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 語學

文人의 出世作

이강기 2015. 10. 1. 18:07
잡지명 삼천리 제5권 제9호
호수 제5권 제9호
발행년월일 1933-09-01
기사제목 文人의 出世作
필자
기사형태 회고·수기

春園의 無情
春園의 출세작은 「無情」이다. 每日申報에 1년 반을 남어두고 連載하엿는데 그때 세상에서는 이 소설을 「하엿다」소설이라 하엿다.
그 뜻은 쎈텐스 속에 엇더케도 하엿다 하는 끈는 말이 만흔지 아마 한 줄 속에 두 개 세 개는 하엿다가 의레히 들어갓섯다, 이것이 一世의 환영을 바더 春園은 신문사에서 원고료로 매월 3원씩 밧어서 學資에 보태여 쓰게까지 되엿슴은 물론이다.
그 뒤
崔六堂의 新聞館에서 이것을 단행본으로 출판하엿는데 오늘까지 六版, 총 발매 부수 2만 부는 넘엇다하니 한 책에 1圓 80錢 정가대로 치면 실로 3만 6천圓의 販賣高를 보인세음써 남자의 快事業이라 할진저.

想涉의 標本室의 개고리
想涉은 「標本室의 개고리」를 내어노코 自然主義派의 거장으로 첫거름을 옴겻다. 차듸찬 묘사, 예리한 관찰〈14〉 - 마치 생물학자가 죽은 개고리를 標本臺에 올려노코 해부하는 듯한 그 筆觸에 감상과 인도주의에 저저오든 당시 문단은 실로 「ひやリよ」하엿다.
그는 계속하여 「萬歲前」을 발표하엿다. 제목을 보아서는 정치의식을 고조하는 아지小說 갓지만 氏는 여기에서도 오직 묵묵히 칼을 들고 해부하고 그래서 汁이 멧 구람, 피가 멧 구람 하는 식으로 「자연물」을 분석하고 검토하는 태도를 버리지 안엇다.
아마
春園이나 다른 작가가 이 「萬歲前」이란 제목을 料理하엿더라면 씰렐의 「윌리암, 텔」가튼 作이 되엿슬 것을 想涉의 길은 전허 달럿다.
「標本室의 개고리」! 이 作은 지금도 여러사람의 기억에 남어잇는 작품이다.

曙海의 脫出記
죽은
曙海는 朝鮮文壇에 발표한, 「脫出記」가 出世作이 되엿다, 「脫出記」의 가치를 처음 발견하고 그를 문단에 極力推?한 이에 春園이 잇섯다.
언제든지 名評論家를 짝하지 못한〈15〉 작가는 불과하다 할 것이다. 이 점에서 曙海는 행복하엿다, 그는 문단 10년의 전반에
春園이 잇섯고 후반에는 八峰이 잇섯다.

林和의 옵바와 火爐
林和氏는 문예잡지「朝鮮文藝」에든가 옵바와 火爐란 1作을 내고 푸로레타리아 시인으로서의 지반을 확립하엿다, 이 시의 진가를 발견하여 준 이는 당시의 名評論家 金基鎭氏엿다.
「옵바와 火爐」는 그 詩形의 참신한 점에 첫재 그 때 詩壇의 경이를 삿고 둘재 詩想의 진취적 태도에 평론가의 지지를 삿다.
그 뒤에 나은 「요꼬하마의 색시」라든가 등등 「옵바와 火爐」와 가튼 傾向詩를 만히 썻지만 氏의 출세작인 「옵바와 火爐」에 따른 것이 업섯다 함은 定評이다.

素月의 금잔듸
素月
「잔듸 잔듸 금잔듸...」하는 연연하고 부드러운 調로 쓴 「금잔듸」란 민요가 出世作이 되엿다. - 그 당시 이 작품은 開闢에 발표되엿든 것이다.
어잿든 이 민요는 퍽 아름답고 佳麗하엿다, 그때 만흔 젊은이들은 휘파람에 마처 「금잔듸」를 불넛다,〈16〉 그리고 문예평론가의 引例에도 만히 씨엿다.
素月은 그 아름다운 민요의 붓을 노은지 여러 해가 된다, 애석하여하는 소리가 處處에서 들닌다.

懷月의 산양개
朴英熙 氏는 작가로보다 평론가로 이름이 놉다, 그러치만 그가 評筆을 든 것은 후반기의 일이고 그전에는 창작의 붓을 전혀 들엇든 때가 잇섯다.
처음은 뽀-드렐類의 哀想的 戀愛詩로부터 소설에 드러와 그것이 佛蘭西의 「파스큐라」문예사상이 조선에 드러옴에 미처 氏는 轉身하여 푸로레타리아 문예운동으로 躍進하엿다, 그때의 代表作이자 出世作으로 이 「산양개」가 잇섯다.
소재대로 내버린 듯한 生硬한 필법, 선이 굵은 구상, 당시 物論이 만엇스나 氏에 잇서 出世作됨에 틀님은 업섯다.

메-텔링의 마레-누姬
조선 것은 次號에 다시 계속하기로 하고 이제는 西洋文豪들이 出世作 내든 이약이를 하리라.
「파랑새」란 유명한 희곡의 작자 白耳義 「메-텔링」의 처음 出世作은 희곡「마레-누姬」엿다, 이 作이 나올 때로 말하면 自然主義가 全歐羅巴를 風靡할 때이니 이러케 신비스럽고 唯心的作品이 얼는 이해 밧엇슬 수 업섯다, 〈17〉 文壇은 메-텔링을 笑殺하려들 때 「릴보-」란 유명한 評家의 지지를 밧어 後日 「파랑새」까지 나케 되엿다.

모-팟상의 곱덩어리
「女子의 一生」等으로 朝鮮文壇에도 그 일름이 만히 알려진 불란서의 모-팟상의 출세작은 「곱덩어리」(1880년)이란 단편이엿다. 그때까지의 모-팟상으로 말하면 깨든지 자든지 詩를 썻다, 그 詩도 例의 모-팟상 流로 너무 노골스러워서 風俗壤亂에 들것이 만엇다, 그래서 詩歌는 환영을 밧지 못하엿다, 그리다가 엄격한 「후로-벨」의 薰陶를 밧고 이을내어 그는 文壇에 태양과 갓치 화려 찬란하게 출세하엿든 것이다.

합트맨의 카테리-나
「해뜨기 前」의 作者인 유명한 합트맨은 문학청년시대를 노-ㄹ웨이의 조고마한 거리에서 藥局生으로 보내엇는데 처음은 시를 썻다. 꼿과 별을 노래하는 서정시인으로 잇다가 사회적 큰 충동을 밧고 붓을 드러 희곡「카데리이나」(로-마 공화정말기의 反叛者를 주인공으로 한 작품)을 썻다, 썻지만 一無名의 극작가를 도라보아 주는 것이 업서 그는 그 가난한 속에서도 그를 自費出版하엿다.
이러케 文豪마다 出世作을 낼 때의 모양은 흔히 비참하얏섯다.〈18〉
〈14-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