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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鮮日報對 東亞日報 爭覇戰, =新聞戰線에 異狀잇다

이강기 2015. 9. 28. 11:05

별건곤 제67

발행일 19331101

기사제목 朝鮮日報對 東亞日報 爭覇戰, =新聞戰線異狀잇다

필자 壁上生

기사형태 소식

 

 

 

朝鮮日報對 東亞日報 爭覇戰, =新聞戰線異狀잇다

 

壁上生

옥로(玉露)가 멀지안하 서리를 매지려 하고 소실한 금풍(金風)이 부선하게 열분창을 두다려 천시(天時)의 서두름이 여간 밧부지 안흔 이지음 인사도 이름 응함인지 미국(米國)의 해군대 확장을 딸하 일본(日本)과 영국(英國)의 국비확장과 즁국(中國)의 공군확장, 북중(北中)의 반장운동(反蔣)운동 발발, 로서아의 극동(極東)방비 독일(獨逸)과 오국(墺國)의 판소 실현 모든 것이 쟝차 이세게로 어떤 수선을 피울지 모르게 날뛰여 그야말로 산우욕래풍만루(山雨欲來風滿樓)의 늣낌을 깁히 준다. 이름에 잇는 조선사람만이 행이랄지 불행이랄지 아모 움직임 업깁 잠자고 밥 먹기로 만일을 삼아 아조 무풍지대(無風地帶)로 넘우나 심심함을 금키 어렵더니 각 심문사의 경쟁이 생기여 멕이 때 모양으로 몰려다니는 사람의 발자최 소리가 저윽이 적막한 조선사회의 공긔를 흔드는 양하야 시시비비의 별문제로 하고 한바탕 이야기재료를 맨든 것만은 돌이어 적지 안흔 재미인 듯 십다. 이제 각 신문사의 그리되는 리면을 들추어 여러 독자와 심심과 적함도 그리 무의미한 일은 아닐듯하다.

동아일보(東亞日報)의 긔성세력이 금성철벽이라 하면 조선일보의 신흥긔운은 욱일승천이라고 할 수 잇다. 신흥하는 조선일보가 긔성세력이 든든한 동아일보와 경쟁을 하려면 인사조직으로나 영업정책으로나 동아일보의 지반을 흔들어 보지 안흘 수 업고, 흔들기로 하면 정실로 각가운 사람과 리해로 끌릴만한 인물로 동아일보에서 중추의 구실 하는 사원을 흔들어 빼서오는 것이 무엇 보담 빠를 길임을 먼저 깨달엇스니 이것이 금번 동아일보 사원의 대변동이 잇게 된 것이라 리광수(李光洙), 서춘(徐椿), 김동진(金東進) 가튼 이는 리해 이외의 지방관염 다시 말하면 정실로 끌린 것이고 신태익(申泰翊), 함상훈(咸尙勳) 가튼 이는 순전히 리해로 움진인 이 사람이니 월급의 만흔 것과 지위의 올음으로 발을 옴기여 드뜬 것이다. 대체 신문사란 곳이 지식분자와 책모가의 모이는 곳이라 다른 사회긔관 보담은 파란이 제일 만흔 것은 조선에 잇서는 누구나 긍정하지 아니치 못할 바이다. 민간신문으로 제일 튼튼히 내려왓다는 동아일보도 경영자의 변동은 업섯지만은 종업원의 변동은 여러 번이 잇다. 조선민족의 더운피가 한참 끌튼 남아지 결정으로 생긴 동아일보이라 창간당시에는 강개유지의 인물이 그리로 만히 몰리엇고 지반은 재피지 안코 경영은 극도로 곤난하야 책모와 파쟁이 생길 여가가 업섯지만은 더운피가 차차 갈아안고 경영난을 좀 면하야 갓부든 숨결이 저윽이 천연하야 지자 긔호파와 전라도파 즉 경영자와 종업자의 대 충돌이 생기엿스니 이것이 모모씨를 중심으로 하야 일어난 사장불신임운동이다. 긔호인물 더욱이 특권계급에 잇든 인물은 실력은 업시 지도의 자리만 탐내고 자긔 마음대로 되지 안흐면 때려 부시려는 샊각이 항다반 압서나니 이것이 환득환실(患得患失) 당동벌이(黨同伐異)의 수 백년 여페유얼이 지금도 남은 것이다. 실력업시 지도자가 되려면 부득불 실력자를 조종하야야 됨으로 그를 위하야는 윤응저치(*呧痔)와 협견첨소(脇肩諂笑)의 무슨 수단이든지 가리지 안코 그리하다가 되지 안흐면 음으로 양으로 방해하야 업새고 마나니 부자가 구수되고 형제가 서로 죽임이 모도 이런데서 나온 것이다. 그때 대주주와 사장이 시위 소찬으로 긔호파의 말만 듯고 츌문군 노릇이나 하얏스면 결코 그런대 충돌이 생기지 안흘 것인 대 실력가진자가 실력잇게 지도를 하고 본즉 여간 책략가가 발을 붓칠 곳이 업고 더욱 이 회주금불입으로 인하야 끈 짧은 돈으로 간신이 일회불입만 하고 주주 노릇하는 인물이 이회 불입은 꿈도 못꾸게 되엿스니 그리되면 권리를 상실하야 외꼭지처럼 제절로 떠러지고 말지라 못 먹는 감 찔리보는 버릇으로 틈을 보든 차에 천재일득으로 송사장의 박춘금(朴春琴)에 대한 사건이 생긴지라 이로 추켜들고 사장배척을 하다가 실패를 하얏스니 이 싸움에 호남파인 경영자파가 비록 득승하얏스나 놀내기는 여간 한 것이 아니다. 이 경험을 치르고 본즉 순호남판으로 차리자한즉 넘우나 편협하다는 조소를 바들지라 부득이 신진긔분이 비교적 만코 낡은 정치적 수완이 적은 서북인물을 우대 수용하게 되어 얼마동안은 동아일보사 펀즙국의 중요한 자리로 서북인이 반넘어 차지하얏다. 그러나 실권이 서북인의 손에 하나도 업고 송사장의 독재가28넘우 심하야 일종의 불평을 차튼 중의 편즙국의 발호가 또한 넘우 심하야 동요의 불평은 극도로 잇든 중 평안도 소생이고, 금광왕인방씨가 오십 만원의 큰돈을 헌신작 가티 드늦여 조선일보를 경영하게 되엿고, 동아일보와 경쟁을 하려면 선천적으로 갓갑고, 또는 동아일보에서 업스면 아수움을 절실히 느낄 인물들을 빼서야 자긔네의 지반이 두터워지고 동아일보의 타격이 심할지라 리광수, 서춘의 끌어감은 그럴뜻한 생각이고 우대는 바드면서도 실권에 갈증이 난 그네가 그리로 가는 것도 용혹무괴의 일이라 그리 나물할 것이 업지만은 중요분자가 자리를 옴긴 후에도 보통 사원까지 모다 빼서가려고 백 원을 주마 백 오십 원을 주마하야 꼬이고 종래 신문사의 업든 부장차석자리로 흘신 늘녀 마치 리조 말년에 벼슬자리 늘리듯 하야 가며 략탈운동을 한 것은 넘우나 아이들 작란 가타여 철난 사람은 웃기도 창피하게 되엿다. 그러나 이번 일이 동아일보에는 큰 약이 되엿스니 첫재, 송사장으로 하야금 어인접물(御人接物)의 편협이 못된 것인 것을 절실히 깨닷게 하얏고. 둘재로는, 긔호인물에 실패하고 서북인물에 또 실패하야 차라리 편협할지언정 순 전라도 중심으로 하는 것이 낫다는 것을 알앗슬 것이니 이 압흐로는 전라도의 몰로주의가 더욱 강할 것이오. 셋재, 타긔가 잇든 돈 만히 먹든 고급자를 내보내고 4, 50원의 신진인물을 쓰게되니 능률과 경제상으로 도로혀 이익이 될는지도 알 수 업다.

조선일보가 송병준의 손을 떠나 신문다운 면목으로 세상에 행세도 하얏고 남의 대접도 상당히 바닷지만은 경영자들이 긔호인물이든 만큼 역시 파쟁과 알륵으로 종시하야 호강은 짤럿고 가진 욕은 형용키 어럽게 격다가 지금 평안도 금광 왕국으로 들어가 풍성풍성한 돈으로 호화로운 경영을 하야가나 밧그로 숨어 나오는 풍문을 드르면 그곳에서도 상자가 넘우 여럿이어서 잘못하면 가마솟깰 념녀가 업지 안흔 모양이라니 그것이 사실이라면 그네들도 한번 맹성할 일이요. 편즙은 넘어 별안간에 대시문 노릇을 하랴는 바람에 재료선택보다 큰 활자를 만히 쓰고 조간(朝刊)은 남타경쟁을 하너라고 저녁에 먼저 돌이니 석간이 회라고 할지언정 조간의 의미가 업서뵈며 호외(號外)는 변변치 안은 일에도 너무 람발을 하야 엇지 도로혀 신문호외의 위신을 일케 하는 듯하다. 그리고 동아가 너무 전라도 몬로주의를 써서 일반의 비난이 만흔 이때에 방씨(方氏)가 도로혀 그것을 모방하야 사원을 평안도 중심으로만 채용하는 것은 정실관계에 할 수 업는 일이라 할지라도 너무 지방색이 농후한 것 갓다. 동아, 조선 두 신문이 그대로 만나아 간다면 최후에는 명의까지도 동아는 왈 호남일보(湖南日報), 조선은 왈 관서일보(關西日報)가 될는지도 알수 업다. 하여간 두 신문이 그러케 경쟁을 하야 최후에 누가 패권을 잡을지 알 수 업스나 독자로서는 사진 한 장을 더 어더 보던지 부록 한 장을 더 엇게 되여도 손은 업슬 것이니 벽 상에 관초건격으로 그저 구경만 할 수 밧게 업다. 그 틈에 긔호인물을 중심하야 가지고 경영하는 중앙일보(中央日報)는 자본의 힘으로나 규모의 적은 것으로나 아즉 형편으로는 도저히 두 신문과 경쟁을 하지 못할 것 가터 서 맛치 삼분천하에 익주가피폐(三分天下益州疲廢)한 감이 잇스니 아지 못거라 중앙일보에는 과연 누가 제갈양(諸葛亮) 노릇을 하며 국궁진췌할고.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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