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명 | 삼천리문학 제1집 | |||
호수 | 제1집 | |||
발행년월일 | 1938-01-01 | |||
기사제목 | 創作方法은 무엇을 朝鮮文壇에 寄與하엿는가? | |||
필자 | 朴英熙 | |||
기사형태 | 문예평론 | |||
朝鮮文學의 자기비판은 사실로 본다면 대단히 불명확한 가운데서 실행되엿다고 할 수 있으며, 또한 그 자기비판에 결과는 무엇인가 하는 것을 한 번 회상 해보는 것도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현재 朝鮮文壇의 進展을 위해서는 모름즉이 그 비판과 결과를 분명히 하지〈106〉 않으면 아니되게 되엿다. 자기비판이라는 것은 물론 자체에 모순이 발견될 때에 실행되는 것이니, 즉 어떠한 결함을 除去하고, 그 대신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데서 그 의의를 형성하는 것이다. 만일 자기비판의 결과가 이렇다면 文學이나, 일반문화에 있어서 자기비판이란 명확하면 그럴수록 그 결과는 거대한 것이다. 自己批判은 自己崩壞가 아니고, 自己更生이며, 自己消滅이 아니고 自己救出이다. 이에 관해서는 수년을 두고 나의 論難한 바 이였었으니, 그 細論을 피하거니와, 그 중요한 것을 말하면, 작가와 비평가 문제며, 문학 대 정치의 문제이였다. 문학을 건설하려는 작가들은 비평가들의 모순이 생기는 虛隙을 타서 그 비판의 소리가 蜂起하엿다. 또한 평론가들도 상호간 論戰이 전개되였으니, 그것이 확실한 進路가 있어서 그리하엿다고 하는 것보다도, 과거와 현재의 그들의 문학에 대한 태도가 무식하며 난폭한 것이 부당하다는 것만은 너무도 확실하고 분명함으로, 爲先 이 부당한 것을 비판하려고 하였든 것이다. 文學上 本質問題와 또는 文學上 技術問題에 빛이여 보아서, 과거 문학이론에 비판될 것이 많이 있었으나, 그 중에도 대표로서 論題를 삼을 것이 있으니, 그것은 즉 創作方法이라는 한 기괴한 방법이다. 朝鮮文壇에는 지금도 오히려 이 방법을 萬能膏와 같이 사용하려는 論客이 있어 청명한 호수를 어지럽게 하려는 것을 보앗고, 이 여세가 오히려 작가를 指圖하며 文壇을 動搖식히여 보려는 野望이 때때 발표되는 것을 볼 수 있다.〈107〉 과거의 작가들도 오래동안 마음속으로 고뇌하여 온 것이, 이 창작방법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국가를 指圖하는 대신에 무거운 짐으로 두억개를 나리 누르고 맥힐듯한 「마스크」로 그 입과 코를 트러막어 窒息하게 한 것이였다. 創作方法이란 것은 文學을 議會通過案의 一件으로서 취급하야, 문학을 변질케하며, 문학을 低下식히였다. 즉 非文學者, 非藝術家들이, 推想한 規定을, 문학자에게 예술가들에게 寄與하려는 蠻勇과 矛盾을 指摘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러한 評壇華麗하든 때에 작가들의 기분이 우울하여 그 創作慾을 減退식히였을지언정, 누구 한 사람 그 創作方法을 감사히 받고, 그대로 창작한 사람이 과연 있엇든가? 林和氏는 林和氏의 例의 創作方法을 說하고, 金南天氏는 그의 告發文學의 創作方法을 웨치고 있으나, 林和의 시는 低廉한 哀調와 눈물섞인 넉두리 뿐이며, 南天은 그 創作이라는 것이 모도가 結論??한 人道主義(?)의 薰香을 피우고 잇지 아니한가? 그래도 氏 등이 創作方法을 力說한다면 氏 등은 맛당이 詩를 그만두고 小說을 그만둘 것이다. 神이 接하지 안는 巫女의 眞言은 처음붙어 그만둘 것이다. 또한 그들이 만일 그들의 創作方法에 摘應하게 썻다고 辯明을 한대도 좋은 일이다. 그러나 辯明을 하기 시작하는 작품은 임이 그 가치를 쉬웁게 알 수 잇는 것이다. 이것은 다른 까닭이 아니라, 문학의 세계, 즉 思索의 세계, 정서의 세계는 따로 독립되여 있어서, 이곳에 理解가 없거나, 적은 사람은 발을 드려놓지 못하는 것을 알어야 할 것이다.〈108〉 작가가 시대를 반영하며, 그 生活를 재현하는 것은, 과거의 저명한 작가에서 보는 바와 같이, 그 範圍가 실로 광대하다. 그뿐 아니라 각각 상이한 길에서 동일한 결과를 나타내는 것이니, 그 각각 『相異한 길』이라는 것은, 작가의 개성과 자유를 충분히 발휘하는 고귀한 활동이다. 近間 세계적 화제를 제공하고 잇는 『지-드』의 『싸벳트 旋行記』 -또 그 『修正』 등에서 보는 바와 같이, 인간의 개성과 자유는 문학 뿐만이 아니라, 인간의 지적 及 정서적 활동의 발전에 있어서 가장 고귀한 것이며, 문화의 발전을 높이는 것이지만 만일 이것을 인위적으로 抑制할 것 같으면, 그때의 文化는 저하되고, 문학도 衰退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러나 創作方法은 모다 동일한 길에서 동일한 결과를 나타내라는 것이니, 이것은 명령이오 규칙이다. 또 創作方法은 동일한 관념형태 - 의식형태를 소유하도록 하라는 것이다. 創作方法이란 것이 형식보다도 意識에 重置하는 것도 물론이다. 국가는 작품에다가 동일한 意識을 주입하기 위한 것이니, 만일 그러타면 文學보다는 『唯物史觀』을 大增刷하여서 선포할 것이다. 文學은 그 본질에 있어서 완전한 개성의 深化에서 출발하는 까닭에, 그 인생관이나 사회에 대한 이상이 相異하게 되는 것이나, 그것의 최후의 결과만이 어떠한 範圍에서 동일할 수 있는 것이다. 즉 『톨스토이』의 愛의 意識과 『떠스도이에후스키』의 愛의 觀念과 혹은 『유고』의 人間愛에 대한 이상이나, 『입센』의 인생과 사회에 대한 理想 등이, 모다 결국 인생과 사회의 향상을 위한 훌융한 理想이라는 점에 일치할 수 있으나, 이것이 일치하기 전에, 그들은 이 길을 개척하기 위해서 각각 相異한 길에서 그 개성이 발전된 것이다.〈109〉 더욱이 이와 같은 創作方法은 문학적 유산을 적게 갖은 朝鮮作家들에게, 문학을 가르치기 전에 『컴뮤니슴』을 트러넣려고 하엿다. 傾向作品을 볼 때 硬固하고 粗雜한 것은 그 主眼이 문학에 잇지 아니하고 意識에 있엇든 까닭이다. 創作方法이 남기여놓고 간 곳에는 어느 곳에나 荒草가 더부룩할 뿐이엿다. 또 創作方法은 문학에 있어서 그 偏狹性을 極度로 발달식히려고 하엿다. 그것은 인생을 全體性에서 이해하려 하지 않고, 인생을 小部隊로 재편성하여서 속히 戰地로 派遣하려는 것이엿다. 그러한 까닭에 文學의 범위는, 創作方法에 충실하면 할수록, 점점 좁고, 적어지기 시작하여서 나종에는 자기 자신까지도 질식하게 된 것이다. 小部隊로 分列된 그 小社會의 편견은, 작품의 題材를 제한하고 제한하야, 늘 한가지의 극히 단순한 생활을 반복하야, 작가 자신도 이에 厭症을 내고 문학의 終末을 부르지젓다. 이와 같은 穿地를 버서나는 것이, 문학의 진실한 진전을 위해서 필요할 줄노 알고, 제 각각 그 誤謬를 지적하여 왓다. 그러나 현재에 朝鮮文壇의 一角을 점하고 있는 批判派들을 보면, 극히 불건전한 상태를 呈하고 잇다. 自己誤謬를 비판하엿다는 그들은, 혹은 浪漫主義적 口吻을 빌러 자신을 분장하며, 혹은 人道主義의 해설로서 도덕적인 치마자락속에 隱身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것은 근본적인 문학상 『리애리슴』을 연구하는 것도 아니며, 그 새로운 진전을 꾀하는 것도 아니다. 그들의 論據를 檢討할진대, 사회적 사실을 高調하야 論하는 것은, 가난한 생활을 쓰면, 『리애리슴』 작품이라고 웨치는 것이며, 浪漫主義라는 것도, 결국은 浪漫主義를 高調하는 것이며 人道主義라는 것도,〈110〉 人間愛를 論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으로서 맛당이 살어가야할 그 길의 經濟政治로 歸結하려는 것이니, 문학은 결국 옛날 그것에다가 간판만 새로 칠한 것이다. 그러므로서 現今 이러한 문제로 喧?를 이르키고 있으나, 작품에는 아모 反響도 보이지 안는다. 創作方法이란 만인을 一意識으로, 一方向으로, 一方法으로 지도하려는 이 傲慢不遜한 이단적 자칭 선각자의 가면을 벗기여 버려야 할 것이다. 朝鮮文壇의 一角에는 지금도 이와 같이 작품없는 이론, 문학 아닌 문학이 문학을 변질코저 하고 잇는 것이다. 創作方法이 文學에 끼친 바 그 ?果는 극히 적고, 다만 虛構와 空論을 일삼고, 實際와 修養을 등한시하는, 악습관만이 장려되여서, 日淺한 문학청년들도 으레히, 創作方法을 들고나와서 文壇을 씩그럽게 하는 것이다. 문학과 창작에 造詣가 깊지 못한 사람이 創作方法을 가르치는 것은, 醫術도 모르고 處方箋를 쓰는 것과 같어서, 그다지 우수울 것도 되지 못하지만, 다만 朝鮮文壇의 보다 더한 진전을 위해서는 하로 밥비 이 創作方法의 기괴한 현상을 是正해야 할 것이다. -(끝)-〈111〉 〈106-1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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