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 語學

「藝術」이냐「死」냐, 文士心境

이강기 2015. 10. 1. 18:19
잡지명 삼천리 제8권 제12호
호수 제8권 제12호
발행년월일 1936-12-01
기사제목 「藝術」이냐「死」냐, 文士心境
필자
기사형태 설문

父母妻子는 饑死할망정 先生?서는 藝術(文學, 音樂, 繪?)를 위하야 貧困(우리現象에 비추어 압흐로도 가난과病苦는 藝術家에게 不離할것이니?)과 싸우면서라도 一生을 바치겟다는 情熱과 覺悟가 잇사오니까

春園
나는 이미 「藝術」을 위하야 이몸을 바치기로 盟誓하였읍니다. 내가 과거 30년 동안 거러온 길도 이「藝術」을 위한 길이요, 앞으로 거러갈 길도 오직 이 한길밖에 없읍니다. 이미 이렇게 엄숙하고도 굳센 盟誓를 하고는 이상 내몸에 닥처오는 빈곤쯤에야 내거름을 멈출 까닭이 있사 오리까
나는 내마음가운데 한가지의 믿음을 가지고 있읍니다. 그것은 천재 基督이 그경전가운데 「空中에 나는 새를 보라. 심으시고 거두지도 아니한데 하늘이 길러주시니 너이들은 입을가 먹을가 근심말고 오직 의를 구하라 하신 말슴이 있읍니다. 자긔만 오른 길로, 의의 길로 거러간다면 생물인 이상 하늘은 그 입을 옷과 먹을 양식쯤은 던저주시줄 압니다. 이 믿음 밑에서 오직 내 정성과 내 재조를 다가고저 할 뿐이외다. 이 의욕과 정열은 내 목숨이 다하는 날까지 조금도 물너가지 않을 것을 믿습니다.〈192〉

廉尙섭
그토록 한 정열도 각오도 없읍니다. 원체 빈곤과 싸우지 않는 것은 아니나 純一히 예술을 위하야 싸우는 것이 아니라, 처째 살기위하야 싸우는 것입니다.

朴英熙
饑死할 정도에 무슨 예술이 있겠오. 사람의 정열이라는 것이 초자연의 힘은 아니요. 생명이 없데 무슨 창작이 있겠오. 정열 없이 엇지 예술이 있겠오.

金岸曙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맘이외다. 이 변하는 맘을 못잡아놓고서 이렀읍니다, 하는 것은 결국 그림자를 잡는 것이요, 물우에 뜬 달을 움킨 것에 지나지 아니하는 것이외다. 그런지라, 혼자로서 打診하는 나의 심경에는 적지 아니한 誤謬이 있을 것이외다. 웨 그런고하니, 감정이라는 것이 언제든지 같은 것이 아니기 때문이외다. 어떤 때에는 세상을 뚜다려 보고싶기도하고 어떤 적에는 어린양모양으로 純實하게 아모 願望도 미움도 없이 지내고싶기도하고 또 가다가는 자기로서 자기의 가슴을 쾅쾅 치고싶기도하고 때로는 꿈이런 듯 모든 것을 다 잊어버리고 싶기도 하니, 어느 것을 내 감정의 진정이라 할 것입니까. 그렇다고 이것들이 나의 감정의 진정한 한 조각인 이상, 나는 그것을 거즛이라고도 할 수는 없슴니다. 요새 나의 심경의 打診이 오진인 동시에 또한 진정 심경은 아니외다. 일즉 이러한 일이 있었다는 것에 지내지 않는 것이외다.
아무것에든지 깊은 신념을 가젔으면 그것을 위하야 전심신을 다하는 것이 옳은 일이외다. 그러나 이도 저도 할 수 없는 경우라 하면 자기의 제움¼ 좋와하는 예술과같치 하는 것이 좋겠으나, 그러나 결국으로 보면 부모처자가 죽을 지경이면 예술도 죽을 것이니, 두 가지가 다같이 없어지는 동시에 내 자신도 죽어지지 아니할 수 없는 일이외다. 그렇거든 씨우기는 무엇과 싸우며, 정열은 무엇에다 바칠 수가 있겠읍니까. 가난이라도 정도문제요, 부모처자가 굶어 죽을 지경이면 이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외다.

梁柱東
풀, 베들레인詩集 첫머리(Francois CoPPee)의 서문중 그가 不朽의 저작을 하기위하야 팡없은 날과〈193〉 잘곳없는 밤을 달게 받앗다는 일절이 있든 것을 기억합니다. 여기에 비로소 숭고한 예술가의 경지가 있는 줄을 짐작하겠으나 나는 아즉도 그러한 정열과 각오를 가지지 못하였으니 무릇 나의 예술은 부모처자 이상이라기보다 실로 처자에게도 부끄러운 재분의 소산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黃梅泉의 白雲臺詩 일구를 조끔 고처서 다음과 같이 불러 봅니다.
牙涯竟是人間客. 縱愛名文亦愛身.

崔貞熙
열정도 각도도 없서졌읍니다. 그래도 어느 때고 글로 내마음을 모조리 이야기하리라는 생각은 가지고 있읍니다. 하나 나는 아직 무척 어립니다. 그래서 내마음을 숨김없이 터러노키를 무서워합니다.

金恍燮
나는 일즉이 饑死할망정 예술의 道만을 직히고저 생각해본적은 업습니다. 하나 나의 마음속에 예술의 생명이 살고 있는 한까지는 그 표현을 위하야 정진코저 함니다.

全武吉
부모처자를 救할 다른 길로 나가면서 餘業으로 할 일

嚴興燮
있음니다.
있기에 지금까지 빈곤과 병고와 싸워감니다.
-첫재 예술의 길로 나가지 않으면 나에게는 더넓고 더밝고 탄탄한 깃이 없을 것 같은음니다―

閔丙徽
추억의 아름운꿈이 조용한 가을 달 밝은 밤에 젊은 날개를 펼 때면 엇전지 옛날의 예술가적정열이 식어가는듯도 싶어진다. 나 어린 시인이 문학적정역에 날을 밝이며 글을 읽고 앞날을 꿈꾸든 시절이 나의게는 있섯다.
그러나 그는 지난날의 문학청년시대!
오날의 한 개 젊은 인테리인 내 쓸쓸한 그림자를 종로네거리에서 발견할 때면 나도 모를 쓸쓸한 애수에 길다란 한숨을 내여뿜는 날이 한두 번이 아니다.
이곳은 반도! 이곳의 예술가의 그림자여 그 얼마나 열벗든고? 그러나 그것도 예술가로서 자기를〈194〉 보는 까닭이다.
明日의 食代가 없다. 그것도 잘 알고 있다. 「티룸」의 한편 의자에 앉어 그는 외로히 누구를 기다리는고? 홍차의 香薰을 맡으면서 원고써줄 동무를 기다리는 잡지편집兼문인! 稿料(변변치도 못한)를 어드러 터벅이며 잡지사나 신문사의 문을 두다리는 예술가! 이곳의 한 개의 비극이 아니면 무었이랴?
그들의 얼골은 「메랑코리」하다! 그들은 묘지를 찾는 미망인과 같은 얼골을 가지고 종로 네거리를 그래도 예술을 위해서 무엇인지 머릿속에 담어가지고 정신없이 것다가 「꼬, 스톱」 의 경종에 비로소! 자기를 찾는 때 만타!
그들은 빈곤하나 그들은 부모도 있고 처자도 있다! 그러나 그들의 고료는 그들의 수입은 늙은 부모의게 식료를 버테들일 아모럴 사히도 업섯거니와 젊고 어린 안해와 자식의 몸동아리에 한님의 의복도 입혀 보지 못했다. 아니 자긔몸이나 가려보앗스며 자기의 口腹이나 채워 보앗든고? 이곳에서 환멸을 느낀 몇몇 사람은 결국! 돈을 찾으려 하기는 했으나 찻지 못하고 예술을 버리지않엇다.
굶주리면서도 인생을 위하야 마터가지고있는 자기소임을 다하기위하야 예술을 바리지 않엇다. 이것이 정열이다. 가난과 싸호며 위대한 예술을 남겨 놓으려는 각오다.
전차가 끈허진 밤 자동차도 타지 못하고 달빛이 유란히 밝은 서울의 밤거리를 거르때 병든 낙엽이 시름없이 떠러질때면 시와 같은 感傷의 인간인 나를 찾는다. 내 호주머니에는 오전 짜리 전차표가 두 장 남어있다. 明日의 전등료와 기한 지나는 質?이 생각난다. 나무도 떠러젓스리라?
그러나 오날아침 부탁 바든 원고를 쓰기에 이 밤을 밝힌다. 한달 뒤에 드러올 돈 생각하면서 이것이 이곳에 사는 예술가들의 빈곤과 싸오며 행하는 예술적 정열이 아니랴. 그리고 일생을 이같이 싸 오려는 각오가 아니고 무었이겠는가?

安含光
존귀하든 한때의 그 정열과 각오도 일상적인 생활의 장벽 앞에서는 그 자신의 순수성을 보전할수업는 비애만이 계속되는 듯 하오며 앞으로도 그 정열의 순수성을 어느 정도까지나 달성할 수 있겠느냐(?) 하는 것은 한 개의 크다란 의문이 아닌가 함이다. 〈195〉

柳完熙
생활과 예술의 兩全을 꾀할 수 있다면 다시 더 말할 것 없거니와 그렇지 못한 경우라 할지라도 생활 내지 가정을 무시하고 예술을 위하야 종생할 수는 사실상으로 불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함이다. 왜그러냐하면 생활과 인생 인생과 예술이 불가분의 계열에 서 있고 따아서 생활이나 가정에 대한 연계에서 오는 고통이 예술에 대한 애착이나 정열을 멸살시키고도 남음이 있을 것임으로써!

宋 影
물론 그 같은 정열과 각오가 있음이다. 이 같은 정열이란 것은 나의 생명임니다. 생명 없이 살아갈 수 없는 것과 같이 이 정열 없이는 차라리 안살녀고 함니다.

李甲基
아직 그렇한 심각한 일에까지 부닥처보지못하여서 엇지할는지 모르겠읍니다. 다만 史上에 날아 난 그렇한 고결한 정열을 가젓든 예술가를 누구보담도 존경할 줄은 압니다마는!

韓仁澤
1,문학도로 일생을 마출 결심을 가넛스니까 물질적으로 오는 위협이 제 의지에까지는 침입을 못하리라고 생각합니다.

李北鳴
오늘까지 饑死보다 못지 않은 가시의 길을 해염처 나온 몸이니 이 앞으로도 예술에 대한 정열과 각오에는 변함이 없으리라고 생각함니다. 萬雖을 물니치면서 예술의 길로 나아가랴는것도 불행 없는 건설을 위함이니 一意傳心 그 길로 나아가다가 饑死한들 누구를 원망하리오.

蔡萬植
그만한 각오와 (문학에 대한)열정을 가지고는 있습니다.
그러나 첫재 부모처자가 饑死한다면 낸들 발바닥을 할터먹고 사는 곰이라고 饑死를 免하겠습니까?
다음 내가 현재 가난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러나 그것이 내가 문학하기를 고집한다고 부모 처자 밋 내가 饑死한대도 그것은 문학을 하는 罪가〈196〉 아님니다.
그 다음 지금 정세로 보면 가난이 문학인에게 敵이 아닌 것은 아니나 가난에 못지아니하게 여러 가지 난점이 있읍니다. 쩌나리슴이나 朱筆의......

李一
부모처자의 饑死와 대등 예술이 있으면 한번 모험해 보겠슴니다. 그러나 제이 삼차적 문자유희―惡戱에 불과하니 그런 열정은 암만해도 絞出치 못하나이다.

李石薰
나로서는 지금까지 문학을 한 餘技로하고 있다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으므로 애당초에 그런 餘技를 갖이고 처자를 멕여가리란 비위좋은 생각은 꿈에도 하지 않소!

徐光霽
朝鮮청년의 대다수가 갖이고 있는 늙은 부모를 보양할 그러한 부채는 다행히 갖지 않게 되였다. 그것으로 자식된 도리와 의무라고도 할 수 있으나 나는 어려서 가정의 반역자가 되여 집에서 뛰여나왔고 그때나 지금이나 부모들이 饑死할지경은 않이며 두분이 다 노령이며 더구나 족하가 벌고 있으니 그러한 지경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妻라는 사람은 내가 없어도 혼자 활동하야 버러먹을 사람 求하였으니 걱정 없으나 나의 길을 닥거나가는데 나의 자식을 갖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럼으로 나는 10여년동안 내가 발버온 그 길을 일생것겠다고 생각한다.

李軒求
목전에 부모처자의 饑死를 빤히 내다보면서 예술경에 도취하는 심경! 불사조의 이상과 가트면서 그 이해가 곤란합니다. 살사 이해야한다기로니 그 신념에 살 수 있을는지 그 무서운 현실에 다닥처보아야겠지요. 樂貧, 鬪貧도 정도문제가 아닐까요?

李孝石
갸록한 정열과 각오이기는 하나 무릇 비현대적임니다. 생활을 벗어나 무엇이 있겠슴니까. 빈곤속에서 걸작이 난다로 생각하는 것은 일종의 중세적 낭만주의랄가요.〈197〉

李無影
그것은 이미 각오한 바이라. 이제 새삼스러이 생각하지도 않슴니다.

咸大勳
내가 만일 예술에 대한 불타는 욕망이 없었다면 지금쯤은 50,000만원부자는 되였스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리니 이제 그건긔회 다노치고 다시 돈벌러 떠나지는 못하겠읍니다. 빈곤과 싸우면서도 일생을 문학으로 마치렵니다.

方仁根
과거와 현재에 그러한 정열과 각오로 싸워 왔고 장래도 최후까지 싸워 보려고 합니다.

洪曉民
三千里에서 설문이란 흔히는 「쩌낼이슴」을 基調로 하고 물어 오는 것이 恒列이었는데 이번 설문은 나에게 진실로 뭉클한 무엇을 주엇다. 그것은
첫재 부모처자는 饑死할망정 선생게서는 예술을 위하야 빈곤과 싸우면서라도 일생을 바치겠다는 정열과 각오가 있는가 하는 질문이다. 이것이야말로 얼는 대답하기 힘든 그것인 동시에 또한 이러한 정열과 각오가 없어서는 아니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곧 심각한 질문임과 아울러 심각한 대답을 하자면 「나는 나의 예술을 위하야는 死而後己할 각오가있오」하고 말합니다.

崔永秀
두손을 가슴에 얹고 打診의 묵상을 해보았오. 「藝術」의 경지는 아득하고 「饑死境」은 아직 ?濃한지라 하기 어려우오. 빈곤까지는 몰라도 饑死之境까지는 장담 못하겠오.〈198〉
〈192-198〉


잡지명 삼천리 제8권 제12호
호수 제8권 제12호
발행년월일 1936-12-01
기사제목 僧이되고십지안흔가, 文士心境
필자
기사형태 설문

先生?서는 그 貧困과「靈의 苦悶」?문에 차라리 山속에 드러가 僧이되고 십흔?가 업슴니까 자살이라도 해버릴생각을 가진 적이 엇스심니까

春園
입산 수도하려고 생각한 적이 여러 번 있었읍니다. 온갖 世屢를 깨끗히 떠러버리고 이 몸이 이 세상에 태나든 그때와 같은 청정한 육신과 사념 없는 영을 안고서 깊은 산 암자 속에, 맑은 하늘, 닷는 구름, 흐르는 물껼소리로 더부러 다만 몃해라도 사라 보고 싶었읍니다. 수년전 내가 朝鮮日報社를 나와서 금강산으로 내다른것도 오직 이뜻에서 웨다. 그때 생각에는 그저 백날만, 다만 석달열흘만이라도 峯아래 조고마한 절깐속에 있어진다면 내 생명은 정말 오른 길로 드러서, 마치 따뜻한 일광을 만난 봄날의 나무와 같이 싱싱커질것같았읍니다.
그러나 세속의 世屢가 이것조차 이루게 못합니다. 자살은 지금은 생각한 적이 없읍니다만은 칠팔년전에는 그러한 생각을 하여본 적이 있섯고, 그리고 그 자살의 방법까지 내 마음으로 작정한 일이 있었읍니다. 그러나 이제와 서는 제손으로 제생명을 끗는다는 것은 이以上 하늘에 큰죄 짓는일이없고, 인류와 동포에 송구한 일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말한다면 혹 세인들은 병고때문에 이런 생각을 가지는 줄 알것이외다만은 나는 병에 대하여는 아무런 두러움과 실증을 가지지 않고 있읍니다. 육체의 병은 초월한 셈이지요.

岸 曙
산 속에 들어간다고 고민이 없어질 것이 아니니까 바로 생명을 끊어서 모두 허무에다 파뭇는 것이 좋겠지요. 그러나 나는 이보다? 보살것없는 生이나마 그대로 끓어 가면서 돌모양으로 無言不語속에서 혼자 외로이 회색의 世相을 들어다 보고 싶습니다. 이것이 답지 아니한 나의 自嘲외다.〈199〉

朴英熙
그런 생각 한일은 없오.

想 沙
問或은 자살을 생각도 해보는 일이 없지 않지만, 정신에 이상이 생긴다든지 비상한 타격이나 밧기전에는 실행에까지는 客易치 않을 것입니다. 빈곤과 「靈의苦悶」에 상관적 연락도 없겠지마는, 빈곤 때문에 자살은 빈곤이 허영심을 상케하는 이상으로 수치라는 것을 생각하면 누구나 실행않될것같습니다. 靈의 고민이 자살의 원인 되는 경우는 별문제일 것이외다.

宋 影
결코 遁世니 혹은 壓世같은 소극적 敗北은 가지고 있는 일이없음니다.
한없는 靈의 고민보다는 貧의 희농을 바들 때에도 적극적 반발적 태도를 가젓섯슴니다. 태도보다도 자연한 생리적 현상이여슴니다.
竹林七賢이나 五柳居士같은 고대의 淸廉慷慨한 기풍이 일리가 없는 것도 아님니다마는 이것은 너무 敗頹적이였슴니다. 괴로울사록 더―살어서 스스로 괴로움을 물니치고싶은 것이 생활태도이며 철학임니다.

全武吉
빈곤은 면한 생활이나 영의 고민이라고 할 자는 항상 몸을 떠나지 않는 문제로서 일시산간의 은거생활이나 자살을 생각해 본 감상기도 있었으나 그것이 한 것 약자의 일임을 알면서 붙어서는 고민에서 얻는 인생의 맛을 초연히 苦笑하면서 대함이 한 快味를 줌니다. 주제넘은 말로 달관 비슷한 무엇이 나섬니다.

李軒求
사람인 이상 더군다나 그늘의 현실에 암담히 생활하는 자로서 이런 衝擊을 강열히 또 그리고 不絶히 느끼지 안는다면 그는 분명코 「超人」이거나 「非人」일까 합니다.

梁柱東
종종 無常感 때문에 佛說에 끄을려 圓覺經을 보기도하고 입산수도를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럿은 빈곤 때문이 아니오 배가 불럿기 때문이니 貴問에 이른바 靈의 고민인가 합니다. 이러한 정도의 善知識이기고〈200〉 보니 자살은 물론 생각한 적이 없고 입산은 이즈음 산중에 맛츰 절이 없기 때문에 단념하고 있습니다.

徐光霽
예술가는 樂天家래야 될 줄 생각한다. 어구나 朝鮮과 같은 환경에서는...그럼으로 나는 요사히 점점 체중이 느러가 14貫이나 되였다. 그렇다고 잠보다 음식을 더 먹는 것은 않이다. 식물의 영양보다 마음의 영양에서 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李一
빈곤은 밧보지안을 特恩種이 있습데다만 靈의 고민은 누구나 면치못하듯 한 는대 그러나 靈이라는 놈도 그 육신에 물질적 편리를 잘 공급하면 그만 취해서 즐거워 하지만 이것 버리기 위하야 僧이 된다는 생각은 안이함니다. 僧도 非僧과 同色 同種이 있슴이외다. 자살! 그놈한번 해보고 십은 것인 대 해보고 십흔때와 하지못하는때가 동급수로 진행함니다. 자살도 용기 있는 사람의 작품인가 하나이다.

李孝石
산 속에서 적적해 엇더케 지냄니까. 이기든 지든 간에 세속에서 싸워야죠.

洪曉民
선생께서는 빈곤과 「靈의 고민」 때문에 차라리 산 속에 드러가 僧이 되고 싶은 때가 없읍니까? 자살이라도 해버릴생각을 가진 적이 없으심니까 하는 질문이다. 허나 이 질문은 심각하것만은 사실이나 그라지 僧되고 자살이라고까지 붓치도록 내가 빈곤과 「靈의 고민」을 느끼엇을까 생각해 보니 별로히 그런 것이 없다. 나는 오늘까지 이런 소극적인 고민은 해본 일이 없다. 이런 소극적인 고민을 하랴고 할진댄 차라리 예술 도에 아니 드러슬 것이다.

方仁根
그러한 때가 순간적으로 날 때도 있지마는 역시 참고 견듸려합니다.

崔貞熙
僧도 안되고 자살도 안 하기로 단단히 작정을 해놓았읍니다.

金恍燮
현실을 떠나지안을랴고 하면서도 혹시는 산 속이나 들어가고 십흔때가 있슴니다. 자살이라도 하여스면 하기도 해본 적이 있슴니다.

咸大勳
때때로 한가히 전원생할을 하면서 창작에 열중하고 싶옵니니다. 자살이나 僧侶생활은 넘우도 퇴영적이니 그만줄가 합니다.

李無影
한동안(이십사오세까지는) 빈곤이 염세관을 이르키게했읍니다마는 최근에 와서는 그렇지도 않습니다. 나는 항상 나는 정당한 죽엄은 못하리라고 생각합니다 마는 자살은 하게 된다면 작가로서의 자아의 무능을 깨닷는때 그때일 까지 합니다. 현재의 생활이란 자아의 무능을 깨달으면서도 이른 캄프라쥬하에 시일은 느리고보는것에 불과합니다.

李石薰
지금까지 그만치 심각한 고민을 경험하지않엇으나 세상에 무엇을 못해서 산중의 僧을 원하겠소?

蔡萬植
도를닥는 僧이 되자는 것이 아니라 생활이 어려우니까 어느 절이고 밥을 먹여 준다면 가서있어보고싶은 생각이 각끔남니다. 자살하고 싶은 때도 많습니다. 단 그것은 말하신 바 「靈의 고민」류는 아님니다. 대체 인생이란 것이 이따우로 살어도 사는 것이냐 하는 치사스럽나는(그런 까닭으로)너무도 동물적 본능만에 억매어 생명을 지지만 하려는 내자신이 입살 머리스러워서 그래 자살을 해바리고 싶은 생각이 시방 당장에도 무럭무럭 남니다.

韓仁澤
2, 그런 피난적압세적 생각을 갖인적이 없읍니다.

李北鳴
僧은 비현실적 존재이오 자살은 敗北者의 향락으로 생각되니 차라리 전사가 거륵한 행동이라고 봅니다. 靈의 고민이 극도에 달한다면 이마에 수건동이고 밀구구마를 미나 목도군이 되거나 그렇지 않으면 인력거를 끌지오.

李甲基
2, 자살하고 십든 시절을 지난 지는 벌서 한3년 되는가 보이다.
僧侶까지는 아직 되고 싶지는 아니하나 여하튼 냉혹한 世事現實에서 도피하고 싶습니다. 그것도 번민히 안 되는 줄 알고 보니 다만 사라 가는 대로 사라 가자 할 뿐이지요.

安含光
「靈의 고민」 때문에 때로 자살이라도 해 버릴 생각은 한두 번 가저섯고 그때마다 양심을 살니려는 자는 모름직이 자살의」길밖엔 업다 는 역리적인 생각에도 지배되여섰스니 세상이란 원체「자기를 기만할 수 있는 인간」만이 생존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이오 하나 산 속에 드러가 僧되고 싶은 생각은 한번도 없슨가함니다.

閔丙徽
가을의 細雨가 쏘할 때 그 계절의 終幕을 고하는 쌀쌀한 바람 불때면 곳없는 슬픔이 마음속에 기여드는때가 만타.
인간은 웨나면서 죽는 것인고? 끝없는 인간의 적막을 느끼면서! 죽엄을 생각한때 한두 번이 아니였고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 더욱히 내 자신이 타고난 운명 남의 집의 자식으로 이해 없는 사랑을 받을 때―되지 않은 무리들의 비인간적 橫行을 볼 때 아닌게 아니라 僧이 되고 싶흔때 많엇다.
親志들은 나를 말해 낙천적인 인간으로 본다. 그러나 비록 내스사로 사람들의 앞헤서 간교스럽게 감상적으로 보히고 싶허하지 않으며 염세적인 푸념을 내놓으려고 하지안는만큼 속깊은 애수―靈적 고민을 느끼는 때 그 누구에게 지지않을것이다.

嚴興燮
그런새각을 한때는 해보왔음니다. 그렇나 그것도 벌서 피가 용솟음치든 10년 전에 기분시대의 일임니다.
지금은 다만 沈*한 분위기 가운데서 야생초처럼 참고 버틔고 살감니어다.
―僧? 自殺? 이것은 결국 敗北者의 소아병적 자위수단에 지나지 안음니다.

柳完熙
그런 생각은 처음부터 가저본일도 없고 또한 가지려고도 하지안슴니다. 한번 현실 우에 등장한 이상 끝까지 싸어서 너머지는 깨끗한 전몰자는 될지언정 스사로 패퇴자의 치욕은 남기고 싶지 않은 때문임니다.

崔永秀
특별히 「빈곤」이라든가 「靈의고민」이라고 지적하긴 어려우나 때로 僧을 그리고 때로 죽엄을 새각한일이 많으오.〈203〉
〈199-203〉

잡지명 삼천리 제8권 제12호
호수 제8권 제12호
발행년월일 1936-12-01
기사제목 戀愛냐돈이냐, 文士心境
필자
기사형태 설문

人世의 造次顚沛속에서 오래 부댓겨 나섯스니 이제는 實感으로 말슴하야 「人生의 幸福」은 돈에서 온다고 생각각되지 안슴니까, ?는 「戀愛」나 「藝術」에서 온다고 생각되지 안슴니까

春園
「인생의 행복」은 돈에서 오는 것도 아니요, 「연애」에서 오는 것도 아닙니다. 그것은 행복의 일부를 구성할 수는 있겠지만―나는 내 먹은 뜻이 돈이라거나 명예라거나 연애와 같은 모든 세속의 영화 때문에 움지기지 않는, 그 순간이 가장 행복된 때인 줄 압니다. 나는 오직 그하로 그하로 이러한 邪念 때문에 잡히지 않는 날로 지나는 것을 그날 그날의 가장 큰 행복으로 압니다.

朴英熙
인생의 행복은 마음의 평안에 있다고 생각하오. 心腦없은 생활이 행복이오.

想沙
인생의 행복은 「돈」에서도 「연애」에서도 「예술」에서도 얻을 것이나 각기 종류와 의미가 달을 것입니다.

岸曙
행복이 있는 줄 아는 것이 행복한 사람들이지요. 나는 행복의 존재를 인정치 안습니다. 그러니 돈, 사랑, 예술에서 생길 것이 아니외다. 술처럼 한때의 가장 짧은 순간의 위로는 될는지 몰으거니와, 그진정한 행복은 없는 것이외다. 〈204〉

洪曉民
셋째 人世의 造次 顚沛속에서 오래 부댓겻어니 이제는 실감으로 말슴하야 「인생의 행복」을 돈에서 온다고 혹 생각되지 않슴니까 또는 「연애」나「예술」에서 온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하는 질문인데 이것 역시 나는 때로는 돈에서 온다고 생각한일도 있고 「연애」나「예술」에서 온다고 생각한 일 있었는데 지금은 다만 나는 맘(心)에서 온다고 생각하였다. 우선 맘이 안정되면 그야말로 一簞食, 一瓢飮하고 在陋巷이라도 樂亦在其中한 것을 알엇다.

方仁根
3, 인생의 행복이 돈에 있다고는 결코 생각지 않슴니다. 물론 연애나 예술에 이섯다고 절실히 느낌니다.

崔貞熙
인생이 행복이 어듸서 오는 건지 또 그것이 정말 내게 올수있는건지 아직 나는 모름니다. 연구를 해 봐와야겟읍니다.

金恍燮
3, 행복이라는 것은 업는 것을 깨달었슴니다.

李一
3, 나는 돈 안이주고사는 행복를 구한지 오래외다. 사람에게 그런 행복이 허락되지 안었슴니다. 연애라는 놈도 외상을 안이줌니다. 외상으로 연애하면 그 대가를 이 삼배나 물게 되고 때에는 생명으로 代償함니다. 無錢旅行은 할 수 있지만 無錢戀愛는 절대금물이외다. 無錢戀愛의 代償으로 罪惡 情死가 너우나 만습니다.

李石薰
3, 결국 「돈」이라고 믿소. 그러나 동뫃을 재주가 없으니 無可奈何지오.

咸大勳
3, 인생의 행복은 돈에서도 연애에서나 術藝에서도〈205〉 다않입니다. 참된 행복은 자유로운 활동 무대를 만드러 거긔 마음껏 활동해 *데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럴 환경이 못되니 인생의 행복(내 자신을 도라 보아)은 내 예술의 완성(그때가 있을 가 의문입니다만 은)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蔡萬植
3, 「인생의 행복」이란 무엇인지를 나는 모름니다. 30반생에 나는 그런 것을 맛보아보지 못했으니까요.
그러나 「인생의 불행」은 당해도 보고 알기도 함니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생각함니다. 「가난한 불행」은 돈이 생기면 행복으로 바뀌일수도 있도 남녀간의 애정의 파탄에서 오는 불행은 그 성취 혹은 새로운 연애로써 행복으로...예술적 고민에서 생긴 불행은 대작의 作成에서 행복으로...역시 바뀌일수있다고.

李北鳴
3, 각개인의 환경과 사상에 따라 행복 관도 달을것임니다. 그렇나 창작한 예술작품이 백만인 의 손에 둘녀서 찬사를 받는 동시에 인류사회에 生의 광명을 던저줄 때 모든 群小행복은 예술 앞에서 落淚할것임니다. 그렇나 연애만은 예술왕좌앞에서도 큰 역할을 할 것입니다.

韓仁澤
3, 인생의 행복이란 돈으로도 연애로도 척도할 수 없으리라고 생각합니다.

李軒求
3, 돈의 위대한 운명적인이요 暴小的지배력은 갈 사록 더 절실히 느끼여지는 듯 합니다. 그러나 생명을 바칠 바 예술이나 연애가 있다면 예술지상 연애지상론의 신념에 살고 싶습니다.

李甲基 3, 인생의 행복은 돈에서 오나 연애나 예술에서 오느냐고요. 나는 먼저 설문자에게 대체 인생의 행복이란 개념이 엇더한 내용과 엇더한 의의를 가진 것인지〈206〉 먼저 뭇고 싶읍니다.

徐光霽
지금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인생의 행복」은 두말할 것도 없이 돈에서 오고 죽은「인생의 행복」이 있다면 「연애」나 「예술」이겠지요.

李無影
돈은 행복의 破壞者입니다.

李孝石
3, 무엇을 속이슴겠니까. 인생의 행복은 「돈」과 「연애」와「예술」―이 세 가지를 합처더든 곧에서조.

宋影
3, 솔직하게 말하면 돈에서 온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나 내가 말한 「돈」이라는 것은 불철저한 경제기구에서 자연生한 돈의 본의를 니저버린 돈이 야기는 아님니다. 쉬웁게 말하자면 인생의 행복은 생활의 안정―즉 합리화된 경제조직에서 온다고 볼 수 있음다. 연애나 예술에서도 물론, 행복을 차질수가있으나 그것은 제2의적행복으로 밖게 볼 수 없음니다.

柳完熙
3, 나는 우리들인간의 세계에 절대한 행복이라고는 없다고 단정하는 자의 한사람이외다. 만일 인간이 慾求하는 부문의 만족을 얻는 것으로써 행복이라고 한다면 돈 예술 연애 이세가지가 모다 인간에 필요한 것일진대 이세가지의 만족을 동시에 얻게 되는 경우가 인간에 허락된 행복의 가장 큰 것이라 할 것이요. 어느 한가지의 욕구를 가저 그것의 만족을 얻을 때에도 또한 행복이라 할 것이외다.

安含光
3, 「돈」 때문에 인격적으로 멸시를 당하였슬 때 자기도 모르게 「돈이다!」하고 심령으로 부르지즌적은 한번이 아니나 그 결론에 「인생의 행복」은 돈에서 온다든가 또는 어떠케 하든지 돈을 좀 모아보고십다든가 하는 생각에로 이른(至)일은 한번도 업섯소. 그러타고 「연애」나 「예술」에서 오느냐(?)하면 이 또한 그러타고만도(首肯)해 버릴 수 업는곧에〈207〉 低迷한 심정의 고민이 있는 듯 함니다.

閔丙徽
3, 돈이 많어서 호의호식을 하고 술과 게집을 마음대로 얻을 수 있음을 행복이라고 할까? 그러타고―빈곤과 싸우며 예술을 한다고! 행복이라고 할가? 한때 연애를 하여보왔다고 늙은 추억을 살녀 보며 행복이라고 할가? 이곳에 苦海蒼生에 무삼행복이 올 것이 오릿가? 다음날 子孫에게나 행복이 올 것이다.

嚴興燮
엄밀히 말하자면 인생에게 행복이란 것이 없다고하겠음니다.
더구나 「돈」에서 「연애」에서 행복을 求하기란 하늘의 별따기와 같은 어리석은 짓입니다. 甲의 행복이 乙에 있어서는 불행이 될 수 있는 것처럼 乙의 행복이 甲에게는 또한 불행이 되는 것음임니다.
「행복」을 노리는 눈과 손은 그 사람의 개성 그 사람의 직업성격이 다른데 따라서 다 달음니다.

全武吉
3, 행복감이란 어데 까지든지 그 느끼는 자의 주관적인 감흥임으로 표면행복적된 생활이 내면으로 비참한 경우도 많슴니다. 인간은 만족을 모르는 동물인즉 돈에서나 「연애」에서나 「예술」에서나 제왕의 지위에서라도 진실한 의미에서의 행복이 없을 줄 암니다. 그러나 구지 행복된 경우를 말한다면 釋迦나 基督같이 인생을 달관하고 여하한 고난도 그 신념 앞에서 달게 받는류의 고급감정이겠지요. 凡人은 맹목적으로 살고 맹목적 행복을 느낄 뿐.

梁柱東
3, 인생의 행복이 돈에서 오느냐고 물으닛가 나의 肉氏는 섯불리 대번에 「오―케」라고 대답하는데 나의 靈님은 고개를 기우리고(No.sir)라고 대답합니다. 청교도인 나는 아모래도 靈님 說에 左祖하고 싶습니다.
연애나 예술이나 둘 다 재미는 있다죠. 행복은 몰나도.

崔永秀
3, 느끼게 따라 다르겠지요. 욕심을 부린다면 세 가지를 다 한꺼번에 갖고도 싶겠지요. 그러나 예술의 道에선者 예술이외에서 어찌 행복을 구하오리까! 〈208〉
〈204-208〉


잡지명 삼천리 제8권 제12호
호수 제8권 제12호
발행년월일 1936-12-01
기사제목 다시 젊어지고 십흔가, 文士心境
필자
기사형태 설문

(가) 조선사람 二千萬名中 先生은 大(체*)로 몃재번에나갈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심니까
(나) 先生의 作品을 읽어 주는 讀者는 대(체*)로 몃사람이나 되리리고 推想하심니까 ?해마다 몃名程度로 느러가리라고 생각하심니까
(다) 先生은 다시 한번 젊어저서 다시 한번 熱熱한 戀愛를 하고십흔 생각이 업스심니까

春園
1, 朝鮮사람 전체를 「행복한 부류」와 「불행한 부류」의 두반으로 갈른다면 나는 행복한 측에 끼워있는줄 압니다. 몃 사람이 헐벗고 굶주리는 터에 나는 이때까지 의식에 缺함이 없이 지내 왔으며 지금도 거주할 곳 마저 평안하게 가지고 있으니 이 어찌 행복스럽다 하지 않으리까
2, 나는 내 작품을 읽어주시는이가 얼마나 되는지 생각해 본적이 없읍니다. 그러나 내가 뭇을 들고 나선 지 이미 20여년 그동안 다소라도 진정으로 내 작품을 읽어 주시는 이 있을 줄 믿습니다. 그리고 그 읽어주시는이는 십오육부터 육순 나는 노인 층에 있는 것까지 내가 얻은 경험으로 보아 잘 알고 있읍니다. 첫 번「무정」이 나올 때 읽어 주시든 이가 지금은 모다 사오십되는 년배에 이르럿슬 줄 압니다.
3, 내몸이 아직 50전이니 鳴呼老矣라하고 탄식해본적이 없읍니다.〈209〉 그러니 「젊음」을 그리워한 때도 없거니와 다시 또한번 연애하여 보겠다고 생각을 가저본일이 없읍니다. 그야 아직 내 몸에 열정이 있읍을 믿는지라 이 뒤에 올 일을 안다 못하겠거니와......

想沙
4, (가)행복이란 것을 생각해 본 일이 없으니 모르겠읍니다. 그러나 행복이란 주관적의 것이요 사람의 욕심이란 한이 있기 어려운 것이니 쌍에 자기가 제1 혹은 제2 혹은 몃재로 행복하다고 생각할 어림없는 사람도 없을 것 같습니다.
(나) 모릅니다. 貴社에서 통계표를 꾸미심이 어떨까요?
(다) 다시 젊어질 수 있다면 이라는 가정은 웃으운 말이외다. 70이 되어도 열렬한 연애를 하고 싶을지도 모르겠읍니다. 70이 되어 보고서 장담할 일이지만요.

岸曙
4,(1) 生을 끊지아니하고 존재하는것만치, 자기가 자기를 속여 가는 것은 있겠지요. 그러나 거지불치병자에게도 이것은 있으니까요.
(2) 별로 있을이라고 생각치 않습니다. 있다면 그것은 나와 같이 한 개의 好氣的無用으로의 존재물이외다.
(3) 이 우에 더구나 새파랗게 젊어서 사랑을 해보겠느냐고 말입니까. 제발 지내 온 쓸아린 경험을 두 번 다시 생각케도 말아 주소서, 고 나는 내 자신의 허황한 기억에게 애원을 하고 싶습니다. 한번 魂難곳에는 소도 발을 옴기지 않는다고 하지않었읍니까.

朴英熙
1, 末席이랃 좋으니 행복한사람만 되었으면 하오. 그러나 사람이 어찌 행복한 생활을 가즐수 있겠오.
2, 독자는 아즉 알 수 없으니 수가 많은 것보다도 작가의 지의를 이해할 수 있는 독자라면 소수라도 좋겠오.
3, 내가 다시 젊어진다면 열열한 연애보다도 과오 없는 생활과 사업을 하고 싶소. 연애는 젊어서만 열열한 것이 아니고 장년시대에도 할 수 있지만 나는 그러한 생각과 시대가 과거하였으니 말하는 것이 도로여 공상이겠오. 〈210〉

崔貞熙
(가) 내 작품을 읽어줄이 하나도 없을 것 같기도 하고 또 2,000명이 죄다 읽어 줄 것 같기도 합니다.
(나) 역시 많이 느러나갈 것 같기도 하고 또 한사람도 늘지 않을 것 같은 불안도 있음니다.
5, 사람의 값이 젊음에만 있다면 영원히 늙지 말일이지요.

梁柱東
(가) 엇던날 첫재 엇던날 꼴치.
(나) 不知道.
(다) 다시 젊기는 왜요? 아즉도 젊은데. 꼭 한번 해보고 싶은 생각은 있으나 이른바(色)이 아니오. 참으로 그야말로 열렬한 「사랑」이라면 상대자가 문제입니다. 얼골은 나와 반대로 초근대형이여야 하겠고 교양과 취미에 이르러는 나와 準同等의 자격―무릇 歐文, 漢文, 「더구나」 우리 글을 저욱이 통하야 세스톱, 할트만, 周易, 圓覺經, 그러고 鄕歌(!)를 조곰씩 알아야 하겠고 게다가 書畵, 骨董(특히 내가 珍藏한 納入의 枯淡한 筆法을 나와 한끼 감상할 만한) 분재, 장기 쎄파―트(실은 없지만) 등등 취미를 모조리 이해하여야 하겠으니 이야말로 딱한 노릇이 아닙니까.
대관절 연애에 무슨 조건이 그리 많이 붙느냐고요? 若夫 대상이 傾國佳人이라면 전언은 戱耳라 부복하언이리오. 呵呵.

全成吉
(가)2,000만 명중 2,000만 번째의 불행자라할가요.
(나) 간혹 독자로부터 글을 받게 됨으로 미루어 보아 내 작품의 독자가 있는 것만은 확실하나 추산할 수 없고 내 자신이 제일 진정한 독자임니다.
(다) 연애를 해본 결과 시간과 물질과 정력을 *費하는 외에 당시는 모르나 다소냉정해진 후에 보면 소득이 없고 역시 환멸감을 주는 대서 인간의 諸行動의 일부분이라는 것 밖에 특별한 쾌감을 기억하지 못합니다. 다시 젊어지면 「열열한」연애는 못할 줄 암니다.

李軒求
(가) 첫재라고해도 거짓말 꼴지라고해도 욕먹을 바이니 2,000만중 X位라는 그X는 오히려 딴사람께 물어 보고 싶읍니다.
(나)나를 알어주고 나를 믿어 주고 또 나에게 격려를 보내는 독자 나와더브러 기뻐하고 나로더브러〈211〉 더 奮慨하는 그 한사람의 애독자가 있다면 고만일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아직도 나에게 대한 이러한 관계를 가진 독자를 발견못했읍니다. 이것을 유일의 遺憾이라고나 할까?
(다)다시 한번 젊어지는것보담도 가령 내가 이앞으로 30년을 산다고해서 나히를 먹으면서도 언제나 진격하고도 강렬한 연애감정을 가지고 싶다고 생각합니?. 아마도 이런 점에서 궤―테는 그 일생을 청춘의 歡悅속에서 모냇다고도 할것임니다.

李孝石
4,(가) 2,000만명중에서 첫재번 갈때도 있겠고 제일 꼴재 갈때도 있겠죠.
(나) 알수있나요. 작품이 발표되는 간행물의 부수를 표준으로 할 수 밖엔요.
(다) 없지는않겠스나 이제 새삼스레 「렬렬한」 연애가 될상싶지 않음니다. 하기는 등장인물 나름이겠지만.

方仁根
4,(가)나는 행복된 사람이라고 생각해본적이 별로없음니다. 그러나 나보다 불행한 사람도 많을터이니까 2,000만명중에 1,900만째나될듯합니다.
(나) 내 작품으 독자는 계산하기가 도무지 어렵슴니다. 많을 것도 같고 적을 것도 같고 귀사에서 조사해주섰으면 고맙겠음니다. 그러니까 해마다 몇 명식 늘고 주는것도 모르겠음니다.
(다) 다시 젊어지면 렬렬한 연앨ㄹ 하고 싶지않으냐고요. 그야 뭇지않어도 다이를말슴입니까 젊어지는 방법만 가르처 주소서.

洪曉民
넷째 (가) 조선사람 二千萬名中 先生은 大體로 몃재번에나 갈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심니까 하는 질문인데 이는 나는 내가 제일 먼저나 가지 아나하면 최후에나 갈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웨냐하면 첫째로 누구는 제일행복되고 누구는 제이 행복되고 하는 그런 것을 복잡스럽게 따질수도 없는 것이 한 이유도 되려니와 이것역시 제 맘에 있는 곧 극히 주관적인 그것인 까닭이다. 나는 남의 행복을 측정하고자 하는 맘은 전혀없다. 따라서 제가 첫재아니면 「꼴지」일 것이다.
(나) 先生의 作品을 읽어 주는 讀者는 대체로 몇사람이나 되리리고 推想하심니까 또해마다 몇名程度로 느러가리라고 생각하심니까 하는 질문인데 이것 역시 추상인만큼 내 욕심으로는 제일 많이 읽어나 그렇지않으면 아주 아니 읽으리라는 대답밖에 없다.
(다) 先生은 다시 한번 젊어저서 다시 한번 熱熱한 戀愛를 하고십흔 생각이 없스심니까 하는 질문인데 이는 나는 언제든지 렬렬한 연애는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젊은 사람만이 렬렬한 연애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연애는 노소가 없다. 하거들랑 렬렬히 하고 하지않으면 냉담할 그것뿐이다. 허나 이제 내 심경은 되나 못되나 나로서는 내 천분에 알맛는 한사람의 안해가있으니 그런맘은 전혀없다.

金恍燮
4,(가)남이 보긴 나는 비교적 행복한 듯도 할것임니다만 나로선 불행하다고도 봅니다. 제일 불행한자야 아니겠지요. 또 그럴지도 모르겠음니다.
(나)나의 독자요? 親友가 수십 명이 되니 그 ?이야 되겠지요.
(다)지금도 젊었는데 다시 더 젊을 수 있음니까? 혹시 어려진다면 모르겠음니다. 열열한 연애요? 순수화된 위대한 문예작품에는 다만 여주인 같은 것임니다. 사랑할 수 있겠지요.「테스」는 그런 의미에서 나의 애인이 영원히 되는 듯 함니다.

咸大勳
1,그렇게 생각해 본 일이 없음니다.
2,나는 내 작품을 읽어 주는 독자가 얼마라는 것을 생각한 일이 없음니다. 다만 나는 내 예술적 행동이 있을 때마다 작품을 쓰는 것 뿐 입니다.
3,아즉도 젊은 나이지만 연애는 그만 둘 가 함니다.

李無影
2,그것은 알 길이 없음니다.

徐光霽
4,가, 더울 때 피서 가고 목마를 때 麥酒를 마실 때 그리고 맛나 보고 싶었든 그 여자를 맛낫슬때에는 내가 이 세상에서 제일 행복된 사람 같고 그와 정반대일 때에는 亦 제일 불행한 사람같이 생각된다.
자, 그러한 것은 생각할 일이 없으나 어려슬 때 동리에서 같이 자라난 동모나 小學中學專門의 학교동창이나 나와 개인적으로 친한 벗들이 먼저 읽어 줄 것이다.
다, 아즉 청춘 그대로이니 었더한 기회에 얼마나한 열렬한 연애를 할는지도 모르겠다.

李石薰
4, (가) 나의 민족적 행복순위는 No. 17·500·000
(나) 한 五六十名가량만 된대도 행복이겠으나 실상은 그렇게도 못 될상 싶은 걸요. 전체로 해마다 늘어가겠지요. 한 一O%가량으로.
(다) 내 나이 30고개를 못 넘었으니 연애야말로 지금부터 할 때지요. 그러나 적극적으로 하고 싶은 생각은 없오. 늙어 죽는 날까지 할 수 있다고 믿소.

李一
4. 가, 나는 조선 사람 2,000만 명중에 2,000만명째 가는 행복자임으로 自處함니다.
나, 내 作品을 읽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음을 확실히 암니다.
다, 나는 다시 戀愛劇을 하고 싶지 아니하고 젊어지고 싶지 않고 마라손으로 꼴인을 企待리나이다.

蔡萬植
4, (가) 朝鮮사람 2,000만뿐이 아니라 나는 왼 세상에서 나같이 불행한 사람은 없다고 생각함니다.
(나) 가장 正確한 讀者의 數는 나 自身과 文選職工한 사람과 校正보는 이 한 사람과 檢閱官 한 사람 總合 네 사람임니다. 그 외에는 몇이나 되는지 또는 주는지 느는지 알 수 없음니다.
(다) 몸은 젊으면서 마음만 것늙어 가지고 愛 따우는 인제는 시시-함니다.

李北鳴
4, (가) 조선 사람을 李千萬鳴이라고 하면 나는 19,999,999번이나 될 가요. 웨 그런고 하며 우리 家族六鳴中에서만은 내가 第一 幸福者이니까.
(나) 자 그럼 나의 讀者數를 數學으로 풀어봅세다. 2000萬鳴―非讀者=北鳴讀者
?非讀者數는 絶對秘密
一年에 讀者가 몇 명식이나 느러가는 가구요. 글세올시다. 每日 한 장식은 讀者들에게서 激勵의 편지를 받음니다만.
(다) 아즉 未知數임니다. 연애로부터 결혼한 지 몇 일이 〈214〉 안 되는데 이런 對答은 한 벌로 하다가는 加味 벼락탕을 먹을 것 같으여서 붓을 놓음니다. 呵

韓仁澤
4, 가, 第一不幸 나, 알 수 없음니다.
다, 아죽 늙지 않엇으니 그런 것을 생각해 본 일은 없음니다. 만은 늙었다 하더라도 연애를 하기 위하야 젊어지고 싶지는 않으리라고 생각합니다.

李甲基
4, (가) 내가 朝鮮만이 아니라 世界에서도 第一 幸福한 者이라고 陶醉하든 한 瞬間도 있었고 또 었던 때는 내가 第一이 世上에서 不幸한 놈이라고 니를 부둑부둑 가라 볼 때도 있으니......
(나) 모르지요.
(다) 혹 었더한 자리에서 나 어린 處女를 맛날 때에 극히 無邪한 氣分으로 自己에게 비처 보는 때가 종종 있지요. 그러나 벌서 내가 그 處女에게 비하기에는 너무 늙었다는 것을 생각할 때는 一誅의 悲哀를 늣기는 수가 있으며 同時에 그 反作用으로 또 한 번 젊어서...하는 생각도 아니 나는 것은 아님니다마는 퀘테는 70이 된 나희로도 능히 18세 되는 處女를 사랑하야 生男까지 하였다니 어데 그러한 權限이 詩聖에게만 限한 것 이겠음니까. 舜何人?......

宋影
4, (가) 남이 나를 어떻게 얼마만한 幸福의 人이다. 評定할 지는 몰나도 主觀的으로 내가 나를 생각하면 2,000만人 중에서보다도 全 世界人 중에서도 내가 第一 幸福의 人이라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나는 잘 지내 가고 있음니다.
(나) 절대로 推想이 안 됨니다. 그리고 또 몇 名式 느러가는지도 모름니다. 마음에는 日增月加해젓스면 하지만은 내 스스로 내 創作活動을 檢討해보면 오히려 그 같은 野望같은 것이 큰 誤?라고 생각함니다.
(다) 다시 젊어서라는 게 내게는 소용이 없음니다. 늙은 들 관계있음니까. 여북 해야 꾀테翁(七旬 때)이 二八少女를 따라 같이 단겻슴니까? 나는 목소리만 듯고 얼골을 못 보는 것 같은 가장 *雅하고 超然한 意中之人이나 한 사람쯤 생겻스면 하는 哀切한 所望을 〈215〉 늘 가지고 있음니다. 다시 말하면 東洋的 戀훼를 한 번 해 보았으면 좋겠다는 말임니다.

柳完熙
4, (가) 以上 三에서 말한 바를 미루어 나의 慾求하는 바의 그 어느 것이고 滿足을 얻을 때가 있다면 그 때에 만은 나는 제일가는 행복자가 될 것이외다.
(나) 그것은 나로서는 推想을 不許하는 未知數에 屬하는 것이외다.
(다) 연애! 아즉도 나희 있으니 晩時之歎은 없으나 나의 지난 경험으로 본다던 지 모든 점으로 보아 나를 對象으로 골으는 彼方의 불행을 막기 위하야 이제는 단념하야 버리고 싶은 生覺밖에 없오이다.

安含光 4, (가) (나) 행복과는 먼- 距離의 존재이며 아즉 한 번도 내 讀者의 數를 推想해 본 일은 없아오나 編輯人諸氏와 植字班諸氏만은 틀님없이 讀者圈內에 들겟지요......
(다) 자칫 잘못 對答하다가는 家妻의 炊事 사보타-쥬로 餓死黨의 黨首가 되어야 할 모양이고 내 만약 다시 젊어저 실패된 첫사랑을 復活식히겠다고 하면 家妻, 離婚承諾書에 捺印을 强要할 모양이니 이 難處한 責任을낭 編輯局長께서 지소서.

閔丙徽
4, (가) 조선 사람 2,000만 중 先生은 대체로 몇제번에나 갈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심니까?
심히 어려운 물음이다.
아마 2,000만 첫재라기는 내 자신이 너무도 불상하매 19,999,999번의 행복을 가젓다고 해서 自慰해 둘가 한다.
(나) 先生의 作品을 읽어 주는 讀者는 大體로 몇 사람이나 되리라고 想想하심니까? 또 해마다 몇 몇 정도로 느러 가리라고 새각하심니까?
-무어라 대답할고? 오즉 내 작품을 읽는 사람은 나뿐일 것이다. 그리고 나 하나가 해마다 느러 갈 것이다.
(다) 다시 한 번 젊어서 다시 한 번 熱熱한 연애을 하고 싶지 않으심니까?
괴악스런 嘲弄이다? 되지 않을 空想을 물었다. 내 三代獨子요, 無女獨男으로 태여 났읍니라. 뜻 맛는 친구를 그리며 뜻 맛는 女子동*나 하나 사귀였으면 하는 〈216〉 열없는 空想을 해 보기는 하나- 다시 젊어질 수도 없거니와 다시 젊어서 연애를 해 보고 싶은 새각은 없다! 만일 있다면 80세 되면 연애를 마주막 한 번 해 보고 죽어볼가! 할 뿐이다.

嚴興*
(가) 「행복」 하다고 까지야 할 게 없지만 구타여 全民族水準에 빛우어 불행한 部隊에 든다고 自暴自棄하기는 싫습니다.
(나) 글세요. 그것을 어떻게 數字的으로 단정해 말슴함니까.
다만 「萬名」만 되어도 좋겠다고 생각날 때가 더러 있음니다.
(다) 있음니다. -각-금.
그러나 부*없이 그 따위 粉紅色 空想을 하는 것보다는 親友와 더부러 郊外로 나아가 추湯에 日盃酒라도 마시고 얼근이 취해 雜談을 주고받으며 하로의 夕陽을 享樂하는 것이 實現性있는 享樂이며 또한 나의 행복이라고 믿음니다.

崔永秀
4, (가) - 彼此에 알고 싶은 일이오. 그러나 「몇 재번」의 幸福兒인 줄을 모르니까 다행이오.
(나) - 이것 역시 몰라 다행이지오.
(다) - 난 젊은 사람이니 속히 늙어서 듬직한 老人戀愛를 한 번 해 보고 싶으오. 요새 젊은 색시 어듸 믿음직한 게 있읍듸까? 〈217〉
〈209-2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