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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고지시대 작가들] 소설가 천승세 “문학동네 변질된 지 오래… 문학은 운명인데”

이강기 2015. 10. 1. 22:29
[원고지시대 작가들] 소설가 천승세 “문학동네 변질된 지 오래… 문학은 운명인데”

[2007.04.08 16:01]     

 

[쿠키 문화] 소설가 천승세(68)는 천상 바다의 아들이다. 그에게는 바다의 신 포세이돈의 아들 오리온의 이미지가 있다. 그리스 신화에 따르면 오리온은 바닷속을 걸을 수 있는 힘이 있었는데, 너무 거인이어서 바닷속에 들어가도 바닷물이 어깨밖에 닿지 않았다고 한다.

지난 4일 느즈막, 흑산도 홍어가 해풍에 곰삭으며 풍기는 암모니아 냄새로 코끝이 허물어지는 목포 선창가. 천씨가 단골이라며 앞장선 횟집에 마주 앉자 창밖으로 삼학도가 손에 잡힐 듯 내다 보인다. 선창가에서 이난영의 ‘목포의 눈물’이 서럽게 들려온다. “사공의 뱃 노래 가물거리며 삼학도 파도 깊이 스며드는데 부두의 새 아씨 아롱 젖은 옷자락 이별의 눈물이냐 목포의 설음∼”

움푹 패어 남보다 두배는 더 눈물이 고일 것 같은 그의 눈동자에서도 홍어의 톡 쏘는 육질이 느껴진다. 1958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점례와 소’가 통과되었으니 올해는 그의 문단 데뷔 50주년이기도 하다. 반세기동안 떠돌았던 곳이 강화, 제주, 인천을 찍고 다시 고향 목포다. 지명으로만 봐도 바다 없이는 못사는 사내인 것이다.

“요즘 작가들은 문학이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지 잘 모를걸세. 37도 체온이 벌벌 끓던 시절에서 보면 지금 이게 문학동네이기는 한지 몰라. 그때에 비하면 요즘 문인은 문인도 아니지. 요즘 문학동네는 완전히 변질됐어. 본체가 바뀐게지. 창작이란 육신을 던져버리는, 예술을 위해 순교하는 장소인 것인데….”

그가 말하는 그때란 긴급조치 1호 발동으로 대한민국 헌정 사상 가장 엄혹한 해였던 1974년 11월 민족, 민중, 민주를 지향하는 문예운동조직인 자유실천문인협의회(자실)가 태동했을 때부터 1987년 6월항쟁의 승리에 힘입어 사단법인 ‘민족문학작가회의’(민작)로 재창립되던 시절로 거슬러올라간다. “자실 부위원장을 맡고 있었는데 그때는 회원이 429명이었어. 다 뜨거운 아이들이었지.”

왜 뜨거운 아이들이었던가. 민작은 989년에 남북작가회담을 추진했다. 고은 시인을 비롯한 많은 문인들이 버스를 타고 판문점으로 향했으나 정권의 탄압으로 결국 무산되고 말았다.

“문인들이 마포서에 압송되었는데, 나는 후방 사령관으로 작가회의 사무실에 남아 사태를 주시했었어. 난 글쓴다고 해서 문인들이 문약(文弱)인게 딱 질색이야. 문인도 펜뿐만 아니라 완력으로도 강하다는 걸 보여줘야겠다고 생각했어. 마포서에서 고생하고 있는 문우들을 위해 바카스병에 소주를 담아 경찰서로 돌진했는데 그때 형사들이 우리를 보고 ‘풀잎’이 떴다고 하더군. 기동대의 포위를 뚫고 들어가 유치장에 갇힌 문우들에게 박카스를 전달했지….”

그는 당시를 회상하는 듯 한참 말이 없다가 입을 열었다. “내게 아름다운 시절은 그게 끝이었어. 하지만 아름다운 사람들을 기억하기 위해 요즘 문단 회고록을 쓰고 있지. 천상병, 박재삼,이형기…. 작고한 문인들이지만 그들의 삶이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요즘 사람들이 알아야하겠기에 조만간 ‘꽃같은 세월아, 꽃같은 사람아’라는 제목으로 책을 펴낼 생각이야.”

천승세는 문학과 삶이 일치하는 드문 문인 가운데 하나다. ‘포대령’(1968) ‘신궁’(1977) ‘혜자의 눈꽃’(1978) 등의 작품은 그를 전후 리얼리즘 문학의 최고봉에 위치시켰다. 인정주의에 입각해 인간다운 삶의 가치를 정(情)의 세계에서 찾으려는 한국적 휴머니즘을 문학적으로 승화시켰던 것. ‘포대령’의 주인공 김달봉은 전쟁때의 기억을 떠올리면서 자신의 존재 의미를 느끼는 문제적 인간으로 그려진다.

“현재는 모든 공간이 영내야! 모든 사람은 모두 포병이어야 해! 모든 모순은 다 적이야! 생활하는 모든 전선은 치열한 전선이야!”(‘포대령’에서)

‘포대령’의 이 구절은 작품이 발표된지 40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우리 삶의 진경에 대한 커다란 울림으로 다가온다. 게다가 한국희곡 문학의 백미인 그의 작품 ‘만선’(1964)은 민족사의 총체적 진실에 육박해 있는 토속어의 보고가 아니던가.

그에게는 아직 미완의 작품 하나가 남아 있다. 1985년 조정래씨가 주간을 맡고 있던 월간 ‘한국문학’에 연재했던 ‘빙등’(氷登)이 그것. 한국 문학뿐만 아니라 세계 문학에도 전례가 없는 베링해에서의 원양조업 경험을 바탕으로 한 이 소설은 5부작 가운데 2부작까지 쓰여진 상태에서 중단되고 말았다. 안기부의 압력이 있었던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문학은 충동이야. 그 순간에 쓰지 않으면 안되는 충동. 20여년을 묵히다보니 작품에서 멀어질수밖에.”

그가 최근 민족문학작가회의에서 ‘민족’ 이름을 빼자는 이른바 개명파들에 관해 언급할 때는 특유의 다혈질적 언성이 거친 파고를 타고 있었다. “민작 회원이 현재 1400명이라는데, 이 가운데 200명쯤은 문인협회에서도 받아주지 않는 자질없는 자들이지. 전혀 이질적인 회원들을 쓸어모은 조직에서는 외연 확장만 신경쓸 뿐, 내포가 없는 거야. 외연은 세력일뿐, 그게 문학은 아니라는 말이야. 요즘 문학은 내포가 없어. 문학이 한 권세로 가버리는 시대지. ‘민족’(national)을 빼자고 주장하는 개명파들에게 한 마디 하고 싶네. 난 영어는 모르지만 ‘national’이 절대로 우익을 반영하는 게 아니야. 오히려 ‘민족’을 빼자는 주장 자체가 문예사대주의에 의한 문명 비판인 것이야. 그들이 문예보수가 되어 있는 것이지. 쉽게 말하자면 문인들 간의 잔정마저 버리자는 것인 요즘 개명파들이 하는 짓이야.”

그는 요즘 문학판이 못내 섭섭하다. 문학이 취미로 전락되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서다. “문학은 운명이어야 하는데…. 그게 다 자실이 해체되고 민작이 사단법인화되면서 시작된 것이지. 난 민작이 정부 예산을 받는 등록단체가 되면서 이런 사단이 벌어진 것이라고 봐. 지금도 지방 아이(문인)들 사이에서는 민작 개명파들에 대해 분개하면서 차라리 분당하자는 목소리도 들리지. 하지만 난 본토수복을 할지언정,민작을 둘로 쪼개는 것은 안할 작정이야. 민작은 문학처럼 내 운명이니 말이지.”

한 시대의 파도를 넘어 오늘에 이른 그는 유달산 자락 용당동의 한 허름한 아파트에서 사위어가는 문학혼을 되살리기 위해 애면글면 씨름하고 있었다. 무엇이 그를 이 곳으로 떠밀었을까. 상념은 검푸른 물구비가 되어 선창가를 매섭게 때리고 있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목포=정철훈 전문기자 c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