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명 | 삼천리 제8권 제8호 | |||
호수 | 제8권 제8호 | |||
발행년월일 | 1936-08-01 | |||
기사제목 | 『朝鮮文學』의 定義 이러케 規定하려 한다! | |||
필자 | ||||
기사형태 | 논설 | |||
대체로 定說대로 쫏는다면 朝鮮文學이 되자면 依例히 A, 朝鮮「글」로 B, 朝鮮「사람」이 C, 朝鮮 사람에게「읽히우기」 위하야 쓴 것만이 완전한 朝鮮文學이 될 것이외다. 그러타면 逆說 몃 가지를 들어 보겟슴니다. A, 朴燕岩의「熱河日記」 一然禪師의 「三國遺事等」등등은 그 씨운 문자가 한문이니까 朝鮮文學이 아닐가요? 또 印度 타―골은 「新月, 끼탄자리」등을 英文으로 발표햇고 「씽그, 그레고리, 이에츠」도 그 작품을 英文으로 발표햇건만 타―골의 문학은 印度문학으로, 이에츠의 문학은 愛蘭문학으로 보는듯 합데다. 이러한 경우에 문학과 문자의 규정을 엇더케 지어야 올켓슴니까. B, 작가가「朝鮮 사람」에게 꼭 限하여야 한다면 中西伊之助의 朝鮮人의 사상감정을 基調로하여 쓴「汝等の背后より」라든지 그 밧게 이러한 類의 문학은 더 一顧할것 업시 「朝鮮文學」에서 除去하여야 올켓슴니까. C, 朝鮮 사람에게 「읽히우기」위하야 써야 한다면 張赫宙씨가 東京文壇에 屢屢 發表하는 그 작품과 英米人에게 읽히우기를 主眼삼고 쓴 姜용걸씨의 「草家집」등은 모도 朝鮮文學이 아님니까, 그러타면 또 朝鮮 사람에게 읽히우기 위하야, 朝鮮 글로 훌융히 씨워진 저 「九雲夢」「謝氏南征記」등은 朝鮮文學이라고 볼 것임니까. 스사로 自問自答하여 주시면서 여러가지 경우의 引例를 들어,「朝鮮文學」의 規定을 내려주시압소서, 이것이, 불쾌하고 雜然한 雰圍氣에 싸어잇는 混難된 現下 朝鮮文壇의 중대한 淸黨運動이 될줄 아옵기 再三考慮를 바라는 바외다.〈82〉 朝鮮文學의 개념 李光洙 어느 나라의 문학이라 함에는 그 나라의 文으로 쓰이기를 기초조건으로 삼는 것이다. 支那文學이 漢文으로 쓰이고 英文學이 英文으로 日本文學은 日本文으로 쓰이는 것은 元享利貞이다. 만일 日本文學이 獨逸語로 쓰이고 希臘文學이 梵語로 쓰이엇다 하면 이러한 膽大無學에는 驚惶失色치 아니치 못할 것이다. 「朝鮮文學」은 朝鮮「글」로 쓰이는 것만을 일음이다. 朝鮮「글」로 쓰이지 아니한「朝鮮文學」은 마치 나지 아니한 사람 잠들기 前 꿈이란 것과 갓치 무의미한 일이다. 朴燕岩의 「熱河日記」 一然禪師의「三國遺事」등은 말할 것도 업시 支那文學일 것이다. 그럼으로 國民文學은 결코 그 作者의 國籍을 딿어 어느 國文學에 속하는 것이 아니요 오직 그 쓰이어진 國文을 딿아 어느 國籍에 속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文學의 國籍은 屬地도 아니요 屬人(作者)도 아니요 屬文(國文)이다. 같은 타―골의 작품도 印度語로 쓰인 것은 印度文學이요 「新月, 끼탄자리」등 英文으로 발표한 것은 말할 것도 업시 英文學이다. 또한 英國의 海洋文學者라고 일홈 높은 콘림씨는 波瀾人이어니와, 그의 英文으로 쓴 작품을 波瀾文學이라고 할 사람은 업슬 것이다. 中西伊之助의 「汝等の背後より」는 「朝鮮文學」이 될 아무런 이유도 업슬 것이며 또한 張赫宙, 姜鏞訖 등의 저서도 朝鮮文學이라 할 수 업슬 것이다. 그러면 「九雲夢」「謝氏南征記」등은 어느 나라 文學인가? 그 取材가 支那에서라 하야 支那文學이 아니라 그 文이 支那文이기 때문에 支那文學이다. 다만 작자가 朝鮮 사람일 따름이다. 許蘭雪軒의 詩도 支那文學이요 漢文으로 쓰인 모든 文學- 崔孤雲 鄭圃隱以下 申紫霞, 黃梅泉 등에 이르기까지 모다 支那文學 製作者엿섯다. 그와 반대로 朝鮮「글」로 飜譯된 「三國誌」「水滸誌」며 「海王星」「復活」갓흔 것이 돌이어 「朝鮮文學」이다. 朝鮮文으로 쓰인 까닭으로- 朝鮮 사람에게 「읽히우기」위한 文學이란, 朝鮮「글」로 씨워진 것이여야 할 것이다.〈83〉 朝鮮文學이란 무엇이뇨? 「朝鮮文으로 쓴 文學이라!」 朝鮮 사람 읽을 것만이 朴英熙 一問의 答 朝鮮에 자기의 글이 없을 때 일이라면 漢文을 代用해서 작품을 썻다고 그것이 朝鮮文學이 않이라고는 할 수 없다. 이러한 경우에 限해서는 獨特한 例가 되는 것이다. 타―골, 이예츠...등은 英文學으로 取扱되는 때가 많다. 愛蘭 사람이 썻다는 것보다도 영어로 썻다는 것이 문제되는 것이다. 二問의 答 中西伊之助의「汝等の背後より」등은 朝鮮文學은 아니다. 허다한 제재중에 다만 朝鮮을 제재로 해서 쓴 것 뿐이다. 가령 佛蘭西 作家가 英國 사람의 생활을 제재로 했다고 곧 영문학이 되는 것이 아니다. 더욱이 朝鮮語가 創案된 이후의 작품은 반듯이 朝鮮語로 된 것에 限하야 朝鮮文學이라고 할 수 잇다고, 나는 생각한다. 三問의 答 張赫宙씨의 東京文壇에 발표한 작품, 姜鏞訖씨의 英文 작품등은 中西伊之助의 例와 같이 다 조선인의 생활을 제재로 해서 창작한 것 뿐이니, 모르나, 역시 朝鮮文學은 될 수 없다. 朝鮮 사람이 읽을 수 없는 문학은 朝鮮文學이 될 수 없다. 또한 외국작품을 朝鮮어로 飜譯하게 되면, 그것은 외국문학을 飜譯한 것뿐이지 그것이 朝鮮文學은 아니다. 張赫宙씨는 東京文壇뿐 아니라 朝鮮文壇에서도 現今 노력중이니 말하자면 二重文壇의 작가 라고 볼 수 있다. 言語는 第二次的 廉想涉 한민족을 단위로 본 개성-쉽게 말하야 민족성을 표현하야 민족의 마음, 민족의 혼, 민족의 獨異性을 表白하고 따라서 그 민족의 인생관, 사회관, 자연관들을 描寫表現한〈84〉것이면 그 민족만의 문학일 것이라고 하겟습니다. 그럼으로 첫재 문제느 「쓴사람」의 문제일 것이요, 둘재는 작품의 담긴 내용에 따라서 결정될 경우도 잇겟습니다. 그러고 語와 文은 한 표현수단 즉 器具와 가튼 것인가 합니다. 그럼으로 第一條件이 朝鮮 사람인 데에 잇고 외국어로 표현하얏다고 반듯이 朝鮮文學이 아니라고는 못 할 듯 합니다. 朝鮮의 작품을 번역하얏다고 今時로 외국문학이 되지 안흠과 가티 외국어로 표현하얏기로 朝鮮 사람의 작품이 외국문학이되리라고는 생각할 수 업습니다. 言語에서 決定된다 金珖變 어느 나라 문학을 勿論하고 그 나라의 문학되는 所以는 우선 그 나라의 언어에서 결정된다. 그 결정된 바 언어로써 그 나라사람 즉 작가가 그 나라사람 즉 민중에게 그 나라의 내용을 표현하는 데서 그 나라의 문학이 발생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朝鮮文學이라고 하면 朝鮮語로서 朝鮮 작가가 朝鮮人에게 朝鮮의 내용을 표현하는것에 不外할 것이다. 이것은 대체로 한 民族의 문학이 발생되는 원칙론에 속한다. 그러나 이러케 발생하야 발전하야 오는 가운데 그 내용을 그 民族 이외에 널리 세계에 求하는 경우가 잇스나 그러타 하더라도 결국 그 민족적 특질을 통하야서 일 것이다. 그러므로써 洪碧初씨의「林巨正傳」도 朝鮮文學에 속할 수가 잇다. 그러나 朴燕岩의 「熱河日記」 一然禪師의「三國遺事」는 그 표현된 언어가 한문인 이상 朝鮮文學의 개념 속에 들 수가 업다. 그러면 중국문학도 안이고 朝鮮文學도 안이면 대체 어느나라 문학에 속할 것인가 하는 의문이 일어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過去 엇던 시대에 있어서 朝鮮 학자 及 문인이 그 표현을 한문으로 代한 시대가 이섯든 것만큼 그것은 朝鮮에 있어서의 漢文學史의 영역에 속할 것 뿐이라. 예를 널펴서 印度의 詩望 타―골翁의 영어로 表現된 詩 혹 詩劇은 印度의 국민으로 보아서는 내용은 비록 印度의 것이나, 결코 印度文學은 안이다. 더군다나 印度語가 살어서 印度人의 常用語가 되고 또 문학적 표현이 되고 잇는 이상 더욱 그러타. 만일 우리와 가튼 외국인으로 보아서는 그것이 비록 영어로 표현되엿다 하더라도 그 내용이〈85〉 印度人만큼 타―골翁이 印度語로 표현한 것을 널리 세계에 알이기 위하야 가장 널리 쓰는 英語로 끗처 노앗다는 의미쯤에서, 印度文學이지 한 민족이나 한 국민의 문학 그 자주성에서 보면 결코 純眞한 印度文學이라 할 수 업다. 그리고 예이츠나 싱그의 문학도 우리로 보아서는 그 내용상 즉 愛蘭의 情緖와 神秘과 土薰을 가장 잘 표현한 점에서 愛蘭文學이 될 것이나 愛蘭民族 그 자체로 보아서는 그 亦 純眞한 愛蘭文學이 안이다. 그러나 愛蘭은 오랜 殖民地로서 그 母語를 거진 일허버리고 앵그로ㆍ아이리쉬(anglo arish)라는 말하자면 에리자베스朝 時代의 영어에 켈트고대어의 정서 가튼 일종의 언어가 있어서 싱그ㆍ예이츠ㆍ그레고리부인 등의 표현은 그것에 속하는 一의 特殊的 例外를 짓고 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實인 즉 近代에 와서 愛蘭에는 愛蘭 고대어 즉 母語의 復興運動이 잇서서 예이츠ㆍ싱그ㆍ등의 대표하는 문학은 그것이 게릭어가 안이라는 점에서 약간의 비난도잇다. 그러므로 문학이란 원칙적으로 그 민족의 고유한 언어에 딸이라고 할 것이다. 그러거늘 더군다나 中西伊之助가 朝鮮의 思想感情을 基調로 하야 썻다고「汝等の背後より」가 朝鮮文學에 들 理는 萬無하다. 이박게 東京에서 발표된 張赫宙씨의 소설이나 영어로 씨인 姜鏞흘씨의「그라스루프」가 혹시 외국인이 볼 때에는 그 내용이 朝鮮이라는 점에서 朝鮮文學이라 할는지 몰으나, 우리로 보아서는 결코 朝鮮文學이라고 할 수 업다. 何如턴 여러가지의 특수한 예는 잇다하더라도 원칙적으로는 朝鮮 말로 朝鮮 내용을 朝鮮 독자에게 읽히는 그것이 안이면 嚴肅한 의미에서 朝鮮文學이 안일 것만은 움직일 수 업는 사실이다. 朝鮮을 題材한 것이여야 張赫宙 貴社에서는「朝鮮文學」을 규정하는 定說이라해서, A, 朝鮮 글로, B, 朝鮮 사람이, C, 朝鮮 사람에게 읽히우기 위해서 쓴 것이 완전한 朝鮮文學이라고 햇스나, 나는, 그 가운대「朝鮮을 題材한 것」이라는 조건을 더 하나 넣고 싶습니다. 즉, 朝鮮 글로, 朝鮮 사람이, 朝鮮 사람을 글인 문학을 朝鮮 사람에게 읽히기 위해 쓴 것이 정당한「朝鮮文學」이라고〈86〉하겟습니다. 이렇게 뚜렷한 규정이 있아오매, 이 규정에 넣어 보아, 들어가지 아니하는 것은, 正統的 朝鮮文學이 아닙니다. 따라서 朴燕岩도 一然禪師도, 中西伊之助는 無論 姜鏞訖이나 張赫宙의 일부 소설도 朝鮮文學에는 넣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我觀「朝鮮文學」 徐恒錫 朝鮮文學이 되자면 어떠한 조건을 가추어야 하느냐 이 문제의 해결은 그리 간단하지가 안타고 생각한다. 提案者 이른바 定說「①朝鮮 글로 ②朝鮮 사람이 ③朝鮮 사람에게 읽히우기 위하야 쓴 것」이란 것을 우선 원칙적 조건으로 승인하고 보자. 이 세 가지 조건을 具備한 바에야 이를 朝鮮文學이라 아니할 수 없는 까닭이다. 「九雲夢」과「謝氏南征記」와 輓近의 우리 諸作品은 다 朝鮮文學임이 물론이다. 그러나 여기에 문제되는 것은 이 세 가지 조건 중에 하나나 혹은 둘을 缺한 때, 다시 말하면 하나나 혹은 둘만을 가춘 때에도 그것을 朝鮮文學이라 할 것이냐 아니냐 하는 것과 또「朝鮮 글」,「朝鮮 사람」이란 것은 어떠케 규정할 것이냐 하는 것이다. 그러고 朝鮮 사람에게 읽히우기 위하야 쓴 것이기만 하면 그것이 대다수 朝鮮 사람에게 읽히워지고 잇는 일, 또는 잇은 일이 없더라도 朝鮮文學이라 할 것이냐 아니냐 하는 것도 論難을 要하는 문제인가 한다. 첫재 이 세 가지 조건 중에서 하나만을 가춘 때 즉 A, 朝鮮 글로만 썻으면 B, 朝鮮 사람이 쓴 갓이기만 하면 C, 朝鮮 사람에게 읽히우기 위한 것이기만 하면 다 朝鮮文學이라 할 것이냐 하는 문제이다. A, 朝鮮 사람에게 읽히우기 위한 것이 아니면서 어느 외국인이 자기의 표현을 朝鮮 글로써 하는 경우가 잇을까. 그러타면 그는 血統은 비록 외국인이지마는 朝鮮에 歸化한 지가 오래거나 하여 母國의 語文을 全然 모르는 사람일 것이다. 이런 경우에 그 朝鮮 글로 쓴 것은 단지 草稿에 지나지 못하는 것이오 그것이 그의 母國語로 ?譯되어 발표되엇다면 구태어 그 草稿를 朝鮮文學이라 할 것은 없지만 만일 그 草稿가 우선 발표되어 가지고 그것이 당초에 朝鮮 사람에게 읽히우기 위한 것이 아님에도〈87〉불구하고 대다수 朝鮮 사람에게 읽히워 질 수 잇을 것이 想定될 때에는 이를 朝鮮文學에 編入하는 것을 容許하여도 조타고 나는 생각한다. 朝鮮 글로 썻다는 것은 朝鮮文學을 규정하는데 잇서서 거이 결정적 조건이오 이에는 朝鮮 사람에게 읽히워진다는 사실이 伴함을 通例로 하는 까닭이다. B, 朝鮮 글로 쓴 것도 아니오 朝鮮 사람에게 읽히 우기 위한 것도 아니오 단지 朝鮮 사람이 쓴 것이기만 한 때에는 이를 朝鮮文學이라 할 수 없다. 張赫宙씨의 和文諸作과 姜鏞訖씨의 영문제작은 朝鮮文學에 編入할 수 없다. 솨미쏘는 佛人이지마는 獨逸에 와서 獨逸文으로 獨逸人을 대상으로 하야 쓴 모든 작품은 다 독일문학에 속하지 안는가. C, 朝鮮 글로 쓴 것도 아니오 朝鮮 사람이 쓴 것도 아니오 단지 朝鮮 사람에게 읽히우기 위하야 쓴 것인 경우에는 이를 朝鮮文學에 編入할 수 없다. 中西伊之助의 朝鮮人에게 읽히기 위한 諸作도 日本內地文學에는 속할지언정 朝鮮文學은 아니다. 우리는 李益相씨의 ?譯을 통하여서 비로소 현재의 대다수 朝鮮人은 이를 鑑賞할 수 잇는 것이다. 둘재, 이 세 가지 조건 중에서 둘 만을 가춘 때 즉 A, 朝鮮 사람에게 읽히기 위한 것은 아니라도 朝鮮 사람이 朝鮮 글로 쓴 때 B, 작자가 朝鮮 사람은 아니라도 朝鮮 사람에게 읽히우기 위하야 朝鮮 글로 쓴 때 C. 朝鮮 글로 쓴 것은 아니라도 朝鮮 사람이 朝鮮 사람에게 읽히우기 위해 쓴 때 이를 朝鮮文學이라 할 것이냐 아니냐 하는 문제이다. A는 그것이 朝鮮 사람에게도 贊同으로써 읽히워지는 사실을 伴하는 때에만 이를 朝鮮文學에 編入할 수 잇을 것이다. B는 저 우에서 列擧한 張赫宙, 姜鏞訖, 솨미쏘의 작품이 日, 英, 獨의 문학이라는 것을 반증으로하야 朝鮮文學에 속하는 것이다. 例를 들면 奇一博士의 朝鮮文諸作은 朝鮮文學에 속한다. 이는 朝鮮 사람에게 읽히우기 위한다면서 朝鮮 사람으로서 朝鮮 글로 쓰지 아니한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는 일이다. 만일 잇다 하여도 그것은 朝鮮文學은 아니다. 우리는 어느 외국에 歸化한 朝鮮인의 자손이 諸國語로 쓴 작품을 현재에 잇어서는 朝鮮文學에 넣을 수 없다. 그러면 여기서 문제되는 것이 朴燕岩의 「熱河日記」, 一然禪師의 「三國遺事」등 한문으로 쓰여진 朝鮮漢文學이다. 나는 이것을〈88〉朝鮮文學에 編入하는 것이 올타고 생각한다. 이러케 말하면 나의 所見이 一見 矛盾됨을 指摘할 사람이 잇을 것이다. 여기서 나는 「朝鮮 글」이란 것을 규정함으로써 그것이 矛盾아님을 해명하려 한다. 현재에 잇어서 「朝鮮 글」이라하면「가나다라」를 指稱하는 것이다 함에 異議를 揷할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과거 천년 또는 이 천년 전에도「가나다라」가 朝鮮 글 이엇느냐 하면 누구나 아니라 할 것이다. 또 미래 천년 또는 이 천년 후에도「가나다라」가 朝鮮 글 일 것이냐 하면 아마 保證할 사람이 없을 것이다. 섭섭하게도 현재의 우리는 이 豫測을 더욱 어렵게 하는 事情下에 처하여 잇는 것이다. 혹은 朝鮮 말의 淵源이 오랜 것과 또 그 생명의 길 것을 말하는 사람이 잇으리라. 그러나 오늘날과 같이 言과 文이 일치한 때를 과거 어느 적에 우리가 가젓으며 미래 언제까지나 우리가 가질 것이냐. 과거에 잇어 熱河日記나 三國遺事는 다 그 시대에 문학표현용으로 통용되는 문자를 쓴 것이니 그것이 비록 漢文字라 할지라도 그 시대의 朝鮮 글(朝鮮말은 아니지만)로 인정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그러므로 나는 熱河日記나 三國遺事는 朝鮮文學에 編入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英文으로 발표한 타고르의「新月」,「끼탄자리」가 인도문학으로, 또 英文으로 발표된 예이츠의 작품이 愛蘭 문학으로 인정되는 것은 오늘날 인도나 愛蘭이 그 不運 때문에 교육, 출판 모든 방면에 잇어 영어를 母語보다 더 廣範圍로 사용하게 되어 잇으므로 해서 문학표현용으로 英文을 쓰게 되어가지고 잇다는 사실을 念頭에 두고보면 곧 수긍될 일이다. 만일 우리가 今後 몇 세기를 지난 뒤에 우리의 통용문자가 母語와 일치하지 안는 시대가 온다면(물론 우리는 母語의 純粹性의 保持와 및 母語와 통용문자와의 일치를 위하야 적극적으로 노력하여야 하겟지만) 그때에 이른바 朝鮮 글이라는 것은 또 어떠한 문자가 될는지 모를 것이다. 세계공통어에 功?한 문자가 될넌가, 또는 張赫宙씨의 諸作이나 姜鏞訖씨의 諸作이 그 시대의 통용문자와 같은 문자를 사용 하엿든 관계로 朝鮮文學에 編入되는 때가 올넌가. 요컨대 그 시대에 통용되는 朝鮮 글로 씨여저 가지고 大多數 朝鮮 사람에게 愛讀되기 위하야 나온 것이라면 朝鮮文學이라 하자는 것이다. 그리하여 한번 조선문학권내에 들어온 뒤에는 그것이 다시 鑑賞圈外로 나간 뒤라도 그 내용이 遺産으로서 계승되어 잇을 것인 한에서는 저 朝鮮의 漢文學과 같이 이를 古文學의 待遇를 하야 朝鮮文學의 籍에 너허 두자는 것이다. 그러나 張赫宙씨의 諸作과〈89〉姜鏞訖씨의 諸作은 우리가 아모리 미래를 想定한다 할지라도 적어도 현재에 잇어서 朝鮮文學이 아니다. 그러고 그러한 것이 朝鮮文學의 圈內에 들어오는 것을 적극적으로 방지하는 곳에 朝鮮 문인의 現下의 노력이 잇어야 하겟다. 그러고 여기서 해명을 요하는 또 한 가지 문제는 制作의 동기에 잇어서 「읽히기」위한 것과 읽히우기」위한 것은 裁然히 구별되어야 할 일이며 制作 이후에 잇어서도 단지 朝鮮 사람이 읽는다는 것과 대다수 朝鮮 사람이 읽는다는 것은 명확히 判別되어야 할 일이다. 自己文字의 表現만이 李軒求 외국문자를 빌어서 自民族, 自社會의 사상감정을 표현하엿을 때 이를 어떠케 규정할 것인가?에 대하야 우리는〈90〉非單 朝鮮이 한자를 빌어 썻다는 사실만이 아니라 西歐에 있어서도 한 民族의 문학이 建設途程에 있어서는 佛, 英, 伊에서는 希臘文字, 又는 拉典文字를 빌어썻고 露西亞는 그 전부는 아니라고 하더래도 佛蘭西文字를 다분히 빌어서 썻다. 이것은 문화가 뒤떠러진 사회가 선진문화를 追從하랴 할 때 不可避의 현상이다. 오직 문제는 그러한 異國文字를 사용하여 가면서 如何히 自國 文化나 예술을 早速히 독자적으로 발전식히고 풍부히 하여 가는가 하는데 根本義가 잇다. 즉 그들이 한 世紀 外 乃至 두 世紀의 絶大한 노력에서 완전한 언어, 풍부한 문자를 맹그러 냇을 때 비로서 自國 文學이 第二期的 正統的 建設期로 드러가는 것이다. 自文字를 소유하지 못 헷기 때문에 他文字를 사용하엿다는 조건을 떠나 거기에서 그 민족 그 사회의 고유한 또는 독자적인 그 무엇을 발견할 수 잇다면 그는 廣汎하게 그 민족 그 사회의 문학영역 속에 드러야 한다. 다만 문제는 他文字를 사용하여서 문학이 가지는바 言語的 美表現의 獨自性까지를 완전히 살리겠느냐 하는 것이 문제되지 안을 수 없다. 더군다나 自文字가 완전히 발달됨엿슴에도 불구하고 他文字를 사용했을때는 더욱 그러하다. 즉 自文字 이상으로 他文字를 완전히 또 자유롭게 驅使할 수 잇는가가 거이 불가능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朝鮮과 가티 아직도 완전한 언어의 驅使가 부족을 느끼는 때에 있어서 교육이 가저다가 준 他文字의 浸潤은 容易히 除去하기 어렵다. 더욱 朝鮮은 모든 예술부문 중에서 특히 문학이 이 恥辱的 冒瀆을 계승식혀 왓다. 他文字에서 완슠?히 自我를 해방 못한 그것이 朝鮮文學뿐 아니라 朝鮮文化를 완성식히는데 가장 큰 罪禍다. 그러므로 吾人은 시급히 他文化의 정당한 輸入消化에서 완전한 自我 自文學을 건설하는 것이 第一急務다. 그러나 朝鮮은 그 第一期的 工作도 완성되지 못하고 第二期的 正統的 建設에 汲하는 燥急性이 잇다. 즉 自文學의 풍부는 그 초창기에 있어서 단순히 창작만으로써 완성되는 것이 아니요 실로 그것은 他文化―文學을 自語移植하는데 중대한 意義가 잇는 것이다. 「호??머―ㅣ」나 聖經飜譯이 외국문학에 끼친바 중대한 感化와 영향은 물론 朝鮮에서도 불완전하나마 純粹 朝鮮文字로 된 것은 聖經이 嚆矢가 아니엿든가? 더욱 거기에서 새로운 사상감을 輸入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업다. 이러한 두 가지 길에서 自言語와 文字는 豊富 完成되어 가거니와 朝鮮은 至今 그 어느 한아에도 置重하지 아니하고 이 두 가지가 대립되는 혼란에 빠지고 말엇다. 다소 脫線된 듯하다, 다시 問議에 도라가 타―골이다. 愛蘭文學을 論할 때 여기서 간단히 論結할 수는 업스나 거기에〈91〉그 민족의 사상감정이 傳說的으로거나 또는 현실적으로 나를 불구하고 그것이 한 개의 외국문학과 對等되야 그 외국문자로서의 표현이 예술적 가치를 가젔을 때, 그는 사용된 바 그 문자의 문학영역으로 編成되지 안을 수 없다. 愛蘭文學이나 印度文學이 今後로 영어만을 통하야 표현될 때 그는 차차로 日用되는 바 그 문자의 母國으로 도라갈 운명에 처할 것이다. 그러나 임이 말한 바와 가티 무엇보다도 한 민족 한 사회로서의 독자적 세계를 그 문학 속에 가지느냐 안 가지느냐? 에서 문학의 조국의 규정되는 것이다. 그러타고 他文字를 사용하는 그러한 운명에 將久히 附屬된 사회가 獨自의 自文學을 가질 수 잇느냐? 는 甚히 문제스럽다. 그리고 작자가 自國아닌 외국을 작품의 무대로 하였을 때 이것은 원칙적으로 외국의 작품이 아니요 自國文學이 되는 것이다. 왜요? 「라시―느」나 沙翁이 希臘 羅馬를 取材하엿고 波蘭의 「라키윗치」가 羅馬를 題材로 하엿다고 그것이 希臘文學이거나 羅馬文學이 될 수는 절대로 없다. 국적을 달리 하더래도 異國의 정감과 생활에 충분히 또 완전히 浸潤되기 전 외국 내용으로 自國語로 썻다면 그것은 自國文學이 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타면 가령 그 누가 自國을 題로 외국어로써 썻다면 그는 어느 나라 문학에 속할 것이냐? 는 좀더 데리케―트하다. 그러나 이 점도 다소 언급하여 왓거니와 自國語로 絶對 表現키 가능하다거나 또는 곤란하고 不自由하다면 모르거니와 그러치 아니한 限에 있어서는 실로 이야말로 戶籍이 아니라 國籍이 없는 문학작품이요 동시에 완성된 작품 되기가 곤란할 것이다. 외국어 가령 내가 英語로써 朝鮮을 題材하야 한 개의 작품을 썻다고 할 때 爲先 問題는 작품의 국적문제보다도 작품으로서의 완성문제다. 그래서 그것이 작품으로써 완성되엿다면 그는 표현된 문자를 따라 그 나라 문학의 영역에 들 것이다. 그러치 아니하고 그 작품이 다만 어떤 보고나 소개정도에 끈첫다면 이것은 副次的으로 문학이외의 社會思想史的 견지에서 云爲된 성질의 것이다. 독자문제는 爲先 自國社會에 한정되는 것이 원칙이지만 위대한 작품은 독자의 국적이라거나 시간의 제한을 받지 안는 것이니 여기 更論할 바가 아니다. 이상의 서술을 요약하면 문학은 그 문학의 發達史上에 있어서 異國文學 使用의 시대를 가질수 있으나 正統的으로는 自國言語와 文字에 의한 표현이라야 할 것인 바 여기에는 문학이 가지는 사상 감정문제가 중요한 의의를 가지는 것이요. 작자가 자국인 이라는 것은 이것이 原則인 것이며 독자는 반드시 국적의 제한을 받지 안터래도 거기에 제한되는 것이 보통이라는데 끈칠 것 갓다.〈92〉 朝鮮文學을 두 가지로 規定 李秉岐 나는 이러케 생각합니다. 朝鮮文學을 두 가지로 나누어 하나는 순수한 朝鮮文學 또 하나는 廣泛한 朝鮮文學. 그리고 순수한 朝鮮文學은 朝鮮人이 朝鮮 말 글로 쓴 순수한 문학작품(시가, 소설 희곡 등)이고 廣泛한 朝鮮文學은 朝鮮人이 朝鮮 말 글로 쓴 廣泛한 문학작품(일기, 기행, 書簡, 傳記, 傳說, 談話, 雜錄 등)이나 또는 다른 나라 말로 쓴 순수한 문학작품, 廣泛한 문학작품이외다. 그리고 보면 熱河日記, 三國遺事 등이며 張씨 姜씨의 그 작품은 廣泛한 朝鮮文學이고 中西伊之助씨의 작품은 朝鮮文學이 아니고, 九雲夢, 謝氏南征記 등은 순수한 朝鮮文學에 속합니다. 문학의 取材는 어느 것으로 한 것이든지 상관이 없을 것이외다. 以上 朝鮮 사람에게「읽히움에」 朴月灘 물론 定說대로 朝鮮 글로 朝鮮 사람이 朝鮮 사람에게 「읽히우기」위하야 쓴 것이 朝鮮文學이 될 것이다. 그러나 A예대로 三國遺事, 熱河日記(완전한 문학부류에 속할 것인지 아인지는 別問題로 하고)는 비록 그 문자가 한문으로 되여 잇스나, 우리의 완전한 글이 없섯든 시대와 또한 우리 글이 엇더한 정치적 또는 시대 潮流의 환경으로 인하야 獨自의 權威를 發揚치 못하고 한문으로 代用되야 일반에게 보편화되였든 시대의 작품이니 이것은 한 개인과 한 작품만의 문제가 않이다. 그 시대의 전 사회가 시인하고 통용한 것인즉 글자가 비록 한자로 되었다 할지라도 당연히 朝鮮文學에 속할 것이다. B예 中西伊之助의 「汝等の背後より」등은 물론 朝鮮文學이〈93〉않이다. C예 張赫宙, 姜鏞訖씨 등의 각각 外國文壇에 발표한 그 작품들은 아모리 朝鮮 사람을 材題로하야 썻다 할지라도 지금 우리에게는 훌융한 우리 글과 우리 문학을 맨들 수 있는 시대다. 그러타면 이것은 우리 朝鮮 사람에게 읽히랴는 목적이 않이라 외국인을 상대로 한 것이니 우리 문학이라 인정하기 어렵다. 이것은 A예와 對蹠的 현상을 일운 好箇의 예다. 九雲夢은 비록 模倣한 점이 있으나 朝鮮 사람의 손으로 된 훌융한 朝鮮文學으로 볼 수 있다. 謝氏南征記는 엄밀하게 말하면 번역문학에 속할 것이다. 客觀的 事情에 依하야 規定된다 林和 貴問에 答함니다. 朝鮮文學이 반듯이 具備해야할 요건으로 열거하신 A, 朝鮮 글로, B, 朝鮮 사람이 C, 朝鮮 사람에게 읽히우기 위하야라는, 세 개의 것은 물론 어늬 한아도 빼일 수 없는 것일 것임니다. 그러나 이 세 가지를 具備하지 않은 달은 경우, 즉 貴問의 逆說 A, B, C란, 사실 朝鮮文學 그것을 현실적으로 생각지 안는데서 유래함인가 함니다. 다시말하면 朝鮮文學이란 朝鮮人의 생활적 현실 가운데서 자라나서 그것을 反映하고, 그 向하는 바 最良에 理想에 의하야 嚮導되는 문학일 것임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첫재 현실적으로 이해되고 둘재로 역사적으로 把握될 것임니다. 즉 朝鮮文學이란 朝鮮 사람이 한 개 공용된 사회적 역사적 운명하에 結付되어 있는 동안에 존재하는 것이고, 그 관계가 廢棄될 때에는 스스로 放棄될 개념임니다. 따라서 그 정의하는 것이 설 수 있다면 그것은 個個人의 주관에서가 아니라, 전혀 객관적 事情에 의하야 규정되는 것임니다. 그러므로 各國의 국민문학의 성립이란, 사실, 역사상에 있서 民族 及 民族國家의 形成期인 근대 시민사회와 더부러 確立된 것이며, 一方 中國에 대한 근대적 諸條件을 通한 전국민적 결합이란 것이 破壞되면서부터, 국민문학의 개념이란 본질적으로 동요되고, 사실한 무력한 것이니다. 현대에서는, 印刷術이나 번역 등 외적 현상에서만 아니라〈94〉 그 정신에 잇서 各國의 국민문학으로부터 一個의 세계문학의 과정으로 문화이동의 과정이 特徵化되어 잇슴은 널리 諸家의 認知하는 바인가 함니다. 일즉이 완성한 자기의 독특한 문학을 수립할 결흘이 업섯든, 우리 朝鮮文學에는, 이 문화과정이란, 시작되면서 임이 消滅하엿다고 볼 수 잇슴니다. 韓末로부터 大正10년 前後까지, 朝鮮文學이 문학상의 계급적 分裂을 아즉 경험치 안헛든 지극히 짜른 동안이 일부러라도 우리 朝鮮에 잇서 「루넷싼스」라고 일홈할 수 잇슬 것임니다. 그러나, 周知와 갓치 全民族的 경향은 그 형식에 잇서도, 또 내용에 잇서서도, 명확히 계급적이고 국제주의적인 푸로문학의 擡頭로서 終熄되고 만 것임니다. 그럼으로 이럿케 문학적 현상이 甚히 多端한 現今에 잇서 朝鮮 말로만 썻다고 朝鮮文學이 될 수 업는 일이요 朝鮮 작가가 쓰기만 했다고 朝鮮文學 될 수 업스며 이 두 가지를 떠나 朝鮮 사람에게 읽히기 위하야 쓰기만 하면 朝鮮文學이 될 수도 업시 곤란한 것임니다. A,「熱河日記」나「三國遺事」와 갓치 外語로 쓰지 안코 朝鮮 말로 써야함은 결코 문학의 형식적 이유에서 뿐만 아니라, 거위 전부 朝鮮 사람이 方今 朝鮮 말 이외에 말로는 글을 쓰지 못하는 때문이요 또, 朝鮮의 현실, 朝鮮人의 사상, 감정의 미묘한 「뉴―안쓰」는 이 말 아니고는 최상의 예술적 표현을 獲得하기 어려운 때문임니다. 따라서 朝鮮文學이 단순히 형식적으로만 아니라, 朝鮮 사람의 생활 及 그 장래에 대하야 일정한 공헌을 하랴면 不可 不得已 朝鮮 말에 의하야 씨워질 것은 爲先 결정적인 조건이며, 이러한 의미에 잇서 언어는 明瞭히 사상의 體現者로서의 의의를 갓는 것임니다. 따라서 「熱河日記」「三國遺事」등은, 그 내용의 질에 잇서는 엄밀한 의미의 문학작품이 아닐뿐더러, 진정한 의미의 朝鮮文學이기는 어렵슴니다. 그러나, 朝鮮인이 역사로 써 온 漢詩類와 더부러 일로부터 건설될 朝鮮文學까지를 승한 문학사 가운데 先史的頁 가운데 漢文學史部로 들어갈 수 있는 것을 否宅치는 안슴니다. 나는 이런 종류의 문학적 저술을 대체로 時調類보다도 더욱이 口碑傳說, 歌謠 등에 比하야 엿게 評價하는 者임니다. 다음 「타―골」이나 「씽그, 그레고리, 예츠」이 印度 등 혹은 愛蘭文學이라고 불러짐은 사실 辱된 사실임니다. 그들은 全印度, 全愛蘭의 문학인 거보다 더 만히 英帝國主義와 結托하고, 屈服한 印度, 愛蘭上層의 문학임니다.〈95〉 다시 말하면 살아나가는 印度, 愛蘭의 문학이 아니라, 침약자에게 굴복당한 標衝임니다. 진정한 印度, 愛蘭의 문학은 今後에 다시 시작될 것임니다. 더욱이 그들은 그 외형에서만이 아니라, 내용에 잇서도 印度文學, 愛蘭文學이 되기에는 不少한 難點을 가지고 잇슴니다. B, 日本 內地人으로 朝鮮을 取材하야 쓴 것은 中西伊之助씨 외에 木村某 등이 잇사오나, 다갓치 그것은 朝鮮文學이 아님니다. 中西씨의 印度를 取材한「熱風」을 印度文學이라고 못 부를 것과 갓치 明白히 그것들은 朝鮮文學이 아님니다. 그 작자, 언어 등의 조건뿐만 아니라, 그 내용에 잇서도, 朝鮮에 同情을 가진 外人의 旅行記를 족음 넘은데 불과한 것으로 朝鮮人의 생할 감정을 基調로 云云은 當치안는 말임니다. 그러나 장래 우리의 문화생활 그것이 全혀 국제적 과정에 올랏슬 때에는 이러한 형태로 씨워지는 문학은 국제적이면서 朝鮮的인 문학이 될 수는 잇슬지도 모름니다. 그러나 그것은 먼 장래의 이상에 지내지 안슴니다. C, 歐語로 쓴 姜某씨의 「草家집」 그박게 「九雲夢」「謝氏南征記」와 張赫宙씨의 諸作을 比할 때, 張씨의 것이 그 중 朝鮮文學일 수 잇는 요견을 가지고 잇슴니다. 「草家집」이란 읽지안하 말할 수 업고, 朝鮮 사람이 朝鮮 말로, 朝鮮人에게 읽히기 위하야 쓴 「九雲夢」「謝氏南征記」에 대하야, 그 말은 朝鮮語가 아니라해도, 張씨의 작품은, 그 내용에 잇서 무조건적으로 朝鮮文學的임니다. 웨이냐하면, 그것이 朝鮮 말로 씨워젓스면, 우리들의 독자가 읽어 유익한 때문임니다. 그럼으로 定設化된 三條件을 형식적으로만 구비한대서는 아무 의의를 갓지 안는 것으로, 朝鮮文學이란, 그 내용에 잇서 朝鮮적 생활의 진실한 反映과, 그 역사적으로 필연한 이상에 의하야 嚮導되면서, 萬人에게 이해될 말―조흔 朝鮮語―로 씨워저야 할 것임니다. 그럼으로 문제는 늘 具體的임니다. 大略 以上으로 回答을 대신함니다. 朝鮮文學의 定義 金岸曙 朝鮮 사람이 朝鮮 말로 작품을 製作하엿다 하면 반듯이〈96〉朝鮮 사람에게 읽이기 위하야 하는 한정된 범위가 업다하더라도 그것은 갈데 업는 朝鮮文學이외다. 朝鮮의 문학적 작품이 다 이와 가치 朝鮮 사람이 朝鮮말로 쓴 것이라 하면 조곰도 논의될 것이 업거니와, 문제는 朝鮮 사람으로서 固有한 자기의 말을 쓰지 아니하고 外語를 사용하엿는지라, 이것이 朝鮮文學이냐, 또는 외국문학이냐 하게 되는 것이외다. 이에 대하야 두 가지의 생각을 가젓으니, 그것은 가튼 문학이라도 두 가지로 난호아 하나는 純粹文學이요, 다른 하나는 一般文學이라 하고저 함니다. 다시 말하면 朝鮮 사람으로서 朝鮮말을 사용하야 製作한 작품을 어듸까지든지 朝鮮文學으로서, 순수한 것이 속하는 것이요, 외국사람으로서 朝鮮 말을 사용하야 작품을 製作하엿다하면 그것은 朝鮮文學이나마 일반문학에 속하는 것이외다. 영문학이니, 불문학이니 하는 것은 어듸까지든지 언어을 標準삼아 하는 말이요, 결코 그 작품을 쓴 사람의 국적을 가르치는 것은 아니외다. 이것으로 보면 무슨 국문학이니 하는 것은 어듸까지든지 언어를 標準삼은 것이요, 다른 것은 업는 것이외다. 이예츠가「아이란드」사람이건만 그가 자기의 작품 제작에 영어를 사용하엿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영문학이라고 하는 것이요, 아이란드 문학이라고 하지 안는 것이, 마치 姜용흘씨가 朝鮮 사람이나 영어로 작품을 제작하엿기 때문에 그의 작품을 영문학의 部門에 넛는 것이나 一般이외다. 이럿케 말하면 형식에만 偏重된 감이 업지 아니하야 다시 이야기를 내용으로 돌니거니와, 나는 내용에 대하야 이러한 생각을 가젓습니다. 엇던 작품이든지 그것이 지방적 색채를 가지면 가질사록 그 지방의 인민에게는 가장 깁흔 感銘을 주는 것이외다, 그러치 아니한 것이면 누구에게나 가장 깁흔 感銘은 못 줄망정 理解는 되기 때문에 이것은 一般的이라 할 수 잇는 것이외다. 이곳에서 나는 국민문학과 세계문학를 난호고저 하나, 하나는 어듸까지든지 部分的이요, 다른 하나는 一般的이라는 것이외다. 본래 문학적 작품이란 암만하여도 그 나라사람이 그 나라말로 製作한 것이 아니라면 그 風俗이라든가. 감정이라든가, 습관이라든가 하는 것이 如實하게 나타나기 어러운 것이외다. 물론 예외도 업지는 아니하겟읍니다 만은 아모리 외국사람으로 엇던 나라의 언어라든가, 모든 風土的 奇習이라든가, 감정가튼 것을 잘 안다 하더라도 역시 本國人의 그것과 가치 꼭 들어맛게 그럿케 如實하기는 대단이 어려운 일이외다. 그러면 이것으로 보아 나는 외국사람이 쓴 작품에는 암만해도 本國人의 그것과 가튼 것이 되기에는 여러 가지〈97〉어려운 점이 잇는 것이라 합니다. 이리하야 나는 가튼 朝鮮文學 이건만은 그것을 갈라노코저 하니, 朝鮮 사람이 朝鮮말로 쓴 것은 純粹한 朝鮮文學이요, 외국사람이 朝鮮말로 쓴 것은 一般的 朝鮮文學 밧게 아니된다고 합니다. 姜鏞訖씨의 「草堂」를 朝鮮文學이 아니라 하면 그 외 마찬가지로 朴燕岩의 熱河日記도 漢文學이요, 金春澤의 謝氏南征記도 또한 漢文學이 아니 될 수 업는 것이외다. 영어는 우리와 거리가 멀고 漢文는 우리와 그 거리가 갓갑다는 이유로써 하나는 영문학이요, 다른 하나는 朝鮮文學(漢文學인 것을)이라고 할 수가 업지 아니합닛가. 내용에도 얼마 만치 관계가 업는 것이 아니거니와, 문학은 어듸까지든지 사용된 언어로써 이것을 英文學, 저것은 佛文學, 요것은 朝鮮文學하면서 그 범위를 定치 아니할 수가 업는 것이외다. 만일 이러한 구별이 업다하면 무엇으로써 가튼 文學品을 가지고 이것을 英文學, 저것은 獨文學, 요것은 漢文學하면서 구별해 노흘 필요가 업는 것이 아님닛가. 가튼 타고아 작품이라도 벤갈말로 쓴 것은 印度文學이요, 영어로 번역된 것은 英文學의 部門에 난호아지지 아니할 수 없는 것이외다. 남들은 엇더케 생각하는지 몰으거니와 나는 이럿케 밋고 이러케 보아오는 지가 상당이 오래엿슴니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를 새삼스러이 논의할 필요가 잇는지, 자못 의문듸는 바 이외다. 於城北洞 한글文學만이 「朝鮮文學」 李泰俊 「熱河日記」「九雲夢」등의 문제는 朝鮮文學史를 쓸 이들이 硏究 處理할 바이요, 한글이 유일한, 또 완전한 우리 글로 인정된 이 시대부터는 (과거엔 어떤 예외가 있었던 간에) 첫재 朝鮮 글로 된 것이라야 「朝鮮文學」일터이지요, 朝鮮 사람이 썻드라도 朝鮮말이 아니면 「朝鮮文學」이 아니요, 외국인이 썻드라도 朝鮮 말이면 그것은 훌륭히 朝鮮文學이리라 생각함니다.〈98〉 〈82-9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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