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명 | 삼천리 제13권 제1호 | |||
호수 | 제13권 제1호 | |||
발행년월일 | 1941-01-01 | |||
기사제목 | 아들 | |||
필자 | 韓雪野 | |||
기사형태 | 소설 | |||
1 금년도 기수놈은 중학교 입학시험에서 떨어지고 말았다. 당초부터도 마타 하다고는 생각했지만 두번째니 만치 기수도 어머니도 아버지도 낙망은 더한칭 컸다. 시험 치러 가던 첫날, 기수놈은 아침밥을 통이 먹지 않었다. 어머니는 그것부터 불길한 징조라고 하였다. 사람은 어째떤 먹게 생긴 동물이오 그러니까 첫째 무엇이던지 잘 먹어대야 만사가 여의하게 되는 법이라고 어머니는 생각는 터이다. 그래서 어머니가 기수더러 먹으라거니 안먹는다거니 해서 찌국거리는 것을 학선은 『시험같은 걸 치르는 때는 안먹는 것도 좋아. 배부르면 재주가 맥히는 법여.』 하고 짜장 아는체 지헤를 부려서 안해도 기수놈도 함께 안심시키려 하였다.(266) 그러나 그리면서도 은근히 안심되지 않는 것은 학선이 자신이었다. 『얘, 이따가 빵 사먹어』 하고 단돈 이십전을 기수에게 맡기는 아비의 손은 사시나무 떨 듯 하였다. 처내 없어도 이번은 꼭 합격되어야 하리라고 죄이는 어머니의 왼심이 너무 커떤 것이다. 그날 시험을 치르고 돌아온 기수더러 결과를 물은 즉 그놈은 덮어놓고 잘 치렀다고 말하였다. 하나 일직 중학에 다녀보지 못하고 소학교에서 배운 것마자 말끔 까먹어 버린 아비로서는 시험문제를 옴니 암니 물어가며 잘 되고 못된 것을 따질 재주는 없었다. 그러니 기수의 말을 믿을 밖에 없는데 믿으려니까 마음은 더욱 후들후들 떨리고 가슴은 연신 윽죄어졌다. 『이번에야...』 학선은 속으로 무릎을 쳤다. 내 집에도 이제 중학생이 생기는구나... 이놈의 새끼들 너이만 가방(배낭)메고 감발(각반)치고 엇, 뚤하고 멋을 부릴 줄 아니... 이렇게 아비는 슬기가 났다. 아닌게 아니라 요새같이 중학교에 들기 힘들말룬 옛날의 진사급제보다 못지 않다. 백명인가 그만침 밖에 더 뽑지 않는다는데 입학지원자는 무려 팔백여명이라니 정말 붙기만 하면 삼현륙각이라도 잡힐 경사가 아닐 수 없다. 학선은 벌써 큰 잔치- 잔치라야 겨우 굵은 집 생일잔치만도 못할 것이지만 어째떤 맘만으로는 삼일소연, 오일대연이라도 거푸 차릴 잡두리었다. 제가가에 있는 학생복이니 기성복이니 하는 것을 싸구려로 단참에 두드려 팔아도 좋다고 생각하였다. 뿐아니라 단벌 미천인 재봉침까지 팔아버린다 하더라도 이제부터는 부자 부럽지 않게 잘 벌고 잘 살아갈 것만 같았다. 기수란 놈이 중학에 들기만 하면... 그래 학선이는 시험 치르는 나흘동안, 꼬박이 매일같이 히망과 불안에 떨면서 기수놈의 뛰를 딿아 S중학교로 갔다. 가보니까 기수놈보다 곱절이나 큰 학생들도 있었다. 학선은 처음은 그 전투모를 쓴 덩그렇게 키 큰 학생을 시험치려 온 학생이라고 생각지 않었다. 필시 어느 촌학교 선생이 수험생들을 데리고 온 것이거나 그렇지 않으면 어느 면 면서기가 제 자식이나 동생을 데불고 왔는가 그렇게 료량하였다. 한 것이 정작 알고 보니 그게 모다 쪼고만 기수놈의 경쟁자라 학선은 불시에 이마가 서늘할 지경이었다. 『저런 염체 없는 놈들이라구는, 글세 어린애들 아비라도 너끈 될 놈들이 시험치러 왔으니 기수놈 따위가 될 택이 있는가,(267) 온』 하고 학선은 남몰래 속으로 굵은 학생들을 미워하였다. 학과 시험은 모르지만, 운동장에 나와서 원판(圓板) 던지는 것을 본다던지 달음박질하는 걸 본다던지 하면 대가리 큰 놈은 막비 기수놈의 곱절이다. 『저런 때려 잡을 놈의 새끼라구는, 저놈들이 온 뭘 먹구 저리 센구』 학선이는 정녕 그 굵은 학생들 때문에 기수는 미타하다고 여겼다. 그러나 기수놈의 말을 들으면 노상 그런 것도 아니었다. 키 큰 놈들은 대개 학과가 젠병이라는 것이다. 즉 그들은 대개 여러 해를 두고두고 시험에 떨어지는 축들이라는 것이다. 그래 학선은 적이 마음을 놀 수 있었다. 사람은 키가 적어야 재주가 든다드니 기수도 그래서 키가 적은가 하였다. 그리고 또 적은 학생은 귀인상스럽고 말성을 덜 부릴 것이니 그래서 학교당국이 어린 학생을 좋아할 법도 한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안심할 조건을 타고 난감하나마 희망의 봉오리에 높이 올라앉을 만한 무럽에 됩다 천길 구렁으로 뚝 떨어저 버렸다. 합격자의 방(榜)이 나붙을 때 학선은 지난 밤을 꼽박 새운 눈을 숨벅거리며 기수의 번호를 찾아 보았다. 그러나 보이지 않었다. 대뜸 이마가 섬쪽하나 아직은 그닥 낙망하지는 않었다. 제 맘이 너무 다급해서 도리혜 수이 찾지 못하는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래서 다시 한번 찬찬히 찾아 보았다. 역씨 뵈지 않었다. 그리자 별안간 그는 제 가슴에서 툭하는 소리가 나는 것을 들었다. 그러나 이때까지는 여직 한가닥 희망을 전연 놓지는 않었다. 그 많은 합격자번호 가운데는 아무려나 기수놈의 번호가 어디던지 끼어 있으리라 싶었던 것이다. 하나 그럴 판에, 바루 자기 앞에, 소학교 선생을 에워싸고 병든 병아리처럼 우두머니 둘러선 어린 학생들 틈에서 기수놈을 발견한 학선은 가슴에서 무엇이 털렁 떨어지는 것을 느꼇다. 소학교선생도 학생들도 모다 비맞은 용대기처럼 쾌가 뚝 떨어지고 맥이 날씬 풀려 있었다. 그것은 합격되지 못한 학생들과 그 학생들의 수험결과를 알아보러 온 담임선생이었다. 학선은 불시에 콧날이 시끈하였다. 그는 그만 혼자 돌아올까 하다가 그래도 무엇엔가 맘이 키여서 머믓그리고 있었다. 널은 운동장은 아이 어른으로 왼통 뒤범벅을 치고 있다. 그런데 또 그 학교 선생들이 나와서 합격된 아이들만(268) 추려 세우느라고 이름을 부르고, 그리고 학부형마자 제 아이를 찾느라고 고함을 질러서 한결 더 벅작 고아댔다. 또 그럴수록 그리로 사람들이 몰려서 서루 밀치고 밀리고 하였다. 학선은 그통에 정신이 뗑해서 기수놈을 잃고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하나 기수놈은 좀처럼 보이지 않었다. 얼마 뒤에 겨우 기수를 찾은 때, 그놈은 무엇을 찾고 있는지 그 사람답새기 속에서 허리를 꾸부리고 땅바닥을 허매고 있다. 『얘, 너 뭘하니』 학선이가 기수의 어깻바다를 치며 물어도 그 놈은 별 말 없이 여전히 무엇을 찾고만 있다. 그래서 학선이는 영문도 모르면서 기수놈과 함께 땅을 살피고 있었다. 기수놈은 한참 그렇게 한 끝에야 겨우 사람들의 발길에 채여서 굴러다니는 제 고무신을 발견하였다. 뒤축이 다 달아서 구멍까지 뚫어진 고무신이 엎드러진 채 사람들의 발길에 채여 굴러 다니는 것을 간신히 집어 신고 기수놈은 아비의 뒤를 따라 사람들 틈을 비집고 빠져 나와 이마의 땀을 씻었다. 학선은 아무 말도 하지 않었으나 여기서 또 한번 열패자(劣敗者)의 모습을 상상하였다. 그 모습은 단지 기수놈에게서만 발견하는 것이 아니고 실로 학선이 자신에게서도 발견하는 것이었다. 학선은 흘끔 기수놈의 발치를 내려다 보았다. (어리복이같은 놈이라구는 신발은 어째 단단히 신지 못하노) 시험은 수시 떨어졌달갑시 신발이사 어째 남같이 걸고 못 다니노 하는 생각이었다. 그것이 또한 맘에 약간 분한 일이었다. 그 신발 때메 꿈에도 보고 싶지 않은 열패자의 거림자를 기수놈에게도 제게도 또 한번 더 방불히 될 그려본다는 것이 적이 분하고 아픈 일이었든 것이다. 한데 또 그 신발이란 울타리가 터져서 벗어지기 쉬울 것과, 또는 새 신발을 사재도 요지막은 도저히 얻어 만날 수 없는 것을 겹쳐 생각하니 허물은 저나 기수놈에게만 있는 것 같지 않아서 맘은 더욱 두드릴 곳을 모르는 암담에 빠졌다. 집으로 돌아올때까지 아비도 아들도 암말이 없었다. 그러나 집에 돌아와서 안해의 얼굴을 본 때 학선은 무심코 『매사가 첫번에 않되면 세번까지 간다는 말이 옳은가 봐』 하고 미리 앞을 질러 안해의 물음을 막으려 하였다. 『아니 어떻게 됐어요』(269) 『삼년만에라도 붙기만 하면 천행이지... 제에기 사람의 새끼두 어떻게 많은지 때려 뉘어도 살인이 없겠데』 『아니 그래 또 떨어졌단 말이오』 『아이, 시장해 밥 없소』 하는 학선은 그만 더 묻지 말라는 말이나 지질한 안해는 재쳐 기수놈에게 『얘, 어떻게 됐니』 하고 물으나 물론 무슨 대답이구 있을 택이 없었다. 하나 그만으로 단염할 눈치 빠른 어미도 아니오 또 담막한 어미도 아니다. 그래서 하는 소리가 『남들은 연줄이 좋아서 단번에 든다는데... 무슨 권세로... 애비란게 아이새끼가 육년이나 다니던 학교에나 한번 가서 인사할 줄 아나』 하는 푸념인데 그 남펀을 걸고드는 말투론 웅당 수이 입심이 자지 않을 상 싶으나 끝내는 눈물에 목이 메는지 다시 별말이 없다. 2 학선의 생각은 기수놈을 또 일년동안 더 입학시험 준비를 시키랴는 것이었다. 원체로 말하면 기왕 다니던 소학교 육학년에다가 다시 붙여두고 싶으나 작년에도 그나마 안되었으니까 금년은 더 말할 것도 없는 일이다. 안해 말대로 선생에게 인사 한마디 할 줄 모르는 학선이고 보매 그런 일은 언감생심 맘을 못 먹고 집에서나 한해 더 공부하도록 기수놈에게 일렀다. 하기는 학교 아니고도 입학시험 준비를 시키는 데가 있으나 거기는 월사금이 너무 비싸다. 학비 겸해서 때삭 십오원씩을 내야 한다니 맘뿐이지 도저히 해낼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기수는 또 집에서 일년동안 수험준비를 하기로 되었으나 작년보다 열성이 과이 못하였다. 작년은 부모가 그다지 성가시게 말하지 않더라도 저 자신이 명심해서 복습하곤 했지만 금년은 곁에서 잔소리를 해도 디식은 해서 탐탁히 듣는 눈치가 아니다. 그리고 좀 귀아프게 들볶으면 마지 못해서 공부하는 체하나 귀찮아 하는 눈치가 현연하다. 또 책만 들면 쿨쿨 조으는 버릇까지 생겼다. 한번은, 학선이가 보려니까 밤에 자리에 누어서 공부하는 것 같으게 그런가 했더니 고처 딱이 보려니까 책을 이불에 바쳐 세우고 그 뒤에 얼굴을 가리고 자고 있었다. 『이걸 점 봐. 난 공부하는 줄 알었더니만 이리구 있네』 하고 학선이가 이불을 들석하니까 책은 넘어지고 곤히 잠든 기수놈의 얼굴이 보였다.(270) 『곤한게지』 안해가 말하였다. 『또 내년도 틀렸다!』 『틀니면 점원(店員)이라도 시켰지 별 수 있소. 모다 돈버리 때메 그 악장인데 돈 버는게 장수지』 『그까지꺼 몇 푼 받을라구』 『그래도 이십원 받는 애도 있고, 삼십원 받는 애도 있대요』 『삼십원?』 하기는 삼십원이면 고이찮은 노릇이라 싶었다. 바루 어끄제는 정회비 단돈 이원을 못내서 그 여들엄투성이 검둥이한테 수태 부수 닦였는데 한달에 삼십원이 공중 생기면 학선이 어깨가 거뿐할 것은 물론이다. 그러나 학선에게는 제가 그처럼 원하던 중학교에 가지 못한 원한이 있다. 그런데 또 기수가 그 운명을 밟을 것을 생각하니 그 원정이 나을 줄 모르는 종쳐자리처럼 아프다. 학선이 저도 중학에만 단였더면 그 놈의 재봉침을 껴안고 그 안악네들이 하는 침선을 하지 않어도 좋을 것이다, 죽어도 은장도에 맞아 죽으랬다구 남자란 남자하는 노릇을 해야 하는게지 이게 대체 뭔가. 그러니 기수놈은 어찌하던지 중학까지는 마치게 하리라고 학수는 생각하였다. 기수놈 뿐 아니라 기수의 동생 형수까지도... . 형수놈은 이제 겨우 소학교 사학년이지만 이놈은 기수보다 재주도 있고 또 몸도 튼튼하다. 학수 자신은 기왕 그렇게 됐지만 자식들이야 남만치 못 길르랴 싶었다. 그래서 각근히 신칙해 가며 공부를 시키는 것이나 기수놈은 점점 잔꾀만 늘어서 도적괴처럼 눈치를 보아가며 게으름을 부리군 하였다. 그리고 때로는 꼬박이 공부하는체 하다가는 부모가 방심하는 틈을 타서 슬쩍 빠져 나가기도 하였다. 나가지 못하도록 지루하게 붓들어 두며 금시 몸이 달아서 못 견딜 신융을 하고 그래도 안 내놓면 그제는 밖에 웬놈들이 와서 휘파람도 불고 창가도 불러가며 암호로 불러내려고 한다. 필시 기수놈과 같이 중학교에 들지 못한 동무거나 그렇지 않으면 장난 좋아하는 난당들인 모양이다. 그래서 안해는 『이 물귀신 같은 놈의 새끼들아, 기수를 홀려 내다가 어찔테냐. 기수가 중학교에 들가바 몸살이 나서 그리느냐』 하고 욕을 해서 내쫓지만 그래도 그만 소리를 무서워 할 놈들이 아니다. 안해의 말을 들으면 작년에도 그따위 동무들과 이따금 얼려 논 일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심하지는 않었는데 금년은 나가기만 하면 끼니 먹을 것도 잊어(271) 버리고 노는 일이 종종하다, 어떤 때는 밤에 나갔다가 정 밤중에야 살작 기어들어 오기도 하였다. 어느 날 석후, 학선이가 여니날보다 좀 늦게 가가를 철하고 돌아오니 기수놈이 보이지 않게 안해에게 물은 즉 안해는 맥없는 소리로 『글세, 어디 놀라 갔나보오』 한다. 『저녁 먹고 나갔소』 『공기 치듯 무서너술, 설때리드니 어느새 뵈지 않는군요. 그 놈들이 어디 배곺은 줄이나 아는 줄 알우』 『밥두, 안먹구 대체 뮛들하누』 『글세 낸들 알 수 있오』 『거, 큰 일 났군』 『나두 말리다가 못해, 이제 진력이 나서 말 할 기운도 없소』 『그래 어디 모여서 뭘 하는지 한번 가두 안봤단 말요』 『가보기는 했지만서두 어디...』 『가보면 모른단 말요. 뭘 하는지』 하고 학선이가 캐여 물으니까 곁에서 턱을 들고 듣고 있던 형수놈이 대답에 궁한 어머니를 도와주듯이 『기수가 땅지, 치러 다녀요』 하고 일깨여 준다. 『땅지?』 『응, 참 잘처요. 기수가 이찌방이애요. 그래 돈을 제일 많이 따요』 『돈을 따? 돈내기를 해』 『그럼. 돈을 따서는 사탕 사먹고... 또 동리 애들께서 받을 것도 많고 뀌여 준것도 많아요』 형수놈이 그렇게 말하니까 안해도 그제서 『그 놈이 글세, 돈버는 자미루다 그리구 다니는 모양이애요. 그리고 다른 애들에게 받을 돈이 많으니까 그걸 받노라고 매일 나다니는 가봐요』 하고 말한다. 『밤낮, 돈버리 타령만 하더니 잘됐군 그래』 학선은 어이가 없어 빙끗 웃었다. 『글세 그 놈이 그 애들 또래에서는 제일이라는 구려』 『뭐가 제일이야. 땅지 치기가?』 『아니 그것뿐 아니라 또 있대요』 『뭐가 또 있어?』 『뭐 다른 아이들이 남 안보는 틈에 두 주먹에 돈을 쥔다나요. 그리구는 그걸 맞히는 놈이 그 돈을 먹을 내기를 한다는데 기수놈은 백발백중 영낙 없다는 구려. 아주 귀신같이 맞힌다는데...』 『거, 돈, 돈버리꾼을 낳었오』 『내가 혼자 낳았나 뭐』 『하지만 난 그런 재주가 없으니까 아마 이녁을 닮아서(272) 그런게지』 그래도 재주를 잘못 써서 그렇지... 그게 글세 수학뇌가 있어서 그렇다는 구려. 산술을 잘 하지 않구 그런걸 맞혀 내겠오. 내길』 『엉, 수학뇌가 있어서...』 학수는 점점 더 어이가 없었다. 『동무들 중에 기수가 산술이 제일이라우. 그 애 동무들이 그리는데...』 『... 』 『그리게 중학교 입학시험에 산술만 있으면 으레 붙을겐데 그게 없어서 떨어졌다는 구려』 『온, 가당찮은 소리 자그마치 혀우』 『글세, 나야 뭘 알우. 아이들이 그리구 이야기들 하니까 그런가 할 뿐이지』 『그래 산술공부 시키노라고 가만 내버려 두는 거요.』 『아니 잘난 애비가 잘 단속하구려. 나같은 무식쟁이가 알길 뭘 알겠오』 『그렇지만 임자, 자식, 잘둔 덕에 팔자는 펴게 됐오』 『온, 제 자식일을 가지고도 당신은 빗꼴줄 밖에 모르오』 『빗꼬다니, 그게 무슨 소리요. 않알 말루 아이 어른 할거 없이 남의 것을 먹기는 아마 우리 집 산천으룬 기수놈이 첨일거요. 대대로 남에게 멕힐 줄이나 아랐지 단 돈 한푼이고 공걸 먹었단 말은 들은 배 없으니까 말요』 『공걸 먹자는 놈이 글지. 남의 걸 공 먹자는 놈이 있으니까 세상은 늘 말성이지오』 『하지만 정작 양반 노릇하자면 어디 제것만 먹구 사나. 아마 기수놈이 산천에 없는 양반이 될라구 툭 털어났나보오. 어째든 우리집 산천엔 없든 놈여. 한 것은 아마 내가 장갈 잘 들어서 그런 동뜬 아들을 얻었었나 보오. 어미를 닮았기 그렇지, 그렇잖소』 『아이규, 걱정 말우. 어디 가면 당신보다 못헌데 갈 줄 알우.』 그래서 안해는 심사가 꾸여지기 시작하였으나, 큰 쌈이 되지 않고 만 것은 아비도 어미도 여직 그 아들에게 큰 희망이 있고 핏줄이 켕기는 애착이 있기 때문이다. 3 기수 놈은 종시 시험 준비에는 열이 없었다. 작년까지는 그래도 어느 만치 자신이 있었으나 이제 연 이태를 굴리고 보니까 그 쌈에는 쇠배 이길 성산이 서지 않는 것이다. 그는 차라리 그 쌈이 무서웠다. 또 너무도 분명히 앞이 내다뵈는 무의미한 노력인 것 같기도 하였다. 그래 기수 놈은 벌써 속으로는 중학교 입학시험을 단념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오래도록 아버지나 어머니에게는 그런 내식을 내지 못했다.〈273〉 그러자니까 그때그때 거짓을 꾸며 갈 밖에 없었는데 그 거짓을 꾸민다는 것이 어린 순정에 여간 큰짐이 되지 않었다. 그래 그 거짓을 없애랴고 애를 썼고 애쓰던 끝에 생각한 것이 남의 전방에 취직하는 것이었다. 기수 놈이 부모 몰래 어떤 전기상회에 취직한 것은 그로부터 얼마 뒤인 바루 이해 여름이었다. 기수는 그 사실을 선참 어머니에게 실토하였다. 그러면 자연 아버지에게도 알려질 것이었다. 하나 아버지는 물론 장한 일이라고 아니 할 것이다. 아버지는 수시 제가 지금의 곱절을 고생한다 하더라도 자식들만은 어찌하던지 중학에 보내랴는 것을 기수놈도 잘 알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직판 아버지에게 말을 못하고 어머니에게 알린 것이나 어머니도 학선의 소원을 잘 알기 때문에 수이 그 말을 꺼낼 수 없었다. 그러나 아니 아닐 수도 없는 일이어서 몇 번 자저하던 끝에 웃으깨 모양으로 『글세, 기수 놈, 좀 보겠오』 하고 넌짓이 말을 꺼냈다. 『저놈이 글세, 절로 가서 어느 전기상회에 들기로 했다는구려』 『전기 상회에 들다니... ?』 학선은 무슨 소린지 몰라서 어리둥절 하였다. 『한달에 월급이 20원이라나요. 그리고 며칠에 한번씩 번차레로 숙직이라나 그걸 하면 한달에 이원씩인가 더 생긴다구요』 안해는 그렇게 말하고 내쳐 기수 놈의 발명을 해주듯이 『그리고 거기 다니면서도 짬짬이 공부해서 중학교에 들 수 있다는구려』 하고 좋도록 발을 달았다. 『절더러, 공부하랬지, 누가 돈버릴 하랬나』 하면서도 기실 학선은 언잖은 것도 아니오 또 그렇다고 반가운 것도 아니었다. 『그렇지만 돈벌고 공부하면 꿩먹고 알먹기가 아니오』 『글세 그렇게 됐으면 더 말할 게 있오만... 』 학선은 역시 이 일을 어떻게 결판지었으면 좋을지 저로도 알 수 없는 어리펑한 심경이었다. 『하지만 그 못된 놈의 새끼들과 얼려 다니는 것보다 났지 않겠오. 그대로 두면 아이 새낄 아주 버리겠어요』 『글세, 이녁, 졸대로 하구려』 학선은 별안간 무언지 알 수 없게 섭섭한 맘이 들었다. 『아니 뒤에 가서 누굴 치랄하지 말구 지금 저레, 따이 말하시우. 어름어름해 놓구 뒤에 가서 잘되면 자기 덕이라고 하고 잘 안되면 날가지구 들볶잔 말이오.』〈274〉 『아이규. 나두 모르겠오』 『글세 또 저런다니까. 정말 그럴 말이면 지금 아에 그만 두라고 하던지 허우. 가만히 있다가 중학시험에 떨어지면- 그걸 보지. 암닭이 울드니 내 안될 줄 알았어. 자발없이 상점엔 웨 보냈어 하고 내 껍질을 베끼자구 그리우』 『그럼 임자, 말하구려. 그만 두라구』 『아니 어디 주어 온 자식이란 말요. 어째 잘난 애비가 말을 못한단말요』 『애비자가 어디 잘났을세 말이지』 하고 학선은 그저 일을 다시었다. 『그리지 말구. 어디 그대루 두어 봅시다. 고생해봐야 공부도 잘 되지오. 그리고 정녕 자미없으면 그만두게 해도 좋지 않어요』 안해가 그런즉 학선은 암말없이 그밀그밀 눈만 끔쩍거리고 있어서 안해는 위로 비슷이 『중학에 못들면 어떻오. 그렇게 대범하게 생각해야지. 모두 송침질하듯 바빠하니까 일이 더 안되오』 하는 속이 안해는 아무려나 꿩먹고 알먹는 일에 솔곳이 맘이 키이는 모양이다. 『글세 저만 명심하면 되겠지만... 』 『저 말은 상점에만 다니면 더 열심히 공부하겠다는군요. 못된 동무들과도 범을리지 않구... 』 『저두 인제 섬들 나인 됐지만... 』 학선이가 푹 누구러저서 그렇게 말하니까 안해는 그만 자발없이 성수가 나서 『글세 저, 다리목 김주사네 둘쨋놈은 어느 자동차부에 다니는데 저 건넌집 축음기가 병이 나서 못쓰게 된 걸 잠시 주물락 거리드니만 그전보다 외려 더 요란히 울겠지오. 그리고 저 가갓집 라디오가 병난 것도 그 애가 한두어번 만지드니 그만이애요』 하고 딴전을 써서 기수의 취직에 넌짓이 희망을 붙이고 이어 『그래도 저 최선생 아들은 조선서는 더 다닐데가 없어서 동경까지 갔다 왔다는데두 제 집 전기불이 병나도 어쩔 줄을 몰라요』 하여 점두룩 학교 다녀도 별 수 없더란 말을 비쳐 말하였다. 그리고 내쳐 뉘집 아들은 중학을 마치고도 이웃집 안악이 편지 좀 써달라면 얼굴이 빨개서 저는 조선말 편지는 쓸 줄 모르노라고 하는데 뉘집 아들은 소학교만 겨우 나오고도 동내 방내의 안악들 편지를 도맡아 쓴다는 둥, 누구집 아들은 서울 동경으로 10년남아 공부를 단였어도 면서기 하나 얻어 하지 못하는데 뉘집 아들은 학교문 앞에도 못 가보았건만 해마다 전장을 장만한다는 둥, 이러루한 말을 창황히 늘어 뱉았다.〈275〉 『글세 그야 사람나름이지』 『사람나름이구 말구. 평생 가두 제 구실 못하는 위인이 얼마라구 그리우. 그런데 우리 기수 놈은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해냈는지 알 수 없어요』 『그래 제가 혼자 가서 써 달라구 했나』 『그럼요. 저 혼자서 온 거리로 싸돌아 다니면서 큼직한 상점마다 들어가서 나 좀 안 써줄라오하고 청을 대때요. 그러니 어린애라고 하겠오』 하다가 안해는 문득 생각난 듯이 『글세 나 웃으워서. 요전에 저 아랫말 뉘집에서 기수 놈을 두고 흔삿말을 일르겠지오. 그 집 계집애도 소학교를 졸업했는데 기수보다 한살 아래라는 구려... 』 하고 제가 아이를 잘난드키 슬기를 내는 것을 학선은 『쓸데없는 실없은 소리 하구있네』 하고 빈퉁이를 주었다. 『아니 그런게 아니라, 기수를 집에서는 어린애로 보지만 남들은 그렇게 안 본단 말이애요. 내 말이 그 말이애요. 글세 절루 다니면서 취직하는 것만 보시우. 요새 날새에 취직이 그리 쉬운 줄 알우』 『그 놈이 공부하기 싫으니까 그런 꾀를 생각해 낸게지오』 『그렇지만 제 말이 이제부터 공부도 더 잘한다니 어디 두고 보지오. 돈을 벌어서 과자두 사먹고 고구마두 사먹고 해야 공부가 잘 되겠다는구려』 『글세 어떨는지... 』 『그리구 아니할 말루 한달에 22원이면 조련한 돈이오. 그만해도 한숨 펴일 것 같소』 『펴이겠는지 몰리겠는지 모르겠오. 세상일이 하나나 뜻대로 돼야지. 내일은 좀 어떨가, 내년은 좀 페이겠지. 하지만 갈수록 심산이니... 지금 생각하니 작년이 고작 요순세계 같구려... 』 『어떻게 그럭저럭 살아가겠지. 어디 우리만 혼자 못 살겠오』 『글세 좋도록 하오. 밖에 나가도 눈에 피질 일만 보이고 집에 들어와도 을스냥스러운 일 뿐이니 이제 더 말할 기운도 없오. 그러나 후제 기수 놈이 학교에 못 들더라도 날과 치탈은 마오』 『아니 또 저러구 있네』 그리다가 내외는 자는체 없이 잠이 들었다. 이튼날 아침 기수 놈은 일어나자 말에 묵은 밥술을 대술설 때리고 뿔뿔이 밖으로 나가버렸다. 학선은 기수가 가나오나 모른척 하였다. 저로서도 어떻게 했으면 아비로서의 도리가 될지 아직도 판단이 나지 않은 것이다. 그는 아침을 먹을때에야 『그 놈, 점심시간엔 집으로 오나』 하고 안해에게 물었다.〈276〉 『그럼요. 그 상점에 자전차가 있대요. 그래 이제부터 그걸 타고 다닌다구』 『밤에도 나가나』 『밤 10시까지래요』 『10시까지... 』 그리구 학선은 더 말하지 않고 고개를 숙인 채 가가로 나갔다. 그 뒤부터 기수 놈은 매일같이 부지런히 상점으로 단였다. 그러니 집에 있는 시간은 별로 없고 공부하는 것도 다시 볼 수 없었다. 안해의 말인즉 상점에 나가서 노는 틈에 공부를 한다는 것이나 학선은 그것을 믿을 수 없었다. 『거 그렇게 바뿌고 어디 공부할 수 있나』 『그렇지만 상점에 나가선 노는 시간이 많대요. 그러니 그 시간에는 책을 볼 수 있대요』 『그럼, 주인이 좋아하나』 『노는 시간에 공부하는데 뭐 상관있어요』 『노는 시간에라도 공부하면 거기 정신이 쏠려서 장사에 충실치 못하다고 어디 좋아들 하나. 누구고 장사하는 사람은 매한가지니까』 『그래도 제가 그 일이 자미난다는 걸 보니 주인이 싹싹한가봐요』 『글세... 』 기수는 그 뒤로 여전히 상점으로 단였다. 학선은 그저 언제나와 같이 늘 멍한 표정으로 기수놈을 바라볼 뿐이었다. 4 어느 날 저녁이었다. 학수가 가가를 닫고 집으로 들어오니 안해와 기수 놈이 무어라 신이 나서 이야기를 하는데 어린 형수 놈까지 한목 끼여서 이야기에 한창 꽃이 필 판이었다. 학선은 무슨 영문인지는 알 수 없으나 그 광경이 기쁜 것도 또 반가운 것도 아니었다. 학수는 요지막 아무 일에도 반가울 것이 없었다. 그 놈의 장산지 뭔지는 갈수록 재미가 없어서 그대로 가다가는 재봉침까지 팔아먹고 빈손을 털고 나앉을 판이고 그렇다고 달리 무슨 좋은 계책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요지막은 그전처럼 돈을 크게 벌겠다는 욕심이 있는 것도 아니오 그저 어떻게 한집 식구가 먹고사는 일에나 크게 달리지 않었으면 하는 그것뿐인데 그 단순한 욕망이 무시로 늘 무엇에게 위협을 받는 것 같아서 맘이 두루 심난하였다. 그리면서도 어쩌다가 뜻밖에 돈이 좀 듬직이 생기면〈277〉 가장 제가 장사 수완이 놀랍거니, 운이 강하거니, 그까짓 돈 남만치 못벌랴, 부자가 되재도 대수다 하는 터문이 없는 자긍심이 나고, 또 고작 그러다가도 일이 잘 되지 않고 손이 비게 되면 금시 캄캄한 불안과 공포를 느껴서 마치 그 맘은 임자 없는 쪽배와 같이 지향없는 것이었다. 그래서 때로는 남이 질거운 웃음을 칠 때 그는 도리혀 그 소리에 놀라고 알 수 없는 불안을 느끼기도 하였다. 그래서 오늘 밤에도 안해와 기수가 웃고 있는데 공연히 얼떠름해서 들어오려니까 기수놈은 아비를 보자 갑작이 자라목처럼 쑥 들어가는 시늉을 하더니 이내 밖으로 나가 버렸다. 그래도 안해는 여직 무엇엔지 들떠 있는 상이다. 『자아, 이거 보우』 하며 안해가 한장의 봉투를 내밀며 싱글벙글 웃는데 그 봉투와 웃음이 일시에 섬쯕하니 학선의 가슴에 와서 칵 질리는 것 같았다. 그것이 무엇인지 학선은 벌써 어느만치 짐작이 들었던 것이다. 『그게 뭐요』 『오늘이 기수, 월급날이라는군요. 한푼도 안쓰고 그대로 가져왔어요』 『월급날!』 『어제 그제 같은대 벌써 한달이 됐어요』 『한달... 』 그리며 학선은 멀거니 그 봉투를 내려다보고 있었으나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이내 고개를 돌리며, 『아이, 시장해. 저녁 주오』 하고 밥을 청했다. 안해가 기쁜 듯 조금 떨리는 손으로 저녁상을 차리며, 일변 마음이 들떠서 오늘은 여니 날보다 반찬을 좀 잘해 놨을걸, 이제는 장에 가도 반찬을 살 수 없으니 내일 저녁이나 좀 나우 차릴가, 기수 놈도 한밥 잘 멕여야겠고, 형수도 그 덕에 배를 좀 두드리게 해야겠다- 이런 생각을 하는 동안, 학선은 암말없이 얼빠진 사람처럼 멍청하니 앉었다가 흘끔 기수의 월급봉투를 내려다보고는 제낌에 훔칫 놀란 듯이 또 고개를 돌리고 다시 멍해서 건공을 바라다보고 있었다. 학선은 이렇게 여러번 그 월급봉투에 놀랐다. 그는 저녁을 다 먹을 때까지 다시 아무 말도 하지 않었다. 안해가 다시 기수 놈만 상점에 착실히 뵈면 여섯달에 한번씩 월급이 오른다고 하고 또 그 상점에서는 지금 기수 놈이 제일 똑뚝해서 그 애보다 먼저 들어간 아이를 오라지 않어서 이겨먹을 것이라고 말하는 것을 학선은 시종〈278〉 듣지 못하는 체 하였다. 『글세 기수 놈이 어떻게 하던지 형수놈은 제가 벌어서 대학에까지 꼭 보낸다는구려』 하고 안해가 말할때 학선은 밥술을 던지고 기수의 월급봉투를 그대로 쥐어 호주머니에 넣자 용수철처럼 벌떡 일어섰다. 『아니 어디로 갈라우』 안해가 이렇게 물어도 학선은 아무 대꾸를 안하고 『그건 웨 가지구 가우』 하고 물어도 역씨 모른척 하고 성큼성큼 걸어서 거리로 나가버렸다. 학선이가 다시 집으로 돌아온때는 술이 억병이 되었었다. 그래 부엌벽을 발로 자이다싶이해서 부엌문을 찾은 학선은 부엌에 들어와서는 거지반 기다 싶이해서 정주로 올라왔다. 『아니, 어디서 술이 이렇게 취했오』 안해는 그리지 않어도 벌써 화가 좀 났는데 학선의 한다는 소리가 또 불 붙는데 키질격이다. 『어이, 유쾌허군』 『유쾌해요. 기는게 그래 유쾌하단 말요. 네발 가진 짐생이라야 기는게지. 창피한 소리말구, 일어나 옷이나 벗어요』 『네발로 기여도 내가 좋으니까 좋지. 두발로 걷자니까 어떻게 힘든지 네발로 걷는게 제일야. 제 졸을대로 걸어야지. 무슨 소용야. 비켜, 비켜... 『아니 어쩔라구, 술을 이렇게 자셨오』 『유쾌하자구 먹었다니까』 『거, 장이 유쾌하겠오. 말은 알아듣는 수가 용소. 귀는 취하지 않었오』 『모르는 소리, 술이 어떤 것인지 모르는 소리다... 임자 꿈을 꿔봤지? 꿈에 몸을 꼬부리고 다리를 모두고 자면 도무지 다름박질 칠 수 없지. 그게 얼마나 괴로운 일이여. 그렇지만 제 맘대로 사지를 죽 펴고 자보란 말야. 그러면 하늘로 풀풀 날아다니든지, 줄다름을 치던지 마음대로 아닌가. 술을 먹으면 바루 그 모양이여. 참 좋아. 마음이 제멋대로 날거던. 그리게 임자두 한번 먹어보란 말야. 어떤가... 』 『실없은 소리, 말구. 이 옷이나 벗어요』 『옷을 벗어? 응, 그래, 이 양말을 점 벼켜주어. 이 저고리도... 뭐가 이렇게 거추장스럽고 걸거치누. 이걸... 이걸 점 벼껴 달라니까』 『다릴 가지고 가만 좀 있어요』 『아이 니 다릴 어째 이리는 거야. 이거 안 놀테여... 다릴 부뜰어서 날 꿈에 욕뵈잔 말인가』 『가만 있어요. 개굴청에 빠졌나 양말이 어째 이 모양이요』〈279〉 『아니, 다릴 그래 안 놀덴가』 하ⓒ° 학선이가 연신 다리질 하는 걸 간신히 부뜰고 양말을 벼꼇다. 『자리에 바루 누어요』 『어이, 시연하다』 그리고 학선이는 노랬가락을 부르고 또 무슨 유행가를 늴늴 그리드니 별안간 기운이 나는지 벌덕 일어나 앉으며 체조나 하듯이 팔을 전후좌우로 뽑았다 꺾었다 하며 『엇, 둘』하고 고함을 치고 나서 안해에게 『건데 여보, 나 오늘 참 유쾌한데 이녁도 점 유쾌하게 놀아보란 말요』 『나두 유쾌하오』 『유쾌해?... 에기 뭐가 유쾌하단 말인가』 『잔소리 말구. 어서 누시우』 『잔소리? 그래 뭐가 유쾌한지 말을 해보란 말여. 말을... 』 『그럼 유쾌하지 않오』 『유쾌하지 않어? 유쾌한 줄을 번연히 아는데 유쾌하지 않어. 그걸 말이라구 있담』 『성가시게 굴지 말고 어서 누어요』 『글세 말을 해보라니까. 유쾌한 내력을... 』 『내겐 아무것도 유쾌할게 없오. 있을 택이 있오』 『없어... 분명 없겠다? 그러다가 있으면 어쩔텐고』 『없어요』 『그럼 또 한번 뵈여줄가. 자아... 』 그리며 학선은 호주머니에서 기수의 월급봉투를 끄내어 안해의 앞에 철석 내던졌다. 그것은 아까와는 달리 꾸겨지고 또 옆구리까지 터젔었다. 그 터진데로 드려다보니 그 속에 있어야 할 지전이 보이지 않는다. 안해는 대뜸 눈쌀이 빳빳이 섰다. 『돈을 다 어떻게 했오』 안해가 가시있는 소리로 물었다. 『돈? 돈이 게있지, 어딜 가』 그것은 좀 어물어물한 소리다. 『여기 있긴 뭐가 있어』 그리면서 안해가 그 봉투를 집어다보니 그 밑구녁에 꾸겨진 지전 몇 장과 잔돈 얼마가 있기는 있으나 얼른 보기에도 얼마 아니라 안해는 좀 더 약이 올라서, 『죄다 쓰지. 이건 웨 남겨왔어』 하고 봉투를 학선의 앞에 도루 팡개첬다, 잔돈이 울리는 소리가 절렁 난다. 『싫으면 가만두어. 내가 쓸테니. 한번 더 취하기가 어딘가』 『창피할 땐 두두벌그려도 났다구. 염체없는 소리 말아요』〈280〉 『술 사먹었어. 술... 』 『잘 했오. 잘 했어... 어린애가 뼈빠지게 벌은 돈을 진탕 처족였으니, 장하오』 하는 안해의 징징그리는 소리가 거이 울음이 될 듯한 것을 듣자 학선은 됩다 기가 올랐다. 『소갈머리 없는 소리 말아. 먹구 싶은 걸 안 먹으면 속을 놈이 뉘 아들인구. 내 기껏 처먹어 볼난다. 그러면 낭에 어찌되나... 그놈의 봉투가 없어도 그렇게 장해할까』 『벌지 못했으면 좋겠군. 하는 소리가... 』 『아니, 그놈의 봉투에 내가 속았어. 그래 한번 처족여 본거지』 『장-허오』 『그래도 아직 멀었어. 암만해도 바닥이 보이지 않으니... 한번 술을 칵 처먹고 죽었다가 살아날 수는 없나』 『그래도 영, 죽고 싶지는 않은가 보군요』 『웬걸, 나던지 남이던지 어느 게구깐에 바닥이 탁 나얄텐데 제낌에 숨이 지기를 바라고 또 제절로 살아나는 걸 기다리자니 갑갑해서 살수가 있나』 학선은 한참 그렇게 혼자 지꺼리다가 잠이 들어버렸다. 그 며칠 뒤에 학선은 중학강의록을 주문해다가 기수 놈에게 주었으나 기수 놈은 한두번 그림만 둘쳐보더니만 그 뒤는 별로 보는체도 없이 그대로 몬지 낀 책상에 처박아 둘 뿐이었다. (15·12) 〈281〉 〈266-28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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