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 語學

朝鮮의 文學 - 李光洙

이강기 2015. 10. 1. 18:05
잡지명 삼천리 제5권 제3호
호수 제5권 제3호
발행년월일 1933-03-01
기사제목 朝鮮의 文學
필자 李光洙
기사형태 문예평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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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일의 朝鮮文學은 아직 세계 시장에 내노을 만한 정도에 도달치 못하얏다. 작가도 작품도 수에 잇서서도 질에 잇서서도 유감이나 아직 역사를 지닌 一民族의 문학으로써 널니 내여놀 수 업다.
다만 2천 3백만이라는 결코 수에 잇서서는 적지 안타고 할 一民族이 현재 소유하고 잇는 문학으로써는 소개의 가치를 발견할 수가 잇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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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니 천 수백년전 예전에는 新羅에는 문학도 미술도 발달한 시대가 잇섯다. 헤일수 업슬 만한 戰亂과 시간의 磨減을 지낸 금일에 잇서서도 新羅의 舊州 慶州 其他에는 新羅文化의 일면을 말하는 우수한 건축 조각이 남어 잇고 또 三國遺事 均如傳 등에는 수천 편의 당시 아름다운 시편이 수록되여 잇다. 眞聖女王(1045년 전)시대에는 「三代目」이라는 勅選歌集까지 잇섯다.
그러나 高麗 이후 朝鮮에 한문학이 성하게 됨으로 本處 支那에 잇서서 칭찬을 밧게까지 된 문인 시인을 배출하얏스나 朝鮮語의 조선문학은 전혀 돌보지 안엇다. 李朝 제4대 世宗大王때 훌륭한 한글이 발명되여 자유자재로 朝鮮語가 記하게 되고 또 大王自身 純諺文으로 「龍飛御天歌」 「月印千江之曲」 등 大?事詩篇을 지음으로 조선문학의 範을 삼게 하얏는대도 불구하고 支那文學에 탐닉한 朝鮮人은 겨우 「時調」라는 國風詩歌 수백 편과 소설 희곡 이약이 등 수십 편을 남겨 노앗슬 뿐으로 一民族에 상응되는 문학을 제작치 못하고 맛치엿다. 이 詩篇들은 「歌曲源流」 「靑邱永完」 「海東歌謠」등에 수록되여 잇다.
이 소설이라는 것은 九雲夢(漢譯 게-르 박사의 英譯이 잇다. THE clond Fpeam of THE NINE라는 〈12〉 표제로 런돈에서 발행되여 잇다. 「春香傳」(이것은 조선인에 가장 만히 愛誦된 연애가극으로 英譯 佛譯 獨譯이 잇다. 漢譯도 잇다. 또 洪吉童傳등이 이 대표이다. 其中에서도 春香傳은 좃튼지 납흐든지 가장 잘 朝鮮人의 마음을 낫하내엿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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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는 朝鮮의 현대 문단 작가 작품경향을 注文하나 현대문학의 시작은 적확히 연대순으로 말하기 곤란하나 日露戰爭이 끗난 때라 할 수 잇겟다. 포스마스 日露講和條約의 결과 당시의 韓國인 朝鮮은 첫재 日本의 보호국이 되고 드듸여 明治 43년 8월 29일 日本에 병합되엿다. 그사히 겨우 7년 그러나 이 7여년은 朝鮮人 마음에는 7백년보다도 더한 변화를 주엇다.
이 시대에 일어난 것이 소위 愛國歌時代이다. 그것은 愛國을 테-마로 한 ?情詩歌가 몃백 몃천인지 낫하낫슴으로 그럿타. (中略-원문) 만은 것은 아노님과 슈도님으로 주로 寫本 또는 謄寫版으로 극히 듬을게 활자 인쇄로 全朝鮮을 風靡한 것이다. XX XX한 詞나 調로 中略(원문)―이런 詩歌는 지금은 한편도 남어 잇지 안타.
中略―그러한 詩歌는 다시 활자로써 나올 기회를 영구히 이러버렷다. 더구나 이곳에 인용하기까지 곤란하겟다.
이런 류의 시인들의 가장 질겨하는 테마는 祖國의 옛 광영에 대한 회고 滿洲나 시베리아 太平洋 저쪽의 憧憬 XX라 하는 것 갓흔 것이다.
이런 詩歌의 당시 인심 특히 청년학생의 맘을 움직이는 힘은 실로 큰 것이엿다 만는 志士나 청년들은 이러 詩歌를 吟誦하면서 사실상 시베리아나 滿洲나 太平洋 저쪽에로 漂浪의 客이 된 것은 그 수로는 萬을 가지고 헤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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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愛國詩歌時代의 뒤를 밧든 것은 혹은 次代의 魁가 된 것은 崔南善의 散文詩時代이다. 崔南善은 韓國政府가 東京에 파견한 제1회 유학생 중의 한 사람으로 府立一中과 早稻田大學의 문과에서 배운 사람으로 병합되기 前前年 애국적 열정에 타올나 학업을 포기하고 귀국하야 「少年」이라는 월간잡지를 발행하얏다. 그것은 明治 41년이다. 당시 그는 18의 소년이엿다. 그는 그 誌上에 만흔 산문시를 발표하얏다. 그의 詩形은 모름직이 드두게넵흐의 산문시에서 배운것일 것이다. 〈13〉 그러나 그 내용은 全然 오리디날한 것으로 同族愛 希望力 자기희생과 갓흔 것이다. 즉 愛國歌時代의 내용은 좀더 심각하고 복잡하고 세련한 것을 자유스런 산문시의 그 안에 담은 것이다. 이 崔南善式 산문시로 後年의 朝鮮의 新體詩가 나온 것이다. 約言하면 단순한 4.4調나 7.5調의 천편일률적 애국시가에 대한 불만으로 崔南善의 산문시가 나오고 그 산문시의 너무나 산문적 불만으로 좀더 정리된 좀더 구속적인 新體詩가 나왓다.
이곳에 더 한가지 중요한 것이 잇다. 그것은 좀 뒤에 일이나 崔南善이 산문시로부터 轉回하야 시조의 형식을 취하얏다. 수십 편의 작품을 발표하얏다. 시조는 우에서 말한 것 갓치 朝鮮古文學의 근간이 되는 詩形이나 그 옛 형식에 새로운 내용을 담운 새 문학의 형식으로써 부활식힌 것도 역시 崔南善이다.
이와 갓흔 경험를 지내 朝鮮에 새로운 시의 형식 신체시와 시조와의 기초가 싸어젓스나 이 신체시에 잇서서는 朱耀翰, 金岸曙, 朴月灘, 金素月, 金巴人 등을 나엇스며 시조에 잇서서는 崔南善, 李鷺山, 李秉岐, 鄭寅普 등을 나엇다.
朱耀翰은 一高에 배운 적도 잇고 川路?虹에게 칭찬도 밧엇든 사람으로 「아름다운 새벽」 「봉사꼿」등 시집를 내엇다. 그는 크리스찬으로 직업은 신문기자이나 그 머리 明哲 感情의 銳敏 양심의 맑음을 가진 것을 특색으로 하고 그의 시는 극히 명랑하며 속일 수 업는 젊은 朝鮮의 마음의 노래다.
金岸曙는 慶大의 사람 大正 9년경 「懊惱의 舞踏」라는 譯詩集을 내여 朝鮮文壇에 뽀-드레-르 뻬르레-누 등의 詩風을 소개한 공적이 잇고 또 그 자신의 서정시나 아름다운 문장은 一時 만히 애독된 시인으로 朝鮮新詩團 創設者의 한 사람이다.
朴月灘은 「黑房秘曲」이라는 시집을 내고 金素月은 진달내꼿이라는 시집을 내엿다. 두 사람 다―10年來 一切 침묵을 직히고 잇스나 金素月의 민요풍의 애조을 띄운 시는 實노 朝鮮에 잇서 민요시나 동요의 魁이며 모범도 되엿슴으로 지금까지도 생명을 일치안는다.
그리고 金巴人이다. 그는 大正 8년의 XX운동이래 全朝鮮의 청년을 風靡하든 데카단風潮나 「惡의 華」式 詩歌에 대하야 굵고 힘세게 반항의 소리를 놉히 질은 시인으로 그 「國境의 밤」이라는 시집은 朝鮮文壇에 크다란 파문을 그리엇다. 굵은 線 野生的 힘 반항―이런 것은 그 정신이나 수법을 지금까지의 耽美派 藝術至上派的 〈14〉 경향에 대하야 어느 의미로서는 崔南善 이전 愛國歌時代에의 廻前이라고 할 수 잇스며 또는 뒤에 푸로詩의 선구가 되엿다고 할 수 잇는 것이다.
梁柱東은 「朝鮮의 脈膊」이라는 시집을 내여 민족애를 고조하고 잇다.
그리고 시조의 이야기나 시조에 잇서서는 崔南善의 「百八煩惱」와 李鷺山의 「鷺山詩集」도 또 李秉岐 鄭寅燮의 作 어느 것도 다 愛國詩歌時代의 올소독스라고 볼만한 어느 것이나 檢閱官에 許할 만한 정도에 잇서서 「民族」을 중심 사상으로 하고 잇다. 특히 鷺山의 시는 현대시조의 피라밋드라고 할 수 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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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다음은 소설이다. 소설은 그 양에 잇서서 질에 잇서서 또는 독자의 범위의 광범한 대 잇서서 今日의 朝鮮文壇에 잇서서는 주인이라 해도 좃타. 사실상 4,5년來 신체시는 몃 사람의 새 작가를 나은 외에는 거진 자죄가 업다. 다만 시조만히 李鷺山 李秉岐 외 數人에 의하야 進境을 보히고 잇다. 그러나 시조는 日本에 잇서 和歌와 갓치 문예적으로 훈련된 계급만히 賞觀하는 것이다. 일반대중에 먹일만한 성질의 것이 아니다. 대중의 食物은 엇제든지 소설이다.
조선에 歐米風의 형식의 소설이 일기 시작한 것은 지금으로 30년 이전에 李人植이라는 이외「血淚」나 「鬼의 聲」등의 작품이다. 그는 순수의 朝鮮語로 현대의 조선 생활을 그린 것이나 단 현대적 사상적 배경이 근거를 가지지 못하얏다. 그럼으로 그의 作은 後年 新文學運動과는 하등 유기적 관계를 갓지 못하얏다.
참으로 새로운 민족의식이나 歐米思想에 각성된 소설의 낫하난 것은 歐米大戰이 한참 버려질 大正 5년경이다.
당시 조선 유일의 朝鮮文 新聞인 每日申報 崔南善의 「靑春」 東京 學生들이 발행하든 「學之光」 其他 雜誌 그리고 XX운동이 일어나 寺內 武斷政治로부터 齋藤實 大將의 소위 文化政治가 되게 되여 2,3의 日刊新聞과 십 수 개의 月刊雜誌가 발행하게 됨으로부터 새 文學運動은 他部門의 文化運動과 갓치 蔽然히 일어낫다. 우에 말한 시인들도 대개 이때 나왓다.
이 때에 소설에 잇서서는 金東仁 玄憑虛 廉相涉 羅稻香 등이 나왓다. 그들은 벌서 民族意識에 抱泥되지안코 당시 세계적 조류인 인생주의에 기본인 인습에 대한 反抗 戀愛중심에 감정의 해방 현실의 폭로 그리고 朝鮮의 현실에 대하야 XX XX XX 등을 〈15〉가미한 것이다.
이 소설가들은 모두다 동경 유학생으로 大戰 전후의 日本의 사상이 문예에 영향 된 것이 만타. 소위 大震災前의 靡爛된 사상에 영향 된 것이 만타.
그러나 이때에 新文藝 甘味에 취한 청년들은 문예에로 한때도 문예가 아니면 밤도 낫도 새이지 못하는 상태이엿다.
金東仁은 이들 작가 중에서는 가장 우월한 수완을 가진 작가다. 그는 만히는 단편을 쓴다. 그러나 「감자」 「발고락이 달멋다」등은 가장 조흔 것이라고 하고 「감자」는 수년 전 新潮에 譯載되엿든 일도 잇다. 이 작자는 視察이 奇警하며 위잇트와 유-모아에 풍부한 인습이나 도덕이나 世評이나 그런 것에 관심치 안는 자유자재로 자기가 생각한 대로 써서 독자의 머리를 엇질하게 한다.
玄憑虛는 「지새는 안개」라는 단편집을 내엿스나 그의 作은 어느 것이나 실로 잘 均整된 상식에 富한 야담한 필치로 특히 그 문장은 아름다웁다고 말들을 한다.
廉相涉는 주로 장편 작가이나 그의 作은 엇더케도 澁하며 純重하며 심각한 늣김을 준다. 그텁텁한 점까지도 떠스트엡스키式이라고 할 수 잇다. 그의 作은 「標本室의 靑蛙」 「萬歲前」 「해바라기」 「마음」 등이다. 지금도 작가적 생활을 계속하고 잇서 푸로派에서는 민족주의 문학의 대장으로 불은다.
羅稻香은 젊어서 죽엇다. 그의 「幻戱」 「벙어리 三龍이」는 그의 일홈을 영구히 朝鮮文學史上에서 머물게 한다. 특히 「벙어리 三龍이」는 가장 조흔 作을 말하야 例로써 인용되며 映畵化되여 잇다. 그는 로맨티시즘의 경향이 잇섯다.
그러나 이 작가들에게는 지금 말하는 것 갓흔 指導的 思想은 업섯다. 어느 쪽이냐 하면 예술을 위한 예술과 갓흔 耽美派的 데카단的 경향이 잇서 인생에 대한 깁흔 洞察이나 高遠한 이상이라는 것 갓흔 論理的 내지 社會的 요소가 缺하엿다. 언제든지 遊戱的이엿섯다는 것을 면할 수 업다. 이것은 詩壇에 대하야서도 동일하다.
이때에 나온 시에 잇서서 우에서 말한 金巴人의 「國境의 밤」이고 소설에 잇서서는 崔曙海의 「脫出記」이다. 이런 작품과 전후하야 朴英熙 金基鎭 兩人의 푸로文學의 狼火가 잇섯다.
崔曙海는 小學校를 맛친 것 뿐으로 혹은 荷揚人夫도 되고 혹은 樵夫도 되며 혹은 滿洲에 방랑하며 혹은 중도되엿든 사람으로 그 「脫出記」는 자신을 모델한 것일 것이다. 間島에 잇서서 XX運動者들의 생활의 一片을 그린 것이 「脫出記」이나 〈 16 〉 그의 健實한 품 강력적 인 품 선의 굵은 것은 꼬리키의 작품에서 밧는 것 갓흔 엇든 압력을 밧는 것이다. 세기말적 戀愛物的 문학에 빠젓든 청년들은 이 「脫出記」에 잇서서 문학의 새로운 감격을 바덧슴에 틀님업다. 문학은 결코 유희는 아니다. 그것은 피를 기록한 인간의 惡戰苦鬪의 기록이 아니면 안 된다 라는 新文學觀을 젊은 청년에게 가슴 깁히 삭이여 주엇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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羅稻香 죽고 玄憑虛는 소설의 붓을 던지고 지금까지 소설을 쓰고 잇는 사람은 人生派라는 金東仁 민족주의자라고 부르는 廉相涉 그리고 準푸로派라 할 만한 崔曙海뿐이고 其外는 尹白南 崔獨鵑 등의 대중작가들을 제하고는 당시 작가로 생명을 보존하고 잇는 사람은 업다.
그러면 신흥의 푸로문학이다. 압헤서도 잠간 언급한 것 갓치 朴英熙 金基鎭 등은 잡지「開闢」을 牙城으로 안리 빠르삐스의 소개로 시작되여 맑쓰주의의 문학 이론을 소개하며 작품도 내고 旣成文壇 旣成作家들을 뿌르조아 文工라고 하야 罵倒로 하며 큰 기세를 보혓다. 新進의 崔曙海도 그 진영에 영입되며 다음으로 趙明熙는 시로써 李箕永은 소설로써 푸로陣營의 공방력을 세웟다. 이들로 日本 푸로作家들의 작품도 다소 소개되엿다.
푸로문학은 꼭 공식에 의한 것으로 설명할 필요를 認치 안는다. 이것이 如何히 조선청년 간에 열광적으로 환영되엿다 한 것은 실로 경이 그것이다. 푸로文學의 機關紙然이든 開闢은 놀날 만한 발행 부수가 증가되고 그것으로 말미아마 드듸여 당국으로 발행을 금지 당하얏다. 開闢誌가 발행 금지된 후로 푸로派의 文士들은 日刊新聞의 문예란에 의하야스나 그것도 버릴 수 업섯든 것이나 그리고 최후의 堅壘인 新誌 「朝鮮之光」도 지금 (略-원문) 거세되여잇다. 계속 발행도 不能狀態갓다.
푸로文藝聯盟 캅푸詩人同盟 등(譯者註―이 두 가지는 「朝鮮」푸로藝術同盟의 착오이다-원문)이 잇스나 푸로文學은 그리 큰 문학적 수확(主義的 收獲은 잇섯는지 몰으나)이 업시 정체 상태에 잇다. 그러나 이 정체는 반다시 檢閱의 XXX뿐이라고는 할 수 업다. 작가 자신의 역량과 노력과 또 그들이 把持하고 잇는 문학이론의 너무나 狹溢한 目的論的이 잇는 대도 책임이 잇다얀 하야서 안 된다. 이것은 저 日本의 푸로文學에 잇서서도 갓흘 것이다. 朝鮮 푸로文學運動은 「文藝戰線」 「戰旗」 〈17〉 등의 一分派에 불과함으로―
그러나 푸로文學運動이 朝鮮의 문학에 밧친 공헌 그 자극 그 이데오로기-의 영향은 불멸일 것이다. 금후의 문학은 어느 의미에 잇서서는 푸로文學의 이론 瀘過器를 透하야 조성될 것이다. 이 의미에 잇서서 朝鮮의 푸로文學은 벌서 그 역할을 遂成하얏다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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却銳 限한 紙數도 벌서 다 되엿다. 朝鮮文學 全體에 대하야 개론적 약간의 고찰을 하고 이 稿를 맛치기로 하자. 그것은 혹은 조선문학의 금후의 경향에 대하야의 다소 암시를 포함하얏는지도 몰은다.
대체 朝鮮民族은 적어도 금일의 상태로는 문학에 그다지 관심을 갓게 못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에게는 문학이나 예술 등은 잇서도 업서도 조흔 정도의 것으로 그것이 생활의 필수 조건으로는 되지 안엇다. 가장 문학을 조와 할 청년학생들까지 문학이나 예술에 대하야 그다지 요구를 갓지 안은 것 갓다. 하물며 現 사회 각 부문의 지도자 계급에서 서 잇는 40세 이상의 사람에게는 문학은 일종의 유해한 사치품에 불과하다.
문자의 나라라는 朝鮮에 잇서 이만큼이나 문학에 냉담하다고 하는 것은 좀 이상한 늣김을 늣길 것이로대 그것에는 이유가 잇다.
제일 鮮人은 이 30년래 평안히 문학이나 예술을 맛볼 만한 그러한 여유를 갓치 못하얏섯다. 그들은 그들의 민족적 운명의 급격한 운명에 대하야 너무나 정치적 관심에 몰두하지 안으면 안 되엿다. 원래 朝鮮人은 정치적이라고 하나 그러치 못하고 그러한 환경에 잇게 된 그들노써는 깁흔 정치적 관심을 갓흔 것은 당연 지극한 것이다.
이러한 상태임으로 志士的 氣魂을 가진 인사들에 대하야서는 문학갓흔 것은 閑人의 일이나 無聊를 慰하기 위한 餘技 末技다. 그럼으로 아직 문예를 가지고 終身의 業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업다. 문학은 일종의 손쉬은 부업에 불과하다.
다음에 朝鮮人의 생활의 경제적 궁핍은 해를 따러 날을 따러 궁핍하야 진다.
문학이나 藝術를 조와할 마음의 여유도 또는 경제적 여유도 업다. 잡지 一冊 소설 一冊도 살 돈이 업스며 살 힘이 나지도 안는다. 이러한 상태임으로 시인이나 〈 18 〉 文士가 如何히 작품을 지여도 살 사람이 업다. 그곳에 먹을 수 업게 된다. 살여며는 금융조합 面所의 서기라도 되여 20원 30원의 월급이라도 밧어야 한다.
제삼에 朝鮮의 檢閱制度이다. 이것은 朝鮮人이 되여 보면 참으로 상상도 안 된다. 금일 朝鮮人의 사상을 大分하면 민족주의자 XX주의자들노 논을 수 잇다. 가장 갓가운 근래에는 세계 사조인 파시씀에 자극되여 兩者를 합하얏다 할 民族社會主義갓흔 이데오로기―가 급속한 템포로 구성되여 잇스나 이것을 합하면 3종이다. 그럼으로 작가가 가장 흥미를 갓고 대중이 가장 기대하고 잇는 것은 이 3種者의 이데오로기―에 오는 (中略-원문) 완전히 라부―되여 잇다. 작가는 엇더 興을 어더 펜을 들어 원고지에 향하면 첫재 낫하나는 것은 (中略-원문) 잇는 것은 아니다. 한 感作家에게 대하야는 펜과 원고의 잇는 곳 어느 곳에서든지 그의 (略-원문)을 늣긴다. 그곳에서 제일의 감흥도 제이의 감흥도 사라저 버리고 (略-원문) 테-마를 차저 맛치 간판쟁이가 그 주인의 마음에 맛도록 意匠을 하드시 (略-원문) 筆法으로 쓰지 안으면 안 된다. 금일의 朝鮮人이 쓴 문학은 이리하야 된 것이다.
또 최후에 新文學의 역사의 짤른 것도 타부문의 문화 특히 교육의 보급되지 아는 것도 또한 인재가 나오지 안는 것도 이유는 된다. 어느 편이든지 朝鮮의 금일은 문학에 잇서서 복이 업는 것은 사실이다.
然이나 朝鮮文學의 장래은 엇더한 것인가. 그것은 민족주의적일 것이다. 혹 더 적실히 민족사회주의적일 것이다. 그것은 朝鮮人 고유의 인도주의 사상를 加한 더―그 민족성인 도피적 낙천주의나 절망적 애조 속에 불교식 달관의 미소를 석근 것이다. 밝는 날의 力과 光榮에 대한 동경과 도피적 절망적 달관 애조와 미소. 이것은 一見 인콘파디뿔 갓흐나 이것들을 합한 것이 실로 고금을 싸고 돈 朝鮮文學의 특징이다. 그것은 오래 동안의 역사―민족적 생활 과정의 영향인지 몰은다.

附記 朝鮮文學에 대한 필자 자신의 역할은 일체 쓰지 안키로 하얏다. 그것이 바른 줄을 알기 때문이다.〈19〉
〈12-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