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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中兩國 愛國者의 論戰 - 元世勳

이강기 2015. 9. 28. 10:51

잡지명 삼천리 제9권 제1

발행일 19370101

기사제목 日中兩國 愛國者論戰

필자 元世勳

기사형태 논설

 

日中兩國 愛國者論戰

元世勳

胡適博士室伏主幹見解

 

兩國思想家熱火가튼 이번 論爭紹介

胡適室伏高信 양인이 엇더한 사람들인 것은 신문 혹은 잡지를 보는 분들은 나의 소개를 不待하고도 대강 짐작할 것이다. 胡適中國憂時이며 室伏高信東京있는 憂時라는 것보다 한 사람은 中國의 평론가이며 또 한 사람은 東京의 평론가라는 것도 짐작할 것이다.

그러나 이 사람은 단순한 평론가만이 아니라 씨로 논하면 國立北平大學文學院 院長이며 시인이며 國民黨외의 청년을 지도하는 민중적 지도자이며 北平에서 발행하는 獨立評論이라는 週刊雜誌의 주간이고 室伏씨는 東京에서 유명한 中國通의며 東京政界의 잠재적 政客이며 日本評論이라는 월간잡지의 主宰者格인 동시에 저명한 政論家이다.

이제 두 사람이 中國日本을 서로 대표하야 양국민의 상호간에서 피차 對方에 향하야 희망하고 呼呼할 점을 숨기지 안코 赤裸裸하게 발하야 그것을 日中兩國의 여러 신문과 잡지에 기재한 것은 근래에 <82> 드물게 보는 조흔 현상이라 할 것이다.

혹자 此兩氏立論하고 주장한 평론을 보고 日中兩國 평론가의 논전이라고 하지만 나는 논전이 아니고 日中兩民族의 말하고저 하는 바의 말을 비교적 솔직하게 표시한 것이 논전처럼 되여 젓다고 할 터이다.

그런데 이제 내가 이 글을 쓰는데 대하야 한가지 말하여 둘 것은 兩氏의 평론을 대립식히고 나의 비판을 나리자는 것이 아니다. 다만 日中兩國의 평론가 사이에 이러한 평론이 하였다는 것을 소개하자는데 불과한 것이다는 말이다.

처음에 그들의 논문이 발표되게 된 동기로 말하면 室伏씨가 지난 여름에 中國漫遊할 때에 씨를 北京에서 맛나서 日中兩民族의 현재와 장래를 위하야 숨김없는 글울 써서 紙上에 발표하야 양민족 친선의 一助가 되게 하자!는 약속에서 생긴 것이다.

그리하야 씨가 먼저 敬告日本國民이라는 제목 하에서 1편의 논문을 써서 室伏씨에께 보내게 되고 室伏씨는 다시 씨의 논문을 日本評論이라는 월간잡지 11월호에 譯載하는 동시에 答胡適之書라는 논문을 역시 日本評論12월호에 기재하게 되였다.

그와 동시에 兩氏의 논문은 天津大公報上海申報北平獨立評論英文雜誌등에 次第譯載 혹은 轉載케 되였다.

室伏씨의 答胡適之書를 본 뒤에 씨는 또다시 答室伏高信先生이라는 논문을 大公報』『獨立評論등 신문과 잡지에 발표하게 되고 따라서 中國에서는 陶希望, 向愚 諸人兩氏의 논문에 대한 비판논문이 발표되였고 日本에서는 東京朝日新聞豆戰艦이라는 난*하에 비판이 나게 하였다.

이제 이하에서 나는 씨와 室伏씨의 次第로 역출하는 同時朝鮮 사람으로서의 하고 싶은 말도 없지 안치만 그것은 이상에서 미리 말한 바와 같이 그만두기로 하는데 다만 譯者兩氏의 논문에 대하야 각각 자가의 비판이 有望할 것인즉 나의 비판은 無用일 것이다.

다만 나는 나대로 兩氏의 말에 대하야 늑긴 바가 적지 않다. 이제 兩氏의 태도에서 互相 자기의 *을 고백하는 동시에 의 충언을 관용하는 것을 보앗으며 그 立論이 왕왕 我田引水我是人非<83> 과오를 범하기 쉬운데 兩氏은 비교적 그것이 적음울 보앗다. 砲火相交하는 戰士間에서도 인정에 넘치는 미담이 많이 생기거든 하물며 적으면 피차 양민족의 화복길흉을 우려하며 크면 전 인류사회의 福利하는 국제적 交分에서 발하는 논평이랴? 오즉 이 앞으로도 此種의 의사교환적 논평이 많이 생기고 제3자와 비판이 있기를 바랄 것뿐이다.

1, 胡氏敬告日本國民

 

씨는 그 논문 첫머리에서 체면 보는 거즛말을 하자니 거즛말 할 줄을 몰으고 마음속의 참말을 하자니 잘 들어줄 사람이 없을가 두럽. 그러나 할 수 없이 마음속의 참말을 하게 되니 日本의 독자는 내심하고 寬恕하기을 바라노라禮辭를 쓴 뒤에 그는 아래와 같은 멫가지 말을 하였다.

그는 첫재로 말하되 내가 말하고저 하는 제1구의 는 곳 나는 日本국민이 다시는 日中親善이라는 말을 하지 말기를 진정으로 간구한다. 나는 4년 이래로 日中국민이 日中親善을 말할 적마다 내 마음속에 참으로 받어내기가 어러움올 感覺하었다.

당신들은 생각하라! 4년 이래로 조성된 국세가 친선의 국세인가? 혹은 XX의 국세인가?

내가 말하고저 하는 제2구의 는 청컨대 일본국민은 14억 인구의 민족적 심리를 경시하지 말나는 말이다. 蜂蛋尙有毒커든 하물며 4억 인민의 -이랴!

이 몇 해 동안에 中國의 정부와 인민이 日本에 대한 태도는 히 충분한 委曲求全이라 할 것이다. 이것은 中國領袖日本武力의 우월을 理觸하고 분쟁의 확대를 避免하며 委曲求全의 형세하에서 자기의 국가를 정돈하며 계속 노력하자는 것이다. (4行略)

에치오피아가 伊太利를 반항하는 양식은 中國인민의 반성을 引起할 만하고 중국인민으로 하여곰 새로운 慚愧와 흥분을 감각케 할만하다. 우리는 에치오피아를 본뜯 수도 없다는 말이다?하는 말은 이것이 處處에서 들이는 問辭이다.

에치오피아를 본뜨기도 그러케 容易한 일은 아니다. 다만 내가 日本국민에게 警告할 수 있는 것은 곳 만일 이 4억 인구를 가진 국가가 遍迫됨이 可走<84> 길이 다시 없게 되는 때와 참으려고 하여도 더 참을 수가 없게 되는 때에는 맛츰내 一切를 불고하고(中略) 一切 商業의 중심구와 一切 문화교육의 중심구를 20세기적 飛機重砲하에서 焦土化하기를 준비할 1이 있을 것이다. 전년에 日本某領袖는 일즉 焦土外交라는 標語를 말하였다. 中國이 참으로 더 나아갈 길이 없게 되는 때에는 그 中國이 할 수 없이 一條狹路로 갈 수 박게 없으니 그것은 곳 困獸的 死鬪인데 말하자면 中國的 焦土政策을 가지고 日本的 焦土政策에 응할 것이다.

그럼으로 나는 日本국민이 中國의 민족적 仇恨 심리를 경시하지 말나는 것이다. 日中親善空讀하는 것이니 仇恨을 있지 하면 觸除할가 생각한 이만 갔지 못한 것이다.

양국이 교전하면 강자가 하고 약자가 할 것은 當理이지만 그럿타고 반듯이 仇恨을 매저두고 심어두는 것이 아닌 것을 日本국민은 모름즉이 覺悟하라! 日露戰後5년을 不出하여 日露은 동맹국이 되였으며 日中戰後10년을 不出하야 日露戰時中國人의 대다수는 日本에 동정한 것이다. 그럼으로 전승한다고 반듯이 仇恨은 매저두는 것은 아니다. 仇恨이 극도에 달하면 燥發이 필유할 것인데 中國焦土化日本엔들 그 무슨 복이 될 것인가?

내가 말코저 하는 제3구 이 는 곳 日本국민은 불가불 자기국가의 과거의 위대한 성적과 미래의 위대한 前途珍重하며 愛惜하라!

일본국민의 과거 60년 동안에 그 위대한 성적은 한갔 일본민족의 광영만이 아니라 인류사상에서도 일대 靈蹟이다. 누구나 日本維新이래의 60光榮史를 읽을 때에 警嘆하지 아니치 못하는 것이다.

靡不有*鮮克有終이라는 東洋哲言이 있다. 일개 위대한 국가도 용이히 파멸될 수 있는 것이다. 西班牙 전성시대이는 西半球半部하하였튼데 지금에 어데 있는가? 獨逸勃興은 그 신속히 日本洽似하였다. 1914년 대전의 전야까지도 獨逸의 군비, 정치, 문화, 과학, 공업, 상업, 철학, 음학, 미술 등이 한가지도 전 세계적 제1위를 점령치 아니한 것이 없섯다. 그러든 것 4년의 전쟁은 맛츰내 이 羨慕하며 驚嘆될 국가로 하여곰 가장 紛亂되고 빈곤한 지경에 빠지게 하야 *까지 戰前<85>에 지위를 회복하지 못하게 하지 아니하였는가?

日本帝國前途는 무한한 것이다. 자기가 그 자기를 파멸케 되지 안흐면 타국은 일본제국의 발전을 방해할 자가 없는 것이다.

3년 전 국제관계를 史的으로 연구하는 英人專門家 토인삐日本X인의 행위는 곳 그 전 민족이 행위라고 지칭하였으니 日本국민은 深省하여야 할 바이다.

나는 日本국민에 대하야 기왕의 성적을 譖譖하는 사람이다. 나는 日本前途를 상상하리라. 萬世一系天皇, 勤儉愛國의 인민, 武士道遺風, 愛美的 風氣普偏, 好學不厭의 정신은 英吉利獨逸 양 민족의 장점을 兼有하였다 말할 수 있슨즉 맛당히 화평발전하야 동아에서 능히 남으로 하여곰 愛美할 국가가 될 것이라고 할 터이다.

古人하되 懸岸勒馬라 함은 곳 가장 艱難할 공작이라 함인데 세계 정치사상에서 그러케 많이 불 수 없는 것이다. 다만 苦海無邊하지만 回頭하면 是岸이다. 不回頭的 위험은 상상하기도 불능한 것이다.

그럼으로 내가 말하고저 하는 최후의 한 마듸는 곳 日本국민이 불가불 日本과거의 광영을 珍重 愛惜하며 日本 미래의 전도를 또한 珍重 愛惜하여야 할 것이다. 나는 日本中國의 복이나 혹은 세계이 복이라고 불신함으로 할 수 없이 日本국민을 향하야 최후의 충언을 말하는 바이다云云

3, 室伏氏答胡適之書

 

室伏氏의 글도 그 첫머리에는 허다한 禮辭와 감상문이 씨웟다. 이것은 하고 그 논문의 大旨譯述한다면 한 것이다.

나는 당신의 兩次을 매우 기뿌게 接到하고 아울러 우리가 北平에서 相約한 바의 寄槁를 밧고 나는 非常歡喜하였다. 貴國日本互相 理觸를 수요하는 이 시기에서 당신이 日本評論에 대한 寄稿가 그 의의와 임무의 중대함은 나의 진술을 不待할 것이다. 可惜한 것은 日本 현재의 국정이 너주 복잡하여 貴稿의 일부분이 轉載할 때에 할 수 없이 刪除되였으니 이것은 맛당히 내가 당신에게 대하야 미안하다 할 바이다. 그러나 당신의 敬告日本國民이라는 그 글이 日本評論譯載된 뒤에 우리나라의 지식계급에서는 아조 큰 감동을 引起하고 <86> 당신에 대하야 이상한 칭찬이 발생되고 귀국에 대하야 막대한 동정이 발생하였으니 此種의 사실은 맛당히 당신을 향하야 보고할 것이다. 혹자 당신도 또한 만족타 할 것이다.

나는 日本貴國의 사이에는 極力 互相 諒解할 필요가 더욱 迫切하다고 항상 생각한다. 나는 항상 생각하되 만일 918사변 이전에 互相 諒解되였드면 그러한 일이 決無하였으리라고 하나니 이것은 내가 항상 遺憾이라 하는 바이다. 918事變 이래로 貴國日本간의 불쾌 관계는 당신이 가장 잘 알 터이다. 우리의 방면에 비교하야 더욱 통절하게 알 것이다. 우리도 隱瞞할 필요는 없다. 日本古語에 말하되 숨길수록 더욱 나타난다고 하였다. 隱瞞하든 일이 필경은 폭로되는 때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럴수룩 貴國日本互相 理解하며 신뢰하며 원조함을 회복하지 아니하면 불가한 것은 곳 내가 알고 의심치 아니하는 것이다.

당신은 日本국민을 향하여 日中親善四字再提하지 말나고 하였다. 당신의 심리를 내가 었지 이해하지 못하랴? 至少하여도 日本의 지식분자는 了解할 것이며 아울러 당신의 此種 悲痛的 고백에 대하여 동정을 不禁할 것이다. 당신은 말하는 것이 眞實話라고 말하였고 우리도 또한 此種眞實話를 듯고저 한 것이다. 貴國사람들이 엇더케 생각하는가를 우리는 貴國의 대표로부터 있는 그대로 듯기를 원하는 것이다.

우리는 어데까지든지 진실을 구한다. 貴國人日本에 대하야 엇더케 생각하든지 日本人의 일부에 엇더한 사람이 있든지 우리 日本人은 진실을 하며 진실을 하야 眞實에서 머리를 숙인다. 엇더한 권력과 엇더한 부에 대하여도 를 불굴하는 것이 日本人自誇하는 바이다. 百萬人이라도 나는 간다는 것은 貴國 賢人의 말한 바이다. 此賢人에 대하야 日本人貴國人보다 적게 신봉한다고는 우리가 밋지 아니한다. 貴國賢人 더욱히 先秦時代孔孟, 老牡貴國의 자랑하는 유산이나 는 동시에 우리 日本人, 로 되였고 금후에도 영구히 우리 국민의 재산이 될 것이다.

貴國俳儒運動이 있은 것은 우리가 잘 아는 바이다. 胡適之先生! 당신의 입장도 우리가 상당히 알고 있는 것이다. 西歐化는 전 세계를 沖洗하야 세계의 엇더한 국민이든지 근대화의 필연성에 壓迫되지 <87> 아니한 자가 없다. 당신과 같은 貴國의 선각자들이 西文明伸手接受하야 대중의 에서 각성의 打鳴하고 그 振子一端이 국민적 偶像破회의 운동으로 할 수 없이 되여진 것을 우리가 충분히 이해한다.

日本도 그와 同樣의 길을 택한 일이 있다. 明治의 선각자들이 此點에서 貴國보다 一步를 전진하였다. 佛敎空念佛이 된지 오랏고 儒敎長時期에서 日本 지식분자의 멸시를 바덧다. 一切 東方的 유산은 反動에 의하야 매장하였다. 그러나 를 불구하고 인류는 지리적 환경과 역사적 제재로부터 자유되기 불능한 것이다. 우리는 어데까지든지 東方人이며 東方의 역사와 전통에 의하야 根抵接成하였으며 生來로 동방적 세계관중에 置身하야 얼培魂하며 생활의 의미를 探索된 것은 一點도 없는 것이다.

다시 귀국 현인의 말 가지고 말하자! 그는 말하되 見義不爲無勇』」다 하였다. 당신은 中國古代哲學史저자로서 가장 잘 알 것이라고 생각된다. 이러한 말이 우리 日本人 사이에서 얼마나 애호되며 실천되였는지를 당신의 聽明으로 알지 못할 리는 없으리라고 생각된다. 의 정신이 일본국민의 혈관 속에서 흘으고 있다. 이것이 무사도와 충의의 정신도 되였으며 市井에서는 협객의 정신으로 발달되여온 것이다. 정신은 明滅하였다. 西歐文明정신을 침식한 것은 不爭의 사실이다. 물질주의, 유태주의, 그 담에는 獨逸의 군국주의, 英國의 제국주의가 우리 日本한 영향도 不少하였다. 此國商工階級이 물질주의의 毒牙에 걸인 것이라든지 此國의 청년이 유물론에 심취한 것이라든지 그 담에는 일부에서 제국주의에의 몽상이 착안한 것이라든지를 우리는 결코 사실이 아니라고 말코저 하지 아니된다.

당신은 당신의 논문중에서 日本을 위하야 深憂不堪한다.고 하였다. 우리는 隣國卓越한 사상가의 충언을 고맙게 拜聽한다. 他山이라는 말은 이 나라에 구전된 말이다. 우리 日本人隣人의 충언을 신의 말저럼 들을 만한 정신적 준비, 훈련, 도량을 가지고 있는 것을 나는 당신에 한다.

日本에는 확실히 誤謬도 있고 충동도 있고 또는 孟子의 일은바 하며 日本精神英國的 식욕을 하는 자가 없지 않다. 우리는 여긔에서 <88> 日本의 위기까지도 볼여고 하는 것이다. 非道義的 국민이 그 지위를 永保하지 못하는 것은 역사의 鐵則이라고 하여도 좋다.

당신의 충언을 기달일 것도 없이 日本은 이제 깊이 自戒치 아니하면 안될 시간이다. 를 심판의 시간이라 하여도 좋다. 日本으로서 만일 유혹의 에 걸이면 日本明日容易치 않은 위험에 빠질 것이라고 우리는 此 數年 중에 日本국민에께 경고하는 것이다.

懸涯勒馬고 당신은 말하였다. 우리는 이 점에서도 당신의 충언에 충분한 경의를 가지고 경청한다. 아리쓰더트는 중지하라는 말을 인류에께 가릇첫다. 不及갔다貴國의 성자가 말하며 인류에께 不減이 교훈을 남겠다. 개인이나 국가가 最盛한 때에 일층 엄숙한 반성을 필요타 하는 것이다. 이 의미에서 당금 세계에서 日本처럼 반성을 필요로 할 국민은 없다고 할 터이다. 日本이 그 역사상에서 일즉 경험한 일이 없는 황금시대의 1를 걸고 있는 것은 당신이 솔직하게 인식한 그대로이다. 日本국민의 근면, 노력, 향상하고 쉬지 안는 정신은 드듸여 日本으로 하여곰 금일과 같은 세계 최대국의 일이 되게 한 것이다. 다년의 고심과 노력과 재능에 의하야 이제 우리 日本順風에 돗을 달고 세계사의 大舞臺상에 왕자처럼 서고 있다. 日本을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며 日本을 대적하는 자는 粹碎될 것이다. 何故뇨 하면 日本 을 가젓고 또는 그 역할을 당한다. 그리고 日本국민은 此使命을 의식하기를 하였다. 그런데 이 때가 가장 중대한 때이다. 황금시대의 겻테는 위기가 伏在한다는 것도 당신의 明眼이 투시한 그대로이다. 이 때를 당하여 日本국민이 다만 타국의 약점만 하며 자기의 양심을 하기로만 생각하다면 곳 日本은 그 황금시대의 문전에서 스사로 喪失한 것 밖에 없다. 우리는 깁이 自戒한다. 日本국민은 모다 당신의 경고에 틀임없이 감사할 것을 나는 深信한다. 그런다 이와 함께 나는 貴國에 경고하며 또는 貴國이 새로히 인식하여야 할 것을 요구한다.

나는 일즉 日本에 과오가 없다고는 말지 아니한 것이다. 당신이 仇恨心理輕視하지 말나고 한 말을 적어도 나는 충분한 동정과 이해를 가지고 접수하였다. 加藤高明이래의 對支政策을 나는 日本<89> 위하야 현명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아니한다. 日本對支外交의 시야는 太狹하고 또는 日本貴國에 대한 이해도 불충분하었다고 나는 말한다. 그런데 우리는 貴國 식자와 지도자에 향하야 못지 않으면 안될 것이 있다. 貴國에는 貴國의 가장 위대한 지도자, 孫中山이 적어도 최초에 그 따듯한 손을 日本에게 페고 日本의 협력을 구한 것과 같이 貴國 繼續의 지도자들이 日本을 잘 이해하며 日本에게 구할 만한 것은 구하고 할만 것을 하였는가? 하는 것이다.

우리는 물론 仇恨의 심리를 輕視하는 것도 아니고 또는 거기 의하야 할 바를 무시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仇恨은 발전적 解消할 수도 있는 것이며 제2仇恨生長식힐 수도 있는 것이며 최악의 에는 제2, 3으로 영구한 仇恨種子를 만들어 놀 수도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 점에서 貴國에 충분한 동정을 표명하는 동시에 貴國의 인식을 요구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있다. 다시 뭇노니 貴國은 제2, 3으로 영구 仇恨種子를 해소식힐여고 노력하여 왔든가? 또는 를 배양하기를 노력하여 왔든가? 貴國의 지도자중에서 日本과의 衷心的 우정을 위하여 그 국민을 어두만지며 說服식힐여고 노력히여 왔든가? 日支關係를 절망적인 최악화하도록 노력하여 왔는가? 함이다.

以夷制夷의 정책을 가지고서 貴國日本에 대립하여 온 것은 세계주지의 사실이다. 米國도 그것을 위하야 貴國에 손을 벌였다. 英國은 가장 활하기서 서근그리럿다. 蘇聯貴國에 었지 하였으며 貴國의 대표자가 얼마나 聯露容共하였는가도 아즉 우리의 기억에 的確히 남어있다. 그리하야 그 결과가 엇더케 되였든 가도.

英國狡獪하기서 서근거럿다고 나는 말하였다. 不列顚에서 世人은 왕왕히 그 의 저주를 함유한 것을 이저 버린다. 가장 狡獪英國貴國에께 엇더한 결과를 가저왔는가는 貴國識者가 항상 주의하였을 것이다. 貴國은 몃 번이나 고배를 마섯으며 그리고 거긔에서 貴國의 민족주의적 排外運動이 생하였든 것도 당신의 잘 알 바이다. 여긔에도 나는 貴國의 지도자들에께 뭇고저 한다. 貴國은 이 고배를 잘 이저버리지 아니하는가고.

愛蘭, 印度, 埃及, 南非, 아리비아 등이 英國으로 하야 제단상의 이 되었는가는 세계가 한가지로 있지 말어야 할 것이다. 지구의 5분지 1의 면적은 <90> 3, 4천만의 국민의 노예시장으로 한 것을 있지 말어야 한다.

不列顚의 유혹에 떠러지지 말나고 우리는 경고한다. 그리하야 一層 貴國의 지도자들의 주의를 환기하고저 한다. 中國의 적은 日本인가? 英國인가? 그리고 또는 日本이 될 터인가? 英國이 될 터인가? 하는데 대하여 뭇고저 한다.

胡適之先生!

日本中國日本의 지식분자와 中國의 지식분자가 서로 손을 잡고 동방의 자유와 유산과 문화와를 擁護하며 나아가서는 세계사의 무대를 우리 동방의 세계로 遷到하기 위하야 함게 노력하자! 云云하였다.

3, 胡氏答室伏高信先生

 

(禮辭前略)

室伏高信先生! 당신이 능히 나의 偶像破의 입장을 양해한다니 이것은 가장 可喜一件事이다. 나는 貴國現時 學徒가 왕왕 우리들이 무었을 위하여 고문화배척을 노력하는지 알지 못하는 까닭이다.

그럿소! 日本도 일즉 이 길을 걸었소다만 나는 貴國此一點에서 비록 우리보다 몃10년 일즉하였지만 불행히 偶像破壞運動收束太早함을 未免하였다고 생각된다. 복고와 存古의 보수적 潮流回來하기 太早함을 未免하지 않었는가?

나와 나의 朋友들의 입장은 이러하다. 大凡文化는 그의 惰性하야 모다 자기가 자기를 保守할여고 한다. 소수 선지선각의 사상가가 만일 그들이 去腐革新의 필요를 분명히 보앗다면 그들은 맛당히 屋頂上에 서서 大聲疾呼하되 회의 太多를 불필고려할 것이며 祖宗유산이 毁滅의 위험이 있는 것도 불필고려하리 할 것이다. 眞金不怕한다는 것은 우리 祖宗一句名言이다. 참으로 가치있는 물건은 회되여 일어버리지지 않은 것이다.

근래 北平을 방문하는 日本側 朋友들이 왕왕 동방적 유산을 위하야 과분적 우려를 하되 차라리 동방의 소년들이 날마다 阿彌陀佛이나 읽는지 혹은 *雀碑나 놀기를 원할지언정 그들이 유물론에 심취하기나혹은 자유주의를 신앙함은 不願한다는 것과 彷彿하다. 此種의 우려는 당신의 答書중에도 언급되였다. <91>

나는 생각하되 우리 양국에서 우려할 것이 짐작컨대 동방유산적 失墜에 비하야 히 주요한 것이 있지 아니한가? 나 개인은 결코 동방의 유산과 동방의 문화가 失墜된다고 근심되지 안다. 내가 焦慮하는 바는 곳 우리 동방민족이 겨우 세계 인류적 최신문화와 접촉하기를 개시하고서 그 유혹을 겁내고 급속히 자기의 殘關退守하거나 혹은 自誇自大하는 老路上으로 하는 것이다. 보다 더욱 焦慮되는 바는 곳 우리 동방민족이 혹시 동방적 유산을 擁護한다大旗하에서 일체 自相殘害的 醜劇을 연출하야 전 세계에 貽笑할가 함이다.

室伏先生! 당신은 이것이 우리가 금일에 맛당히 더욱 고려할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는가?

당신 答後幅에서 당신은 우리 양국간의 仇恨심리의 유래를 지정하였다. 당신은 此種 仇恨심리를 中國以夷制夷的 政策을 취한 결과라고 본 듯하다. 당신은 우리에께 뭇되 中國의 적은 日本인가? 또는 英國인가? 日本이 될 것인가? 英國이 될 것인가?하였다.

此 一段를 만일 一篇 外交詞令에서나 혹은 그 얻은 달은 사람의 연설속에서 발견하였다면 나는 毫未驚異치 안는다. 다만 당신의 문장속에서 내가 이것을 읽고 一點驚訝를 늑기지 않을 수 없다.

以夷制夷라는 것을 古文句인데 自話로 한다면 一個友誼的 國家援助를 빌어 가지고 一個敵對國家抵禦한다는 말이다. 이것은 一切 국가가 常做로서 여긔에는 다못 成敗評量할 것만 하고 무슨 시비를 판단할 것은 없는 것이다.

貴國昔年不列眞頁誘惑을 받더서 그와 20년의 동맹국을 짓지 않었는가? 또는 米國滿洲開放論으로 인하야 貴國도 일즉 聯俄制米하지 않었는가? 이것이 모다 최근의 역사로서 대가가 全忘하지 않은 것이 아닌가?

中國으로 말하면 참으로 우리의 이 나라는 아즉도 누구로더부터 가 되기도 부족하고 누구로더부터 이 되기는 더욱 부족한 것이다. 는 평등의 것이며 도 평등의 것이다. 孫中山先生은 유언하되 세계에서 우리를 평등으로 대하는 민족을 연합하여 共同奮鬪하라!하였다. 그런데 누가 참으로 우리를 평등으로 대하는 민족이냐? 孫中山先生의 이 遺訓<92> 컨대 10년 전의 一夢想이다.

오늘의 우리는 맛당히 이 꿈을 깨여야 하겠다. 우리는 오늘에 평등으로 우리를 하는 민족을 차즐여고 망상하지 않은다. 오늘의 우리는 다만 우리에게 대하야 침략의 야심이 최소한 것과 우리의 국가적 생존과 발전을 방해하지 아니하는 민족에 대하여는 모다 우리이 朋友가 되리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우리는 침략하며 우리의 국가적 생존과 발전을 방해하는 민족은 모다 우리의 적이라고 생각한다.

室伏先生! 청컨대 당신은 생각하여 보시오. 상술한 西條界說公道인가? 혹은 非公道인가?

당신은 猶太主義를 불찬성하였다. 그런데 猶太主義 중에는 일종의 奇論하니 곳 네의 원수를 사랑하라!고 인류에께 권고한 것이다. 나는 25년 동안에 此種猶太主義深信 하였다. 그런데 나는 나의 信道不篤守道不堅을 가장 慚愧한다. 최근 幾個目중에서 나는 此種主義에 대하야 우리 육체을 가진 凡夫로서는 능히 종신토록 신봉할 것이 못 되는가 하는 회의가 頗有하게 되었다.

나는 근래에 此種 猶太主義가 우리 동방유산속에 있는 幾句老話, 不遷怒不念舊惡, 怨是用希라는 말만 不如하다고 感覺하게 되였다. 이 말들은 인정에 한 것으로 곳 우리가 조곰 理智力을 가하면 가히 실행할 것이다. 켄대 내가 日本某某XX을 원하는 동시에 나는 히써 나의 畏友高木八尺敎授를 경애할 수 있으니 이것이 不遷怒인데 가장 容易가 아닌가? 또는 日本帝國一旦改塗易轍하야 中國好友變成한다면 나는 당연히 과거의 허다 원한을 망각할 것이니 이것은 不念舊惡인데 또한 가장 容易가 아닌가?

그런데 만일 일개강국이 하며 한다면 한갔 *種下할 뿐만 아니다. 혹은 당신이 말한 바의 第二導*, 第三仇*으로 영구적 *을 계속 播種하게 될 것이다. 이러케 신속한 播種의 하에서는 적국에 聰明聖智的 지도자할지라도 컨대 국민을 인도하야 그 국가에 대하야 진정적 우정이 발생케 할방법이 할 것이다.

당신이 우리에게 대하야 不列顚誘惑을 밧지 말어라!하고 경고를 하였다. 室伏先生! 당신은 나가 한가지 역사적 이야기를 말할 터이니 듯기를 원하는가? <93>

民國 146월로부터 民國 16년에 하게까지는 中國英國을 적시하기가 가장 激烈하든 시기이다. 3년 동안에 英國 상공업이 한 손실이 절대하였든 바를 당신도 오히려 기억할 것이다. 民國 15에 나는 바로 英國에 있서서 날마다 保守黨 機關紙中國嚴罰懲討하라는 論調를 읽었다. 그러나 그들은 란포 손씨를 공사로 派遣하고 그들은 그 해 12월에 소위 聖請*覺書라는 1편을 발표하야 英國政府中國에 대한 和平정부을 表示하였다. 中國革命黨員不列顚誘惑을 불신하고 토린볼을 피하여 칼을 빼게 하였다. 於是次年 初旬에 무력을 하야 漢口英祖界를 점령한 하였다. 그래도 英國外交家依舊히 인내하고 한갔 칼을 빼지 아니할 뿐만 아니라 專員을 파견하야 武漢에 가서 陳友仁漢口協定訂正하였다. 이러케 인내한 결과도 幾個月 後風勢가 도라지고 반영적 심리는 점점 轉換되였다. 不列顚誘惑은 맛츰내 收效하였다.

이 녯날 이야기가 來書의 질문을 答覆하기에 족할가. 당신은 우리에게 뭇되 貴國英國貴國에게 苦楚를 잘 이저버리는가? 아는가?하였다. 나는 회답하되 우리는 다만 상술한 동방성인의 不急舊惡하라古訓을 행할 뿐이라 하노라. 美貌狡獪的 誘惑은 곳 사람으로 하여곰 과거의 苦楚를 이저버리게 하는 것이다. 총명한 室伏先生! 누가 능히 美貌狡獪的 誘惑을 밧지 아니하겠는가.

換言하면 武裝한 주먹은 곳 善忘病에 대한 가장 신령한 치료제이다. 오늘에 대포 한방을 놋코 明日에는 폭격기 10대가 나라오고 再明日에는 10열차의 군대가 한다면 先生! 당신은 우리의 善忘病威嘛을 밧고 달아나게 될 것이 응당한가? 안한가? (以下) <94>

<82-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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