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 語學

緊急討議 朝鮮文壇에 파시즘文學이 서지겟는가

이강기 2015. 10. 1. 18:16
잡지명 삼천리 제8권 제6호
호수 제8권 제6호
발행년월일 1936-06-01
기사제목 緊急討議 朝鮮文壇에 파시즘文學이 서지겟는가
필자
기사형태 설문

張赫宙 金岸曙 白鐵 金珖燮 李甲基 李鍾洙 閔丙徽 安含光 李北鴻 洪曉民 李石薰 盧春城

1. 우리 文壇에 파시즘文學이 서질까요.
2. 우리 文壇에서는 파시즘文學을 엇데케 規定지으리까.
3. 파시즘文學은 文學의 한 主流로써 肯定될 것일가?

파시즘 文學은 存在할 수 없다

張赫宙
1. 파시즘文學(?)은 조선에선 도저히 發生하지도 않거니와 無論 成長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2. 3. 文學이 아니라고 보는 以上 規定도 할 수 없겟고 主流로는 더구나 肯定 못할 일입니다. <242>

나는 내 조와하는 콧노래나

金岸曙
나의 사는 周圍는 그야말로 굉장한 十人十色이다. 뒷집에서는 염소를, 압집에서는 도야지를, 엽집에서는 닭을, 건넌집에서는 개를 그러고 나의 집에서는 비듥이를 치니, 가튼 것을 치는 집이라고는 하나도 업는 것이외다.
그리하야 고단한 나의 집이 이른 아츰에 첫눈을 뜨게 되면 실로 놀내지 아니할 수가 업스니, 염소는 애행, 도야지는 꿀꿀, 닭은 꼬꼬, 개는 컹컹, 비듥기는 구구....이것을 무엇이라 形容할지, 나로서도 알 수 업거니와, 如何間 그 가지各色의 五重合奏에 놀내지 아니할 수가 업는 것이외다. 그러나 나는 이것에 대하야 나의 感情을 表할 수가 없슴니다. 웨 그런고하니 내가 죠와하는 그 소리만이 잇슬 것이 아니요, 실혀한다고 실허하는 그것이 자최를 감초지 아니하는 以上, 나의 감정은 한갓되이 그 自身으로 몸부림 할 수 밧게 업기 때문이외다.
모도 다 그 自身으로서 그 自身의 固有한 소리를 내이는 것이라면 모도 다 니른바 存在理由를 가진 것이니 생각하면 貴엽다 할만한 것이외다. 나의 存在를 다시 업시 깃브고 즐거운 것이라 한다면 남의 存在에 대하야서도 또한 그만한 存在理由로의 가치는 認定해야 올흔 줄 압니다.
그런지라 나는 귀찬타는 생각을 꿀덕 삼켜버리고 나는 나로서 나의 할 모든 일을 하고맘니다. 그런데 말이외다. 만일 그들의 소리가 참된 제소리가 아니고 잠간 농안 남의 소리를 숭내내인 것이라 하면 나는 그것을 어듸까지든지 실허하고 밉어하지 아니할 수가 업스니, 이에서는 所謂 存在理由를 發見할 수가 업기 때문이외다.
아니 파시즘文學觀을 이야기하라는데, 이건 무슨 뚱단지냐고 老兄은 나를 책망하리다, 만은 나는 이것으로써 나의 생각을 表明한 줄 압니다. 자 그러면 나는 저 봄바람이 춤을 추는 들로 나아가서 나의 죠와하는 흥어리나 혼자 하겟습니다.
3월 10일 정오

파시즘은 文學의 主流가 아니다

白鐵<243>
3. 파시즘文學은 文學主流로서 肯定할까?
貴問에 대하야 나는 順序를 밧구어 第3붙어 對答하려고 합니다. 이것은 무슨 貴問이 이 問題의 性質과 順序를 逆倒햇다는 意味가 아니라 순전히 내 個人의 對答을 위한 便宜 때문입니다.
파시즘文學은 문학주류로써 긍정할가? 라는 貴問에 대하야는 「파시즘은 문학의 주류가 될 수 없다!」고 명백히 대답하렵니다.
물론 문학의 主流가 政治的 現象에 同伴되여 誘導되는 境遇는 往往히 目見하는 바입니다! 그럼으로 과거의 프로文學과 같이 너무 모든 文學現象을 일일히 政治에 歸屬식히지 않는 以上 文學의 主流를 一定한 政治的 現象과 關聯식혀서 理解하는 것이 便宜할 때가 만슴니다. 하나 가사 文學主流가 政治的 方向에 同伴된다고 하야도 그 政治的 方向이 進步的인 境遇에만 그러합니다. 하나 이 파시즘은 어떠케 理解하야도 歷史的으로 逆行者라는 것이 明白한 것입이다.
貴社에서 指摘하는 바와 같이 今日에 있어 一部的으로 파시즘文學이라는 것이 流行된다고 하야도 그것이 순전한 그 政治的 獨裁者에 대한 奴隸文學에 不過한 것입니다. 人間의 聖嚴한 精神을 代表하는 文學의 主流가 히틀러와 같은 野蠻人의 奴隸일 수는 없음니다.
그것을 좀 더 的確히 硏究하면 나는 一定한 文學的 이즘이 무슨 政治的 이즘에 의하야 代稱되여서는 不可하다고 생각합니다. 과거의 文學者들이 賢明히 指摘하고 있는 바와 같이 文學의 流潮에는 根本的으로 두 가지 型 卽 리앨리즘과 로맨티시즘의 어느 하나에 屬하는 것밖에는 없다고 보혀집니다. 勿論, 그 리앨리즘과 로맨티시즘은 時代에 따라서 그 色調와 內容을 現實的으로 달니하야 나타나는 것이나 그 根本의 傾向에 잇어는 변하지 안는 것일 것입니다. 그러기에 文學의 主流에는 언제나 이 두 가지 傾向의 하나를 취하는 데서 그 主流의 방향과 名稱까지라도 決定할 것이라고 봅니다. 또한 그 意味에서 文學主流의 名稱은 파시즘이니, 콤뮤니즘이니 하는 政治的 이즘에 의하야 그것을 부를 것이 아니라 時代에 反復되는데 따라서 第1 로맨티시즘 第2, 第3, 로맨티시즘, 等類과 같이 부르든가 혹은 19世紀 로맨티시즘, 20世紀 로맨티시즘 等類로 부르든가 그러치 않고 그 때의 現實的 意義를 具體的으로 附加하기 위하야 一定한 政治的 이즘을 冠辭로 附加하랴면 요즘에 流行되고 있는 바와 같이 社會主義的, 乃至 OO的아래, 반듯이 리앨리즘 혹은 로맨티시즘을 附加하야<244> 불너야 할 것입니다. 그런 意味에서 과거에 漠然히 共産主義文學, 프로레타리아文學이라고 할 때에 그 限에서는 나는 그것을 文學主流로 認定치 아느며 또한 그 意味에서 파시즘文學이라는 變態的 문학을 文學主流로서는 全然否認합니다.
1. 파시즘 文學은 朝鮮같은 데서도 成長될까?
파시즘文學을 文學主流로서 容認하지 아는 以上 그것이 朝鮮에서 成長與否를 問題삼고 싶지 않으나 本來 朝鮮에서 이 파시즘文學을 指摘한 것은 누구도 아니고 내 自身이엇는 까닭에 不得已 여기서도 一定한 責任을 지지아늘 수 없게 되엿음니다. 그 때 某 紙座談會 席上에서 이 파시즘文學의 傾向에 대하야 주로
鄭寅燮氏와 나 사이에 朝鮮에서는 파시즘文學이 可能하다느니 不可能하다느니 論爭한 일이 있엇는데 鄭氏는 파시즘文學을 政治的 獨裁權力이 樹立된 곳에서만 發生되는 것이라고 主張하는데 대하야 나는 現代와 같은 時期에는 本國의 그 獨裁勸力과 XX地의 土着부르조아지와는 必然的으로 結托하는 까닭에 萬一 東京에 直本一派의 파시즘文學이 成立된다면 朝鮮에도 그것과 結托하는 一定한 파시즘文學이 成長된다는 것을 指摘하얏다고 記憶됩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 때의 論爭은 文學問題에 대한 論爭보다는 政治問題에 대한 論爭이엇으나 그 當時에는 當然한 文學論이엇음니다. 그 政治問題에 대한 論爭에 한하면 결코 나의 主張이 誤謬이 아닐 뿐 아니라 今日에 와서는 確實히 나의 主張이 豫言的이엇다는 것을 證明하는 現實까지가 있음니다. 하나 그럼에도 不拘하고 나는 朝鮮에서 그 파시즘文學의 성장을 부인하렵니다. 따라서 파시즘문학의 否認은 그것이 朝鮮現實에서는 不可能하다는 意味에서 보다는 根本으로 그것을 文學主流로 볼 수 없는 까닭이며 다음으로는 政治現象에는 반듯이 一定한 文學主流가 그데로 同伴된다는 過去의 機械的 見解를 스스로 否認하려는 데서입니다.
2. 우리 문단은 파시즘文學을 어떠케 規定지을가?
이 問에 대하야는 以上에서 間接으로 對答하얏다고 생각하기에 여기서는 略하려고 합니다. (以上)

파시즘文學은 政治文學

金珖燮
1. 파시즘文學은 政治的 綱領에 依屬된 말하자면 政治文學 <245>이라고 할 수 잇습니다. 그러므로 朝鮮같은 데서는 成立될 수가 업습니다. 或時 된다면 民族主義文學의 强化에로 나아갈 수는 잇겟지요.
2. 「파시즘이란 政治上 이데오로기의 內容이요 결코 文學上 그것은 안니다. 文學은 물론 思想이나 觀念을 가지지 안을 수 업스나, 獨裁意識으로써 專制되는 데서는 文學은 自立性을 喪失하게 됨니다. 더군다나 파시즘文學이란 그것이 極端의 民族的 國家主義의 表現인 만큼, 우리로서는 여기에 人類의 精神的 發展에의 逆行을 認定치 안을 수 업슬 것 갓슴니다.
3. 파시즘文學은 물론 文學上 主流를 차지할 수 잇슴니다. 그것은 現在 獨乙에서 그러하고 當分間 世界의 列强에서 그것이 隱然히 움직이게 될 것임니다.
附-파시즘文學이란 그 形態로 보아서는 過去의 소비에트文學도 그러하나 여기서는 주로 獨乙의 그것을 意味하는 그 範圍에서 말한 것임니다.

우리는 이렇게 規定지운다

李甲基
1과 2, 朝鮮에도 물론 파시즘文學이 成立될 수 잇다고 봅니다. 그것이 얼마마큼이나 成長할는지는 問題外로 하고,
파시즘이란 말은 퍽 多義性을 가진 말인 것 갓읍니다. 在來로는 뭇소리니-의 獨裁에서 固有한 뜻을 가젓든 것이 一般化하야 近代 獨裁政治와 그 思想에 대하야 通用될 수 잇는 普通名詞로서의 地位를 獲得한 것 갓읍니다.
萬一 파시즘이란 것을 이러케 規定하야 파시즘文學이란 것을 본다면 파시즘獨裁 그것이 極端의 統制主義로서 文化的 領域에까지 한 개의 統制的 文化政策을 가지는 만큼 이러한 政策과 그 世界觀에 의하야 制作되고 統制되고 또는 文化的으로 이 政策을 支持하는 文學으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럿타면 朝鮮 말은 이러한 文學을 가질 수 없는 것은 一目瞭然한 일이겟습니다.
그러나 내가 朝鮮文學에서 파시즘的 傾向이 擡頭할 可能性이 잇다는 것은 파시즘이란 말이 더욱이 一般化된 意味 卽 「컴뭇니즘」의 「인터내슈넬이즘」에 대하야 「파시즘」을 그 根本特徵의 하나인 國家主義 또는 民族的 排他主義라는 뜻에서 파시즘文學이란 것을 規定하는<246> 데서 말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意味라면 直木三十五와 갓치 往時에 「나는 파시즘文學를 한다」는 「通電」을 발하지 안엇다 뿐이지 이땅의 文學에도 파시즘的 傾向의 문학이 없엇다고는 볼 수 없겟습니다. 또 今後도 充分히 發生할 可能이 잇따고 봄니다.
3. 在來의 文藝評論家야 엇젯든 나로서는 文學의 傾向을 두 개의 다른 意味에 分類코저 합니다.
첫제로는 한 개의 作家의 世界觀에서 날아나는 傾向은 그 作品의 이데오로기-的 形態를 決定하는 것이며 둘제로 그 作家의 個性的 特殊性과 藝術的 信念은 한 개의 所謂 文學流派를 낱아낸다고 봅니다.
이 두 개의 契機 즉 世界觀과 藝術的 信念이란 것은 물론 分離하여서 생각할 수 없읍니다. 하나 ABCDE라는 다섯 개의 車輪에서 A의 原動이 B에 전하고 그 전한 힘이 다시 C에 전하고하야 結局 E라는 車輪에 도라간다고 하야 E車輪을 A에게다 直接 갓다드러 박아 노앗자 그 機構的 作用을 이루지 못할 것 갓습니다. 그러한 物理學的 原則이 亦是 社會學에서도 通用될 수 잇다고 봅니다. 在來로 左翼文藝批評家들과 같이 社會의 上部構造가 經濟的 機構의 如何에서 左右된다는 唯物史觀을 素朴하게 適用하야 무엇이든지 그 中間의 微妙한 關係에 留念치 안코 E車輪을 A車輪에 직접 갓다부치려는, 一元論의 病的 主張에는 결함이 잇슬 것 갓습니다. 요컨데 한 개의 作家의 世界觀과 藝術的 信念도 根本的으로 물론 한 개의 必然的인 聯關關係가 잇겟스나 그 中間의 複雜한 依存關係와 그 性格에 비추어 現象的으로 볼 때는 역시 다르게 보아야 될 것 갓습니다.
맑쓰主義文學이 언제든지 뿌루죠아文學側에서 自己들의 文學을 流派視할 때는 「푸로레타리아文學는 流派가 아니다」고 主張하여 온 것은 結局 無意識중에 그들이 文學에 낱아나는 世界觀의 問題와 個個 作家의 信念에 낱아나는 流派와를 달이 取扱한 것을 證明하는 것이 아닐까요. 말하자면 이 곳에 一種의 自己撞着이란 것이 잇슬 것 갓습니다. 그럼으로 나로서 보건데 파시즘이 한 개의 世界觀이란 뜻에서 파시즘文學이란 것을 完全히 한 개의 文學의 思想的 流派를 形成할 수 잇다고 봅니다. 푸로레타리아文學도 역시 이러한 意味에서 그것이 思想的 流派라는 데서는 反對할 길이 없을 것 갓습니다. 물론 流派란 것의 分類方法에 의하야 파시즘文學이 流派가 되느냐 안되느냐가 決定되는 것이니 流派를 一般的으로 理解되는 것과 갓치 浪漫主義라든지 古典主義라든지<247> 또는 레아리즘이라든지 하는 藝術的 意味에서 말한다면 「푸로레타리아 文學은 流派 아니다」라는 同樣의 뜻으로 파시즘문학도 流派가 아니다 라는 주장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流派란 것의 規定如何에서 파시즘文學이 流派가 되고 안되는 것이 決定한다고 봅니다.
(貴問에서 「主流」라고 하엿습니다마는 나는 그 뜻을 「流派」를 뜻하는 것으로 보아서 이약이를 드렷습니다)

時代思潮의 表現

李鍾洙
貴設問에 충분히 답하자면, 먼저 파시즘文學의 本質을 究明할 필요가 잇지마는 略합니다. 물으심에 간단히 답하고 免責하고저 합니다.
1. 파시즘文學은 朝鮮에도 그 傾向이 消極的으로는 나타날 수 잇으나 繁榮하리라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지금은 朝鮮에 파시즘文學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2. 設問의 뜻을 잘 모르겟습니다. 우리 文壇이라고 現下 各國의 파시즘文學規定을 벗어나리라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파시즘이 帝國主義의 積極的 表現이라면 파시즘文學은 역시 그러한 文學이겟지오.
3. 朝鮮에서는 파시즘문학이 주류되리라고는 지금 想像할 수 없습니다.

非常時의 産物

閔丙徽
1. 絶對로 不可能하다고 보고 있음니다. OO的 OO가 없는 곧에 파시즘文學이 있을 리가 잇슴니까.
2. 물론 非常時的OO期에 있어서 絶對OO的인 겄으로 보게 되지요.
3. X에 있어서는 必然히 世界的으로 그겄이 要求되는 政治的 OO가 잇겟지만 文學主流로는 볼 수 없음니다.」

멫 마듸의 簡單한 對答

安含光
우리가 여기에서 特定된 한 개의 文學, 假令 現今 朝鮮의 불죠아文學을 가지고 이야기 한다할지라도, 그는 다른<248> 모-든 意識形態와도 같이, 그의 運命은 그가 依存하는 바 곳 階級의 運命과도 같은 것이어서, 그들이 封建的 觀念形態에 대한 批判者로서 登場하엿든 時代에 잇서서는 그는 確實히 한 개의 進步的 任務를 遂行하여와섯다. 이는 그 어느 나라 文學史에 잇서서도 容易히 發見할 수 잇는 儼然한 사실이다.
그러나 임이 불죠아지-가 계급으로서의 진보성을 XX하고 그의 對立物로 變質된 現今과 같은 時期에 이서서는 그들의 文學的 實踐도 客觀的으로는 불죠아지-의 X動的 支配의 一武器로서 轉化되게 되엿다는 것도 또한 明確한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가 여기서 注意하지 안어서는 아니될 것은, 筆者의 이러한 말은, 결코 朝鮮에 이서서 불죠아作家라고 불니워지는 作家 全部가 意識的으로 불죠아지-의 文學的 衛兵될 것을 自己 스사로 誓約하고 잇다돈가, 또는 그들의 心理이데오르기- 構造가 머리(頭)에서 발(足) 끗까지 純粹한 불죠아的 情神에 의하야 充滿되얏다든가를 意味하지는 않는다.
問題는 애당초 붙어 이러한 作家의 主觀的 意圖라든가 「純粹한 불죠아性」에 잇는 것이 아니라 客觀的 現實로서의 그들 自身의 階級적 필요의 要請으로 歸着되지 않을 수 업는 것이다.
이 곧에서 우리는 『파시즘文學은 朝鮮같은 데서도 成長될가?』하는 設問을 앞에 놓고 生覺하여 보자! 이 무름은 결코 作家的 良心(좀 漠然한 表現이기는 하나)에 대한 呼訴의 意味로서가 아니라, 파시즘文學의 朝鮮에 잇서서의 社會的 可能性 如否를 뭇고 잇는 것임은 물론일게다.
나는 이곧에서, 그것이 다른 나라의 文學的 事情에 비하야 濃淡의 差는 있을지언정, 朝鮮에 잇서서도 그의 成長的인 可能性이 充分히 存在하다는 것을 確信한다.
그는 不絶히 錯綜되는 諸種思想의 行進에서, 唯獨 朝鮮만이 그와의 不可侵條約을 締結할 何等의 特殊的 條件도 가지고 잇지는 못하다는 極히 一般的인 意味에서 뿐만이 아니라, 좀 더 具體的으로는, 資本主義의 一般的 X機에 잇서서의 産物인 이 파시즘은, 朝鮮이라는 이 따 우에 잇서서도 벌서 한 개의 單純한 理論上의 問題로서가 아니라, 正히 現實生活에로 侵透되면서 잇는바, 한 개의 산(生) 事實이라는 점에서 보담 雄*的으로 설명되여진다.
더욱이 자나깨나 藝術의 善良한 部隊로 自處하는 比較的 젊은 表까지가, 昨今의 文學的 活動에 잇서서, 그들의 「自由에 대한 戀心」이라는 것이 究極 페낭데스 조치를<249> 敬遠히 할 程度의, 또는 그런 種類의 範疇를 넘지 못하는 것이라는 것을, 白日下에 自己暴露하지 않엇든가!
然而 파시즘文學의 規定은, 獨占資本主義의 高度한 發達과 相俟하야 보담 强化되는 反풀레타리아 運動과 資本主義의 보담 集權的인 擁護라는 本質的에서 그의 理論的은 닷줄을 구하지 않어서는 아니될 것이며, 이 파시즘文學은 國際的 意味에서는 벌서 한 개의 文學的 主流로 이루면서 잇다는 것을 否定할 수는 업다.

胎兒의 命名은 時機尙早가 아닐가

李北鳴
文學이란 것은 어느 나라 어느 時代를 勿論하고 그 나라 그 時代의 雰圍氣와 必然的 社會情勢를 토대삼어 가지고 성장할 것이라 밋슴니다. 한 사회가 必然的 情勢에 까지 到達하랴면 거게에는 正當한 理論的 根據가 잇서야 하겟고 여러가지의 고비가 잇서야 할 것임니다. 文學도 역시 그와 平行線的으로 理論과 鬪爭의 戰野를 通過하고야 비로소 새 行動의 曠野를 開拓할 것임니다.
現下 朝鮮社會를 瞥見한다면 아직은 政治的 形態로라든지 客觀的 情勢에 비추어 보아 파시즘 文學運動은 文學前夜의 文學運動으로 박게 볼 수 업슴니다. 그러나 압날에 잇서서는 파시즘文學運動이 문단 일부에서 대두할 것만은 밋어짐니다. 그 時間까지 말하기는 어럽슴니다만.
民主主義的 外殼을 脫皮한 뿌쪼아-獨裁形式을 취하는 國家-例를 들면 伊太利갓흔 나라-에서는 파시즙文學은 一見, 國民文學 갓흔 感을 가지고 胚胎되며 成長할 수 잇지오만 아직 우리 朝鮮社會는 그런 필연적 사회정세에까지 도달하엿다고는 보기 어럽슴니다.
東京문단에는 파시즘文學의 旗幟를 놉히 들고 나선 작가가 잇지만은 그들 作家가 呼吸하고 잇는 雰圍氣가 그들의 活動을 旺盛하게 하여 주리만치 그러케 理論的으로나 政治的으로 必然的 코-스가 決定되지 못하엿다고 봄니다.
急을 告하는 社會情勢를 보면 압흐로 朝鮮文壇에서도 파시즘文學이 論議는 되겟지만 只今까지는 그 存在를 차저내기가 어럽슴니다.
萬若 今後부터 파시즘文學이 朝鮮文壇에서 論議된다고 하드라도 筆者의 生覺에는 극히 少部分의 評家와 文人들 박게 이 陣營에 參加하지 안흐리라고 生覺함니다. 따라 파시즘文學을 朝鮮文壇의 主流로서 認定할 수는<250> 업슬 것임니다. 파시즘文學이란 우리 文壇에서도 全然 未知數의 文學이니까.
何如튼 今後 어느 時機에 가서는 이 파시즘文學이 朝鮮文壇에 是非를 일으킬 날이 잇겟지만 微力的 一時的 存在일 것이오. 그러니까 지금 파시즘文學이라는 胎兒에게 이 일홈 저 일홈 부처가지고 命名式을 擧行한다는 것은 좀 더 기대려야 할 일이 아닐가고 生覺함니다. (끗)

文學의 滅亡的 毒素

韓曉
貴問에 簡單히 答합니다.
원래 파시즘이라는 것은 金融뿌르죠아지-의 獨裁를 强化하는 한 개의 手段입니다.
그럼으로 文化의 領域에 잇서서의 파시즘은 뿌르죠아지-의 經濟的 政治的 利益을 代表하고 그의 必然的 結果로서 藝術의 歷史的 發展을 拒否함으로써 몃 世紀 전의 市民文學勃興期의 武*階級의 歷史的 逆行의 文學의 反動的 症狀을 그대로 反覆하게 되며 一方으로는 藝術을 『紙厘』에 隸屬식히는 것을 自己滿足의 最後의 對象으로 하려는 文學의 滅亡的 毒素입니다.
이러한 毒素가 朝鮮같은데서도 成長될 것인가함을 새삼스레 뭇는 貴問은 너무나 딱한 議案이 아닐 수 없습니다.
朝鮮이라는 곳의 오늘날 형편을 보면 단지 파시즘文學만이 아니라 그 이외의 왼갓 雜種文學的 魔術이 公公然하게 橫行되리라는 것은 너무나 常識化된 定理가 아닙니까!
따라서 우리 文壇이 파시즘文學을 如何히 規定지어야 할 것이냐 하는 問題도 역시 그 文學의 根本的 本質과 ?行되여 그것을 讚揚하는 派와 그것을 排擊하는 派와의 相互의 계급적 이해관계에서 규정될 것이고 또 그것을 문학주류로서 肯定할까? 하는 것도 結局은 相互의 利害關係에 따라서 그 肯定의 態度가 相異해질 것입니다.
그러나 貴問의 文學主流 云云의 提議는 지극히 理解하기 困難한 問題입니다. 都大體 文學의 主流라는 것을 어떠한 基準을 가지고 말하려는 것입니까!
혹시 昨年度에 東亞日報에다 파시즘文學은 獨伊의 國民文學이라는 千古未聞의 斷案을 내려 거룩한 論證的 批評家 某氏의 腰折腹痛할 ?叫와 같은 그러한 어리석은 妄發的 主流論은 아닐까요.
요컨대 問題는 파시즘文學이란 眞正한 意味에 잇서서의<251> 歷史的 任務를 負擔한 文學的 主流가 아니라는 것의 掘出解明에 잇다고 봄니다.
말하자면 파시즘이 文學의 滅亡的 毒素인 이상 그것를 文學主流로서 承認한다는 것은 文學의 滅亡을 意味할 것 이외의 아무것도 아닐 것입니다.
以上

아즉 遼遠한 問題

洪曉民
朝鮮文壇에서 파시즘文學이라는 것은 전혀 不可能한 그것이라고 나는 보고 싶다. 그는 웨냐하면 朝鮮文壇은 現階段에 잇어서 規定지을 바 文學은 反自由主義文學은 나올 수 없는 까닭이다.
朝鮮에서 所謂 民族主義를 가진 文藝思想이라는 것도 究竟 多分히 自由主義를 띄우고 잇고, 아울러 푸로레타리아文藝思想이라는 것도 역시 다분히 自由主義를 包藏하고 잇는 것이다.
이러한 곳에 『파시즘』文學이 成長될 수 없을 것이오, 또한 『파시즘』文學이라고 規定지울 수 없는 것이다. 일즉이 내가 『
九人會』를 가르처 『파시즘』으로 기우러 질 수 잇는 그것이라고 한 일이 잇엇는데 이는 내가 전혀 잘못 規定한 것이엇든 것이다. 얼른 생각하면 民族主義 文藝思想을 가진 一群의 文人이 『파시즘』을 鼓吹하면 될는지도 몰으나 그러케 될 수 없는 것이다. 『파시즘』文學이 될 수 잇다면 朝鮮이 現在보다 다른 時代인 그때라야 可能하리라고 생각한다. 그는 웨냐하면 階級 對 階級思想은 어느 곳에서 잇을 수 잇으나 『파시즘』은 먼저 政治形態를 要求하는 까닭이 좀 더 많음으로써이다. (끝)

파시즘文學은 反動文學

李石薰
1. 될 수 없다고 밋읍니다. (파시즘文學이란 것조차 었을 * 없다고 봄니다)
2. 存在를 假定하고, 그것은 反動文學으로 規定지어야 할 것입니다.
3. 肯定할 수 없읍니다. <252>

우리에겐 彼岸의 擧火와 같다

盧春城
파시즘文學을 文學으로 肯定할가를 몬저 檢討할 必要가 있다. 따라서 文學이란 무엇인가를 다시 遡究치 안으면 아니된다.
文學이란 무었인가? 「엘스타」의 말에 의하면 『文學은 人間生活의 再顯으로 가장 瀘化淨練된 生活圖이다』 하였다. 그리고 가장 進步的인 쏘베트文藝評論家 「에렌뿌룩」의 말에 의하면 「文學은 쫓은 生活의 人間圖로써 모든 喜悲哀樂을 담문 第二의 世界다』라고 말하였다. 이들의 말에 의하면 文學은 요컨데 人間生活의 縮圖이오 그 記錄이라는 말이다. 모든 人間이 現實의 事物에서 부더치고 느끼는 生活의 實在를 文字로 記入하는 것이 文學이라는 말이다.
여기서 우리는 人間生活을 떠난 文學이 世上에 없다는 겄을 생각할 수가 있다. 그 社會 그 民族에 파시즘思想이 充溢하고 또는 그에 대한 生活意識에 存在하는 한 파시즘 文學은 成立될 수가 있다. 自由主義文學이 있는 同時에 파시즘文學이 成立될 수가 있는 겄이다.
그러나 文學成立의 要素로써 英國의 윈체스타(Winchester)氏는 그의 名著 「文學原語」 중에
一. 情緖(Emotion)
一. 想像(Imagination)
一. 思想(Thought)
一. 形式(Form)
이 네가지 要素을 들었다. 이 네가지 要素가 綜合되여야 비로소 文學이 成立된다는 겄이다. 파시즘이 한 思想인 이상 거기 形式, 情緖, 想像을 부처 創作하면 훌늉이 文學으로 成立될 겄이다. 그러나 文學의 特質로써 前記 윈체스터」氏는
1. 永久的 興味(Permanent Interest)
2. 個性的
3. 普遍的
의 세가지 條件을 들었다. 文學의 永久的 價値는 以上 세가지 條件이 있어야 그 文學이 恒久的 存續을 가질 수 있고 따라서 참된 文學이라는 겄이다.
여기서 우리는 파시즘 人類의 永久的 興味를 끄는 겄이 안이고 또는 그 思想이 個性的이 안이며 넓이 人類를 包含하는 普遍性이 안이기 때문에 우리는 파시즘文學을 文學의 主流로 생각할 수가 없는<253> 겄이다. 파시즘文學은 文學主潮우에 波動하는 支流文學이오 恒久性을 가진 主流文學이 안이라고 斷定할 수가 있는 겄이다.
이런 意味에서 推察한다면 파시즘文學은 國家主義者들의 臨時道具文學이라고 規定할 수가 있다. 따라서 朝鮮文壇에는 存在할 수 없다. 朝鮮 사람 중에는 파시즘을 崇奉하는 사람이 아마 없을 듯하며(斷言키 難하나) 이 파시즘의 意識과 이 思想을 根底로 한 生活意圖가 없기 때문에 朝鮮文壇은 파시즘文學을 成長시킬 原野가 안인 듯하다. 現在가 그러하고 가까운 將來도 그러하다. 파시즘文學은 對岸의 擧火로 우리는 한갖 바라보는 겄이 올을 일이다.(끝) <257>
<242-253,2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