正一)씨가 몃만원의 돈을 가지고 중앙일보(中央日報)를 경영하는 바람에 무중출의 돌출사장이 된 것이라던지 유진태(兪鎭
泰)씨가 조선일보에 몃만원의 대금(貸金)알선을 하야준 공덕을 가지고 조선일보의 불상사가 생기는 긔회를 타서 움안의 떡밧덧시한 사장의 경로와는 아주 천양의 판이 잇게 다르지만은 재벌가와 결탁을 하야 그 관게로 오늘날에 그 지위를 엇게 된 것은 사실의 사실이다.
물론 그의 인격이라던지 학식이 신문사장될만한 자격이 잇기 때문에 그 지위를 엇게 된 것이지만은 이 세상에는 인격이 잇고 학식이 상당하다고 해서 반듯시 그 지위를 엇는 것은 아니다. 그가 아모리 인격과 학식이 상당하더라도 김성수(金性洙)씨의 재벌배경이 업스면 도저히 오늘의 그만한 지위를 엇지 못하얏슬 것이오 김씨가 아모리 돈을 가지고 사회사업을 한다 할지라도 송진우씨가튼 이를 신임하지 안엇스면 그만한 사업을 완성하지 못하얏슬 것이다. 송진우씨가 동경에서 건너오며 교육에 주의하야 김씨와 손을 잡고 중앙학교를 인게 경영할 때도 돈은 김씨가 냇지만은 학교의 만반 경영은 송씨에게 막겨서 그가 학감도 되고 교장도 되엿다. 송진우씨가 신문사장이 되기는 그보다 훨신 이후의 일이지만은 배태되기는 벌서 그때부터라 할 수 잇다. 그때에는 물론 동아사가 생겨나지도 안엇지만은 김씨가 송씨를 신임하는 점으로 그러하다는 말이다. 그럼으로 동아사가 생겨난 후 허다경로를 밟어서 정식으로 주식회사가 되고 김씨의 재벌이 그 사의 전권을 잡게 될 때에 김씨는 누구보다도 먼저 송씨를 그 사장으로 추천한 것이엿다. 그때 송진우씨로 말하면 긔미년 사건으로 감옥에 드러갓다가 바로 나오던 길이라 경험으로 말하면 중앙학교에서 백묵생활을 하얏슬 뿐이요 신문에 대한 경험이라던지 지식으로 말하면 아주 백지장이엿다. 그것은 물론 그의 인물보다 김씨의 재벌배경이 잇섯던 까닭이다. 그때 그 사에는 백전로장의 당당한 명긔자들이 만엇지만은 그에 대하야 아모 이의도 업고 달게 부하노릇을 하게 된 것도 역시 재벌의 힘에 눌리는 까닭이엿다. 이것이 송진우씨의 제일회로 동아일보사장이 된 경로이다. 그 뒤에 송진우씨는 또 필화사건으로 감옥에 드러가게 되니 김씨가 자립위서초패왕(自立爲西楚覇王)으로 그 사의 사장이 되엿다가 그가 감옥에서 나온 뒤로는 김씨는 슬몃시 다시 물너안고 그 자리는 송진우씨가 차지를 하야 오늘까지 나려왓다. 총이언지하면 송진우씨가 동아일보의 사장이 된 것은 아주 순로로 된 것이다. 그러나 그가 그럿케 순로로 사장이 되엿지만은 모모인물이 돈 가지고 벼슬사덧시 일시에 신문사에 몃만원을 출자를 하야 사장도둑을 한 것과 혼동하야 생각하여서는 오해이다. 송진우씨도 물론 김성수씨의 재벌배경을 가지고 출신한 것은 사실이나 그의 인격이라던지 일에 대한 일관한 청정과 주의주장의 확립불요(確立不撓)하는 것은 보통의 신문경영자들이 따르지 못할 점이다. 이것이 그의 오늘날 지위를 엇게 된 것을 또한 이저서는 안될 것이다.

兪鎭泰氏가 朝鮮日報社長이 되기까지

수표정조선교육협의안에 십년고절을 지키고 잇든 백은 유진태씨가 벼란간 조선일보사장이 되고 그의 취임사를 지상에 발표하자 왼세상에 커다란 쇽크를 주엇다. 한편에서는 「유진태씨가 신문사장」하고 상당이 의아와 놀래기를 마지 아니한 사람들도 만헛스나 기실 내용을 잘 알고 잇는 사람들은 유사장이 조선일보사에 출마하게 된 것을 당연이상의 당연으로 아는 사람도 적지 아니하엿스리라. 신문사장이 반드시 신문경영에 대한 소양과 신문편즙에 관한 지식을 가저야만 그의 자격을 가추는 것은 아니겟지만 신문경영에 얼마만한 포부와 정략을 가지고 잇는지? 그것까지는 알수 업스나 신문편즙의 기술은 고사하고 신문줄을 올케 볼줄 아시지 못하는 문맹의 유씨로 일약 신문사장이 되엿다는 것은 저간에 그만한 지나온 길이 이리저리엇걸려 잇다는 것을 엿보아 알 수가 잇는가 한다.
첫재 조선일보가 창간이래 상당이 파란만코 변천이 자진 신문이다. 경영자가 자조 변하는 동시에 신문내용의 주의주장까지 몃번이나 변하엿스며 무엇보다도 경영상 재정난에 맛난 것이 여러번인 만큼 간부의 변동할 때마다 그 속에는 여러 가지 「가라꾸리」가 잇섯든 것이다. 신석우씨가 사장으로 잇는 동안 수만의 자본을 때려늣는 동안은 그럭저럭 몃해를 별로 큰 소리업시 지낫스나 신씨의 실력이 거의 다하고 이승복씨의 권술이 조선일보 안에 본색을 드러내자 신씨의 세력의 구축되며 리씨는 안팍그로 수완을 발휘하는 동안에 사람조흔 안재홍씨를 사장석에 추대하야노코 실력은 전부 자기가 장악하게 되야 리씨일개인의 전력시대를 이루고 마럿섯다. 그리는 동안에 이승복씨와 유진태씨는 본래부터 지긔가 되어 연령상으로 보면 노소의 차는 상당이 잇섯지만 그 교분은 결코 보통사이가 아니여서 실로 막약지간이 되엿섯다. 세상의 전하는 바로는 조선일보사의 재정곤란의 때에도 유씨의 힘을 입은 일도 적지 안타는 말도 잇섯스나 어쨋든 리씨가 유씨와 자별한 결탁을 하랴고 노력해 온 것만은 사실로서 유씨가 일즉 조선일보사의 고문으로 피선된 것도 그러한 리유이엇다 하며 따라서는 유씨를 사장의 지위에까지 올려세우려는 복안까지 잇서다고도 한다.
그리고 유씨로 말하면 재래 그만한 학식은 업다할지라도 중앙학회시대로부터 조선교육협회시대에 이르기까지에 사회에 대한 활동과 세상에 대한 지위가 상당이 지반을 잡은 데다가 그의 명예심과 영웅심은 다만 조선교육협회의 일개 간판을 지키는 것보다는 그 이상 더할 수가 잇다면 사양치는 아니할 성미이엿다.
그리든 것이 벼란간 조선일보사에는 지난번에 간부측의 불상사건이 세상에 발로되야 일시는 그리 큰 일이 업슬듯하다가 재차 문제가 되야 간부가 부득이 퇴직케되자 조선일보사측으로는 다시간부를 고처 조직치 아니할 수 업는 경우에 이르고 마럿다. 그리하야 원래부터 리승복씨의 유사장 추대안이 금번 긔회를 타서 이사회측으로부터 실현케 된것인바 사실 사회적으로 보아도 과히 평판이 낫블 것 업는 유씨를 추천하는 것이 무방하다는 견지에서 그의 실현을 보앗스리라한다.
엇잿든 유씨는 학식의 인물은 아니나 수완의 인물인 만큼 금번의 취임으로 하야금 헛된 지위에 도라가지 아니하고 그의 잇는바 수완을 다하야 과거 십여성상간에 문제와 파란이 만튼 조선일보로 하야금 공고한 지반위에 노혀지게 한다면 조선일보사를 위해서나 유씨 자신을 위해서나 그보다 더큰 다행이 업슬까한다.

盧正一氏가 中央日報社長이 되기까지

제목이 보이는 바와가티 盧正一씨가 中央日報社長이 되기까지의 이야기다.
그러나 거긔에는 공공연하게 공개를 할 자유를 가지지못한 내용도 잇겟슴으로 다만 표면에 나타난 바를 략긔하기로 한다.

공주(公州)의 백만장자인 鄭漢民과 사돈관게를 매즌 뒤에 전긔 鄭이 三萬圓의 출자를 하야 농업회사를 노와 한가지로 경영하려하엿다.
一방 거의 페간의 비운에 빠진 중외일보의<19> 사원중 한사람인 A씨가 公州를 내려가서 鄭에게 中外日報인게경영을 교섭하엿다.
氏의 교섭을 듯고 그 유리함을 알기는 하엿스나 부자사람의 통례로 그는 그것을 즉석에서 승낙치 아니하고 「내사돈 盧正一씨와 상의하라 그가 만일 응한다면 나도 조타」고 대답하엿다.
A씨는 다시 서울로 올나와서 盧씨와 교섭을 하엿다.
무엇으로나 다시 한번 회사에 두각을 비치어 볼 긔회를 기다리든 盧씨로는 천재일우의 조흔 찬스라 아니할 수 업는 일이엇다.
그리하야 A씨의 멧차레 교섭으로 盧씨는 드듸여 출마를 하게 되엿다. 또 달은 一방 中央日報의 사원 B씨는 大邱에 내려가 잇는 동社長安熙濟를 차저가서 판권이전의 교섭을 햇다.
조건은 판권은 적어도 盧씨의 명의로 하지 아니할 일과 中外日報의 사원을 반수 이상 채용한다는 것이라한다.
그리하야 A씨의 돈을 가진 盧씨를 끄러내는 일과 B씨의 판권인수가 끗치 나자 이만하면 신문을 게속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盧씨의 애초의 말은 자긔는 자금만 말연해내일 뿐 배후에서 일할지언정 정면에 나서지는 아니하겟다는 것이 피차간의 언약이엇다한다.
그러나 모든 일이 구체화하여감에 盧씨는 전언과 달너 社長으로 나안질 눈(이하 한줄 판독불능)하면 당국의 방침이 잇는지라 판권도 盧씨의 명의로 옴기어질 것이 사실이엇섯다. 이리하여 신문이 밋처 나오기전 작년 11월 중에 내부에 만흔 알늑이 잇섯스나 필경 소위 반간부파 가운데 2,3인이 盧씨의 세력에 쫏기어나고 盧씨는 당당 中央日報社장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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