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분야에서는 주로 정부개입과 시장원리 간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는가, 재벌개혁 문제에 어떤
입장을 취하고 있는가, IMF나 국제금융자본으로 상징되는 미국식 신자유주의에 어떤 태도를 견지하는가 하는 점들이 해당 학자나 지식인의 이념적
방법론적 기반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작용했다.
그러나 대중적 인지도가 높은 인물들에 대해 경제학자 또는 경제전문가들 스스로가 정확하게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경우도 많았다. 이번 조사에서 관찰된 매우 희망적이고도 흥미로운 현상은 답변자 자신의 이념적 성향과는 무관하게 학술활동이
충실하거나 합리적인 논리를 갖춘 인물에 대해 전반적으로 일치되는 평가가 나왔다는 점이다. 물론 분석대상자의 선정 자체가 언론노출도에 큰 비중을
두고 이루어진 것이지만, 적어도 전문가들 사이에서만은 단순한 유명세나 대중적 인지도보다는 주장의 학문적·논리적 설득력에 비중을 두는 문화가
형성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현상이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강철규
(서울시립대 경제학과 교수): 개량적
자유주의 또는 진보적 자유주의
강철규 서울시립대 교수에 대해서는 ‘개량적 자유주의’라는 답변이 가장 많았으며 그와 거의 비슷한 빈도로 ‘진보적 자유주의’라는 답변도 제시됐다.
그 밖에 ‘보수적 자유주의’라는 답변도 일부 있었으며 ‘신좌파’, ‘정통좌파’라는 답변도 드물게나마 있었다.
응답자들이 제시한 판단
이유는, “강교수가 기본적으로 시장경제 원리와 영미식 자본주의 모델을 지지하는 입장을 취하고 있는 인물로서, 제도적 개혁을 통해 재벌문제 등을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하며 그 과정에서 일정 부분 정부의 주도적인 역할을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그가
관치 경제를 비판하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개혁을 위한 정부의 적극적 개입을 옹호하고 있다는 주장도 눈에 띄었다. 또한 ‘시장의 힘을
이해하고 있으나 정부개입을 필요 이상으로 주장한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한편 진보적 지식인들은 강교수에 대해 “기본적으로 중산층에 바탕을 두고
있는 ‘보수적 중산층 자유주의자’이며 필요에 따라 정부 및 재벌과 연대할 수도 있는 인물”이라는 부정적인 답변을 내놓았다.
그럼에도
강교수에 대해 대부분의 응답자들이 대체로 ‘개량적’ 또는 ‘진보적’ 자유주의에 일치된 의견을 나타낸 것은 강교수가 꾸준히 활동해온 무대가 비교적
온건하고 체제내적 개혁을 추구하는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이라는 점과, 상대적으로 성실하고 일관된 학문적 활동을 배경으로 삼고 있다는 점
때문으로 분석된다.
강교수 자신은 이에 대해 “내가 무슨 주의자인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면서 “다만 나는 기본적으로 시장경제를
옹호하고 관치경제를 반대하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강교수는 “정부는 시장의 틀을 형성하는 수준에서만 개입해야 한다”면서 “한국사회는 정부의
개입이 많다 보니까 이익단체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 사이에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세력이 시민이며 시민세력은 정부에 대해
시장경제의 룰을 정확하게 적용하도록 끊임없이 비판해야 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공병호
(인티즌 대표): 보수적
자유주의
공병호 인티즌 대표는 매우 정력적인 인물로 지금은 벤처기업 경영인으로 변신했지만, 지난 몇 년간 재벌문제를 비롯한 다양한 경제논쟁의 핵심
멤버였다. 다양한 활동을 통해 그의 주장이 잘 알려진 만큼, 공대표에 대한 전문가들의 평가 또한 대체로 비슷한 내용이었다.
그를
‘보수적 자유주의’라고 평가한 답변이 가장 많았으며, 그보다는 다소 빈도가 떨어지지만 ‘정통보수주의’라 평가한 답변도 적지 않았다. ‘진보적
자유주의’ 및 ‘급진적 민주주의’라는 답변도 한 건씩 있었으나, 전체적인 맥락에서 볼 때 다소 일탈된 평가로 보인다.
공대표의
구체적인 주장에 대해서는 비합리적이고 일관성이 없다거나, 재벌의 행위를 대부분 정당화하는 데 급급한 ‘사이비 자유주의자’ 또는 ‘수구적
재벌자유주의자’라는 등 전반적으로 부정적인 평가가 많았다.
반면, 소수지만 보수성향의 응답자로부터는 ‘확신에 찬 열정주의자’이며
“우리 사회에 이러한 주장이 널리 퍼져야 한다”는 평가도 있었다. 흥미로운 답변으로는 “그가 사회적 발언을 가장 활발하게 했던 것은
자유기업센터소장 시절의 일이므로 그것이 그의 개인적 소신을 얼마나 반영하는 것인지 명확하지 않다”는 내용이 있었다. 유사한 맥락에서 벤처기업으로
진출한 이후 정체성에 혼란이 발생하고 있다는 주장도 나왔다.
공대표가 주도해서 창설하다시피 한 자유기업센터가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의 재정지원을 받는 기관이며, 정력적인 매스컴 활동을 통해 재벌의 입장을 대변하는 주장을 널리 펼쳐왔다는 점에서
반재벌적인 입장에 있는 응답자들로부터는 좋은 평가를 받기 어려웠을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나 공대표는 친기업 성향의 답변자 중에서도 “자유주의
논리로 보수적 결과를 옹호하려 한다”는 부정적인 평가를 받기도 했는데, 이것은 언론활동에 비해 그를 뒷받침하는 학술적 활동이 상대적으로
부족했다는 데 원인이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이에 대해 공대표는 “대체로 동의한다”고 답했다. 공대표는 자신의 저서를 인용하며
이념적 지향점을 설명했다. “나는 그동안 네 권의 책을 썼다. ‘시장경제란 무엇인가’, ‘시장경제와 그 적들’, ‘기업가’, ‘시장경제와
민주주의’ 등이다. 여기에는 보수주의에 관한 내용이 들어있다. 항상 체제를 시장논리에 맞춰 변화시켜야 한다. 내가 강조하는 ‘작은 정부’,
‘개인적 선택과 책임’, ‘기업 자유주의’ 등이 보수적 이미지로 비친 것 같다. 좌파들은 내가 강한 보수주의자라고 주장하지만, 외국의 사례를
통해 보면 나는 평범한 사람이다. 세월이 흘러 사람들의 의식이 변하면 나를 보통사람으로 평가하게 될
것이다.”
김수행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신좌파
김수행 서울대 교수는 영국 런던대학에서 마르크스경제학을 체계적으로 공부한 인물로서 칼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국내 최초로 완역했다. 이 때문인지
‘신좌파’라는 답변이 가장 많았으며, 그에 못지 않은 빈도로 ‘정통좌파’라는 답변이 나왔다. 소수의견으로는 ‘급진적 민주주의’나 ‘개량적
자유주의’라는 답변도 있었다.
한가지 특징은 보수적인 성향의 답변자들로부터도 긍정적인 평가가 압도적으로 많았다는 점이다. 예컨대
분석대상으로 제시된 학자들 중에서 ‘이론적으로 정립된 유일한 인물’이라거나 ‘세속적 성공보다는 학문적 성취를 추구’하는 ‘학구파’라는 답변들이
그러하다. 김교수를 ‘신좌파’ 또는 ‘정통좌파’라고 규정한 이유로는 학문적 배경이 마르크스경제학이라는 사실이 제시되었고, ‘정통
마르크스-레닌주의의 전도사’이며 ‘아직 사회주의에 미련을 못 버린 인물’이라는 소수의견도 있었지만, 대체로 현실문제에 대해서는 유연하고 실용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는 점이 지적됐다.
전체적으로 볼 때 김교수가 한국전쟁 이후 사실상 국내에서 최초로 마르크스경제학을 공부한
제1세대라는 점 때문에 ‘좌파’라는 답변이 많이 나온 것으로 보인다. 또한 그가 노동자의 경영참가나 사회민주주의적 복지제도 확충 등에도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점, 그리고 학문적 성취도가 탁월하다는 점 등이 호의적인 평가에 반영된 것으로 분석된다.
김교수는 지식인들의 평가
결과에 대해 “일정이 너무 바빠서 답변할 수 없다”는 의견을 보내왔다.
김태동
(대통령자문정책기획위원회 위원장):
진보적 자유주의 또는 개량적 자유주의
김태동 정책기획위원장은 현 정부의 등장과 함께 대통령 경제수석비서관으로 등용된 바 있는 개혁적 이미지의 경제학자이다. 예일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전형적인 미국식 경제학 교육을 받은 엘리트임에도, 토지공개념을 주장한다든가 소득분배 및 재벌문제 등에서 매우 개혁적인 주장을 많이
했다. 김위원장에 대해서는 ‘진보적 자유주의’라는 답변이 가장 많았고 그와 거의 비슷한 빈도로 ‘개량적 자유주의’라는 답변도 제시됐다.
일부에서는 ‘급진적 민주주의’와 ‘신좌파’라는 답변도 나왔다.
김위원장에 대한 전반적인 평가는 매우 부정적이었다. 예를 들어,
“백면서생에 그치는 것이 우리 사회에는 더 나았을 사람”, “애매모호한 DJ가신”, “우월감과 열등의식이 혼재된 독불장군형”, “이성보다 열정이
더 강한 사람” 등 거의 독설에 가까운 비판이 주류를 이루었다. 반면 정반대의 방향에서 “기성 정치권에 완전히 포섭돼 수구적 통치이데올로기화
했다”는 비판도 있었다.
사실 김위원장의 학문적 성장배경이나 현 정부 등장 이전까지의 학술활동 등을 감안하면, 그를 ‘좌파’라고
규정하는 것은 그다지 적절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더구나 그에 대한 부정적 평가는 대부분 개인적 특성과 관련된 비난의 성격을 띠고 있는 것들이
많다. 이와 같은 부정적 평가들이 대세를 이룬 것은 김위원장으로 상징되는 DJ정부의 정책난맥상과 실정에 대한 불만이나 비판이 반영됐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어찌 보면 설문조사 시점 자체가 그에게는 불리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에 대해 김위원장은 “분류방식에 별로 동의하지
않지만 굳이 나눈다면 진보적 자유주의와 개량적 자유주의자 중간쯤에 속할 것 같다”고 말했다. 김위원장은 자신이 존경하는 경제학자는 영국의 존
스튜어트 밀과 2차대전 중 독일의 기민당 정책에 영향을 미쳤던 사람들이라며 “한국 사회에서 가장 시급한 사안은 공정경쟁 질서를 확립시켜 시장의
힘을 키우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유승민
(여의도연구소장): 보수적 자유주의
유승민 여의도연구소장에 대해서는 대다수의 응답자가 일관되게 ‘보수적 자유주의’라고 답변했다. 보수적인 응답자들로부터는 “지적 능력, 개인적 성품
등 모든 면에서 모범적인 학자”라는 평가를 받았다. 또한 진보적 성향의 응답자들도 유소장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한 경우가 많았다. 예를 들어,
“재벌을 옹호하는 편이지만 시장경제에 일정한 원칙을 지닌 세련된 자유주의자” “연구원 발행 학술지에서나마 꾸준히 자신의 주장을 체계화하려는
노력이 돋보임” 등의 답변이 그러하다.
이에 대해 유소장은 “납득이 잘 안된다. 예시된 방식으로 나눈다면 보수적 자유주의가 맞을 것
같지만, 그보다는 실용주의에 가깝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유소장은 경제 지식인들이 자신을 ‘보수적 자유주의자’로 평가한 이유에 대해 “나는
재벌의 강점을 살려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다. 그래서 급진적인 재벌해체에 반대한다. 그런 면에서 보수적이다. 또한 나는 관치금융을 강도 높게
비판하고 규제철폐를 주장한다. 그렇게 보면 자유주의자일 수 있다”고 답했다.
유한수
(CBF금융그룹 회장, 전
전경련 전무): 보수적 자유주의 또는 정통보수주의
유한수 CBF금융그룹 회장에 대해서는 ‘보수적 자유주의’라는 답변이 가장 많았으며, 그에 못지 않게 ‘정통보수주의’라는 답변도 많았다. 그가
포스코경영 연구소장 출신으로 특히 IMF 위기 국면을 맞아 전국경제인연합회 전무를 맡으면서 시장원리를 강조하고 친(親)기업적인 주장을 정력적으로
펼쳐온 인물이라는 점에서 전문가들의 답변내용은 거의 일치한다.
이념 지형에서 공병호 대표와 유사한 평가를 받았다고 할 수 있는데,
흥미로운 점은 긍정적인 평가가 상대적으로 많았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냉철한 시각으로 경제문제를 봄” “상황인식이 약간 보수적이기는 하나
맥락을 잘 파악하고 있다” “도중하차로 기업경제 발전에 큰 손실을 가져왔다”는 평가 등이 그것이다.
반면 소수의견으로 “재벌옹호
논리가 일관성을 결여하고 있다”는 부정적인 평가도 있었다. 특히 “포지션에 따라 재벌문제에 대한 입장이 다소 기회주의적으로 변동한다”는 지적도
있었다.
전경련 전무라는 위치 자체가 상징하는 것처럼, 재벌친화적 입장을 취한다는 점에서 반(反)재벌론자들로부터는 부정적인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유한수 회장에 대한 전반적인 평가는 “비교적 합리적인 사고의 소유자”라는 긍정적인 의견이 주를
이루었다.
이에 대해 유회장은 “나는 정통보수주의는 아니고 보수적 자유주의에 가까울 듯하다. 나는 그렇게 완고한 사람이 아니다”고
말했다. 유회장은 스스로 개량주의에 가깝다며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밝혔다.
“우리 사회의 가치, 제도 중에는 장점도 있다고 본다.
그래서 급진적 변화에 반대한다. 재벌도 문제가 있지만, 단점을 고치는 쪽으로 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TV토론에 나가서 기존의 것을 지켜야
한다고 말한 것이 보수적으로 보였던 것 같다. 하지만 논리 자체가 보수적이지는 않다. 반동도 아니고 수구도 아니다. 나는 유연하며 개량적
보수주의로 볼 수 있다.”
이필상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개량적 자유주의
이필상 고려대 교수에 대해서는 ‘개량적 자유주의’라고 응답한 비율이 가장 높았으며, ‘진보적 자유주의’, ‘급진적 민주주의’가 그 뒤를 이었다.
이교수의 경우 얼마 전까지 비교적 온건한 시민운동단체인 경실련을 중심으로 꾸준한 대중적 활동을 벌여 왔으나, 의외로 과격한 지식인으로 비춰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원칙 없고 대안 없는 비판론자”, “엄밀한 논리보다는 선동적인 체제 비판” 이라는 등 인신공격성 혹평도
나왔다.
이에 대해 이교수는 “동의하고 싶지 않다. 나는 기본적으로 한국 경제에 비판적이다. 낙후된 정치가 경제를 어렵게 만들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바뀌지 않는 경제문제에 분노하고 있다. 그런 입장을 ‘개량적 자유주의’로 볼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나는 스스로
건전한 시장경제를 위한 ‘개혁론자’라고 생각한다. 개량과 개혁은 어쨌든 바꿔야 한다는 의미에서 비슷할 수도 있다”고
답했다.
이한구
(한나라당 의원): 보수적 자유주의 또는 정통보수주의
이한구 의원은 대우경제연구소장을 거쳐 국회의원이 된, 한나라당의 핵심 경제브레인이다. 그에 대해서는 ‘보수적 자유주의’와 ‘정통 보수주의’라는
답변이 거의 비슷한 빈도로 제시됐다. 흥미로운 사실은 그가 재벌옹호론적인 주장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정부의 개입에 그다지 반대하지 않는다고
평가한 응답자들이 많았다는 점이다.
이의원의 경제철학에 대해 “정부개입의 필연성을 전제하고 이론을 전개한다” “한국형 발전모델의
강점을 인정한다” “박정희 시대의 경제발전 전략에 미련을 가진 것 같다”라는 답변들도 나왔다. 이것은 경제개발기 재무부 관료 출신이라는 이의원
개인의 이력과도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편 이의원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는 주로 그가 논리적이고 풍부한 지식의 소유자라는
측면에 집중됐다. “모든 문제에 대해 한마디씩 할 수 있는 백과사전적 지식인”이라거나 “전체를 보지 못하나 부분적인 논리력은 있다”는 평가는
비판적 기조 속에서도 그의 장점을 인정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그러나 정치인으로 변신한 뒤의 활동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평가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정치에 입문한 이후 합리성과 일관성을 상실했다”거나 “과거와 최근의 성향이 다르다” “출세지향적인 이미지” 등의 답변이
이러한 평가를 반영하고 있다. 이 부분은 김태동 정책기획위원장의 경우와 유사하게 정치권 전반에 대한 불신감이 일부 투영된 결과라고
판단된다.
이에 대해 이의원은 “개인적으로 개량적 보수주의 성향이 강하다고 생각한다. 이념은 보수주의지만 늘 개혁을 지향한다. 내가
법질서를 존중하고 단계적 개혁을 주장하기 때문에 보수주의자로 비친 것 같다”고 말했다. 이의원은 특히 자신이 보수주의자로 평가된 이유에 대해
“대북관계를 바라보는 완고한 입장 때문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의원의 말. “나는 대북관계에 대단히 보수적이다. 나는 북한이 믿을
만한 상대가 아니라는 것을 경험했다. 그래서 현 정부의 햇볕정책에 대단히 비판적이다. 북한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 위험한 게임을 벌이고 있다.
나는 아무리 좋은 제도라도 절차를 무시하는 것에 반대한다. 나는 새로운 개혁조치가 성공하기를 바라지만, 기초여건과 단계를 더
중시한다”
장하성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 진보적 자유주의 또는 개량적 자유주의
장하성 고려대 교수는 참여연대를 통한 소액주주운동으로 유명한 인물이다.
일단 그에 대해서는 ‘진보적 자유주의자’라는 답변이 가장
많았다. 교수로서는 보기 드물게 강력한 행동주의자이며 반재벌주의자로서의 이미지가 깊게 각인돼 있다는 점에서 보수성향을 가진 답변자들로부터
부정적인 평가를 받은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 모른다.
예컨대 “참여연대를 통해 합법을 가장하고 있지만, 내심 원하는 것은
재벌해체인 신좌파”, “1인 1표의 정치민주주의로 1인 다수표가 가능한 자본주의에 도전하려는 모순적인 주장을 함“, “자신의 잣대에 맞지 않는
것을 모두 잘못이라고 보는 사람”, “시대 상황을 앞질러가는 행동주의자”라는 식의 비판적 평가가 많이 제시되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진보적 성향의 답변자들로부터 “중산층 소액주주의 한계”에 머물고 있다거나, “자유주의자이나 원동력은 보수적인 입지에서 나온다”라는
부정적인 평가를 동시에 받았다.
장교수의 주장이나 학문적 배경은 충실한 시장경제 원리에 기초하고 있고 이른바 ‘아메리칸
스탠다드’(미국식 표준)를 염두에 두고 있다. 그런 점이 보수적인 재벌옹호론자는 물론 진보적인 논자들로부터도 비판을 받는 중요한 원인으로
분석된다.
이에 대해 장교수는 “황당하다. 이렇게 사람을 도마 위에 올려놓아도 되는 건지 모르겠다. 나는 이데올로기적 편향성을
논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좌파든 우파든 현실성이 있고 사회발전에 도움이 된다면 좋다. 내가 시민운동을 하기 때문에 그런 평가가 나온 것
같다”고 답했다. 장교수는 “개량적 자유주의라는 표현에 동의하지 않는다”며 “그런 평가가 나온 것은 내가 자본주의 사회의 절차적 정당성을
중시하고 그런 논리를 시민운동 속에서 주장하기 때문일 것”이라고 말했다.
장교수는 이어 “내가 소액주주운동을 펼친다고 했을 때
운동단체에서는 ‘무슨 투기꾼을 보호하느냐’고 비판했다. 한편 우파에서는 나를 세상을 뒤집으려는 ‘빨갱이’로 몰아부쳤다”고
덧붙였다.
정운영
(경기대 경제학과 교수): 신좌파
정운영 경기대 교수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다양한 답변이 제시되었다. 가장 빈도가 높았던 답변은 ‘신좌파’지만, ‘급진적 민주주의’나 ‘진보적
자유주의’라는 답변 빈도도 매우 높았다. 그 밖에 ‘정통좌파’에서부터 ‘개량적 자유주의’ ‘보수적 자유주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답변들이
제시됐다.
정교수는 벨기에 루벵대학에서 마르크스경제학을 전공했으며, 김수행 교수와 함께 전후 한국 마르크스경제학의 제1세대로 꼽히는
인물이다. 그가 좌파라는 답변이 나온 데는 이러한 학문적 배경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한 답변자는 그를 가리켜 “스스로 좌파라고
말할 수 있는 인물”이라고 묘사했다. 특히 그가 ‘한겨레신문’ 논설위원으로서 썼던 칼럼에 나타나는 반(反)시장적, 평등주의적, 급진적 정서에
주목하는 응답자들이 많았다.
그러나 현실문제에 대한 입장은 “유연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근본은 좌파지만 처방은
분배주의적”이라거나 “구체적인 현안에 대한 입장은 마르크스주의적이라 보기 어렵다” “실제 성향은 자유주의적”이라는 평가 등이
그러하다.
정교수는 최근 TV토론 사회자로서 대중적 인지도가 급격하게 높아졌는데, 이와 관련해 의외로 부정적인 평가가 많았다.
“사회적 분위기와 입지에 편승하려는 기회주의적 처신” “최근 소신은 약해지고 처세술은 능해지는 듯” “타협주의적이고 종잡을 수 없다”는 등의
평가가 그러하다. 이것은 토론프로그램 사회자의 특성상 자신의 주장을 강하게 내세우기 어렵다는 점이 부정적으로 작용한 듯하다.
이에
대해 정교수는 “평가가 잘못됐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나는 한번도 좌파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한국적 지식인 풍토가 너무 경직돼 있다 보니 다소
삐딱하게 말하는 것이 좌파로 분류될 수 있다. 사고가 유연한 사회라면 나를 좌파로 보지 않을 것이다”고 말했다. 정교수는 지식인들이 자신을
‘신좌파’로 평가한 이유에 대해 “전공 분야와 독서 취향의 영향 때문일 것”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나는 정치경제학을 전공했지만,
그런 시각으로 한국사회의 대안을 제시하지는 않았다. 독서량이 잡다하다 보니 글을 쓸 때 좌파적 견해를 가진 사람의 주장을 넣는 경우가 많다.
주류 사람들이 볼 때 그것이 생소하다 보니 나를 좌파로 오해했는지도 모르겠다.”
정운찬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개량적 자유주의
정운찬 서울대 교수는 현정권 출범 이후 한국은행총재 등의 요직 제의를 줄곧 거절하면서 더욱 유명해진 인물이다. 그에 대해서는 ‘개량적
자유주의’라는 평가가 가장 많았고, 보다 구체적으로 개혁적, 진보적, 또는 정통이라는 수식어가 따르는 케인즈주의라는 답변도
많았다.
일단 정교수가 경제학계 내에서는 널리 알려진 케인즈주의자인데다 스스로 ‘개혁적 케인즈주의’라는 개념을 적극적으로 제시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특히 프린스턴대학 출신의 전형적인 미국유학파 엘리트임에도 미국식 스탠더드나 IMF의 정책처방, 국제금융자본의 횡포 등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이른바 신자유주의자들과는 명확하게 구별된다는 점, 그리고 시장원리를 견지하면서도 합리적인 정부개입을 주문하고
있다는 점 등이 이러한 결과가 나온 중요한 이유일 것이다.
정교수 개인에 대한 평가가 긍정적이냐 부정적이냐에 무관하게 이러한
내용들에 대해서 거의 모든 응답자들의 답변이 일치하였다. 그렇지만 “입지에 따른 유명세 보유자일 뿐, 진면목은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라거나
“손에 흙을 묻히지 않는다” “학구파는 아니지만 상아탑 고수주의자”라는 식의 부정적인 평가도 있었다.
이러한 비판은 어찌 보면
지식인의 역할과 관련된 딜레마의 표현이라고도 볼 수 있다. “비판만 하고 현실참여는 왜 하지 않느냐”는 일각의 거부반응이나 ‘낭만적
개혁주의자’라는 평가도 이러한 연장선상에 놓여 있다.
이에 대해 정교수는 “진보적 자유주의 쪽으로 가고 싶은데, 개량적 자유주의로
보이는 모양이다. 분류가 자의적이라고 생각되지만, 그 중간쯤에서 개혁을 추진하는 입장으로 볼 수 있다”고 답했다.
정교수는 자신이
지난 98년 언급했던 ‘개혁적 케인즈주의’에 대해 “한국처럼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기본적 룰이 취약한 나라에서는 국가가 거시적 플랜뿐만 아니라
미시적인 구조조정에도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는 뜻으로 쓴 용어다. 나는 ‘개혁적 케인즈주의’가 개량적 자유주의와 진보적 자유주의 중간쯤에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좌승희
(한국경제연구원장): 보수적 자유주의
좌승희 원장은 전경련 산하 단체인 한국경제연구원장을 맡고 있다는 점에서 일단 재벌옹호론자라는 이미지가 강렬하게 연상되는 인물이다. 그러나 사실은
오랫동안 한국개발연구원(KDI)에 근무한 관변 이코노미스트로서 시장경제 원리를 일관되게 옹호하는 주장을 펴온 인물이다.
좌원장에
대해서는 ‘보수적 자유주의’라는 답변이 압도적으로 많았으며, ‘개량적 자유주의’나 ‘정통보수주의’라는 답변이 뒤를 이었다. 분석대상 인물 중에서
응답자들의 답변이 가장 좁은 범위에서 형성된 인물이다.
전반적인 평가는 비교적 긍정적이었다. “문제의 본질을 잘 알고 해결방안을
제시할 능력이 있는 인물”이라거나 “시장경제 원리를 강조하며, 재벌의 전근대적 행태는 비판한다”는 등의 답변이 그러하다. 그렇지만 “개혁보다는
기존 시스템에 대한 합리적 이해를 추구”하는 인물이라는 점에서, 그리고 무엇보다도 한국경제연구원장이라는 현재의 위치 때문에 ‘보수적’이라는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분석된다.
이에 대해 좌원장은 “나를 평가한 사람들이 내가 쓴 글을 얼마나 읽었는지 모르겠다.
나는 그저 경제원칙에 충실하고 있을 뿐이다. 나 자신도 내가 무슨 주의자인지 잘 모른다. 보수적 자유주의가 무슨 뜻인지도 모르는데,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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