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愛蘭文壇訪問記 - 鄭寅燮

이강기 2015. 9. 28. 11:03

잡지명 삼천리문학 제1

발행일 19380101

기사제목 愛蘭文壇訪問記

필자 鄭寅燮

기사형태 기행문

 

 

愛蘭文壇訪問記

 

鄭寅燮

97일 저녁 835분에 倫敦유스튼역을 떠나서 英蘭의 중부 서해안에 있는 호리 헬항을 향하야 기차는 전속력으로 다라났다.

도중에서는 두 군대 밖게 정차하지 않고 밤중 230분 경에 바닷가에 왔다. 바람은 심히 불어 물결이 흠한데 여러 날 旅中에서 피곤한 몸으로 눈이 휘돌린다. 발서 켈틕계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船中에는 걸상이 놓여 있는데 가난한 사람들인지 담뇨에 몸을 뚤뚤 감고서 누어있다. 나는 고국서 여름인 것을 생각하고 의복을 충분히 준비하지 못한 탓으로 그대로 걸상에서 견딀 수가 없으니깐155아모래도 寢室이 필요할 것 같었다. 船費 외에 따로 2실링을 주고 잠자리를 정한 후에 잠시 앉어있노라니깐 밤바람에 시달린 관계인지 몸이 어실어실 치위진다. 그래서 따끈한 차를 한 잔 사마시면서 가지고 온 비스케트를 몇 개 씹어 먹으니 몸이 좀 더워진다.

나는 이제 그리고 그리든 愛蘭 구경을 하게 되는구나 하고 침대에 누었다.

밤중에 잠이 겨우 들낙말낙할 지음에 천지가 뒤눕는 것 같이 생각된다. 정신을 가다듬어 눈을 떠보니 船体가 흔들니기 시작한 것이다. 나는 평생 그같이 심한 動搖는 당해 본 적이 없다. 눈이 휘돌린다. 커다란 波濤에 언쳐 떠내려가는 풀닙과 같이. 아까 먹은 차와 비스케트가 배속에서 不服反抗을 시작는데 자못 形勢는 흠하다. 바다의 물결은 배와 합작하고 음식물은 내 육체와 합작해서 나의 정신을 중간에 두고 서로 다툰다. 英國愛蘭 사이의 이 해협은 외 이다지도 흠할가? 정신을 차리고 담뇨를 얼굴까지 덮고 船體가 올러갈 때는 숨을 들어쉬고 내려갈 때는 숨을 내어쉬면서 최선의 인내로 목구멍의 脫獄計劃群退治하려고 했다.

어느 듯 잠은 나를 위해서 물결과 다투었는지 잠시 정신없이 조우든 차에 船員에 소리가 들린다. 눈을 떠니 발서 愛蘭海港 킹스타운이었다. 급히 단장을 채리고 稅關檢査를 마치고 배에서 내렸다. 눈에 빛 외이는 愛蘭風土는 내게 이상한 감격을 준다.

아침 하늘에 갈매기 날고

물결은 흠한데 바람도 사나웁고

선창가 삘딍은 아직도 눈떠지 않고 窓門

는 밤秘密이 조울고 있더라.

밤동안 흔들리든 汽船

이제 목 매인 소리를 지르고,

東方의 한 旅人이 그립다는 듯이

作別人事인냥 서러워하더라.

다블린汽車플냎홈에서

窓門마다 한房式 입을 벌리고 있다.

가난한 百姓들이 사는 이땅에156

가난한 나그내 하나 찾어왔네!

自然風貌가 외그리 쓸쓸한고?

집과 사람들이 여위고 있다.

묺어진 돌담에 까치가 울고

愛蘭女人은 겉내옷을 洗濯하더라.

화살같이 다라나는 電信柱사이로

海灣의 건너편에 다블린이 뵈인다.

아침 안개는 尖塔을 가리우고

海岸들은 이슬을 마시더라.

기차를 탄 후에 한 시간 동안 반달같이 굽은 해안을 지내간다. 왼편에는 村落田野와 적은 산들이 뵈이고 바른편으로는 넓은 이 들어있다. 어쩐지 英蘭과는 그 인상이 퍽도 다르다. 첫재 山野가 한산해 보인다. 더구나 집과 집사이에는 돍으로 싸올린 담이 많은데 그리 높지는 않으나 살림사리가 서로 隔離되어 있는 감이 있고 대개 묺어진 그대로 손을 대이지 않은 것을 보아 窮乏한 인상을 주고 한편에 그들이 지내온 세월을 追憶하게157한다. 여기저기 보이는 草原우에는 힌 갈매기들이 떼를 지어 날러와서 아침 노리를 하고 있다.

멀리 건너편으로 보이던 한 줄기의 활같이 굽은 市街線들이 차츰 커진다. 기차는 해안선을 右便으로 돌고 돌아서 그곳으로 작고 가는 모양이다. 아마 저기가 다블린인가 보다 하고 있노라니깐 어느 듯 다블린 정차장에 도착했다.

때는 아침 7시 가량이다. 아직도 사람들의 왕래가 많지 않다. 모든 것이 古色蒼然해 보인다. 켈틕神秘懊惱가 한대 섞여서 市街地의 색채가 흐리다. 사람들의 인상이 그러하고 의복도 그러하다.

정차장 안내소에서 지도와 旅行指南을 구해가지고 거리 구경을 하기 전에 먼저 아침 먹을 양으로 정차장 앞 전차길 건너편의 래스트랑에 들어갔다. 채려주는 음식이 그리 깨끗하지는 않으나 분량이 많다. 英國 사람들의 음식보담 구수한 맛이 있다. 팡과 牛乳가 갑잘이나 많이주고 비프와 개란 찌짐도 많이 준다. 얼굴이 길숨하고 순해보이는 女給異國의 나그내를 흥미있는 눈초리로 흘겨본다. 그러나 大陸華麗한 도시의 웨이트래스에 비한다면 꼴의 순박한 처녀같이 밖에 보이지 않는다. 나는 愛蘭女人典型을 거기서 비로소 인상깊게 보았다.

9시 가량 되어서 오코넬교를 통하는 전차길을 따라 큰 거리로 걸어갔다. 정차장 안내소에서 신비시인 예츠씨의 있는 곳을 무렀더니 아베劇場을 가면 여러 사람을 맛낼 것이라고 하기에 나는 직금 愛蘭文壇訪問하기 위해서 지도를 펴들고 그 극장 있는 곳으로 향해 가는 것이다.

거리의 상점 간판에는 게릭어와 영어의 두가지가 보인다. 그들의 일홈에는 오우에다가 左上애포스트리피의 점을 찍은 것이 많다. 오코넬교라는158> 『라든지 극작가 오케시도 그러한 것인것을 알었다. 거리에 다니는 사람들의 얼굴 인상도 앵그로 색슨인들과는 다르고 의복도 英蘭人보담 훨신 질박하여서 襤褸를 입은 紳士淑女들도 상당히 많고 不具者들이 거리에 자주 보인다. 東洋사람을 많이 못 보았는지 내 얼골을 유달리 처들어다본다. 내가 조선사람인 것을 몇 사람이나 알었을가. 거리마다 野菜商이 많은데 굵은 馬鈴薯가 흔한 모양이다.

한참 가노라니깐 길이 세갈내로 갈려지는데 왼편 길가에 바블린대학의 건물이 해 있고 거기서 조곰 左便으로 도라가니 유명한 시인 토머스 무어大銅像이 네거리 광장 한 가운데 서 있다. 만토를 억개에 걸치고 서 있는 모양은 그의 풍격을 그대로 그렸다고 할 수 있다. 대학정문안에는 一世諷刺文豪 골드 스미스銅像이 있는데 그의 유모러스姿態는 미소를 자아낸다. 희곡 굳 네이춰드 맨이라던지 쉬 스퉆스 투 콩쿼速想하고 그의 휴머吟味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의 표정에는 어듼가 쓸쓸한 눈물이 있어 보인다. 이것은 그의 명작 荒村에 나타나는 貧者同情으로도 알 수 있다. 原稿料가 생기면 아낌없이 가난하 사람들과 같이 먹어버리고는 돈이 모자라면 또 고생을 실컨하는 성향이 아니었든가. 古來로 켈틕계의 藝術家들이 英文學 또는 세계문학에 커다란 貢獻을 한 것은 새삼스럽게 여기서 기술할 필요가 없을 만큼 常識化되어 있다. 대학 안에 들어가 보니 건물과 庭園이 깨끗하고 입구에는 여러 가지 學科學則會合에 대한 揭示가 갓득 붙어있는것을 보니 學校란 어디나 다 같은 일을 반복하고 있는 것이로구나. 그들의 지적 능력이 더욱 빛난 功蹟을 세계문학상에 남기기를 빌었다.

대학 바로 건너편에 보이는 것이 애란銀行인데 길가에 죽죽 서 있는 거대한 圓柱10여개나 된다. 고전적 가 풍부한 希臘式 건물이다. 오래되어 그런지 石炭 검정이가 건물의 壁色을 군데군데 검게하고 있는데 圓柱만은 닦어서 그런지 힌색으로 보여 黑白의 조화가 볼 만하다.

자랑의 욕심이란 한이 없다. 아베극장을 찾어 바로 직행할 것이 가는 도중에 좌우의 구경거리의 誘惑되어 옆길로 비끄러지게 되는 것이다. 나는 아까159왔던 길로 다시 도라가서 네거리의 중간 넓은 길로 가니 다블린의 심장인 오코넬교로 나오게 되었다. 이 다리는 오코넬의 공로를 기념하기 위해서 새운 기념상이었는데 여러가지 용감한 群像이 그 가에 붙어 맨들어저 있다. 이 다리 근방은 길이 48방으로 뻐처 있어 시외의 모든 바스의 출발지점으로 되어 있으며 거대한 상점과 新聞會 같은 건물이 비겨 서 있다. 그리고 다리 밑에는 다블린시를 횡단하는 강물이 흐르는데 河幅은 그다지 넓지 않고 그리 맑지는 않으나 수량은 상당해서 배들이 여기 저기 떠 있는 경치는 나의 鄕愁를 자아낸다.

다블린 강변에 초가을 바람이 속삭인다.

故國消息인냥 내 귀를 기우리다.

거미줄같은 오코넬네거리의

사람과 수래는 곡예를 한다.

橋梁밑에 적은 배들은

紡績의 북쇠같이 들낙날낙거리며

煙氣覆面布를 짜다.

오오 孤寂한 나그내여!

멀리 하늘에 소슨 넬슨尖塔을 보고

으로 一字空中에 그려보라.

十字는 또 다시 피를 흘럴진저!

上海편으로 가차이 高架鐵路가 있고 그 앞 左便으로 稅關의 커다란 건물을 바라보면서 오코넬교를 마자 건너자, 곳 이어서 右便 강변을 따라 조곰 거러가다가 또 다시 左便 첫 골목 街道를 조곰 굽어 들어가니 地圖에 뵈이는 그대로 右邊길에160유명한 아베극장이 보인다. 아베라고 하면 愛蘭 文藝復興運動王座일 뿐 아니라 世界劇文化에 커다란 功蹟을 남긴 자리인만큼 나의 호기심은 퍽도 높아저 간다. -, 싱그, 그래그리부인 로빈손諸文豪들이 여기를 중심해서 그 찬란한 역사를 이룬 것을 생각할 때에 가삼에 무었이 뭉쿨한 것을 느꼈다. 그러나 그 외형을 보면 그다지 훌륭해 보이지 안는다. 어둠침침한 綠色으로 된 2층 건물인데 정면 가차이 와서 보니 현관이 반쯤 인도에 나오도록 臨時設計를 해노았고 木材가 많이 섞여 있을 뿐 아니라 입구좌우는 아직 펭키칠도 아니해서 보기에 퍽도 殺風景하게 보인다. 바른편 측면으로는 좁은 길이 통해었는데 극장관계자들이 樂屋으로 출입하는 적은 문이 하나 길고 넓은 側面壁 한족 구석에 있을 따름이다. 그리고 左便으로는 2, 3개 상점이 나란히 있는데 그 모퉁이를 도라가면 우편측으로 관중의 출입구가 또 하나있다. 이쪽 출입구는 아래 층 후면과 상층객들이 출입하는 곳으로 되어있고 먼저 본 정면입구는 하층전면 즉 제일 고가인 좌석의 출입구로 되어 있는 모양이다. 현재 예츠씨가 管理委員長이 되어있고 여러 文人藝術學들이 모이는 곳인 만큼 나의 가삼은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그들을 맛내면 뭐라고 질문을 해 볼가 하고 정면입구에 가서 문„ 뚜다리려고 하니 유리창에다가 오전 10시에 開舘한다는 문구가 쓰여저 있다. 아직 시간읊餘裕가 있기에 나종에 다시 오기로 하고 그 앞 시가지로 나가서 그들 문학의 관련된 종교와 교육의 零團氣体驗하기 위해서 잠시 구경을 하고 오기로 했다.

아베에 정면 앞길을 바로 쭉 나가니 좌변에는 다블린서 제일 큰 천주교당이 있고 바른편에는 市敎育局과 직속 模範學核가 있다. 먼저 古色蒼然한 교당으로 들어갔다. 門前에는 남녀노소가 출입할 때 손구락을 적시는 성수가 있는데 나는 바로 문을 열고 들어갔다. 때마츰 수천명이 무었을 중얼중얼하면서 幽玄冥想을 하고 있다. 나는 맨 뒤에서 살펴보았다. 멀리 앞에 보이는 제단에는 祭司者들이 힌옷을 입고 香爐를 피우면서 갔다왔다 한다. 신자들은 한 쪽 무릅을 꿀고 또 한쪽 다리는 세우고 있는데 女人들은 힌 수건을 머리에 덮고있다. 祈求하는 暗誦의 속삭임과 黙珠를 히아리는 리즈미걸한 손목의 움즉임이 마치 누예들이 뽕닢을161먹는 듯한 부더러웁고도 성스러운 情景을 이룬다. 이것은 편틕페이미니즘이후로 패트릭씨가 교리를 傳播한 후에 가장 세력있는 종교로 된 것이다. 그러나 북방의 벨파스트를 중심한 구역은 정치적으로도 분리되어 英國 直屬으로 되어있거니와 종교도 英國新敎로 되어있어 남방정권과 미묘한 대립을 이루고 있는 것도 흥미있는 사실이요. 그것이 원인이 되어 과거에 경계지역서는 많은 備血이 있었으미 오늘날도 서로 감정이 좋지 못하다. 나는 그 장엄한 敎堂안에서 잠시 그들과 한가지로 愛蘭信仰生活雰圍氣를 실감하랴고 冥想에 잠겼다가 60가량 되어 보이는 노인이 나오는 뒤를 따라 밖으로 나왔다.

다음에는 아직도 아베開舘의 시간이 좀 남어 있기에 不得己 그 이 敎堂 바로 건너편에 있는 中央模範學核(센트럴 모델 수쿨)로 찾어갔다. 鐵柵들너논 페이브먼트를 따라 正門안에 들어가서 먼저 우측 一隅에 있는 敎育局에 가서 소개를 받었다. 小學生들은 아침 등교시간이 되었기 때문에 희희낙낙 하면서 가방을 질머지고 쌍쌍 들어온다. 異國突入者를 보고 그들의 호기심은 100-센트인 모양이다. 核長面會하러고 그의 사무실을 찾었다. 질박한 방안에 적은 책상하나, 탁자 한 개, 의자 두 개, 걸상 하나가 있을 다름이다. 교장 지티패트릭씨는 40세 가량 되어 보이는 퍽도 친절하고 검소한 의지의 으로 보였다. 여러가지 그들의 新敎育 方針을 듣고는 특히 제 1학년의 영어시간을 참관하기로 하고 그의 인도로 교실에 들어갔다.

들어가서 교단 한 쪽에 서 있노라니깐 급장이 기립을 불러서 전반이 인사잘을 한다. 敎師30세 가량 되어 보이는데 교실용어는 전부 영어이다. 생도들은 소학생인데도 불구하고 잘 알아드어면서 대답도 곳 잘하고 지명하면 이러서서 낭독도 훌륭하게 한다. 교과서를 조사해보니 敎育局 編簒으로 되어 있는데162그 속에는 독일의 그림 童話도 있고 丁抹앤더슨 童話도 있으며 간혹 스티븐손童謠도 섞여 있으나 특이한 늣낌을 주는 것은 愛蘭 전설이 많이 들어있었다. 그런데 아동들의 발음은 역시 표준발음에 통일되어 있는데 英蘭의 지방어 쓰든 사람들에 비해서 훨신 정확하게 들린다. 역시 교육의 힘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어느 나라 아동이던지 서로 競爭하는 심리는 마찬가지다. 하나가 잘못 읽게 되면 여러 아이들이 서로 손을 뽐내 들면서 제가 읽으려고 선생님을 부르면서 애쓰는 꼴이 가엽고도 우수웠다. 倫敦지방 아이들에 비해서 大体로 순직해 보이고 외형도 구차한 시굴아이들같이 인상이 든다. 그리고 얼마 전까지는 과목에 없든 愛蘭語를 다시 배게 되었는데 가정에서는 부모들이 임이 그 上語를 잊어서 모르는 관계상, 시굴 농부들을 가정교사로 데려다가 가르치게 하는 일이 많다는 말을 교실서 나오면서 校長이 말을 한다. 참고재료를 얻어 記念撮影을 하고 나오니 幼維園부 아이들과 다른 한 편에서는 小學 上級生徒中級程度의 학생들이 쉴 시간이 되었는지 모도 운동장에 쏠려 나와서 제멋대로 잡스런 운동과 노리를 시작한다. 여선생 두 분의 지시를 받어 교문을 나오는 도중에 아이들이 몰려와서 내 얼골을 구멍날 듯이 드려다 본다. 시간이 넉넉했드려면 朝鮮 동화나 동요를 하나식 들려줄 것슝, 東方旅人이 그들의 동화세계에 분명히 나타난 셈이다. 나는 끝없는 미소를 던지면서 작별했다.

거리에 나서면서 시간을 보니 내가 기다리든 시간이 비로소 다 되어간다. 그래서 급한 거름으로 갔던 길을 도로와서 아베앞에오니 아직 5분 가량 남어있다. 옆골목 樂屋出入口에는 이곳 俳優들인지 事務員들인지 청년 2, 3인이 서있고 이제 新女性 한 사람이 그리로 들어간다. 퍽도 명랑안 표정을 하고 잇다. 玄關안에는 老婆가 마루 掃除를 하는데 여념이 없다.

이윽코 10시 정각에 문이 열리기에 내가 그날 제일 첫 손님으로 현관에 숙 들어서니 그곳은 입장권 販賣所로 되어있는 넓은 이었다. 事務員인 듯해 보이는 女人에게 목례를 하고 爲先 좌우를 휘둘러 살피면서 壁畵를 음미하려고 했다. 正面 입장권 판매창구 우에는 예츠씨의 커다란 肖畵가 걸려있는데 안경을 끼고 아래로 내려다보는 모양이 켈틕에163신비에 저진 대 詩人의 풍격이 완연하다. 40세쯤 되는 때의 肖像畵 같은데 한쪽 눈이 좀 어색하게 보여진다. (이것은 나종에 그를 面接했을 때 직접으로 발견한 점과 부합된다) 그리고 우편에는 유명한 鄕土劇作家 싱그와 수년전에 사망한 시인 라셀(詩名A, E,)肖像畵 또 세계적으로 일홈이 알려진 女流文士 그래고리 夫人半身油畵가 보는 내 눈을 壓倒하고 있다. 좌편으로는 이 극장의 패이트른으로 있는 貴婦人들과 대표적 명배우들의 초상을 걸어 노았다. 나는 마치 아이리 쉬르네상스의 미술관에나 들어가 있는 것처럼 그들의 종가집 花園香氣에 취하는 한 마리 나뵈같이 정신이 어찔한 것을 느꼈다. 나는 이제부터 나의 訪問的吸收를 시작할 준비를 하야 되는 것이다.

爲先 上演物廣告注目을 했다. 로빈슨파이 오프 저 힐(Far off the hill)이라는 희극 3막이었다. 나는 다행히 이 기회에 觀劇까지 하게 될 것을 기뻐하면서 무조건하고 대뜸 입장권을 샀다. 그리고는 예츠씨를 면접하게 해 달나는 것과 참고자료를 구했다. 그렸더니 여 사무원이 2층에 있는 사무장에게로 안내한다. 인사를 마치고 來意를 말하니 예츠씨가 아베의 이사장일 뿐 아니라 書信住所 전부 이곳으로 하고 있어 가끔 오시는데 요사이는 病患으로 집에서 療養중이라고 하면서 그 대신 그의 心僕今夜出演曲目의 원작자인 로빈슨씨와 예츠令孃을 맛내보라고 하고 여러가지 참고자료를 골러 주면서 전화를 건다. 로빈슨씨의 답이 그날 오후 3시에 그 곳에 오겠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예츠은 그 때 마츰 그 극장에 와 있으니 意向이 있으면 맛내보라고 한다. 나는 예츠씨를 면회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거니와 예츠을 맛나보는 것이 더욱 흥미있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즉시 면회를 청했다.

나는 현관에 다시 내려와 걸상에 앉어 여러가지를 상상하면서 기다리고 있다. 나이는 얼마나 되며 얼굴은 어떻게 생겼으며 스타일은 어떠하리라옷은 무엇을 입었을가나는 무슨 말을 해볼가? 나의 幼想은 무척 화려하게 미끄름질을 치고 있었다. 一世巨匠 예츠씨의 令孃! 그에게 高貴燦爛榮華를 그리고 있엇다. 향기로운 佳人의 자태나는 예츠의 신비로운164藝術境에서 예츠의 긴 치마자락을 연상하고 이상한 감격으로 기다리고 있다.

조곰 있으니 여사원이 한 젊은 19세 가량 되어보이는 勞働者를 뒤에 다리고 온다. 그리고 예츠!이라고 소개한다. 나는 놀냈다. 놀렸다는 겄보담도 의심했다. 아니 의심한다는 것 보담은 오히려 정신이 어떨떨 했다고 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 나는 나의 여러 가지 긴장했던 상상과는 정반대의 인물, 아니 나의 기대라는 것이 너무나 浮華하고 엉터리 없었다는 것을 깨닫고 바로 眼前에 나타난 위대한 진리의 현실적 화신?을 보고 놀내지 않을 수 없었든 것이다. 더구나 우에는 內服 하나만 입고 女人靑色의 남자 職工服을 양 억개에 걸바를 걸치고 그리고 바지에는 여러가지 색의 펭키가 무더서 이제 막 무슨 작업을 하다가 온 모양같다. 더구나 그의 얼골 모습과 자태가 나의 豫識錯誤를 여지없이 공격하는 듯한 꾸지람을 던지고 잇는 것 같었다. 그는 자기가 안 바틀러 예츠이라고 인사를 하면서 반가히 악수를 한다.

나는 朝鮮이란데서 왔읍니다. 당신을 뵈옵게 되어서 말할 수 없이 반갑습니다.

그렇습니다. 언제 이리 오셨읍닛가?

오늘 아침에 기차에서 내렸읍니다.

그는 갑작이 자기 옷과 몸을 한 번 훌터보더니 미안한 듯이 조곰 웃는 어조로 변명을 하며

이런 옷을 입고 그대로 뵙게되니 대단 미안합니다!

천만의 말슴이올시다.

나는 나의 來訪 目的을 이약이 하기 전에 그가 그의 복장에 대한 말을 하는 기회를 이용해서 내가 알고싶은 첫 수수꺽기를 뭇지 않을 수 없었다.

께서는 여기서 무얼하고 계심닛가?

저는 여기서 舞臺裝置를 배우고 있어요.

그는 미소를 띄우면서 분명한 어조로 답을 했다. 나는 비로소 나의 의문이 풀리기 시작한 것을 느끼자, 곳 이어서 의 결심이 非凡한 것을 感歎했다. 여성으로서 아니 이제 겨우 18, 9세 밖에 되지 않는 젊은 여인이 세상의 보통 여성으로서는 도라보지도 아니하는 이 뒤방 구석의 粗雜勞役을 감히 즐겨한다는 것은 다른 사람의 딸이면 모르거니와 그의 부친의 명성을 생각하고는 얼핏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다. 나는 그들 父女165이같이 그들의 藝術的 工作獻身的으로 犧牲한다는 것을 想像하고 예츠의 심경을 짐작할 수 있었다.

의 얼골은 조금 넓은 편으로 광대뼈가 좀 나오고 아래 턱과 뺨이 둘래 뻥뻥하게 생겼으나 그리 미웁지는 않게 생겼다. 柔順한 듯 해보이면서 어듼지 귀여운 無邪氣한 인상을 준다. 목소리는 약간 쉰 듯해서 그리 명랑하지는 못하다. 사람의 마음을 恍惚하게 하는듯한 愛嬌를 부리려고도 아니하고 거저 大凡스럽고 천년스러운 행동이다. 목소리가 가늘고 높다던지 여성적인 섬세한 음색이 질이 비교적 폭이 넓고 나진 음조를 띄고 있다. 이와같은 특질은 그의 하는 일과 그 일의 背後를 떠도는 이상적 零圍氣에 오히려 적합한 듯 하다. 따라서 그의 머리도 무슨 찬란한 치장을 하지않고 장식을 꾸미지 아니한 것도 우연한 일이 아닐것 같다. 키는 꾀 크고 몸집도 굵은 편이다. 全体의 인상은 남성적 타입이요 성격은 의지적 인물로 보인다.(나종에 예츠방문시에 알었거니와 그는 그의 어머니편을 많이 닮고 그의 사내동생은 아버지를 닮은 것이었다.)

냐는 비로소 나의 來意를 전할 때인 것을 생각하고 마치 무슨 신문기자나 잡지기자처름 手帖을 가지고 그의 말을 하나하나 기록하려는 듯이 소위 인테뷰의 이약이를 끄러낼려고 했다.

나는 예츠씨의 시를 퍽도 좋와합니다. 그의 시라던지 업적을 우리사회에 소개한 일은 있읍니다. 여기 온 짐에 아버님을 뵐가 하는데 전화로 좀 말슴드려주시면 어떠하겠습닛가?그런데 어버님에 대해서 소감을 말슴해 주시요!

아버님에 대한 소감이라니요? 퍽도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을 하심니다 그려! 뭐라구 말슴드렸으면 좋을는지요…』

하고는 은 주저하는 듯 하면서 실금 웃어버린다. 그러더니 곳 말을 이어서 질문에 대한 답을 回避하는 자기의 미안한 마음과 내가 그런 難問을 걸어서 도로혀 失禮된 것 같이 생각하기 되는 쯤을 타서 그는 곳 그의 다른 호의로서 내게 대하게 되었다.

아버님은 오래 病患으로 누어계셨는테 요사이는 좀 나으신 모양입니다爲先 집에 전화를 걸어드리죠.』<166

하고 은 전화통에 가서 전화를 건다. 이 나지 않어서 交換局에 부탁해놓고 조곰 있으니 저편 어머니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은 곳 전화로서 問安 여줍고는 내게 말하라고 한다. 예츠本宅에서 온 전화라기에 거저 황송해서 두군두군한 가삼을 움켜쥐고 할로우!예츠씨 부인이심닛가 하면서 그편 말을 한마디라도 헛되이 들지 않으려고 일단 정신을 채리고 전화구에 밧작 들어섰다. 누구이냐?고 하는 중년여성의 목소리가 들린다. 그래서 먼저 내 자신을 소개하고 이곳 자연과 인문을 구경 할 겸, 이곳 藝術文學에 취미를 가지고 있다는 것, 그리고 예츠씨의 작품을 연구하는 입장에서 期於 한번 뵙겠다고 청을 했다.

지금 아직 주무실 모양인테 보통은 오후 3시쯤 되어야 잠을 깨심니다. 2층에 가봐서 다행이 이러나 계신다면 面會良否를 무러볼 터이니 조곰 기다려 주세요…』

나는 기쁨에 넘치는 얼골로 옆에 서있는 예츠으로 그 目禮를 하고는 답을 기다리고 있는테 조곰 있으니 부인의 목소리가 다시 들린다.

마침 눈을 뜨섰기에 무러보니 지금이라도 곳 오시면 뵙겠다고 그림니다!

나는 감사하다는 말과 찾어가는 途程을 뭇고는 오후에 가 뵙겠다고 하고 전화를 마치고 의 친절한 설명으로 어디서 몇번 바스를 타고 시외 어디가서 내리면 된다는 것과 왕복시간 등을 잘 알게 되었다. 나는 나의 旅程이 예정대로 수확을 거두게 되는 것을 무한히 기뻐했다. 은 나의 기념 촬영을 마치고 일을 하다가 왔다고 하면서 오늘 저녁에 觀劇하러 오시겠지요!하고는 다시 무대있는 樂屋으로 들어간다.

나는 旅程이 바뻐서 오후에 예츠방문과 로빈슨씨 면담과 저녁 觀劇 등 그리고 토머스 무어생가 방문 등 예정이 많이 남었기 때문에 아베內部舞臺를 견학할 작정을 하고 女事務員의 안내로 左邊 입구로부터 극장안에 들어가 보았다. 무대 한 편에서는 여배우 하나가 액슌을 하면서 큰 목소래로 대사를 외우고 있는데 아까 이 극장 앞을 찾어 왔을 때 후문으로 들어가든 그 여인이었다. 옆에서 연출자가 지시하는대로 땀을 죽죽 흘리면서 열심으로 연구를 하고 있다. 그리고 한 편 구석에는 아까 서로 면담한 예츠이 또한 동배의167젊은 여성하고 둘이서 다 같은 勞働男子 下服을 입고 배경에다가 펭키를 칠하고 있다. 내가 거기 들어 오는 것을 보고 조곰 있다가 臺詞 연습하든 여인은 연출자와 한 가지로 암송을 그만두고 나간다. 은 반가워 하면서 目禮를 하는테 또 한 동모는 자기들이 일하고 있는 꼴을 내게 보이는 것이 부끄러운듯이 제 속으로 웃고있다. 의 동모인 이 부꺼러움 많은 여인은 正反對의 성격으로 보인다. 얼골은 훨신 여성적으로 이뻐보이고 愛嬌100퍼센트는 못된다 해도 상당한 매력을 가젔다. 나는 그의 수집어하는 것을 慰撫해 주는 생각과 그들의 만드는 배경이 무엇인가를 알려고 예츠에게 무렀다.

그것은 오늘 저녁 무대에 쓸검닛가?

아녜요! 이건요 다음 프로의 것임니다.

이약이가 이렇게 시작되는 것을 보고 안내여인은 나간다. 그것은 무슨 산어구의 바위돌과 그 우으로 通來하는 山路를 표시하는 것이었다. 나는 그들의 일하는 光景을 보기 위해서 무대우에 올라갔다. 그의 동모는 서로 뭐라구 에게 귀속말로 중얼거리고는 을 하면서 다라나니깐 은 웃으면서 그 동모의 궁둥이를 툭- 한번 따려준다. 그러니 그 동모는 그냥 맛고 있지 않고서 도로 의 옆구리를 쿡! 찌르고 도망질친다. 마치 그들이 꾸미는 山路의 배경에서 제 자신들이 까막잡기하는 두 배우들 같이 나는 그 둘이 한쌍의 연애하는 동성부부같이 보였다. 그리고 은 완연히 남성적이고 그 동모는 테리켈한 여성이었기 때문에 나는 휴머를 섞어서 말했다.

이 배경의 극을 보았으면 좋을텐데 직금 두분이 한 쌍의 원앙새같이 연극을 하심니다 그려…』

은 시침을 딱 딴다. 그리고는 펭키칠을 하면서 화제를 딴 대로 돌린다.

미스터 정은 언제 가심닛가? 來週면 이 배경을 볼 수 있을 검니다. 오늘 저녁 희극은 꼭 보러 오세요!

, 고맙슴니다. 발서 입장권까지 사두었음니다. 그런데 저는 내일 아침쯤은 출발해야 겠음니다.

좀 더 오래 계시면 좋을텐테여기서 어디로 가실 작정이심닛가?』<168

北方 벨파스트를 지내서 아마 蘇格蘭으로 건너갈 예정입니다.

참 좋으시겠읍니다. 세상구경을 많이 하시니깐…』

옆에서 여전히 그 동모는 혼자 웃고 있다. 무슨 생각이 났던지 또 예츠의 허리를 툭! 치니 直射對抗 하려다가 作亂을 그만두고 그만 웃어 바린다. 우로 비최는 광선 하나밖에 없는 무대에서 열심으로 일하는 두 여성에게 한 편으로 감복하였고 또 한편으로는 哀憐한 생각이 들었다. 화려한 세속의 허영에 뛰노는 허다한 여성들과는 생각을 달리하야 黑衣를 감는 수녀들처럼 그 아름다운 처녀의 몸을 거치른 청색의 勞働服에다 감고 예술의 使徒가 되어 畵具의 냄새에 아까운 청춘의 그날을 보내고 있는 것을 생각할 때 동정의 을 이기지 못했다. 나는 그들의 일하는 모양을 기념하기 위해서 촬영을 청하니 쾌히 응하고서이 허리를 펴고 간조롭이 그 장치우에 山路에 서서 기다린다. 아베의 두 女性또는 偉大한 시인의 사업과 그 딸!』 『펭키를 칠하는 예츠』… 이러한 제목을 생각하면서 撮影板에 날아나는 그 둘을 일부러 보노라고 集点距離器를 이리저리 한참 돌리고 있었다.

다음에 의 안내로 道具室에 가보니 별별 도구와 의상이 산과 같이 싸여있다. 그리고 커튼의 조절, 광선의 장치 모두가 이 극장 외형에 비해서는 몇 배나 풍성해 보인다. 도로나와 觀劇席을 보니 2층으로 되어있는테 아래층이 다시 前後2분되어 앞이 上等이고 뒤는 2, 그리고 출입구가 각각 따로 되어있고 2층은 下等으로 되어있는 모양인테 모든 座席에 미리 번호가 부터있고 이나 기리가 거지반 갈을 정도로 된 홀인대 鐘路靑年會講堂가량은 되어 보인다. 椅子 座席은 검은 가죽 같은 것으로 잎여 있는테 이러나면 뒤로 제처지게 되어 있어 통행을 편하게 해저있다.

나는 내부참관을 마치면서 생각나는 것이 규모라던지 외모가 이만밖에 되지 안는 곳에서 어찌 세계의 劇藝術 아니 그 위대한 文豪運動이 그와 같이 왕성한 활동을 이르킬 수 있었을까하고 혼자 느꼈다. 그들은 오로지 그 신념과 그 성의- 그것이 앞선 것일 아닐가하고 눈에 비초이는 예츠의 풍모를 사모하면서 그의 집으로 가는 바스』<169정류장으로 향했다. 예츠폥키 브라쉬를 놀리고 있는 광경이 눈에 얼른거린다.

아베歷史料理하고

많은 뮤즈를 宿洎식혔다.

예츠』 『싱그』 『그레고리 夫人

A E와 한가지로 永遠肖像일진저!

폥키칠하는 젊은 女人하나가

至極孝道에서 스카-트를 찌저바렸다.

이리하야 안 바틀러 예츠

낮에도 어둠 속에서 懊惱自殺식히다.

오오 이여! 眞理에 불타는 그대 눈에

哀憐神秘葬事하리라

조선의 女人들아!

그대들도 靑色職工바지를 입을진저!

나는 그대 아버님을 만나뵈옵고

家訓句節句節을 맘에 색여가리니

-未完-170

155-170

잡지명 삼천리문학 제2

발행일 19380401

 

기사제목 愛蘭文壇訪問記(第二回)

필자 鄭寅燮

기사형태 기행문

 

 

愛蘭文壇訪問記(2)

鄭寅燮

아베에서 나와 왔던 길을 도로 차저 에덴 쾨로 나오니 리페강(다브린강)은 여전히 흐르고 있는데 아침보담 배도 많이젔고 강가에 지내다니는 사람들도 훨신 많어젔다. 예츠씨방문이 늦일가 염려도 되고 또 오후 3시에 다시 아베로 와서 로빈슨 씨를 맛내고 약속을 해 노았으니 마음이 여간 바쁘지 않다. 그래서 거름을 빨리해서 오코넬 교를 건너 네거리 곁 강변도로 버 쾨로 나와 바로 그 모통에 있는 바스정류장으로 갔다. 거기는 발서 여러체 바스가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124

조곰 기다려서 예츠양이 지시한 데로 7번호의 바스를 타고 예츠씨사택으로 향했다. 차간에는 여러 손님이 탔는데 나는 그들과 이약이하기보담 창밖에 보이는 시가지의 풍경에 열중하였다. 바스는 전속력을 내어서 남으로 남으로 다라난다. 시가는 伯林이라던지 倫敦에 비하면 시골같이 느껴진다. 그러나 역시 근대도시의 면목은 충분히 가추고 있다. 도중에서 여러가지 건물을 보았는데 특히 기억에 남은 것은 정부관청이었다. 크지는 않으나 견고하게 생긴 빌딩이었다. 저 속에 데바레라수상이 있는구나! 하고 감격가운데 그 집을 머리속에 여러번 그려보았다. 기타 사원, 학교, 박물관, 공원 등이 눈에 띄운다. 바스가 성 스테펀 공원을 지나 유니버시티 카레지대학을 지나 라드민 교당근처에 오니 발서 교외의 느낌이 난다. 상점시가는 없어지고 한적한 주택지로 되어 깨끗하고 아담한 문화주택이 상록울타리와 연달아 무수하다. 그리고 화초를 숨은 화원을 가춘 별장같은 집이 나오기 시작 하더니 한 30분 후에는 거의 농촌에 가차운 풍경이 된다. 집마다 나즌 담을 쌓있고 담 우에는 거치른 돈을 얹어 놓았고 혹은 거기 풀이 나있기도 한다. 이것이 또한 독특한 인상을 준다. 시굴길에 건초를 가득 실은 구루마에 農失가 말에게 채질을 하며 앉어있는 그 모양-나는 일즉이 싱그의 향토극을 읽었을때 거기 나오는 농촌을 취미있게 연상했더니 이제 내 눈 앞에는 웨스턴 플레 보이에 나타나는 아들과 그 아버지가 눈 앞에 어늘거린다.

나는 車掌에게 여러번 예츠씨집에 가노라고 말을 해두고 그의 눈치만 각금 살피고 있노라니깐 한 40분쯤 왔으리라고 생각될 찌음 그는 내게 빙긋 웃는 눈짓을 하면서 내리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제야 차간을 도라다보니 그 동안 도중 정류소에서 여러 손님들을 다 내리고 나밖에 3인 가량 남어있다. 나는 그들에게 목례를 하고 바스에서 내렸었다. 그리고 차장은 바른 편에 있는 긴 담을 가르치며 정류장 앞에 보이는 문으로 들어가라고 한다. 그리고 바스는 또 다시 다름질 처가는데 시굴길이라서 뒤에 몬지를 남긴다. 나는 한적한 길바닥에 외로히 남은 백로처름 잠간 어리둥절하게 아래턱을 들고 다라나는 바스의 뒤모양을125멀그럼이 처다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바로 왼편에 사람소리가 들린다. 처다보니 외딴 농가가 하나 있는데 늙은 농부가 그 집 문앞 바로 길가에 있는 구루마에다가 밀집을 태산같이 실으면서 마당에서 일하고 있는 그의 안해에게 가끔 무슨 말을 부탁하는 것 같다. 나는 잠간 평화스런 愛蘭 농가의 정경을 구경할 수 있었다.

나는 옷과 낵타이를 바루고 머리를 씨다듬고 그리고 구두 먼지도 털고는 두건거리는 마음으로 바른 편 문앞에 가차이 갔다. 가보니 대문은 열려있는데 姓名 쓴 문페는 없고 閑人不入이라는 뜻이 적혀 있을 따름이었다. 그리고 안에는 큰 정원이 있는데 집 한체 보이지 안는다. 그레서 혼자 생각으로 잘못 찾었나보다 하고 도로 두어자욱 뒤로 물러나와 그 집 담을 두 눈으로 쭉 훑어 보았다. 대단히 긴 담이었다. 그리고 그 담 안으로는 하늘을 찌를듯한 큰 고목이 욱어저 솟어있다. 얼핀보면 무슨 큰 귀족별장 地垈같은 느낌이 난다. 그 문 좌우로 시선을 멀리해 보아도 거긴 또 다른 입구가 있을 것 같지도 않다. 그레서 얼는 대담하게 그 문 안에 발을 들어놓았다. 막 들어서자마자 바른 편으로126조고만 오막사리같은 헌 집이 하나 있는데 무슨 창고가 아니면 온실같거나 그렇지 않으면 무슨 동화세계에 나오는 妖女小屋같은 느낌을 준다. 그리고 그 가으로는 맑은 물이 흐르고 있다. 이제 발자욱을 조심조심 옮어 들어가니 넓은 정원에 백화가 爛漫하다. 무슨 꽃 무슨 꽃이라고 히아릴 수 없을만치 많다. 이 분이 꾀 꽃을 좋와하시는 구나! 하고 바른 편으로 눈을 도리켜 보니 훨신 들어가서 조금 높은 곳에 2층 양옥이 보인다. 전체가 백색으로 보이는데 그리 크지는 않고 벽에는 혹간 푸른 담쟁이를 올려 놓았다. 대문밖에서는 집이 잘 보이지 않었기 때문에 조곰 염려가 되더니 이제 나는 그 건물을 보고 비로소 안심하였다. 그리고 잠간동안은 그의 거주하는 곳이 퍽도 幽玄한 곳이요 한적한데다가 수목과 화초의 풍경조차 그럴듯해 보여서 한 쪽으로는 부러워하면서도 다른 한 쪽으로는 내가 상상하든 이상의 호화로운 처소에 슞는구나! 하고 그의 생활이 자기자신의 힘이로야 또는 신정부에서 최고의 영예를 대접받고 있느냐...가 또한 의심스러웠다. 나는 문득 내가 좋아하는 그의 시가 생각났다.

이니스프리호수의 섬

나는 이러나 이제 가리라. 이니스프리로 가리라.

거기 흙과 울타리로 적은 집을 짓고

아홈고랑 콩을 심고 꿀벌을 키우리

그레 내 홀로 벌소리 들으며 그 공지에서 사리라.

거기 나는 평화를 갖이리, 평화가 고요히 나리나리 아침 면사포에서 蟋蟀우는 곳으로 평화는 나릴진저! 밤 중엔 별이 반짝이고 낮에는 자색이 빛이며 저녁엔 紅雀의 나래소리가 거기 가득 하리라.

나는 이러나 이제 가리라, 언제던지 밥낮으로

낮은 소리도 남실거리는 호수에 귀를 기우리리라.

내가 길 우에 서 있던지 회식 舖道에 서 있던지

나는 그 소리를 마음속 깊이 들으리라.

이 얼마나 청빈하고도 고요한 희망의 생활이랴! 고루거각이 하늘에 솟고 山海의 진미가 집중되는 근대문명사회의 光榮스런 환경을 그는 모르는 바도 아니겠고 또 생존경쟁의 勇取하고 씩씩한127존엄성을 이해 못하는 바도 아닐 것이다. 그러나 그는 一間土屋을 그리워하고 한 토막 땅을 갈고 거기에 호구할 얼마간의 곡식을 손수 지으며 白雲이 그에게 주는 벌의 양식을 노느며 그들의 소리에 귀를 기우리는 심경은 넉넉히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 밤의 별 낮의 태양, 저녁에 집 찾는 새의 나래소리... 거기는 실솔의 노래와 한가지로 평화로운 湖畔의 물소리까지... 이 시는 그가 일즉이 倫敦이란 근대적 도시의 雜踏와 공리의 생활에서 피로와 권태를 느꼈을 때 그가 心願의 나라로 동경하는 청빈의 法悅과 한적한 평화를 읊은 것이다. 그런데 나는 생각해 보았다. 이렇게 긴 담을 둘러쌓인 넓은 대지와 2층 양옥에서 나는 내 마음에 그리고 있든 그의 청백한 신비와 켈틱懊惱를 느끼지 못하리라는 것을 생각도 해보고, 아니다 그렇지 않다. 그는 그 전과는 처지가 다르다. 이제는 光榮스런 시의 왕좌에서 정부의 존숭한 지지를 받고 있는 것이겠지 (그는 사실 상원의원이 되어있다.)하고 다시 정원을 한 번 도라보았다. 아닌게 아니라 그 지대가 국가에서 제공되었다 치드라도 그의 가족들이 손수 화초를 재배하는 모양이다. 팡이와 호미로 흙을 파는 풍취가 歷然해 보인다.

나는 곳 문 앞 문페에서 예츠씨의 일홈을 보고 기쁜 바음으로 을 눌렸다. 나는 倫敦서 임시로 빌려온 적은 가방 한 개와 양산 한 개를 각각 양 손에 쥐고 사진기계와 쌍안경을 억게에 질머지고 왔든 까닭으로 무겁기도 하고 보기에도 흉해서 모든 집을 다. 땅에 놓고 사람 나오기를 기다렸다. 조곰 있으니 안에서 여인 소리가 들리드니 문이 열린다. 감격과 기대와 환희에 넘치고 있던 나의 눈은 그를 보고 무어라고128곳 말이 나오지 않었다. 나히 한 40되어 보이는 뚱뚱하고 덕성스러운 여인이었다. 그는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빙그레 웃는 얼골로 들어오라고 한다. 그의 목소리를 듣고 바로 그가 예츠 부인인것을 알었다. 아까 아베 에서 전화로 인사를 들었기에 이제 또 자기소개를 할 필요도 없이 나는 그의 지시하는 데로 들어갔다.

잠간 기다리세요. 미스터!

하고는 2층으로 올라갔다. 아마 예츠씨방에 들어가서 내가 온 것을 통고할 모양이었다. 나는 아래층에서 계단옆으로 가서 있었다. 기다리는 동안에 나는 좌우벽을 처다보았다. 거기에는 여러가지 그림이 10여개 걸려있다. 대부분이 신비로운 데자인 등인데 블레이크비어즈리등의 그림, 그리고 휘슬더의 그림과 일본 浮世繪도 몇 개 석겨 있었다. 올치 이 분이 신비와 환상이 많으신 분이라서 그림도 그런 것, 더구나 실내장식으로서가 아니고 자기의 창작영감을 도웁기 위해서 그렇게 여러 개를 전람회장같이 연다라 걸어노았구나! 하고 있노라니깐 2층에서 다시 부인이 내려오면서 올라오라고 한다.

아직 몸이 불편해서 침대에 누어있음니다. 어서 이리 드러오세요.

네 감사함니다. 병환이 심하시지는 안습닛가?

차차 괸잖겠죠... 어서 그 방으로 드러가시죠

하고는 부인은 도로 내려간다.

나는 말할 수 없는 긴장한 마음으로 짐을 들고 2층 그 방에 들어섰다. 무엇보담도 짐을 노아야 한다. 미처 寢台에 누어있는 예츠씨에게 목례도 하기 전에 쑥 들어가서 방 한 쪽에 짐을 내려두고는 곳 도라서서 침상에 반 쯤 이러나 등을 벼개에 지대고 있는 예츠의 면모를 바라보았다.

오래동안 선생님을 그리워 했습니다. 저는 인 섭 정이올시다. 조선서 왔습니다.

나는 위렴 바틀러 예츠예요! 이 모양 침상에서 뵙겠습니다. 용서허세요.

천만의 말슴이올시다. 병환은 좀 어떠십닛가?

이젠 좀 낫습니다...

예츠씨는 읽고 있든 校正을 든체 안경을 느리게 건양으로 흥미있는 눈초리로 한참 처다본다.

조선사람으로는 처음이올시다. 일본 내지인은 한 두서너분 암니다만...』<129

네 그러시겠지요. 몸도 불편하실텐데 이렇게 맛내주시니 뭐라구 감사한 말슴을 다 드릴수가 없습니다!

괜찬슴니다. 언제 오섰다지오?

오늘 아침에 내렸습니다. 무러볼 말슴도 있고 또 기어히 선생님을 뵙고 갈 양으로...

나는 비로소 나의 목적하는 바 질문과 所請을 해 볼려고 수첩과 만년필을 끄내면서 빙그레 웃는 얼골로 그를 처다보았다. 그는 한 쪽 눈이 아모래도 불구인 모양이다. 그 쪽은 검은 안경알을 끼엇는데 그 쪽 눈의 생김생김이 아모래도 어섹해 보인다. 그러나 그의 길다란 얼골, 흐트러할 백발, 그리고 그의 신비로운 마술적인 시선은 나의 미소에 엄숙한 戰慓를 이르킨다. 그리하야 그의 질문은 범상하지 않었다. 그리고 그의 음성은 위풍이 있으면서도 그리 명랑하지는 않었다.

당신은 政客이심닛가?

나는 무어라고 대답해야 옳을지, 그의 용의주도한 무름에 대해서 나는 문득 용의주도하지 아니할 수가 없었다.

아니올시다. 순전히 예술가의 한 사람으로 대하고 싶습니다

나는 이렇게 대답하고는 그가 거기에 무엇을 連結식혀서 말할가가 커다란 흥미의 초점이었다. 나는 그의 말을 한마디라도 헛듣지 않을랴고 귀를 기우렸다.

그러면 말하겠습니다. 나는 내가 정치에 관심하면 할사록 나의 목적하는 바는 도로혀 힘이 약해 집니다. 이 점은 분명히 말해두고 싶습니다

그 말슴은 잘 알아 들었습니다. 넉넉히 짐작하겠습니다...

나는 여기서 하필 그가 네게 이런 부탁을 할가 하는 것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아닌게 아니라 다브린와서 내가 조사한 바에 의하면 愛蘭文壇이란 것은 재래로 알려진 것과 같지 않고 분명히 두 가지 유파로 분해서 있다. 보통 우리가 말하는 愛蘭문학이란 것은 영어로 쓴 愛蘭정취의 문학을 의미하는데 이 밖에 이것과는 대립되는 愛蘭語 문학이라는 것이 있는데 예츠 일파는 전자에 속하고 하이드 박사 일파는 후자에 속하는 것이다. 그런데 세상에는 전자가 영어로서 창작함으로 해서130넓리 알려저 있고 후자는 愛蘭語라는 특수용어 때문에 보통 알려저 있지 않다. 그리고 愛蘭서도 순수 愛蘭人이라던지 리퍼브리컨당 사람들, 즉 정치적 색채를 띈 사람들은 대개 후자 즉 하이드 박사 일파의 애란문학을 지지하고 (사실 거기서는 보통 愛蘭문학이라면 이것을 말하는 것이다) 후자 즉 예츠 일파의 소위 아이리쉬 르네상스에는 반대를 하면서 있다. 예츠씨가 먼저 내게 당신은 政客이냐?...운운한 질문과 그의 자답에 대한 內意는 곳 이러한 복잡한 심정과 사유를 연상하고 하는 말이다. 더구나 하이드 박사 일파는 예츠씨 일파가 순수 아이리쉬가 아닐 뿐 아니라 愛蘭語를 이해못하니 어찌 진정한 愛蘭을 알 수가 있느냐고들 비난하는 것이다. 물론 예츠씨 일파 중에는 그레고리 부인이라던지 젬쓰 스탄판 씨등 다소게릭을 이해하는 분도 있지마는 그들의 본격적 창작용어는 영어인 것이다. 더구나 예츠 자신은 게릭을 전연 모르는 분이다. 그레서 나는 내가 원래 질문하려고 하든 난문을 비로소 내걸기로 했다. 또 이약이가 자연 여기 접촉될 지경에 이러렀스니깐

선생께서 좋은 문학을 창조해서 먼 곳에 있는 우리들도 많은 영감을 얻게 되는 것을 무한히 感賀하는 바이 올시다

그는 나의 찬사를 들으면서 멀그럼이 내 얼골을 처다보고는 아무 대답이 없다. 아마 세속적으로 비행기 태우는 셈으로 들었는지 또는 그런 찬사가 그의 지위에서 이제 새삼스럽게 들리지도 안는 겐지는 모르지마는 그의 표정이 내 말에 별스런 반응을 보이지 않기에 나는 조곰 미안한 생각이 들자 곳 이어서 본 문제를 단도직입적으로 무렀다.

제가 몇 가지 무러볼 말이 있는데 위선 장차 여러분들의 창작용어를 어찌하시렴닛가?

이 질문은 상당히 그의 神說을 날카롭게 한 모양이었다. 손에 쥐고 있던 교정 원고를 寢台에 내려놓고는 기댓던 허리를 좀 더 이르켜 어조를 분명히 해서 내 얼곤을 뚜를 듯이 처다보면서 솔직하게 답을 한다.

영어밖에 모르니 그것으로 쓰는 것이죠

요사이 게릭으로 창작하는 분이라던지 또는 게릭어의 부흥운동이 굉장한 모양이죠?

네 그렀슴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영어를 배척할131필요는 없겠죠. 영어를 통해서도 효과를 낼 수가 있으니깐요. 오히려 세상에 더 넓리 알려질 수 있음니다. 내 자손들 시대는 모르지마는...

나는 이렇게 답하는 그의 심경을 더 推究할 필요를 느끼지 않었다. 何故 오하면 그는 그것으로서 모든 형편을 충분히 고백, 변명, 예측했으니깐. 나는 아침에 오코넬교에서 신문장수에게서 산 잡지 指導者속에서 읽은 글이 문덕 연상되었다. 이 잡지는 크기가 朝日週刊만 한 것인데 시사, 정치, 문학, 미술, 산업의 레뷰라는 부제목이 있는 만큼 각 방면의 專論을 모으는 것이다. 그 중에서 특히 눈에 띄운 글은 영어에 대한 선입견이란 단평이었다. 사스필드란 사람의 글인데 내용은 게릭어 부흥장려의 사실을 긍정하고는 그 다음에 가서 그렇다고 해서 잉그리쉬의 근절을 할 필요가 어디 있는가 하는 반박문이었다. 오히려 게리시즘의 완성에 얼마던지 적당하게 이용할 수 있고 또 현재 중년 이상 시민들에게는 그들이 영어밖에 모르니 이제 새삼스럽게 소학아동들 같이 게릭을 가라처가지고 하자는 정력소모를 피하고 게릭 전설, 민요, 기타 문학을 영어로 해가지고 교화재료로 하자는 것이었다. 라디오를 통해서도 임이 성인된 시민들에게는 이런 방법이 훨신 효과적이라는 것이었다.

나는 이 문제를 이 이상 더 여기서 논하지도 안었고 또 여기서 더 상세한 해설을 할 필요가 없을 줄 안다

예츠씨의 말의 가부를 속단하기보담 그의 처지와 그들의 복잡한 모든 형편을 짐작하는데 참고가 될 수 있을가 한다. 나는 곳 이어서 다음의 질문을 했다.

다음에 문의하고저 하는 것은 정형시의 장래라는 것이올시다. 즉 운율학의 법칙이 장차 어떻한 정도로 적용되겠느냐 하는 것임니다

퍽 어려운 질문이올시다 그려!

그러면 문제를 더 적게해서, 영시에 있어서 라임(尾韻)의 운명은 여하? 올시다

녜 알겠슴니다. 억지로 고집할 것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없어진다고는 할 수 없슴니다

선생님은 남어있는 것을 좋와하심닛가? 없어지는 것을 찬성하심닛가?

역시 남어있는게 좋지요! 물론 그것만이 리듬의 요소가 아니지만...』<132

자유시가 더욱 성해지리라고는 생각하시지 안습닛가?

물론 많이 시험되리라고 생각함니다. 사람이란 여러가지를 이레도 해보고 저러케도 해보는 것이니깐...

그는 이렇게 답하고는 몸의 위치를 좀 바꾸면서 이불을 다시 정돈한다. 그리고 전과 같이 자세를 좀 더 높여서 교정초교를 든다.

그것은 무엇임닛가?

이것은 내 시집인데 옥스퍼드 대학 출판부에서 기어히 신판으로 내겠다고 해서...별로 誤植은 없어도 내가 죽기 전에 한 번 완전한 교정을 해 놀랴합니다...나도 인젠 나이 많어서 얼마 못살검니다...

그는 노령에 가차웠다. 얼굴색이 좀 거머칙칙하게 보여서 그런지 그의 머리는 더욱 회색으로 보인다. 퍽도 점잔은 양반이었다. 오랜 사색생활을 겪은 그의 면모는 창연하다-一言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그의 방은 그리 크지도 않고 찬란하지도 않고 오즉 벽에 걸린 무수한 그림은 밖앝에 있든 것과 같은 종류의 신비로운 상징적 괴기를 보이고 있다. 이 때 마참 예츠부인이 들어온다. 나는 문덕 시간 생각이 나서 시계를 보니 아직 로빈슨 씨와의 약속시간에는 여유가 있다. 그레서 가지고 온 조선현대시인 자선대표작영역선집이라할가 현역시인들의 것, 70여 편을 프린트 한 것을 한 부 드리면서 장차 출판할 예정이고 하니 서문 하나를 했다. 그리고 丁抹서 모인 國際語文學者大會에 갔든 말과 함께 다른 두 가지 논문프린트-하나는 日鮮英語의 비교음성학이요. 또 하나는 朝鮮語音羅馬字化問題이다-를 주고는 기념촬영할 준비를 한다.

병상에 반쯤 이러나 앉아있는 예츠씨의 촬영을 한 개 하고는 아직도 技術에 자신이 없는 만큼 售點과 시간과 광도를 이리저리 변해서 3, 4카메라에 집어 넣고 있었다. 그때 발„œ 눈치빠른 부인은 아래층에 갔다오더니 담배를 하나 피여물고서 좌편창문밑에 가 앉자 예츠씨의 입에서 나올 서문을 타자하려고 착석하고있다. 그동안 예츠씨는 그 詩歌英譯을 뛰적뛰적 묵독하고 있는 듯 하더니 얼골에 약간 미소를 띄우면서 말을 한다.

나는 아직 책임지고 남의 저작에 서문이란 정도의133글을 쓰지 못합니다. 거저 나의 간단한 인사말이라도 괸찮으시다면...

물론 좋읍니다. 저도 무슨 체계있는 논평을 써주십사하는 것도 아님니다. 무어라고 하시던지 느끼신 점을 몇마디 적어주시면 합니다만...

당신의 秘密이란 것이 퍽도 재미있습니다

너무 황송합니다. 再考해야 되겠고 또 여러 사람 것을 더 넣겠습니다. 모도 未定稿이오니 눌러봐 주십시요. 원체 급히 떠난 여행이 되어서요...

예츠씨는 기다리고 있는 부인을 보고 펼지 형식으로 타자할 말을 부른다. 부인은 그대로 빨리 타자를 한다. 그러는 동안 부인은 여전히 담배를 입에 물고 연기를 내고 있다. 나는 그 부인이 보기에는 덕성스러워 보이고 비교적 구식에 가차워 보이는 소극적 성격인 줄 알었더니 그 모양 담배를 피여물고 타자하는 것을 보아 상당히 傍若無人한 분이로구나 생각했다. 그러나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나의 동양적 도덕관념으로 말하는 인식착오일는 지도 모른다. 나는 문득 부인의 타자하는 광경을 카메라에 넣을 양으로 인제는 그리로 향해서 售點을 마춘다. 그에게 양해도 구하지 않고 갑작이 촬영하는 것이니 부인도 의외로 생각했던지 조곰 주저하는 듯 나를 한 번 처다보더니 급히 입에 물고있던 담배를 빼서 탁자 우에 놓는다. 담배물고 있는 광경이 백혀진다는 것은 아마 그도 불미한 일로 생각든 모양이다. 역시 전례대로 두 장 쯤 촬영하고나니 타자가 끝나서 예츠씨가 그 밑에 서명을 해준다. 두 장을 신인하기에 받어보니 내용은 꼭 같은 것이다. 혹 분실염려가 있어 의례히 두장식 해 주는 모양이었다.

나는 기쁜 마음을 금하지 못하였다. 외 그런고 하니 어려운 여로에 이다지 먼 곳으로 그리고 그들을 맛나게 되고 좋은 의견교환과 소중한 글까지 얻게 되었스니 나는 모든 것이 다행으로 생각키운다. 나는 대개 나의 면담의 목적이 성취되었고 또 그도 병상에 있는지라 너무 疲因할가해서 그 곳을 떠나는 수밖에 없었다.

너무 실례가 많었습니다. 감사한 말삼은 다 말로서 표현하기 어렵습니다. 부대 건강하시기를 원합니다. 언제 또 다시 뵙게 될는지요...

이렇게 말하는 나의 마음은 또한 슲었다. 내 맘 속에는 말할 수 없는 감격이 차오르고 눈에는 눈물이134핑 도는 것 같었다.

여러 날 계시겠슴닛가?

아니요. 내일 아침엔 떠날 예정인데 오늘밤에는 아베에서 觀劇하겠슴니다.

그게 좋슴니다. 모처럼 오섰다가 보고 가서야죠. 가시거던 로빈슨씨를 맛나보시죠!

그 분은 오후 세시에 아베에서 뵙기로 약속이 되여 있습니다. 따님은 아까 거기서 반가히 맛나 뵈웟습니다

부인은 먼저 나가는 문을 열고 기다리고 있고 나는 나의 짐을 쥐고는 한 거름 두 거름 예츠 씨 가까히 가서 무언의 악수로 잠간 서로 처다보다가 나는 떠는 입술로 굳 바이했다. 그도 목례와 굳 바이로 응답한다. 문을 고요히 다처진다. 나는 뒤도라보고 용기까지 없이 가삼이 뭉클해지고 정신없이 계단을 터벅터벅 내려온 모양이다.

내 반평생, 허다한 작별을 경험하다.

그렇나 이다지 성스런 감격의 작별은 다시 없으리라.

水陸 수억만리, 내 다불린의 교외로 방랑하다.

성자 예츠 선생은 아직도 그 老軀에서 영광이 흐르고 문전의 異國 乞人을 어루만지며 기적을 이루다.

신비한 화폭은 영원한 명상일진저!

병상의 마귀는 질식에서 맥박을 잃었다.

심원의 나라를 찾어 얼마나 고닲었스리!

싱그에이 츠를 잃고 그레도 모자라서

백발과 얼골의 주름살은 令孃까지 산제사를 하다.

오오 리어왕의 광란보담 더 거록할진저

그대는 리페강변을 얼마나 헤메였스며

아베의 먼지를 얼마나 마섰슬가?

오직 詩神만이 그대를 저바리지 않었스니

펜으로 노를 저어 항해에 날이 저물다.

암굴왕의 거상이 기억에 새롭도다.

또 내 오디세가 되어 그를 표류에서 만낸 듯135

열 여섯살 먹는 넷제 누님이

구지 팔리는 옛 집을 잊지 못하여

그리운 병상을 어루만지며 임종하실 때

내 하용없는 작별의 눈물을 흘렀느니라

(그 때 나는 아홉살, 화로에 발을 대이고-)

내 열 세살, 학업을 위해 처음으로 고향을 떠날 대

어머니와 작별하며 눈물에 소매를 적시다.

19세때 그리운 벗을 위하야 야반 강변에서

통곡하고 그리고 이제 예츠씨와의 작별이 내게 있다.

(이듬해 봄 아버님을 여히고 밤새도록 울었느니라)

만내고 떠남이 세상의 버릇이거니

내 홀로 의 이국시인을 무삼 아끼랴?

그러나 그의 눈, 그의 모습은

내게 한갓 떠나지 안는 미련이거늘...

그 말소리, 그 정서 풍성함이여!

그는 이 땅의 노래를 읊으며 무삼 생각을 했슬고?

내게 하고 싶은 구절구절이 남어 있을테지,

부인이 타자한 몇 마디 글 줄은

그의 슨물인양 가난한 선베의 秘藏이리라.

굳 바이, 미스터 예츠!

굳 바이, 미스터 정...

현관에서 나는 또 다시 중얼그렸다.

굳 바이, 미세스 예츠!

그리고 내 귀에는 부인의 음성이 들리다.

굳 바이, 미스터 정...

언제나 또 뵙게 될는지요...

나는 내가 한 말을 몇 번이나 후회냈느뇨!

임종때도 再逢을 굿게 약속하는 법인데,

아아 나는 내 자신에게 너무 무정하였다.

그대여! 건강하라,

그리고 그대 생각과 사업에

광영과 행복이 영원해지이다!136

나는 무어라고 말할 수 없을 만큼 섭섭한 생각에 잠시 사로잡히여 현관서 떠나기를 싫어하다가 밖에 나왔다. 문득 생각나는 것은 그의 집 밖앝 정면을 배경으로 하고 그들 가족을 기념촬영하려는 의도였다. 그래서 부인에게 청을 했더니 아래층 방에 가서 누구를 하나 불러온다. 나히 16, 7세 되어 보이는 소년이다. 부인은 자기 아들이라고 소개하고는 그냥 들어가버린다. 그래서 아들에게 어머님도 뫼시고 오라고 하니 다시 들어 갔다가 나오면서 어머니는 그만 두겠다고 한다고 한다. 그래서 그 소년만 세우고 그들의 저택을 카메라에 집어넣고 마지막 그 소년과 작별하고는 그 집을 떠났다.

나오면서 몇 번이나 뒤로 도라다보고 정원에 만발한 화초를 구경하면서 대문간으로 나왔다.

바람도 없고 따스한 愛蘭의 가을 계절은

긴 담 고목의 가지에서 조울고

켈틕 농부는 여전히 마차에 건초를 실고있다.

예츠씨의 뜰 한가운데 붉은 꽃송이는

멀리 대문 밖을 내다보며

거리의 나그내를 전송하는 듯-

하늘에 힌 구름 한 송이

다불리 교외의 태양은 한가하다.

기다리든 바스를 타고 그 곳을 떠났다. 아까 오든 때는 마음이 퍽도 초조하고 면담계획에 여념이 없더니 이제는 전기에 감염된 사람처름 정신이 얼떨떨해젔다. 얼마동안은 차간에서 무엇을 생각한다는 것도 아니고 거저 감격에 사로잡히고 있었든 모양이다.

그러자 왔든 길을 와서 시가가 가차워지는 곳에 와서 비로소 어디서 내릴가가 걱정이였다. 오후 3로빈슨씨와의 면담시간까지는 아직도 시간이 좀 남었기에 지도를 펴들고 시인 토머스 무어씨가 출생했다는 집을 찾었다. 그래서 제일 가차운 정류소에서 내려서 온기어을 찾어갔다.

지도에는 바로 큰 거리가에 적혀 있건만 찾기가 퍽도 어렵다. 5, 6차나 길가는 사람들에게 무러서 겨우 찾어냈다. 그 거리 우측으로 12번지에 3층건물로137된 집이 있다. 여러 집이 죽 연해 있는데 그 빌딩 좌편 끝 집은 창문이 각층마다 3개식 있고 제 2층 창문 바로 밑에 다음 같은 글이 씨여있고 그의 동판사진까지 박혀있다.-

The Birth Place of Thomas moore jrelands Lyric Poet (愛蘭의 서정시인 토마스 무어 출생지)

그런데 그 집이 직금은 무엇을 하는 집인가 하고 곁에 가보니 아지못게라 난대없는 주점이였다. Brandy Grocer 이라는 간판 일홈이 쓰여있다. 내 마음은 좀 섭섭한 느낌을 갖게 되었지마는 그 속에 무슨 史蹟이 있을가 하고 들어가 보니 예상대로 벽에 술병이 여러단으로 배열되어있고 그 앞 밑으로는 손님들이 술마시는 긴 대가 있다. 마침 손님이 數人 와서 서 있는데 마치 서울 선술집 같이 서서 먹는 곳인 모양니다. 하인은 내가 술마시러 온 손님인 줄 알었던지 이 酒臺로 온다. 나는 무어씨에 대해서 무러볼려고 어느 방에서 그가 출생했슴닛가?라고 무르니 그는 들어가서 주인을 불러온다. 주인은 꾀 미남자로 생긴 紅顔40이었다.

2층이올시다

올라가 볼 수 없음닛가?

올라가서도 별로 남은 것이 없고 직금은 우리 살림방이로 되어있습니다...

그러면 그 방 기념사진같은 것이라도 있으면 살려고 하는데...

실내사진은 없고요. 밖앝 건물전체사진은 그림엽서로 된 것이 있습니다

하고는 한 장 내어 보인다. 값이 얼마냐고 무르니 그냥 드린다고 한다. 호의로 해석하면 그의 표정으로 보아 자기상점이 그러한 역사적 因緣을 갖었다는 자랑도 될 겸 찾어오는 손님에 대한 예의로 그냥 주는 것으로 볼 수 있으나 또 다른 한 편으로 그의 어떤 표정의 일면으로 보아서는 그의 상점광고도 될 겸, 그 대신에 술이나 한 잔 사먹어 달나는 일종의 상업정책으로도 볼 수 있는 점도 있다. 그러나 불행히도 내가 술을 마시지 못하는지라 그냥 그림 엽서를 그대로 받어오기도 미안해서 지갑에서 돈을 내서 여러 장 샀다. 그리고 그의 서명을 청하니 Datrick Brady라고 하고는 토마스 무여 生出家의 소유자, 온기어가 12번 다블린이라고 쓴다.138

거기서 나와서 그 앞 건너편에 있는 우편국옆에서 내 카메라에 그 집을 몇 장 박어넣고 그 우편국에 들어가서 동경있는 은사와 조선으로 보낼 서신을 적어서 포스트에 넣었다. 어데서던지 고생당하는 것은 화폐다. 여기서도 우표사면서 돈 거슬느는데 조곰하면 큰 실수할 번 했다.

나는 될 수 있는데로 시간을 이용할려고 애를 썼다. 오후 3시까지는 아베까지 가야하지만 아직 점심도 먹지 앓었고 또 시간여유가 좀 있기에 직행보담 다른 시가로 도라가드라도 도중에 볼만한 것을 볼려고 했다. 그래서 온기어가를 바로 지나가서 북단 네거리에 있는 다블린 성을 보게 되었다. 이것은 愛蘭건물 중에도 독특한 가치를 보존하고 있어 그 건축미로서도 볼만한 것이었다. 정면 입구 앞에는 다소 경사진 광장이 있는데 좌편 一角은 고성의 윤곽을 그대로 보이고 있고 直屬 사원으로도 사용되는 모양이다. 다른 사면은 여러 층의 건물이 연결되어 둘러싸이 있다. 그리고 그 속에는 넓은 뜰이 있으며 동서남북으로 도로에 통하는 4개의 성문이 있다. 守衛하는 장정에게 내부구경을 청했더니 시간이 넘어서 허락할 수 없다기에 그대로 나왔으나 현재 이 성은 아직도 정부가 취급하는 관청으로 사용되어있어 외부에서 보아 완전한 요새지의 풍격을 이루고 있다.

이 성 북문에서 에드워드가로 나오니 바로 거기에 신교의 대표적 사원이 있다. 잠간 그 건축미와 내부 분위기를 감상할려고 정원으로 들어갔다. 다리도 앞으고 배도 곺으기에 도중에서 구해온 토며토을 내여 벤치에 앉아 먹으면서 멀리 사원의 윤곽과 외적 미관을 한참 구경했다. 제일 異彩를 이룬 것은 그 집웅 모양과 거기서 벽으로 내려오는데 여러개 -치 형의 기동이 있어 다른 데서 보지못한 愛蘭건물의 일면을 볼 수 있었다. 어떤 노부부의 뒤를 따라 내부를 잡간 보고 거기서 나와 뎀 스트리-로 거러나오다가 왼편 길가의 서점에 들어가서 책과 잡지종류를 잠간 一瞥하고 나오면서 愛蘭풍속의 그림엽서를 여러 종류 사가지고 그 근방에 있는 레스트랑에 들어가서 란취를 사먹었다. 내부장식은 그리 화려하지 앓으나 퍽 고아한 취미로 꾸며있는데 愛蘭사람들의 생활양식의 일면인지 어듼지 우울하고 갑갑했다. 점심먹는 동안에 거기 온 손님이라던지 여급들의 동작과 언어139등을 주의해보았다. 倫敦 등지의 레스트랑과는 확실히 다른 그 무엇이 느껴진다.

시계를 보니 320분 전쯤 되었다. 아베까지 거러가자면 시간이 꾀 걸릴 것 같고 바스나 전차는 방면과 바꿔타는 자리가 미상해서 거리에 지나가는 마차를 불렀다. 여기서 하나 소개하고저 하는 것은 다블린의 손님 타는 輕便馬車의 독특한 풍치인데 이것은 다른 데서 볼 수 없는 구조요 또한 愛蘭여행에서는 반다시 한 번은 타볼만한 아이리쉬 휴뭐의 왕좌일 수도 있다. 우뚜껑은 없고 앉는 자리가 넓적해서 거기 이리저리 걸처 앉게 되었고 혹은 좌우로 양편으로 서로 2인이 등지고 걸앉는 자리도 되어있다. 그리고 마부들은 퍽도 유모러스한 사람들이어서 이약이 동모하기가 좋다. 그들이 쓰는 기지에 넘치는 대화는 여러가지 문학에 관계되는 것이다. 손님이 車賃을 의외에 적게 준다면 그것을 받지앉고 또는 손님에게 항의하지도 앉고 그 몇 푼의 돈을 말을 향해서 던저바리면서 자기 말을 보고 이놈아 네가 돈을 죽일테냐!하고 그만 제 갈 곳으로 다라나 버린다는 은 그들의 諷刺를 짐작할 수도 있다. 아베에 도착하기는 꼭 3시 정각이었다. 혹 내가 늦었나보다 하고 현관에 들어가니 아직도 로빈슨씨가 오지 앓었는 모양이다. 그레서 표파는 여인에게 인사를 하고 來意를 말한 다음 右便 長椅子에 앉어 기다리고 있었다. 오면 무슨 이약이를 하나하고 생각하고 있든 차에 3시 반쯤 되어서 어떤 젊은 신사가 하나 들어왔다. 얼골이 明敏하고 키가 호리호리하면서 천재적 예술가형이었다. 일견해서 그가 당대의 인기를 집중한 극작가 로빈슨 씨인 것을 짐작하고 내가 가까히 가서 먼저 인사를 청했다.

실례올시다마는 당신이 로빈슨씨 임닛가?

네 그렀슴니다.

저는 조선서 온 인섭, 정이올시다. 바쁘신데 이렇게 뵈올 기회를 맨들어 주시니 대단 감사합니다

퍽 반가웁습니다. 언제 오섰다죠?

오늘 아침에 왔는데 바쁜 거름이올시다마는 여러분의 르네상스 무브먼트를 볼려고 일부러 여기까지 찾어 왔습니다. 또 엿줘 볼 말슴도 있고해서...

어디 뭐 볼게 있어야죠...그리고 제가 뭘 알어야140말이죠. 문단 전체에 대해서보담 극예술에 대해서 무러주시면 제가 아는 데까지는 대답하겠슴니다마는...

그의 말소리는 비교적 가늘은 편이요. 말할 때마다 애교있는 눈초리로 보는 눈알은 회색이 섞여 있었다. 그리고 머리털은 연한 갈색이요. 연령은 겉으로 보아 36, 7세 가량으로 보여진다. 나는 무슨 신문기자나 되듯이 수첩과 펜을 들고 아침에 예츠을 면접했을 때 하든 그 버릇으로 또 바로 그 자리에서 큰 토쿠다네를 찾어낼려는 긴장한 마음이었다. 長椅子에 둘이 나란이 앉어서 이약이는 시작된다.

저는 여러분의 문학사를 3기로 분하고 싶은데 제 1기는 폴리틕스를 주체로 한 때, 2기는 켈틕 미스테리를 주류로 한 때, 아마 이 때가 여러분의 전성시대라고 할 수 있겠지요, 그리고 직금을 제 3기로 보고싶슴니다마는... 요 사이를 무슨 특별한 주장이랄지 또는 경향이랄지... 그런 것은 없음닛가?

그렇게 3기로 볼 수 있겠지요. 그런데 직금은 그 전만큼 굉장하지는 못합니다...

현재 희곡계에는 특별한 제창이라 할만하게 있습닛가?

글세요. 역시 아이리쉬의 생활을 잘 그려낼랴고 하는 노력이겠죠. 그런데 우리는 문제를 억지로 처널랴고 하지 안습니다. 큰 문제는 해결되어 있스니깐요...

나는 여기서 그의 評眼을 엿볼려고 다른 극작가의 말을 꺼러냈다.

녜 알겠습니다. 오케시씨코노와孔雀이란 것을 아시겠죠? 이란 친구가 그것을 조선말로 번역해서 상연할려다가 不得己한 사정으로 못했습니다.

이렇게 경향적 작가라고 할 수 있는 오케시이약이를 꺼냈는데 그는 직접으로 그에 대한 이라던지 그 작품에 대한 말로 응해주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일부러 피하려는 듯한 動靜으로 다음같이 대답한다.

나는 역시 자연스럽게 그리는데 힘을 씀니다. 그렇다고해서 뭐든지 취급하려는 것은 아니고요... 물론 요령있게 말을 추려야 한다는 것임니다!

이렇게 말하는 그의 심경은 역역히 짐작된다.141그의 작품이라던지 주장은 그것으로서 추측되는 것이거니와 그가 첫제 평론가가 아닌 것을 그의 대화에서 알고는 어려운 사관이라던지 사조론이라던지 창작방법론 등에 대한 이상 그의 논의를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고 둘제는 그가 어느 정도까지 오케시일군들과는 현재로서는 분리되어 있다는 것을 아침에 이곳 사무실 간부에서 들은 기억이 있었기 때문에 그 이상 오케시에 대해서 무러보지 아니하였다. 그런데 사실상 로빈슨씨는 농촌생활을 많이 취급하는 싱그의 향토문학파요. 오케시씨는 도시의 소시민층을 취급하는 경향작가라고 볼 수 있는 의미에서 현 愛蘭희곡계의 小壯雙壁이라고 볼 수 있다. 들은 바에 의하면 처음오케시아베에 직접 關運했드랬는데 예츠 일파와 서로 부합이 잘 되지 않어서 그는 다블을 떠나 현재 倫敦을 무대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영어 愛蘭 문학을 혹자는 예츠파와 오케시파로 다시 2분하는 사람도 있는 것은 또한 일리는 있다고 본다. 그리고 현재 아베관리위원장은 물론 예츠씨이지마는 노령이고해서 실제는 로빈슨씨가 대부분 책임을 지고있는 모양이었다. 그레고리 부인은 좀처럼 다블린에 나오지 않고 멀리 서부해안지방에 있으면서 편지로서만 서로 연락했든 모양이다.

다음에 나는 창작용어에 대해서 무러보았다.

여러분의 용어는 어떻게 됨닛가?

대단 어려운 질문이십니다 그려! 현재 대부분이 영어로 쓰고 있죠, 독자나 관중. 대다수가 영어를 더 잘 아니... 우사이 게릭으로 시작하는 경향도 일부에도 있습니다마는 아직 큰 것을 이루지 못했다고 봄니다. 영어 사용은 아직 계속될 줄 암니다.

이상 더 질문할 필요도 없었거니와 마침 자기를 찾어온 젊은 소년이 하나 왔다. 눈치를 보니 여기서 맛내기로 약속한 모양같고 知友사이인지 후배인지는 모르나 상의할 일이 있어보이기에 나의 면담은 중지하고 그 내방객에게 부탁해서 우리 두 사람이 앉어 이약이하는 것을 촬영해달라고 하고 또 내 손으로 로빈슨의 서 있는 것을 박이고 작별하기 전에 오늘 저녁 觀劇하겠다는 말을 했다.

오늘 저녁에 귀하의 작품 파 오프 저 힐을 보겠습니다. 그 때 뵈올른지 모르겠습니다마는 안녕히 계십쇼. 후일 서신왕래라도 있기를 바람니다...

고맙습니다. 안녕히 가십쇼!』<142

이렇게 작별인사를 하고 거기서 나와 저녁 숙소를 정해놓고 저녁 7시 개연에 구경오기로 생각했다. 그래서 나의 숙소는 전례에 의하야 먼저 YMCA를 찾기로 했다. 그레서 거기서 바로 건너쪽 로우워 아베가에 있는 3층 빌영의 회관으로 가서 사무원에게 來意를 전하고 總務 휴 죠던의 안내를 받어 내부 여러가지 설비를 구경했는데 내가 정말 요구하고 있는 숙소는 거기 설비되어 있지 않었다. 總務의 말에 의하면 愛蘭舊敎가 왕성해서 新敎사업은 퍽도 곤란하다는 것이었다. 여러가지 참고재료를 얻은 다음에 그의 소개장을 가지고 舊敎一修女가 경영하는 앤드류 호텔이란 곳으로 찾어갔다. 이 숙소는 다블린 대학정문앞에서 愛蘭은행을 우편으로 바라보면서 정면을 상당히 높으게 경사진 데임가로 올라가서 좌측 첫 골목으로 들어가서 우편으로 가면 엑스체퀴어가라는 데가 있는데 그 골목 중간쯤 되는 왼편에 있는 적은 호텔이었다. 소개장을 전하니 45세쯤 되어보이는 黑衣修女가 나와 좋은 방은 남지 않고 좁은 2층 모퉁방 하나가 있으니 거기라도 무관하면 숙박하라고 한다. 재수없이 하인을 따라 그 방에 들어가 보니 좀 음침하고 추하게 보인다. 집을 놓고 피곤한 몸을 구두도 벗지않고 그대로 寢台에 들어누었다. 내 눈에 어늘거리는 여로는 뒤와 앞이 망망해 보였다. 고닯음과 향수로서 긴 한숨이 나오고 이마와 콧등에는 땀이 흘르고 있었다.

다브린의 旅幕

내 몸을 寢台우에 장사하다.

구름에 탄 듯,

물 속에 잠기는 듯,

용같이 몸부림치고

고래같이 휘끼를 품다.

오오 天地之間

어디 내 몸하나 둘 곳 없어

도 못되고

고래도 못되고

내 이곳서 지랭이가 되려고!

아득하여라,143

지내온 나그네 길이여!

7시가 되면 로빈슨 희극 3막을 구경하기로 하고 잠간 寢台우에 누어있노라니깐 조곰 치운 것 같었다. 코가 찡찡하게 감기기운이 있는 모양이다. 이러다가는 병이 날가 염려도 되고 또 밤에 구경 나갈 것이니 내의를 사 입어야 할 것 같아서 바로 그 호텔에 운접되어 있는 적은 잡화상에 들어가서 상하 털 내복을 사가지고 내 방에 들어와서 가라입고 저녁밥을 기다리며 다시 寢台에 누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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