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명 | 동광 제20호 | |||
호수 | 제20호 | |||
발행년월일 | 1931-04-01 | |||
기사제목 | 余의 作家的 態度 | |||
필자 | 李光洙 | |||
기사형태 | 문예평론 | |||
一 東亞日報의 신년호 文藝欄과 朝鮮日報의 그것에 梁柱東君은 民族主義文學의 理論이 서지 못하엿다는 것을 말하고 그 끝에 民族主義文學者인 필자의 理論提示가 없음을 責하엿다. 그리고 내의 文學生活의 전도가 막다른 골목에 든 것을 염려하엿다. 종전에도 나의 文學的 態度에 대하야 혹은 공격하는 이도 잇고 혹은 嘲笑하는 이도 잇엇다. 그러나 나는 일절 緘口하엿다. 웨 緘口하엿는가. 웨 혹은 駁擊하고 혹은 변명하고 혹은 答辯하지 아니 하엿는가. 거기는 멫가지 이유가 잇다. - 첫재는 내게 대한 공격이 내가 보기에 조곰도 肯?에 中치 아니하엿던 것이오, 둘재는 대수롭지 안타는 것이오, 셋재는 병중에 잇어서 그리 중요치도 아니 한 일에 精力을 消耗하고 싶지 아니하엿던 것이다. 그러나 그밖에 또 하나 나로 하여금 세간의 是非 評論에 대하야 沈?을 지키게 한 것이 잇으니 그것은 곳 내가 내 一生 生活중에서 文藝作家의 생활이라는 것을 심히 輕視한 까닭이다. 論爭을 좋아 아니하는 성질도 一原因이 되엇는지 모르거니와 가장 중요한 원인은 文學生活의 輕視다. 나는 일즉 文士로 자처하기를 질겨 한 일이 없엇다. 내가 無情, 開拓者를 쓴 것이나 再生, 革命家의 안해를 쓴 것이나 文學的 作品을 쓴다는 意識으로 썻다는 것 보다는 대개가 論文代身으로 내가 보는 당시 朝鮮의 中心階級의 실상- 그의 理想과 현실의 乖戾, 그의 모든 약점을 여실하게 그려내어서 讀者의 鑑戒나 感奮의 재료를 삼을 겸 朝鮮語文의 발달에 一刺激을 주고 될 수 잇으면 청년의 文學慾에 不健全치 아니한 讀物을 제공하자-이를테면 이 政治알에서 자유로 同胞에게 通情할 수 없는 心懷의 일부분을 말하는 방편으로 小說의 붓을 든 것이다. 그럼으로 小說을 쓰는 것은 나의 一餘技다. 나는 지금도 文士는 아니다. 이밖에 나는 나의 文學的 生活에 또 하나 부끄러운 목적을 아니들 수 없으니 그것은 곳 원고료를 위함이다. 나는 지나간 20년간에 약간년의 敎師生活을 제하고는 원고료로 운영하여 왓다. 학생생활중에도 학비의 半部를 원고료에서 벌엇다. 이 原稿料라는 것(그것은 실로 멫푼 안되는 것이어니와)은 참으로 나의 이른바 創作의 아마 가장 중대한 動力일는지도 모른다.〈81〉 그러면 너는 小說을 쓰는 것밖에 무슨 재주가 잇느냐. 무슨 本技가 잇길래로 네 小說짓는 것을 餘技라고 뽑내느냐 하고 무르면 나는 맥맥이 할 대답이 없다. 그러킨 하지마는 그래도 文士-小說家라고 자처하는 것이나 남에게 稱呼를 받는 것은 내 자존심이 許하지를 아니 한다. 그것은 반다시 文學이란 것을 賤視하여서 그러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내 本分이 아니라는 것인가 한다. 실토를 하라면 나는 원체 文學을 그리 愛好하는 사람이 아니다. 더구나 나는 小說의 독자는 아니다. 二 그러나 이상에 말한 것은 梁柱東 기타의 내 文學的 태도에 대한 공격에 대한 아모 대답도 변명도 되는 것이 아니다. 설혹 나의 小說이 나의 餘技에서 나온 것이라 하더라도 나는 나의 作品에 대하야 責任을 一毫라도 면할 수는 없는 것이다. 나는 이제 나의 작품에 관한 理論-말하자면 나의 文學理論의 要領을 공개할 필요를 感하고 아울러 외람히 각금 내 이름과 聯絡되는 民族主義 及 民族主義 文學에 대한 나의 管見을 開陳할 필요와 욕망을 느낀다. 三 내가 小說을 쓰는데 첫재 가는 目標가 『이것이 朝鮮人에게 읽혀지어 利益을 주라』하는 것임은 물론이다. 나는 내 小說이 朝鮮人 以外의 다른 사람에게 읽혀지기를 바라지 아니한다. 내가 생각하기에 읽을 것을 가지지 못한 이는 朝鮮人이오 또 내가 朝鮮人인 까닭이다. 내 小說은 英米國人에게는 전연히 不必要한 수지 뭉테기 일는지 모르지마는 朝鮮人에게는 혹시 필요한 讀物이 될는지 모른다. 그러타고 하면 내 소원의 一端은 達하는 것이다. 나는 이 생각(아마 이것을 民族主義的이라고 하는지도 모른다)을 내어 던지랴고 생각해 본 일도 잇다. 나는 日文이나 英文으로 小說을 써 볼가 朝鮮이라는 나를 얽어버린 結縛을 벗어 버리고 자유로온 一世界人으로 世界文壇을 향하야 한번 소리를 처 볼가하는 誘惑도 나지 아니 한 것이 아니엇다. 그러나 나는 그런 때마다 背義라는 일종의 强迫觀念을 가지게 되엇다. 世界는 네가 아니라도 넉넉하다. 그러나 朝鮮은 너같은 것이라도 요구한다 하는 소리를 나는 듣는다. 이것을 民族主義的이라고 부르는지 모른다. 아모러나 나는 글을 쓸 때에 반다시 朝鮮人- 그 중에도 나와 같이 젊은 朝鮮의 아들 딸을 염두에 둔다. 나는 붓을 들고 조희를 대할 때에 그들 젊은 朝鮮人에게 하고 싶은 말하고 싶은 通情이 샘솟 듯 솟아 나옴을 깨닷는다. 그것이 듣는 이에게 유익한 것인지 불필요한 것인지 모르거니와 내 딴에 말하지 아니치 못할 것을 느낀다. 그 중에서 나는 警務局이 許할 만한 재료를 골라서 원고지에 적기를 시작하는 것이다. - 이것이 내 小說이다. 四 그러면 이 小說의 내용은 무엇인고. 만일 내가 프로 小說家라 하면 내 小說의 내용을 짓는 것은 모도 階級鬪爭의 煽動과 描寫로 終始하엿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프로 小說家가 아니기 때문에 특히 階級鬪爭을 高調한 일은 毋論 없다. 나는 寫實主義 全盛時代에 청년의 눈을 떳는지라 내게는 寫實主義的 色彩가 많다. 내가 小說을 「某時代의 某方面이 충실한 記錄」으로 보는 경향이 많은 것이〈82〉 이 때문이 아닌가 한다. 無情을 日露戰爭에 눈 뜬 朝鮮, 개척자를 合倂으로부터 大戰 전까지의 朝鮮, 再生을 萬歲運動 이후 1925년경의 朝鮮, 방금 東亞日報에 連載중인 群像을 1930년대의 朝鮮의 기록으로 나 스스로 생각하는 것이 이 때문인가 한다. 이 拙劣한 시대의 그림이 어느 정도까지 그 時代의 이데오로기와 感情의 苦悶相을 그렷는지는 내가 말할 바가 아니다. 뀀´ 意圖가 그것들의 충실한 描寫에 잇엇다는 것만은 사실이다. 흖이 내 작품중에 나오는 人物들의 無爲, 無氣力함을 嘲笑하는 批評을 들엇거니와 그러한 비평을 들을 때에 나는 혼자 苦笑를 不禁한다. 웨 그런고 하면 내가 有爲, 有氣力한 인물을 그리랴던 의도가 無爲, 무기력하게 되엇다면 그 批評이 아프기도 하렷마는 내가 그리랴는 意圖가 정히 그러한 無爲, 무기력한 人物이엇으니까 批評家들의 嘲笑는 도로혀 내 작품중의 성공을 의미하는 것이니 내가 苦笑아니 하고 엇지하랴. 無情의 「리형식」이나 開拓者의 「성재」, 「성순」, 「민」 같은 人物은 당시 제라고 하던 知識階級 朝鮮靑年들의 모형으로 그린 것이오. 결코 작자의 理想하는 人物로 그린 것이 아니며 재생의 「신봉구」, 「김순영」을 중심으로 한 一群의 人物도 당시의 靑年階級의 寫實的인 일단면을 보이랴는데 不過하엿다. 만일 이 인물들의 無爲, 無氣力을 嘲笑하는 評者가 진실로 有爲, 有氣力한 英雄이라 하면 나는 반드시 내 카메라의 렌스를 그 분에게 돌릴 것이다. 寫眞師는 항상 잘난 사람이나 좋은 풍경을 구하지 아니하는가. 나는 理想的 人物을 鑄出하야 讀者의 模範이 되게 하는 것이 小說家의 意圖가 될 수 잇는 것도 容認하지 마는 나 자신은 아직 그것을 의도해 본 일은 없다. 잇다하면 「許生傳」, 「嘉實」같은 歷史小說이라고 할가. 不自然을 痛惡하는 내 성격으로는 혹은 발이 全身보다 큰 洋靴店廣告畵라든지... (中略-원문)... 현대 朝鮮을 배경하고 그릴 수는 없는 것이다. 五 그러면 時代相을 여실히 描寫하랴는 내 동기는 무엇인가. 그것은 우에도 말한 바와 같이 결코 단순한 것이 아니다. 「無情」, 「開拓者」, 「再生」, 「群像」등에서 각각 당시의 時代相의 一角을 여실히 그려보랴고 한 동기를 반성하야 분석해 보면-. 1. 그 時代의 指導精神과 環境과 人物의 특색과 및 시대의 약점등을 暴露 설명하자는 歷史學的 社會學的 興味. 2. 前時代의 解剖로 인하야 次時代의 진로를 암시하랴는 微衷. 3. 再現, 描寫 자신의 藝術的 興味 등이다. 八峰 金基鎭君이 再生을 通俗小說의 典型이라고 한 것이나 주요섭군이 端宗哀史를 평한 말 가온데 通俗小說인 悲哀라는 句節이 잇는 것이나 다 그들의 炯眼, 銳感의 産이겟지마는 作者인 나로서 보면 이에 대해서는 苦笑를 금치 못하는 바가 잇다. 웨 그런고 하면 通俗小說이란 흥미 本位의 小說이란 뜻이다. 다시 말하면 倫理的 動機를 포함치 아니하엿다는 뜻이다. 倫理的 動機를 포함치 아니한 흥미잇는 小說이라는 뜻으로〈83〉 내 소설이 通俗小說이라 하면 거기는 동의 할 수 없다. 웨 그런고 하면 나는 일즉 讀者의 흥미를 목표로 붓을 들어 본 일은 없는 까닭이다. 만일 내가 쓰는 小說이 대단이 平易해서 누구나 理解, 鑑賞하는 것이 죄라고 하면 그것은 甘受할 수 밖에 없고 또 만일 내라는 사람이 根抵로부터 통속적으로 되어 먹어서 내가 쓰는 小說이 모도 通俗小說이 된다고 하면 그것도 나로는 어찌할 수 없는 일이다. 또 만일 階級鬪爭을 題材로 아니 한 것이 通俗小說이라 하면 그것도 無可奈何다. 아모러나 나는 讀者를 기쁘게 하기위해서 倫理的 動機가 없는 小說을 써 본 일이 없다는 것만 重言해 둔다. 六 그러타면 내가 小說을 쓰는 究竟의 動機, 즉 根本動機는 무엇인가. 나로 하여금 애써 時代相을 描寫하야 同胞의 眼前에 전개하고저 하게 하는 것이 무엇인가. 이것이 자연히 제출될 의문이오 또 내가 해야 할 究竟의 답변이다. 내가 小說을 쓰는 究竟의 動機는 내가 新聞記者가 되는 究竟의 動機, 敎師가 되는 究竟의 動機, 내가 하는 모든 作爲의 究竟의 동기와 일치하는 것이니 그것은 곳 「朝鮮과 朝鮮民族을 위하는 奉仕-義務의 履行」이다. 이것뿐이오. 또 이밖에 아모 것도 없다. 내가 일생에 하는 일이 朝鮮과 朝鮮民族의 地位의 향상과 행복의 증진에 毫末만콤이라도 기여함이 되어지다 하는 것이 내 모든 行爲의 根本動機다. 「世界와 人類을 위하야」는 내게 아직 넘어나 크다. 「朝鮮과 朝鮮民族을 위하야」하는 것도 나같은 못난이에게는 엄두도 못내일 큰 일이지마는 이것만은 아니하지 못할 일이다. 이 말에는 반다시 「그러면 네가 위한다는 朝鮮民族이란 것은 어떤 階級을 가르치는 것이냐-搾取하고 잇는 階級을 가르치는 것이냐, 搾取받고 잇는 階級을 가르치는 것이냐」하는 질문이 올 것이다. 이에 대해서 나는 대답하려 한다. 뉘가 朝鮮人의 血統을 가지고 朝鮮語를 말하고 朝鮮人이로라는 聲言을 한다하면 그는 朝鮮民族이라고 또 나는 明言하리라, 누구든지 朝鮮民族을 背叛하지 아니하는 한에서 그가 어떠한 主義, 어떠한 階級에 속한 것을 물론하고 그는 朝鮮民族에 包容된다고.(中略-원문) 그럼으로 새로은 世代가 와서 國境과 民族的 모든 차이-言語, 생활상태, 習俗등-가 소멸되기까지는 民族的結紐는 絶對的이다. 더구나 금일의 朝鮮民族과 같이 民族向上運動이 필요한 지역에서는 모도 朝鮮民族의 民族的 單一?思想을 破壞한 思想이나 行動은 朝鮮民族의 적이니 그러한 사상행동을 하는 자는 民族的 謀反者로 볼 것이다. 내가 小說을 쓰는 근본 動機도 여기 잇다. 民族意識, 民族愛의 高潮, 民族運動의 기록, 檢閱官이 許하는 한도의 民族運動의 讚美, 만일 할 수만 잇다면 煽動, 이것을 과거에만 나의 主義가 되엇을 뿐이 아니라 아마도 나의 일생을 통할 것이라고 믿는다. 七 梁柱東氏는 나의 民族主義 文學觀이 막달은 골목에 다달을 것을 한탄하고 내가 만일 지금에 方向을 전환하지 아니하면 過去의 인물로 化石하여 버릴 것을 우려하시엇다. 氏의 論調로 보건댄 民族主義 시대는 이미 지나갓고(時? 말로 淸算되고) 지금은 바야흐로 다른 무슨 主義時代인 것을 암시하엿다.〈84〉 그러나 民族主義 시대를 淸算한 것은 二三言論家들의 机上에서요 現實朝鮮에서는 아니다. 現實 朝鮮으로 말하면 지금 바로 民族主義 結成時代다. 이로부터 정히 朝鮮에 實行的인 民族主義時代가 올 것이오 따라서 民族主義의 文學이 擡頭할 것이다. 社會主義는 다른 民族중에 잇는 것과 같이 朝鮮民族중에도 잇을 것이오 그 主義의 문학 역시 그러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尨大한 民族主義의 一小角을 점하기에 불과할 것이오 그 뿐더러 朝鮮民族主義의 洗禮를 받고 그의 承認을 받아서 발육하게 될 것이다.(中略) 梁柱東氏는 나의 民族主義에 대한 태도를 「封建的 民族主義」라고 하엿거니와 그것은 氏가 근거를 설명하지 못한 바와 같이 無根之說이다. 그것이 無根之說인 것은 氏가 나를 人道主義者라고 한 것이 증명하는 것이다. 나는 다른 모든 主義者는 될 수 잇을는지 모르거니와 封建的 民族主義者(쏘비니스트, 또는 아모 倫理的 理論的 근거도 없이 다만 제 民族이니까 사랑한다는 의미로 梁氏가 이 말을 쓴 것이라고 하면)는 될 수 없는 사람이다. 내가 종래 더 많이 朝鮮民族의 결점의 攻擊者요 邀功的 讚揚者가 아니어서 매양 말성을 이르키는 것을 보아서 알 것이다. 내가 抱懷하는 民族主義는 결코 梁柱東氏가 상상하는 종류의 無理論한 것이 아니다. 歷史的, 社會的, 政治的, 經濟的 내지 文化史的으로 보아서 朝鮮民族의 向上 發展, 행복은 오직 民族主義的으로 해결할 一途가 잇을 뿐이라는 명확한 신념우에 선 것이다. 더구나 모스크바 방면에서는 000000까지도 民族的으로 解決하지 아니치 못할 것을 주장하게 되지 아니하엿는가. 人類問題는 아직도 「萬國의 勞?者」가 합하야서 해결할 것이 아니오 각기 一民族이 民族的으로 해결할 시대에 잇다고 본다. 八 최후에 民族主義의 내용에 관하야 一言하고 본론을 막자. 世間에서는 흖이 民族主義와 社會主義를 대립적으로 말하는 모양이나 그것은 根本的으로 착오다. 民族主義란 世界主義에 대립할 것이오 결코 社會主義에 대립할 성질의 것이 아니다. 民族主義란 政治, 經濟의 단위를 一民族에 국한하자는 이를테면 範圍問題요 量的問題다. 그럼으로 朝鮮의 民族主義라 하면 朝鮮內 朝鮮人의 政治組織, 經濟-, 文化組織을 全世界나 全亞細亞의 또 第二나 第三인터나쇼날의, 또는 누구나의 利害打算에서 하지 말고 惟獨 朝鮮民族의 利害打算에서 하자는 말이 된다. 그럼으로 그 政治組織, 그 經濟組織, 그 文化組織의 內容 여하에 관하여서는 民族主義라는 말에는 아모 明示가 포함되지 아니 한 것이다. 그러나 그러타고 民族主義란 결코 空?한 말은 아니다. 웨 그런고 하면 政治, 經濟, 文化등 모든 運動의 目標를 朝鮮民族에 두고 또 運動者를 朝鮮民族에 국한한다는 것은 실제에 잇어서 더구나 感情에 잇어서 注意와 力의 集中에 잇어서 여간 차이가 잇는 것이 아닌 때문이다. 朝鮮民族的으로 노력함으로만 世界人類의 행복에 기여할 것이오 따라서 朝鮮人은 朝鮮民族을 위한 노력을 통하여서만 정당하게 인류의 노력에 연결될 것이다. 그럼으로 나 一個人의 능력의 막달은 골목은 잇을지언정 民族主義의 또는 民族主義文學의 막달은 골목은 今後 1, 2世紀내에는 없을 것이다. 그들로 하여금 机上에서 매일 1차 혹은 2차식 民族主義와 民族主義文學을 청산하게 할지어다. 그것은 마치 机上에서 朝鮮의 半島와 2,300萬의 民衆을 매일 한번식 청산하고 과거하엿다고 하는 것과 같은 觀念遊戱요 自家陶醉다. 民族主義와 民族主義의 文學은 이로부터다. 1931. 1. 4일.〈85〉 〈81-8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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